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 권명아의 <음란과 혁명>

이승원 <사라진 직업의 역사> 저자·인천대학교 초빙교수 

2013-08-02

 

 

 

 <춘향전>은 음란소설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인 국민소설을 음란물로 치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9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청소년인 춘향과 몽룡이 광한루에서 만난 지 채 열 두 시간도 되지 않아 거사를 치른 상황과 "귓밥도 쪽쪽 빨고 입술도 쪽쪽 빨면서 주홍 같은 혀를 물고" "이불 안에서 쌍쌍이 날아드는 비둘기같이 꾹꿍 끙끙 으흥거려 뒤로 돌려 담쏙 안고 젖을 쥐고 발발" 떠는 장면 묘사를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고전이니, 문학작품이니, 예술성이 있으니 괜찮은 것일까. 실제로 1900년대 초 <춘향전>은 '음탕소설'로 지목되어 계몽 지식인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뿐만 아니라 <홍길동전>은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하다며 질타를 받았다. 어쩐 연유에서였을까.


당시 조선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춘향전>과 <홍길동전>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작품에 불과했다. 청소년은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동량이다. 이들이 <춘향전>을 읽고 일찍 성욕에 눈을 뜨고, <홍길동전>의 허황된 이야기에 흠뻑 빠져 현실을 무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요컨대 일부 계몽지식인들은 계몽주의와 민족주의의 기치 아래 인간의 감성을 통제하고 훈육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춘향전>과 <홍길동전>은 '청소년 풍기문란물'이었던 셈이다.

▲ <음란과 혁명>(권명아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1940년대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홍길동전>이 또다시 문제가 되었다. 일본의 작가 나카오카 히로오(中岡宏夫)가 <홍길동전>을 신시체로 개작했다. 일본의 통치 권력은 <홍길동전>을 "조선 내 풍속 괴란"이란 근거를 들어 검열했다. <홍길동전>의 개작 내용 중에 "공산주의의 색채가 농후한 점"이 있다는 이유에서였으며, 이 공산주의 색채가 조선의 풍속을 괴란시킨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도대체 풍속이 뭐기에, 도대체 풍기문란이 뭐기에 지식인들과 통치 권력은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일까.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한 책이 바로 권명아의 <음란과 혁명>(책세상 펴냄)이다. <음란과 혁명>은 풍기문란에 대한 계보학적 탐색이자, 한국 근현대사 100여 년의 역사를 풍기문란의 관점에서 탈구축한 역작이다.


저자의 분석처럼 풍기문란은 음란과 짝을 이루는 말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풍기문란은 단순히 포르노그래피나 화류계에서 펼쳐지는 불구적 욕망의 배설만을 뜻하지 않는다. 풍기문란은 통치 권력에 의해 "부적절한 정념"으로 치부되는 것이자, "그 자체로는 규정을 갖지 않는 무규정적인 개념"으로 인간을 통치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인 것이다.


한국에서 풍기문란에 대한 단속과 통제의 역사는 식민주의와 파시즘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 한다. 일본 제국은 식민지 조선의 일상을 통치하기 위해 조선인들의 풍속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성(色), 마약, 음주, 도박, 음란물, 사치(과소비), 복장, 끽연, 영화, 광고, 놀이 등 일상의 전 분야에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이라는 이분법을 적용하여 식민지 조선 사람들의 일상을 통제했다. 이른바 황국의 신민화의 전략 중 하나였던 셈이다. 이렇게 탄생한 풍기문란죄는 해방 이후 냉전 체제를 지나 오늘날의 일상에도 존속되고 있다.


결국 일제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풍기문란죄는 "전형적인 파시즘적 법제"이자 인간의 감각과 정념과 정동에 대한 "사전 검열"이자 "정신 개조와 생활 개선이라는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한 "삶에 대한 총체적 지배와 개조"를 뜻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국민과 비국민을 구별하는 식별법이며, 건전함과 건전하지 못함의 이항대립을 통해 국민(들) 사이를 적대적 관계로 재정립하는 식민 통치 기술이었던 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풍기문란죄는 해방 이후 남한의 냉전 체제 속에서도 그대로 이행되었다. 이는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고 비난하고 있는 식민지의 유산인 셈이다. 풍기문란은 1970년대에 이르러 망국과 퇴폐의 논리에 근거하여 단속되고 통제되었다. 장발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등은 애교에 가까웠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목적으로 우리의 삶과 우리가 아닌 자의 삶을 구별 짓고 구획해 나갔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닌 자의 삶이란 사회적 통념이라는 두루뭉술하고 무규정적인 근거에 위배되는 삶이자 "다스릴 수 없는 자들"의 삶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통치 권력은 국민의 풍기를 단속하려고 했던 것일까. 풍기란 일종의 정념의 흐름이자 정념이 세상을 물들이며 형성되는 풍경이다.

"사랑·열정·분노·분개 등의 정념은 특정 주체로 하여금 사회적 연대나 정치적 결사로 이끄는 동력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 반대로 다른 주체들에게는 사랑·열정·분노·분개 같은 정념이 사회적 연대나 정치적 결사에 미달하는, 부적절하고 문란한 결속만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간주된다."(248쪽)

문란한 정념이란 성적인 열정을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말이 아니다. 문란은 특정한 통치 권력이 만들어 놓은 체제에 길들여지지 않는 모든 정념, 열정, 감각, 정동을 뜻한다. 그리하여 문란함에 대한 단속, 즉 풍기문란에 대한 규제와 단속은 곧 "폭력적인 절멸의 정치"와 다름없다. 일제 식민지 시기 총독부 권력이 조선인들의 풍기문란을 단속하면서 시작된 음란과 문란에 대한 통제는, 4.19혁명의 실패와 5.16쿠데타 그리고 냉전 체제와 개발독재의 시대로 이행하면서 청년과 학생들의 문화를 미시적으로 감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또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김영사 펴냄)를 쓴 작가 장정일을 음란범으로 만들고 그를 풍기문란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통치 체제가 규정한 선량한 시민이 아닌 모든 자들은 곧 내부의 적이자 척결해야할 사회의 악이 된 것이다.

이 책의 요지는 '풍기문란을 허하라!'라는 단순한 구호이거나 풍기문란자들에 대한 옹호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차이의 문화를 인정하라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음란과 풍기문란이란 개념을 통해 이 척박한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바는 풍기문란이라는 무규정적인 개념의 정치성과 통치성이다.

"불안은 기존의 인간주의적 개념인 정념이라는 개념을 빌려서 논하자면 한국인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정념이자, 사회적 권력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정동이다."(348쪽)

"한 인간 존재의 삶의 반경을 제한하고, 조정하고, 정해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사회의 구조이고 체계이고 이데올로기이며 통치성이다."(308쪽)

대한민국 통치의 역사는 불안을 숙주로 삼아 지속되어 왔다. 불안의 증거는 부적절한 정념이라는 실체 없는 실체였다. 풍기문란은 부적절한 정념이자 불온한 정념이다. 불온한 것은 통치의 규율로 포획되지 않는 바람과 같은 것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기에 통치 권력은 언제나 그 불온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절멸하려 든다. 그러나 그 부적절한 정념과 불온한 정념은 불합리한 세계의 견고한 아성을 언젠가는 균열내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연세대 문화학 협동과정 2013-1 콜로퀴움

사랑과 혁명, 그리고 문란함

2013. 7. 19 (금)

 

아프꼼의 권명아 선생님의 <음란과 혁명>을 주요 텍스트로 하여 진행되는 이번 콜로퀴엄은 사랑! 혁명! 문란! 음란!과 같은 화끈하고 섹시한 개념어들을 통해서 진행될 예정이오니 관심 넘치시는 여러분들의 많은 참석을 기대하겠습니다.

 

 

 

 

 

6/29(토) 늦은 7시, 

 

 동대문 정보화 도서관 지하 2층 시청각실에서 『음란과혁명』(2013) 출간 이후 첫 번째 저자 강연회가 열립니다. 저자가 바라본 한국 근현대 100년사를 한눈에 조명할 수 있는 초대형 장비 또한 마련해 가신다고 하니, 기대하고 가셔도 좋겠습니다.

 

 

 

 

 

 

뉴시스

정념이 정치적 열정으로 이행하는 역사 '음란과 혁명'

2013-06-16

 



 

 

  일제가 식민지 민중의 일상을 장악하기 위해 마련한 경찰범처벌규칙(1912)이 현재의 경범죄처벌법의 모태다. 일제시기에 만들어진 풍속 통제의 이념과 법제 및 제도의 틀은 ‘청산’되지 않고 오히려 누적되며 진화 발전해왔다. 식민지 조선의 풍속 통제에 관한 법적 규정은 일본에서 메이지 초기에 만들어진 법적 기준을 토대로 했다.

포괄적 법령이나 상위법이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이나 국면에 따라 새로운 규제 지침이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임의적이고 누적적인 통제 방식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왔다는 점에서 풍속 통제는 식민 지배의 전형적인 잔재라 할 수 있다.

권명아 교수(48·동아대 국어국문학)가 펴낸 ‘음란과 혁명’은 식민지와 전쟁, 독재체제 등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산물로서 ‘풍기문란’의 역사와 정치학을 탐색한다. 식민성, 근대성, 혹은 파시즘과 민주주의 등의 문제들과 복합적으로 결부해서 본다.

이를 바탕으로 문란함, 음란함, 부적절함이라는 기준이 문화 생산과 주체성 형성, 시민적 덕성과 국민 만들기에 어떻게 작용해왔는지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광복과 종전에도 불구하고 식민성이 온존하고 냉전체제가 일상화하는 상황에서 ‘국민, 선량한 존재’로 포섭되지 못하고 ‘비국민, 반사회적 존재’로 부유해야 했던 ‘풍기문란한 자’들이 어떻게 국가와 사회의 통제를 뚫고 자신들만의 장치로 역사에 균열을 일으켜왔는지, 또 어떻게 일으킬 수 있는지를 추적하고 성찰한다.

권 교수는 “풍기문란 연구는 통속적으로 이해되듯이 음란물이나 성적 문화 생산물에 대한 통제의 역사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당대에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된 정념이 정치적 열정으로 이행하는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는 작업”이라고 전했다.

 


이재훈 기자 realpaper7@newsis.com


 

함께 보면 좋은 구절

 

 

 사랑은 증오 앞에 멈춰서버리고, 사랑의 시간은 황홀경의 순간 속에 봉인된다. 그렇게 사랑의 순간은 덧없는 배신 앞에 속절없이 지난 일로 흘러가고, 생애라는 시간은 자기 분열을 거듭함에도 흘러간다. 이러한 생애의 감각은 사랑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죽은 자에게는 추억이 없으며,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런 생애가 없다. 그런 점에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봉인된 것은 사랑의 열정과 배신에 대한 증오만이 아니라, 죽은 자의 시간, 죽음 그 자체는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혁명이라는 '역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켜켜이 쌓인 살아남은 자의 생애사의 잔여물을 뚫고 그 밑에 멈춰서버린 죽은 몸의 시간 속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이를 《구운몽》에서는 발굴과 고고학, 또는 사면장(死面匠)의 작업이라 일컫는다.

 

 하여 죽음의 발굴을 소명으로 하는 사면장의 일이란, 그 지층 속에서 살아남자의 생애사적인 잔여물들의 더께를 뚫고 들어가, 죽은 몸의 시간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이러한 발굴을 통해 죽은 몸속에 멈춰버린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의 지평으로 다시 떠오른다. 그렇게 죽은 자의 시간이 현재 앞으로 부상한다. 마치 심해에 가라앉은 죽은 자의 몸이 산 자들의 삶의 기슭으로 헤엄쳐 올라오듯이. 삶의 기슭으로 떠오른 죽은 몸, 그 몸은 삶의 기슭에 놓인 생애사적 시간으로 불현듯 출현한 '미지'의 시간이고, 그 '미지의 시간'속에 혁명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래서 혁명의 진실은 삶의 기슭에 놓인 생애사적 시간을 깨뜨리고 심해에서 불쑥 솟아오른 그 죽은 자의 몸속에 있다. 그래서 《구운몽》의 첫머리와 마지막은 삶의 기슭으로 불쑥 솟아오른 죽은 소년의 몸과, 빙하기에서 발굴된 죽은 몸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본책, 245~246쪽)

 

 

 

 

 

 

 

 

민중의 소리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 음란과 혁명

2013-06-13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령안’이 통과됐다. 개정령안에는 과다노출, 구걸행위 등에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규정이 포함돼 논란이 됐다. 그러자 경찰은 “과다 노출 처벌은 원래 있었던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국가의 통치가 시민들의 일상과 풍속을 규율하고 처벌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는 얘기다.

경범죄처벌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54년이다. 이는 다시 일제가 식민지 백성들의 풍속을 통제하던 경찰범처벌규칙(1912)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시기 이후 퇴폐풍조 박멸, 풍속사범 일제 단속, 가정의례 준칙, 야간통행금지, 장발 단속, 밀주 금지… 등 ‘선량한 풍속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모호한 법적 규정 아래 다양한 행위와 언어, 문화 생산물, 취향, 산업 등이 법적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규제를 받아왔다.

식민지, 전쟁, 독재체제 등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산물로서 식민성, 근대성, 혹은 파시즘과 민주주의 등의 문제들과 복합적으로 결부된 ‘풍기문란’의 역사와 정치학을 탐색하는 책 ‘음란과 혁명’이 출간됐다.

이 책은 풍기문란 제도가 만들어진 일제 강점 초기부터 해방 후 냉전과 탈냉전기에 이르는 방대한 시기를 대상으로 풍기문란에 대한 법적 통제와 이와 연관된 검열, 문화 생산물에 대한 제재 등이 어떻게 진행되고 변화되어왔는지 살핀다. 그리고 문란함, 음란함, 부적절함이라는 기준이 문화 생산과 주체성 형성, 시민적 덕성과 국민 만들기에 어떻게 작용해왔는지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이 책은 당대에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된 정념이 정치적 열정으로 이행하는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면서 오늘날 다시 부활하고 있는 풍기문란 통제의 문제를 얘기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시민의 일상과 사생활에까지 개입하는 국가와 사회의 통치 구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풍기문란 연구에 대한 방법론과 문제의식을 밝히고, 2~3부는 풍기문란 통제가 시작된 일제시기와 냉전체제에서의 지속과 변화를 다루며, 4부는 일제시기에서 현재에 이르는 풍기문란 통제의 변화를 설명한다.

이동권 기자 su@vop.co.kr

http://www.vop.co.kr/A00000644371.html

 

 


 

함께 보면 좋은 구절

 

  "풍속을 해하는 행위"를 통제하는 풍속 통제의 범위는 시기마다 변화한다. 물론 일제시기 풍속에 대한 통제는 제국 일본과 총독부의 법제에의해 그 영향력을 얻게 된다. 풍속경찰의 작용은 이러한 법의 실행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풍속 통제는 단지 '법'의 작용뿐 아니라 도덕과 윤리, 교양이나 적절함 등 이데올로기적인 층위를 통해서도 작용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풍속 통제의 역학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풍속경찰과 관련된 경찰력의 영향과 이와 관련된 법제, 통제 이념의 층위뿐 아니라 이러한 '법'의 통제 이념과 때로는 갈등하면서도 공명하게 되는 조선의 지식인 엘리트층의 풍속 교화 이념 등을 함께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본책, 32쪽)

 

 

 

 

서울신문

정치의 눈으로 본 문란한 풍속이란…

2013-06-08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 뒤 열린 첫 국무회의. 이 자리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풍기문란에 대한 법적 통제가 잠시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가 과다 노출이나 구걸 행위 등에 범칙금을 부과하는 규정이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것 아니냐는 반발 때문이다. 사람들은 국가가 머리와 치마 길이를 간섭하던 1960~1970년대의 박정희 정권을 떠올렸다.

 

자유권 침해, 사회적 약자의 피해 등을 우려한 반대여론이 비등해지자 경찰은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과다노출에 대한 처벌은 원래 있었다”는 해명이었다. 국가의 통치권이 시민의 일상과 풍속 처벌에까지 이르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경범죄처벌법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54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때도 비슷한 맥락의 처벌규정은 있었다. 일제는 식민지 백성의 풍속을 통제한다는 명목으로 ‘경찰범처벌규칙’(1912)을 만들었다. 이후로도 ‘선량한 풍속’을 유지하려는 사회규범은 여러 이름으로 꾸준히 등장했다. 퇴폐풍조 박멸, 풍속사범 일제 단속, 가정의례 준칙, 야간통행금지, 장발단속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대체 ‘선량함’의 기준은 누가 세운 것일까. 상위법이 법적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 모호한 규정은 새로운 사안이나 국면에 따라 조변석개해 왔다. 이로 인해 다양한 행위와 언어, 문화 생산물, 취향, 산업 등은 어느 순간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곤 했다.

역설적으로 이 책은 결코 문란하지 않다. 부제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이 말해 주듯 식민지, 전쟁, 독재체제 등으로 일그러진 한국 근현대사의 얼굴을 다룬다. 저자는 “‘풍속’이라 하면 일본에선 핑크산업을 떠올리지만 국내에선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 같은 이미지를 먼저 연상한다”고 언급했다. 일본에선 풍속 통제가 미군정 이후 일상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규제에서 성 산업으로 축소됐지만, 국내에선 분단체제 이후 풍속에 대한 국가의 관리가 더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문란함, 음란함, 부적절함의 기준이 어떻게 문화생산과 자아의 주체 형성, 시민적 덕성과 국민 만들기에 작용했는지 고찰한다. 이면에는 정치적 음모나 배경이 자리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이를 위해 일제시대 이광수의 ‘무정’이 어떻게 풍속 통제의 담론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전시동원 체제를 조장했는지 살펴본다. 또 냉전체제에서 풍속 통제가 ‘망국병’이 되어가는 과정을 에둘러 훑어본다. ‘4·19혁명’의 실패가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서 10대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면서 ‘소년의 죽음’을 가져왔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국민의 일상과 사생활까지 개입하는 국가의 통치구도를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지는 결국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링크: http://www.aff-com.net/241

 

---------------------------------------------------------------------------------------------------------------

 

함께 보면 좋은 구절

 

 형식이 무한 증식하는 "음란한 자들"을 발견하는 것은 영채가 혹시 대동강에 빠져 죽은 월하의 뒤를 따르지 않았을까 하는 근심에 차서 평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이다. 형식은 죽은 은인의 무덤 앞에서 슬픔에서 기쁨으로의 전환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데, 이는 《무정》에 작동하는 주체에서 기쁨에 찬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은 '월하의 뒤를 따랐으면 어쩌나' 하는 영채를 향한 근심과 옛 은인에 대한 연민을 무덤 속에 매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매장 과정은 작품에서는 "칠성문 밖 노인"으로 상징되는 "이미 아닌 세계"를 벗어나는 과정으로 진술된다. 즉 슬픔과 연민을 매장하는 과정은 작품 표면에서는 형식이 "이미 아닌 세계'를 떠나 "아직은 아닌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 즉 이른바 문명화의 진보적인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본책, 125쪽)

 

 

 


한겨레신문

[교양-잠깐 독서: 당대의 모순과 싸운 ‘풍기문란’]

2013년 6월 10일

 

당대의 모순과 싸운 ‘풍기문란’

음란과 혁명-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

 

 

 

‘정동’(affect)과 ‘공동체’(commune). 부산에 거점을 둔 연구모임 ‘아프-꼼’의 이름이자 이 모임을 주도하는 권명아 동아대 교수(국문학)의 핵심 주제다. 그는 ‘정동’을 “슬픔이나 외로움, 불안, 환멸, 사랑과 같은 ‘정념’을 정치화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거칠게 말해, 일상화된 냉전(파시즘) 아래 찌꺼기처럼 가라앉아 있는 정념들을 만나고 여기에 정치적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 책을 이전에 펴냈던 <역사적 파시즘>, <식민지 이후를 사유하다>와 묶어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대한 3부작”이라 말한다. 1930년대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근현대사에서 ‘풍기문란’을 어떻게 규정하고 법제도와 담론을 동원해 통제해왔는지 고찰했다. 왜 풍기문란인가? 그는 “풍기문란 연구는 당대에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된 정념이 정치적 열정으로 이행하는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는 작업”이라 한다. 곧 부적절한 정념의 담지자가 되어 주체의 자리에서 쫓겨난 이들로부터 ‘통치의 선’을 읽어내고, 이로부터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불러올 역사적 전망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제시대 작가 이기영의 소설 <서화>를 당시 농촌공동체 마을에서 풍기문란에 대한 규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로 다시 읽어내는 등 새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링크: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91097.html

 

----------------------------------------------------------------------------------------------------------

 

기사와 함께 읽으면 좋은 구절

 

 정동은 질 들뢰즈가 스피노자의 이론에서 어원의 함의를 빌려 정의했듯이, 정서와는 구별되는 촉발되는 것, 이로 인한 이행을 뜻한다. "정동은 그런 점에서 힘 또는 힘들의 충돌과 동의어이다." 물듦이 만남에서 비롯되듯이, 정동은 대면·관계·부딪침·충돌·접촉의 한가운데서 솟아오르는 것이다. 정동은 이러한 부딪침에서 솟아오르는 힘이자, 그 부대낌의 힘 자체라는 점에서 '강렬도intensity'를 특징으로 한다. 이런 차원에서 정동은 부대낌의 힘이라는 함의에 더욱 가깝다.

 

권명아, <<음란과 혁명>>(책세상, 2013), 61쪽.

 

 

 

 

국제신문

색을 통제해 민중을 규율하다

-1970년대 미니스커트 규제 등 일제때 조선인 통치법과 상통

2013. 06. 07

 

1975년 정부의 물놀이 퇴폐풍조 단속 풍경. 국가기록원 제공

 

이 책 표제에서 나타난 두 개 낱말의 연관성을 우선 따져본다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선뜻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워 보이지만,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이라는 부제에서 내용의 일단을 읽어낼 수 있다. 그래도 낯설다. 풍기문란에 관한 연구 결과물을 담은 음란과 혁명의 낯선 이미지가 혼란스럽다는 뜻이다. 무거운 연구 결과물이지만, 일그러진 우리 근현대사의 민낯을 특별한 주제와 연결해 보여주고 있어 끈기를 갖고 일독하면 얻을 것이 많다. 일제 강점기부터 2000년대 지금 시점에 이르기까지 풍기문란 통제의 변천사를 개괄하는 즐거움도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 풍기문란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재생산된 과정은 일본의 식민 통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제가 식민지 민중의 일상을 장악하기 위해 마련한 경찰범 처벌규칙(1912년)이 현재의 경범죄처벌법의 모태가 된 것처럼,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풍속 통제의 이념과 법제, 제도의 틀은 청산되지 않고 오히려 누적되면서 진화 발전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1920년대 후반 풍경을 살펴보면 이런 것이 나온다. 동성애, 근친 간 성행위, 매음, 외설과 추태, 도박, 복권 등의 사행적 행위나 신사·불당·묘소 등에 대한 불경 행위, 만취해서 도로를 배회하는 행위, 미성년자의 음주·끽연, 외설 문서의 유포·판매·진열, 풍속영업 등 이 시기 풍속 통제는 일상 전반에 걸쳐 있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1950년대 한국 사회는 취약한 주권에 관한 불안과 직결된 풍기문란이 팽배했다.

   
4월 혁명의 실패와 5·16쿠테타로 상징되는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관제문화와 이른바 '한국적인 것' 등이 버무려져 풍기문란의 각축장이 됐다고 한다. 냉전체제와 분단, 개발 독재가 공고해진 이때가 풍기문란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시점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실제 이때부터 학생과 청년 세대 문화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장발·미니스커트 단속 등이 떠오른다. 반대급부로 건전가요, 건전 출판물, 우수 영화 등과 같은 관제문화 보급이 급증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후 무엇이 변했을까. 1987년 민주화 이후 풍기문란 통제와 관련한 법제와 정책에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1988년에는 경범죄처벌법 개정에서 '장발자'나 '저속 의상 착용자' 등의 규정이 삭제됐다. 그러다 1994년 개정에서는 '장발이나 저속 의상, 문신 노출로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경우'가 추가됐다. 그래서 저자는 '통제의 이념과 기본 시스템이 변하지 않은 채 단속이나 통제의 내용만 변화한 측면이 강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국 사회에서 풍기문란 통제가 해방 이후 일제 강점기와 같은 방식으로 재생산되는 측면을 날카롭게 파헤친 부분은 특별히 시선이 간다. 이 책을 통해 풍기문란에 관한 연구가 정치적 주체화와 관련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여전히 이어지는 현실을 또다시 발견하는 것은 무척 아프게 다가온다.

링크: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30608.22015201649

---------------------------------------------------------------------------------------------------------------

부산일보.

[문화-책꽂이: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30608000017 ]

 

---------------------------------------------------------------------------------------------------------------

[기사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구절]

1960년, 17세의 소년은 차가운 강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2년 뒤, 그 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또 한 소년이 태어났다. 이 두 소년의 죽음과 삶을 이렇게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발상일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역사란, 숙명론적 굴레라든가, 또는 서로 간의 일생이 알지 못한 채 어떤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식의 비합리적인 사유가 아닌 합법칙적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서로가 옷깃 한 번 스친 적도 없이 죽고(아니, 살해당하고) 태어난 두 소년의 죽음과 삶이 연루되어 있다는 논의는 어떤 인연의 사슬이나 숙명의 굴레 같은 비합리적인 서사처럼 보일지 모른다. 물론 그런 숙명이나 인연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4월혁명 이후 냉전체제에서 풍기문란과 관련된 여러 조직과 법제ㆍ제도가 파시즘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장정일/J의 인생과 대비해서 살펴보다 보면 장정일이 1996년 ‘음란범’이라는 이름으로 치욕스러운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은 1960년 한 소년이 살해당하던 그 시점에 이미 ‘정해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장정일이 ‘음란범’이 되어버린 것은, 숙명인지 모른다.

1962년부터 1996년까지 평생에 걸쳐 장정일/J는 이 숙명을 거스르기 위해 싸워왔지만, 그 숙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 어떤 한 개인 존재에게 삶이란 결사적으로 싸워도 결국 제한된 굴레를 벗어날 수 없도록 정해져 있다. 아니, 혹자는 말한다. 세상에는 많은 선택지가 있다고. 제 할 나름이라고. 그렇다. 그런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이들에게 삶에는 선택지가 없다. 인생이라는 것, 태어나서 살아가며 걷는 인생길이 이미 태어날 때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인간 존재의 삶의 반경을 제한하고, 조정하고, 정해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사회의 구조이고 체계이고 이데올로기이며 통치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어떤 이들에게는 무궁무진한 인생의 무대를 제공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주 제한된 삶의 반경만을 제공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삶은, 인생은, 그저 정해진 굴레를 맴도는 숙명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숙명은 곧 사회 구조의 다른 이름이며, 누군가의 삶을 숙명으로 환원시키는 그런 구조는 바로 폭력 그 자체이다. 즉 누군가의 인생이 숙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다면, 바로 그러한 인생들을 생산하는 사회야말로 가장 강력한 폭력이 작동하는 사회이다. 내가 풍기문란이라는 문제틀을 통해서 살펴보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결사적으로 도망쳐도 도망칠 수 없는 숙명의 법칙을, 필사적으로 싸워도 제한된 삶의 반경을 넘어설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그것을 숙명이나 내 탓으로 간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보는 것 말이다.

(본책, 307~308쪽)

한국일보 2013.6.7.

장발·미니스커트 단속, 누가 왜 시작했을까?

  • 지난해 한 지역축제에서 70년대 미니스커트 단속을 재현한 모습. 경찰의 경범죄 단속은 일제시대부터 시작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1960~70년대 서구 사회에서 히피 문화가 유행하던 때, 한국에서는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이 한창이었다. 80년대 민주화와 더불어 이런 억압적 단속은 많이 사라졌지만, 과다 노출에 범칙금을 부과하는 경범죄처벌법은 여전히 남아 있다. '풍기 문란'이라는 이유로 국가가 개인의 취향을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이런 제도는 사실 일제의 식민 통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식민지 시대 조선 사회와 90년대 여성 문제에 천착해 온 저자는 풍기 문란의 역사를 소재로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역학을 분석한다.

    국내에서 경범죄 처벌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54년. 이 법은 일제가 조선인들의 풍속을 통제하던 경찰범 처벌 규칙(1912년)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10년대 일제의 풍속 통제는 묘지에 대한 관습이나 기생에 관한 것에 그쳤으나 1920년대 후반이 되면 동성애, 매음, 외설과 추태, 도박, 미성년자 음주 단속 등으로 광범위해진다.

    이 같은 기조는 해방 후에도 이어져 1960~70년대는 가정의례 준칙, 야간 통행 금지, 장발 단속, 밀주 금지 등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로 지목된 다양한 문화들이 법적인 규제를 받았다. 저자는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서구의 퇴폐 풍조에 물든 행태라며 단속한 70년대 경찰 활동이 1930년대 말 일제의 역사적 경험을 계승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렇듯 국가에 의한 풍속 단속은 식민지, 전쟁, 독재 체제 등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산물로 식민성, 근대성, 파시즘과 민주주의 문제들과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저자는 풍기 문란 연구에 대한 방법론과 역사, 의미를 소개하며 각 시대별 대표 소설을 통해 풍속의 역사를 분석하기도 한다.

    '음란'과 '혁명'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풍기 문란과 정념, 정동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이론적으로 아우르고 있어 읽기가 만만치 않다. 저자 스스로 책 서문에 '자료 더미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고백했듯 주장과 개념어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점도 아쉽다.

    링크: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306/h2013060721272584210.htm

    ------------------------------------------------------------------------------------

    [기사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구절]

    풍기문란 심판은 ‘선량한 풍속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제재를 뜻한다. 이때 풍속에는 다양한 뜻이 담겨 있는데, <서화>는 이 풍속의 함의를 매우 흥미롭게 보여준다. <서화>를 빌려 말하자면, 풍속은 세 개의 바람으로 표현될 수 있다. <서화>의 전체 구성을 토대로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서화> 초반부에서 돌쇠는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산잔등에서 쥐불이 번지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풍속을 함축하는 첫 번째 바람은 바로 이 쥐불놀이로 상징되는 풍속(風俗)이다. 즉 이 마을 공동체의 오래된 삶의 방식으로서의 풍속이다. 그리고 돌쇠는 그 쥐불놀이를 보며 왠지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두 번째 풍속이며 열정으로서의 ‘풍속’, 즉 정념이다. 들판의 쥐불놀이(風俗)의 붉은빛이 돌쇠의 마음 속 붉은빛으로 옮겨 붙은 것(정념)인데, 이 불을 옮겨다 놓는 것은 바람(風)이다. 이 것이 세 번째 풍속으로서의 바람이다. 이 바람은 들판과 마음 사이를, 오래된 삶의 방식과 새로운 삶을 향한 열정 사이를 매개한다. 해서 풍속통제는 이러한 모든 매개체, 즉 미디어, 독서, 만남, 사랑, 전위를 법 앞에 소환한다. 들판과 마음 사이를, 오래된 삶의 방식과 새로운 삶에 대한 열정 사이를 매개하는 모든 것은 그래서 풍기문란 재판정에 소환되었던 것이다.

    (본 책, 74쪽)

    풍기문란자들이 자연 상태나 더 나아가 전쟁 상태 또는 비국민의 상태로 규정되는 과정은 이들 자신의 말이 박탈당하고, 법과 담론 헤게모니가 이들의 말을 대신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언어와 비언어적인 것의 분할선은 이러한 ‘부적절한 정념의 라인’과 상태들의 차이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다. 부적절한 정념의 담지자로 판정된 자들은 법의 이름으로만 대신 말해진다. 판결문, 범죄기록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또 그들은 담론장에서는 사회면 3단 기사나 세태 비평 등에 의해 ‘문제적 집단’으로만 등장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적절한 정념의 담지자’라는 규정 아래 비언어적 상태로 위치가 배정된다. 이들의 정념 역시 자신을 규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비언어적 상태를 맴돈다. 결국 이들의 정념은 비언어적 정념의 형태를 띠게 된다.

    (본 책, 346쪽)

    문화일보 2013.6.7.

    북리뷰 [문화]

    법·정치 가로지르는 ‘色’… ‘풍기문란’ 단속의 역사·정치학

     


      한때 히피였던 스티브 잡스는 창조력의 화신이 됐다. 히피들의 공유 정신은 정보기술(IT)의 개방성과 일맥상통한다. 1970년대 미국에서 히피들이 자유를 외치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장발·미니스커트 단속이 한창이었다. 머리가 긴 것으로 적발되면 구류에 회부되는 한국의 전근대 문화와 다양한 ‘카운트컬처(대항문화)’까지 거침없이 누렸던 미국 문화를 빗대보면 동시(同時)적인 것의 비동시적 현존이었던 셈이다.

      책은 식민지, 전쟁, 독재체제 등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산물인 ‘풍기 문란’ 단속을 다루면서 역사와 정치학 시각에서도 예민한 촉수를 내민다.

      국내에서 경범죄 처벌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54년이었다. 이것은 다시 일제가 식민지 백성들의 풍속을 통제하던 경찰범 처벌규칙(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강점기 일제는 대로변에서 유통되는 문화뿐 아니라 뒷골목 문화를 규제하는 데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전시동원체제에서는 사회의 말단 세포까지 국가의 통제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1910년대 일제의 풍속 통제는 묘지에 대한 관습이나 기생, 갈보 등이었으나 1920년대 후반이 되면 동성애, 매음, 외설과 추태, 도박, 미성년자의 음주·끽연, 외설문서의 유포·판매·진열, 만취상태에서 도로를 배회하는 행위 등으로 광범위해졌다. 일상 전반을 그물망처럼 옥죄었던 통제의 시대였던 셈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이 같은 기조는 이어지며 오히려 속으로 더 곪아가는 양상을 보인다. 퇴폐 풍조 박멸, 풍속사범 일제 단속, 가정의례준칙, 야간통행금지, 장발 단속, 밀주금지 등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로 지목된 다양한 언어, 문화 생산물, 취향, 산업 등이 법적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규제를 받아왔다. 저자는 장발·미니스커트 단속이 대중문화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는 경찰권력의 개입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이는 불량·문란한 행위가 서구의 퇴폐풍조에 물든 행태라고 비판했던 1930년대 말의 역사적 경험이 계승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3월에도 국무회의에서 ‘경범죄 처벌법 시행령 개정령안’이 통과됐는데 국가 통치가 시민들의 일상과 풍속을 규율하고 처벌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책은 풍기 문란 통제의 기본틀과 기원을 살펴보기 위해 한국인의 공통된 정념에 메스를 들이댄다.

      저자는 풍기 문란 연구와 ‘자신에 의해 표현되고 타인에 의해 관찰되는 감정’을 뜻하는 정동(affect·情動)이론을 접속하는 지점을 살펴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월북 소설가 이기영의 소설 ‘서화’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색(色)과 정치의 연계는 단지 사상과 풍속 사이만을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정치, 법과 생명 사이를 가로지르며 작동한다.

      1945년 해방을 맞았지만 야간통행금지 제도라는 깜깜한 밤의 시대가 시작됐다. 일제 때 있던 공창제가 폐지되면서 사창화가 우려됐다. 미군 관련 범죄 등으로 인종적 공포도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풍기 문란이 사회의 지배담론 중 하나가 됐다. 1961년도 분기점이다. 저자는 “4월 혁명의 실패와 5·16 쿠데타로 상징되는 1961년은 냉전체제와 분단, 개발 독재가 공고해진 때이기도 하지만 학생과 청년 세대 문화에 대한 집중적 단속이 강화된 시기”라는 점에 주목한다.

      마산에서 김주열이라는 소년이 살해당하는 시점과 1962년 대구에서 한 소년이 탄생하는 시점을 대비시킨다. 이 소년은 음란하다는 이유로 그의 소설이 판매금지된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저자 장정일이다. 저자는 “이 두 소년의 삶과 죽음의 교차를 통해 (소년들이) 어떻게 국가 폭력에 회수되는지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냉전 시대에 들어선 뒤 소년들은 “죄 많은 아이”라는 위치를 강요받게 되며, 문제아의 심정이 돼 버린 열정은 사회적 규율체제, 소년보호나 경찰권력의 통제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고 지적한다.

      ‘음란’과 ‘혁명’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풍기 문란과 정념, 정동이라는 3개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아우르는 이 책은 읽기가 만만치 않다. 일제 강점기 풍속 통제의 상황과 검열의 실상을 추적하면서 전시동원체제에서 비(非)국민을 심문하는 구조를 심층 탐구하는 식이다.


     

    예진수 기자

    (원문링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60701032530025005

     

     


     

    [기사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구절]

     

     

                                                 

     

      <서화>의 배경이 되는 기미년 전후 식민지 조선에서 농민의 혼/정념을 둘러싼 풍기문란 법정에서 돌쇠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덕분에 농민의 혼/정념은 사회주의를 '법정 대리인'으로 '얻게' 되었다. <서화>에 대한 1930년대 사회주의 문학론자들의 논쟁에서도 <서화>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의 입장 차이가 있었지만, 농민의 혼/정념과 사회주의 사이의 이러한 '피고인'과 '법정 대리인'의 위치와 관련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서화>를 둘러싼 논쟁을 거치면서 농민의 혼/정념에 대해 사회주의자가 '법정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강화할 것이 촉구되었다. 나아가 이 문학사적·역사적 귀결점으로서 이기영의 <<고향>>은 높이 평가받았다. <서화>와 <<고향>>을 비교해볼 때 <<고향>>이 사회주의자 김원준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진행되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다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농민의 혼/정념이 '법정 대리인' 없이는 무죄판결을 받을 수 없는 것은 1930년대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행에 대한 정동 이론의 문제틀이 '맹아적인 것' 그 자체를 사유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의 연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권명아, <<음란과 혁명>>(책세상, 2013), 78-79쪽.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