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입들이 만나는 길

 

 

 

 

래인커머 정선욱

 

 

 

 

 

 

   민주공원에서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토크콘서트를 했다. 싸우는 사람들, 잊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다. ‘사람들토크콘서트의 주제였다. ‘사람들토크콘서트 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밀양송전탑 대책위에서 오신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유가족분과 할머니들은 침을 삼키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어쩔 때는 피식 웃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모습 그 자체가 어떤 운동이 되는 것 같아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허리를 세우고, 몸을 앞으로 숙여가면서 듣고 있었다. 관객들은 모두 유가족분과 할머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 개가 넘는 눈과 귀들은 조명 밖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온 신경을 조명 속 그들에게 기울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다리를 떨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박수치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모두 눈을 고정하고, 귀를 기울이면서 조명 속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그 시선들이 조명 속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토크콘서트가 거의 끝나갈 쯤 밀양 송전탑 대책위의 할머니들이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상을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전혀 다른 이야기 일거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밀양의 일과 세월호의 일이 결국 같은 해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유가족 분들께 힘을 내서 끝까지 버티면 뭔가 바뀌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 분들은 할머니와 손을 마주 잡았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각자의 조명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이 일어나서 손을 잡았을 때,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도 어떤 힘이 생겼다. 왜인지 외롭지 않게 되었고, 더 많은 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눈들은 어떤 입 주위에 들러붙는다. 눈과 입이 뻗어내는 길은 다른 눈과 입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된다. 길들이 만나는 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가 되기도 하고, 오히려 멀어지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움직일 것이다. 자신의 눈길이 가는 곳으로 길을 내고, 길을 따라 말하고, 다른 길과 만나고, 길로부터 변화한다. 길은 완벽하게 하나로 만나기도 하지만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고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만나는 곳에서 말이 전달되고 어떤 다른 눈길을 가지게 된다. 그 만나는 곳은 어떤 식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 변화가 나쁠 수도 있겠지만, 또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알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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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고 놓음 사이에 있는 눈


정선욱(래인커머)


   어느 날 나는 친구에게 일본여행으로 오키나와가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와 나는 항상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을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가 보여준 사진에 등장한 오키나와는 하늘이 새파랗고 길쭉길쭉한 나무가 자라는 해변이었다.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항상 둘이서 상상하던 휴양지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은 행복해보였고 신나있었다. 그 때 동시에 내 가방에는 오키나와의 역사와 관련된 글이 들어있었다. 교정을 위해서 매일 들고 다니던 종이뭉치였다. 그 안의 풍경은 흑백사진처럼 느껴졌고, 오래 전 부터 계속되어온 무게들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차별받았고 여전히 차별받고 있었다. 항상 논외가 되어온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었다. 


   친구와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사진을 보는 그 테이블 밑에 가슴아픈 오키나와의 글이 담긴 가방이 있었다. 그 층을 느꼈을 때 나는 어떤 것이 내 안에서의 오키나와였을까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어떤 오키나와를 생각하면서 오키나와를 가게 될까 생각하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많은 것들에 대해서 나는 쉽게 정의내리거나 판단하거나 할 수 없다. 글을 읽거나 사진을 보기 전까지 내 머릿속의 오키나와는 일본의 어떤 섬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선택하지만 어떤 것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고 선택하기도 한다. 매일같이 전기를 쓰지만 그것이 원자력발전을 통해 생산되는 전기라는 것을 모르고, 아무 생각없이 돈을 벌고 소비하지만 그 돈이 결국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다. 물론 정말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른척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불편한 마음이 들지만 그 뿐이다. 쓰지않고서 사는 삶은 감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에서의 눈들은 각자의 손들을 다 보고있다. 보아서 알고있다. 하지만 그 눈은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다. 어떤 눈이 어떤 손을 움직이게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손들은 많은 것들 앞에서 머뭇거린다. 어떤 손들은 금방이라도 잡아챌 듯 손을 벌리고 있고, 어떤 손은 튕겨내기라도 할 듯이 손가락을 웅크리고 있다. 어떤 손은 손안에 소중하게 놓고 있기도 하고, 어떤 손은 손도 대지 않으려고 하고있다. 그 잡음과 놓음의 사이를 명확히 가로지르는 선이나 기준은 없다. 절실히 잡으려 하다가도 맥없이 놓아 버리기도 하고, 사실 이 손들이 잡으려는 것인지 놓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기도 하다. 그 중간에는 여러 눈들이 있을 뿐이다. 한 손을 뻗을 때 어떤 눈은 눈을 감기도하고, 어떤 눈은 또렷이 뜨고 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손이 한 일을 모든 눈이 눈을 또렷이 뜨고 지켜보거나 모두 눈을 감아줄 일은 없을 것 같다. 그저 자꾸 잡아보고 자꾸 놓아보고 해서 놓고 싶을 때 놓고 잡고 싶을 때 잡는 것이 틀린일이 되지않는 눈이 되면 좋겠다. 나는 생각만 하고 있어서 이렇게 눈 속의 눈과 손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눈 안에서의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눈 아래 목과 어깨가 붙어 있을까. 아래에 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한 걸까. 그 손은 뭔가를 쥐거나 놓을 수 있는 힘줄을 가지고 있을까. 그 불확실함이 눈들과 손을 더 방황하게 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눈을 더 굴리고 손을 더 뻗어서 어깨에 붙어있을 손을 찾을 수 있기를. 또한 모든 눈들이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살아가는 방법들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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