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발표

 

 

수희

 

 

 

 

 

 일상적으로 <나>가 주위의 일본인과 다르다는 것을 완전히 드러내도록 내몰리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일본의 매스컴에서 떠드는 대로, <일본인은 한국드라마도 좋아하고, 한류의 인기도 굉장한데, 한국은 왜 반일이야?>라는 가벼운 듯한 질문에, <재일코리안>이기 때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할 것처럼 물어온다면. 역시 나는 잘 감각할 수 없다.

 얼마 전, 내가 6개월간 일본어 연수받는 코스의 마무리로, 연수생들의 연구 결과 발표회가 있었다. 일본어로 발표를 하거나, 자기가 쓴 논문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발표회 자리였다. 모두 제각각의 주제를 갖고 발표하는데, 발표의 청중은 연수생들이거나, 이 동네 주민이었다.
내 주제는 <전쟁이 겹쳐진 몸-1991년 이전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르포를 중심으로>였다. 일본군위안부에 관련된 주제로 일본의 학교나 학회가 아닌 곳에서 발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조금 긴장되었다. 발표는 모두 긴장되는 거니까.
 나는 발표의 내용 구성을 논문과는 조금 다르게 했다. <1. 일본에 와서 연구기간에 갔었던 오키나와와 도쿄> <2. 오키나와 평화자료관의 일본군 위안소 전시> <3. 고 배봉기 씨와 고 김학순 씨의 일본군위안부 증언> <4. 관전사(貫戰史)라는 방법 : 태평양 전쟁과 냉전> <5. 2개의 일본군위안부 관련 르포 : <종군위안부>와 <빨간 기와집>>의 순서로 논문 내용을 소개하기로 했다. 발표방법은 지정된 부스에 발표의 대략의 내용을 프린트 해 붙이고 내 부스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방식.
 발표 시간이 되자 몇몇 사람들이 모였고 나는 발표를 시작했다. 발표가 끝난 후, 동네 주민인듯한 할아버지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왜 위안부 전부가 강제동원 됐다고 하느냐?><미국에서 일본군위안부는 강제동원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신문에 실렸다더라(미국 일간지에 일본의 의원들이 실었던 광고)>와 같은 질문이었다. 나는 처음에 설명을 해보려고 했으나, 마음은 급하고 일본어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대답한 짧은 일본어 대답에, 유창한 일본어로 길게, <그래도, 강제동원이 아닌 것이 아니냐>라는 할아버지의 집요한 질문이 몇 번이고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해주길 바랐을까. 나는 일단 역사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 보다는(일본어가 모자람 ㅠㅠ), 내 논문은 일본에서 먼저 간행된 이 르포에 관련된 것이니까, 르포에 한정된 내용만 설명하고 더 상세히 알고 싶으면 내 논문을 읽으라고, 프린트된 논문을 건네주었다.

 발표가 끝난 후, 이유 없이 눈물이 줄줄 났다. 잘 멈춰지지 않아서 당황했다. 마음이 복잡하고, 뭐라 표현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운동을 하는 것, 일본에서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몸을 재게 움직이고, 연약하게 보이지만 강하게 사회운동을 하는 선생님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선배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젊은 재일코리안 청년 단체인 KEY의 사람들도.
 그 일이 있고 난 후, 페이스북으로 재일코리안 선생님들께 <선생님,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는데, 눈물이 계속 났어요. 선생님들이 일본에서 운동하고, 연구하는 게 어떤 것인가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뭔가 내 편인듯한 사람들에게 그 할아버지의 일을 일러바치고 싶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막 같이 화내고 같이 욕하고 그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답장은 <가슴이 아프다>였다. 나는 또 당황했다. 선생님들을 가슴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프게 해 버렸던 것이다. 또 눈물이 막 났다. 뭔가 안심해서인 듯도 하고, <선생님들은 이런 일들이 많았던 거구나>라고 생각해 버려서인 것 같기도 했다. 뭔가 죄송했다.
 발표 이후, 그 할아버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연구 발표에서 그런 질문에는 이렇게 대처해야지 하는 공부가 되었다.(그렇지만 사실, 또 만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한국에서 한국인인 것, 한국에서 한국어가 유창하다는 것이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것일까도 생각하게 되었다. 확실히, 말은 권력을 갖고 있다.

 20대 일본인 일본어 교사에게 재일코리안에 대해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재일코리안은 어떤 이 미지인가요?>라는 질문에,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겡키元気”하다>라고 대답했었다. 그때, 저 “겡키”가 <건강>으로밖에 해석이 안 돼서, <재일코리안은 건강해? 이게 무슨 말이지?>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힘차다>라는 의미인 것 같다. 이 이미지, 왠지 조금 알 것 같지만, 좋은 것인지, 힘든 것인지, 여전히 확신은 할 수 없다.

 

 

 

 

*수희 : 오사카에 잠시 머물고 있는 바람의 연구자.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가 재현되어 있는 르포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음.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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