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영수증 발급 이후>

'글'로 찍는 다큐멘터리

1. 노동에세이

 


청년이 청년에게 바통터치!

 

 

장옥진(래인커머)

 

 

 



   통장에는 지금 세 번의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왔다. 오전 7시에서 1시까지, 월화수목금. 빨간 날도 어김없이 나가고 설날, 추석 등 대명절 당일에만 쉰다. 얼마의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왔을지 얼추 상상이 될 것이다. 상상될 정도의, 딱 그 정도의 돈이다. 인수인계를 해준 언니의 말에 따르면 최저시급에 변동이 없는 이상 1년을 일해도 “오르지 않을” 돈이다. 얼마전 부산에서 진행된 ‘2016 차별철폐대행진’의 슬로건이었던 ‘최저임금 1만원’이 떠오른다. 최저시급의 인상이 시급하다. 여기에서는 똑같이 최저시급을 받고 일한, 인수인계로 '앞선 아르바이트 경험자(언니)'와 함께 했던 4일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6개월 간 일하면서 터득한 자신만의 값진 노하우를 몽땅 알려준다. 일 대 일 속성과외를 받는 느낌인데 돈 주고 들어야 할 것 같다. 새 알바생이 빨리 일을 배워야 그만 둘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앞선 경험자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할 유용한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알려준다. 일명 <이곳에서 살아남기: 빵집알바편>이다. 속편으로 ‘사장님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 또한 가르침의 영역 밖에 있어 스스로의 학습이 요구되는 것도 있다. 이는 주어진 아르바이트 시간 외에 집에서, 버스에서 열심히 학습해야 한다.


"까먹을 것 같은 것은 적어가세요."

"사진으로 찍어가서 외우는 것이 좋아요."

"저도 그렇게 했어요."

 

 



▲포스기와 빵 진열 사진. 매장의 모든 빵과 빵이 놓이는 위치를 다 외워야 포스기 앞(계산대)에 설 수 있다. 손님이 '쫄깃한 찰떡 브레드'를 가지고 오면 이걸 포스기에서 빠르게 찾아 찍어야 한다. 이 빵은 생지기타 두 번째 페이지 밑에서 세 번째 줄에 있는 빵이다. 

 


   마지막 4일 째 되는 날은 당장 내일부터 본격 바통터치가 되어야 하므로 "이제 혼자 해보세요." 해서 모의테스트를 했다. 암기 영역과 실무 실행 영역에서 고루 좋은 점수를 받아야 언니의 '그만둠'이 확정이 되는터라 언니도, 나도 긴장했었다.


   지금은 4개월 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가끔 언니가 생각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3분의 2는 언니에게 배웠고, 나머지는 전전 알바생들이 곳곳에 써붙이고 간 알바팁, 알바생들의 흔적에서 배웠다. 나는 아주 가끔 나 다음 사람을 상상하면서 일한다. 어떻게 알려주는 것이 효과적일까를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말이다. 이 아르바이트라는 일은 내 또래의, 나와 비슷한 사람이 하게 될 것이고, 교체에 놓인 알바생들 간에는 다음 알바생이 무사히 잘 적응했으면 좋겠는 그런 고통된 마음들이 한 줄로 진하게 이어져 있지 않을까.

 

 

 

 

▲매장 곳곳에 써 붙여 있는 메모들. 전 알바생이 써 붙여 놨는지 전전 알바생이 써 붙여 놨는지 모를 메모들이 매장을 채우고 있다.

 

 

 

 

<대졸 영수증 발급 이후> 프롤로그

: '로 찍는 다큐멘터리

 

 

 

장옥진(래인커머)

 

 

 

 

태어나서 유년기까지 나에 대한 기록은 부모님이 해주셨던 것 같다. 1993522, 음력 42일의 달력을 시작으로 집에는 내가 과거에도 로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들이 있다. 나를 담은 세 개의 앨범, 유치원 졸업식 때 대표로 읽었던 정원동산을 떠나며답사문, 초등학교 1학년 때 경필쓰기대회에서 무려 최우수상을 받아 지금도 액자에 걸려 있는 그 원본, 초등학교 교내 신문에 얻어걸리듯 나온 체조하는 사진, 초등학교 6년동안의 생활통지표와 받은 상장들. 부모님은 그렇게 커 가는 나를 가장 곁에서 지켜보면서 하나둘씩 모아두셨다. “해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는데 그거라도 결혼할 때 가져가라, 이게 다 내 재산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에 대한 기록을 내가 처음으로 한 것은 그림일기, 생활일기를 써서 검사를 받았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가 아닐까 싶다. 모두가 한 번쯤은 써봤을 그때의 일기라는 것은 하루단위로 생활을 돌아보며 주로, 재밌고 슬펐던 일과 같은 감정들을 솔직하게 담을 수 있는 하나의 장소일 것이다. 물론 지금 나에게는 하루를 돌아보는 것에, 나의 감정을 돌보는 것에 소홀해져서 잃어버린 장소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다.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왜곡되지 않은 기록들은 말이다. 그리고 지금 <대졸 영수증 발급 이후>라는 제목으로 나에 대한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주인공 는 대학교를 졸업했고, 주변의 사람들이 보기에 영락없는 취업준비생, 백수이다. 진전 없이, 멈춰 있는 시간 속에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말고도 이러한 시간 속에서 지내는 청년들은 많고, 그렇기에 이러한 기록은 필요하지 않을까. 이들이 멈춰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나 스스로도 이 시기를 멈춰 있던 때로 기억하지 않기 위해서도 말이다. 다큐멘터리처럼 실제의 시간을 담고, ‘로 나의 생활을 찍어내려고 한다.

 

 

올해 2, 1차로 국어국문학과 졸업 학위증, 그러니까 대졸 영수증을 받아 부모님께 드렸다. 엄마, 아빠는 번갈아가며 한 번 스윽 쓰다듬더니 졸업 사진은?” 하고 물었다. 유치원 졸업 때의 장난감같은 학위가운과 학사모 말고 진짜를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별 필요 없다는 건 쉬운 내 생각이었고, 부모님의 서운한 표정을 이길 수 없어 스튜디오에 가서 졸업 사진을 찍었다. 326, 2차로 부모님께 대졸 영수증을 드렸다. 엄마, 아빠는 액자를 싼 비닐에서 졸업 사진을 조심히 꺼냈고 뭐 묻을까 쓰다듬지도 않았다. 한참 액자를 쳐다보더니 아이고, 됐다. 네 방에 걸어줄게.” 했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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