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음의 온도차, 애씀의 인터페이스

-로컬처와 쉬플레망 사이를 오가는 발걸음의 기록

권명아

1. 패배를 급진화하기: 현실주의와 역사적 전망의 낙차

2012년 12월 역사의 반복에 대한 무거운 예감 속에, 많은 이들이 절망과 환멸의 끝자락에 서 있다. 국민이라는 것 내부의 격렬한 대립 속에서 과연 우리 앞에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혹은 그 미래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 예측과 분석과 전망들이 어렵사리, 혹은 다급하게 전해진다.

문득, 1940년의 어떤 시간이 떠오른 것은 역사를 통해 오늘을 되돌아보는 자의 관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역사를 떠올리며, 절망과 환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날들이다. 일제 말기의 자료들을 보며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1944년, 1945년 이런 시점에서 식민지 조선인들은 어떤 미래를 전망했을까? 지금처럼 정보에 대한 접근력이 높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지식인들의 세계 정세 판단이 그리 뒤떨어졌다고는 보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파시즘 동맹의 주축이던 독일도 항복한 시점에서 여전히 일본을 지지하고, 전시협력을 주장하며, 뒤늦게 전시협력 단체에 가입하여 열렬한 지지를 표명한 이들도 있었다.

훗날의 역사가의 시점에서 보자면 이들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었지만, 당대에는 오히려 이 시점에서의 전시협력이 더욱 열렬하고 적극적이었다. 그 시점에서 일본의 패전을 전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거니와 역사란 그런 전망이나 관측만으로는 온전히 ‘알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역사적 불가지론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역사란 ‘전문가’의 식견만으로 온전히 파악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의 식견이란 것과 역사적 전망을 갖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 아닐까.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당대에나 훗날에도 주의주의나 근거 없는 낙관주의로 평가받기도 했던 지하로 잠복한 ‘극단적 아나키스트들’의 제국주의 필패론 같은 것은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역사적 전망이라는 것을 선취한 사례인지도 모른다. 즉 당대에 구현된 현실이라는 맥락이 아니라, 이후에 도래할 미래라는 차원에서 볼 때 오히려 역사적 전망에 입각한 삶-실천의 어떤 양상의 하나로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니까 <지금-여기>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혹은 자신의 이념이나 실천이 인정을 받는가 아닌가는 현실주의자에게는 중요할 수 있으나, 역사적 전망에서 보자면 그리 중요하지 않다. 현실의 동향과 경향을 잘 파악하는 것이 리얼리스트에게 매우 중요한 안목이기는 하지만, 역사가 보여주는 바 이러한 안목이 현실 ‘개입’에서 현실에 충실하다는 의미의 현실주의로 변용되는 것 또한 빈번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 전망에 입각한 삶-실천은 때로는 시대착오적일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그것이 우둔한 정신승리에 불과할지라도, 시대착오, 지금-여기의 흐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의식적인 우둔함, 혹은 의식적인 패배. 혹은 패배를 역사적 전망 속에서 급진화하기. 이왕 패배할 것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더욱 급진적으로 패배할 것.

2012년 12월의 어떤 동선을 그려나가며 문득 이런 단상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다시금 되뇌어본다. “적극적으로, 더욱 급진적으로 패배할 것.”

 

2. 함께-있음의 온도차, 로컬처와 쉬플레망을 오가며

 

그림 1. lo-culture 합평회 < '함께-있음'의 '사이-공간' >의 자료집. 특히 이번 합평회는 팀원들의 힘을 '모아 모아', '십시일반'으로 만든다는 의미를 살려, 자료집도 손수 제작하였다.

2012년 12월 19일 아프콤은 한자리에 모여 개표방송을 보았다.20일에는 합평회를 위한 사전 모임, 21일에는 아프콤의 고유한 기획 로컬처의 새로운 버전인 <합평회>를 모퉁이 극장에서 진행했다. 새벽이 다되어서 자리를 파하고, 21일 오전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상허학회 2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상허학회와의 오랜 인연도 인연이지만, 20주년 기념으로 발간되는 <상허 별책-쉬플레망>의 좌담에 아프콤의 멤버 두 사람이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합평회 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 <아프콤은 어떻게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가? 조금 쉬거나 일을 줄이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렇다. 숨 쉴 틈 없는 일정들을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이런 비유가 과도할지는 모르지만, 매일매일 출근하는 회사원들보다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쉴 틈 없고 해야 할 일이 끝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회사원들 (혹은 회사원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일상의 피로가 성과 주체의 증상이라면, 파업 중인 노동자의 고단함을 피로사회의 징후로 환원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거대 프로젝트 수행자들의 성과주의적 피로와 아프콤의 고단함을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림 2. 2012.12.21. 아프콤 lo-culture 합평회, 모퉁이 극장. 부산. 철학자 양창아씨와 아프콤, 아프콤의 초대 손님들이 모여서 함께-있음의 의미와 그 실패에 대해 함께 말을 나누었다.

 

고단한 일정,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곳과 저곳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전하는 것이 아프콤의 중요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합평회와 쉬플레망을 오가며 얻는 단상을 전하고 싶다.

“부산은 따뜻하죠?”

서울에서 만난 누군가, 아직도, 가끔 이렇게 물어온다. 오늘도 누군가 이런 질문을 건네 온다.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과는 길게 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질문을 한 상대방이 난생 처음 만난 사람, 예를 들어 택시를 탔는데, 내가 부산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질문을 던진 기사분이라면, 나도 무언가 그에 걸맞은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학문장이나 문학장 등 내가 오래 함께 해온 장의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할 때는 나는 그저 “아, 예.”라고 말하고 만다. 이런 질문에는 지방에 관해서는 ‘날씨, 먹을거리, 풍경’ 같은 것 외에는 궁금해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전형적인 식민주의적 태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부산 연구자들이 무엇을 공부하는지, 부산의 문화적 풍경은 어떠한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아니 이런 태도는 지식과 문화, 혹은 정치마저 온통 ‘서울의 것’이기에 지방에 대해서는 지적이거나 문화적으로 궁금해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전형적인 식민주의의 소산이다.

부산으로 삶의 거점을 옮긴 초반에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점차 이런 질문의 빈도수가 줄어든다. 대선을 전후해서는 “부산 분위기는 어때요?”라고 진정 궁금해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대선 결과를 보고 ‘여전한 지역주의 투표’에 대해 한심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지난 지방 선거 때도 페이스북을 도배한 지역에 대한 비난과 환멸을 담은 글을 보며 이런 비슷한 표정들을 만났다. 이들에게는 투표 결과만이 중요하지, 과연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는 관심 밖의 일이다. 아니 관심이 있어도 “과연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는 달리 알기 어려운 일이거나,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알아도 별 차이가 없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일 정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과연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부산에 거주한지 고작 몇 년밖에 되지 않는 나로서도 대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단지 경험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실상 이런 질문 자체가 ‘앎’에 대한 어떤 오만함, 혹은 계몽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타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온전한 앎에 대한 욕망이나, 계몽주의적인 자부심이 오히려 우리의 앎을 맹목으로 이끄는 지도 모른다.

 

그림 3. 상허학회 20주년 기념 학술대회는 “지금 여기, 문학연구(자)의 벡터”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새벽이 가까워 마무리된 아프콤 합평회의 잔상을 뒤로하고, 아침부터 발걸음을 재촉하여 서울로 날아갔다. 150여명이 넘어 보이는 청중들, 수십 명에 달하는 발표자와 토론자들, 20년의 긴 역사를 함께 해온 수많은 연구자들과 선후배들의 자부심 넘치는 표정들. 따스하고 훈기 넘치는 그 공간에 앉아, 길고 긴 이동의 시간에서 오는 몸의 피로 만은 아닌, 온몸의 근육이 움츠러드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그것은, 아직도 잔상으로 내 망막 어딘가를 떠도는 지난 새벽까지의 어떤 자리의 인상과 짧은 시간차와 긴 거리차를 갖고 있는, ‘지금 이곳’의 인상 사이의 어떤 낙차 때문이었으리라. 

열 명을 조금 넘는 참가자들, 모퉁이 극장의 재정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아 타오르는 것을 보기가 차마 안타까웠지만, 결국 공간을 덥히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석유 난로와, 저마다 애쓰며 꾸려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힘 겹기만 한 지역의 작은 모임들에 대한 말들이 오가던 자리. 채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작은 기록조차 갖지 못한 채 그저 소실되어버리는 ‘지역 공동체’의 ‘역사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마치 불타버리는 모퉁이 극장의 재정 상태마냥 안타깝기만 했던 자리. 

그 두 영상이 오고 가며, 규모와 온도와 역사와 기록과 기념의 낙차가 어지럽게 머리보다 먼저 몸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런 낙차의 어지러움에서 오는 움츠림 속에서 머리보다 먼저 근육이 움직인다. 어깨를 펴고 숨을 고른다.

 사실 서로 다른 자리를 오가는 이에게 이런 낙차에 대한 실감은 현실이기도 하다. 서울로 올라가는 자리에서 아프콤의 김대성 선생은 끝없이 내게 “피곤해보이면 안 된다. 힘들어해서도 안 된다. 그저 심상하게 자리에 참여하고 마치고 와야 한다. 왜냐하면 그곳의 사람들은 우리가 이렇게 가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끝없이 자기에겐지 나에겐지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 그런 다짐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곳과 저곳 사이의 낙차에 심상해지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 낙차가 현실이다. 그 현실을 감당하는 것이 온전히 아프콤만의 몫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실은 그것은 낙차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프콤에게는 아프콤이 대면하고, 발 딛고 서있는 세계가 있다면, 쉬플레망에는 쉬플레망이 대면하고 발 딛고 서있는 세계가 있다. 상허 역시 마찬가지이다. 두 세계는 참으로 이질적이지만, 두 세계와 대면하는 모습에서는 많은 부분 닮아 있기도 하다. 합평회 자리에서 그리고 시간과 장소를 달리한 상허 자리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서로 저마다 다른 세계 속에서 자기가 대면한 세계를 조금은 다르게 변화시키고자 노력하고 그 노력을 통해 거기에 작은 현장을 만들어내고, 그 현장에 많은 사람을 초대하고 공대하려는 애씀의 모습들이었다.

 

그림 4. 상허학회 20주년 기념 별책 『쉬플레망』. 신진연구자의 생애사적 기록의 일환으로 좌담이 마련되었다. 아프콤의 김대성, 양순주 두 사람이 이 좌담에 참여하였다

그런 점에서 신진연구자들의 생태계를 분석한 논문 「한국현대문학 예비연구자들의 연구 환경 고찰」(정기인, 이성근, 정인관)과 그 논문에 대한 토론(임태훈, 천정환)은 이러한 서로 다른 세계에 대한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신진연구자들의 생태계를 분석한 논문은 3인의 연구자가 서울 지역의 6개 대학의 대학원생에 대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한 양적 연구에 입각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신진연구자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의 온도 차이가 많은 부분 “교수가 될 가능성”에 대한 전망의 격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 이 논문에서 밝힌 중요한 지점이다. 또한 “교수가 될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본과 출신 남자 대학원생”이 가장 높고 “타과 출신”과 “여자 대학원생”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과이다. 즉 “교수가 될 가능성”에 대한 ‘개인적’ 전망은 많은 부분 주관적 판단에 입각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출신 성분’에 대한 객관적 판단에 입각한 것이다. 그리고 슬프지만 이 객관적 판단은 한국 학계에서의 “교수 입문의 지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이 지표는 지방과 서울 사이에도 차이가 없고, 오히려 지방의  경우 이 “교수 입문의 지표”는 거의 성스럽게 지켜지기도 한다. 그리고 지방의  경우 이 지표는 지방 내의 배제의 표지로 전혀 해석되지 않고, 지방 대 서울의 대립 구도로만 간주된다. 즉 지방대에서 본과/모교 출신을 교수로 임용하는 것은 외부(서울/타학교) 인력에 대한 ‘본교출신자’의 ‘열악한 지위’를 보호하는 당위이자 요청으로까지 신성화되어 있다.

물론 이 연구에서는 지방대의 사정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토론에서 임태훈 선생이 날카로운 지적을 하기도 했다. 공동 연구자들은 설문 조사와 양적 조사라는 연구방법론 상 양적 토대를 갖춘 대학, 즉 현대문학 전공 대학원생이 과정생으로서 20명 이상 재학 중인 대학으로 연구 범위를 한정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임태훈 선생의 날카로운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이 연구’가 꼭 지방이나 서울 지역의 여타 대학 모두를 포괄했어야만 하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이 논문은 연구 대상의 한정된 범위를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임태훈 선생의 질문도 이런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고 보인다.)

실상 모든 연구가 모든 대상을 다 포함해서 다룰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연구의 한정된 범위를 인지하고, 그 한정된 범위에서 논의할 수 있는 의제를 구축하는 것, 거기서 보편성과 특이성, 특수성의 문제들을 명료하게 하는 것이 모든 연구자가 감당할 문제라 할 것이다. 많은 부분 이 연구가 서울 지역 6개 대학을 대상으로 한 것은 이 연구가 발생한 자리의 여러 조건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따라서 이 연구는 그 발생의 문맥을 충족하는 차원에서의 논의로서는 그다지 문제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리라. 발표 자리에 참여한 참가자들 대부분이 해당 연구의 대상이 되는 대학의 대학원생이었으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구는 그 논의의 현장에 가장 적합하고도 필요한 연구 자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대형 대학에서의 교수 임용에 있어서의 배타적 독점의 기제는 이 연구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단지 임용의 차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생애사적 전망과 연구 방법, 삶의 태도 전반에 깊숙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수임용에 있어서의 이러한 배타적 독점의 기제가 그러하니 국문학 연구의 현장에서의 연구방법론과 지식 생산의 배타적 독점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알지만, 공적 담론으로는 밝혀진 바가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 지점 또한 토론 자리에서의 중요한 논제이기도 하였다.

 현대문학 과정생이 20명이 넘는 대학을 현장으로 두고 있는 교수나 연구자와 대학원생을 통틀어도 3명이 넘지 않는 대학을 현장으로 두고 있는 교수나 연구자가 감당하고 다루어야할 문제들은 공통점도 있지만, 아주 이질적인 부분이 더욱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대학 제도는 이러한 이질성과 각기의 특이성들로 구성된 전체이다. 그러나 자주 ‘대학’ 혹은 ‘연구자’의 문제는 이런 이질성과 특이성의 차원이 아니라, 특정한 대표성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표성을 비판하고 문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서울 중심의 대학 구조나, 서울 거대대학의 독점 구조를 비판하고 한탄해보았자 아무 의미도 없다, 이런 비판과 한탄은 그 의도의 정치적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혜적 주체’에 대한 요구로 귀결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 제도 ‘안’에서도 우리는 모두 다른 현실과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제도의 ‘안’이라는 단일한 공간도 없거니와 제도의 ‘바깥’이라는 영역 또한 단일하지 않다. 문제는 각기 서 있는 현장 속에서 이러한 배타적 독점화에 저항하는 저마다의 실천을 구축해내는 일이다. 이런 실천을 통해서 비로소 실천의 특이성이 구축되는 것이며, 저마다의 현장에서 구축되는 이러한 특이성을 통해서 우리는 대학/지식/문화 제도 내에서의 배타적 독점의 구조와 배제와 절멸의 기제에 저항하는 보편적 투쟁을 일궈낼 수 있는 것일 터이다. 

3. 분열(증)의 몸, 어소시에이션의 신체: 기이한 열정의 자리들

“혹시 연애하는 것 아닌가요?”

“왜 서울로 올라올 생각을 안하냐?”는 질문에 여러 번 같은 응답을 하여도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는 무언가 생각난 듯 이렇게 질문하곤 한다.“혹시 연애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서울 태생이고,서울을 중심으로 한 학계에서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부산에 있기를 고집하는 것, 혹은 부산에서 무엇인가에 열심을 부리고 의욕을 부리는 모습이 서울에서 함께 공부하던 지인들에게나 서울에 근거를 둔 연구자들에게는 기이하게 보일지 모른다. 나 자신도 나의 이런 태도가 과연 ‘현실적인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게다가 아프콤이라는 정체불명의 모임과 함께 해나가는 일들에 대해 누군가는 격려를, 누군가는 의구심을 표명하기도 한다.

게다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부산을 거점으로 대안적 연구모임을 구축해왔으나, 지역에서의 ‘거점’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그렇다할만한 ‘성과’를 내놓고 있지도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 아프콤의 활동에 대한 지역의 응답 또한 거의 부재한 형편이다.부산 지역의  경우 지역에서의 인문학과 문화 관련 실천에 있어서도 역시 지역 출신이 중심이 되어 진행이 되어 왔고 외부인에 대한 배타적 시선은 여전히 강고하다.현대문학 연구자들의 경우도 지역출신의 선배들이 중심이 된 거점을 토대로 움직이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그리고 이러한 지역의 관성과 예비연구자들의 동선에는 앞서 살펴본 서울 소재 대학에서의 예비연구자들의 조건들과 다르지 않은 문제들이 복잡하게 개입되어 있다.물론 이는 이러한 지역의 관성을 변화시키기에는 아프콤의 활동이 역부족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찌 보면 무의미하고 실패로 점철된 ‘지역에서의 함께-있음’을 과연 계속해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의미가 있는지 아프콤 내외에서도 회의의 시선이 팽배해있는 것도 현실이다.사정이 이러하니,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해나가는지, 혹은 왜 이런 방식의 함께-있음의 실천을 고집하는지에 대해 해석과 판단이 불투명한 것 또한 아프콤이 처한 현재적 상황이기도 하다. 

아프콤의 합평회가 있던 날에도 아프콤의 극진한 말들과 응대를 다소 기이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그러나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 중 지역에서 작은 대안적인 모임들을 꾸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긴 설명이 없이도 아프콤의 이러한 기이한 열정을 자신의 것 마냥 이해를 하였다.다른 지역의 경우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아프콤을 해나가면서 부산 지역의 작은 모임들과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부산 지역의 인문학이나 문화를 중심으로 한 대안 공간의 사정은 다들 비슷하다.적은 인원, 열악한 재정 상태,그로 인하여 한정된 인원이 열정을 불태우고 소진해버리면 사라져 버리고마는 장소들.그러나 그렇게 열정을 불태우지 않으면 시작도, 계속도 불가능한 그런 사정들.하여 이런 작은 대안 공간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기이한 열정으로 채워져 있다.그리고 이 대안의 자리, 그 장소들은 이 열정을 에너지로 해서 움직인다.하여 이 자리를 움직여나가기 위해 한 명 한 명 씩 마치 온몸을 불사르고 사라지는 촛불처럼 그렇게 꺼져간다.

외부에서 이 작은 대안공간을 채운 기이한 열정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마치 이 작은 공간의 구성원들이 자폐적이거나 동일화된 ‘은밀한 연대의 쾌락’을 영유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열정은 온 몸을 불사르는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기도 하다.아마도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내게 “혹시 연애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은 것은 이러한 기이한 열정의 낌새를 조금은 감지한 결과이겠으나, 이들에게 그 열정의 원천으로 참조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연애’와 같은 ‘현실적인 것’ 외에는 달리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연애와 같은 현실적인 열정과 타인과의 함께 함의 양식을 부정하거나 비하할 필요는 없다.오히려 새로운 삶을 위한 결속(연대이던 결사이던 혹은 어소시에이션이던)의 원리에서 ‘연애’(연애와 사랑은 다르지만)와 같은 정념의 자리를 배제해온 것이 기나긴 진보 정치의 역사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아프콤이 정동과 코뮨이라는 이질적인 두 키워드를 연결시켜 모임의 이름으로 가져온 것도 이러한 사정에서 비롯된다.하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낯선 타인과 함께 하는 열정의 자리는 ‘연애’라는 세속적 장치 외에는 달리 그 형태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바타유에서 낭시에 이르기까지 ‘연인들의 공동체’를 코뮤니즘이라는 한계의 언어와 결합하고자 하는 사유와 실험은 아직은 ‘미래의 것’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념과 함께-있음의 문제에서 우리들이 대면해야 하는 현실적인 것은 사랑이라는 진리 공정(바디우)이 아니라,너로 인해 ‘나’가 산산이 부서지고 박탈되는 것에 대한 불안과 분열증이다.아프콤의 지난 역사 역시 이러한 분열의 시간이기도 했다.그러나 그 분열을 단지 불화라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코뮨이 너와 나가 하나 되는 황홀경으로 구성될 때의 위험성을 우리는 코뮤니즘의 이론과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그리고 너와 나의 차이와 단수성의 인정이 도래할 코뮨에서 중요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현실의 코뮨에서 이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현실에서 너와 나는, 너와 나의 차이는 해소될 수 없는 갈등과 대립과 균열을 함께-있음의 시간과 자리에 끝없이 기입한다.아프콤의 고유한 기획인 로컬처의 새로운 버전인 합평회는 바로 이런 함께-있음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념을 나누는 자리였다.아프콤과 철학자 양창아씨는 각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함께-있음의 자리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균열, 혹은 슬픔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 이 대립과 균열은 새로운 관계로의 변환과 접속을 거부하는 몸의 완강한 관성적 완력으로 함께-있음을 파괴하기도 한다.아프콤 역시 이러한 관성적 완력 속에서 버팅기고 파열하기를 지속해왔다.그러나 한편으로 이 대립과 균열은 ‘나’가 전혀 다른 ‘너’라는 또다른 신체와 만나 변용해나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나’라는 관성적 몸의 파열과 열림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합평회의 긴 시간을 통해서 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함께-있음은 현실의 연애와 같은 달콤한 환희나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너로 인한 찢겨짐과 파열의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기도 하다.그래서 불가능한 실험을 위해 제 몸을 불사르고 사라져버리는, 그 기이한 열정은 함께 있음의 달콤한 환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파열과 찢겨짐의 고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그러니 그 기이한 열정에 대해 그저 ‘아름답다’거나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감히 말하지는 말자.

부산에서 서울로, 아프콤에서 쉬플레망으로 걷고, 뛰고, 달음질치는 동선 속에서 내가 경험한 현기증은 그런 점에서 실은 지난 아프콤의 역사 속에 고스란히 담겨졌던 ‘나’의 분열의 어떤 결산처럼 보인다.고백은 반칙이지만, 고백하건데 나는 부산에서 대안적 연구 모임을 해온 지난 몇 년간 어떤 분열증에 시달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서,교수와 코뮨의 오거나이저 사이에서,학자와 실천가 사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그 많은 사이에서 나는 무수한 낙차와 차이들과 조우했다.그러나 오랜 시간 나는 그 낙차나 차이들에 단지 ‘시달려’왔던 게 아닐까 자문해본다.그러나 아프콤에서 쉬플레망으로 이동하는 어떤 시간 속에서 혹은 어떤 허공에 매달려서 나는 그 낙차와 차이가 단지 내가 시달려야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내가 서 있는 자리들의 이질성과 그 자리들 사이의 차이라는 것,그리고 그 서로 다른 자리에서 변용되거나 변용되기를 거부하는 몸의 어떤 증상이었음을 어슴프레 인지한다.

또한 그 시달림은 단지 내 몸의 증상만이 아니라,내가 ‘너’라는, 때로는 나를 압박하고, 때로는 나를 부정하고, 때로는 나에게 반역하는 그 온전히 알 수 없는 ‘너들’과 조우했던, 조우하고 있는 그 파열의 몸살이라는 것을 또한 희미하게나마 인지하게 된다.이런 의미에서 지난 시간 열병처럼 나를 들뜨게 했던 기이한 열정과 그로 인한 몸살과 시달림은 단지 피로나 환멸, 실패의 기록만이 아니라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는 ‘너들’, 그 타자의 압력 속에서 다른 몸이 되어가기 위해 앓아야했던 몸살이라는 것을 비로소 생각해본다.아프콤의 긴 균열의 역사 역시 그런 점에서 단지 불화와 실패의 시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타자들이 함께-있음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그런 파열에서 비롯된 긴 몸살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여 나도, 너도, 아프콤도, 긴 몸살의  끝에 너-나의 인터페이스로 구성된 다른 몸이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그 몸이 비록 비례와 균형이 맞는 그런 몸도 실전에 잘 응전할 수 있는 ‘선수들’의 몸도 아닌,뜯기고 파열되고 너덜너덜한 그런 몸일 지라도 그렇게 아프콤은 다른 몸이 되어 새로운 시작을 기약하고 있다.그래서 ‘우리’의 새로운 시작은 함께 있음의 은밀한 환희나 황홀경에서가 아니라 너와 내가 서 있는 세계의 너무나 다른 낙차 속에서,함께-있음의 그 온도 차이 속에서,불화와 파열음 속에서, 그 대립과 분열 속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그 긴 여정  끝에 이런 말을 아프콤과, 그리고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분열을, 대립을 파열을 두려워하지 말자.그것이야말로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의 지울 수 없는 표지일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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