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없는 아망토의 영화

 

 

엄준석(래인커머)

 

 

 

아망토 까페 입구


 연극과 달리 영화는 ‘노동의 영역’을 보여주지 않는다. 즉 “연극이 실연(實演)으로써 노동의 과정 속으로 관객을 동참시키는 것이라면, 영화는 제작과정이라는 노동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영화적 현실로 관객을 유인하는”[각주:1] 것이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의 몸짓과 눈빛, 말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침묵에 이르기까지. 연극을 볼 때 우리는 결말-텍스트의 완결에 이르는 노동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노동량과 질까지 말이다. 극이 끝나고 난 뒤 이는 더 분명해진다. 배우와 스텝이 인사를 한다. 극에 빠져있던 우리의 감각은 그 순간 살며시 깨어나게 되고 이것이 누군가의 구체적인 노력과 의지로 만들어진 것임을 인지하게 된다. 반면 영화는, 1960년대 유럽에서 부흥했던 누벨바그식의 자의식적 영화가 아니라면, 노동의 영역을 은폐한다. 아니, 그렇게 은폐하는 것을 매체적 특질로 갖고 있다. 재현된 이미지는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렌즈, 필름, 영사 등과 같이 제2의, 제3의 공간을 거치면서 가공되고 변형된다. 결과적으로, 연극에서와 같이, 극에 매몰된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차원이 없기에 ‘강한 동일시’[각주:2]가 작동되는 것이다.
 노동의 영역을 은폐한 영화는 매혹적이고 신비스러워 보인다. 관객은 새로운 세계 또는 꿈꾸었던 세계에 무리 없이 들어설 수 있게 되고, 그 끝이 아쉬워진다. 이음새 없이 만들어진 옷 또는 기계가 주는 감동처럼, 그 속에 어떤 노동력이 투여됐든, 매끄럽게 마름질된 표면 위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이 꿈결 같은 놀이가 이전 같지 않아진다. 배우와 스텝이 화면에서 툭하고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너는 영화를 보고 있어”라고 하는 순간이 종종 등장하는 것이다. 다양한 예를 들 수 있겠지만 가깝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줌렌즈’가 등장할 때를 들 수 있다. <극장전>(2006)에서였던가. 영화의 첫 번째 장면부터 줌인과 아웃은 적극적으로 사용되어 “내가 극장에서 <극장전>이란 영화를 보고 있구나”하게끔 한다. 즉 영화에의 동일시를 방해하는 순간이 나오고 그때마다 화면 너머, 카메라 뒤의 어떤 인물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인식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모든 영화가 객관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영화는 강력한 동일시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영화의 신비주의가 깨지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고 외부적 조건, 그러니까 텍스트 외부에 있는 영화제작 방식, 기기의 대중화에 의해 영화는 더 이상 숭고의 대상이 아니게 되어있다. 2010년 칸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한 바 있는, 우리사회의 가장 우수한 영화 <시>(2010)에서도 관객을 응시하는 소녀의 노동이 마지막 장면에서 목격됐다. 2014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포함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노예12년>(2013)과 같은 근작에서도 관객을 응시하는, 과거 불합리한 노동과 착취의 역사를 영화적 노동으로 알리는 영화도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 노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데 있다. 1965년 소니SONY가 만든 비디오카메라 포타백에서부터 현재의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영화적 노동과 더 이상 거리를 두지 않는 상황에 있고 이미 언제 어디서 영화를 만드는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야말로 이제 가장 만만한 매체이지 않을까. 여기 초등학생이 만든 <자작 FPS!!>(2011년 예상)에서 우리는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읽을 수 있다. 아파트 계단에서 FPS(First-person shooter) 즉 ‘일인칭 슈팅 케임’을 영상(화)한 이들의 작품은 어린 나이에도 영화적 감각을 체화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현장의 긴박함을 보여주는 핸드헬드Hand held 촬영은 물론이고, 조르주 멜리어스의 <달나라 여행>에서 마술로 사람을 사라지게 했던 것처럼 시체를 사라지게 하는 편집, 그리고 총격 직후 “헤드샷‘ 사운드가 나온 것처럼 적재적소에 활용된 사운드까지. 이제 우리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을 무시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 영화적 주체로 승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발화할 수 있는 ’친숙한‘ 창구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노동을 수행할 것인가, 우리 또한 텍스트를 만드는 또는 예술을 만드는 노동에 참여할 수 있다 한다면 그 경험을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가가 숙제로 남겨질 것이다. 흥미롭지만 폭력적인 서사 및 이미지 재현에 자기의 노동력을 투여하고 있는 <자작 FPS!!> 속 노동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비폭력 또는 반폭력적인 텍스트를 생산하는데 노동력을 함께 투여했던 경험을 했었더라면 그들은 더 지속적이고 확장적인 의미를 갖는 텍스트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다양한 사례를 언급할 수 있겠지만 일본 오사카에 있는 대안공동체마을 ‘아망토’에서 영화적 노동을 생산적인 형태로 활용하는 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견 노동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혹독함을 은폐하고 회수되지 않는 잉여가치를 감춘 자본주의 체제의 그 신비주의와 영화의 신비주의는 닮아 보인다. 우리는 화폐를 지불하고 영화를 볼 때, 모순 없이 돌아가는 신비로운 그 세계에 제 몸을 맡기는 것에 다름없는 행위를 하게 된다. 아망토는, 앞서 언급했던 영화처럼, 그런 신비를 파쇄하는 노동을 전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적 노동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영화 또는 자본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텍스트 또는 경험을 만든다. 아망토는 어느 샌가 우리가 영화적 노동을 수행하고 있고, 영화적 삶이 마을에 펼쳐져 있음을 안다. “연극에서는 막 뒤에 그림도 있고, 건축도 있고, 시도 있고, 테이블도 있고, 패션을 갖추고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현대에 와서는 영화가 되었지요(과거에는 연극이었지만). 그러니까 그 마을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바로 영화라는 것입니다.”[각주:3] 이는 즉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떤 의미를 지녔든, 다름 아닌 ‘우리의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안다는 것이다.

 

 

 

아망토 준 상과 아프꼼의 권명아 선생님 인터뷰 모습

 

 

 다른 영화를 찾아갈 것도 없이, 다른 노동을 수행할 필요도 없이 지금 있는 삶을 충실히 살고 그를 ‘영화적’으로 잘 모았을 때 ‘충분히’ 영화가 될 수 있음을 안다. “모두 영화를 만들지는 않아도 다들 조금씩 영화에서 하나의 참여를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찍었던 영화들이 상영이 되었습니다.” 영화가 더 이상 신비롭거나 무섭지 않다는 것. 이는 곧 자본의 세계가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자, 그 외부의 삶을 이미 경험해본 사람들이 편안하게 전개할 수 있는 노동이자 실험이 아닐까. 이런 측면에서 외려 영화를 갖고 노는 그들의 모습이 흥미롭게 보이며, 딱히 세속적이지도 않아 보이는데서 어떤 긍정적인 지점도 읽을 수 있게 된다. “아마추어로 노래하는 친구가 영화로 상영되면서, 기획사에서 연락이 와서 프로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영화는 서로의 생존이 되는 좋은 기반이 됩니다. 세계적인 거나, 프로는 꼭 못되더라도, 지역에서의 스타가 될 수는 있고, 또 마음에 남는 경험을 만들 수 있는 거니까요. 영화를 촬영하면 유명한 로케이션이 되어서 사람들이 보러 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를 알리는 거죠. 그래서 그 영화를 만듦으로써 각자가 하는 사업들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의미입니다.”
 아망토는 우리의 노동이 은폐된 것과 함께 우리‘들’의 노동력 또한 은폐된 채 영화가 만들어지고 또는 이 세계가 만들어진 것임을 안다. 즉 각각의 노동이 모종의 ‘관계’를 맺어, 그것이 무엇이었든, 이 결과를 만들어냈음을 감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금 그의 말을 들어보자. “영화를 만든다는 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 각자의 비지니스가 바쁘더라도 함께 하는 일에 힘을 합치게 되는 경험을 쌓게 됩니다. 촬영하는 작품이나 페스티발은 끝나면 종료지만, 그걸 만들기 위한 노력은 경험으로써 남기 때문에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를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영화를 완성하기 전까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아마도 아망토는 영화의 존재론적 특질을 따로 공부하는 그런 이론적 경로는 밟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설명하는 그의 말 속에서 영화 언어 또는 개념은 발견할 수 없다. 그저 일상적인 말을 통해 영화를 설명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 속에서 아망토가 영화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그를 삶과 관계 속에 이렇게 녹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 대한 궁극적인 앎 또는 깨달음은 이런 ‘영화 없음’을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아망토 까페 안, 카운터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에게 영화는 부차적인 것이거나 없음의 무엇이 된 듯하며, 더 나은 관계, 삶의 영화를 전유-실험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나의 영화를 만듦으로써 돈 주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만드는 과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 “공동체를 만들 때, 다양한 프로젝트가 있을 수 있지만, 영화가 가장 이해하기 쉬워요. 영화는 끝나도 영화가 남기 때문에, 작업은 끝나도 다시 보면서 그 기억을 다시 되새길 수 있기도 해요.” ‘영화는 끝나도 영화가 남’는다. 즉, 노동은 끝나도 노동의 흔적은 남는다. 아니, 그 흔적을 남겨 ‘다시 보면서 그 기억을 다시 되새길 수 있’게 그렇게 읽고 공유해야 한다. 아망토는 노동의 양과 질이 각기 다른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것임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조금씩 영화에서 하나의 참여를 할 수 있는 것’). 그렇기에 매번 누가했든지, 어디서 했든지 그를 수평적으로 놓고 오래 존중하려 한다. 삶과 관계에 대한 성숙한 문제의식이 영화를 없애는 즉 영화를 압도하고 있다. 공동체에의 경험과 실험 그리고 지속은 그 견고해 보이던 세계를 초월하는 힘을 갖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이 힘이야말로 우리가 이 신비로운 세계를 타파할 수 있는 새로운 신비-비밀로 인식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 본고가 참고한 아망토와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엄준석: 엄준석입니다. 같은 ‘준’입니다. 이전의 인터뷰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것에 대해서 중요시한다는 것을 보았었어요. 그것이 공통의 감수성을 만드는 의미를 갖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과정에 대한 것들을 알고 싶습니다.

 

아망토, 준 상: 영화의 첫 번째 중요한 점은, 상호참가입니다. 1990년대 처음 시작할 때는 연극이 공동체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이건 유럽의 경우인 것 같습니다. 연극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는 유럽의 방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극에서는 막 뒤에 그림도 있고, 건축도 있고, 시도 있고, 테이블 입고, 패션을 갖추고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현대에 와서는 영화가 되었지요. 그러니까 그 마을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바로 영화라는 것입니다. 모두 영화를 만들지는 않아도 다들 조금씩 영화에서 하나의 참여를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찍었던 영화들이 상영이 되었습니다. 아마추어로 노래하는 친구가 영화로 상영되면서, 기획사에서 연락이 와서 프로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영화는 서로의 생존이 되는 좋은 기반이 됩니다. 세계적인 거나, 프로는 꼭 못되더라도, 지역에서의 스타가 될 수는 있고, 또 마음에 남는 경험을 만들 수 있는 거니까요. 영화를 촬영하면 유명한 로케이션이 되어서 사람들이 보러 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를 알리는 거죠. 그래서 그 영화를 만듦으로써 각자가 하는 사업들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교육의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 각자의 비지니스가 바쁘더라도 함께 하는 일에 힘을 합치게 되는 경험을 쌓게 됩니다. 촬영하는 작품이나 페스티발은 끝나면 종료지만, 그걸 만들기 위한 노력은 경험으로써 남기 때문에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를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영화를 완성하기 전까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나카자키쵸는 서일본에서 가장 영화촬영에 협력을 잘하기로 유명합니다. 방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도와주시는 것처럼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데 우리가 도와줘야지,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관광객이 오면 그 사람들이 묵는 곳을 제공해주거나 하는 것이 또 비지니스가 되는 것이지요. 보통 일반 사람들이 사업을 해도 홈페이지를 만든다든가 돈을 내고 만들어야하는데, 하지만 홈페이지 만드는 건 돈은 나가지만 인간관계는 안 만들어져요. 그래서 그런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영화를 만듦으로써 돈 주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만드는 과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보통은 여자가 비지니스를 하면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러면 여기는 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있고 여성이 비지니스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아이를 돈 주고 맡기지 않고 옆 사람과 공동체를 만들면 그 안에서 해결이 되고 비용도 줄일 수 있어요. 그래서 공동체를 만들 때, 다양한 프로젝트가 있을 수 있지만, 영화가 가장 이해하기 쉬워요. 영화는 끝나도 영화가 남기 때문에, 작업은 끝나도 다시 보면서 그 기억을 다시 되새길 수 있기도 해요.

 

 

 

 

  1. 박훈하, 「새로운 인터페이스, ‘광안대로’에서 바라보기」, 오늘의 문예비평 48호, 2003년, 101~2. [본문으로]
  2. 박훈하, 위의 글. [본문으로]
  3. 이하 아망토의 진술은 아망토의 대표 준상과 아프꼼과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것이다. [본문으로]

 

 

14일: 아프꼼이 일본에 왔다!

 

 

차가영(래인커머)

 

 

 

  2월 13일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 행사가 끝난 바로 다음 날, 우리는 바로 일본으로 향했다. 그동안의 행사 준비로 고단해진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 ‘아프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일본에 도착 후 짐들을 숙소에 놓고, 우리는 바로   첫 목적지인 ‘아만토 마을’과 마을의 핵심인 카페 ‘살롱 드 아만토’가 있는 나가자키초에 가기 위해 전철과 지하철을 탔다. 일본의 철도는 노선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여행 내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일행을 잃을까 하는 불안 때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어를 배워서 나중에 다시 일본에 오게 되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지하철을 꼭 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긴장감이었다.

 

 

 

 

  

  나가자키초에 내려 트리 축제 기간의 남포동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번쩍번쩍한 길들을 지나 20분 정도를 걸으니, 조용하고 좁은 골목이 나타났다. 우리가 나가자키초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만토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상점들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고, 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오늘 방문할 ‘살롱 드 아만토’ 카페도 부산에 있는 많은 대안 공간처럼 힘들게 운영이 되는 것일까, 유명하다는 글을 읽었는데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두운 골목길을 약간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걸었다.

 

 

 

까페 ‘살롱 드 아만토’ 외부(1)

 

 

까페 ‘살롱 드 아만토’ 외부(2)

 

 

 

 

 

까페 ‘살롱 드 아만토’ 외부(3)

 

 

 

 

 

 

까페 ‘살롱 드 아만토’ 내부(1)

 

 

까페 ‘살롱 드 아만토’ 내부(2)

 

 

까페 ‘살롱 드 아만토’ 내부(3)

 

 

  처음 오는 길인데다 날까지 어두워서 우리는 길을 좀 헤매다 ‘살롱 드 아만토’를 찾아내었다. 처음 카페를 발견하였을 때, 우리 다 같이 으잉? 여기야? 하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카페 외부가 전부 덩굴로 뒤덮여 있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카페보다는 작은 집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곳이 ‘살롱 드 아만토’일 거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살롱 드 아만토’는 들어올테면 뭐, 언제든지 들어와. 하는 모습으로 덩굴 사이 작은 불빛을 보이고 있었다.

 


  덩굴 속에 묻혀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은은한 빛으로 꾸며진 작은 공간이 나왔다. 조그맣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내 불안이 괜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의 내부 사진 속 공간 외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실례일 것 같아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테이블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또 한쪽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책을 펴놓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두 자주 여기에 오는 것처럼 편하게 앉아있었는데, 직장인과 학생의 조화라는 것이 이 조그맣고, 조용한 동네 카페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에 새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또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카운터도 있었는데, 마침 카페 사장님인 준 상이 계셔서 내일 인터뷰 시간을 정한 뒤 우리는 카페 구경에 돌입했다. 모든 것이 쓰던 물건을 재활용 한 곳답게 의자는 박음질부분이 터져있었고, 테이블은 삐걱거렸다. 손때 묻고, 오래된 물건들이 카페를 이루고 있어서인지 거기에 있었던 젊은 직장인, 학생들, 그리고 새로 온 우리의 모습이 이질적이고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오래된 것에 새 것이 있으면 티가 나는 것처럼. 그래서 준 상이 왜 카페를 전부 재활용품을 가지고 꾸며놓았을지 궁금해졌다.


  시간이 늦어지기도 하고, 배도 고파지고 있어서 우리는 간단히 차 한 잔을 한 후, 내일 만날 것을 이야기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내일 과연 오늘 생각했던 궁금증이 해결될까?

 

 

 

 


 

 

 

 

 

 

 

 

                                            mora

 

아프꼼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한일 워크샵이 니혼대에서 열렸습니다. 워크샵의 취지는

공동연구의 맥락에서 논문생산에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전 단계인 연구가 진

행되는 과정과 문제점들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서 자유로운 발화와 토론의 장을 이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아프꼼 역시 이와 같은 학술장안에서 스스로 의 자리를 만들

고 발화하고 개입하는 경험치를 만들어가는것에 의미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번 워크샵은 단발적인 작업이라기 보다는 작년 초부터 끊임없이 일본과 교류하면서

실천해왔던 맥락속에서 이해되어야 할것 입니다. 2011년 초 <지식.문학, 예술,삶의 연

대: 그 역사적 가능성과 현실적 지형>이라는 주제로 심포를 기획하고 국경을 넘어서

리츠메이칸대학의 한국학 연구소와 공동워크샵, 인문평론 연구회-일한 문학연구 워크

샵 동아시아 평화캠프 참석, 요코하마 뱅크아트, 코리아 연구센터등을 종횡무진하면서

스스로 기회와 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하는 시초가 되었고, 이후에도 요코하마 뱅크아트

에서의 레지던시와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 와코우대학과의 공동 워크샵을 주최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국경을 넘는, 국제적인 활동이라기 보다는 아프꼼에서 활동하고있는 이

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서 발화의 장을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그 노력과 애씀들을 하나

하나 새기고, 배우는 실천적인 장이라고 할수 있을것 입니다. 그러므로 올해 맞이한 워

크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이 아닌, 끊임없이 아래로 부터 부단히 노력한 결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이번 워크샵은 그 실천들의 네트워크와 연구의 장으로서 또다른

국면을 맞는것이라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전체적인 워크샵의 진행은 작년에 이어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신명직, 신지영

선생님과 권명아 선생님의 2년차로 이어지는 연구의 맥락들과 니혼대학의 도쿠나가

나츠고 선생님의 발표, 아프꼼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순주 선생님의 발표와 송진희 선

생님의 영상-이미지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내년 심포지움

을 통해서 연구를 함께 진행할 고영란, 나카야 이즈미 선생님, 지역학연구와 냉전문화

론 저자이신 마루카와 데스시 선생님의 발표에 관한 코멘트와 그에 대한 발표자들의

자유로운 응답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의 발표와 이에관한 질문과 응답들을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이후 연구의 방향

과 문제점들을 체크하고 고민지점을 공유할수 있는 부분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현장 스케치를 공개합니다!

 

 

(이후 워크샵 발표 자료들을 영상으로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워크샵 발표 사회를 맡아주신 나오키 와타나베 선생님

 

 

권명아 선생님의 <전쟁상태적 신체의 정동> 발표

 

 

신명직 선생님의 < 냉전기 재일 코리안 시티즌십의 변화> 발표

 

 

신지영 선생님의 <'쌈짓돈'의 공유, '듣고-쓰기'라는 표현: 탄광촌 여자 코뮨

<무명통신 1959~ 1961>을 중심으로

 

 

도쿠나가 나츠코 선생님의 < 타자에의 공감과 정념: 타카하시 타카코<인형애>와 70년대의

Women's Liberation> 발표

 

 

양순주 선생님의 < 냉전의 문턱과 언어화의 경계> 발표

 

 

송진희 선생님의 <냉전의 이마고 - 영상 프리젠테이션> 발표

 

 

라운드 테이블 - 고영란, 나카야 이즈미, 마루카와 데스시 선생님의 발표에 관한 코멘트 및

연구에 관한 고찰

 

 

그외에도 통역을 맡아주신 류충희, 이현준 선생님, 번역에 참여해주신 다카하시 선생님,

그리고 박유하 선생님이 워크샵에 함께 참석해 주셨습니다

 

 

 

 

 

 

 

 

 

 

 

부산에서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닛포리와 이케부크로의 일정까지 여기저기 매달린

짐들을 들고 이동하며 녹초가 되어버린 우리팀은 저녁에 코엔지에서 열리는 지하대학

-이케가미상의 50년대 써클운동에 관한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바로 몸을 실어야 했다.

지하대학 강연후 참여자들과의 뒷이야기까지 다 나누고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출국하기 전날 마지막 발표준비를 하다가 마우스를 손에쥐고 잠든사람, 워크샵의 예산

을 다시 검토하며 잠든사람, 일정표를 체크하며 잠든사람등등 피로를 등에 업었지만,

하루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정리하고 얘기나누는 일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기록

들이 데일리로 남아있다.

 

그 첫째날의 나눔과 기록들을 다시금 펼쳐본다.

 

 

 

 

 

 

 

 

 

 

 

 

 

 

 

 

 

                                                                                                     mora

 

아프꼼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한일 워크샵이 니혼대에서 열렸습니다. 워크샵의 취지는

공동연구의 맥락에서 논문생산에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전 단계인 연구가 진

행되는 과정과 문제점들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서 자유로운 발화와 토론의 장을 이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아프꼼 역시 이와 같은 학술장안에서 스스로 의 자리를 만들

고 발화하고 개입하는 경험치를 만들어가는것에 의미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번 워크샵은 단발적인 작업이라기 보다는 작년 초부터 끊임없이 일본과 교류하면서

실천해왔던 맥락속에서 이해되어야 할것 입니다. 2011년 초 <지식.문학, 예술,삶의 연

대: 그 역사적 가능성과 현실적 지형>이라는 주제로 심포를 기획하고 국경을 넘어서

리츠메이칸대학의 한국학 연구소와 공동워크샵, 인문평론 연구회-일한 문학연구 워크

샵 동아시아 평화캠프 참석, 요코하마 뱅크아트, 코리아 연구센터등을 종횡무진하면서

스스로 기회와 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하는 시초가 되었고, 이후에도 요코하마 뱅크아트

에서의 레지던시와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 와코우대학과의 공동 워크샵을 주최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국경을 넘는, 국제적인 활동이라기 보다는 아프꼼에서 활동하고있는 이

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서 발화의 장을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그 노력과 애씀들을 하나

하나 새기고, 배우는 실천적인 장이라고 할수 있을것 입니다. 그러므로 올해 맞이한 워

크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이 아닌, 끊임없이 아래로 부터 부단히 노력한 결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이번 워크샵은 그 실천들의 네트워크와 연구의 장으로서 또다른

국면을 맞는것이라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전체적인 워크샵의 진행은 작년에 이어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신명직, 신지영

선생님과 권명아 선생님의 2년차로 이어지는 연구의 맥락들과 니혼대학의 도쿠나가

나츠고 선생님의 발표, 아프꼼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순주 선생님의 발표와 송진희 선

생님의 영상-이미지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내년 심포지움

을 통해서 연구를 함께 진행할 고영란, 나카야 이즈미 선생님, 지역학연구와 냉전문화

론 저자이신 마루카와 데스시 선생님의 발표에 관한 코멘트와 그에 대한 발표자들의

자유로운 응답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의 발표와 이에관한 질문과 응답들을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이후 연구의 방향

과 문제점들을 체크하고 고민지점을 공유할수 있는 부분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현장 스케치를 공개합니다!

(이후 워크샵 발표 자료들을 영상으로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워크샵 발표 사회를 맡아주신 나오키 와타나베 선생님

 

 

권명아 선생님의 <전쟁상태적 신체의 정동> 발표

 

 

신명직 선생님의 < 냉전기 재일 코리안 시티즌십의 변화> 발표

 

 

신지영 선생님의 <'쌈짓돈'의 공유, '듣고-쓰기'라는 표현: 탄광촌 여자 코뮨

<무명통신 1959~ 1961>을 중심으로

 

 

 

 

도쿠나가 나츠코 선생님의 < 타자에의 공감과 정념: 타카하시 타카코<인형애>와 70년대의

 Women's Liberation> 발표

 

 

 

 

양순주 선생님의 < 냉전의 문턱과 언어화의 경계> 발표

 

 

 

송진희 선생님의 <냉전의 이마고 - 영상 프리젠테이션> 발표

 

라운드 테이블 - 고영란, 나카야 이즈미, 마루카와 데스시 선생님의 발표에 관한 코멘트 및

연구에 관한 고찰

 

 

그외에도 통역을 맡아주신 류충희, 이현준 선생님, 번역에 참여해주신 다카하시 선생님,

그리고 박유하 선생님이 워크샵에 함께 참석해 주셨습니다

 

 

 

 

 

 

 

 

 

때: 2012년 8월 11일 (토): 10:00~18:00

곳: 니혼대학문리학부백주년기념관 2층 회의실3

 

연구모임 아프콤이 일본 니혼대학에서 국제워크샵을 진행합니다. '정념'과 '공동체'의 문제를 다양한 역사적 결락 속에서 읽어내기 위한 시도로, 지난 해에 <식민성과 제국의 네트워크, 정념의 공동체: 정체(停滯/政體)감각과 감각적 결속>을 주제로 하여 연구와 실천을 진행해왔던 것에 이어서, 이번 워크샵은 '냉전기'에 포커싱을 맞추어 정념과 공동체의 문제를 질문해봅니다.

일본에 계신 여러 연구자 선생님들의 도움과 참여에 힘입어 이번 워크샵을 통하여 풍성한 연구와 토론의 자리를 만드는 동시에, 단순한 '국제'워크샵으로서가 아니라 지역과 국경을 넘어 <삶의 반경>을 새로이 넓혀나가는 실천적인 수행의 자리 또한 만들어지기를 기원해봅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아프꼼은 며칠 후에 일본 워크샵을 떠납니다. 문득, 작년의 뜨거웠던 8월과 길고도 길었던 2011년 2월의 일본 '순례'가 떠오릅니다. (2011년 동아시아 인권 캠프) 연구모임 a로부터, 부산을 포함한 '지방'의 인문 공동체와 만나고 헤어졌던 긴 시간들 불화와 오해의 시간과 눈초리에 지칠 즈음 부산에서, 부산을 넘어서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겠다는 절박함에 흥부네 식구들처럼 일본으로 '밀항'처럼 넘어갔던 시간들. 권명아라는 이름으로의 월경과는 다른 연구모임 a, 그리고 아프꼼이라는 이름의 '월경'은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국경을 넘어서든, 전혀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우리도 버젓이 비행기 타고, 워크샵 교류를 맺어서 일본에 갔지만 뭔가, '밀항'과 다르지 않은 현실적, 심리적 상태였지요. 그 불안하고, 막막한 마음과 현실. 무수한 월경의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저조차, 그 불안과 막막함에 '하나가'되었던 기억들. 그 이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연구모임은 불안과 막막함의 언저리를 배회해왔습니다. 연구모임의 오거나이저로서, 선생으로서, 선배로서 그런 불안함과 막막함을 보듬고, 길을 제시해주며 조금은 든든한 버팀이 될 수 없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허나 어쩌면, 그렇게 '불안함과 막막함'으로 팀원들과 제 상태가 정동되었던 것은 우리 팀이 어떤 '상태'와 그로 표상되는 정치적 입장을 서로 나누게 되었던 국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가, 그저 서울에서 내려온 공부 열심히 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우리 팀원들과 '같은 미래를 보는, 같은 현실을 마주하는' 그런 자리에 함께 나란히 앉게 되었던 그런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과 회고는 온전히 저의 것. 그 여름은 너무 뜨거웠고, 숨막혔고 그 겨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춥고, 배고프고, 밀항자처럼 피곤에 지쳐 아무데나 쓰러져버렸습니다. 그 밀항자의 겨울, 숨막힌 여름, 우리에게 손을 건네고, 말을 들어주고,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주었던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니, 진짜 밀항자 같은 기분도 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숨막혔던 여름 그 외로운 겨울 그 시간이 어떤 의미였을까 그 회고의 말을 듣고 싶은 시간입니다. 뜨거운 8월의 그날로부터 꼭 1년이 지나가는 이 시간에 말입니다. 2011년 겨울의 기억과 여름의 시간은 <웹진 아지트, 국경안의 불만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agitproject/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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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 장수희 「아동/청소년 문학에 재션된 일본군위안부 연구 통역: 김유미

      : 정념의 교육을 통한, 공감의 공동체의 생산방식에 관하여」

 

 

      발표: 후쿠미네 유카 (와코우대학 현대사회학과 4년) : 「이주여성의 친밀권」 통역: 김근태

 

 

 

 

 

 

발표 : 신교찬(구마모토가쿠엔대학원 국제문화연구과 입학예정) :

「한국의 청년실업과 일본의 프리타에 관하여」

 

 

 

           발표: 장혜리 「국제결혼의 실례를 통해 조망하는 두 가지 역사의 실천적 공생」

 

 

 

                           토론하는 학생들. 와쿠대학 김근태씨

 

 

                     토론: 신현아,장수희,신교찬,후쿠미네 유카 통역: 안지애

 

 

 

 

동아대학교 김대성 선생님

 

 

 

                                토론하는 학생들. 가쿠인 대학 미키오상

 

 

 

       발표: 와타베 히카루 (와코우대학 현대사회학과 4학년) : 「다문화공생재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전체 토론시간 히키치 야스히코 선생님

 

 

 

 구마모토 가쿠인 대학 신명직 선생님

 

 

 

                       선생님과 학생들의 전체 토론시간 권명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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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김대성 동아대학 석당학술원 전임연구원: 이방인 외국인 지구인 통역: 안지애

 

발표: 쿠리타니 이즈미 (와쿠대학, 현대사회학과 4년) <NGO지ㅇ와 다문화공생> 통역;김근태

 

발표: 모리구치 미키오: 쿠마모토 가쿠인대학 동아시아학과 3년) 통역: 신교찬

: <한국의 영화 <방가방가>에 있어서 동화정책과 다문화>

 

 

아트워크 프리젠테이션, net-a 월경하는 정념의 얼굴들

발표: 신현아,송진희,김선우 통역: 안지애,김유미,장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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