mora

 

아프꼼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한일 워크샵이 니혼대에서 열렸습니다. 워크샵의 취지는

공동연구의 맥락에서 논문생산에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전 단계인 연구가 진

행되는 과정과 문제점들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서 자유로운 발화와 토론의 장을 이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아프꼼 역시 이와 같은 학술장안에서 스스로 의 자리를 만들

고 발화하고 개입하는 경험치를 만들어가는것에 의미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번 워크샵은 단발적인 작업이라기 보다는 작년 초부터 끊임없이 일본과 교류하면서

실천해왔던 맥락속에서 이해되어야 할것 입니다. 2011년 초 <지식.문학, 예술,삶의 연

대: 그 역사적 가능성과 현실적 지형>이라는 주제로 심포를 기획하고 국경을 넘어서

리츠메이칸대학의 한국학 연구소와 공동워크샵, 인문평론 연구회-일한 문학연구 워크

샵 동아시아 평화캠프 참석, 요코하마 뱅크아트, 코리아 연구센터등을 종횡무진하면서

스스로 기회와 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하는 시초가 되었고, 이후에도 요코하마 뱅크아트

에서의 레지던시와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 와코우대학과의 공동 워크샵을 주최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국경을 넘는, 국제적인 활동이라기 보다는 아프꼼에서 활동하고있는 이

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서 발화의 장을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그 노력과 애씀들을 하나

하나 새기고, 배우는 실천적인 장이라고 할수 있을것 입니다. 그러므로 올해 맞이한 워

크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이 아닌, 끊임없이 아래로 부터 부단히 노력한 결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이번 워크샵은 그 실천들의 네트워크와 연구의 장으로서 또다른

국면을 맞는것이라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전체적인 워크샵의 진행은 작년에 이어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신명직, 신지영

선생님과 권명아 선생님의 2년차로 이어지는 연구의 맥락들과 니혼대학의 도쿠나가

나츠고 선생님의 발표, 아프꼼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순주 선생님의 발표와 송진희 선

생님의 영상-이미지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내년 심포지움

을 통해서 연구를 함께 진행할 고영란, 나카야 이즈미 선생님, 지역학연구와 냉전문화

론 저자이신 마루카와 데스시 선생님의 발표에 관한 코멘트와 그에 대한 발표자들의

자유로운 응답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의 발표와 이에관한 질문과 응답들을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이후 연구의 방향

과 문제점들을 체크하고 고민지점을 공유할수 있는 부분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현장 스케치를 공개합니다!

(이후 워크샵 발표 자료들을 영상으로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워크샵 발표 사회를 맡아주신 나오키 와타나베 선생님

 

 

권명아 선생님의 <전쟁상태적 신체의 정동> 발표

 

 

신명직 선생님의 < 냉전기 재일 코리안 시티즌십의 변화> 발표

 

 

신지영 선생님의 <'쌈짓돈'의 공유, '듣고-쓰기'라는 표현: 탄광촌 여자 코뮨

<무명통신 1959~ 1961>을 중심으로

 

 

 

 

도쿠나가 나츠코 선생님의 < 타자에의 공감과 정념: 타카하시 타카코<인형애>와 70년대의

 Women's Liberation> 발표

 

 

 

 

양순주 선생님의 < 냉전의 문턱과 언어화의 경계> 발표

 

 

 

송진희 선생님의 <냉전의 이마고 - 영상 프리젠테이션> 발표

 

라운드 테이블 - 고영란, 나카야 이즈미, 마루카와 데스시 선생님의 발표에 관한 코멘트 및

연구에 관한 고찰

 

 

그외에도 통역을 맡아주신 류충희, 이현준 선생님, 번역에 참여해주신 다카하시 선생님,

그리고 박유하 선생님이 워크샵에 함께 참석해 주셨습니다

 

 

 

 

 

 

 

국제철학콜레주에 대한 다큐인 <철학에의 권리>를 잘 보았습니다. 콜레주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 다큐나 여러 인터뷰 , 책에서도 자주 이야기를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철학에의 권리>는 다큐나 책으로도 나와 있습니다. 그 주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西山雄二、哲学への権利、勁草書房、2011.2)

제도

국제철학콜레주의 정의 이념

철학에의 권리를 위하여

대학

대학의 조건과 무조건

 

인문학의 형과 의의

 

득실

국제철학 콜레주와 경제적 가치관

경제원리와 무상성

 

장소

장소를 묻다

여행하는 현장을 구하여

 

문제와 벽들

 

우애

데리다

 

여행의 길 위에서

 

 

결속

각자의 활동력이

관계자 내부의 결속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외 활동은 많지만, 내부적인 결속이 안된다.

 

따라서, 오늘은 콜레주에 대한 니시야마상의 작업들을 바탕으로 해서, 니시야마 상이 자신의 <거점>인 일본, 대학 등에서 콜레주의 이념과 의미 등을 토대로 어떤 <실험>과 작업을 하고 계신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aff-com 역시 대학교수인 제가 출발점이 되어서, 대학 제도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 다른 방식의 연구와 삶의 관계들을 발명하고, 또 이러한 발명을 통해 대학 제도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이념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니시야마 상도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처럼, 제도 안과 밖의 경계를 오가는 방식은 한계와 의미 모두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도 안에서는 안에서 데로, 또 제도 밖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또 그 나름데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비판받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경우, 혹은 니시야마 상의 실험과 발명 작업의 경우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름: 공론장과 주체

 

아프콤 또한 젊은 연구자들이나 지방의 연구자들, 즉 공론장 속에서 발화의 몫을 갖지 못한 자들이 어떤 사회적 서열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발언하고, 그것을 통하여 그저 한 개인에서 공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을 확인하게 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공론장에 단순히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 자체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과 시도들을 해왔다. 웹 매거진, 영화제, 잡지 발간,

 

한편으로는 이러한 공론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질문. 공론장이라는 것은 그 체계자체가 어떠한 이름을 얻고서 자체적으로 존재가 가능하여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국제철학학교는 데리다라는 이름에서 출발하여, 이것이 후에 국제철학학교라는 공론장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이는 한편으로는 어떠한 대안적인 제도체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팀의 경우에는 권명아라는 이름에서 시작하여, 그 무게를 아프콤이라는 구조나 체계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여러 벽에 부딪혀 왔었다. 그럼에도 그 무게를 팀의 이름으로, 그리고 모두의 이름으로 옮겨오기 위하여, 끊임없이 공론장에 자신을 기입하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국제철학학교>라는 제도는 이러한 무게와 이름을 제도로 얻기까지 어떠한 과정이 있어왔는지?

 

결속: ‘제도공동체의 사이

 

<철학에의 권리>의 한 장면에서는, 국제철학콜레주에서 부족한 부분으로 생각되는 것이 내부적 결속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국제철학학교가 완전히 체계이자 공론장이라는 구조로서 존재하고, 따라서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를 통과할 뿐인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국제철학학교가 누군가의 소유가 아닌 공공성을 갖게 하지만(이러한 점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익명의 장소, 공공의 지평을 연다는 것이라는 인터뷰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동시에 그 내부적인 결속과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게 하기도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아프콤은 어떠한 공론장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그 공론장을 만드는 주체로서도 기능하려 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 노력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장을 어떠한 공론장으로서 만들기 위한 <노동><함께> 행하기 때문에, 일종의 강력한 결속력의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 때의 결속력은 강한 친밀감이나 유대감과는 다른,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동과 같은 충돌을 끊임없이 생산해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외부로 향하는 방향성과, 또 내부적인 인력(引力)의 평형을 잡는 것은 우리에게도 언제나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몸을 바꾸는 것이 대의나 의제, 지향점과 같은 것만으로는 될 수 없고, 결국에는 관계의 충돌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 부대낌을 포기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리고 니시야마 선생님께서 일본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공동체에서는 이러한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는가.

 

 

컨스텔라시옹: a들의 agit, agit들의 association

 

국제철학학교라는 제도이든, 연구모임 아프콤이라는 공동체든 간에, 이것은 어떠한 개인(a)이 모여서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위치지을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보는 것은, 그렇다면 공동체(agit)들 간의 공론장, 더 넓은 어소시에이션 또한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즉 단 하나의 공론장만이 존재할 수 없고, 수많은 다른 성격의 공론장’(또는 아지트, 제도, 공동체, , 집단 등으로 대체해도 좋다.)이 존재할 때, 이들 역시도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갖고, 의미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아프콤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컨스텔라시옹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해왔다. 별이 하나로 빛날 때는 빛나는 점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이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줄로 이어질 때, 별자리로서의 위치와 의미, 그리고 나름의 서사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보다 실제적으로는 지역의 또는 국경 너머의 공동체들 사이를 매개하고, 그 전체적인 지평을 그려보기 위하여 <공동체의 지도를 그리는 것> 등의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것은 국제철학학교나 니시야마 선생님이 일본에서 하시는 작업과도 연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인 듯 하다. 제도와의 비교에서만 성립이 가능한 대안이 아니라, 대안 간의 비교와 관계 속에서도 의미를 갖는 것이 이루어지는지를 묻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터뷰 중에 언급하신 지하대학(비정규대학+세미나), 아즈마 히로키 선생님의 서브컬쳐 활동, 학술연구회 WINC, 그리고 그 외의 교토 자유대학 등과의 비교 속에서 그 위치는 어디인가. 그리고 이들 간의 (또는 꼭 이들이 아니어도 좋다.) 어소시에이션과 같은 것은 이루어지는가?

 

2102년 8월 13일, 데일리를 대신하여

14일은 우리의 영원한 파트너인 고영란 선생님 인터뷰와 니시야마 유지 선생님의 인터뷰 준비를 데일리로 대신합니다. 니시야마 유지 선생님은 자크 데리다가 창설한 연구교육 어소시에이션 <국제철학학교>에 대한 기록 영화 <철학에의 권리>의 감독이자 이 <국제철학학교>의 이념이 된 데리다의 <조건 없는 대학>(月曜社, 2008)의 일본어 번역자이기도 합니다.

aff-com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정념과 공동체, 어소시에이션의 가능성을 타진해오면서 현재는 연구-글쓰기-삶의 인터페이스로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인터페이스에는 아프꼼의 내부 성원만이 아니라 아프꼼이 지속적으로 만나온 다른 존재들, 다른 아지트, 다른 꼬뮨과의 constellation의 흔적들이 또다른 아프꼼의 멤버로서 기입-정동되어 있습니다.

Passion for another life, 다큐 작업은 이 컨스텔라시옹으로의 행보, 나아간 길과 머문 길, 막다른 길들 모두를 기록하고, 이 기록을 통해 아프꼼이라는 별자리의 형상을 성찰하고 사유해보려는 시도입니다. 하여, 그간 연구모임 a, net-a, 아프꼼에 이르는 무수한 이름에 응하고 답해준 모든, 컨스텔라시옹의 희미한 불빛을 나름으로 기리고 새기는 작업에서 시작하려 합니다. 신지영, 고영란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습니다.

특히 이 인터뷰들은 각자 고유한 자신의 삶의 행보에서 여러 낯선 타자들, 공간들, 장소들과 꼬뮨들과의 만남과 헤어짐과 상처들에 대한 나름의 말을 나누는 과정을 수행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모든 꼬뮨들, 모든 꿈을 가꾸고 지키려는 모임들이 그러하듯, 아프꼼의 여정과 행보 역시 외부에서 보이는 <결과물>들의 집적물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와 상처와 되돌이킬 수 없는 슬픔의 퇴적층을 그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무수한 실패와 상처와 슬픔은 어떤 것, 어떤 사례로도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것이겠으나, 실은 다른 삶을 꿈꾸고 지키려했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꼬뮨이 짊어지고 남겨놓은 실패와 상처와 슬픔이라는 점에서, 인류 보편의 슬픔입니다.

해서 아프꼼은 이 슬픔을, 상처를, 실패를 우리만의 내적인 ‘문제’로서, 개인의, 개인들간의 해소될 수 없는 실패담으로서 소비하고 탕진하기보다, 보편의 슬픔, 상처, 실패로서 사유해보려 합니다. 그 첫발걸음이 바로 슬픔과 상처와 실패를 나누는 과정입니다. 하여 아프꼼을 빛나게 해준 여러 다른 별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여,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이 길에서 만남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당신에게 그 만남의 빛나던 순간과, 실패와 상처와 슬픔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슬픔으로부터 무엇을 길어 올렸는지.

이런 슬픔의 나눔을 통해 아프꼼은 부대낌의 상처와 실패와 슬픔을 사적 개인의 후일담으로 탕진하거나, 그저 종결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단절하고 나아가, 다른 만남으로 대체하여 소진시키고 망각하고, 청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명한 새로운 삶의 현실적 실천으로서, 새로운 삶의 발명의 혁명적 이행의 한 과정으로서 변형시키려, 몸부림쳐보려 합니다.

 

 

니시야마 유지상의 다큐 <철학에의 권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국제철학학교의 기본 이념들은 이와 관련해서 많은 생각거리, 부러움, 기대, 안심 등을 아프꼼에게 주었습니다.

국제철학학교는 몇 가지 중요한 이념을 바탕으로 합니다.

지의 제도화에 반하는 제도

철학자의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무상성의 이념

무조건성의 이념영역교차의 이념

철학이 철학이기 위해서는 고립되어서는 안된다는 이념.

인터뷰 도중에 이런 이념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었다. 그중 흥미로운 몇가지는 이런 이념을 통해 국제철학학교는 젊은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자기 표현이 가능한 유일한 장소, 자신의 연구를 공론장에 전하는 것이 가능한 유일한 제도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점은 아프꼼의 지향점과 아주 많은 부분 통하는 지점이어서 매우 반가웠습니다.

 

또 철학의 초월적 권위를 비판하며, 철학을 다시 정의하는 작업 역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즉 철학이 다른 학문 분야나 사람들에게 <이런 것이 진리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말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철학을 초월적 권위의 자리로 놓는 것이라고 이들은 비판합니다. 대신 철학은 <귀를 기울이는 것>, 즉 다른 분야에서 표현되는 어떤 것들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철학은 자기 자신에 대해 묻는 것을 소임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즉 <철학이란 영원히 자신을 다시 묻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자크 데리다의 <조건 없는 대학>이 제시한 이념이자 국제철학학교가 이 이념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결코 완성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며, 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에 가까운 것, 즉 <철학은 활동이다.>라는 데리다의 이념과 국제철학학교의 이념이 나오게 됩니다.

아프꼼 역시, 상처와 패배와 슬픔의 기나긴 행로 위에서, 이런 만남을 통해, 연구와 삶과 글쓰기를 하나의 활동으로서 정립해나가고자 합니다.

 

길을 찾다. 그리고 막다른 길들.

 

코엔지의 오래된 작은 사회과학 인문과학 서점. 지도를 그려준, 오랜 벗, 그녀와 어제도 그런 이야기를 나눴더랬다.

 


삶의 불가해함. 혹은 부대낌과 꼬뮨의 막다른 길들. 그 중 하나는, 사람들, 관계들, 평생을, 끝이 오지 않을것처럼, 영원히 빛날 것 같던, 그 찬란한 부대낌의 순간들.

 

그러나 오히려 두려운 것, 마주보아야 할 것, 피할 수 없는 것은, 그 부대낌의 끝장. 관계의 끝은 실로, 영원한 마지막처럼, 되돌아오기 어려운 어두운 심연을 남긴다는 것, 그 심연을 본 후, 우리는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길로 나아간다는 것, 그리하여, 삶은 실로 서로 다른 길로, 그리고 결코 만날 수 없는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뒤돌아볼 수 없다는 것. 삶이든, 관계이든, 부대낌이든, 꼬뮨이든, 그 근저에 놓인 두려움의 하나일터.

 

하여, 겸허할수밖에 없다. 사라진 것, 되돌이킬 수 없는 것, 그리고 남은 것들.

 


사라져가는 그 부대낌의 잔상처럼, 점점 희미해져가는, 그러나 그 희미해져감을 다시 찬란한 부대낌의 에너지로 이행시키는 그런, 코엔지의 길목에서 문득 두서없는 생각.

 

그러나, 사라진 것, 되돌이킬 수 없는 것, 그리고 남은 것들을 생각한다. 혹은 뒤돌아보지 말고, 걸어가야 하는 길에 대하여.

되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는 것에 대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지하도서실에서 밤을 새고 허기를 채우러 집으로 왔습니다. 마감은 코앞이나, 책 뚜껑은 이제 열었으니 밤을 한 번 지새는 걸로는 택도 없겠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내내 깨어있는 것은 저만이 아니었지요. 나 외에도 모두가 깨어있었다는 것이 참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도 혼자 깨어있지 않아서 이유없이 조금 힘이 납니다. <연구모임>이라는 것은 사실 이런 것인 듯도 합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에, 그래도 누군가 같이 있구나, 하는 것.

요 며칠 간은 12시 전에 헤어진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야 체력이 좋다지만 (끈기와 집중력은 반비례) 다른 세 사람은 저러다 쓰러지는 건 아니겠지..? 하는 걱정도 간혹 듭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이 지킴이님들은 '서로가' 괜찮을지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괜찮을지 노심초사 한다." 활자로 쓰면, 당혹스러우리만치 평이하고 그저 착한 한 문장이 되어버리는 이 문장. 하지만 또 어딘가의 지킴이님들은 아마 알아차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서로가 괜찮을지 걱정하고 추스린다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시간을 거쳐야 겨우 한 문장 써볼 수 있는 것인 듯합니다. 피로조차 챙길 수 없는 정신에도, 내가 멘붕하면 저이도 멘붕하겠구나, 내가 엎어지면 저이도 엎어지겠구나, 그럼 우리는 다같이 망하는구나ㅠㅠ....라고 머리가 알아도 몸이 끝내 배반하는 이 '함께-있음'의 피로를 다스리기까지, 아니 조금 다스려보기 시작하는 것도 이제 겨우 다시 시작인 듯합니다. 정동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음에도 무섭도록 그 전염력이 강하여, 너무나 쉽게 전혀 다른 것으로 모두가 휩싸여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다스려보기 시작한다, 는 말도 실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말을 저는 적습니다. 이 것이 기쁩니다.

 

사람이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것일진대, 이 <장소>는 무엇이란 말이더냐

 

물론, 이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국경을 넘는 것이 어디 쉽던가요. 하지만 이번에는 선배-선생님들의 빈자리가 정말 크군요. 대체 예전엔 워크샵을 어떻게 했던 거야?! 라는 충격과 공포의 나날입니다.

지역적 한계를 넘고, 삶의 반경을 넘어, 국경을 넘어. 우리는 왜 그렇게 순례를 하였던 것일까. 작은 실수에도 기절할 듯 놀라고 송구해하며, 왜 그렇게 헤매고 다니는 것일까. 우리와 함께 할, 또 다른 얼굴의 친구를 찾기 위한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해봅니다. 국경을 넘어서 삶의 반경이 아주 넓어졌을까? 저는 이 팀에서 <국경을 넘는> 일에 가장 많이 참여하였습니다만, 사실 여전히 대답은 쉽지 않습니다. 사실은 평생 비행기 한 번 타볼 일이 없이 살아오다가, 여러분들이 손을 잡아주어 뚜릿뚜릿하며 국경을 넘게 되었으니, 실로 진일보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정말로 국경을 넘게 되는 것은 절박한 부딪힘과 스스로가 완전히 깨졌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도든, 중앙이든 무엇이든. 지역을 넘어서 국경을 향한다고 할 때, 그 말 안에는 어떻게든 (중앙)이 들어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강고한 벽이 저에게는 언제나 물음표로 남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서울에 가본 일이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이기도 하구요...)

이런 생각은 지난 밤에 읽은 책 두 권과 함께 찾아온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주제인 <20대 담론>을 다루고 있는 두 권의 책에서 발화하는 '20대'들은 거의 대부분이 서울의 명문대이거나, 또는 서울의 갖가지 문화판/집회판 속에서 키워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외에도 모으면 열권 안되게 읽은 것 같은데, 심지어는 교지편집부 기자들이 <20대의 삶>을 주제로 자신의 삶을 소소히 쓰는 글을 묶은 책은, 전원이 서울대학교 학생이고, 우리도 똑같이 취업걱정하고 힘들다는 내용입니다. 뭐라고, 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그놈의 중앙이 뭐길래.

촛불판을 통해 키워져서 이까지 왔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연대와 광장의 즐거움을 통해서 정치에 참여하게 되면 좋겠다고 가슴뿌듯하게 말하는 것을 보며, 저 역시도 부산에서도 크게 일어났던 2008년 촛불시위를 통해 여러가지 행동들에 참여하게 되었음에도 반가움보다는 거제도에서 한 열몇명 촛불 들고 있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우스개가 되었던 고향친구가 생각나서 울컥하기부터 하는 것은 제가 거제시에 대한 애향심이 넘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미선이효순이 촛불광장, 노무현탄핵촛불광장, 쇠고기반대촛불광장, 그 많은 광장들. 자부심에 넘치는 그 광장의 사람들은 한 번도 광장을 가져보지 못한 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그래도 조본좌님의 책에선 거의 유일하게, <20대 세대론> 안에서의 지방과 중앙의 격차를 언급해주고 있죠..)

연구모임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갑자기 읽은 책 이야기로 흘러가버려서 수습이 안되네요.. 아 갑자기 뒷목이 땡기는 것은 내가 밤을 샜기 때문일 거야.

매일매일의 연구모임에서 일이든 관계든 공부든 뭐든 사유로 남기자고 시작하는 것인데, 첫번째부터 취지랑 어긋나버려서;;; 그냥 공황상태라서 그러려니 해주세요...

 

덧) 인터뷰어가 집이 잘사냐고 묻자, 우리집은 청담동이긴 한데 외곽이라 중산층이에요...라거나 아버지 약사고 어머니 교사신데 그냥 중산층이죠...라고 하질 않나, (중간계급욕망론이 요기잉네^^) '우연히' 좋은 학벌을 얻어 (진중권나 박민규나 등등 왜 명문대 가놓고 꼭 컨닝해서 우연히 간 거 뿐이라고 말할까 옛날부터 이런 말 하는 사람들 제일 짜증났다)회당 20만원짜리 과외를 했지만 자기는 과외학생에게 집회참가권유도 하고 저소득층 봉사활동도 한다고 하는 등등의 진보적 인터뷰이 미친놈들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를 부르주아라고 외쳐야겠다고 생각.

지금은 새벽 1시를 넘어가는 시간,

아이폰의 지메일 알림이 쉬지 않고 울립니다.

우리 팀원들이 워크샵에 대한 안내 메일을 보내고 있는 중인것이죠. 다들, 지금도 밤을 새며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아프꼼이 하는 일들을 아는 분들은, 아프꼼 팀원이 한 수십명 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간 만나온 대부분의 대안 꼬뮨이나 모임들(물론 아주 큰 대안 꼬뮨을 제외하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세상을 후딱 바꾸는 그런 일은 아니지만, 나름,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그 현장들을 더 인간다운 방식으로 변혁시켜보려, 작지만, 온 삶의 에너지를 다 쏟아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런 모임에는 나름 <대표 표상>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실은 그 모임을 지켜가는 <지킴이>들이 있습니다. 지킴이들은 모임과 '공동체'와 꼬뮨을 가꾸고 만들어가고, 지켜가기 위해, 매일매일을, 자신의 전 삶과 존재를 말 그대로 바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임들에 참여도 하고, 스쳐지나가기도 하지만, 지킴이들은 묵묵히 그 모임을 지켜나갑니다. 아주 힘껏.

그러다보니, 그런 대안적 모임에 잠시 스쳐지나가거나, 그 모임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모임과 자신의 <참여>에 대해 참으로 많은 말과 후일담과 참관기를 남기지만, 막상, 지킴이들은 <말>을 잃고, <기억>을 잃고 <후일담>을 잃게 마련입니다.

해서, 많은 경우, 우리는 지킴이들의 말을, 기억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그리고 이전에도.

게다가, 아프꼼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런 대안적 모임의 대표표상의 경우, <대표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실은 대안적 모임을 통해서 말과, 자신의 자리와, 나름의 <보람>을 갖게 되지만, 어찌보면 지킴이들의 경우 <대표표상>과는 달리, 말도, 자리도, 보람도 갖기가 어렵습니다.

아프꼼 역시 이런 딜레마를 고스란히 갖고 있습니다. 아프꼼의 지킴이들은 몇년간, 이 모임을 변화시키고, 지키고, 가꾸기 위해, 자신을 탕진하고, 소진하고, 나가떨어지고를 반복하면서 삶 모두를 바쳐왔습니다. 그러면서 <보람>도 있었겠으나, 더 실제적으로는 공부할 시간도 없고, 글은 더 집중이 안되고, 몸은 항상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곤 했습니다.

아프꼼은 이 <지킴이>들이 자신의 몫을, 말을, 기억을, 자리를 흔적을 갖을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드는 것을 모임 자체의 목표로 했지만, 그럼에도 역시 모든 대안적 모임의 지킴이들의 슬픈 운명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임의 첫 발걸음부터, 아주 오랜 시간 <고생>과 <멘붕>을 거듭해온, 김대성 ...그의 잃어버린 말과, 보람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또 실무만 잔뜩하다가 새로운 길로 나선 장수희, 그녀의 새로운 발걸음이 좀더 가볍기를! 두 사람은 모두 나름 연구모임 <안식년> 중이지요. 김대성과 장수희, 두 지킴이들에게 감사를~

 

 

그리고 못지 않게 오랜 시간, 제 구박을 받으며, 연구모임의 자리를 지켜온 <신콩떡>, 나이는 여전히 가장 막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연구모임의 선배격이지요. 오늘도, 열심히 <실무>를 보며, 글을 써야한다는 제 압박에 밤잠을 설치고, 하릴없이 909에서 밤을 샐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으는 바퀴벌레와 나방과 싸우며

 

지킴이 세월 몇년간 <잃은 것은 몸매요, 얻은 것은?> 미안합니다.

역시 제 압박과 구박에 연구모임 초기 지킴이었으나, 지금은 <파토~스>라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김만석.

 

그의 <피로>가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새롭게, 그리고 지금도 우리 연구모임을 지켜나가는 두 사람. 양순주, 송진희

송진희는 대학제도에 발을 잡힐 수 있는 우리 연구모임에 진정한 <연구자>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중요한 전환점이 된 지킴이입니다. 일본 체류를 마치자 합류한 양순주, 공부말고는 관심이 없던, 참으로 성실한 연구자였는데, 아프꼼 지킴이가 된 후 공부할 시간이 없어진, 슬픈 지킴이이죠.

하지만 <문체 혁명은 책상머리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말은 실천을 통해서만 온다>는 다짐을 마치 주문처럼 외우며, 오늘도 아프꼼의 지킴이들은 피곤한 하루를 아직도 마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어떤 이념, 어떤 명분에도 모든 대안적 모임들은 이 지킴이들이 잃어버린 말과, 기억과 보람, 그리고 무수한 시간들에 의해 지켜집니다. 아프꼼이 수년간 만나온 모든 모임들, 아프꼼은 그 모임의 대표표상보다는 지킴이들과 만나고, 그 말과 기억과 보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아프꼼의 지킴이들의 말과 기억과 보람과 시간과 열정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간 만났던 수많은 지킴이들의 피로한 얼굴과 그럼에도 의연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킴이들의 말과 기억과 보람을 만나고 지켜나가는 일, 아프꼼이 해나갈 일이기도 합니다. 지킴이들,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연구모임 아프콤에서  다큐맨터리 <철학에의 권리> 의 감독님이신 니시야마 유지씨와의 인터뷰 및 독립 '비정규대학' <지하대학>의 탐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먼저 저희와 함께 해주시는 신지영 선생님께서 지하대학에서 철학에의 권리를 상영한 일을 소개해주셨던 글을 인트로로 올려봅니다^^

원 출처는 그린비출판사 블로그 : http://greenbee.co.kr/blog/966 입니다~

 

지식 게릴라들의 대학제도 이용법!, 신지영

비정규대학 "지하대학"에서 다큐 「철학에의 권리」를 보고
ㅡ일본에서 마을 만들기 8

* 우리는 국가 등록 인문학자
학교에 대해 논의하는 건 고리타분한 기분이 들어서 싫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대학제도가 너무나 필요해 속앓이를 한 적이 있다. 무작정 일본으로 간 탓에 한동안 소속이 없었던 때의 일이다. 당장 써야 할 글이 있는데 대학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으니 손발이 꽁꽁 묶인 듯했다. 책을 찾아볼 수도 빌릴 수도 없고, 인터넷도 프린터도 복사기도 이용할 수 없었다. 동네 도서관에 등록을 해 보았지만, 내게 필요한 책들도 검색기능도 그곳에는 없었다.

그때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한국에서 나는 대학 밖에 있다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지만, 실은 대학에서 부여해 주는 여러 요소들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제도권 밖이라고 생각했던 공동체도 나에게 이른바 제도처럼 안정적인 공부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나는 그것이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폭력적으로 그 안정적인 지위를 이용했을 수도 있다. 활용하기에 따라서 대학 안은 대학 밖이 될 수 있으며, 제도권 밖은 늘 제도가 될 위험과 직면해 있었다. 또한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제도가 탐날 때에는 그 제도에 대해서 비판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점에서 ‘고리타분’이라는 말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고리타분’이란 인류가 오랜 기간 여러 차례의 실수를 통해 습득한 필요요건을 갖추어 놓았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나는 고리타분이라는 안전장치 속에서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고리타분하다고 불평할 수 있는 도련님이었던 것이다.

또한 고백하건대 최근 나는 국가 등록 연구자가 되었다. 이른바 ‘학진 시스템’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공부와 연구로 돈을 벌 방법이 없다. 등재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 아니면 실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내가 써 온 글은 학술잡지에 실리지 않은 게 대부분이라, 그곳의 기록방식에 따르면 내 몇 년간은 실적 없는 공백이다. 한국의 모든 연구자들이 거기에 등록되어 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면 훨씬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국가적이고 자본주의적 평가제도와 일대일로 대면하기 시작한 느낌이 든다. 그나마 학진 시스템 덕분에 혈연‧지연에 따른 연구풍토가 개선되었다고 하니, 그 이전의 상황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 사건으로서의 다큐상영 「철학에의 권리」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인문학과 대학의 위기'는 죽은 유행어가 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는 ‘대학’을 새롭게 묻는 움직임이 보인다. 최근 1~2년 사이에 대학의 기능과 역사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는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대학의 탄생』(大学の誕生 上·下, 天野郁夫, 中公新書, 2009), 『대학의 역사』(大学の歴史, クリストフ シャルル、ジャックヴェルジェ、文庫クセジュ、2009), 『대학의 반성』(大学の反省, 猪木武徳, 日本の現代11, 2009. <일본경제신문> 2009년 12월 26일자 소개) 등이 그것이다. 또한 유명한 잡지 『現代思想』은 2008년 8월에 ‘대학의 곤란’(大学の困難)이란 특집을, 2009년 11월에 다시금 ‘대학의 미래’(大学の未来)라는 특집을 다룬다. 특히 2008년 특집에는 2004년 국립대학들의 독립 행정법인화 이후 대학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글과 함께, 일본의 대안적 지적 공간들을 소개했다. 그 대안공간들은 ‘대학의 밤’(大学の夜)이라는 와세다 대학 생협, 고엔지의 ‘지하대학’(地下大学), G8 서미트 반대운동 기간 중 북해도에서 생겼던 ‘캠프대학’(キャンプ大学)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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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반성, 대학의 곤란, 그리고 대학의 미래


대학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시작된 것은 1991년 이후 일본 대학의 설치 기준 자유화 이후 교양과목의 축소, 2004년 국립대학의 독립 행정법인화 이후 대학에 대한 포괄적 평가와 운영 시스템이 확립됨에 따라 진행된 대학의 기업화 및 그에 따른 고학력 실업자의 증가와 관련된다. 이런 경향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HK와 BK 사업단이 고학력 실업자의 수를 줄였으나 동시에 기업과 같은 관리체제가 대학 안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등재지 논문의 실적주의는 글쓰기 방식을 논문형태로 고정시키고 있으며 연구자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니시야마 유지(西山雄二) 씨는 파리의 국제 철학 콜라주에 대한 다큐멘터리 「철학에의 권리」(哲学への権利)를 만들어 일본의 대학 및 대안적 지식 공간을 돌며 상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상영방식이다. 도쿄뿐 아니라 각 지방의 주요 대학 및 자생적 지식 공간을 돌며 상영한 뒤, 지적 공공 공간의 문제를 전면에서 논의한다. 그 토론내용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 공유한다(홈페이지 가기). 일본의 순회 상영이 끝나면 프랑스와 미국, 한국 등지에서도 상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것 자체가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국제적 사건으로서의 상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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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철학에의 권리」

다큐멘터리 「철학에의 권리」는 현재 파리의 국제 철학 콜라주에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국제 철학 콜라주는 1983년 자크 데리다가 중심이 되어 만든 자유대학이다. 누구든 커리큘럼을 짜서 강의를 하고 누구든 들으러 올 수 있다. 국제 철학 콜라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부터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까지 다양하며, 전문분야나 관심분야도 천차만별이다. 이 활동을 위해 필요한 돈은 프랑스 국가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대학처럼 돈을 주는 대가로 연구활동을 기록하게 하고 관리하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지식인과 대중이라는 틀을 넘어서 다양한 위치의 발화자들과 다양한 학문들이 접속하는 장인 국제 철학 콜라주, 그리고 그것을 찍어서 일본의 대학 상황 속에 집어 던지는 행위. 그것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철학’의 전제를 깨뜨려 갈 권리에 대한 요구이자, 그것이 가능한 공간에 대한 요구였다.

* 지식 게릴라들의 아지트 ‘지하대학’
내가 「철학에의 권리」를 ‘지하대학’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두번째로 이 영화를 보러 온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누구랑 어디서 보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 그렇다. 지하대학은 그런 곳이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한다. 소속도 연령도 제각각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조건에 진지하게 개입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함께’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함께 먹는 것, 함께 보는 것, 함께 듣는 것, 함께 행동하는 것, 함께 논의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하대학’의 시도는 「철학에의 권리」가 추구

 

 

하는 바를 현실 속에서 구현해 가고 있었다.

 

 

지식의 게릴라 아지트 '지하대학'


‘지하대학’에는 “비정규대학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지하대학은 고엔지 마을(상점들의 네트워크 마을)의 제12호점인 다목적 아지트에서 열리는 공공적 논의장이다. ‘지하대학’의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말을 빼앗기고 있다. 노래를 빼앗기고 있다. 사상 등은 먼 옛날에 사라져 버렸다. …… 그리고 지하대학이 시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쇠사슬을 자르는 '지식'이며 철의 이빨을 부수는 '기술'이다. 교양주의를 파괴하는 '교양'이다. 대항 심포지엄을 대학 밖으로 거리로 밤으로 열어젖히는 시도이다. …… 지하대학은 신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노래가 되는 바로 일보직전에 머물 것이다. 지하대학은 밤의 거리, 그 수렁을 방황하는 TAZ(일시적 자율 공간)이 될 것이다. 왜냐면 장소는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지하대학에서는 다니가와 간(관련글 보기)과 같은 사상가, 일본에서의 68~69 정치투쟁에 대한 다큐 상영, 사회운동에 관련된 서적 평론회, 정치 문화 모임 소개 등이 이루어진다.

「철학에의 권리」가 상영되던 날, 45석쯤 되는 지하대학은 금방 만석이 되었고 서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하대학을 주도하는 음악평론가 히라노(平井玄) 씨와 대학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는 조치대학(上智大学)의 시라이시(白石嘉治) 씨가 참여한 토론은 열기가 뜨거웠다(토론내용 참조 >>). 히라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칸트가 마이너리티(minority)도 이성이라고 했음을 상기시키면서, 국제 철학 콜라주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의 의의를 설명했다. 마이너리티란 미성년자와 소수자를 동시에 지칭하는 말로, 비합리적인 것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이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 철학 콜라주가 68혁명의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68~69 정치활동 및 현재의 게릴라적 지식활동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설명했다. 데리다의 ‘조건 없는 대학’을 근간으로 한 다큐이지만 데리다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현재의 사건이 되고 싶어 하는 다큐. 그것이 ‘지하대학’에서만 단 한 번 상영될 수 있는 「철학에의 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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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대학에서 「철학에의 권리」 '함께' 보고, '함께' 논의하기


아마도 이 다큐가 국가나 제도라는 그림자로부터 가장 자유롭게 논의된 공간이 일본에서는 ‘지하대학’이 아니었을까. 고엔지의 채식주의자 카페의 식단을 담당하고 있는 요요짱은 “전부 공짜라는 게 무척 놀랍다”라고 했다. 나는 국제 철학 콜라주가 여러 공간을 전전하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놀라웠다. 논의는 논의의 배경에 대한 심각한 고민 이전에, 새로운 사실과 지적 자극에 대한 이런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차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연구자 등록을 눈앞에 두고 있던 나로서는 강렬한 공감과 강렬한 반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 다큐가 표방하는 것이 만인을 위한 철학의 권리라는 점, 국제 철학 콜라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인터뷰가 마음을 쳤다. 반면 ‘대학’을 재건하려는 듯한 분위기와 '국가로부터의 지원'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데 모두들 동감하고 있다는 것에는 어쩐지 거리를 두게 되었다.

* 지식 게릴라들의 제도 이용법
집에 돌아오는 길엔 두 명의 친구와 “만났고”, 길가에 서서 “토론했다”. 친구와 나는 가장 래디컬하게 보이는 일본 지식인조차 왜 늘 '국가의 지원'에서 시작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제도의 밖이 없다는 것엔 나도 그녀도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연구자 등록을 해야 그나마 연구비 신청이라도 할 수 있다. 그녀는 시인이나 소설가들도 등단하게 되면 국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혹은 국가의 바깥을 상상하길 멈추어선 안 된다는 데 동감했다. 많은 일본 지식인들의 발상법에는 복지국가에 등록된 지식인이 지닌 무기력과 허무주의 그림자가 있었다. 길거리에 서서 열변을 토하고 있으니 사회활동에 열심인 대학원생 친구가 나타났다. 그 친구는 아마 지하대학의 뒷정리를 하고 오는 참이었을 텐데, 우리가 오래 서 있긴 했던 모양이었다. 그 친구는 “이번 지하대학엔 활동가들이 별로 안 왔어요”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동네 도서관에서 내게 필요한 책을 구할 수 없는 것처럼, 대학을 논의하는 장에는 활동가들이 필요한 무언가가 없는 것일까…….

그러나 그날의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우리가 다큐와 지하대학의 열기에 힘입어 전철역에 한참 서서 이야기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런 우연하고 우발적인 토론의 공간들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한 달에 한 번 자신의 집을 토론 공간으로 개방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누구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대학을 패러디하기 혹은 대학을 전전하기 혹은 대학을 이용하기, 그 매뉴얼들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그것은 이제 현실적인 문제로 시작되고 있다.

 

 

 

 

때: 2012년 8월 11일 (토): 10:00~18:00

곳: 니혼대학문리학부백주년기념관 2층 회의실3

 

연구모임 아프콤이 일본 니혼대학에서 국제워크샵을 진행합니다. '정념'과 '공동체'의 문제를 다양한 역사적 결락 속에서 읽어내기 위한 시도로, 지난 해에 <식민성과 제국의 네트워크, 정념의 공동체: 정체(停滯/政體)감각과 감각적 결속>을 주제로 하여 연구와 실천을 진행해왔던 것에 이어서, 이번 워크샵은 '냉전기'에 포커싱을 맞추어 정념과 공동체의 문제를 질문해봅니다.

일본에 계신 여러 연구자 선생님들의 도움과 참여에 힘입어 이번 워크샵을 통하여 풍성한 연구와 토론의 자리를 만드는 동시에, 단순한 '국제'워크샵으로서가 아니라 지역과 국경을 넘어 <삶의 반경>을 새로이 넓혀나가는 실천적인 수행의 자리 또한 만들어지기를 기원해봅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아프꼼은 며칠 후에 일본 워크샵을 떠납니다. 문득, 작년의 뜨거웠던 8월과 길고도 길었던 2011년 2월의 일본 '순례'가 떠오릅니다. (2011년 동아시아 인권 캠프) 연구모임 a로부터, 부산을 포함한 '지방'의 인문 공동체와 만나고 헤어졌던 긴 시간들 불화와 오해의 시간과 눈초리에 지칠 즈음 부산에서, 부산을 넘어서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겠다는 절박함에 흥부네 식구들처럼 일본으로 '밀항'처럼 넘어갔던 시간들. 권명아라는 이름으로의 월경과는 다른 연구모임 a, 그리고 아프꼼이라는 이름의 '월경'은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국경을 넘어서든, 전혀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우리도 버젓이 비행기 타고, 워크샵 교류를 맺어서 일본에 갔지만 뭔가, '밀항'과 다르지 않은 현실적, 심리적 상태였지요. 그 불안하고, 막막한 마음과 현실. 무수한 월경의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저조차, 그 불안과 막막함에 '하나가'되었던 기억들. 그 이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연구모임은 불안과 막막함의 언저리를 배회해왔습니다. 연구모임의 오거나이저로서, 선생으로서, 선배로서 그런 불안함과 막막함을 보듬고, 길을 제시해주며 조금은 든든한 버팀이 될 수 없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허나 어쩌면, 그렇게 '불안함과 막막함'으로 팀원들과 제 상태가 정동되었던 것은 우리 팀이 어떤 '상태'와 그로 표상되는 정치적 입장을 서로 나누게 되었던 국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가, 그저 서울에서 내려온 공부 열심히 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우리 팀원들과 '같은 미래를 보는, 같은 현실을 마주하는' 그런 자리에 함께 나란히 앉게 되었던 그런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과 회고는 온전히 저의 것. 그 여름은 너무 뜨거웠고, 숨막혔고 그 겨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춥고, 배고프고, 밀항자처럼 피곤에 지쳐 아무데나 쓰러져버렸습니다. 그 밀항자의 겨울, 숨막힌 여름, 우리에게 손을 건네고, 말을 들어주고,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주었던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니, 진짜 밀항자 같은 기분도 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숨막혔던 여름 그 외로운 겨울 그 시간이 어떤 의미였을까 그 회고의 말을 듣고 싶은 시간입니다. 뜨거운 8월의 그날로부터 꼭 1년이 지나가는 이 시간에 말입니다. 2011년 겨울의 기억과 여름의 시간은 <웹진 아지트, 국경안의 불만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agitproject/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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