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과 뜨거움 주고받기

 

 


최혁규(문화연대

 

 

 

 국정원 선거 개입 규탄,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철도 민영화 반대 등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연일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고 각계각층에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정권은 귀를 막아 우리의 의견을 묵살하고 우리의 움직임을 불법행위로 규정하며 경찰을 동원해 목소리를 틀어막으려 한다. 심지어 청년들이 안녕들하십니까라고 쓰며 서로의 안부에 관심을 두는 행위마저 비난하고 제지하고 있다. 여전히 권력을 잡은 자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자기 생각대로 왜곡해버리거나 그냥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간다. 공감의 능력 자체가 퇴화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시국에 각 문제와 연대하며 자신의 투쟁을 묵묵히 이어나가는 여러 투쟁장들이 있다. 콜트콜텍 투쟁장은 그중에 하나고, 나는 문화연대 활동을 통해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고 있다. 콜트 기타의 부당한 정리해고와 위장폐업에 맞서 싸운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투쟁은 지난 124일로 2500일을 넘겼다. 잘 알려진대로 한국 사회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장기투쟁 장이다. 개인적으로 작년부터 이들의 투쟁을 가까이서 봐왔는데, 밴드 결성, 시 낭독, 기타 만들기 워크샵, 연극 활동 등을 통해 문화적 주체로서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벅찼다. 또한, 투쟁에 함께하고 있는 여러 인권활동가와 문화활동가들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이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최근 연극 <구일만 햄릿>과 콘서트 <기타 레전드, 기타노동자를 만나다>가 있었다. 연극 <구일만 햄릿>은 막무가내종합예술집단 진동젤리의 각색 및 연출로 기타노동자들 네 명과 문화연대 활동가 최미경이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연기했다. 전문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연극적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담고 있는 죽느냐 사느냐라는 실존의 문제를 기타노동자들 당사자들이 콜트콜텍 투쟁의 맥락에서 소화하고 있는 이 연극은 말 그대로 하나의 의미 있는 작품이다. 또한 <기타 레전드, 기타노동자를 만나다>는 지난 111일 콜트콜텍의 박영호 사장이 만든 콜트문화재단의 주최로 열린 ‘G6 콘서트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콘서트에 참여했던 뮤지션 신대철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부당해고한 곳에서 주최한 콘서트인 줄 몰랐다며 기타노동자들에게 사과의 메세지를 전달했고 기타노동자들의 투쟁에 꼭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을 지킨 행사가 게이트플라워즈, 한상원, 신대철, 최이철이 참여한 <기타 레전드, 기타노동자를 만나다> 콘서트다. 기타 레전드들의 연주엔 기타를 연주하고 그들의 손길만이 아니라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손길이 함께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연극 <구일만 햄릿><기타 레전드, 기타를 만나다> 콘서트는 기타노동자 자신들이 투쟁이면서도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이 연대한 즐거운 투쟁이었다. 함께 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열기가 느껴지는 자리였다.

 내년 110()콜텍 기타 노동자의 정리해고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래서 연말까지 릴레이 시위를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3명의 활동가가 서초구에 있는 서울고등법원에 앞에서 재판부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는 일인시위를 했다. 시위를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어떤 분위기 지나가면서 쌍화탕 몇 병을 사서 건네주고 가셨다.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졌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작은 병 하나였지만 그 사람의 온기가 전달되고 있었다. 문득 나는 콜트콜텍 투쟁에 함께 하며 온기를 전달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오히려 기타 연주, 시 낭독, 연극 등을 통해 문화적 주체로 거듭나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보며 내가 온기를 전달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대하고 함께한다는 것은 이렇게 즐거움과 뜨거움을 주고받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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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규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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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


 


최혁규(문화연대

 

 

 

 기억에 의하면 문화연대에 들어와서 처음 주어진 미션은 성명서 쓰기였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을 풍자한 이하 작가의 포스터 작업이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았던 사건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문화연대의 견해를 밝히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이었다. 태어나서 써 본 글들이 나의 이야기를 풀거나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는 일기나 리뷰, 칼럼, 비평 등의 글들이 전부라 조직의 견해를 대변하는 성명이라는 형식의 글을 쓰는데 무척이나 애썼다. 분량으로 치면 A4용지로 한 장도 안 되는 글이었는데 계속 썼다 지웠다 를 반복하며 온종일을 보냈다. 개인적인 입장을 숨기려 했기에 어려웠던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조직의 견해를 간결하고도 강력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망설이게 되는 표현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익숙하지 않은 글쓰기였기 때문에 더딜 수밖에 없었다. 성명이나 논평은 진보냐 보수냐를 막론하고 조직이나 단체가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에,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는 영역에서 문제시되는 사안이 있을 때 단체들은 하루빨리 성명이나 논평을 낸다. 쉽게 말해 성명 및 논평 문화가 있다고나 할까. 나 혼자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인 공동체의 목소리인 만큼 책임감을 갖고 글을 쓰려다 보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몇 번 공동체의 입장을 작성하다 보니 가끔 쟁점이 되는 사안에서 개인적인 입장을 세우기도 하지만 내가 속한 조직의 사람들이 어떤 입장을 가질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공통의 전망과 목표를 위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긴 하지만 각자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차이가 있고 행여나 그 생각이 조직의 입장에 쉽게 묻혀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 사건사고들은 누가 봐도 어이가 없는 사건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지난 9월 문화체육관광부 김 모 예술정책과장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와 직원을 불러놓고 협박성 월권 발언을 하고 결국은 재단 대표가 사임했다는 소식, 부산비엔날레 오광수 운영위원장이 투표를 통해 전시감독을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운영위원장의 권한을 운운하며 선정된 감독에게 공동 감독직을 할 것을 강요했다는 소식,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식에서 청와대에 의해 일부 작품이 제외되었다는 의혹제기, 그리고 이 전시에 선정된 작가 2/3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미술계 인사들이 범대책위를 구성해 이를 규탄하고 있다는 소식, 국정원에 의한 진보적 문화예술단체 압수수색 등이 있다. 이들 모두 문화권력의 심각한 불균형 현상과 문화자본이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로, 자율적이고 생동력 있는 문화가 아니라 죽어버린 문화의 거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기에 분노하고 분개할 만 한 일이다. 특히 문화운동에서 문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부당한 권력의 행사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 성명서를 통해 그리고 팟캐스트를 통해 이 사건들에 대해 견해를 피력했다. 단체의 목소리를 통해 개인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고, 개인의 입을 통해 단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 모두가 어떤 사안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고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입장을 공통의 것으로 모아내고 구체적인 언어로 명료화시키는 작업은 많은 논의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있어서 공동체와 개인 간의 입장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특히 공식적으로 정치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단체의 경우에는 그 입장을 남에게 설득시킬 논리와 언어를 동반해야 하며 항상 사회적인 책임이 따른다. 때론 사사로운 이익만을 추구하고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독단적인 입장을 제시하는 단체의 경우도 종종 보긴 하지만 과연 이들이 공동체 혹은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쨌건 공통의 의견은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무수한 차이로 구성된 공동체나 조직일지라도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같은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 있다. 매번은 아니겠지만, 글을 통해서건 말을 통해서건 각자 다른 의견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위한 자리들이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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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규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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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운동! 어디가?


 


최혁규(문화연대)


 

 2013년 문화연대 후원의 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후원의 밤 제목은 “문화연대, 어디가?!” 이다. 재정적인 사정으로 10월 말에 사무실이 이전하기도 했고 앞으로 문화연대의 (문화)운동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지은 이중적인 의미의 제목이다. 실제로 어딘가로 갔고 또 앞으로 어디로 갈지에 대한 고민을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풀려다 보니 “아빠! 어디가?”를 패러디한 것이다. 참 탁월한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특히 ‘어디로 간다는 것’은 어쨌거나 출발하는 곳이 있다는 말이니, 어디 가느냐고 묻는 행위는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모색과 동시에 현재의 자리에 대한 성찰도 동반하는 것이다. 참 괜찮은 후원의 밤 이름이다.


 거의 모든 시민단체가 매년 후원의 밤 행사를 하는데, 단체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음식과 술을 나누며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것을 함께 다짐하는 자리다. 또한, 적극적인 후원 요청을 통해 앞으로의 활동 자금을 마련하고 새로운 운동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는 창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후원의 밤은 함께 모여 지난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점검하고, 어떻게 미래로 나아갈지를 모색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운동의 점과 선과 면을 엮고 꿰매는 시간. 문화연대가 1999년에 창립되었으니 이번 후원의 밤은 문화연대의 문화운동의 14년이라는 세월을 엮는 셈이다. 나는 그 세월 안에 있다. 하지만 운동이 한 단체나 한 활동가의 것으로 환원되어서도 안 되지만, 활동가나 단체가 운동 속에 가려져서도 안 된다.


 아무튼, 나는 후원의 밤을 준비하기 위해 몇몇 지인에게 연락을 해서 후원을 요청했다. 그럴 때마다 지인들은 사회운동은 알겠는데 대체 문화운동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예술운동은 알 것 같은데 문화운동은 뭐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단순하게 이야기했다. 사회운동이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운동이라면 문화운동은 더 좋은 문화를 위한 운동이라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둘은 다른 것이 아니라고. 또한, 예술운동은 개별 장르들이나 예술이라는 특화된 형태에 대한 운동이라면 문화운동은 예술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적 표현물들에 대한 운동이라고. 그리고 문화적인 것들을 창조하고 향유할 문화적 권리,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차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문화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운동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문화운동은 자본의 동학 시스템과 그것이 재생하는 문화 권력에 대해 저항하기도 하고, 자본의 영역 밖에 있는 대안적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활동이다. 이런 것이 바로 문화연대의 문화운동이다. 이 운동이 어느새 14년을 맞이했고 지지와 응원을 바라는 후원의 밤 행사를 연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로 문화융성 내세울 정도의 문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그동안의 문화운동에 대한 점검을 통해 앞으로의 문화운동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문화연대 후원의   밤을 맞이해서 이런 질문을 해본다. 문화운동! 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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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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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뜨락] ‘아무 말’, 불현듯 그 곳에 가고 싶게 되는.


 


최혁규(문화연대)


 

 

 

현재 문화운동은 어디쯤 머물러 있으며 어딜 향해 가고 있을까? 거리를 배회하며 술집을 어슬렁거리고 영화의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다 보니 어느새 지금의 나는 활동가로서 문화운동을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시민운동의 안팎에서 기존의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 함께 새로운 시민운동을 논의하고 있듯이 지금 이 현실에서 어떤 시민운동이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내 열정과 열정의 부족인지, 혹은 기존의 운동에서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실무에 대한 피로감 때문인지 그게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일단 현상에 대한 진단을 해보면, 몸도 마음도 뻑뻑하니 스스로가 메마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폴리네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정신이 메마를 때는 아무 말이나 써놓고 곧장 앞으로 나가라”고. 그래서 이 글은 추동력을 얻기 위한 ‘아무 말’이다.

 

이전의 나를 돌이켜보니 이렇다. 비싼 등록금을 낸 학교엔 제대로 나가지도 않고 이곳저곳을 방황하고 돌아다녔다. 반항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니었다. 갑자기 스무 살의 문턱을 넘자 그냥 모든 것이 지리멸렬해졌고, 술에 젖어 하루를 잊은 채 잠이 드는 게 좋았었다. 그러다 어떤 계기를 통해 시네마테크에 발길을 들이게 됐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루 줄곧 영화를 몇 편 보고 밤이 되면 거기서 만나게 된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그러다 보니 그 공간이 너무 소중해졌고 영화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새록새록 피어나기 시작했다. 누구의 말마따나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학교였다. 또한, 놀이터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공간이 사라질 위험에 닥치게 되었고 나 포함 시네마테크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시네마테크를 지켜내는 게 정말 절실한 문제였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영화에게 진 빚을 갚고 싶었던 생각뿐이었다. 지금 그 당시의 릴레이 글 중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그때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때 거대한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곳이 밀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숲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숲길을 개척해 나가기도 한다. 그 길의 초석을 마련해준 곳이 시네마테크다. 장황한 밀림 속에서 방황하고 갈피를 못 잡던 나(혹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여러 길을 안내해주고, 설명해주고, 쉬어갈 수 있게 해주는 인심 좋은 노인 같다고나 할까. 이 분은 모진 풍파를 견뎌낸 일화들을 즐겁게, 때론 슬프게, 때론 무섭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며(가끔은 졸기도 하고) 가야 할 길을 묻곤 한다. 시공간을 넘어선 영화와 대화, 동행자들과 대화, 그리고 곧 다가올 대화들. 숲길에서의 대화는 가끔 모진 돌에 걸려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게 해준다. 시네마테크는 내게 그런 존재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만나서 영화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자주 있었다. “나도 한때는 영화 정말 좋아했었는데” 혹은 “나도 너만 할 때는 영화광이지” 등의 말들이었는데, 그 말들을 들었을 때의 나의 반응은 항상 하나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겐 항상 현재진행형이었으면 좋겠다고. 시네마테크에서 내가 처음 본 영화는 루이스 부뉴엘의 <잊혀진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비유해서 이야기하자면, 지금도 앞으로도 나는 영화에게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글을 쓰다 보니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이 현재에도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길 바라는 것처럼 누군가도 그럴 것이라고.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그렇게 꾸려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산더민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불현듯 그곳에 가고 싶다. 이 아무 말이나 써놓고 그곳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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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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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뜨락] 지평선 혹은 수평선이 사라져버린 삶

 

 

 

최혁규 / 문화연대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서정춘의 <죽편1-여행>

 

 

 

 

 

 

이 지면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문화비평이라는 범주에서 나의 기존의 글쓰기를 반추해봤을 때 특정 대상 없이 글을 쓴 경우가 많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글들이 영화, 문학, 음악, 만화 등의 텍스트를 통해 문화에 다가갔으며, 그 글 속에서 나 자신을 지우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글 속에서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글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텍스트 뒤에 숨기 급했으며 심지어 숨는 것에 희열을 느끼곤 했다. 대부분의 문화비평적 글쓰기가 그러하듯이 '의 이야기가 아니라 문화적 텍스트'에 대한 글로 크게 기울어져 있었다. ‘무엇에 대해서인 글에서 그 무엇에 를 대입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덧 다른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글에서 지우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고 오히려 내 온몸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스스로의 몸을 통해 비평을 하고 싶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면에서 스스로를 활동가로 위치지음으로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가라는 단어는 분명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적 맥락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그런 사회역사적 맥락보다 활동'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문화적인 현상과 이론적인 부분들을 결합시키는 작업들보다 내 삶이 마주하고 있는 것들과 타자의 삶이 마주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활동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활동가로 지내면서 내 몸이 만나고 있는 수많은 현상들에 대해 성찰적 글쓰기를 하고 싶다.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삶의 양식으로서의 문화, 바로 이것을 나의 몸을 통과해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몸에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새겨진 문화들은 어떻게 타인들과 연결되어 있을까? 개인들의 욕망이 다양해진 만큼, 한 개인의 욕망 또한 다양해지고 세분화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다양한 욕망들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며, 그 연결망들은 타자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이것은 어쩌면 은유의 문제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타인들, 공동체, 사회와 은유하려는 시도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는 이런 능력을 상실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서로가 느끼는 문화정치경제적 경험에 대한 온도차를 감지하길 거부해버리면서. 어쩌면 높디높은 빌딩들과 촘촘히 붙어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치이는 삶을 살면서 수평선 혹은 지평선을 바라보는 법을 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도시/시골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 몸이 위치한 곳과 내 시선이 닿는 저 먼 곳을 잇는 법을 상실해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이제 우리는 멀리 바라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내 몸에서 시작해서 최대한 멀리까지 한 번 은유해보고자 한다. 내 몸의 욕망들 그리고 내 피부로 느끼는 다양한 욕망들이 그 너머의 다른 욕망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쉽지 않은 모험이겠지만 백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이 먼 여행을 한 번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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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웹진 아프꼼에서 이번 달부터 문화연대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최혁규님의 글을 연재합니다. '활동가'로서의 삶에 대해서, 그 생의 뜨락에 여러분들을 초대하기 위해 조금씩 터를 쓸어놓으려 하오니, 많은 발자국들을 찍어주시기를. 현재 최혁규님은 밀양에서의 연대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니 최혁규님에 대한 조금 더 내밀한 이야기는, 더 아픈 이야기들을 돌보는 시간 동안 잠시만 기다려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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