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년 8월 13일, 데일리를 대신하여

14일은 우리의 영원한 파트너인 고영란 선생님 인터뷰와 니시야마 유지 선생님의 인터뷰 준비를 데일리로 대신합니다. 니시야마 유지 선생님은 자크 데리다가 창설한 연구교육 어소시에이션 <국제철학학교>에 대한 기록 영화 <철학에의 권리>의 감독이자 이 <국제철학학교>의 이념이 된 데리다의 <조건 없는 대학>(月曜社, 2008)의 일본어 번역자이기도 합니다.

aff-com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정념과 공동체, 어소시에이션의 가능성을 타진해오면서 현재는 연구-글쓰기-삶의 인터페이스로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인터페이스에는 아프꼼의 내부 성원만이 아니라 아프꼼이 지속적으로 만나온 다른 존재들, 다른 아지트, 다른 꼬뮨과의 constellation의 흔적들이 또다른 아프꼼의 멤버로서 기입-정동되어 있습니다.

Passion for another life, 다큐 작업은 이 컨스텔라시옹으로의 행보, 나아간 길과 머문 길, 막다른 길들 모두를 기록하고, 이 기록을 통해 아프꼼이라는 별자리의 형상을 성찰하고 사유해보려는 시도입니다. 하여, 그간 연구모임 a, net-a, 아프꼼에 이르는 무수한 이름에 응하고 답해준 모든, 컨스텔라시옹의 희미한 불빛을 나름으로 기리고 새기는 작업에서 시작하려 합니다. 신지영, 고영란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습니다.

특히 이 인터뷰들은 각자 고유한 자신의 삶의 행보에서 여러 낯선 타자들, 공간들, 장소들과 꼬뮨들과의 만남과 헤어짐과 상처들에 대한 나름의 말을 나누는 과정을 수행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모든 꼬뮨들, 모든 꿈을 가꾸고 지키려는 모임들이 그러하듯, 아프꼼의 여정과 행보 역시 외부에서 보이는 <결과물>들의 집적물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와 상처와 되돌이킬 수 없는 슬픔의 퇴적층을 그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무수한 실패와 상처와 슬픔은 어떤 것, 어떤 사례로도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것이겠으나, 실은 다른 삶을 꿈꾸고 지키려했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꼬뮨이 짊어지고 남겨놓은 실패와 상처와 슬픔이라는 점에서, 인류 보편의 슬픔입니다.

해서 아프꼼은 이 슬픔을, 상처를, 실패를 우리만의 내적인 ‘문제’로서, 개인의, 개인들간의 해소될 수 없는 실패담으로서 소비하고 탕진하기보다, 보편의 슬픔, 상처, 실패로서 사유해보려 합니다. 그 첫발걸음이 바로 슬픔과 상처와 실패를 나누는 과정입니다. 하여 아프꼼을 빛나게 해준 여러 다른 별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여,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이 길에서 만남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당신에게 그 만남의 빛나던 순간과, 실패와 상처와 슬픔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슬픔으로부터 무엇을 길어 올렸는지.

이런 슬픔의 나눔을 통해 아프꼼은 부대낌의 상처와 실패와 슬픔을 사적 개인의 후일담으로 탕진하거나, 그저 종결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단절하고 나아가, 다른 만남으로 대체하여 소진시키고 망각하고, 청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명한 새로운 삶의 현실적 실천으로서, 새로운 삶의 발명의 혁명적 이행의 한 과정으로서 변형시키려, 몸부림쳐보려 합니다.

 

 

니시야마 유지상의 다큐 <철학에의 권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국제철학학교의 기본 이념들은 이와 관련해서 많은 생각거리, 부러움, 기대, 안심 등을 아프꼼에게 주었습니다.

국제철학학교는 몇 가지 중요한 이념을 바탕으로 합니다.

지의 제도화에 반하는 제도

철학자의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무상성의 이념

무조건성의 이념영역교차의 이념

철학이 철학이기 위해서는 고립되어서는 안된다는 이념.

인터뷰 도중에 이런 이념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었다. 그중 흥미로운 몇가지는 이런 이념을 통해 국제철학학교는 젊은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자기 표현이 가능한 유일한 장소, 자신의 연구를 공론장에 전하는 것이 가능한 유일한 제도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점은 아프꼼의 지향점과 아주 많은 부분 통하는 지점이어서 매우 반가웠습니다.

 

또 철학의 초월적 권위를 비판하며, 철학을 다시 정의하는 작업 역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즉 철학이 다른 학문 분야나 사람들에게 <이런 것이 진리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말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철학을 초월적 권위의 자리로 놓는 것이라고 이들은 비판합니다. 대신 철학은 <귀를 기울이는 것>, 즉 다른 분야에서 표현되는 어떤 것들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철학은 자기 자신에 대해 묻는 것을 소임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즉 <철학이란 영원히 자신을 다시 묻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자크 데리다의 <조건 없는 대학>이 제시한 이념이자 국제철학학교가 이 이념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결코 완성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며, 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에 가까운 것, 즉 <철학은 활동이다.>라는 데리다의 이념과 국제철학학교의 이념이 나오게 됩니다.

아프꼼 역시, 상처와 패배와 슬픔의 기나긴 행로 위에서, 이런 만남을 통해, 연구와 삶과 글쓰기를 하나의 활동으로서 정립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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