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철학콜레주에 대한 다큐인 <철학에의 권리>를 잘 보았습니다. 콜레주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 다큐나 여러 인터뷰 , 책에서도 자주 이야기를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철학에의 권리>는 다큐나 책으로도 나와 있습니다. 그 주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西山雄二、哲学への権利、勁草書房、2011.2)

제도

국제철학콜레주의 정의 이념

철학에의 권리를 위하여

대학

대학의 조건과 무조건

 

인문학의 형과 의의

 

득실

국제철학 콜레주와 경제적 가치관

경제원리와 무상성

 

장소

장소를 묻다

여행하는 현장을 구하여

 

문제와 벽들

 

우애

데리다

 

여행의 길 위에서

 

 

결속

각자의 활동력이

관계자 내부의 결속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외 활동은 많지만, 내부적인 결속이 안된다.

 

따라서, 오늘은 콜레주에 대한 니시야마상의 작업들을 바탕으로 해서, 니시야마 상이 자신의 <거점>인 일본, 대학 등에서 콜레주의 이념과 의미 등을 토대로 어떤 <실험>과 작업을 하고 계신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aff-com 역시 대학교수인 제가 출발점이 되어서, 대학 제도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 다른 방식의 연구와 삶의 관계들을 발명하고, 또 이러한 발명을 통해 대학 제도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이념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니시야마 상도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처럼, 제도 안과 밖의 경계를 오가는 방식은 한계와 의미 모두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도 안에서는 안에서 데로, 또 제도 밖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또 그 나름데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비판받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경우, 혹은 니시야마 상의 실험과 발명 작업의 경우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름: 공론장과 주체

 

아프콤 또한 젊은 연구자들이나 지방의 연구자들, 즉 공론장 속에서 발화의 몫을 갖지 못한 자들이 어떤 사회적 서열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발언하고, 그것을 통하여 그저 한 개인에서 공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을 확인하게 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공론장에 단순히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 자체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과 시도들을 해왔다. 웹 매거진, 영화제, 잡지 발간,

 

한편으로는 이러한 공론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질문. 공론장이라는 것은 그 체계자체가 어떠한 이름을 얻고서 자체적으로 존재가 가능하여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국제철학학교는 데리다라는 이름에서 출발하여, 이것이 후에 국제철학학교라는 공론장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이는 한편으로는 어떠한 대안적인 제도체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팀의 경우에는 권명아라는 이름에서 시작하여, 그 무게를 아프콤이라는 구조나 체계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여러 벽에 부딪혀 왔었다. 그럼에도 그 무게를 팀의 이름으로, 그리고 모두의 이름으로 옮겨오기 위하여, 끊임없이 공론장에 자신을 기입하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국제철학학교>라는 제도는 이러한 무게와 이름을 제도로 얻기까지 어떠한 과정이 있어왔는지?

 

결속: ‘제도공동체의 사이

 

<철학에의 권리>의 한 장면에서는, 국제철학콜레주에서 부족한 부분으로 생각되는 것이 내부적 결속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국제철학학교가 완전히 체계이자 공론장이라는 구조로서 존재하고, 따라서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를 통과할 뿐인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국제철학학교가 누군가의 소유가 아닌 공공성을 갖게 하지만(이러한 점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익명의 장소, 공공의 지평을 연다는 것이라는 인터뷰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동시에 그 내부적인 결속과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게 하기도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아프콤은 어떠한 공론장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그 공론장을 만드는 주체로서도 기능하려 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 노력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장을 어떠한 공론장으로서 만들기 위한 <노동><함께> 행하기 때문에, 일종의 강력한 결속력의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 때의 결속력은 강한 친밀감이나 유대감과는 다른,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동과 같은 충돌을 끊임없이 생산해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외부로 향하는 방향성과, 또 내부적인 인력(引力)의 평형을 잡는 것은 우리에게도 언제나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몸을 바꾸는 것이 대의나 의제, 지향점과 같은 것만으로는 될 수 없고, 결국에는 관계의 충돌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 부대낌을 포기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리고 니시야마 선생님께서 일본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공동체에서는 이러한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는가.

 

 

컨스텔라시옹: a들의 agit, agit들의 association

 

국제철학학교라는 제도이든, 연구모임 아프콤이라는 공동체든 간에, 이것은 어떠한 개인(a)이 모여서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위치지을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보는 것은, 그렇다면 공동체(agit)들 간의 공론장, 더 넓은 어소시에이션 또한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즉 단 하나의 공론장만이 존재할 수 없고, 수많은 다른 성격의 공론장’(또는 아지트, 제도, 공동체, , 집단 등으로 대체해도 좋다.)이 존재할 때, 이들 역시도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갖고, 의미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아프콤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컨스텔라시옹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해왔다. 별이 하나로 빛날 때는 빛나는 점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이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줄로 이어질 때, 별자리로서의 위치와 의미, 그리고 나름의 서사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보다 실제적으로는 지역의 또는 국경 너머의 공동체들 사이를 매개하고, 그 전체적인 지평을 그려보기 위하여 <공동체의 지도를 그리는 것> 등의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것은 국제철학학교나 니시야마 선생님이 일본에서 하시는 작업과도 연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인 듯 하다. 제도와의 비교에서만 성립이 가능한 대안이 아니라, 대안 간의 비교와 관계 속에서도 의미를 갖는 것이 이루어지는지를 묻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터뷰 중에 언급하신 지하대학(비정규대학+세미나), 아즈마 히로키 선생님의 서브컬쳐 활동, 학술연구회 WINC, 그리고 그 외의 교토 자유대학 등과의 비교 속에서 그 위치는 어디인가. 그리고 이들 간의 (또는 꼭 이들이 아니어도 좋다.) 어소시에이션과 같은 것은 이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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