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사이에

 

 

 

 

 

래인커머 차가영

 

 

 

 

 

 

 

 

 

1. 시작

텔레비전에 두 남성이 한 이불을 덮은 채 서로를 간질이며, 꼭 붙어 장난치는 모습이 나왔다. 이를 보고 있던 엄마는 뭘 저래 붙어 있노. 남자들도 저렇게 장난을 치나?”며 아빠를 쳐다보았다. 아빠는 치지. 그래서 외국 사람들이 한국 남자들 보고 좀 놀란다더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그저 그런 드라마를 보는 부모님의 대화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다음의 말에서는 조금 놀란다. 아빠는 말을 이으며 그래서 외국인들이 뭐라고 한다더라, 그래, 그 레즈비언이라 한다던데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순간 말을 잃고, 고민을 하게 된다. ‘남성 동성애자를 뭐라고 지칭하고 있는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레즈비언이 아니라 게이라고 쓰는데.’ 목 끝까지 말이 차오르지만, 고민하는 동안 텔레비전 속 장면은 넘어가버리고 나는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20151114, 부산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열렸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201312월에 카페 개설을 통해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자녀의 성정체성을 알게 되어 고민하고 있는 부모님들의 모임이다. 자녀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 신앙과의 갈등에 대해, 자녀의 미래에 대해, 부모 자신의 걱정 등을 이야기하고 함께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별표현에 따른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희망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성소수자와 가족, 친구, 지지자가 함께 행동하고, 성소수자와 가족, 친구, 지지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며, 성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로 인해 겪는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연대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 인식을 개선하여 성소수자의 온전한 평등을 이루기 위한 법제도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활동 목적을 가지고 있다.(성소수자 부모모임 홈페이지 http://www.pflagkorea.org/ 참조)

이날의 모임은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성소수자 부모모임이었다. 모임의 첫 대화 주제는 커밍아웃, 어떻게 하면 좋을까?”로 진행되었다. 이 주제로 나눈 대화는 부모님에게 어떻게 하면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접하게 할 수 있을까?”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도입부에서 잠깐 예를 보인 것처럼 부모들은 성소수자, 퀴어, LGBT에 대해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자녀들은 커밍아웃을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어떻게 부모님께 나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가장 크게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모임의 부모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대개 부모가 자녀의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성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경우, 자신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게 된다고 한다. 그 중 TV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는 빈도가 가장 높았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들 매체에는 검색 한번으로 LGBT/퀴어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분법적 성구분과 이성애가 인식의 중심이 되어 있는 사회 속에서 정보를 처음 접하는 부모들은 현재 사회 상황에 따라 정보를 찾아보게 되어 부정적인 정보를 먼저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 나의 자녀가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과 혐오의 말에 의하여 배제당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자녀에게 이것을 하지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고 한다.

 

 

2. 응원하는 마음

부모모임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부모가 자녀의 지향성 혹은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자녀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했던 부모님들은 자녀가 바뀌겠지” “이상한 애가 아닐까”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부모모임에 모인 부모님들은 생각을 바꾸었고, 현재는 자녀의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며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녀와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LGBT/퀴어 자녀를 둔 엄마/아빠로 자신을 소개하고, 자녀와 함께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는 것에는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일지 궁금했다. 사회에 만연한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정보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인정하고 응원하고 함께 행동하는 그 마음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무엇이 부모님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일까?

부모님을 처음 움직인 것은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의 자식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다는 욕구였다. 이는 부모님들이 처음 부모모임에 오게 된 계기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었다. 자녀의 행동을 막든지 지지를 하든지의 여부를 떠나 내 아이를 구성하는 성소수자라는 말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 욕구가 부모님들에게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는 자녀의 지향성과 정체성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때문에 부모님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병원에 가보기도 했다고 한다. 자녀의 대화를 할 방법 중의 하나가 부모모임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또 부모님들을 움직인 것은 나와 같은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 병원에 가서 자녀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상담을 하는 것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성소수자 자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나 자녀의 마음 상태, 자녀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는 앞의 두 가지 방법으로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었다. 하지만 부모인 나 자신은 어떤 마음인지는 사실 인터넷이나 상담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부모님들은 성소수자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의 동질집단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이와 같이 부모님들의 이야기 속에 동질집단을 형성하여 모임을 지속적으로 가지면서 공감을 형성하는 것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모임을 통해 부모님들은 자녀의 지향성이나 정체성에 대한 정보들도 나누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공유하지만 자기 자신이 부모라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식을 알고 대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 자식을 대하는 나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부모님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 마음들이 부모모임에서 모이고, 여러 차례의 만남을 통해 마음들이 오가면서 부모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였다. 재밌는 것은 자녀에 대해서 알고자 모인 부모모임이 부모님 자신도 변화시켰고, 이것이 결국 긍정적인 운동의 방향으로 향할 수 있도록 모임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이날 부모모임에서 부모님들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자녀가 사회의 모든 것이 처음 접하는 것이듯이 부모도 자신의 부모 경험은 모두 처음 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때문에 자녀가 자신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부모 본인이 자녀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인정하고 지지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도 부모로 인정받는 것 같았다고 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처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한 부분을 인정받게 되는 것을 부모님도 자녀의 정체성과 함께 경험하고 있었고, 이것이 부모님들 자신까지도 변화시키고 있었다. 부모모임은 이 변화들이 모이는 장소였고, 이 변화들이 자녀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움직이는 것으로 부모님을 이끌고 있었다. 긍정적인 운동의 방향은 자신의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것에 대한 인정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 자신을 인정하게 했고, 이것이 부모님 스스로가 자신을 LGBT/퀴어 자녀를 둔 엄마/아빠로 소개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3. 아직은 풀어나갈 숙제가 많은 관계

부모님들은 부모모임을 통해서 자녀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방안들을 고민하고, 이를 다른 부모님들과 나누는 방법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자녀와도 함께 행동하면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20차례가 넘는 만남을 통해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모임이라는 동질집단을 통해 자신의 부모로서의 위치와 경험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나누고 있었다. 이러한 부모님들의 이야기는 그 자리에 참석하여 부모님의 말을 듣는 자녀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부모님들의 고민 속에 강력한 지지를 드러내는 말들이 나타나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말들을 통해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이 오가는 속에서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그것을 느낀 것은 부모와 자녀 간의 수직적 관계를 나타내는 말들이 발화될 때였다. 부모님들은 모임을 통해 자녀와 이전까지의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부모모임은 한국사회의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처럼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관계로 만들려고 하는 모임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이 관계를 바꾸는 데 많은 시간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화에서 드러났다. 자녀를 부모가 서로 만나 만든 작품이라고 하거나, “우선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해보아라와 같은 말이 모임에서 나왔다. 이런 말들 속에서 부모님들이 아직은 가족 관계를 동등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집단이라기보다는 상하 수직 관계 속에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 모임에서 우선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해보아라는 말도 나왔는데, 이는 성소수자와 비 당사자 사이를 많은 말들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이 말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숨기더라도 할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자신을 인정해줄 날이 온다는 말이었고, 따라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후 커밍아웃을 해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해보라는 말이 성소수자에게는 폭력적인 말이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이는 자신이 성소수자인 것을 숨기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소수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불가능하게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도 있게 하는 말이었다. 이 말속에서 나는 부모님은 아직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취향과 같이 생각하고, 성소수자 자신이 노력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간에 성소수자 당사자에 대한 말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 성소수자의 가시성을 더 고민하게 되었고, 당사자의 말이 계속해서 말해지고, 퍼져나가는 것을 더 많이 하고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 자녀의 커밍아웃으로 인해 성소수자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의 가족 형태 즉 이성애 가족, 정상가족을 벗어난 가족에 대한 상상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아픈 부모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커밍아웃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통해 드러났다. 부모님이 아파 지속적인 치료를 받고 있을 경우,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해도 괜찮을지,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부모모임에 참석한 부모님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부모님이 질병을 가지고 있다면, 커밍아웃으로 인해 질병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만큼 성소수자 외에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아직 많이 있고, 이를 없애기 위한 논의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이는 논의였다. 질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커밍아웃이 당연히 아픈 부모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단편적인 결론은 성소수자인 자녀가 자신의 가족관계에 대해 할 수 있는 고민을 차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말을 한 부모님들은 당사자의 부모님이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병이 차도를 보이는지 아닌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는 부모의 질병 여부에만 관심을 두는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자녀가 이 가족관계를 위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형태를 상상하고 있는지,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단편적 시선과 질병의 여부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사회 속의 다양한 가족 관계가 인정받고 사회 속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여 부모와 자녀 간의 다양한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을 막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바꾸는 것과 이를 통한 가족 관계의 변화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성소수자 자녀와 부모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가족 관계에 대해 고민을 나누고 함께 한다면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이슈를 통해 모이고, 이 이슈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모인 대안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공동체 안에서의 만남을 통해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과 그리고 자신의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행하는 것에 있어 모임 안에서 논의되지 않은 문제들, 그리고 의견들이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4. 지역과 성소수자 부모모임

   이번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참가하며 들었던 생각 중 또 한 가지는 부모모임이 여러 지역에서 많이 생겨 서울의 부모모임과 연대하면서 부모모임 내에서 방향성을 잡고,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사자와 그 부모는 서로를 지지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같지만 성소수자와 부모라는 다른 위치 때문에 속할 수 있는 집단은 다양할 수가 있다.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지역에 성소수자 당사자 모임과 단체가 생겨나고 이 단체의 지속적인 활동이 필요하듯 이를 지지하는 집단도 다양한 형태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녀가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성소수자 내외의 집단과의 커뮤니티를 형성한 것처럼 부모님들에게도 커뮤니티가 필요하고 고민을 나눌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성소수자 이슈를 논의하는 커뮤니티의 형태가 여기저기 뻗어가고, 생겨나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연대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역에는 성소수자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커뮤니티와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따라서 이번 부모모임은 앞으로 지역의 성소수자 운동에서 부모모임과 같은 커뮤니티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직은 이것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지하고, 부정하는 말들이 점차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할 커뮤니티, 인프라가 성소수자 운동에서 더 많이 생겨날 것이고, 지역에서도 이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성 살해를 쓰다

 

 

권명아

 

 

 

 

 

   강남역 살인 사건은 자신을 생존자로 규정한 여성들의 추모 릴레이가 없었다면 그저 신문 사회면 귀퉁이를 장식한 기사로 남았을 것이다. 이 사건의 개념 규정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개념의 정확한 규정도 중요하지만, 혐오, 차별 선동, 죽음과 살해로 이어지는 소수자 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연구가 더 시급하다. 여성 혐오를 비롯한 소수자 혐오가 신자유주의적 현상이라고 하지만, 특정 사회의 차별 구조와 역사가 혐오의 구체성을 좌우한다. 일례로 오언 존스의 <차브>를 보면 영국 사회에서는 ‘차브 혐오’라는 하층 계급 혐오가 지배적이다. 또 일본의 경우 차별 선동을 주도하는 ‘재특회’가 상징하듯이 인종 차별이 지배적이다. 인종 차별이나 계급 차별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여타의 소수자 차별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계급 차별이 지배적인 경우, 성차별이나 지역 차별이 계급 차별의 지배적 규정하에 작동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는 성차별이 지배적이다. 성차별에는 여성 차별과 성소수자 차별이 모두 포함된다. 성소수자 차별이 최근 들어 차별 선동의 대상이 된 것은 성소수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이제야, 겨우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차별이 유례없이 난폭했다는 증거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강남역 살인 사건에 대해 젠더 규정보다, 사회구조와 계급 문제가 우선적이라고 조언한 여러 ‘진보’ 집단의 충고는 ‘원론’으로만 옳다. 현실과 역사가 없이 원론만 반복하는 ‘진보이론’은 곤란하다. 물론 젠더 규정과 계급 규정을 둘러싼 이런 마찰은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에토스를 지닌 집단 사이의 이런 마찰을 정동 연구자 벤 하이모어는 자신의 판단 감각을 의심하지 않는 “거드름을 피우는 에토스”의 산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정치적 중요성, 긴급성, 정동의 강렬도에서 서로 다른 에토스를 지닌 집단들 사이에서 이런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젠더 이론이나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여성 살해와 성폭력 범죄가 이어지는 것은 한국 사회가 이제야 이 사건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간 여성 살해는 너무 만연해서 주목되지 않거나 주목되어도 사회병리 현상이라는 담론구조로 환원되었다. 이런 담론구조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여성 연예인에 대한 담론구조이다. 한국에서 연예산업이 활성화된 1990년대 이후에 국한해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과 노예화는 선정적이고 성애화된 담론구조와 우울증과 같은 병리 담론 사이를 반복했다. 일반 여성에 대한 폭력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로 간주하여 주목되지 않았다면 여성 연예인은 이례적인 주목 대상이 되어 이중의 폭력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중 폭력은 끝없이 이어진 여성 연예인 자살로 나타났다. 자살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타살이라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소수집단의 자살은 혐오의 구조적 결과라는 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통계로도 기록되지 않는 성소수자의 자살은 뿌리 깊은 혐오와 차별의 결과이다.

 

 

   ‘장자연 유서 파동’이 상징하듯이 ‘살해된’ 여성이 남긴 필사의 기록은 쉽게 부정되었다. 죽은 여성의 이야기는 음모론과 유서 진실 공방과 선정적 스캔들과 병리학 서사로 계속 환원되었다. 여성 살해의 구조는 바로 이 담론 생산구조이기도 하다. 강남역에 쓰인 추도와 생존자의 서사는 그런 점에서 이 오래된 반복을 깨뜨린 사건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보이지 않는 심연에서 필사의 저항을 계속해온 여성, 그리고 소수자 집단의 저항의 역사 속에서 출현했다.

 

 

 

 

 

시민이 아니어도 ‘살 권리’

 

 

권명아

 

 

 

 

 

 

   20대 총선을 전후하여 혐오 논의는 ‘진보’의 함의를 묻는 가늠자가 되었다. 소수자 차별을 당 정책으로 제시한 기독자유당은 선거 공보에서 “동성애와 이슬람, 차별금지법을 합법화하려는 세력”을 “대한민국을 크게 위협”하는 집단이라고 ‘홍보’했다. 선거 이후 시민권과 혐오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막상 이슬람 차별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 문제를 진단한 방송 프로그램 ‘헬조선과 게임의 법칙’은 “난 내가 나고 자란 한국에서 나는 낙오자가 되기 싫어”라는 랩으로 마무리된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은 “국가를 향한 청춘의 혐오”라고 해석된다. 혐오는 ‘국민적’ 문제가 되었다. 혐오가 국민이나 시민(권)의 문제로 환원되는 현상은 총선과 혐오에 대한 논의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슬람 차별이나 인종 차별 문제가 사라져버린 것은 전형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혐오에 대한 논의는 혐오 발화와 증오 정치를 비판하고 대응해나가는 문제와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론적인 분석이나 사회 비평에서조차 혐오에 대한 논의에 인종 차별 문제가 거의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 현상은 그런 점에서 징후적이다. 물론 혐오가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현상으로 대두한 것은 증오를 조장하여 ‘국민 내부’를 분열시키고 분리 통치하려는 보수 정권의 전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혐오라는 정서 상태가 혐오 발화(차별 선동)나 증오 정치와 연결되는 지점을 고민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인종 차별이나 지역 차별과 같은 오래된 증오 정치의 역사를 복합적으로 논의하고 대처해나가야만 한다. 또한, 인종차별적인 혐오 발화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혐오 논의가 시민이나 국민의 ‘내부 갈등’ 차원으로 수렴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최근의 혐오 논의에서 인종 차별 문제가 주변화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인종 차별은 한국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심각한 차별이지만, ‘새로운’ 현상으로 여겨지지 않기에 담론 공간에서도 새롭게 ‘이슈화’되지 않는다. 또 선거나 정치 의제 차원에서 이주민 인권과 이주민 차별반대 문제는 ‘이자스민 의원’의 상징으로 환원되면서 ‘진보 의제’로 거의 다뤄지지 않게 되었다.

 

 

   국회를 떠나는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인터뷰에는 ‘다문화 1호 의원’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다문화’라는 단어는 ‘설명충’, ‘한남충’처럼 혐오를 담은 ‘표현’이 아니지만,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를 차별적으로 범주화하는 언어 수행적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혐오 없는’ 차별, 혐오를 동반하지 않는 혐오 발화는 이런 사례 말고도 너무나 많다. 인종 차별 문제에 관해서 한국 사회는 아직도 ‘차별적 표현’을 비판하고 문제시하는 것조차 미흡한 상황이다.

 

 

   이주민이나 난민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일은 국민이나 시민이 아니어도 ‘살 권리’를 요청하는 것이다. 혐오 논의가 1등 시민과 2등 시민의 경계를 맴돌고, 비국민으로 배제될 가상의 공포에 몰두해 있는 사이 부지불식간에 시민과 국민의 경계 바깥은 이 논의에서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물론 최근의 혐오 논의가 주로 선거 국면에 대한 비판적 개입에 치중한 결과 예기치 않게 이런 편향을 보이게 되었다고도 하겠다. 그러나 혐오 발화와 차별 선동, 증오 정치를 비판하고 사회적 의제로 다루는 일은 시민이나 국민이라는 이미 주어진 경계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권리를 고민하는 일이다. 혐오는 만연해 있고, 혐오 발화는 차별적인데 역설적으로 혐오 논의는 ‘선별적’이다. 선거 국면에 몰두해 있던 혐오 논의가 ‘다른’ 지평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마이너리티 코뮌』 서평]

 

 

"소리 소문들의 비밀스런 공명장치"

 

 

 

수희(래인커머)

 

 

 

 

 

 

   연구자 생활정보지 <바람의 연구자>2013년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해외배송도 몇 번 하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pdf를 보내기도 했던 것 같은데, 경제적인 문제와 온라인으로 배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맞추어 현재 한국에서만 배포중이다. 신지영 선생님께는 <바람의 연구자> ‘창간준비호창간호를 메일로 보내드렸었다. 일본에 계시는지, 미국에 계시는지 궁금해하면서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바람의 연구자>를 받자 마자 다 읽어버렸고, 다음엔 우리의 전전긍긍끙끙거림도 부탁한다는 리뷰를 답장으로 받았었다. 그 답장을 받고, 너무 좋아서 읽고 읽고 또 읽었었던 것 같다.

 

 

   신지영 선생님을 만난 것은 2011년 아프꼼(당시에는 아프꼼의 전신인 Net-A였음)의 첫 국제 워크숍에서였다. 사람의 물결이 넘실대는 신주쿠 역이었다. 아프꼼 멤버들과 만난 신지영 선생님이 제일 먼저 함께 가보자고 한 곳이, 나이키 공원이 되기 직전의 야마시타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육교 위였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JR을 타고 밖을 내다보면서 야숙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이 워크숍은 처음으로 몸을 움직여 부산 밖의 연구자들을 만나고, 연구자들의 움직이는 몸이라는 것을 으로 만났던 기억인 것 같다. 그 때 우리가 얼마나 환대받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몸둘 바를 모르겠다. 일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단 서너 명을 위해 인문평론 연구회의 와타나베 나오키 선생님과 신지영 선생님이 교대로 우리가 참가했던 서평회에서 동시통역을 해주셨다. 두고 두고 선생님들의 수고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환대를 어떻게 연구자로서 잘 돌려드릴 수 있을까, 혹은 받았던 환대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을까가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신지영 선생님도 일본과 미국의 마이너리티 코뮌들, 마을들에서 받았던 환대를 섬세하게 기록함으로서 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구자가 자료찾기와 이론공부, 생계유지 사이의 갈등을 떨치고 집회에 참가했을 때 느끼는 안전감혹은 해방감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주는 환대의 에너지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속에서 신지영 선생님이 느꼈던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안심이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지, 복잡한 상황에 대면했을 때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섬세하게 고려하며 말하고 있는지가 이 책 마이너리티 코뮌에 있다. 반빈곤 활동,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활동, 반 올림픽 활동, 반혐오 활동, 전쟁법 반대 활동, 반인종주의 활동 등 거리에서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마이너리티 코뮌들과 신지영 선생님이 접속했을 때의 현장이 아카이빙된다.

 

 

 

▲ 신지영, 『마이너리티 코뮌』, 갈무리, 2016. 

 

 

   이 책은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지고 스러지는 마을의 목격자가 되고, 증언자가 되면서, 연구자로서의 자신이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기검열하며 쓰여져 있다. 신지영 선생님은 들려(오지 않는) ‘소리 소문들을 가능한 한 상세히 귀 기울여 듣고-쓰고사유와 만남의 근거로 삼기 위해서 몸을 낮춘다. 그는 사유하고 연구하는 지식인 의 말을 쓰고 누군가가 듣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소문들의 비밀스러운 공명장치라도 되면 좋겠다고 책을 마무리 한다. 단 서너명을 위해 일본어 서평회의 모든 말들을 통역해주었던 신지영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이너리티 코뮌들의 소리 소문들을 들릴 수 있게 공명하는 선생님의 듣고-쓰기가 있다. 이것이 아마도 신지영 선생님의 연구하는 몸이자 투쟁의 방법일 것이다.

 

 

   가제본된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사진을 전혀 못봤다. 소중한 사진들이 많이 수록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꼼 멤버들이 함께 원고를 읽고 차가영 선생님의 디자인에 피드백 하면서 완성한 책 표지에도 마을의 현장들과 소리들이 다 실려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아프꼼의 이야기들도 목소리들도 이 표지에 함께 실려 있다. 아프꼼도, <바람의 연구자>마이너리티 코뮌이라는 공명장치를 통해서 저곳의 동료들의 안녕함을 전해 들었다. 신지영 선생님이 저곳들의 동료들에게 이곳 마이너리티 코뮌의 이야기도 전해주고 있을 것 같아, 작고, 소중한 이곳의 이야기를, 소리 소문들을 계속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는 싸움'을 '하는' 이유  

 

 

권명아

 

 

 

 

   선거는 ‘이기는 싸움’일 때만 의미가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이나 노동당에 쏟아진 ‘걱정’은 한마디로 어차피 지는 싸움에 표를 ‘낭비’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면 그저 무시하면 될 터인데 왜 그리 걱정하고 말리지 못해 안달일까? 생각해보니 선거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여러 문제에서 이른바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부대끼는 문제는 참으로 유사하다. 어차피 질 싸움에 왜 소모적으로 인생을 낭비하느냐는 점잖은 훈계와 조언, 현실을 좀 알라는 계몽적 충고, 비현실적인 태도를 수정하라는 질책, 결국 이 모든 일이 뭔가 ‘현실적인 싸움’에 방해가 된다는 짜증, 그리고 경멸적인 비아냥거림과 근거 없는 모욕. 이런 부대낌은 차례로 나타나기도 하고 뒤섞여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면 무시하면 될 터인데 왜 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 식의 복잡한 반응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선거에 국한하지 않아도 ‘지는 싸움’에 휘말려 인생을 건 결단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결단에 내몰리지 않아 본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정말로 혜택받은 사람이다. 변화되지 않는 제도와 권력 앞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문제를 제기하려면 ‘지는 싸움’의 덫에 빠져 인생을 소진하게 된다. 그래서 기성세대나 안전지대에 서 있는 이들은 젊은 세대나 소수자들이 이런 싸움에서 소진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경계해야 할 책임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싸워서 아무것도 변화될 가능성이 없는 싸움에 휘말리는 일은 그 자체로 존재를 뒤흔드는 공포이다. 하여 사람들이 이런 공포 속에 인생을 소진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고, 또 이런 싸움을 ‘낭만적으로’ 독려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밀양 투쟁, 반원전 투쟁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는 싸움’이라고 어떤 싸움을 미리 규정하는 일은 그런 걱정을 하는 이들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싸움의 가치를 미리 앞당겨 재단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는 싸움’이라는 규정은 싸우기도 전에 패배의 전조와 환멸과 불안을 예고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 점에서 ‘지는 싸움’이라는 규정은 지금 현재의 인식 지평에 제한된 시각으로 아직 알 수 없는 미래의 결과를 앞당겨 예측하는 행위이다. 물론 이런 예측이 지성의 산물이라고 자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측에서 미래는 현재의 연장일 뿐이다. 미래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싸움을 이미, ‘지는 싸움’이라고 단정하는 태도는 실상 미래가 현재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의 산물이다.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이런 걱정의 이유 속에 담겨 있다.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에 대해 ‘이기는 싸움’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짜증과 훈계를 멈출 수 없는 것은 사실 이 싸움이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 경험해본 적도,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떤 미래를 자꾸만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는 싸움, 그만해!”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싸우는 사람은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길 수 있어!”라고 답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미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을 돌려주고 있다. 그래서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일은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 경험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한 미래를 도입하려는 싸움이다. ‘지는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이미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미래는 이미 변하였다. 오늘의 선거가 비록 ‘지는 싸움’이었을지 모르지만, ‘계속 싸우는 일’을 멈추지 않았기에, 미래는 이미 변하였다.

 

'나'들의 힘으로 어떻게 내일의 삶을 직조할 것인가

- [서평]구라카즈 시게루의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

 

 

신현아(래인커머)

 

 

 

▲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 구라카즈 시게루, 한태준 옮김, 갈무리, 2015.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은 없다. 내동댕이쳐진 삶 그리고 생존을 위협하는 지옥도는 무한맵으로 펼쳐져 있고 지뢰와 바리케이드는 ‘각개격파’해 나가야 겨우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 멈추지 않는 재난의 심연을 마주한 한국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이러한 상황을 몸서리치게 느끼고 있다. 재난 앞에서 무력함의 아가리를 사정없이 드러내는 시스템이 말해주는 것은, 사실 이 시스템은 애시당초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일 뿐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재난을 마주한다. 당장 다음 달의 재고용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고용불안, 빈곤의 심화, 혐오와 증오의 증대처럼 일상의 모든 것들이 재난으로 돌변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살얼음 위를 아무리 조심스럽게 걸어도 우리의 발밑은 날카롭게 베이고 그 피를 마시며 시스템이 증식되어왔음을 보게 된다. 시스템은 안전보장의 장치로 지배와 통치를 이루어내는 게 아니라, 무능과 방치를 통해서 시스템의 능력이 마치 있는 것처럼 보완해야 할 것처럼 상상하게 만드는 효과를 통해서 지배를 지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사정이 다만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적인 조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도 그러하다. 신자유주의라는 초국가적인 상태 하에서 “개인은 조직 외부에 매달”린 채로, 끝없이 창조적이고 자유롭게 ‘자기계발’할 것을 강요받는다. 조직/공동체가 더 이상 개인의 안정된 삶을 더 이상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3.11이라는 재난 앞에서 그 무능은 더욱 사정없이 드러났다. 우리는 3.11 이후 이른 바 국민들이 시스템에 의해 내팽개쳐지는 것을 목도하였다. 마치 버블경제의 붕괴 이후 동경의 공원에서 내팽개쳐진 사람들이 노숙을 시작했고 곧 대도심에서 지워지듯 이들을 구제하는 각종 장치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곧 사라질 것이다. 혹은 모욕주기를 통해서 침묵이 지속되거나 말이다. 이렇게 재난을 마주하여 자신을 보호할 보호고치도 없이 그저 내팽개쳐진 수밖에 없는 개인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다. 모두가 내팽개쳐진 상황에서 내가 살아있는 것은 단지 우연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의 저자는 ‘미적 아나키즘’을 발굴해낸다. 먼저 ‘관동대지진에서 태평양전쟁 발발까지의 예술 운동과 공동체’라는 부제에 주목하자. 이 책의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관동대지진이 보여준 재난의 심연은 단지 ‘자연재해’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관동대지진 직후 군대와 자경단이 아나키스트와 노동운동가를 살해하고, 조선인·중국인을 학살했던 것이야말로 재난이 드러낸 시스템의 어둠이었다. 저자는 이 역사적 상황으로 돌아가 재난 앞에서의 예술과 주체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되짚고자 한다.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리라 믿었던 시스템이 오히려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것임이 드러나는 지점, 재난 이후 우리는 단지 우연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라는 지점, 이제는 그 무엇도 개인의 삶의 의미를 담보하지 못하는 지점이라는 세 꼭짓점을 통해 저자는 “우리는 모두 아나키즘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13)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우리를 1923년부터 1937년까지의 역사적 상황 속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단지 그 시간이 재난을 당한 때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그는 재난 이후에 내팽개쳐진 생명을 어떻게 다시 가치있는 것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의 문제에 주목한다. 미적 아나키즘을 다시 캐내는 것은 그처럼 우연적인 것으로 세계에 내던져진 ‘나’의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시도이다.

 

   다이쇼에서 쇼와 초기에 걸쳐서, 그동안 아무 것도 아니었던 개인의 ‘생명’이 지닌 창조성을 최대한으로 강조하는 예술상이 존재했다. 그 사상은 고독하지만 독자적인 개인, 무한히 산출되고 있는 개인이라는 모델을 내세웠다. 그것은 ‘나’라는 단독적인 생명 이상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아나키즘에 가까웠고, ‘나’는 세계의 일부인 것만이 아니라, ‘나’야말로 세계를 창조한다는 생각이었다는 점에서 유아론적이었다. (11)

 

   미적 아나키즘은 보호막 없이 세계에 내던져진 개인을 다시 공동체로 환수하는 것에 앞서 ‘나’의 의미를 세우고자 한다. 그 어떤 공동체에 대한 이론보다도 먼저 ‘나’의 생명(삶)을 긍정할 수 있는 에너지를 찾는 것, 그것은 저자가 말하는 나의 내부에 존재하는 ‘생명’을 발견하는 것인 동시에 ‘능산적 자연’의 힘을 믿는 것이기도 하다.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은 그처럼 “오히려 부단한 전개와 표출, 새로운 자기의 획득, 끝이 없는 변화이자 결국엔 미적인ㅡ세계를 창출함과 동시에 새로운 ‘나 자신’을 만들고, 표현한다는 의미에서ㅡ창조하는 주체 구성의 원리인 것이다.” (15) 그렇다면 미적 아나키즘이 발견한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은 신자유주의적 시스템 하에서 끊임없이 자유롭게 창조적이기를 강요받는 것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예술은 바로 이 지점에서말로 유효한 것이 된다. ‘예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는 것을 통해서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은 신자유주의적 주체와 국가 공동체에 포섭되는 위험을 계속하여 아슬아슬하게 비껴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건축, 고현학, 독실, 민예, 영화, 동화 등을 만화경처럼 펼치며 주유한다. 이 궤적은 단지 미적 아나키즘의 위대한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미적 아나키즘이 위태롭게 시스템에서 비껴나가는가의 ‘위태함’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읽힌다. 일본은 다이쇼 시기에 접어들며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생활 개선 운동 등을 통해 ‘일상의 행위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규범에 따라 분절화하고 조직’(46)하고자 하며, 도시 또한 단순히 상부로부터의 통제를 넘어서 삶 전반을 분절하고 배치하여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그 자체로 구성된다. 그러나 관동대지진 이후, 그러한 배치와 효율이 무너진 자리에 ‘부락’이 들어선다. 피난민들이 마구잡이로 지어 올리는 부락은 단지 비바람을 피하는 임시가옥이 아니라, 분절된 배치를 넘어서 자신의 취향과 기지와 의지와 자아를 드러내는 장소가 된다. 이 ‘부락’을 둘러싼 다키자와 마유미와 곤 와지로의 논쟁은 흥미롭다. 둘 다 효율을 앞세우는 것에 반대하여 자아 그 자체의 발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다키자와는 건축가로서의 자아의 발현을 드러내는 것이 ‘미’라고 하는 것에 비해 곤 와지로는 피난민들이 발현하는 자아와 욕구를 그 자체로 긍정하고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락 장식사>를 만들어 피난민들의 부락을 장식해주었던 곤 와지로에게 이처럼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은 단지 ‘나’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관여되면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곤 와지로가 고현학을 통하여 예측불가능한 삶의 흐름 속에서 통계와 숫자를 ‘추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 만물의 수집을 통해 단지 ‘흐름/리듬’을 그려내고자 했던 것의 한 편에는 ‘독실’이 존재한다. 곤 와지로가 효율/분절/배치에 맞서 예측불가능한 리듬을 살리고자 했던 것처럼 ‘집’의 내부에서도 위생/실용/분절의 힘은 오히려 ‘독실’이라는 예측불가능한 밀실을 낳았다.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수많은 통계, 선거, 조사 등을 통하여 모두를 하나라는 숫자로 열거하는 동안 다이쇼 시기의 작가들은 밀실 속에서 오히려 열거되지 않는 무한한 신체와 욕망의 차원이라는 다른 ‘리얼’을 발견해낸다.

   그러나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이 자연의 산출력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여 단지 삶의 흐름 속에 흩어져버리는 것이거나 반대로 밀실 속에서만 존재가능한 고립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야나기 무네요시를 끌어와 ‘자연의 산출력’을 근거로 삼는 것이 어떠한 양면적 성격을 띠는지를 짚는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익명의 집합적 주체들인 민중들이 만들어내어 일상 속에 녹아들어간 ‘민예품’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자연의 능산성)이 나타나는 실천적인 예술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야나기 무네요시가 말하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근대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결국은 근대 미학에 근거하고 있었으며, 한 편으로 ‘인간’을 덧없는 것으로 지워버리는 위험을 갖고 있음을 짚는다.

   이처럼 저자는 재난을 마주한 신자유주의적 주체ㅡ늘 창의적이고 새롭게 자신을 ‘알아서’ 갱신하라ㅡ의 다른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미적 아나키즘의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을 제시하지만, 그것을 간단히 ‘대안’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이 가능성이자 동시에 위태로움임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6장 ‘혈통의 생성’이다. 무수한 이미지를 통해 ‘나 자신’의 주관을 미적 경험으로서 전달하며 역사를 소거했던 야스다 요주로는 결국 신화적 혈통에 자신의 주체성을 의탁하며 국수주의로 급격히 경사된다. 저자는 야스다 요주로를 끌어와 다시, 미적 아나키즘과 파시즘의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를 벌려 다른 주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가능성은 지금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하위문화에서 어떻게 ‘자연’의 능산성을 캐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다시 돌아가서, 우리는 어떻게 재난에 마주해 우연적으로 남겨진 삶에서 의미를 캐어낼 것인가. 우리의 ‘자연적 능산성’은 지금 어디에서 출현하고 있는가. 자연적으로 분출된 ‘나’들의 힘은 어떻게 시스템이 아닌, ‘자기 통치’로서의 삶의 예술이자 ‘아나키’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책이 미처 다 답하지 못한 부분들을 우리는 내일의 삶을 직조해나가며 이야기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디자[]문학]이다

 

 

기재성(래인커머)

 

 

 

 

 

 

   대학교 2학년 때 디자인사 수업이 있었다. 하루바삐 남들이 모를 포토샵 기술을 익히고 깜짝 놀랄 그래픽을 만들어야 할 텐데 생뚱맞게 역사 공부를 시키나 싶었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 벽에 그림을 그려서 메시지를 남기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가 훼손되어 이를 회복하고자 일어난 미술공예운동이야기, 그리고 팝아트, 포스트모더니즘 등...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잘 다루는 훈련을 하는 게 시급한 것 같은데 책을 보고 텍스트를 다뤄야 하는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수업시간마다 졸았고 시험기간에는 교수님이 짚어주는 대목만 부랴부랴 읽고 가까스로 통과했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못마땅했다.

 

 

 

 

 

▲ 대학시절

 

 

 

   졸업 후 잠깐의 회사원 생활보내고 디자인 사무실을 열었다. 회춘프로젝트라는 지역문화예술활성화사업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무실을 시작한 이후로 지역의 문화예술 관련 단체,기관의 일을 주로 했다. 그런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는 클라이언트의 사업에 참여했던 사람이 아닌데 그 과정과 결과를 정리한 원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시안을 만든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이다. 나는 한글파일과 사진을 받아서 보기 좋게 꾸며주면 되는 입장인데 왜 내가 그 내용을 다 파악하고 작업해야 하나 싶었다.

 

 

 

   꽤 오래전의 일이라서 기억이 흐릿하지만 어릴 때 글을 많이 썼고 중학교 때교내외 백일장 및 경시대회에서 받은 상장으로 내 방의 한쪽 벽면을 다 채울 정도였다. 누구나 이 정도의 리즈 시절이 있을테니 자랑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냥 그랬다는거다.

 

 

 

   어릴 때의 기억을 되짚게 된 계기는 개념미디어 바싹 활동을 시작하였을 때다. 이 역시도 회춘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인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야 하는 세상에 발을 디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을 한 후로 원고를 받게되면 정독은 못해도 속독하고 눈길이 가는 부분은 더 읽어보고 시안을 잡게 되었다. 어떤 상황을 무슨 말로 표현하는지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특히 아프꼼과의 인연을 통해서 시작하게 된 계간 문화/과학의 편집디자인을 맡게 되면서부터 더욱 글을 읽는 것에 다시 흥미를 붙였다.

 

 

 

  내가 2부터 미술학원을 다니고 디자인학과를 입학하게 된 최초의 이유는 내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는 것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학생일 때는 글을 써서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고 칭찬을 받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나는 내 생각을 표현하고 공감을 얻어내는 것을 좋아했다. 글을 쓰느냐, 그림을 그리느냐 하는 것은 이를 위한 방법들 중의 하나이다.

 

 

  인간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나 인연을 맺어오던 인문학모임 아프꼼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1 때 국어선생님의 개인 첨삭지도를 받으며 경시대회를 준비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글이든 그림이든 좋다.

  [디자[]문학]이다.

 





 

 

 

 

 

 

 

 

 

 


 

 

 

‘영애’ 시대, 소년·소녀담

 

 

 

 

권명아

 

 

 

 

 

   2012년 한국 사회는 ‘영애’가 성장해서 ‘여왕’이 되는 정치 드라마에 열광했다(51.6%). 이 특별한 ‘성장 드라마’ 시대에 다종다양한 소년·소녀담이 이어졌다. <겨울왕국>(1029만), 엘사와 ‘영애’가 닮은꼴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소년이 온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36만), ‘엄마’가 지배하는 제왕적 가부장 사회의 소년·소녀담 <차이나타운>(147만), <응답하라 1988>(21.7%), <시그널>(12.54%), 영화 <귀향>(314만) 등이다.

 

 

   이 소년·소녀담은 세 유형으로 나뉜다. 1 유형, ‘영애’가 ‘여왕’이 되는 ‘특별한’ 성장 서사. 2 유형, 천진난만한 소년·소녀가 ‘어엿한’ 어른이 되는 성장 서사로, <응답하라 1988>이 대표적이다. ‘복권’, ‘재개발’, ‘주식투자’로 상징되는 경제적 성장 서사를 동반하고, 과거는 비루한 현재를 밝히는 그리움의 원천이다. ‘엄마’가 살해한 소년을 대신해 ‘엄마’를 죽이고, 그렇게 ‘엄마’가 되는 <차이나타운>도 2번 유형이다. 두 작품은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실상 부친/모친 살해는 성장 서사의 무의식이다. 아비/왕이 어미/여왕으로 대체되었다. 3 유형은 <소년이 온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시그널>, <눈길>, <귀향>, <로봇, 소리> 등으로 이어지는 ‘유령’의 계열이다. 이 서사는 유령으로 귀환하는 소년·소녀의 이야기이다. 유령 계열은 아비/어미 부정이나 복수의 서사와는 다르다. 각 작품의 관객 동원은 앞의 두 계열보다 저조하지만, 종류가 다양하고 이 계열 전체를 합하면 앞서 두 계열의 관객 동원과 거의 맞먹는다.

 

 

   1 유형은 ‘아버지/왕’의 환영을 매번 소환하면서, 가부장/왕을 불러들인다. 2 유형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성장이 시민/법적 주체 구성의 서사가 되는 근대 ‘가부장/법’의 서사를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3 유형에서 ‘억울하게 죽어’ 유령으로 반복해서 귀환하는 소년·소녀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고, 아비/어미라는 시민/법적 주체가 되지 않는다. 소년·소녀담을 뭉뚱그려 ‘가부장적’ 서사 계열로 보는 시각은 그래서 게으른 비평적 관성이다. 3 유형은 1, 2 유형의 성장 서사적 전형성과 시간성을 어그러뜨린다. 1938, 1980, 2003, 2014, 2016의 시간이 연대기적 시간을 깨고 출몰하는 소년·소녀 유령들에 의해 한꺼번에 우리 앞에 도착한다. 성장 서사를 중단시키고, 연대기적 시간을 깨면서 소년·소녀가 유령들로 우리 앞에 출몰하고 있다.

 

 

   과거 언젠가 소년·소녀는 억울하게 ‘미래’를 빼앗겼다. 빼앗긴 미래에 사로잡힌 과거의 ‘몸’이 유령들로 도착한다, 매번. 소년·소녀 유령은 현재에 도착한, 과거인 미래이다. 아이-어른, 과거-현재의 성장 서사는 중단되고, 아비/어미가 되지 않는 소년·소녀 유령은 시민/법의 시간을 두서없게 만든다. 대신 과거에 중단되고 잠재된 미래를 현재로 불러들인다. 이 유령들이 걸친 과거의 ‘의장’은 민족지적, 생애사적 ‘과거’의 반영이 아니다.

 

 

   1, 2 유형의 성장 서사가 관객 동원 1, 2위를 다투는 동안, 이 성장 서사를 중단시키고 어깃장을 놓는, 과거형의 미래가 유령으로 여기, 도착한다. 개별 작품의 관객 동원은 미미했으나, 이들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여럿의 흐름으로 작동한다. 문화적 재현에서 발생한 일이 정치적 대표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새로운 흐름은 이미 도착했고, 성장의 시간/서사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미래는 그렇게 과거의 의장을 입고 매번, 도착한다.

 

 

 

 

식민주의, 파시즘, 법

 

 

 

권명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분출하고 있다. ‘위안부’ 동원이라는 전시 성노예 동원 제도는 어느 날 갑자기 출몰한 게 아니다. 또 이른바 ‘보편적’인 근대 가부장 국가의 ‘보편적’ 차원의 연장도 아니다. 관련한 실명 비판도 필요하지만, 전략적 소모전에 말려들 필요는 없다. 소모전의 덫에서 벗어나, ‘위안부’ 동원을 식민주의와 파시즘 비판, 젠더 연구의 차원에서 더욱 심화시켜야 할 때이다.

 

 

   ‘위안부’ 동원은 성에 대한 일본의 식민주의적 관리가 전시 동원의 체제적 운영 방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제강점기 성에 대한 ‘국가적’ 관리는 풍속 통제라는 더욱 넓은 법적 구조에서 이뤄졌다. ‘위안부’ 동원에 관한 연구가 모두 풍속 통제 연구로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에 대한 식민주의적 관리가 전시 동원 체제로 이어지고 여기서 법이 작용하는 과정을 살피는 것은 이른바 ‘자발성’과 강제에 대한 논의에서 매우 중요하다.

 

 

   풍속 통제는 ‘선량한 풍속’과 이를 침해하는 ‘풍기 문란함’이라는 무규정적 규정을 통해 식민지 주민들을 끝없이 분류하고 위계화하고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벌 받고 모욕당해 마땅한 ‘문란한 여성’과 보호받아야 할 ‘선량한 여성’이라는 분류 체계는 이런 식민지 풍속 통제의 ‘법적 이념’에 의해 구성되고 재생산되었다. 풍속 통제의 법제는 이와 관련된 세부적 법 조항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관련된 모든 법 조항을 무작위로 적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과정에서 법의 자의적 적용은 필연적이었고, 법을 집행하는 ‘말단’ 집행자의 자의성은 극대화되었다. 1926년 전후 독일법의 사례를 들며 조르조 아감벤은 풍속, 안녕질서, 문란, 선량함과 같이 법적 규정이 아닌 무규정적 규정이 법의 내부로 들어오는 과정을 근대적 생명정치가 죽음의 정치(파시즘)로 넘어가는 문턱이라고 분석했다. 법이 스스로 초법적이 되는 과정을 연구자들은 파시즘이라고 규정해왔다.

 

 

   이른바 ‘보편적’인 근대적 맥락에서 선량함이나 풍속과 같은 영역은 도덕이나 규율, 감정판단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풍속 통제는 이런 영역을 법적 통제의 영역에 두었다. 선량한 시민이 되는 일은 ‘상식적’으로는 ‘자발적’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법적 강제로 수행되었다. 이런 식으로 피식민자 내부를 분할하고 분류하고 적대적으로 대립시켜서 통치하는 방식은 풍속 통제에서 시작되어, 전시 동원 체제의 비국민에 대한 절멸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전시 동원 시기 조선인과 대만인은 일본인이 되어야 했지만, 결코 그냥 일본인은 될 수 없었다. 대신 조선인과 대만인은 ‘좋은 일본인’이 되어야 했다. ‘좋은 일본인’이 되는 방법은 추상적이었지만, 대신 그 반대편에 있는 비국민의 분류는 무한하게 증식했다. 황민화 정책은 초법적인 법적 강제를 개인의 수행성으로까지 확대했다. 이를 황민화 정책의 존재론적 전도라고 한다. 윤리나 ‘자발성’이라는 인간 내적 차원까지를 강제적 통제에 포섭했고 이게 ‘국민 정신총동원’의 뜻이다.

 

 

   일본의 경우 패전 직후 미 군정하에서 풍속 통제법은 대표적인 파시즘 법제로 폐지되었고, 성에 대한 관리에 한정해 축소되었다. 이 과정은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풍속 통제법은 한국 사회에 일제강점기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분단 이후 독재정권은 풍속 통제법을 통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한국에서 식민주의 비판이 파시즘 비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역사 때문이다. ‘위안부’ 동원에 대한 비판이 ‘민족주의 프레임’ 문제가 아니라 식민주의와 파시즘 비판의 일환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기억하는 사람들의 힘

 

 

 

 

권명아

 

 

 

 

   최근 ‘위안부’와 관련한 논의는 외교적 차원이나, 담론 차원에서 기존의 국제적 연대와 연구, 실천의 역사를 모두 파괴하고 있다.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그것이 전쟁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일까? 외교적이든, 담론 차원이든 이런 전쟁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무엇보다 지난 발자취를 기억하고 보듬고 살피는 일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1990년대 학계에서는 학살과 전쟁의 기억을 기념하는 작업에 대해 다양한 논쟁이 있었다. 국가주의적 우상화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과 항쟁을 기념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과 공론화가 가능했다. 이런 역사에 비춰 보면 현재 기념과 기억의 문제에서는 국가와 민간 영역이 역전된 상황이다. 평화비(소녀상)는 민간 영역에서 설립한 것이다. 국가 기념물이 만들어지고 대중화되어 ‘특권화’되는 과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20여년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억과 기념은 국가가 아닌 일반 시민의 국제적 연대를 통해서만 겨우 가능했다. 게다가 이런 국제적 연대를 통해 만들어진 기념물은 단지 ‘소녀상’으로 특권화되어 있지 않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좀 떨어진 도카시키나 미야코 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아리랑비’가 있다. 미야코의 아리랑비는 어린 시절 ‘위안부’ 여성을 만났던 기억을 간직한 요나하 히로토시의 개인적 추도 작업에서 시작되었다. 전후 갑자기 사라져버린 그녀들의 생사가 궁금했던 소년 요나하는 그녀들을 만났던 기억의 터에 돌을 놓아 추도했다. 개인적인 추도는 한·일 양국 연구자들의 공동 조사로 이어졌고, 2008년 미야코 지역의 위안소 지도와 지역 주민의 증언을 담은 보고서가 발간되고, 기림비 제막도 함께 진행되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던 아시아 여성을 기리기 위해 11개 언어로 만들어진 비문은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 여성을 추도하는 의미로 베트남어가 추가되어 12개가 되었다. 이 작업에는 미야코 평화운동가와 여성들, 일본과 한국의 연구자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함께 참여했다. 이 작업에 참가한 시미즈 하야코와 우에사토 기요미는 지금도 미야코에서 평화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전쟁으로 인한 여성의 성노예화를 비판하고 피해자를 기리는 상징과 기념물을 만드는 일은 이런 시민들의 국제적 연대를 매개로 한 평화운동의 힘으로 이뤄졌다. 일본이나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오히려 시민운동과 평화운동이 지속해온 기억과 추도 작업을 무력화하기에 급급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추도하는 일은 무책임한 국가에 대항하여 싸워온 아시아 시민들의 반전 평화 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한-일 외무장관 회담과 소녀상 철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아시아의 반전 평화 운동의 역사를 무력화하는 총체적 위기로서 인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전쟁의 기억을 이어나가는 것과 함께 아시아의 평화 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어가는 일 역시 절실한 상황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빼앗지만, 기억은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인간 존재의 원초적 힘이다. ‘소녀상’을 철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누구의 동의 없이도 삶을 박탈하는 전쟁을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전쟁 논리를 고스란히 닮았다. ‘소녀상’이 가부장적 순수성의 이념을 특권화할 위험성이 있다면, 더 다양한 기림비와 평화비를 만들자. 파괴가 전쟁 국가의 몫이라면, 생성과 일굼은 전쟁논리에 저항하기 위한 인간 존재의 몫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