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동 - 나무들이 살아요

 

  

 

 

 

 

金 飛

 

 

 

 

 

 

 

 

 

 

 

   어차피 일방적인 약속이었다. 그리움은 오직 나 혼자만의 감정이었고, 너무 많은 것들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 말이다. 슬픔이나 안타까움 앞에 담담한 우리를 비관적이라 말하지 않고 현실적이라고 말하게 된 것은, 여기 이 시대가 가르친 생존의 방식이기도 할 테고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린 우리들의 퇴화인지도 모른다. 그때의 내 기다림 이후 몇 분이 둘 중 무엇이든, 나는 뒤돌아보거나 기웃거리지 않고 예정된 길을 따라 마을로 향했다.

 

   오늘 내가 목적지로 정했던 곳은 청룡동의 상마마을이었다. 부산의 입구인 금정구의 청룡동은 쉽게 말해 범어사를 중심으로, 범어사역에서 금정산 쪽으로 이어진 제법 광범위한 지역을 이른다. 이웃한 노포동 혹은 남산동은 고속버스터미널이나 외국어대학교의 분교가 위치해 있어 그 이름이 익히 알려졌지만, 실제로 청룡동은 부산시민들에게도 익숙지 않은 이름이라고 한다. 매일 지나치며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하지 못 했던 청룡동이란 이름은, 우리들의 바깥이 물리적인 거리나 지역 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호출하고 기억하는 마음 씀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변함없이 이번에도 나는 청룡동의 가장 외곽에 자리한 마을을 점찍어두었고, 그렇게 혼자서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상마마을은 금정산 자락에 위치한 부락으로서, 범어사 바로 아래에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나 등산객들의 시선이 범어사혹은 금정산에 머물러 있으리란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그들의 관심 바깥에 있는 부락의 주민들과 마을 정경이 어떤 모습일지 자못 설레었다.

   버스는 범어사를 지나 얼마 가지 않은 내리막 위에 나를 내려놓았다. 다음 정류장이 하마마을이라고 했으니 마을이 위아래로 나뉘어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버스에서 내려 이정표를 찾을 수 없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언덕 위쪽으로 거슬러 올랐다. 겨우 몇 분 남짓 걸음을 떼자, 산속으로 향하는 상마마을이라는 이정표는 몇 개의 암자 이름과 뒤엉켜 도로 위에 불쑥 나타났다. 화살표를 따라 조금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답게 들어서는 입구 양 옆에 우거진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무 둥치에 압류딱지 같은 식당 간판이 붙어있긴 했지만, 그 너머에 소담스레 자리하고 있을 마을 풍경이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식당 간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거슬러 올랐지만, 뒤이어 다른 간판 하나가 또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손님들을 끄는 간판이 아닌 마을을 안내하는 도로명 주소 표지판에 눈을 두면서 걸음을 옮겼지만, 이내 또 다른 간판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쩔 수 없이 간판을 따라 올라가니, 외제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대한 주차장이 나타났고 그 너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골목은 그 식당 앞에서 뭉텅 잘려있었다.

   하는 수 없이 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가 더 깊숙한 곳으로 방향을 트니, 길 끄트머리엔 여지없이 또 다른 식당이 거대한 철문의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무리 두리번거리며 주민들이 사는 집들을 찾아보아도 식당이 아닌 건물은 찾을 수가 없었다.

 

   길을 잘못 들었구나 싶었다.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가면서도 내 생각은 그뿐이었다. 다시 큰 길로 나오다 보니 잘 생긴 나무 둥치마다,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작은 골짜기마다 식당의 평상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곧 그곳에 사는 주민이고 그것이 곧 마을의 풍경임을 알고 있었지만, 산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평화로운 마을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은 그래서 더욱 짙어지기만 했다. 큰 길까지 나와 나는 길을 따라 다시 더 위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개구진 아이들처럼 여기저기 나무 위에 매달린 간판들을 피하지 않고서, 눈앞에 나를 이끄는 길만을 생각하며 차분히 내 걸음만 세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뒤엉킨 간판들은 내 앞 길을 막아섰고, 사람이라곤 조화(造花)처럼 화려한 색으로 친친 감은 등산객들이 전부였다. 골목을 끝까지 올라갔지만, 거대한 철문을 드리운 암자 하나가 길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을 뿐 어디에도 내가 상상했던 마을의 풍경은 만날 수가 없었다. 식당들 사이에 오래된 주택 서너 채가 보이긴 했지만,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간판들 사이에서 그건 마을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닮은 낯선 외지인처럼 보였다.

 

 

 

 

 

 

 

 

 

   마을 꼭대기 암자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기는 했는데, 무엇을 담았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암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간판이 없는 사진이 거의 없었다. 나무에 매달려 있거나 멀리 지붕 너머에 우뚝 솟아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고급차의 뒤꽁무니가 삐죽 나와 있어서 마을이 아니라 상가 뒷골목을 담은 것만 같았다. 내가 잘못 찾은 걸까, 애초부터 나는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와 있는 걸까.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은 길 위에서, 나는 한참을 멀뚱히 섰다. 그런 나를 놀리듯 어느 식당에서 통속적인 대중가요 가락이 흥얼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그대 없이는 못 살아

   나 혼자서는 못 살아

   헤어져서는 못 살아

   떠나가면 못 살아

 

   외지인임이 분명한 누군가의 추임새가 흥겨운데, 산자락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누가 떠나고 누가 남았을까, 왜 떠났고 또 왜 떠나지 않았을까. 금정산 자락을 들썩이며 울리는 노랫소리는 맴을 돌듯 계속 이어지는데, 나는 흥겨운 가락을 들으면서도 자꾸 어깨가 무너졌고 다리가 풀렸다. 어느새 우리의 즐거움은 이웃을 잃고 여기 이 마을은 언제 주민을 잃었던 걸까.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간판들은 사진 속 눈엣가시 같았는데, 문득 간판에게 몸을 내어준 나무들이 보였다. 그저 잘생겼다고만 생각했는데, 간판에 몸을 붙들려놓고도 어쩌면 그리도 풍채들이 좋으신지. 패이고 꺾이며 철사줄을 꽁꽁 둘러매고도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들은 어쩜 그렇게 씩씩한지.

 

 

 

 

 

 

 

 

   떠나가고 돌아온 것은 애초부터 없었구나. 사라진 것도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구나. 그제야 나는 눈을 들어 다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곧 꽃을 피우고 잎을 늘어뜨릴 나무들은 마을 곳곳에 우람하게 자리한 채,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누구든 무엇이든 떠나든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허약한 기다림마저 지워버리고, 또 한 해를, 그렇게 몇 십 년을, 어쩌면 몇 백 년을.

 

   더 이상 길이 없는 끄트머리에서 나는 암자 너머를 올려보았다. 수백 번의 겨울을 지나며 다시 부활하고 또 살아났을 산자락의 주인들이, 빼곡히 어깨를 걸고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겹겹이 나를 둘러싼 채, 따스해진 봄바람을 내 두 볼에 휘휘 불면서. 주인의 너른 품을 활짝 펼치며, 누구든 오시라 우리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정겨움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반기면서.

 

 

 

 

 

 

 

 

 

 

   인사라도 하듯 나는 그제야 산자락을 향해 활짝 웃었다.

   사람이 없다고 속상해하던 마음 따위 슬그머니 지워버렸다.

결국 그날 나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는데, 마을을 내려오는 걸음은 충분히 가벼웠다. 너무 많은 주민들의 환대라도 받은 것처럼 명치 아래가 훈훈했다. 기다린 것들은 오지 않았고 떠나간 것들은 사라져버린 그곳에서, 나는 제일 융숭한 대접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곳엔,

   나무들이 산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5

 

 

 

 

 

 

 

죽림동 - 육지 위에 섬

 

 

 

 

 

 

金 飛

 

 

 

 

 

 

 

 

 

 

   김해시청 바로 아래 자리한 죽림동이라는 마을은 흙빛의 바다 위에 떠있는 섬 같다. 언제나 국경 가까이에 흩어져야 했던 섬들의 운명처럼, 그곳은 부산이라는 지명을 지니고 있었지만 김해가 지척이기도 하다. 지도 위에서 살펴보니 네모나게 잘려진 평원 위에 다섯 개의 섬들은 낙동강을 끌어안으며 옹기종기 모였다.

이번에도 구포시장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 마을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데, ‘분도증사도니 섬의 이름과 꼭 닮은 정류장들은 금세 먼지 가득한 평원을 가르며 바다를 드러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버스는 잘 닦인 넓은 도로 위에 나를 내려놓았다. 부산의 강동동 쪽으로 뻗은 다리는 어떤 무게라도 실어 나를 수 있을 만큼 우람했고, 보이지 않는 너머에 흐르고 있을 낙동강은 물결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바다의 섬에 사는 사람들에겐 섬사람 특유의 우직함이 있다고 하는데, 육지의 섬에 사는 이들에겐 어떤 힘이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지. 혹시 나의 생이 알지 못하는 활력으로, 바다가 사라진 육지에도 낚싯대를 드리워 매일 펄떡이는 생명을 길어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바다 위를 걷는 듯, 나는 그렇게 천천히 도로를 가로질러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낡아 희미해진 간판과 널따랗게 잘 닦인 도로가 어색하게 뒤엉켜 어쩐지 첫인상은 불편했는데, 골목에 들어서니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의자가 나를 반겼다. 어느 집에선지 담장 너머까지 뻗어 나온 상록수는 머리 위로 물결치듯 일렁였고, 하나가 아니라 둘이 함께 나란히 기댄 작은 의자들은 혼자 온 내게 인사라도 건네는 듯했다. 의자에 앉지 않고 의자를 마주 본 채로, 나는 한참이나 그렇게 쪼그려앉아 있었다. 담장 너머에선 익숙한 트로트 가락이 넘실대며 흘러나왔고 의자 위에서 흔들흔들 몸을 들썩이는 누군가를 나는 구경이라도 하고 있는 기시감이 떠올랐다.

 

 

 

 

 

 

 

 

 

 

 

   골목 안으로 조금 더 들어서니 뒷짐을 진 할머님 한 분이 나타났고, 조용히 인사를 건네니 온화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섬사람의 우직함은 아니었는데, 낯선 사람을 대하는 그 미소가 참으로 넉넉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펄떡이는 생활의 힘이었는데, 주름진 미소 하나 만으로 금세 그곳의 정경은 달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디에서든 그렇게 인사를 드릴 때마다 그들에게 환한 미소를 건네받았던 것 같다. ‘낯선 사람이란 말의 불편함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일 뿐, 어쩌면 지금도 너무 많은 이들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사람으로 걷고 있는 내 허약한 몸이 참으로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깃발이 펄럭이는 골목 끝으로 할머님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섰다. ‘낯섦은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아니며, ‘사람도 결국 그렇게 나와 닮은 누군가일 것이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는데, 나는 자꾸 어딘가로 올라서고 있었다. 꼬불꼬불 이어진 골목을 오르니, 마을 한가운데 등대처럼 솟은 것이 보였다. 굴뚝이었다. 사정없이 타오르는 것들을 제 몸으로 보듬어 날마다 뜨거워졌던 시간을 기억하는지, 찌르듯 솟은 그것은 온기의 때로 검게 그을려 있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화염을 홀로 견디며 얼마나 오래도록 그곳에 그렇게 버티고 섰던 건지.

더 이상 아무것도 태우지 못하는 굴뚝은 차갑게 식었지만, 나는 그 위에 깃발이라도 걸어주고 싶었다. 더 이상 연기를 뿜거나 뜨겁게 타오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검댕과 흙먼지로 뒤덮인 고독한 흉터는 그 어떤 문명의 화려함보다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목소리 높여 외쳐야 할 것 같았다. 당신의 뜨거움을, 당신의 펄럭임을, 당신의 외로움을, 우리 알고 있다고.

 

 

 

 

 

 

 

 

 

 

   그렇게 한참을 굴뚝 아래 앉아있다가 골목을 따라 더 위로 오르니, 금세 인가는 사라져버렸다. 마을 끄트머리에 나와 앉은 오래된 TV 하나는 길을 막은 불량배처럼 건들대는 듯했다. 가볍게 그것을 뛰어넘어 수풀이 우거진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나는 어느새 높다란 나무들이 우거지고 키가 큰 대나무들이 사방을 가로막은 산 속에 와 있었다. 그 너머에 김해 죽도 왜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곳을 등진 채 숲 속으로 난 길로 발길을 옮겼다.

   내가 걷고 싶은 것은 지나간 길이 아니라 여기 이 길이며,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물리치고 승리한 영웅이 아니라 무기력하고 소심한 나를 닮은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밭이랑으로 난 좁은 길을 가로질러, 나는 높이 솟은 대나무 담장을 따라 걸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내 곁으로, 한껏 몸을 세운 청청한 대나무 줄기들이 따가운 오후 햇살을 산산이 부수어내고 있었다. 눈부신 세상의 열기를 거역하는 대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었다. 너무 작은 절이 나타났고, 나무 담장을 다듬던 주민 한 분이 나타났고, 다시 또 잘 닦인 도로가 나타났지만, 나는 널따란 도로를 따라 걷지 않고 다시 마을 속으로 난 좁은 길로 들어섰다. 일어서지 못한 누군가를 내던진 두 개의 신발이 수풀 속에 드러누웠고, 발길질 같은 신발의 몸짓을 피해 걷다가 나는 그만 휘적거리며 발을 헛딛고 말았다. 발에 걸려 넘어지듯 나는 주저앉았고, 내 발목은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래, 우린 어차피 그렇게 걸려 넘어지고 말지.

사람들 속에서 더욱 고독해지는 여기,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거기. 그래도 다시 또 일어서야 하지, 걸어가야 하지.

 

   절룩거리며 나는 작은 공원을 지나,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시멘트로 얼기설기 만든 계단은 높낮이가 제멋대로였고 부은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잔뜩 몸을 낮춘 가로등이 허술한 담장에 매달려 나를 내려봤고, 우렁찬 개의 울음소리가 야유하듯 쩌렁쩌렁 울렸다. 한 쪽 다리를 끌며, 허약하게 무너져내린 다짐들을 끌어안으며, 나는 간신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익숙한 풍경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인사하듯 나를 반기던 바로 그 의자 두 개.

 

 

 

 

 

 

 

 

 

 

 

 

   나는 더 이상 서있지 못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오랜 시간 걷고 또 걸었는데, 나는 겨우 제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내 머리 위에서 새하얀 비행운을 그리며 무언가 날아갔고 담장 너머에선 노랫가락조차 들려오지 않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춤을 추는 것이 아니었다. 통증 때문이었다.

 

   갑자기, 몹시도 사람이 그리웠다.

 

   쪼그려앉아 나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텅 빈 내 곁에 와 앉을 사람이.

   내가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 사람이.

 

 

사진: iPhone 4S © 김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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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시랑리 - 등 뒤에 타오르는 빛 

 

 

 

金 飛

 

 

 

 

 

 

 

 

 

   비가 갠 하늘은 시리고 서늘했다. 그토록 짙은 파랑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을 듯한데, 내겐 모든 또렷한 것들이 그저 나를 겨냥한 것만 같았다. 흐릿하고 모호한 것들은 물러서라, 처연하고 우울한 것들에 사로잡힌 생각들은 집어치우라. 무작정 웃어라, 열광하라. 저 하늘의 순리마저 지상의 생명들에게 청청한 축제를 명하노니, 우리들의 책무는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향유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몸서리치도록 투명한 풍경 앞에 말을 잃는다. 아름다운 것들을 향해 경탄하는 그들 뒤로 몸을 숨긴다. 그 모든 것들을 등지고 돌아서니, 또 다시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위기의 순간마다 모성을 부르짖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습성인지, 나는 또 다시 그렇게 나도 모르게 바다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바다를 만나기 위해, 나는 부산의 제일 끄트머리인 기장으로 향했다. 기장은 1914년에는 동래에, 1973년에는 양산에, 그리고 다시 기장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지금의 기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위쪽으로는 울산에, 서쪽으로는 양산에, 그리고 남쪽으로는 금정구에 맞닿아있는 기장군은, 갑화양곡(甲火良谷)이라 하여 원래 이름도 변두리마을, 혹은 큰 마을로 불리었다고 전해진다. 그 중에 기장읍의 시랑리로 향한 것은 온전히 축축하게 젖어만 있던 나를 (‘사랑이라는 말과도 닮은) ‘시랑으로라도 위로해주고 싶은 알량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양산에서 버스를 타고 보니, 내가 가야할 길은 부산 해운대를 거쳐 다시 기장군 쪽으로 올라가는 노선이었다. 기장군은 양산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니 그저 동쪽으로 가서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될 듯했지만, 그렇게 갈 수 있는 버스 노선은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있더라도 시간을 맞추어 일일이 갈아타며 갈 수도 없었다. 자동차를 몰고 갔다면 50여분 남짓 될 거리를, 하는 수 없이 나는 두 시간 반 넘게 걸려 양산에서 부산 해운대 쪽으로 갔다가 다시 해운대에서 송정을 지나 기장 쪽으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가 닿을 수 없는 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 가 닿는 거리와 물리적으로 가능한 거리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 그렇게 크고 넓기만 했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가다 보니, 시랑리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하늘에 저녁 기운이 무럭무럭 번지고 있었다.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 덕분에 마을의 정경은 더욱 조용하고 고즈넉하기만 했다. 엄마의 품에 안기듯 나는 마을 한 복판에 뛰어들었다.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감들은 저녁 빛 때문에 더욱 붉었고 어느 집 마당에 높이 솟은 솟대는 당당하게 바다 쪽을 넘겨보고 있었다. 뒷짐을 진 어르신이 골목을 거슬러 올라갔고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그저 까딱 .’하고 그녀가 대답했던 것뿐이었는데, 어쩐지 마음은 훨씬 더 가벼워졌다. 이미 겨울 바람으로 돌변해버린 저녁의 기운은 쌀쌀했는데, 내 안에서 바스락거리며 무언가 말라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바다 쪽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경쾌했다. 골목 여기저기에 자리한 조용한 집들을 사진 속에 담으며,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인적이 사라지고 없어도 괜찮은 정경을 기억하며, 나는 시간 속에 버려진 나를 쓰다듬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바다는 방파제로 가로막혔고 여기저기 작은 어선들이 몸을 기댄 채 쉬고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그것이 사람들에 의해 점령당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내어준 바다의 몸짓임을 알 것만 같았다. 바닷가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노인분들을 다시 만났고,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청했다가 손사래를 받았지만 그래도 나는 속상하지는 않았다. 정중히 그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나와 다시 바다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저만치 포구 끄트머리에 할머님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어스름 저녁 빛에 물들어가는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고즈넉이 그녀가 바라보는 바다는, 그녀의 머리 위에 날고 있는 새는, 매일 밤 그녀를 비추었던 가로등의 큰 키마저도, 어쩐지 오늘은 달라보였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녀에게서 물러나, 나는 계속해서 방파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어부들이 어지럽게 엉킨 것들을 육지로 끌어 올리고 있었고, 나는 그 건너편 동해 상회라는 이름의 작은 건물에 눈을 빼앗겼다. 그저 남쪽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동해라니 누군가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아 엉성하게 웃고 말았는데, 셔터를 누르고 나니 여기가 남쪽이면서 동시에 동쪽이었다는 깨달음이 불현듯 스쳐갔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쪽으로 돌아서 나 혼자만 더욱 넓은 세상을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한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틀린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고, 여기는 남쪽이면서 또한 동쪽이며 어딘가의 북쪽이면서 또한 서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궁지에 몰려있다고만 생각했던 내 등 뒤를 허물어내는 고마운 몰락이었다.

 

 

 

 

 

 

 

 

   방파제 위를 걸으니 그 좁은 길이 더욱 좁고 또한 멀게만 느껴졌다. 아니다. 어쩌면, 한 발 더 내가 걷는 그 길은 넓어졌고 또한 내 걸음으로 방파제는 당연히 가까워지고 있었을 것이다. 축축하다고만 생각했던 내 기억은 생명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채였고, 그늘 속에 있다고 믿었던 여기는 그저 저녁 빛을 조용히 감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늘이 밤이 되고 밤이 다시 새벽이 되어 또 다시 그늘이 드리우더라도, 여기 이곳의 아침은 조용히 세상의 하루를 기록할 것이다.

 

   슬프지만 울지 않은 채로, 나는 그렇게 바다 앞에 섰다. 주저앉고야 말았지만 쓰러지지 않은 채로, 나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괜찮겠구나, 여기 이렇게 무기력하고 비겁한 삶을 살게 되더라도, 비통하게 오열하고 몸부림칠 수 없더라도, 나의 그늘은 또 그렇게 하루의 싹을 잉태하고 있겠구나.

 

   가장 남루하고 보잘 것 없는 삶을 부여받았지만, 처음으로 나는 내 앞의 시간에게 두 손을 벌렸다. 아무 것도 용서하지 않은 채로, 혹은 용서받지 못한 채로 나는 다시 내일을 꿈꾸고 있었다. 기꺼이 몸을 열어 그 혹독한 시간에 나를 내맡기면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시간을 내 스스로 품어 안으며.

 

   고개를 돌려보니, 잔뜩 웅크린 내 등 뒤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날개를 단 영혼들이 마음껏 하늘을 날았고, 시커멓게 밤의 기운으로 뒤덮인 어둠 속에서 황금색 저녁이 불을 뿜으며 폭발하고 있었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09 : 선동 – 폭우의 가르침 

 

 

 

 

 

金 飛

 

 

 

 

 

 

 

 

 

   비가 내리면 비를 맞아야 한다. 비를 피해 이리저리 뛰어봐야 소용없다. 무엇에든 스며들고 젖어드는 빗줄기를 피할 방법은 없다. 처마 밑으로 뛰어드는 일은 기껏 머리 위에 쏟아지는 방울을 가리는 것일 뿐이고, 사방 문을 닫고 방에 틀어박혀도 세상을 적신 축축한 물기운은 금세 문지방을 넘어온다. 폭우를 예보하는 리포터들의 음성은 점점 다급해지지만, 국지성이라는 핑계는 쏟아지는 비를 막아서지 못한다. 불어난 물에 잠기고 휩쓸리는 것들을 우리는 넋을 잃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속에 내가 없기를,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이기적이고 얄팍한 바람을 소원하며 우리는 식은 땀을 닦아내야 한다.

 

   겨우 우산 하나 준비하고 일이 아니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태로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오래 전부터 오늘을 가늠해야 했을 것이다. 오늘은 다시 아득한 미래를 위해 마련해야 하는 다급한 시간이다. 어제를 게을리하다가 오늘을 잃고 오늘을 놓치면서 내일을 꿈꾸고 있는 것이, 지금 폭우 속에 비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오늘 같은 어떻게 사진을 찍느냐고 누군가 만류했지만, 나는 커다란 우산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혼자서 쓰기에 우산은 너무 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우산에 채이고 밀리며 거리 위에 사람들은 내게 눈을 흘겼지만, 나는 우산 아래 혼자만의 안위를 생각하며 씩씩하게 걸었다. 낡은 슬리퍼 하나를 끼워 신은 맨발이었다. 냇물을 건너듯 서로 다른 물길이 흐르는 골목을 지나 여러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서, 나는 부산의 북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선동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회룡저수지를 품은 마을은 이미 세찬 빗줄기 속에 흠뻑 젖고 있었다. 나를 내려놓은 마을 버스는 어차피 이상 가지도 못하고 곳에서 방향을 틀었다. 우산을 받치고 운전기사는 버스를 정비하려 했지만, 사나운 빗줄기는 우리들을 나무라듯 사방에서 들이치고 있었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저수지를 향해 나는 여러 셔터를 눌렀다. 하늘과 수면의 경계는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 흐릿했다. 포말의 먼지를 일으키는지 수면 위에 세상은 황량한 미래를 경고하듯 흙빛이었다. 하늘도 없고 초록의 푸르름도 없으며 수면 위에 잔잔히 흘러가는 평화도 없었다. 사람의 시체라도 토해낼듯 몸으로 세찬 빗방울을 견디고 있는 흙빛 풍경은 시커먼 심연을 감추고 있었다. 어차피 고즈넉한 풍경 따위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눈앞에 드러난 물빛 투쟁은 엄청났고 힘으로 부딪히며 쏟아내는 파열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지워버리는 듯했다.

 

 

 

                                                                

                              

  

 

 

 

   허겁지겁 나는 작은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인적이 없는 골목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빗줄기의 차지였다. 어차피 평등하지 않은 위에 서로 다른 크기의 웅덩이를 새겨놓고, 빗물은 누구든 집어삼킬 태세였다. 무지개 우산을 주민이 다급하게 골목길로 나섰지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혼자서 꿈꾸는 무지개는 안타깝게도 그저 조악할 뿐이었다. 다른 주민이 트럭을 이끌며 골목 끝에서 달려 나왔지만, 마개를 놓아버린 세계의 결심은 너무도 쉽게 우리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우산 하나를 간신히 들고, 이제는 모두 같은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쓸모없이 커다란 우산을 접으며 나는 버려진 집의 낡은 처마 아래로 들어섰다. 잔뜩 찌그러진 처마 아래 유리문 너머엔, 버려진 공허가 가득했다. 그렇게 버려지고 낡은 채로, 다시 누군가에게 몸뚱이를 내어주는 집의 몸짓이 나는 여전히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물론 절박한 순간에도 남의 어리석음을 탓하고만 있는, 구제불능의 어리석음이기도 했고.

 

 

 

 

                              

 

 

 

  처마 아래에서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노래 같기도 하고 다급한 종용 같기도 하다. 버려진 몸짓을 흉내내며 나는 낡은 집에 조심스레 기대어본다. 내가 버린 것들에게서, 내가 잊어버린 것들에게서 따스한 온기를 기대하는 꼴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뻔뻔스럽게 눈을 감는다. 그런 나를 손가락질하려고 매년 폭우는 그렇게 거세어지고 있는 건지도.

 

   도망치려면 걷는 수밖에 없다. 제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날마다 위협하는 세계를 탈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커다란 우산을 펴며 나는 골목길로 나섰다. 산길로 이어지는 것만 같은 골목에 들어서니 다듬어진 초록의 나무들이 도열하듯 눈앞에 나타났다. 너무도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아름답다고 말할 뻔했다. 깎이고 패이는 것이 자연의 섭리일 , 인공의 아름다움은 조작된 시간임을 우리는 모두 잊은 살고 있다. 그렇게 반듯한 세계를 지키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들이 훼손되고 찢겨져버렸다. 반듯하다는 것이 일직선으로 가지런하리라는 것은 편견일 , 들고 나며 멋대로 키를 키운 것이 어쩌면 가장 반듯하고 가지런한 시간인 것을.

 

 

 

 

 

 

 

   다시 곳에서 돌아나와 다른 골목으로 올라섰지만, 마을은 발자국 지나지 않아 쉽게 끝나버렸다. 다시 돌아나와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지만, 곳에도 이상 마을은 이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폭우 속에 길을 나섰으면서도 평화롭고 고즈넉한 마을 풍경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 골목 여기저기를 헤매 다니며 나는 상실감에 몸을 떨었다. 다급한 몸짓의 주민들도 이상 보이지 않았고, 빗물이 흘러넘치는 거리에서 나는 너무 커다란 우산을 혼자였다. 밤의 어둠마저 드리우면 어쩌나 순간 겁이 , 다시 정류장 쪽으로 도망치듯 발길을 옮겼다. 전쟁터 같았던 저수지 풍경을 다시 보게 생각을 하니 마뜩잖았는데, 전까지 뿌옇던 수면 위가 말개지고 있었다. 고개를 드니, 무섭도록 쏟아져 내리던 빗줄기도 어느새 사그라졌다. 그저 희미하기만 했던 저수지 건너편의 산자락도 초록의 풍경을 수줍게 드러냈고, 저수지를 가득 채웠던 습기는 하얀 구름이 되어 조용히 산자락을 품어안고 있었다. 투명해진 하늘은 한껏 울고 세상의 같았다. 울먹이며 이제 자신을 끌어 안아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섰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듯 세계를 위협하던 폭우는 마침내 멈췄다.

 

 

잊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08 : 재송동 - 마을, 단지, 빌

 

 

 

 

金 飛

 

 

 

 

 

 

 

 

   갖가지 생명들이 의지해 사는 땅을 인간의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것에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그 분야에서 매해 전국의 땅에 돈 가치의 순위를 매기는 모양이다. 그 중에 가장 상위에 속하는 지명의 이름으로는 서울의 강남이라든가 명동의 이름이 있었던 것 같고, 부산에는 단연 해운대와 서면의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해운대와 서면은 부산을 대표하는 그 중심이라고 이야기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그럼에도 해운대구의 높이 솟은 건물과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불빛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높고 화려한 것들을 짓기 위해 무너지고 부서졌던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좋은 시절에 살면서 옛날 것들을 떠올리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무작정 화려하고 찬란한 시대만을 쫓으며 너도 나도 광적으로 매달리는 것이 더욱 '착오'적인 것은 아닌지,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되묻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번에는 부산의 바깥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인 해운대구로 향했던 것은, 이 질주하는 세계에 던지는 그러한 물음이기도 하다.

 

   해운대구의 재송동은 여러 백화점들과 영화의 전당, 그리고 무수히 많은 아파트 단지의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고개를 들면 어디에서나 마을 너머의 하늘을 반 쯤 가린 아파트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재송동 마을 자체가 장산 자락에 드리워져 있음에도, 수영강 천변으로 이어지는 마을의 시선은 높다란 고층 아파트 건물에 꽉 막혀있다. 아파트라는 공간 속에도 똑같은 이름의 마을 주민이 살고 있음을 알지만, 푸른 산자락이나 하늘 대신 아파트 건물을 올려 보고 살게 되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유창맨션 앞 정류장에서 내려 재송동 쪽으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갔다. 부산의 어디나 그러하듯 가파른 비탈에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몸을 실었는데,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가 나는 화들짝 놀라 허리를 꺾었다. 수영강 천변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 건물이 너무 높아, 햇살을 등지니 그 모습이 말 그대로 괴괴했다.

   장산 자락 쪽으로 더 올라갈까 망설이다가, 나는 고층 아파트 단지에 붙어있는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섰다. 시간의 때를 입은 채 오래도록 그곳에 자리했을 낮은 주택 건물들은 하나 같이 거대한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였다. 답답한 느낌이 들어 골목을 돌아섰는데도, 길 끄트머리엔 또 다른 아파트 건물이 가로 막고 있었다.

   좀 더 마을 깊숙이에 들어서니 다행히 키 큰 나무들이 장승처럼 우뚝 서서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부산의 가장 번화가라는 해운대 지역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우거진 수풀과 높은 나무들은 내 앞에 또 다른 차원의 문을 열어주었다. 생뚱맞게도 '청송 슈퍼'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 너머는, 영락없이 나를 산자락 깊숙한 곳의 시골 마을 안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초록 이끼로 뒤덮인 담벼락의 축축함이 그 순간 얼마나 반갑게 느껴지던지.

 

 

 

 

 

 

   나는 되도록 등 뒤에서 나를 내려보고 있을 고층 건물들은 잊어버린 채, 마을 여기저기를 천천히 걸었다. 이미 철거가 끝나버린 집터에는 안타까운 덩굴만 방 안까지 들어와 주인을 찾고 있었고, 비슷한 또래의 두 주민은 나란히 걷다가 말고 심각한 이야기라도 주고받는지 골목 끄트머리에서 서로에게 낯을 붉히는 듯했다. 두 분의 사정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는 멀리 돌아서 더 위쪽으로 향했다.

 

 

 

 

 

 

 

 

 

   언제 그려놓았는지 알 수 없는 벽화들은 이미 색이 바랬고, 집에서 내쫓긴 부서지고 깨진 것들은 시위하듯 좁은 골목에 나 앉았다. 또 다시 눈앞에 나타난 커다란 나무가 반가워 올려보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아파트 건물에 새겨진 이름이 슬쩍 그런 나를 넘겨보고 있었다.

   골목을 걸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나는 이미 마을을 둘러싼 아파트 단지 정문에까지 와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등진 채 낡은 담벼락을 넘어온 감나무를 올려보고 있으니, 열린 문 안 쪽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어서 들어오라, 감나무는 들어와 찍으면 더욱 예쁘다, 할머니는 생전 처음 보는 나를 문 안으로 들이며, 여기가 좋다, 거기가 좋다, 사진에 예쁘게 담길 곳을 일일이 일러주셨다. 그러면서도 한사코 당신은 사진에 담기지 않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내게는 빨갛게 익어가는 감 몇 알 보다, 할머니의 그 손짓 몇 번이 훨씬 더 아름다웠는데 말이다.

 

   '집 앞에 아파트 때문에 답답하시죠?' 그렇게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고작 힘겹게 감춘 흉터를 손가락질 하는 꼴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그저 평상 위 할머니 곁에 앉아 할머니가 가리키는 감나무만 올려다봤다. 이제는 햇살 한 자락 받아내기도 쉽지 않은 이 그늘진 자리에, 어쩌자고 열매들은 저렇게 빨갛고 탐스럽게 달렸는지.

   '할머니, 저 가볼게요.' 주름 가득한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고 나는 문을 나섰다. 한 쪽에는 높이 치솟은 아파트 건물을 어깨에 걸고, 또 다른 한 쪽에는 감나무를 가리키던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한 채, 나는 천천히 골목을 걸었다.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가 되어버린 골목을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담벼락 한 구석에 색색의 우산 하나가 세워졌다. 누가 잠시 세워둔 것인가 싶었는데, 우산 끝에 작은 돌멩이가 괴어져 있었다. 비도 오지 않았고 금세 내릴 것 같지도 않은데, 누군가를 위해 거기에 세워졌을 우산 하나가 뭉근하게 마음속을 데워 주었다. 비를 피하라는 부모의 마음일까, 그도 아니면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마음 씀일까.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멀리 헤아린 생각일까. 나는 작은 돌로 괴어진 그 우산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저렇게 높이 치솟아 발아래 세상을 키워가면서도, 우리는 여기에 없는 누군가를, 우리 앞에 닥칠 먼 시간을 그렇게 헤아릴 수 있을까. 화려하고 찬란한 세상에 눈멀지 않고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 수 있을까.

 

   갑자기 눈앞이 먹먹해졌다. 어느새 사방이 깜깜해지고 있었다. 저녁 햇살마저 가리운 거대한 건물 때문인가 싶어 눈을 드니, 멀리에서 시커먼 구름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기우(杞憂)라고 치부해버렸을 그 위태로운 시간이,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괘법동-모두가 여행자들

 

 

 

金 飛

 

 

 

 

 

  도시에 이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부산에 가 닿는 길도 여럿이다. 아무리 많은 길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부산에 가 닿겠지만, 그 모든 길들은 서로 다른 표정으로 우리들을 안내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목적지는 부산이지만, 우리가 떠나온 여행으로 가 닿고자하는 곳은 부산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쳐버린 길 위에, 지금 걷고 있는 이 걸음 아래, 내일 모두가 헤매게 될 어딘가에, 이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여행을 시작했지만, 이것은 목적지에 가 닿기 위한 여행이 아니다. 떠났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여행이며, 길을 잃었다면 여행의 한 가운데 들어와 있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괘법동은 노포동과 함께 부산으로 들어오는 관문들 중 하나이다. 노포동에는 노포버스터미널이, 괘법동에는 사상버스터미널이 그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괘법동에는 김해 쪽으로 이어진 사상 경전철 역에 지하철역은 물론이고 기차역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부산의 입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그곳을 목적지로 정해놓고도, 그러나 나는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이 작업을 통해 더듬게 될 '소외'라는 의미와 가장 동떨어져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짐을 꾸리며 나는 망설임이 없었다. 소외란 가장 고독하고 외로운 곳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있는 분주함 가운데 내동댕이쳐진 소외가 때로는 더욱 아프게 사무친다.

 

  소외는 내가 없는 곳에 있으며,

  또한 내가 지나쳐버린 곳에 있다.

 

  이번에는 사진을 취미로 하는 지인과 함께였다. 그는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이었으며, 내게는 지금도 여전히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듯 보였다. 공교롭게도 그날 밤에 또 다른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으니, 그래서 나는 마치 여행자의 안내라도 받는 듯 마음이 설레었다.

우리는 사상 기차역 뒤편을 목적지로 정해놓고, 경전철 역 앞에서 만나 골목으로 들어섰다. 무수히 많은 사람과 자동차들로 북적이던 광장의 소음은, 골목에 접어들어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여전히 분주한 광장의 풍경이 골목의 끄트머리에 생생했는데, 이미 나는 다른 세계 안에 서 있었다. 그곳과 여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드리운 것만 같았다. 단지 가벼운 몇 걸음만으로도 쉽게 넘어설 수 있는 벽. 도로 위 빗물 웅덩이 속에 고인 조각난 마을 풍경은 그러한 나의 판타지를 증명해주는 듯했다.

 

 

 

 

 

 

 

 

  골목에 들어서 첫 번째 모퉁이를 돌았을 뿐인데, 놀라운 광경은 계속해서 다시 한 번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굴이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것만 같은 삼각형의 낮은 굴은 무거운 신호등을 이고 수줍게 드러났다. 빨간 불이 켜진 굴속에, 그리고 '사람은 출입금지' 라는 푯말을 단 굴 속에 겁 없이 들어서며, 나는 탄성을 질렀다. 여기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가 먼저 앞서 걸었는데, 굴속에서 울려 퍼지는 내 탄성이 신기해 내 걸음은 자꾸 느려졌다.

 

 

 

 

 

 

 

 

  굴을 나오니 머리 위에서 기차 소리가 들려왔다. 여행자인 그는 잠시 동안 기차소리를 듣고 서 있었다. 그 소리가 좋다고 말했다. 오래도록 그 소리가 그리웠다고. 그 기차가 가 닿는 곳이 아니었다. 그저 그 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우리는 작은 굴이 떠받치고 있던 철로를 따라 걸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커다란 개가 우리 뒤를 쫓아왔고, 흰 러닝셔츠를 입은 마을 분이 개를 따라 나왔다. 커다란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 나를 보고 그는 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웃으며 '.' 하고 말았다. 반가운 개의 꼬리짓만으로 내 대답은 이미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괘법동의 끄트머리인 능인사 쪽으로 걷는데, 길은 자꾸 산 쪽으로 올라갔다. 조금씩 숨이 차오르기 시작할 무렵 고개를 드니, 또 다시 마술처럼 다른 모양의 굴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조금 더 높고 넓은 굴이었다. 여전히 신호등을 머리에 인 채였다. 오고 가는 자동차를 살피며 굴을 지나가니, 이번에는 마을이 아니라 온통 나무들뿐인 산자락이 펼쳐졌다. 그저 열 걸음 남짓한 굴을 지났을 뿐인데, 세상은 또 다시 온통 달라져버린 것만 같았다. 어차피 하나로 이어진 세계였을 텐데, 작고 좁은 굴 하나를 지나서 나는 이미 다른 세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큰 도로로 이어지는 능인사로 가던 길을 되돌아, 우리는 다시 굴을 지나 마을 쪽으로 향했다. 지척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을은 고요했다. 골목으로 올라가는 계단 끄트머리에 작은 석불을 따라 오르니, 뒤에서 누군가 따라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머리를 높이 말아 올린 중년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그 위쪽 절에 기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물으니, 계단 난간에 몸을 기대며 그녀는 정겨운 포즈를 취해주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다시 계단을 내려와 마을 쪽으로 걸었다. 겨우 굴 두 개를 지났고 환하게 웃어주는 주민들을 만났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운 소리를 토해내며 또 한 번 기차가 지나갔다. 멀리서 광장의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는데, 골목 너머에서 갑자기 나타난 밭을 일구는 노인 부부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무릎이 아픈지 할머니는 자주 무릎을 짚었고, 무심한 할아버지는 모른 척 가지런히 이랑을 내고 있었다. 동행과 나는 한참을 그 앞에서 바라보았다. 당신들이 씨를 뿌리고 키웠을 초록 채소들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도, 또 다시 이랑을 내고 씨를 뿌리시는 구나. 지나온 시간만으로도 오늘이 버거우실 텐데, 또 다시 미래를 키우는 몸짓은 어떤 의미인 건지. 그러고 보니 지난 번 촬영에도 망가져버린 마을 한 가운데서 묵묵히 밭을 일구던 주민 한 분이 생각났다. 반갑고 아름다운 풍경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아서 걸으며 나는 자꾸 고개가 꺾였다.

 

 

 

 

 

 

 

 

  인적이 사라져버린 도로를 벗어나 걷다가 또 다시 세 번째 굴을 만났을 때, 이미 내 머릿속은 몽롱해져 있었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엉킨 것만 같았다. 이번에 만난 굴은 너무 작았다. 그렇게 작은 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작고 낮은 굴이라고 하더라도 하다못해 서너 사람쯤은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보통인데, 그것은 정수리가 닿을락말락할 정도의 낮은 한 가운데로 겨우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것만 같은 크기였다. 나란히 걷지도 못하고 앞뒤로 걸어 굴속에 들어서니, '사람'이 아닌 한 '마리'가 된 것만 같았다. 결코 누구에게도 헤아려질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생물들처럼 우리는 잔뜩 몸을 움츠린 채 굴속을 걸었다. 천천히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멀리 우리가 들어선 굴의 입구가 허공 속에 매달려 있었다. 분명히 좀 전에 우리가 들어섰던 곳이었는데, 그곳은 그저 너무 멀고 아득하기만 했다.

 

  내 뒤에 걷고 있던 그는 돌아서서 한참이나 그곳을 바라보았다. 삶이라는 시간을 여행하고 있는 그는 너무 작아져버린 그곳을 보며 무슨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을까.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손톱만한 시간의 구멍은 여기까지 와버린 우리들에게 어떤 숨을 불어넣으려는 것일까. 몇 걸음 앞에 우리들을 맞이할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그대로 주저앉고만 싶었다. 고독하고 외로운 곳에 갇혀,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 속에 나를 눕히고 싶은 어리석은 욕망은 자꾸만 내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

 

 

 

 

 

 

 

 

  작은 굴을 나와 다시 마을 속으로 접어들자,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더욱 분주하고 시끄러워졌다. 재건축이 지정된 상가 건물 셔터 위에 위험을 알리는 붉은 글자와 표식들은 선뜩했지만 우리는 묵묵히 그 앞을 지나쳐 갔다. 모퉁이 좌판에 모여 계신 주민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카메라를 들었다가 욕설과 다름없는 호통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또 다시 마을 안 쪽으로 골목을 거슬러 올라갔다.

  시간을 가르치듯, 굴을 지날 때마다 다른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또 다시 우리 앞에 네 번째 굴이 나타났을 때, 이제 나는 설레지도, 두려워하지도, 그렇다고 그 앞에서 망설이거나 물러서지도 않았다. 담담하게 내 곁에서 걷고 있는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굴속을 지나갔다. 또 다시 다섯 번째 굴이 나타났고 굴 밖으로 휘어진 길은 가팔랐지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 없이 그 길을 걸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따라갔을 때, 모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인공의 언덕 위에 아이들은 맨발로 뛰고 구르며 마음껏 웃고 있었다. 차마 들어서지 못한 바깥에서, 나는 연신 '예쁘다, 예쁘다!' 중얼거렸다. 몇 개의 굴을 지나왔든 지나게 되든, 그들에게도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쉬어갈 수 있는 비현실적 시간이 우리 앞에 나타나주기를 바라면서.

 

  그 날 저녁, 그는 그의 여행을 떠났고

  나도 나의 여행으로 돌아왔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Thanks to 조덕래 님

 

 

 

 

 

 

 

동삼동-바다의 말

 

 

金 飛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 바다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 앞에 선 듯 바다 앞에 서면 괜히 뭉클해진다. 어차피 바다라는 세계의 모성을 헤아리는 일은 나에겐 불가능한 것인데, 닮은 얼굴이라도 확인하려는 듯 나는 한동안 묵묵히 바다만 바라보게 된다. 나라는 생명을 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존재를 고민하기 이전의 근심이 떠올라 어쩐지 자꾸 먹먹해진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바다가 품어 안은 마을은, 바다에 기대어 살고 있는 마을은 그렇게 포근하고 평화로운 감상을 일깨운다.

 

  애초에 부산의 바깥을 돌아보기로 계획하면서, 그래선지 바닷가 마을에 대한 기대는 제일 크게 부풀어 올랐다. 부산이라는 이름 뒤에 따라오는 무수히 많은 해수욕장과는 멀리 떨어져, 오롯이 바다에서 나고 바다의 힘을 빌어 평생을 살고 있는 순수한 마을과 사람들의 풍경을 꼭 사진으로, 글로 담고 싶었다. 어차피 내가 바라는 기대와 여기에 실재하는 시간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꾹꾹 눌러 담은 기대는 이미 차고 넘쳤던 것 같다.

 

  가장 어렵고 난해한 문제일수록 의외로 가장 가까운데 해답이 있다고 했으니, 그래서 나는 부산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태종대 뒤편의 바닷가 마을 동삼동을 목적지로 정했다. 하루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관광지 주변을 목적지로 정하고서도, 나는 가장 가까운 바깥에, 가장 소외되어 있는, 그래서 더욱 순수한 마을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어리석게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동삼동까지 조금 걸어 내려가야 하는 정류장에 도착하고서도 나는 저녁 무렵의 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네 시간 정도 더 그곳에서 기다렸다.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는 한낮의 뜨거운 햇살만큼 재미없는 빛은 없기에 좀 더 내가 기대하는, 마을 풍경과 어울리는 빛을 만나기 위해 그 정도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느새 조금씩 햇살이 피로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관광객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종대 입구 아래로 빙 돌아가게 되어있는 동삼동 외곽 마을의 입구는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이상한 나라의 구멍 같았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에 거대한 철의 벽이 드리워 있는 것을 보면서도 나의 기대감은 여전히 견고했다. 사각의 구멍 너머로 용도를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이 서 있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고즈넉한 바닷가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지해변이라는 이름의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먼 바다는 기대했던 대로 평화롭게 서서히 저녁 빛으로 물들고 있는데, 해변가에는 술에 취한 관광객들과 호객을 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뒤엉켜 있었다. 크지 않은 해변은 식당의 가건물들로 모래 한 자락 보이지 않게 꽉 들어차 있었고, 파도가 들이치는 바닷가에는 가건물들에서 나온 무수히 많은 푸른 호스들이 바다까지 길게 드리워져 뒤엉켜 있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저녁 무렵의 바닷가 마을을 상상했던 나는 망연자실 망망대해를 넘겨보았고, 인공호흡이라도 하듯 호스를 꼽고 있는 바다 곁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이곳의 생존 방식 아닌가. 모든 편견이나 선입견이 그러하듯 그것은 비단 타인의 것만이 아닌, 어리석은 나의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편견의 당사자인 소외된 자들의 편견이나 선입견은 그 어떤 것보다 지독하고 고약하지 않은가.

 

 

  나는 홀로인 나를 붙드는 상인들의 손을 웃으며 물리치고는 마을 쪽으로 걸었다. 왠지 헐떡이는 것만 같은 바다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으려 애를 쓰며 천천히 비탈에 자리한 마을로 들어섰다. 마구잡이 자란 초록의 풀들을 따라, 그 속을 비집고 드리운 작은 길들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몇 개 되지도 않는 집들을 지나 비탈에 올라서니, 마을 한 가운데가 텅 비었다. 아니 빈 것이 아니라 갖가지 이해할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야적장인지, 산업쓰레기들을 모아 놓는 곳인지 마을 한 가운데 널따랗게 자리한 곳에선 퀴퀴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듬성듬성 초록의 풀들이 뒤엉켜 있었지만 그건 자연스럽지도 그렇다고 정겹지도 않았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구조물들과 녹슨 물건들에 뒤엉켜 그건 차라리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시 비탈을 내려와 나는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수풀이 우거진 한 가운데로 나무판자가 이리저리 놓인 길이 나 있었다. 한 발 내디뎌보니 늪에라도 들어선 듯 그 아래가 출렁거렸다. 위태로웠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끝까지 판자 길을 따라가니, 작은 실개천으로 생전 처음 보는 색깔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늘색 빛을 띤 물이었는데, 하늘빛이 드리운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이물스럽고 안타까운 하늘색은 생전 처음이었다.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서 허망하게 마을을 둘러봤다. 바닷가에서는 계속해서 고성이 들려왔고, 마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찼다. 비탈에 힘없이 선 어느 집에서 뒷짐을 진 주민이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는데, 그곳에 서있는 내가 참으로 죄송스러웠다. 그곳이 오래도록 그 분들의 생활공간이라면, 내가 떠올리고 있는 그 모든 생각과 감정은 불손하고 오만한 것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어깨가 축 늘어져 다시 푹푹 빠지는 판자 길을 돌아 나오는데, 비탈 한 쪽에 무언가를 열심히 심고 계시는 주민이 보였다. 이토록 안타까운 시간 속에도 묵묵히 미래를 심고 계시는 그 분이 참으로 반가웠다. 그리고 나는 한참이나 그 분 앞에 서서 한 알 한 알 미래를 심는 그를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내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는 계속해서 흙 속에만 얼굴을 묻고 계셨고, 그의 모습 너머로 어디에서 솟았는지 알 수 없는 태극기가 촐싹맞게 펄럭거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만났던 것은 진정한 소외의 풍경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예쁜 소외를 꿈꾸었던 어리석은 내 앞에, 가장 극단적인 모습으로 소외의 맨 얼굴이 드러났던 건지도.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삶이 아닌가, 아무리 내가 기대하는 모습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그들의 삶이 있지 않은가. 나는 엇갈리며 떠오르는 그 복잡한 생각들을 바쁘게 오고가면서, 술에 취한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뒤섞인 그곳을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우리의 안타까움은 왜 매번 그토록 게으른가. 여기를 지키는 것과 나를 지키는 것이 충돌할 때, 현명함이란 얼마나 잔혹해지는가. 소외되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그 많은 시간의 늪을 어떻게 건너야하는 건가, 해답이란 진정 가능한 것인가.

 

  나는 자꾸 먼 바다만 바라본다. 엄마가 답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철부지 아이처럼, 하지 못한 말들을 두 볼 가득 담고서 길을 잃어 엄마를 찾듯. 물론 우리를 낳고 키운 바다는 언제나 그랬듯 말이 없다. 세상의 모든 엄마처럼, 바다는 오늘도 비명을 삼키고 있는 모양이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완월동-달 위에 지은 마을

 

 

金 飛

 

 

 

 

  스물을 갓 넘긴 한 여자가, 오다 가즈마사의 사요나라를 부른다. ‘나는 울지 않으니 이제 나를 내버려둬, 눈물은 당신의 볼을 타고 흘러.’ 짙은 화장을 지워낸 또 다른 그녀들이, 서로의 살결을 부비며 모여 앉아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울지 않겠다고 노래하면서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들은 마음에 없는 욕지거리를 뱉는다. 타박을 하기도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어느새 그들도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나는 울지 않으니 이제 나를 내버려둬, 눈물은 당신의 볼을 타고 흘러. 안녕, 안녕, 이제 곧 밖에는 새하얀 겨울이.’ 어느새 그들의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밀려오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떨고 있는 두 손이 바쁘기만하다.

 

  통속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모습은, 10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아마 너무도 여러 번 그곳에 재현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현재라는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마을은 여전히 지금의 몸체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극단적인 감정과 기억을 충돌시키며, 그 이름은 거대한 시간의 회오리를 일으키는 공동(空洞)인지도 모른다.

 

  완월동은 현재 부산시 서구 충무동 소재의 유곽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1907년 일제시대 때 미도리마치라는 홍등가로 태동하여 그곳은 1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유지되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똑같은 사람들이 나고 자랐을 완월동이라는 마을은 공식적으로 지금은 그 지명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억이나 욕망 속에 지우고 싶은 이름이었을 뿐, 그곳은 차마 고향이라 불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완월동이라는 마을을 찾는 누군가에게조차, 그 누구도 반가운 심정으로 그곳을 가리키지 못했을 테니 추억이나 그리움을 떠올리는 일은 과도하게 낭만적이라는 야유를 넘어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무심하고 이기적인 시선을 지닌 채 정겨운 마을 풍경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우리 모두가, 그토록 오랜 시간 그곳을 소외시켜 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말의 여지도 없이, 그 마을의 시간과 공간은 분명 그 자체로 선뜩한 소외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완월동은 촬영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아프꼼의 회의 자리에서 듣게 된 완월동이라는 이름과, 그곳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는 그저 어린 시절의 내 고향인 파주 근처의 집창촌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미군 부대가 여기저기 산재했던 그곳의 용주골이라는 마을, 분홍빛 불빛을 쏟아내는 작은 유리문 안쪽에 앉았던 젊은 여자들의 모습은 흐릿하기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또렷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곳 완월동의 입구에서 우리들을 반긴 것은 초록의 이파리를 드리운 키가 큰 나무들이었다. ‘일방통행이라는 바닥의 글씨는 모종의 기시감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곳은 그저 행인들이 거리를 걷고 마을 주민들이 나무 아래 땀을 식혔을, 누구든 어디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안내를 따라 한 블록 더 위로 올라가니 완만하게 이어진 오르막 거리가 우리의 눈앞에 드러났다. 환한 밤이라도 드리운 것처럼 인적이 지워진 풍경은 그곳이 바로 완월동이라는 유곽지역임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 긴 거리를 향해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일행으로부터 나는 잠시 떨어져 나왔다. 천천히 홀로 걸으며 그곳이 견뎌냈을 100년이 넘는 시간을 조심스레 가늠해 보았다. 밤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었을 세계. 돈이 욕망이 되고, 욕망이 슬픔이 되어버린 시간. 멀리 떨어져 걷고 있는 일행들 뒤로 길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길을 가로질러 갔는데, ‘나까이(호객꾼)’라도 만난 것처럼 나는 괜히 멈칫했다.

 

 

 

 

 

 

 

 

  아무런 간판도 없이 커다란 유리문이 달린 집들. 그 속에 여러 개의 의자들은 부끄럼 많은 처녀들처럼 나란히 앉았다. 붉은 빛 커튼과 왜색의 그림들로 장식된 공간은 좁았지만 경쾌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화장품들과 목욕 가방은 어제도 분주했을 그들의 일상을 말해 주었고, 유리문 바깥에서 지키고 있는 활짝 핀 붉은 수국은 지지 않는 꽃처럼 어깨를 활짝 편 채 당당했다.

  그녀들이 앉아 손님을 끌었을 철제 의자에는 빈 담뱃갑 하나가 놓였고, 기다림이 길었을 그들의 지난한 시간은 차가운 철판의 단단함 위에까지 생채기를 만들어 놓았다. 같은 건물인데도 색깔이 다른 벽은 차마 말하지 못한 기나긴 사연을 감추고 있는 듯했고.

 

 

 

 

 

 

 

 

 

 

 

  나는 그들이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을 철제 의자에 앉았다. 그들이 여기에서 기다린 것이 과연 손님뿐이었을까. 고양이처럼 그 거리 한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으니, 괜히 울컥 눈물이 치밀었다. 누군가 여기서 그렇게 울었겠지. 가뭇없이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울음처럼 토했겠지.

  조만간 이곳이 문화예술지역으로 지정되어 변모를 꾀한다고 하는데, 그곳의 이름조차 지켜주지 못했던 우리 시대의 비겁함은 이대로 그들의 시간을 지워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지.

 

  비좁은 골목 끄트머리에서 먼지가 잔뜩 쌓인 산부인과 간판을 찾았을 때, 바로 그곳이 완월동에 머물렀던 여성들이 스스로의 몸을 돌볼 수 있었던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켜켜이 쌓인 시간의 때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 간판 아래에서 서성거리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결심이 오고 갔을지, 얼마나 아프게 입술을 깨물었을지. 속없이 너무 커다랗기만 한 내 몸은 그 간판 아래에서 자꾸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여러 번 그들에게 손을 내밀려고 했지만 쇠락해져가는 그 지역의 사람들과 그들 스스로가 모든 도움의 손길을 거부했다고 들었을 때, 나는 이를 악문 채 도리질하는 그들의 몸짓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알량한 꿈이나 희망 따위로, 차마 우리들이 강요하거나 침범해서는 안 되는 그들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 곁에 머물러, 헤아릴 수 없을 그들의 고독을 위로해야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일 테고. 존재하지 않는 듯 존재해야 했던 그들의 숙명처럼, 우리도 그렇게, 없는 듯 곁에 있으며 조용히.

 

  길지 않은 시간 머물렀던 그곳을 내려오며 자꾸 뒤를 돌아본다. 아직도 어디에선가 오다 가즈마사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우리들은 자유로워, 언젠가 그렇게 말했지. 오늘 일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마. 안녕, 안녕, 이제 곧 하얀 겨울이. 오늘도 밖엔 비가 오지만, 곧 눈이 되어 우리들 가슴 속에 쌓여갈 테니.’

 

  본 적 없지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우리는 그렇게 기억해야한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Thanks to 변정희 님

 

 

 

 

 

사람을 따라 길을 찾다

 

 

金 飛

 

 

 

 

 

  부산의 남쪽에 위치한 감만동의 위성 지도를 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감만동 고지대에 이원 맨션너머의 한 블록이 마치 섬처럼 도드라진다. 모든 다른 블록의 집들은 네모반듯하게 나뉘어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데, 그곳의 집들은 뒤엉켜 아무렇게나 서로의 어깨에 몸을 끼워 넣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붕의 모양 자체가 아예 다르다. 다른 곳의 집들엔 대부분 네모반듯한 옥상이 하늘로 열려있지만, 섬처럼 도드라진 그 블록의 집들은 시간의 때로 뒤덮인 낡은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다.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세계 속에 또 다른 세계처럼 그 곳의 집들은 어떤 경계로부터 밀려났거나 혹은 물러서 있는 듯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동행과 함께여서, 우리는 이원 맨션 앞에 차를 세워 놓고 천천히 언덕 위로 걸어 올랐다. 언덕은 기어오르기라도 해야할 것처럼 경사가 깊었다. 유독 그 블록의 골목은 좁고 꼬불꼬불 이어졌는데, 그래서 모든 골목은 모퉁이로 가로막혀 그 너머의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낡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담벼락은 그곳에 흘러간 시간이 조금은 달랐으리란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원래는 함께한 동행과 같이 골목을 돌며 사진을 담을 생각이었지만 애초부터 나란히 걸을 수 없는 골목은 우리들을 앞뒤로 걷게 했다. 번번이 눈앞을 가로막는 모퉁이 때문에 잠시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섰다가 고개를 들면 동행의 모습은 금세 어느 모퉁이 뒤로 사라져, 그마저도 가능하지 않았다. 분명히 그를 따라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길없음'이라고 적힌 글자는 무뚝뚝하게 내 앞을 막아섰다.

 

 

 

 

 

 

 

 

 

 

  '어디 있어요?' 집들이 너무 가까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큰 소리로 부를 수는 없었다. 사연 많은 이야기라도 전하려는 듯 나는 조용히 속닥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저만치 모퉁이 너머에서 그의 기척이 들리기라도 한 것 같아 쫓아가면 골목은 갑자기 끊겨버렸다. 다시 모퉁이를 돌아 나와 그의 기척을 찾으려고 하면 나는 좀 전에 내가 들어섰던 모퉁이가 아닌 다른 곳에 서 있었다. 길은 많았는데,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사방으로 길은 열려 있었지만 나는 그저 그의 인기척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가 나를 부르기를 기다리면서, 속삭이듯 '어디 있어요?' 다시 또 그를 부르면서. 그가 없는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그렇게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어쩌면 서로 다른 시간의 모퉁이를 돌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

 

  누군가 불러주기를 기다리며

  그렇게 서성거리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전화벨이 울렸고 그가 어디냐고 물었지만, 나는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서로를 찾아 돌아다니기만 하다간 또 다시 엇갈리고 말 것만 같아, 이 블록의 맨 위쪽 언덕 꼭대기 길목에서 만나도록 하자 그렇게 약속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혼자가 되고 나니 비로소 무작위로 뻗은 골목들에 대한 조급함은 덜했다. 골목을 가로막으며 나타나는 모퉁이도, 갑작스럽게 끊겨버린 막다른 길 앞에서도 나는 훨씬 더 담담해졌다. 그리고 골목 곳곳의 풍경은 더욱 또렷하게 내게 다가왔다. 골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색으로 칠해진 시멘트 담장 너머에 누군가의 필요로 가져다 놓았을 그릇과 컵이 나란했고, 펄럭이는 마른 이불은 마음껏 나부끼며 화려하고 웅장한 항구의 풍경을 감싸고 있었다. 거대한 시멘트 교각을 자랑하는 부산항대교를 푸르게 싹이 자란 작은 텃밭이 내려 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이토록 화려한 세계를 운반하는 튼튼한 대교의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발아래 나란히 키를 키운 초록의 싹들이 나는 참 고마웠다.

 

 

 

 

 

 

 

 

 

 

 

 

 

 

 

 

  골목을 여러 번 거슬러 올라 거의 끄트머리에 다다르니 공용 화장실 건물이 나타났다. 요즘은 한 집에 두 개 혹은 세 개씩 자리한 것이 화장실이라는데, 인간의 평등함을 일깨우는 그곳마저 불평등하게 나뉘어진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니 옛 기억을 떠올리는 그곳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함께 사는 정을 키울 수 있으니 그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빤한 이야기는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게는 그저 모두에게 잊혀진 시간의 쓸쓸한 바깥 풍경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살아간다면 근사하게 석양이 지는 모습이라도 감상할 수 있을 텐데, 과연 여기에 사시는 분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을까? 얼마나 아름다우냐, 큰 소리로 웃으며 일상의 무게를 가볍게 털어버리고 계실까? 동행과 약속했던 골목 맨 위까지 올라가면서 자꾸 숨이 가빠왔다. 부실한 몸 탓인지 부대낀 마음 탓인지 발걸음은 자꾸 무거워졌다.

  마침내 블록의 맨 꼭대기 골목에 다다랐는데 어디에도 동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산 쪽으로 드리운 철제 담장을 고치고 있었을 뿐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걸어 어디 있느냐 물으니 그는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이미 다시 골목을 가로질러 내려갔다고 했다. 그도 이렇게 나를 찾아 여기에서 서성거렸으며, 낮은 소리로 '어디 있어요?' 나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수히 많은 길들을 헤매다가 우리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불러줄 사람이 없다면, 불러야할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그렇게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결국 올라갔던 길을 다시 걸어 내려오는데 넓게 자리한 공터의 담벼락에 근사한 그림이 나를 배웅했다. 오렌지빛 석양이 항구 너머로 지는 풍경이었다. 외지의 예술가가 그려놓았을 그림은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곳에 존재했을 가장 찬란했던 풍경의 기록이어서 나는 참 고마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잊지 말라 부탁이라도 하듯, 옛날 사진 한 장처럼 화려하고 근사하게 자리한 그 곳의 어느 저녁은 흐릿해져가는 그들의 현재를 위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올라갔던 골목을 다시 거슬러 내려오니,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나를 불러주었던 고마운 사람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번쩍 들어주었고, 그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침내,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다.

 

 

 

 

 

구평동-벽 안의 사람들

 

金 飛

 

 

 

 

 

 

 

  부산이라는 도시는 한반도의 축소판처럼 한 쪽은 육지로 이어져 있으며 다른 쪽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부산의 바깥은 육지이며 또한 바다다. 부산의 바다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해운대를 중심으로 몇 개의 해수욕장이나 작은 바닷가 마을들을 말하지만 그것은 '바다'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너무 간결한 호출인지도 모른다. 바다는 속속들이 모든 부산의 바깥에 가 닿아 있으며, 우리가 바다를 하나의 정형화된 풍경으로 소외시킬지라도 바다는 우리들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바다 쪽으로 가자고 생각했으면서도 나는 바다로 가지 않았다. 유명한 해수욕장의 이름들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여러 개의 항구와 인접한 마을들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 감천항과 맞닿아있는 구평동은 그 이름도 낯설거니와, 항구인지 마을인지 기다랗게 뻗어있는 항구 주변의 공장지대와 구조물들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에 항구가 몸을 기댄 건지, 항구가 있는 마을에 사람이 몸을 기댄 건지 그 모호한 풍경이 마음을 끌었다.

  구평동을 목적지로 정하고 괴정역에서 마을버스를 탔으면서도, 나는 바다 근처로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바다를 등지고 마을 쪽으로 걸어 올라갈 참이었다. 어차피 항구와 그 관련 시설들로 뒤덮인 바다는 민간인인 내가 가 닿을 수도 없는 곳일 뿐더러, 내가 만나고 싶은 마을과 그 지역의 사람들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으리란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구평동에서도 마을의 중심지인 구평고개 근처가 아닌, 제일 바깥의(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제일 안쪽인) '안구평'에서 내려 항구를 등지고 천천히 마을을 거슬러 올랐다.

  항구 너머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은 가팔랐고 조용했다. 마을이기는 했지만 군데군데 작은 공장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고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더 위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니 도로는 순식간에 마을을 넘어 수풀이 우거진 산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눈앞에 '구평가구단지 500미터'라는 표지판이 보였고 나는 그 앞에서 망설이다가 표지판을 따라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20여 분 땀을 흘리며 올라가니 산자락의 꼭대기인 듯한 곳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아래로 내려가니 또 다시 '구평가구단지 500미터'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500미터가 아니라 족히 1킬로는 걸어왔을 법한데, 표지판은 여전히 또 다른 쪽을 가리키며 500미터라고 말해 주었다. 우거진 풀숲 사이에서 '감천항로'를 가리키는 새파란 표지판이 땀을 닦고 있는 나를 넘겨보고 있었고.

 

 

 

 

 

 

 

 

 

  불친절한 주민을 만난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또 다시 망설임은 길어졌다. 하지만 믿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500미터일 리는 없겠지만 머지않은 곳에 그곳이 있으리라 짐작하면서 나는 다시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숲길을 따라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가구단지는 경쟁이라도 하듯 붙어있는 광고판들을 자랑하며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가구단지는 내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경기도에 살던 때에도 나는 가구단지 근처에 살았는데 이곳의 가구단지는 그 때의 그 곳과는 사뭇 달랐다. 쓰러질 듯 낡은 건물들이 서로 다른 간판을 달고서 손님을 갈구했지만 도로에는 '고객'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제법 큰 가구 전시장에도 전시된 가구를 닮은 직원들이 외지인인 나를 신기한 듯 넘겨볼 뿐이었다.

  조금 더 걸어 가구단지 안쪽으로 들어가니 풍경은 더욱 을씨년스러워졌다. 이미 희미해져버린 서로 다른 이름을 단 공장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고, 시간의 때가 묻은 데다 건물들이 낡고 허름해 골목은 더욱 어두침침했다. 사람을 찾아왔는데 나를 맞이한 것은 불친절한 화살표와 전시물 같은 외지인들의 표정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 마을에는 이곳의 '주인'이자 '주민'인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제 이곳은 사람을 위한 땅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물건들을 쏟아 내야하는 공장들의 땅이 되어버린 것일까? 괜히 마음이 무거워져 나는 침울한 표정으로 어두운 골목 여기저기를 사진 속에 담고 있는데, 처음부터 문이라고는 달리지도 않았던 어두운 곳에서 기름때가 묻은 남자가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기계 소리가 들리는 또 다른 벽 너머에서 흰 러닝이 흠뻑 젖은 사람이 흘끗 나를 봤다. 사람이 들어설 수 있을까 싶은 건물 사이에서 머리가 희끗한 분이 거대한 자제를 어깨에 메고 성큼성큼 내 쪽으로 걸어 나왔다. 폐업한 곳인가 싶은 데서 또 다른 사람이 땀을 흘리며 상자 여러 개를 들고 나왔고,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건물 뒤에서 몇몇 사람은 작은 화물차 안에 물건을 싣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나를 놀리는지, 새빨간 벽을 지닌 공장 건물 안 쪽에서 커다란 개 두 마리가 혀를 길게 빼고 나를 넘겨보고 있었다.

 

 

 

 

 

 

 

 

 

 

 

 

  그제야 허름하고 낡아 보이기만 했던 그 벽들 속에 숨결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지켜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허물어져가는 벽 너머에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꽉 막히고 낡은 벽 안에 살고 있던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것들에 눈을 빼앗겨, 시간을 이겨낸 그 아름다운 삶들을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리석은 나였고 우리들이었다.

  가구단지를 지나 마을 쪽으로 다시 돌아내려오는데 허름한 건물 사이에서 이주노동자 가족으로 보이는 부부가 나타났다. 그 어두운 골목을 산책이라도 하는지 그들의 발걸음은 여유롭고 정겨웠다. 그들의 앞에 아장거리며 걷는 아이가 너무도 예뻐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물으니 그들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휴대폰 카메라를 드니 아장거리며 걷던 아이도 나처럼 도로 위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향해 혀를 삐죽 내밀었다. 순식간에 그 좁고 어두운 골목은 그 어떤 세상보다 환하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 부부의 웃음소리로, 사진을 찍으며 행복하게 웃는 나의 웃음소리로 더 이상 그곳에 사람을 잃어버린 버려진 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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