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2012년 8월 11일 (토): 10:00~18:00

곳: 니혼대학문리학부백주년기념관 2층 회의실3

 

연구모임 아프콤이 일본 니혼대학에서 국제워크샵을 진행합니다. '정념'과 '공동체'의 문제를 다양한 역사적 결락 속에서 읽어내기 위한 시도로, 지난 해에 <식민성과 제국의 네트워크, 정념의 공동체: 정체(停滯/政體)감각과 감각적 결속>을 주제로 하여 연구와 실천을 진행해왔던 것에 이어서, 이번 워크샵은 '냉전기'에 포커싱을 맞추어 정념과 공동체의 문제를 질문해봅니다.

일본에 계신 여러 연구자 선생님들의 도움과 참여에 힘입어 이번 워크샵을 통하여 풍성한 연구와 토론의 자리를 만드는 동시에, 단순한 '국제'워크샵으로서가 아니라 지역과 국경을 넘어 <삶의 반경>을 새로이 넓혀나가는 실천적인 수행의 자리 또한 만들어지기를 기원해봅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전쟁과 (국가) 폭력>

 

                                                                                                                                   by_ 신콩떡

지난 25-26일 양 일간 아프콤은 민족문학사연구소와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이 공동 주최하고 소명출판에서 후원하는 심포지움 <전쟁과 (국가) 폭력>참석,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추모식 참여,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기념관 및 현장(쌍굴다리) 답사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번 답사를 통해 '냉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노근리에 직접 가서 그 흔적을 만져보고 전쟁에 '점령당한 영혼'의 흔적들로 우리가 조금이나마 어떻게든 '정동' 될 때, 저희 팀의 2년차 연구주제인 '냉전기의 정념/정동과 공동체'가 그저 '연구주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전쟁상태적 정념과 정서와 영혼을 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품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바람은 민족문학사연구소와의 만남을 통하여, 더 많은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만들고 연구팀 간의 정동(?)을 일으켜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연구 방향이나 방식이 여러모로 다른 곳의 연구자들과 만나 우리의 지평을 공유하고, 또 확인하는 일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바람으로 참여했던 이틀은 아주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노근리로 가는 무궁화호의 세사람 입니다. (mora님은 사진을 찍으시느라 사진 안에는 없네요..)  노근리가 있는 '영동역'은 KTX가 서지 않는 곳이라 무궁화호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가면서도 노근리에서도 보이는 것은 산과 논이라 배경이 온통 초록이었습니다. 뭔가 옛날의 엠티가는 느낌이라, 누구(..)는 삶을 계란을 찾기도.. 뭔가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기차 안에서도 발표준비에 매진중인 맞장님과 미리 관련 텍스트를 읽고 있는 참연구자 mora님

 

첫째 날의 일정은 심포지움과 이후 이어지는 민족문학사연구소에서 20년에 한 번 개최한다는(그래서 이번이 두 번째라는) 비장의 레크리에이션이 있었습니다.

 

심포지움은 김일환 선생님의 <여성의 전쟁 체험과 순절의 기억: "강도몽유록" 다시 읽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정묘호란 이후 조선에서는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조정이 강화도로 대피하여, 이후를 도모하기로 작전을 짭니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 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왕과 세자는 남한산성에 발이 묶이고, 강화도에는 봉림대군과 세자비를 위시한 군사들 및 백성들만이 남아 고립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지도부는 청나라와 강화를 맺고 성문을 열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청군은 유목민의 관습인 '약탈'을 시작하였고 강화도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변모하였습니다.

<강도몽유록>은 그 당시의 참상을 나름의 '증언'의 형식으로 남겨놓은 작품입니다. 당시 강화도의 참상에 대한 기록과 증언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강도몽유록>의 목소리가 특별한 울림을 지닌다면 그것은 <강도몽유록>에는 강화도에서 억울하게 죽은 여성들이 스님의 꿈에 나타나 전쟁의 책임을 묻는 말을 남기고, 이를 기록하는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일 듯 합니다. 이는 타자인 여성들의 입을 빌려 정치적으로 패전의 명분을 세우고 책임을 피하는 조정의 '공적기록'에 대항하는 '기억'들을 만들어내는 기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강도몽유록은 '꿈'의 세계를 끌어오고 있으나, 여러 종의 이본들 속에서 '귀신'인 각 여성들이 누구인지를 상당히 명확히 지적하고 있어 단순히 꿈과 허구의 이야기라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비교 대조를 통해 신원이 비교적 명확히 밝혀진 여성들은 자신의 가문에 속한, 그리고 패전의 책임을 져야 했을 남성들을 비판하고 있으며, 논문은 이 지점에서 발화자로 선정되는 '인물의 선택과 배제'와 배치에 작가가 전하고자하는 정치적 의도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현석 선생님의 <1960년대 소설에 나타난 전쟁경험의 내재화와 자기검열의 문제: 이청준과 김승옥을 중심으로>가 이어졌습니다.

 

 

 

이현석 선생님의 글은 이청준과 김승옥의 소설을 중심으로 '문학과지성'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문학그룹이 논쟁을 거치며 만들어내는 '정치성'의 내면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탐색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과 '정치'는 이들의 소설 속에서 재현될 때, 부재하거나 소거되며 오히려 그 부재의 자리를 남깁니다. 그리고 오히려 커다랗게 다가오는 부재의 자리는 그들이 피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 검열된 내면 안에 침잠시켰던 '정치성'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권명아 선생님의 <전쟁상태적 신체의 정동>이 발표되었습니다.

 

 

삶을 파괴시키는 전쟁의 기억에서 영원히 놓여나지 못하는 개인은 '점령당한 영혼'으로 남아 평생을 '전쟁상태적 신체'로 살아가게 됩니다. 말 할 수 없음을 말하는 북혼학살의 증언자 정윤조씨와 '미쳐버린 채' 혀와 성기를 절단하였던 <할매꽃>의 작은할아버지, 피엑스(학살자의 장소)와 계동(피학살자의 장소)을 왕복하며 뛰는 <나목>의 경아, 평생 글을 썼지만 한국전쟁 당시 죽은 '오빠'에 대해서 끝내는 정면으로 다룰 수 없었던 박완서선생님 등등.. 열전에서 냉전으로 그리고 다시 탈냉전으로 재빨리 전환되어가는 이 세계에, 그들은 여전히 '전쟁상태적 신체'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종료를 선언하는 듯한 '전후'라는 매끈한 균질적 단어 안에는 사실 전환되어버리는 것, 이행되어가는 것, 여전히 남겨지는 것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전히 '점령당한 영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끝내 '발화', 즉 증언하지 못하는 것을 듣기 위해서는 원근법적 조망이 아니라, 그 개별의 '정동'의 떨림을 보고자 할 필요가 있겠지요. 이 발표는 그러한 점령당한 영혼의 정동을 더듬어보고자 하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발표는 김응교 선생님의 <노근리, 그 상처와 화해: 정은용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1994)의 경우>였습니다.

 

 

 

김응교 선생님께서 다루고 계시는 주요 텍스트인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는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의 생존자이신 정은용선생님께서 발표하신 르포르타주 형식의 실화소설입니다. 미군에 대한 오점을 입밖에 내는 자체가 '빨갱이'이자 '숙청대상'이 되었던 시대를 견디며,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하여 평생을 바쳐오신 정은용 선생님은 결국 <실화소설>의 이름을 빌려, 대중에게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의 진실을 알렸고, 이것이 AP통신을 통해 전세계에 보도되며 노근리는 다시 한 번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노근리 학살사건을 다룬 텍스트는 많지만 그 중, 이 소설이 가장 특별하다고 한다면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응교 선생님의 논문은 이 특별한 텍스트가 생존자의 '르포르타주'인 동시에 다성적 목소리들을 끄집어내는 '실화소설'이라는 절묘한 위치에서, 어떻게 자신의 트라우마를 계속하여 마주하고 있는가를 분석하였습니다.

 

 

 

또 이 자리에는 저자이자 생존자이신 정은용 선생님께서 몸소 자리해주시고, 기념사를 말씀해주셔서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경남 선생님의 사회로, 김정녀 선생님, 구재진 선생님, 전승주 선생님, 정구도 선생님께서 토론자로 참석해주시어 전체 논문에 대하여 심도깊은 논의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by_mora

 

 

 

연구실에서 공부와 업무를 병행하다보면 그 앞의 풍경을 놓쳐버릴때가 많다. 비좁은 버스에서 내려서 오르막길을 걸어 연구실에 닿을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것은 연구실 창밖으로 보이는 승학산과 나무들인데, 꽤나 가깝게 펼쳐져 있다. 복에 겨운 풍경이지만 도시적인 삶의 패턴들이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 앞에서, 혹은 내 삶의 문제들 앞에서, 풍경을 바라볼수 있는, 혹은 풍경속으로 들어갈수 있는 여유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민족문학사연구소>의 주최로 열리게된 심포및 답사에 참여하기 위해 찾게된 노근리는 도착하자 마자 그 푸르고 선명한 풍경안에 내가 들어왔음을 느낄수 있었다. 노근리를 찾기전 노근리 학살과 관련된 책들과 영화들을 통해서 그 배경들에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맘은 아니였음에도 노근리에 도착하는 순간 1950년대의 학살을 생각할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노근리 평화공원의 관계자분이 언급하신것처럼 '사슴이 살고 있을듯하다'는 말은 과언이 아닌듯 했다.

 

전날  <전쟁과 (국가)폭력> 심포지움에 참석하기전 함께 노근리 학살 사건과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평화공원의 <평화기념관>을 둘러보았다.

 

 


 

평화기념관

 

 

평화공원의 학예사로 계시는 정구도 선생님께서 기념관의 자료들을 전반적으로

설명해주셨다.민족문학사연구소 선생님들과 답사에 함께 참석한 선생님들 모습도

함께 담았다.

 

대전 전투에서 패한 미군은 1950년 7월 21일 영동으로 후퇴하였는데 당시 영동 방어선 

붕괴는 인민군의 부산 진격을 의미하는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고 한다. 정구도 선생님이

몇가지 설명을 덧붙이셨는데 미군이 5일 동안의 무차별적이고 참혹한 학살의 배경으로

당시 미군이 북한군에게 계속 패배함으로서 심리적인 압박감을 가지고 있던 상태였고,

노근리 학살사건의 투입된 미군들은 대부분 17~18살의 스무살도 넘기지 않은 청년들이

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나기전,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는 영동읍 주곡리와 임

계리  마을의 주민들은 이따금 들리는 전쟁의 포성속에서도 한해 풍년을 기약하는 김매기

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미군이 주민들을 피난시켜주겠다는 면목으로 임계리에서 주곡리를 거처 노근리 학살이 일

어난 장소까지의 이동동선을 볼수 있게 되어있다. 사진으로는 담기지 못했지만 노근리학살

사건을 경험했던 주민들의 증언과 당시 노근리 사건에 투입되었던 미군들의 증언이 기록된

영상도 자료로 볼수 있었다.

사건의 전반적인 배경을 살펴보고 나면 쌍굴다리를 재현한 설치물을 건너갈수 있도록

되어있다

쌍굴다리를 지나면 학살당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명패가 벽면에 전시되어 있고

맞은편에 이 분들을 기리고 위로하는듯한 영상이 함께 전시되어있다. 1층은 노근리 사

건이 일어난 배경과 실제 사건 경위, 이를 증언하는 기록들,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의 재

현등 영상과 설치등의 다양한 전시방법으로 시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몸소 체화할수 있

는 부분이 많았다

2층 전시실은 노근리 학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배경과( 노근리 학살 사건이

한국과 미국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것은 90년대 들어서야 가능했고, 그 진실을

알리기 까지 당시 노근리 학살사건에서 살아남았던 이들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노근리 사건을 담고있는 책,영화, 언론보도와 같은 자료들이 아카이브 되어있다)

 

평화 기념관을 빠져나오면 당시 노근리 학살의 현장인 <쌍굴다리>가 길 건너 편에

보인다. 그래서 당시의 배경과 기록들을 체화하고 당시 사건 현장을 직접 체험할수

있는 동선은, 무엇보다 노근리 평화공원의 큰 이점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쌍굴다리

 

 

평화공원을 가로질러 노근리 학살 사건현장인 쌍굴다리 입구. 입구에는 사건이 일어난 개요

와 동선등의 안내판이 마련되어 있고, 현장의 다녀간 이들이 글을 남길수 있도록 방명록도

마련되어 있었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1934년 경부선 철도용 다리로 건축되었으며 2003년

6월 30일에 문화재청에서 등록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1999년 철도청이 쌍굴다리 내부에

콘크리트를 덧씌우는 보강공사를 하면서 총탄 자국등 그 당시 흔적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쌍굴다리를 감싸고 있는 벽면의 총탄의 자국들이 남아있는데 동그라미로 표시된것

총탄으로 확인된 흔적이고 세모는 외부의 훼손인지 총탄의 자국인지 미확정된 흔적

들이라고 한다. 이 흔적들은 주민들을 쌍굴다리쪽으로 몰아넣고 미군이 반대편에

거점을 두고 4일 동 쉬지  않고 사격한것이다

 

입구로 들어가서 쌍굴다리를 빠져나오면 쌍굴다리로 피신하기 전 본격적인 폭격이

가해졌던 철도와 연결되어 있다. 아래의 사건 이동경로를 살펴보면 좋을듯 하다

 

1950. 7. 23 정오 영동읍 주곡리마을 소개명령(영동읍 주곡리 주민 → 임계리로 피난)

  • 1950. 7. 25 저녁 영동읍 임계리에 모인 피난민 (임계리, 주곡리,타지역주민) 500~
  • 600명을 미군이 남쪽 (후방)으로 피난 유도
  • 1950. 7. 25 야간 영동읍 하가리 하천에서 미군에 의해 피난민 노숙
  • 1950. 7. 26 정오경 4번국도를 이용 황간면 서송원리 부근에 도착한 피난민
  • (미군의 유도에 따라 국도에서 철로로 행로 변경)
  • 1950. 7. 26 정오경 미군 비행기 폭격 및 기총 소사로 철로위 피난민 다수 사망
  • 1950. 7. 26 오후 ~ 7. 29 오전 노근리 개근철교(쌍굴)에 피신한 피난민에 대해
  • 미군의 기관총 사격으로 다수의 피난민 사망
  • 첫번째 사진은 미군의 유도에 따라서 철로로 행선을 변경하면서 실제적인 폭격이 가해

    졌던장소이다. 미군은 비행기에서 폭격및 기총을 사격했고 이때 피난민 다수가 사망했

    다고 한다. 이 철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철길밑으로 내려오면 바로 보이는 (아래

    사진 참고. 철길에서 멀지 않은 시야에 쌍굴다리가 보인다) 쌍굴다리로 피신하게 된다.

    노근리 사건과 관련한 영화나 책에서도 이와같은 사실은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

    만 현장에 직접가서 체감하는 온도는 조금 놀라웠다. 특히나 노근리 사건이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벌여진 학살이기때문에 그 이동의 동선을 실제로 경험할수 있다는 것은 

    사실적인 자료를 통해서 얻을수 없는 감각일테다.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 마치 그날의

     총격소리가 울리는듯 했다.

    철길에서 내려와 저 쌍굴다리로 몸을 숨긴 피난민들의 반대편 입구로 수천만의 총격이 가해

    졌고 총성또한 4일동안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시체는 끊임없이 쌓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시체를 방패삼아 총격을 피하기도 했고, 8월의 무더위속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고여있는

    핏물을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4일동안 미군은 총격을 가한후 쌍굴다리로 직접 내려와서

    다리안의 상황을 파악한후 다시 총격을 반복하는 과감함과 잔인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심포에 함께 참석한 연구모임 아프꼼의 멤버들
    권명아, 송진희, 양순주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사진을 찍어준 신현아씨도 포함)

     

     

     


     

     

    마침 이날은 제26주기 제14회 <노근리 사건 희생자 합동 위령제>가 열려서 참석할수 있게되었다.

     

    노근리 사건 희생자 합동 위령제

     

     

    평화공원안에 위치한 위령탑안에서 진행

    평화공원 조성 위원회분들부터 노근리 시민들과 아이들도 참석

    위령제에 앞서 열린 식전행사에서는 향토예술인들이 희생자의 넋을 추모하는 진혼무를

    추고 전통 상여놀이를 펼쳤다.

    노근리 학살을 다룬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를 쓰신 정은용 선생님

    의 말씀이 이어졌다 이 소설은 노근리 미군양민학살 사건을 토대로 노근리를 무

    대로한 소설로서 이 책은 당시의 실황을 소상히 밝혀 한미양국의 노근리사건 진상

    조사팀이 반세기 전에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고심하고 있을 때 사건의

    경위와 피해 상황 등을 양국 조사관들에게 제시함으로서 조사의 진척을 도왔다고

    한다.  이 소설을쓰신 정은용 선생님은 사건당시 아들과 세살배기 딸을 잃고 부인

    마저 중상을 입은 노근리 사건 피해자 가운데 한사람이며  노근리 사건이 공식적

    으로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중심에서 가장 많은 역할과 헌신을 하셨다. 노근리 학

    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 홀로 고군분투 하시다가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회

    >를 들어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연합뉴스, 한겨레등에서도 취재하면서 노근

    리학살의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피해자 증언채록, 노근리 학살이 있었던 기간

    의 신문기사와 미군기록을 조사하여 노근리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기병연대가 가

    해자인 노근리 학살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을

    수집등의 활동으로 지금의 평화공원 조성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피

    해보상및 지원들의 문제들은 아직 해결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무더운 더위속에서 한번의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키시고, 미리 준비해오신  글들을

    덤덤히 읽어나가시는  모습에서 그 애씀의 시간들이 베어있는듯하여 거창한 말보다

    도 더욱 인상 깊었다

    공식적인 행사의 끝맺음으로 진혼무의 마지막 장면 . 오른쪽 사진은 유가족들이 직접 함에 인사를 올림

     

     

    위령제의 앞과 뒤, 옆으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수많은 프레임속에 이 위령제에 참석한 이들또한 기록되어야 할것이다

     

     

     

     

     

     

                                                         by_mora

     

    노근리 심포에 참석하기 전부터 연구팀원들은 세미나를 통해서 열전에서 냉전으로의 정동된 신체에 관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터라 이론적인 문맥위에서가 아닌 , 현장을 경험하는것은 또다른 의미인 동시에 고민들을 안겨준다고 할수 있다. 특히 노근리 같은 경우 실제 사건을 경험했던 이들이, 현재 평화공원을 만들기까지 오랜시간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말할수 없을 만큼의 노력을 했다는것이 평화기념관, 전쟁기념관들이 가지고 있는 관제적인 기록들에서 벗어날수 있게해준 가장 큰 힘이였던거 같다. 급급하게 쓰여진 이날의 기록들 뒤에 남겨진 말과 의미들을 기어올리는것만이 남아 있는것일테다

     

     

     

     

     

     

     

     

     

    < 민족문학사연구소-연구모임 아프콤: 노근리 답사 및 심포지움>

     

     

    연구모임 아프콤이 민족문학사연구소와 노근리 국제평화제단이 공동 주최하는

    <전쟁과 (국가)폭력> 심포지움 및 노근리 답사에 참여합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7월 노근리의 철교 밑 터널, 속칭 쌍굴다리 속에 피신하고 있던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을 향하여 미군들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300여 명이 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AP통신은 19999, 당시 미군이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 명령에 따라 학살사건이 발생했음을 보도하였습니다.

     

     

     

     

    <학살이 있었던 쌍굴다리와, 총격의 흔적>

     

     

     

    그리고 그 열전의 총성은 냉전으로 전환되며 <기념>의 흔적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흔적'들은 열전이 냉전으로 그저 '전환'될 수 없었음을 여전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과 사가 가름되는 그 양의적 순간에 서 있던 <쌍굴다리>처럼, 한국전쟁이라는 '사건'이 남긴 것들은 열전에서 냉전으로 이행되거나 또는 채 이행되지 못하는 그 어떤 불/가능성의 모습들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전쟁이라는 죽음이 다시 ''으로, '생존'의 논리로 메워져 갈 때, 채 이행되지 못하는 신체와 말들은 여전히 비-언어와 비-인간으로서, /사가 가름되고 또 가름되지 않는 장소였던 <쌍굴다리>에 남아 열전/냉전, /, 전전/전후로 가름될 수 없는 어떤 '문턱'을 짓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여전히 '상흔'을 앓고 있는 장소인 '노근리'를 답사하며,

    연구모임 아프콤은 올해의 연구 주제인 '냉전기'에 대해 '정동적인',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를 듣는 접근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노근리 사건을 다룬 독립영화 '작은 연못'>

     

     

     

     

     

     

    아프콤의 올해의 연구 주제는 '냉전기'이며, 보다 자세하게는 냉전기 지역적(regional) 재편에 따른 감각적 결속 구조의 변화와 여기서 형성되는 정념의 공동체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때 연구의 주된 초점은 냉전기 지역적 재편이 만들어내는 동질적인 감각적 결속(균질적인 냉전 감각)과 이를 가로지르고 위반하는 다양한 이질적인 결속의 양태와 정념의 교환을 규명하는 데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역, 국가, 지방(local) 및 정체성 그룹들 사이 정념의 상호교환과 감각적 결속의 방식에 초점을 맞춥니다.

     

     

     

     

     

    또한 이 때의 '냉전''열전'의 종언과 함깨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불구적인 것들을 남기며 이행을 불/가능하게 이어가는 것으로서의 '냉전'을 뜻합니다. 이는 국가적, 또는 전지역적으로 전체를 '조망'하며 '전환'을 탐색하는 시선이 아니라, 이행되거나 되지 못하고 여전히 전쟁에 점령당한 영혼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혹은 전쟁 상태적 신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듣고, 보고, 인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 이기도 합니다.

     

     

     

     

     

    냉전을 새로이 탐색하고자 하는 이번 답사는

    이후 8월의 한일 국제 워크샵, 2013년 2월 국제학술대회 등의

    행보로 이어지는 작업의 첫 단추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답사의 주최이신 <민족문학사 연구소>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은 연구모임 아프콤이 목표하는 <어소시에이션>과 <네트워킹>의 한 시도로서, '연구자 간의 네트워킹'을 만들어나가는 또 하나의 귀중한 경험 을 만드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725일 수

    전쟁과 (국가) 폭력

    시간

    발표자

    내용

    13:50~14:00

    장경남(숭실대)

    인사말

    14:00~14:25

    김일환(동국대)

    <강도몽유록> 다시 읽기

    14:25~14:50

    권명아(동아대)

    전쟁상태적 신체의 정동-박완서, 손창섭, 장용학을 대상으로

    14:50~15:00

    휴식

    15:00~15:25

    이현석(아주대)

    1960년대 소설에 나타난 전쟁 경험의 내재화와 자기 검열의 문제-이청준과 김승옥을 중심으로

    15:25~15:50

    김응교(숙명여대)

    한국전쟁과 노근리

    16:00~17:30

    사회: 장경남/ 토론: 김정녀(단국대), 전승주(과기대), 구재진(세명대), 정구도(노근리국제평화재단)

    726일 목

    11:00~12:00

    노근리 평화공원 추모식

     

     

     

     

    주제: 전쟁과 (국가)폭력

     

    일시: 725()~726()

     

    장소: 노근리평화공원

     

    주최: 노근리국제평화재단, 민족문학사연구소

     

    후원: 소명출판사

     

     

     

     

     

     

     

    지역의 문화지도와 나의 삶의 반경그리기-

                                       소규모 책 워크샵

     

     

     

     

    아프-꼼은 중앙, 중심, 제도의 문법으로서의 제한된 삶의 동선과 반경들을 어긋내고, 내가 서있는 기반이 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삶의 동선과 반경을 넓히는 작업들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것은 지역의 연구자들의 네트워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희망을 공유할수 있는 이들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기도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대학이라는 제도안에서 그 실천을 꾀하며, <지역사회와 문화>라는 수업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 강좌는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관심과 시점에서 지역 사회를 바라보고, 지역을 재발견할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양한 지역학 강좌와 책자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학은 너무 늙었다.’ 지역의 젊은 세대에게 지역학은 어르신들의 애향심 가득한 충고처럼 멀게 느껴진다. 또한 같은 지역에 거주하더라도, 세대나 성차에 따라 공감하는 문화나, 관심 있는 분야가 다양한데도, 지역학은 지역이라는 공통분모로만 모든 것을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본 강좌는 지역의 젊은 세대의 관심과 문화, 취향과 열정, 고민거리를 통해서 지역을 새롭게 경험하고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함께 공부할 것이다. 부산의 닉네임과 캐릭터, 스토리텔링과 사투리 리믹스, 축제, 라이프스타일과 알바키드’, 혼종성, 냉전도시와 데이트 장소, 풍경과 맛, 산복도로에 이르는 키워드를 통해서 지역학을 젊은 세대의 시선과 문화에 리믹스 하는 즐거운 작업이 이 수업의 구체적 내용이 될 것이다. 문화지리란 지역의 장소성과 나의 삶의 반경을 겹쳐서 그려본다는 의미로써, 이를 통해 지역학을 개인의 삶의 차원에서 생각해보려 하는것이다.

     

     

      

     

    <아프->에서 연계해서 진행하고 있는 지역학, 한국학 강좌는 "지역의 문화지도와 나의 삶의 반경그리기"라는 주제로 소규모 책을 만드는 워크샵"을마련했다. 지역학, 한국학 교재와 학생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담은 과제를 결합한 소규모의 책을 제작하는 워크샵이다. <아프->과 소규모 출판, 디자인 팀 <그린그림>, 지역학 강좌를 듣고 있는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워크샵을 만들어갔다.

     

    이 워크샵은 <지역 사회와 문화>의 취지들을 실천적인 맥락에서 학생들과 연계할수 있는 방안으로서 마련되었고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여 본인이 작업한 과제를 책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삶의 반경들을 이라는 형태의 결과물로 완성하며, 배우고 나누는 장이 될 것이며. 이러한 형식은 대학의 강좌가 단순히 일 방향적인 것이 아닌, 함께 어우러져서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이라 할수 있다. 또한 교재와 과제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실험인 것이다.

     

     

    이 워크샵을 연계해서 지역과 사회문화 강좌를 따로 마련하였는데, 지역에서 실천적인 자립을 도모하고 있는 그린그림의 박성진, 천지원의 강좌와, 실제 워크샵에 참여했던 유현영, 권혜림양과의 라운드 테이블 대화, 강좌에 참여한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도 마련되었다.

     

     

     

     

     

     

     

     

    워크샵 과정

     

    이날 워크샵은 그림그림이 운영하고 있고 교대에 위치한 서점<프롬더 북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지역과 사회문화의 최종과제에 성실히 수행했던 유현영,권혜림양과 지역과 사회문화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대성, 아프-꼼에서 활동중인 송진희, 양순주, 공태수등이 참여했습니다. 워크샵에 진행과정은 책을 만드는것에 대한 공유, 또 지역학 수업을 들으면서 학생들이 직접 수행한 과제에 대한 소개들을 함께 나누면서, 실제 제작방법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도 반학기동안 진행되었던 교재와 자신들의 과제를 엮은 책 작업에 적극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표지 부터 시작해서 편집의 순서와 책 제본까지 모두 직접 수행하게 되는 워크샵입니다

     

     

     

     

     

       우선 '책' 이라는 개념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워크샵에 참여중인 유현영,

     

     

                  교재와 과제가 결합된 책을 만들기전, 모두 참여해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 합니다 

     

                       늘 그렇듯, 저는 기록! 중입니다.

     

     

     

    기본적인 논의후, 작업실로 이동하여 책의 표지를 상의하고 바로 디자인에 옮길수 있도록,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물 <지역사회와 문화 교재& 학생들의 과제>

     

     

     한땀한땀 직접 바늘질해서 완성한 책

     

     

     

     

     

     

     

     

     

     

     

    지역과사회문화 강좌

     

     

    워크샵 이후, 지역을 기반으로 작업하면서 새로운 실험들을 실천하고 있으며, 소규모 책 출판, 디자인, 서점등을 운영하고 있는 <그린그림>의 박성진, 천지원씨의 강좌를 지역과 사회문화의 수업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이 수업은 반학기동안 지역과사회문화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것입니다>

    그린그림의 두분이 책을 만들고 디자인하는것뿐만 아니라, 대학졸업이후의 여러가지 실패의 사례들과 경험들을 학생들과 나눌수 있었던 시간이였습니다. 또한 교재와 과제가 결합된 책을 만드는 워크샵에 참여한 유현영, 권혜림양도 함께 자리해서 책을 만드는 과정과 소감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린그림>에서 활동중인 박성진, 천지원

     

     

     

     

     

     

                                        함께 만들었던 책을 직접보고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노순택 _ 전쟁기계>

    “기계에 관한 명상, 좋은 기계에 관한 명상, 그것이 살인 기계가 될 수도 있다는 명상, 이 심란한 명상”

     

     

    mora

     

    전후는 전쟁으로 인해 산산히 조각난 잔해와 흔적들을 다시 모으고 이어붙이고 조합하는 ‘불편한 시간들의 연속이다.

    그 시간들을 일상으로 재 배치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허나 남과북으로 갈려진 현실과 미국적인 것, 서양적인 것은 끊임없이 물들고 있었고, 식민지의 경험으로부터 전전, 전후의 경험까지를 통째로 집어삼킨 국민들은 그 과정에서 불화하게 된다.


    그 불화의 이미지의 기저를 전후의 ‘몽타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50년대의 대중잡지와 소설들을 통해서 일괄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몽타주’적 시선이다. 그것은 전후의 폐허가 된 삶을 명랑하게 자유롭게 이어붙이고 조합하는 시선과도 동일할 수 있다. 1950년대 대중잡지 <아리랑>에 연재되는 김성환의 코주부의 만화에서 실질적인 포토 몽타주기법이 선보인다(당시 포토 몽타주는 서양에서 모홀로기 나기와 같은 예술가들에 의해서 활용된 기법인데  김성환 화백은 사진과 합성한 만화의 여러 가지 버전을 만들어서 이벤트적으로 기재하였다 ) 사진과 그림의 부분을 합성하여 만든 실질적인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또는 쌍커풀 없이 큰눈과 검은 머리카락이지만 서구화된 여성들의 이미지를 통해서도 혼합된 시선을 느낄수 있다 (기호의 제국-롤랑바르트 일본은 서구화되어 가는 중이다 일본은 그들의 모방이나 치아, 피부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기호를 잃어버리고 있다 말하자면 일본은 텅빈 기호작용으로부터 (대중적인)커뮤니케이션으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중문화의 이미지뿐 아니라 전후의 소설의 기저에서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손창섭의 생활적에서 동주의 언어가 덧싀워진 말이 없음, 즉 조합한 말이 없음의 문맥이 여전히 앓는 몸을 상징하고 외부로 나갈수 없는 상태를 암시하듯이 어쩌면 폐허와 명랑에서 이 명랑이라는 장치는 외부로 나아가는 덧씌워진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후의 몽타주 라는 시선으로 바라볼수 있지 않을까?


     

     

     

     


     

     

     

     

    부패되는 신체

     

    mora


    머리는 하나, 손과 눈, 발은 두 개 모두 멀쩡히 붙어 있다. 하지만 무덤 속에서 기어나온 구더기는 그들의 몸을 갈아먹는다. 그것은 죽음에 가까운 감각이자, 살아있다는 치욕과 뒤섞인 ‘무 감각’이기도 하다. 지칠대로 지쳐버린 동주의 신체는 남한의 포로와 북한의 포로가 대립되있었던 포로수용소에서 행해진 폭력으로 송장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것은 그 폭력의 감각에 노출된 신체가 해방됨과 동시에 비폭력적인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 여전히 폭력을 감지한 채 되돌아 갈수 없이 신-음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또한 그 신음은 옆집의 순이와 조우하고 순이의 신음소리는 그런 그의 신체를 자극한다. 동주와 동거하는 춘자는 일본인으로, 해방되던 해 한국남자와 결혼한뒤 해방이 되자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왔다. 여수 순천 반란 사건통에 경찰에서 일 보던 남편은 학살당했다. 그 뒤 일본에 돌아가려고 부산에 오기는 했으나 호적수속과정에서 의해서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편 순이의 양 아버지로 나오는 봉수는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사십 전후의 건장한 사나이라고 묘사되는데 이 건장함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돈과 여자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보스턴백으로 압축된 그 외부성에 기인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면에서 만큼은 동주와는 대립지점에 있을수 있다.

     

    그는 해방 전에 만주에서 관헌을 끼고 공공연하게 아편장사를 했다는 것으로 얘기된다. 소설의 초반에 동주와 춘자/ 봉주와 순이의 양극 관계 속에서 동주와 순이가 연결되고 극의 후반부로 가고, 순이가 숨이 멎은 그 순간 봉주와 춘자의 몸은 판자촌 산둥성이가 아닌 산의 아래로 그 외부로 더욱 깊게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해방후 동주와 순이/ 봉주와 춘자의 신체를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순이가 느닷없이 찾아온 해방처럼 느닷없는 병을, 혹은 알수 없이 부패되어 가듯/ 동주가 폭력적인 기억의 신체를 다시 재활할 수 없듯 / 그리고 봉주가 끊임없이 외부로부터의 자극들을 받아들이고 외부에 적극적인 몸이되듯/ 춘자가 사람답게 살기를 꿈꾸며 공장을 떠나가듯/ 전후의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기인한 무기력함과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희망은 안과 밖, 양극으로 맞서있다. 그 이유는 (해방이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전장 중에 그들이 서 있는 것이고 냉전은 또 다른 전장의 삶 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체는 살아있음에도 죽음에 가까운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마지막 순이가 죽음을 맞을 때서야 동주는 ‘살아있으니까 죽을 수 있다’(살아있기 때문에 신음하는 것)는 즉 살아있을음 죽음을 통해서 어렴풋이 환기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내 몸이 내몸이 아닌, 그렇다고 누구의 몸도 될 수 없는 상태.

     

    그렇게 신체는 부패되어 간다. 

     

     

     

     

     

     

    aff-com 총서는 정동공동체에 관한 이론과 실천을 문제틀로 하여 연구모임 aff-com에서 기획하고 있다. ‘affect’‘commune’을 연결하여 재발명하고 있는 연구모임 aff-com 역량을 측정하는 현실적, 권력적, 제도적 측정술을 거부하고 우리라는 이름 속에 이미 역량이 내포되어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그 역량을 입증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간 <Lo-culture>라는 이름으로 서평회, 국제학술문화예술 교류, 콜로키움, 대중강좌, 웹진 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으며 전지구적 다중 네트워크의 구축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독립 출판사 갈무리와 연대하여 aff-com 총서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한 권의 책은 연대의 기록이기도 하다. ‘서평회라는 형식을 통해 이 책을 읽고자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무수히 겹쳐져 있는 만남과 연대, 갈등과 실패의 기록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서평회라는 장()은 완결되거나 완료된 작업에 대한 논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쓰여지지 않는 장()을 새롭게 쓰는 만남과 연대의 장소()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aff-com 총서의 발간을 계기로 아카데미 밖에서 혹은 그 '사이'에서 인문학 실험(운동)을 해온 그간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아울러 각각의 모임들이 연대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이 서평회를 통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많은 결속체들이 '깊이''무게'를 가질 수 있는 계기로 연결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번 서평회는 서울과 부산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그간 권명아가 이끌어온 연구모임은 부산이라는 도시를 거점으로 하여 서울 및 일본 등 다른 지역과의 네트워킹을 활발히 진행해왔으며 인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과도 작업을 진행해온 바 있다. aff-com 총서 출간을 계기로 진행하는 본 서평회는 기왕에 진행해왔던 작업과 연속되면서 동시에 또 다른 도전과 실험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서평회에서는 <aff-com>을 이끌고 있는 권명아와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조정환, 서발턴과 타자의 목소리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김원을 초대하여 aff-com 총서 1권에 대한 생산적인 비평과 더불어 각자가 수행해온 인문공동체 운동에 대한 그간의 작업들에 대해 응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더불어 부산에서는 수년간 진행되어온 연구모임의 궤적을 더듬어보면서 지역에서의 인문, 생활공동체들과의 만남과 연대에 관한 논의가 권명아의 저작에 대한 서평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그간 오랜 시간 공동체 운동을 수행해온 이론가 및 활동가들과 함께 권명아의 저작에 대한 비평과 더불어 인문적 공동체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본다. 아울러 연구모임 aff-com의 아트워크와 담당하고 있는 송진희와 소규모 출판 운동을 하고 있는 <그린그림>의 콜라보레이션도 진행될 예정이다.

     

     

     

     

     

     

     

    다지원에서 이루워졌던 서평회 현장 입니다!

     

     

     

     

     

     

    다중지성의 정원 입구에 세워진 팻말! 

     

     본격 서평회 전, 발제문을 검토하고 계신 권명아 선생님

     

     

     

     

     

     

     

     

     

     

     

     

     

     

     

     

     

      서평회 2부 사회를 맡아주신 아프-꼼의 양순주 선생님.

     

     

    토론의 틈을 비짚고, 잠시 아프-꼼 소개중.

     

    다년간의 활동이 기록된 자료집과, 영상등을 볼수있도록 한쪽에 마련된 부스

     

     

     

     

     

     

     

     

     

     

     

     

     

     

     

     

     

     

     

     

    aff-com 총서는 정동공동체에 관한 이론과 실천을 문제틀로 하여 연구모임 aff-com에서 기획하고 있다. ‘affect’‘commune’을 연결하여 재발명하고 있는 연구모임 aff-com 역량을 측정하는 현실적, 권력적, 제도적 측정술을 거부하고 우리라는 이름 속에 이미 역량이 내포되어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그 역량을 입증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간 <Lo-culture>라는 이름으로 서평회, 국제학술문화예술 교류, 콜로키움, 대중강좌, 웹진 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으며 전지구적 다중 네트워크의 구축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독립 출판사 갈무리와 연대하여 aff-com 총서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한 권의 책은 연대의 기록이기도 하다. ‘서평회라는 형식을 통해 이 책을 읽고자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무수히 겹쳐져 있는 만남과 연대, 갈등과 실패의 기록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서평회라는 장()은 완결되거나 완료된 작업에 대한 논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쓰여지지 않는 장()을 새롭게 쓰는 만남과 연대의 장소()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aff-com 총서의 발간을 계기로 아카데미 밖에서 혹은 그 '사이'에서 인문학 실험(운동)을 해온 그간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아울러 각각의 모임들이 연대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이 서평회를 통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많은 결속체들이 '깊이''무게'를 가질 수 있는 계기로 연결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번 서평회는 서울과 부산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그간 권명아가 이끌어온 연구모임은 부산이라는 도시를 거점으로 하여 서울 및 일본 등 다른 지역과의 네트워킹을 활발히 진행해왔으며 인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과도 작업을 진행해온 바 있다. aff-com 총서 출간을 계기로 진행하는 본 서평회는 기왕에 진행해왔던 작업과 연속되면서 동시에 또 다른 도전과 실험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서평회에서는 <aff-com>을 이끌고 있는 권명아와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조정환, 서발턴과 타자의 목소리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김원을 초대하여 aff-com 총서 1권에 대한 생산적인 비평과 더불어 각자가 수행해온 인문공동체 운동에 대한 그간의 작업들에 대해 응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더불어 부산에서는 수년간 진행되어온 연구모임의 궤적을 더듬어보면서 지역에서의 인문, 생활공동체들과의 만남과 연대에 관한 논의가 권명아의 저작에 대한 서평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그간 오랜 시간 공동체 운동을 수행해온 이론가 및 활동가들과 함께 권명아의 저작에 대한 비평과 더불어 인문적 공동체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본다. 아울러 연구모임 aff-com의 아트워크와 담당하고 있는 송진희와 소규모 출판 운동을 하고 있는 <그린그림>의 콜라보레이션도 진행될 예정이다

     

     

     

     

     

     

     

     

     

     

     

     

     

     

     

     

     

     

    90년대적 문학의 경계: 배수아라는 문턱 혹은 특이성

     

    신현아

     

     

     

     

     

     

    1. 세대론과 종말론: 마녀와 X세대의 시간

     

    90년대라는 시간은 언제나 ‘세기말’이라는 감수성으로 기억된다. 99에서 00으로 넘어가는 새로운 시간을 인식하지 못한 모든 윈도

    우즈 체제의 컴퓨터들이 작동을 멈추어버려 전 세계가 전산의 암흑과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하는 ‘Y2K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로 대표되는 각종 종말론적 미신들이 횡행하였고, 철들지 않는 ‘X세대’들에 대한 보도들은 그들이 짊어질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전망에 더욱 불을 붙였다. 여성들에게는 사랑스럽거나 예쁘기보다도 ‘마녀’처럼 보이게 하는 검은빛 립스틱이 대유행하였다. 어머니도, 누이도 아닌 눈과 입술을 보라색, 갈색으로 칠한 ‘마녀’들과 폭주하다가 그대로 폭파되어버릴 것만 같은 ‘X세대’들이 ‘세기말적 감수성’을 형성하며 매체를 뒤덮었던 시기였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종말론적 서사가 함의하는 것이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지 않는 ‘마녀’나 ‘X세대’들로 인하여 지금까지 계승ㆍ발전되며 진보해온 세계가 누구에게도 계승되지 않은 채로 소비되어 끝나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두려움에는 세계의 진보가 기성세대를 부정하고 다시 새로운 아버지가 되는 가족서사적인 세대론적 인정투쟁을 통하여 가능하게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세대론적 공포는 문학장에서도 나타났다. 이는 문학, 또는 근대적 글쓰기의 대표인 ‘소설’이 근대적 주체화의 도구인 동시에 근대적 주체의 탄생에서부터 세대론적 인정투쟁과 계승을 반복케하는 장치로 기능해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근대문학의 종언’에는 이제 소설이 그저 오락이 되어간다는 것, 그럼으로써 소설이 사소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판단과 함께 근대적 글쓰기로서의 소설이 더 이상 근대적 주체화의 중요한 장치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없다는 암담함이 함께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암담함’은 90년대 문학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자주 출몰하는 수사인, ‘내면적’, ‘내성화’, ‘나르씨시즘’, ‘세계(혹은 역사나 현실)와 무관’, ‘탈사회성’, ‘탈정치적’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수사들은 ‘90년대 문학은 80년대의 계급/민족 담론과 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환멸로 인하여 개인적 쾌락을 추구하며 내면으로 침잠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요구와는 유리된 채 나르씨시즘에 젖어들었다’는 내러티브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개인적이고 자폐적인 아이들’로 인해 아버지를 계승하는 세대론적 반복이 단절될 것이라는 공포와 함께, 문학장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소설’의 본령이 정의되는 방식을 함의한다. ‘개인적’, ‘미시적’, ‘사소함’과는 반대되는 것으로서의 소설은 그 서사를 통하여 사회의 ‘주요 모순’에 대해 발언함으로써 개입하고, 현실의 질서에 저항하고 대립함으로써 정치성과 사회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다시 ‘아버지’에 대한 ‘저항’을 통하여 스스로를 다시 ‘아버지’라는 주체로 세우는 세대론적 서사에 대한 요구와도 정확히 겹친다.

     

    물론 90년대 문학에 대한 다른 평가들도 존재한다. 더 이상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고, 시대의 변혁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주체화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세대론적 서사가 아닌 ‘다른 주체성의 서사’에 대한 시도(권명아)로 보거나 ‘섹슈얼리티와 가족 제도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제틀이 다원적으로 드러난 것(이광호)으로 보는 것 등이 그러하다. 이렇듯 90년대라는 시공간은 세대론적 서사의 종말에 대한 공포, 정치적ㆍ사회적 위상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이야기를 벗어난 새로운 주체성에 대한 실험, 다양성과 차이를 전제로 하는 문제틀의 다각화와 같은 다양한 입장들의 각축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90년대라는 특별했던 시공간 속에서 ‘글쓰기’를 통하여 ‘세대론적 서사를 반복하지 않는 새로운 주체성’의 등장과 ‘삶의 특이성을 쟁취하는 시도’가 어떻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는지를 보고자 한다. 즉 ‘내면적’, ‘관념적’, ‘탈정치적’, ‘탈사회적’이라고 이야기되는 90년대적 문학의 서사가 소설의 경계를 벗어나는 글쓰기(에쎄)였으며,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삶 속에서 ‘다른 삶에 대한 열정’이 발현시키는 방식을 살피고, 그러한 열정이 결코 ‘개인적’이거나 ‘자폐적’ㆍ‘내면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의 모순과 같은 ‘대의’를 담보하지 않고서도, 그 자신의 삶에 의미와 특수성을 부여하는 것을 통하여서 새로운 관계의 이론과 정치성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식을 보고자 함이다.

     

    2. 근대적 글쓰기가 요구하는 서사가 아닌 글쓰기

    ‘90년대’ 또는 ‘90년대 문학’이라는 담론장 속에서 ‘배수아’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90년대의 문학들에게 부여되는 수사들 간의 각축장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이는 배수아의 소설에 내려지는 ‘소비적’, ‘개인적’, ‘향락적’, ‘탈가족적’, ‘내면적’, ‘여성적’이라는 평가들이 한편으로는 90년대적 문학에 나름의 판단을 내리는 평자들의 입장과 정확히 겹치며, 배수아의 이름이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의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수아의 소설 속에서는 가족적인 이야기나, 새로운 남자를 만남으로써 주체가 되는 여자아이의 성장서사와 같은 것들이 비틀어져서 나타난다. 소설 속의 불안한 아이들에게는 명확한 부모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야기 속의 가족관계에는 언제나 ‘사촌’, ‘배다른’, ‘사생아’과 같은 불명료한 관계들이 삽입되어있다. 여기서 부모는 투쟁이나 계승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모호한 기원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은 커서 왕을 만나는 강청같은 여자가 될 것을 요구받으며, 자신이 공주라는 꿈을 꾸지만, 실제로는 오리장수의 딸일 뿐인 권태로운 일상만이 이어질 뿐이다(「프린세스 안나」). 이처럼 권태로워진 아이들은 파괴적으로 연애를 하고 파티를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것 또한 일상이다(<랩소디 인 블루>). 그러한 삶의 마지막은 나이들고 지쳐, ‘조용히 죽어가기만을 바라’며, ‘더 이상의 일은 이제 생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예감만을 남긴다(<부주의한 사랑>). 결혼은 실패하고, 관계들은 깨어져 홀로 남는다(「한나의 검은 살」, 「장화 속 다리에 대한 나쁜 꿈」). 그러니, 배수아의 소설이 ‘번역투’라고 하였을 때, 그것은 단순히 ‘한국어 문장’의 번역투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문법 바깥의 언어를 마주하였을 때의 불편한 감각이라고 하여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아버지를 부정하고 다시 자신이 새로운 아버지가 되는 청년ㆍ남성의 세대론적 인정투쟁의 서사가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소설 속 ‘여자아이’들에게는 ‘아버지’ 또는 ‘새로운 아버지’인 남자 형제들의 속에서 ‘공주’로서의 위치를 보장받는 것 역시 형제적 관계 속에서 벗어나는 순간 바로 불가능한 것이 된다는 것만이 드러날 뿐이다. 그러니 마지막의 끝없이 권태로운 일상에 존재하는 것은 ‘나’로서 남는 시간뿐이다. 그러나 이 때 ‘나’로서 남는, ‘나’로 되돌아오는 이야기는 결코 자기폐쇄적이거나 자기고백적으로 포장된 자기애적인 서사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여성으로서의 ‘나’를 통하여 가부장적 아버지의 세계의 구조에 도달하는 동시에, 그 구조에 편입되지 않고 실패함으로써 오롯이 다시 ‘나’로 남는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과연 ‘아무도 반역하지 못하고, 아무도 반란의 음모를 꿈꾸지 못하고 아무도 저항하지 못’(「여점원 아니디아의 짧고 고독한 생애」,<심야통신>,p137)하는 이 삶들은 현실의 질서에 저항하고 대립함으로서 정치성을 획득하고 사회에 복무한다는 소설의 본령과는 관계가 멀어보인다. 그러나 배수아의 소설은 ‘나 바깥의 불결한 오물’과 싸우라는 지속적인 ‘요청’(김영찬)에도 불구하고 끝내 가족의 이야기, 세계와 대결하는 정치성, 부정과 계승을 통한 세대론적 반복의 서사라는 문학장 속의 소설의 문법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배수아의 소설은 그러한 문학장 내의 소설의 공동체적 문법이 아닌 글을 쓰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 선언과 도약의 기미를 <에세이스트의 책상>에서 발견한다.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유로운 글이란 그 형태로나 내용으로나 이미 규정되어 있는 어느 폐쇄된 영역 안에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가능하다면 다른 것을 쓰되, 사람들이 그것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아무래도 상관없는 그런 형태를 원했다’(p197)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이라는 서사의 형태로 완전히 편입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에세이스트의 책상>의 주된 내용은 독일에 온 ‘나’가 과거 독일에 왔을 때 함께 하였던 M과의 기억을 회상하며, 점점 M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독일에서의 현재의 기억과 과거의 기억은 교차하며, 명확한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야기 속의 ‘나’가 작가 자신을 지시하는 듯한 기호들이 반복되면서, 이야기는 종이를 뚫고 현실로 자꾸만 현실로 돌출해 나온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소설이기보다는 그 제목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시도하는(‘~essai sur’) 글쓰기로서의 ‘에세이Essai’라고 하는 것이 적확하다.

     

    <에세이스트의 책상>의 ‘나’는 적극적으로 고독한 이방인으로 남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대의나 공동체적 가치를 통해서가 아닌, 자신의 삶을 하나의 특이한 것singularity으로서 만들어나가는 생의 실험 자체로 가능한 것이다. 교실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하여 <라 트라비아타>보다는 ‘아바’를 열심히 들었던 ‘나’가 차라리 영화관의 군중 속에서 고립되는 것을 원하게 되는 것으로의 변화는 그 작은 징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에세이스트의 책상>이 ‘특이성’의 텍스트로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M과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놓는 일 그 자체이다. “네가, 뭘 했느냐 하면 말이지, 단지 네가 한 것은 M이 부자이기 때문에 좋아한 것, 그것뿐이잖아.”라는 말로 손쉽게 ‘오해’되어버리는, 이방인인 ‘나’와 연약하고 가난한 M이 나누었던 누구에게도 완전히 전달될 수 없을 시간을 되새기고, 이 시간이 자신에게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의미를 부여할 때, ‘나’의 삶은 환원될 수 없는 특이한 것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즉 이러한 행위는 아버지ㆍ형제ㆍ대의와 같은 공동체적 주체화의 문법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생을 기투하는 시도를 통해 삶의 특이성을 견지함으로서, 자신이 통과한 하나의 세계를 해석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에세이’ 또는 ‘글쓰기’는 자신의 삶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특이성을 갖게 하는 시도로서 기능한다.

    ‘나는 미래와 과거 사이의 어느 유동적인 부분에 머물고 있을 뿐이며 미래 혹은 과거가 지금의 나의 상태에 영향을 주고 있었으며 글쓰기로 인해서 나는 미래 혹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다시 나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나는 M을 생각했다. (p165)’


    여기에서 ‘나’는 M을 생각하고, M과 나눴던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것이 ‘나의 상태에 영향’을 주는 유동적이고 지속적 변화를 감지하고, 그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글쓰기’를 행하고 있다. ‘소설’을 벗어난 ‘에세이’는 근대적 주체화가 요구하는 ‘성장’이 아닌, 자신의 삶의 특이성을 이렇게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의 정박점으로 출현한다.

     

     

    3. 삶의 특이성과 관계의 방식

    이러한 삶의 특이성은 여전히 ‘자의식의 근원의 재현’, ‘강한 정신주의’, ‘나르씨시즘적 기획’(김영찬)과 같은 ‘개인적’, ‘자폐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이는 ‘삶의 특이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시도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특이성을 갖는 것은 너의 삶의 특이성과 충돌하고 난 후에야 뒤늦게 도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특이성의 관계들 사이에서 타자는 대의와 같은 것을 담보하지 않더라도, 그 특이성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의미를 갖는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 가능하다.

    M은 몇 마디의 구호나 텔레비전 토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M은 마치 그림이 전혀 없는 책과 같았다. 내가 영혼을 바쳐 읽지 않으면, 나는 M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내가 M을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만날 수 없으며, 그 기회를 내가 영영 잃었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M에 대한 그리움을 멈추지 않았다.(p157~158)


    여기서 M이 ‘나’에게 ‘영혼을 바쳐 읽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책’일 때, 그것은 누군가의 삶의 특이성은 그 자체로 다른이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텍스트임을, 따라서 그러한 특이성 속에서의 관계는 ‘영혼을 바쳐서 읽는 것’일 때에 하나의 사건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즉 그 삶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각 개인은 영혼을 바쳐 읽어야하는 텍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에세이’가 ‘M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시작’되었던 것처럼, 내 삶의 특이성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끝없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되돌이키고, 그것에서 받은 의미를 교환함으로써 비로소 ‘나’의 안에서 정착가능한 것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에세이스트의 책상>이 ‘M’과 ‘나’가 처음 만나 서로에게 정동되기 시작하던 첫 만남의 순간에서 끝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오랜 시간 오직 스스로의 기준에 의해서 고독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모습인 것처럼 보였다. 교습법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중에도 나는 M에게 서서히 끌려가고 있었다. 내 표정에서 M은 당황과 불안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M은 흔들리지도 않았고 침착해보였다. 그러나 나중에 M이 고백하기를, 그때 자신도 몹시 떨렸으며 진정하기 위해서 두 손을 꼭 움켜쥐고 있었고 심지어 우리들에게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있던 M이 그 상태로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내가 중단한 부분을 계속했다.

    “......서로 관통하고 작용한다.”


    이처럼 삶의 특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서로의 관계가 ‘관통하고 작용’하는 결과가 뒤늦게서야 찾아오는 과정이다. 그리고 ‘에세이’라는 글쓰기를 통하여 그 과정에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이 때의 ‘글쓰기’는 ‘아버지’와 같은 세계와 대결하거나, 또는 계승하여 다시 자신을 주체화하는 세대론적 서사의 반복을 벗어나면서 각 개인은 어떻게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타자와 관계맺는 것이 가능한가를 보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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