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꼼은 며칠 후에 일본 워크샵을 떠납니다. 문득, 작년의 뜨거웠던 8월과 길고도 길었던 2011년 2월의 일본 '순례'가 떠오릅니다. (2011년 동아시아 인권 캠프) 연구모임 a로부터, 부산을 포함한 '지방'의 인문 공동체와 만나고 헤어졌던 긴 시간들 불화와 오해의 시간과 눈초리에 지칠 즈음 부산에서, 부산을 넘어서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겠다는 절박함에 흥부네 식구들처럼 일본으로 '밀항'처럼 넘어갔던 시간들. 권명아라는 이름으로의 월경과는 다른 연구모임 a, 그리고 아프꼼이라는 이름의 '월경'은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국경을 넘어서든, 전혀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우리도 버젓이 비행기 타고, 워크샵 교류를 맺어서 일본에 갔지만 뭔가, '밀항'과 다르지 않은 현실적, 심리적 상태였지요. 그 불안하고, 막막한 마음과 현실. 무수한 월경의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저조차, 그 불안과 막막함에 '하나가'되었던 기억들. 그 이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연구모임은 불안과 막막함의 언저리를 배회해왔습니다. 연구모임의 오거나이저로서, 선생으로서, 선배로서 그런 불안함과 막막함을 보듬고, 길을 제시해주며 조금은 든든한 버팀이 될 수 없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허나 어쩌면, 그렇게 '불안함과 막막함'으로 팀원들과 제 상태가 정동되었던 것은 우리 팀이 어떤 '상태'와 그로 표상되는 정치적 입장을 서로 나누게 되었던 국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가, 그저 서울에서 내려온 공부 열심히 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우리 팀원들과 '같은 미래를 보는, 같은 현실을 마주하는' 그런 자리에 함께 나란히 앉게 되었던 그런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과 회고는 온전히 저의 것. 그 여름은 너무 뜨거웠고, 숨막혔고 그 겨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춥고, 배고프고, 밀항자처럼 피곤에 지쳐 아무데나 쓰러져버렸습니다. 그 밀항자의 겨울, 숨막힌 여름, 우리에게 손을 건네고, 말을 들어주고,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주었던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니, 진짜 밀항자 같은 기분도 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숨막혔던 여름 그 외로운 겨울 그 시간이 어떤 의미였을까 그 회고의 말을 듣고 싶은 시간입니다. 뜨거운 8월의 그날로부터 꼭 1년이 지나가는 이 시간에 말입니다. 2011년 겨울의 기억과 여름의 시간은 <웹진 아지트, 국경안의 불만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agitproject/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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