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국가) 폭력>

 

                                                                                                                                   by_ 신콩떡

지난 25-26일 양 일간 아프콤은 민족문학사연구소와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이 공동 주최하고 소명출판에서 후원하는 심포지움 <전쟁과 (국가) 폭력>참석,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추모식 참여,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기념관 및 현장(쌍굴다리) 답사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번 답사를 통해 '냉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노근리에 직접 가서 그 흔적을 만져보고 전쟁에 '점령당한 영혼'의 흔적들로 우리가 조금이나마 어떻게든 '정동' 될 때, 저희 팀의 2년차 연구주제인 '냉전기의 정념/정동과 공동체'가 그저 '연구주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전쟁상태적 정념과 정서와 영혼을 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품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바람은 민족문학사연구소와의 만남을 통하여, 더 많은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만들고 연구팀 간의 정동(?)을 일으켜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연구 방향이나 방식이 여러모로 다른 곳의 연구자들과 만나 우리의 지평을 공유하고, 또 확인하는 일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바람으로 참여했던 이틀은 아주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노근리로 가는 무궁화호의 세사람 입니다. (mora님은 사진을 찍으시느라 사진 안에는 없네요..)  노근리가 있는 '영동역'은 KTX가 서지 않는 곳이라 무궁화호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가면서도 노근리에서도 보이는 것은 산과 논이라 배경이 온통 초록이었습니다. 뭔가 옛날의 엠티가는 느낌이라, 누구(..)는 삶을 계란을 찾기도.. 뭔가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기차 안에서도 발표준비에 매진중인 맞장님과 미리 관련 텍스트를 읽고 있는 참연구자 mora님

 

첫째 날의 일정은 심포지움과 이후 이어지는 민족문학사연구소에서 20년에 한 번 개최한다는(그래서 이번이 두 번째라는) 비장의 레크리에이션이 있었습니다.

 

심포지움은 김일환 선생님의 <여성의 전쟁 체험과 순절의 기억: "강도몽유록" 다시 읽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정묘호란 이후 조선에서는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조정이 강화도로 대피하여, 이후를 도모하기로 작전을 짭니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 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왕과 세자는 남한산성에 발이 묶이고, 강화도에는 봉림대군과 세자비를 위시한 군사들 및 백성들만이 남아 고립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지도부는 청나라와 강화를 맺고 성문을 열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청군은 유목민의 관습인 '약탈'을 시작하였고 강화도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변모하였습니다.

<강도몽유록>은 그 당시의 참상을 나름의 '증언'의 형식으로 남겨놓은 작품입니다. 당시 강화도의 참상에 대한 기록과 증언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강도몽유록>의 목소리가 특별한 울림을 지닌다면 그것은 <강도몽유록>에는 강화도에서 억울하게 죽은 여성들이 스님의 꿈에 나타나 전쟁의 책임을 묻는 말을 남기고, 이를 기록하는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일 듯 합니다. 이는 타자인 여성들의 입을 빌려 정치적으로 패전의 명분을 세우고 책임을 피하는 조정의 '공적기록'에 대항하는 '기억'들을 만들어내는 기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강도몽유록은 '꿈'의 세계를 끌어오고 있으나, 여러 종의 이본들 속에서 '귀신'인 각 여성들이 누구인지를 상당히 명확히 지적하고 있어 단순히 꿈과 허구의 이야기라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비교 대조를 통해 신원이 비교적 명확히 밝혀진 여성들은 자신의 가문에 속한, 그리고 패전의 책임을 져야 했을 남성들을 비판하고 있으며, 논문은 이 지점에서 발화자로 선정되는 '인물의 선택과 배제'와 배치에 작가가 전하고자하는 정치적 의도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현석 선생님의 <1960년대 소설에 나타난 전쟁경험의 내재화와 자기검열의 문제: 이청준과 김승옥을 중심으로>가 이어졌습니다.

 

 

 

이현석 선생님의 글은 이청준과 김승옥의 소설을 중심으로 '문학과지성'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문학그룹이 논쟁을 거치며 만들어내는 '정치성'의 내면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탐색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과 '정치'는 이들의 소설 속에서 재현될 때, 부재하거나 소거되며 오히려 그 부재의 자리를 남깁니다. 그리고 오히려 커다랗게 다가오는 부재의 자리는 그들이 피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 검열된 내면 안에 침잠시켰던 '정치성'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권명아 선생님의 <전쟁상태적 신체의 정동>이 발표되었습니다.

 

 

삶을 파괴시키는 전쟁의 기억에서 영원히 놓여나지 못하는 개인은 '점령당한 영혼'으로 남아 평생을 '전쟁상태적 신체'로 살아가게 됩니다. 말 할 수 없음을 말하는 북혼학살의 증언자 정윤조씨와 '미쳐버린 채' 혀와 성기를 절단하였던 <할매꽃>의 작은할아버지, 피엑스(학살자의 장소)와 계동(피학살자의 장소)을 왕복하며 뛰는 <나목>의 경아, 평생 글을 썼지만 한국전쟁 당시 죽은 '오빠'에 대해서 끝내는 정면으로 다룰 수 없었던 박완서선생님 등등.. 열전에서 냉전으로 그리고 다시 탈냉전으로 재빨리 전환되어가는 이 세계에, 그들은 여전히 '전쟁상태적 신체'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종료를 선언하는 듯한 '전후'라는 매끈한 균질적 단어 안에는 사실 전환되어버리는 것, 이행되어가는 것, 여전히 남겨지는 것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전히 '점령당한 영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끝내 '발화', 즉 증언하지 못하는 것을 듣기 위해서는 원근법적 조망이 아니라, 그 개별의 '정동'의 떨림을 보고자 할 필요가 있겠지요. 이 발표는 그러한 점령당한 영혼의 정동을 더듬어보고자 하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발표는 김응교 선생님의 <노근리, 그 상처와 화해: 정은용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1994)의 경우>였습니다.

 

 

 

김응교 선생님께서 다루고 계시는 주요 텍스트인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는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의 생존자이신 정은용선생님께서 발표하신 르포르타주 형식의 실화소설입니다. 미군에 대한 오점을 입밖에 내는 자체가 '빨갱이'이자 '숙청대상'이 되었던 시대를 견디며,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하여 평생을 바쳐오신 정은용 선생님은 결국 <실화소설>의 이름을 빌려, 대중에게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의 진실을 알렸고, 이것이 AP통신을 통해 전세계에 보도되며 노근리는 다시 한 번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노근리 학살사건을 다룬 텍스트는 많지만 그 중, 이 소설이 가장 특별하다고 한다면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응교 선생님의 논문은 이 특별한 텍스트가 생존자의 '르포르타주'인 동시에 다성적 목소리들을 끄집어내는 '실화소설'이라는 절묘한 위치에서, 어떻게 자신의 트라우마를 계속하여 마주하고 있는가를 분석하였습니다.

 

 

 

또 이 자리에는 저자이자 생존자이신 정은용 선생님께서 몸소 자리해주시고, 기념사를 말씀해주셔서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경남 선생님의 사회로, 김정녀 선생님, 구재진 선생님, 전승주 선생님, 정구도 선생님께서 토론자로 참석해주시어 전체 논문에 대하여 심도깊은 논의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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