윰윰

 

 

"그래, 네가 자기 추전 해서 이번에 일본 간다며?"

 

어디서부터 시작된건지 모르지만, 제 의도와는 많이 다른, 제가 입 밖으로 꺼낸 적도 없는 단어인, '자기추전'을 통해 통번역 팀의 일원으로 이 워크숍에 참여했습니다. 권명아 선생님께 얘기를 듣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든 생각은 "어,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졌는데..?.."가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진담 반 섞인 "공항 화장실에서 안 나올지 몰라요"란 무책임한 말을 할 정도로 긴장도 되고 걱정도 했습니다. 전문적인 통역을 해본적도 없었고, 제 스스로 실력이 모자라다고 생각할 정도였고 특히나 학술 용어에 있어서는 전혀 무지했기에 워크숍을 준비하는 기간 내내 "내가 해도 되는걸까?",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해야 하나?"란 생각뿐이었습니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도착과 동시에 의미 없이 나왔던 "웃음"은 아마 이제 어떻게 되돌릴 수도 없고, 막상 현실에 된 상황에 극한 긴장감과 걱정에서 나오는 것과 동시에 "월경"의 기대감에 나오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도착하여 들은 강의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뭐지? 뭐지? 뭐지?"란 단어의 연속입니다. 그때부터 온몸의 긴장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낯가림이 있는 저에게는 조금 불편한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통번역 팀원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언어를 중개 해줘야 하기 때문에 낯가림을 없애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있어 하나의 "월경"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날, 와코 대학의 교수님과의 대화중 "저는 낯가림이 심해서...."란 말을 했을 때, "그렇게 안보인다"라는 대답을 들었으니 긍정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통역에 있어 책임감을 갖고 나간 자리는 요코하마 팀의 발표였습니다. 그때, 저는 개인이 아닌 팀원의 소중함을 뼛속깊이 느꼈습니다. 혼자가 아니기에, 저의 걱정과 두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저를 패닉상태로 만든 사건이 터졌죠. 그렇게 수희쌤께 애드립은 안된다고 했는데 제가 애드립 아닌 애드립을 하고 말았습니다. 실수 이후 스스로에게 실망을 해선지 어떤 위로의 말도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정말, 그 자리에서 울고 싶었습니다. 통번역에 있어 큰 실수였기 때문에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회"만 가득했던 일정은 아닙니다. 이번 워크숍은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만남"을 하고 돌아온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뒷풀이 자리에서 잠시 말을 꺼낸 적이 있지만, 앞선 실수들보다 더 크게 자리 잡은 생각은 "이러한 자리에 지금 있을 수 있어서 좋고, 전혀 다른 공간에서 살아온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고, 또 그런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고, 또 가까운 듯 멀게 느껴졌던 우리 전체 팀원들과 조금 더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어서 좋다"라는 것입니다. 작게는 저희 통역팀원들부터 전체 연구팀원, 그리고 다른 나라에 있어서 어쩌면 일생에 단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 일본 측 선생님들과 학생들. 이들과의 만남이 함께 한 일정 속에서 나눈 대화들이 곧 월경이며,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만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생이 큰 것이 아니며 일본 일정 속, 그 현실자체가 공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제가 막힐 때는 저희 팀원의 누군가가 혹은 일본 측의 누군가가 도와주기도 하고, 서로의 속도에 맞춰가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그 현장 자체가 공생의 한 장면이었다고 생각 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일본 측의 발표를 통해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의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알게 되어 더욱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명직교수님과 현아씨, 그리고 와코대학의 김근태씨 이 세사람이 서로 소울메이트를 만난 것처럼 저도 다른 의미의 "동지"를 만난 자리였기에 즐거웠습니다. ^^

 

평범하지만은 않은 경험을 하고 돌아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저는 집에 도착과 동시에 약 15시간을 내리 잤습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추석 당일이었으며 저는 바로 한국에서의 일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하나의 추억이 되어 제가 앞으로 할 일에 있어 받침돌이 되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꿈꾸는 저의 미래는 "어느 나라에서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것이다"입니다. "어느 나라"가 어디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익숙한 한국이 될지, 다른 나라보다는 조금 더 익숙한 일본이 될지 그리고 완전히 경험 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나라가 될지...하지만 이번의 "부딪힘"이 어느 상황 속에서도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어보다 한국어에 더 익숙한 일상이 계속 되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꿈꿨던 "죽기전에 4개국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일본어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해보려 합니다. 상황이 다르지만, 김근태씨가 자유롭게 일본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대화하던 모습이 저에겐 좋은 자극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은, 3박4일동안 기록을 위해 수고하신 진희씨와 뒷풀이를 가는 뒷모습들입니다!

 

 

 

 

 

 

 

가을하늘

 

 

 

출판강좌를 만나고 난 이후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따르게 해보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면서도 내가 어떠한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에 찾아가 이런 글이 있으니 한 번 책을 내주지 않겠는가. 하고 말하는 것에 대한 한없이 높은 벽을 체감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만든 책의 제목은 ‘K’s Story‘입니다. K는 제 이름의 첫 글자를 딴 K입니다. 나름대로 저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어린시절 일기장에 적혀있는 동시들을 보면서, 아 나는 어렸을 때도 이렇게 쓰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구나 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서 그런 발견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서 제게 하나의 힘이 되어 줬다는 사실이 어떠한 기록물로 남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에 제가 썼었던 동시를 책에 담고, 제가 감상한 인상에 대해서 설명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써놓은 짤막한 글과 힘들었던 때 적었던 시도 함께 실었습니다. 저는 우선 중앙 스템플러 제본을 하였습니다. 많은 분량도 아니었거니와 가운데 중철 된 모습이 제가 상상하는 책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사실 스템플러를 가장자리에 찍어놓는 제본은 제가 누군가에게 작성한 글을 보여줄 때, 그런 제본방식으로 보여주곤 했었습니다. 그때는 이게 책이라는 개념이 아니었는데, 여기와서 보니 책이라는 게 그렇게 거창하게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거창한 책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렇게 만들어낸 제작물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인 수업이었습니다.

책을 만들고 나서 내가 글을 쓰는 점에 있어서 좀 더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작은 책이지만 총 세 권의 책을 만들면서 이 책에 담길 이야기들에 대한 애착이 좀 커졌습니다. 그래서 아! 정말 더 잘 써야하는 구나 싶어서 그래서 조금 부끄럽기도 했네요.

이번 워크샵을 하면서 책의 제작이라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배웠지만, 또 다른 면에서 책을 만들고 살아간다는 게 참 힘든 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떠한 꿈을 같이 이뤄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린그림 관계자 분들을 보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나는 좀 어리구나 하고 생각하며 또 우울해지기도 했지만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괜히 그런 모습을 좀 유심히 보는 편인데, 저랑 생각이 다르거나 다른 것을 좋아하더라도 그런 것에 대한 공유가 있으면 괜히 친해지고 싶어지더라구요. 이번에 실제본을 하기도하고 저처럼 중철을 하기도 하고 소창연에서 만든 책을 보기도하면서 이렇게 몇 사람 안 되는데도 생각이 다양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습니다.

 

사실 이런 후기를 마감시한에 맞춰서 올렸어야 했는데, 왜 조금의 기억조차도 제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그러면서 교수님께 죄송하다고 말씀까지 드렸는데도 참 정신이 없었네요. 죄송합니다. 그때 만났었던 분들 참 잘해주셨는데 그만큼의 반도 저는 마무리를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에휴 마무리가 좋지 못하면 그 인상이 그리 좋지 않은데 말이죠. 저는 항상 이렇네요. 고쳐야 할텐데... 

선우

 

 

 

1. 또 한 번의 실험

정념세미나는 팀원들 각자의 역할과 가이드라인이 주어진 또 한 번의 실험이었다. 이러한 세미나의 정의, 한 문장은 언제나 '뒤늦은' 사후적으로 재구성 된 문장이다. 세미나 뿐 아니라, 여태까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여태까지의 후기는 잘못된 것과 각자의 반성, 다짐이 대부분을 이루었고, 선생님의 평가와 어휘들로 치장 한 단어와 표현, 가치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번 후기를 쓰는 데 있어서, 여태까지 몰랐던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라는 태도 즉 함께 있었던 1년간의 시간을 손쉽게 환원시키는 태도를 경계하였기 때문에 이번 후기는 내게 특히 더 어렵게 느껴진다. 게다가 몇 뼘의 공부로 빌려 적는 인용문이 오히려 불필요한 글이기 때문에 내 말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뒤늦은 체감들과 빌어 적는 단어들로 세미나를 '또 한 번의 실험'이었다고 여길 수 있었던 것, 모든 수행들이 완료 된 뒤 그 의미를 체감 할 수 있었던 것임을 숨기지 않겠다.

세미나라는 모임의 형식성은 함께 지정된 텍스트를 읽고 쓰는 것이다. 그 자리의 작은 약속이 곧 모두가 발 딛고 있는 (준비된)연극수행의 무대라고 비유될 수 있다면, 이렇게 세미나라는 형식에서 주어진 텍스트와 기본적인 역할분담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발견하고 기획하는 것은 '발전적 해체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몫을 어떻게 전유하여 몸둘바를 기획하였나?

약속과 자발적 기획의 의미를 모두 합쳐 '세미나'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번역 작업은 안에서의 부대낌이 단지 피로로 누적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던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일본어 번역이 가능한 사람 모두가 매주 논문 한편과 저자의 약력, 한국어 발제를 해와 각자의 능력이 세미나를 통해 더욱 값지게 발휘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번역과 글 또한 세미나의 단단한 뿌리 같은 역할로서 모두에게 똑같이 분양된 지반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통해서 서로의 미래와 기획을 나눌 수 없었던 것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세미나를 통해서 서로가 각자의 역할에 부담을 안고 있었던 만큼 함께 공부할 수 있음에 대한 기쁨을 서로 누리지 못한 것 같다. 실은 이를 계기로 각자의 계획들을 공유할 수 있는 장치의 의미와 더불어 각자의 공부 시점에 맞는 여러 세미나들이 태동할 수 있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전적 해체를 위한 세미나의 의미를 그 자체로 말하기엔 부족하다. 어떤 실험의 의미는 그 뒤, 계속 증폭될 수 있는 또 다른 실험들이 발생해야지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함께 공부한 것에 대한 결과물을 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그 다음의 기획들을 도모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함께 공부하는 것에 대한 기쁨을 단기간에 느낄 수 있었지만, 이것이 한 독립적인 '사건'이 되지 않기 위해서의 결과물과 기획은 연쇄되어야만 한다.




2. 학술운동과 자기수행,역할 사이에서

프로젝트의 사업과 연구모임의 학술운동의 궤적을 분리할 수 없듯이 1년간의 작업이 '학술운동'과 '공동체'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말하고 싶다. 심포지엄은 그간의 작업들이 무엇이었는지 학술장에서 공식적으로 발화할 수 있게 된 중요한 자리였다. 심포지엄에서 부스를 준비하면서 그간의 자료들을 편집하고 함께 그 의미를 톺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시간이 한 편으론 부대낌에 대한 고민과 반성 그리고 다짐의 메아리가 다시 반복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반복에 대한 두려움과 심포지엄을 통해 다시 화두 된 net-a의 학술 운동적 맥락에 대한 '자기의견 부재'가 '역할'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해보게 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어떻게 net-a작업의 일환을 서사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번 후기를 쓰는 데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지만, 그 거대한 서사를 아우르려는 시도는 서두르거나 조급해 하지 않고 계속 골몰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부담감을 치루기에 앞서 우선 자기 역할에 대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 어떻게 실험을 했었는지 또한 다시 물어볼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 팀 안에서의 자기 역할이 팀 전체의 운동성으로 외부화 되지 못했다는 것, 바로 그 실패의 경험들이 가장 중요한 지점인 것은 분명하다. 나는 아직 그 수많은 실패의 경험들 속에서 내 계획과 미래를 기약하는 글(관계맺음의 방식)을 모색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자리 잡지 못함은 팀워크의 맥락에서 본다면, '공유되지 못하는 것들' 중 일부로 포함된다. 그렇다면 서로를 판독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공유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가?

프로젝트는 모두가 '자립 연구자'의 삶이란 길을 가려는 목적을 위해 모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함께 다른 모양의 삶을 기획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고 그 가능성을 실험을 해본 것이다. 어울림의 발로가 나를 지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는 함께 할 수 있으려면, '나'(의 독해와 기획)를 꺼내보여야 한다. 함께 한 것에 대한 의미를 살피고, 기획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자기의 입장 없음은 굉장히 난감하다. 1년간의 일들에 대한 다른 독해와 평가를 덧입히기 힘들다. 수많은 당위들을 말했지만, 결국 부딪히는 장벽은 '바뀌지 않는 몸'이었을까.

'바뀌지 않는 몸'은 다시 '윤리성'의 영역에서 논증될 수 있을 법하다. 공동체적인 조건들(시간과 장소) 안에는 무한한 관계의 양상이 열려있다. 무한한 관계의 양상은 (공동체적)일상을 통해, 기존의 나의 힘 관계를 전복할 수 있음에 대한 가능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전복되지 않는 힘, 이전보다 조금씩 더 달라지고자 하는 욕망의 정도의 문제일까. 항상 당위로 끝나는 문장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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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콩떡1

 

 

세미나와 심포지움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의 지나온 시간들에 대하여, 동계훈련 세미나. 그러고보니 오랜만에 장시간 세미나를 하였다. 기억해보면 예전의 정념세미나도 항상 이정도 시간을 했던 것 같은데. 정념세미나와 4주세미나가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4주 세미나 때는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는 생각이 있었다. 정말 아주 정말 부끄럽지만 예전에는 내가 잘나서 하는 줄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생각은 무의식 근처에 있고 모호한 것이라 문장도 모호하다) 4주 세미나 중에 나는 한 번의 미션 실패를 했다. 나는 언제나 잘 타협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세미나를 마쳤다. 그동안 늘 모호하게 떠다녔던 단어들이 내 안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듯하다. 4주 세미나가 연구모임a를 조금씩 다시 되짚으며 해체해가는 과정이었다면, 심포지움은 프로젝트의 1년차를 마감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이것들로 우리는 어떤 쉼표, 를 찍었다. 쉼표, 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여기서, ‘연대기’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연대의 기록’이 될 수도 있고, ‘시간 순의 역사’가 될 수도 있는 단어.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연대기’를 써온 것이다. 서로 간에 얽혀있던 기록과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 내가 하는 말이 ‘평가’와 ‘반성’의 기계적인 반복이 되지 않기를. 이 후기를 쓰기 위하여 ‘공동체’, ‘관계’와 같은 단어를 적어나가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왜 이 단어들을 주워섬기고 있는가. 반복해왔던 설명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나에게 이 단어는 정말로 무엇인가. 질문을 바꿔보니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들 ‘이’ 공동체가 무엇인지, 해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저 이상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이’ 공동체에 대한 말을 재발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이 튄다. 어떤 밴드가 있다. 무명이었다. 그들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를 들고, 함께 죽을 동 살 동 연습하고, 작곡하고, 무슨 곡을 연주할지로 싸우고 작은 무대에서 연주하며 시간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좋아하는 것이 꼭 잘하는 것의 동의어는 아니라서, 관객은 몇 없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이들이 아주 신이 났었다는 것을, 당신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문장들은 과거형으로 씌어져있다. 이들이 드문 기회를 잡아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곡을 다시, 또 다시, 연주한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한다. 반복, 또 반복. 어느새 그 밴드의 무표정함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 신파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적인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고 싶어함은 아니다. (그리고 대개, 그런 것은 실제로는 별 쓸모없는 일이다.) 정말 마음을 담아서, ‘나’를 내지르는 것이었던 노래가 어느 샌가 그저 입에서 외워지는 것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마음을 잊어버린다. 처음에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말들을 발견하였을 때의 희열을, 순회공연같은 반복 속에서 그저 읊어대는 것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익숙한 단어들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나는, 우리가 생각하였던, 정념과 공동체와 해방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늦은 생각이 든다.

재발명된 단어들로 우리의 사전, 또는 각자의 사전을 만들고 싶다. 일곱 개의 단어로만 만들어진 사전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말이 존재한다는 것, 너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전을 만드는 것. 이것으로 ‘우리’가 무엇이었나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희 선생님께서 ‘마지막 회의’ 때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하나도 이룰 수 없었을 거예요.”

많은 일들을 해왔다, 는 말에는 그저 놀랐지만 이 말은 가슴을 울린다. 누군가가 주도를 하면 나머지가 미안하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기획을 하고, 누군가는 처리를 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조율한다. (어느 샌가 부터는 그 밴드들처럼 되기도 하였지만)모두가 함께 잘해왔구나. 역시 뒤늦게 안다. 그럴싸하게 나를 반성하기보다는(‘반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럴싸함’, ‘치열하지 못함’의 문제라는 것) 모두에게 고맙고 정말 함께, 열심히 해왔다는 말을 하고 싶다. 누구 하나 자신이 가진 것 중 많은 것을 투여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동안 다른 이들에게 고마움과 기쁨을 주는 것에 게을렀고, 인색하였다. 모두가 있어 내가 행복하게 되듯, 내가 있어 모두가 (잠시라도) 기쁘기를.  

 

 

한입만쥬

 

 

 

 

'지난 겨울은 무엇이었을까. '

소설 주인공처럼 잠시 일을 멈추고 창밖을 쳐다보며 떠올려 본다. 지난 겨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들 사이에는 밀어낼 정도로 많은 것이 있거나 매질이 없어 전달되지 않을 정도로 부족함을 느꼈다. 지시 공포 보고 처리 전달 선물 거절 약속 미실행 결심 요청 반성 협동 수합..... 주고 받음이 있는 소통이라고 하기엔 다른 말들이다. (하지만 감염→감염→감염→감염도 내가 생각한 소통은 아니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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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다보는 사람들과 소개하는 우리들

 

평생은, 역사는 반복 만을 할지도 모르며 우리는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평생을(평생이길!) 발버둥 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망하는 길을 선택하는 고귀함을 우리는 대단하게 우러러보지만 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시도했다가 결국 망해버리는 우리도 생각해보면 가치있는 일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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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과 요청의 자리. 무엇이 될지 모르는.

 

이미 존재하는 시간들을 구태여 연말이나 신년이라는 국면으로 맞게하는 것은 동력을 이끌어 내거나 의욕을 부려보는 것에 어색함이나 멋쩍음 때늦음의 아쉬움을 지워주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그러모으는 일은 대단한 능력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그러모으는 일은 대단한 능력이다.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초사이어인같은 능력을 발휘하든 매주 번역능력자로 업그레이드되든 공부를 매개로 사람을 모아 혼재하던 정념의 공동체를 만들든. 그리고 이미 존재하던 것과 마주하하고 대면하는 일이 괴롭기도 했다. 이기적인 공부 습관이나 수시로 느슨하고 게을러지는 대부분의 나, 정념과 정동이 순수한 가능성 자체로 발현되기 힘들듯 주로 이해타산적으로 핑계로 악용되기도 했다. 각자의 동력과 의욕과 희망의 갯수만큼 우리는 복잡했고 부대꼈다. ('부대끼다'가 영어로는 suffer인데 그렇게 부정적인 뉘앙스는 아님을 밝힌다.)그 부대낌을 외부의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이해받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는데 영영 안될것같기도 하다. 지금 또 생각해보니 그것은 군대/국가나 회사 학교 가족 공동체와 달랐기 때문인듯 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은 (특수화시킬 마음은 전혀 없지만)이 공동체를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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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우리를 태운 차를 주차하러 가시고 종업원은 신콩떡에게 과격한 장난을 친다. 약이 오른 신콩떡을 기타등등걸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보고있다. 모라는 기타등등걸의 팔짱을 끼고 있고 선우는 종업원인지 신콩떡인지 모르게 보고 있고 나는 한발짝 뒤에서 그들을 구경하고 있다. 

박냐옹

 

 

4주간의 세미나가 끝이 나고 여느때와 똑같이 잠을 청하는 와중에 드는 생각은 '이렇게 빨리 자도 되는건가?' 라는 것이었다. 집중세미나의 시간을 거치며 몸도 마음도 고단했지만 반면 그것에 집중해가던 시간을 조금씩 내것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생각보다 더 나태하게 연구자가 아닌 몸으로 살아오던 것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언제나 1순위가 되었어야 할 학문이 어느틈엔가 멀리 멀어져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함께 하는 세미나는 그 것을 다시 보게 해주었고, 나의 위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또한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공부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한번 더 느끼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4주간의 짧은 시간이 공부로서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 되었고 내가 해야하는 것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과정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연구하는 사람으로서의 몸가짐을 잊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면서 느끼고 다짐했던 것들이 왜, 어떤 것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 고민과 반성이 무수히 반복되더라도 끊임없이 나의 위치를 환기해야겠다. 공부와 함께 나를 다지고 만드는 것, 그것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되어 감사한다. 심포지움은 (또한, 그동안의 프로젝트의 작업은) 엄청나게 많은 활동과 의미와 기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파악하지 못한 것에 대해 고민을 더하면서 나에게는 공동체로서의 의미부여도 가능할 것이다. 항상 혼자공부하고 혼자 활동하는 구조에 박혀있었던 사람으로서 함께 움직이고 나누고 대화하고 공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무엇을 알고 무엇을 만들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대화를 나누는 공동체를 통해 또, 항상 고민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들의 맥락과 실험 속에 나를 찾고 모두를 이해하는 활동이 조금씩은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을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활동과 의미 속에서 함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과 본인들에게 부여된 의미, 그리고 그것을 다시 공부로 표현해내는 활동의 구조와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세미나와 프로젝트가 공동의 팀의 업적일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이길 바라며 스스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차가영

 

 

 

집 앞에서 강의를 듣는다는 생각에 참여를 하겠다고 하여 책까지 만들게 되었다. 집 앞에서 강의를 듣지 않았고, 진짜 책이라면 절대 쓰일 수 없을 내용의 글이 우리가 만든 책에 실리긴 했지만,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나를 너무 설레게 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 도착한 서점 안에는 좋은 책이 많아서 책이 완성되기 전까지 내가 잘못 온 것이 아닐까. 내가 와도 되는 곳일까. 하는 생각을했었다.

 

'골목을 품은 안개 속 킨제이 하물며 생강나무 꽃을 탄 숏버스'는 다같이 한자리에 모여서 각자 어떤 내용의 글을 써왔는지 얘기를 나누고, 쓰여질 용지부터 시작해서 책의 크기, 스템플러는 어떻게 찍을 것인가, 글이 실릴 순서, 글씨체, 글씨 크기, 쪽번호를 매길 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한 얘기, 제목, 표지 뒤에 실린 글까지. 점하나부터 글이 완성되기까지 모든 것이 생각의 나눔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혼자 했으면 하지 못했을 생각이 모이고, 책 속에 반영 되니까 완성이 가까워질수록 작품이 되어 갔다. 혼자보다 여럿이 좋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책을 만들 때는 학교 미술시간 같아서 만드는 것에 흥분해 책 한권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집에 와서 실린 내용을 다시 읽어 보고 찬찬히 뜯어보고 나서는 우리가 하나의 행동을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책을 한번 만들어 보고 나니까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감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뭔가 더 저질러 보고 싶어서 요즘 트위터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글을 조금씩 쓰고, 한푼씩 모아서 이번에 한 것 처럼 책을 한 권 만들어 보려고 하고 있다. 잘 될진 모르겠지만 재밌는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끼리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이 맛에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두번째 느끼고 있다. 강의를 듣지 못했다면 아주 오랜 후에야 했을 생각을 강의를 듣고 내가 한 번 겪어 봄으로써,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날을 앞당길 수 있게 되었다.

 

소규모 출판은 아직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좁다고 하지만, 소규모 출판 강의 덕분에 대규모 출판에서 나온 책을 읽기만 하던 때와는 다름 넓은 세상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잘 쓰는 재주가 없고, 무언가를 잘 만들어내는 재주는 없지만 자꾸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내용과 작가 뿐만이 아니라 책 자체에 대한 것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기분이 좋다. 사람들과 함께 해서 즐겁고, 새로웠던 날이었다. 내 글이 실린 책속에 나만의 추억이 아니라 우리의 추억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더 아끼게 된다. 

ajaㅋ

 

 

 

심포지움은 지난 1월 정념 동계 훈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동안 정념이라는 프로젝트 주제에 대해서 관심과 더불어 노력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안)했다고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12월 모두가 저에게 ‘공부하라’라고 요청해주셨기 때문에 그 요청을 수락하고 수행해야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이해가 느렸을지 몰라도, 공부노트나 번역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나름대로는 약속을 지켰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성취감이 있었던 1월이었습니다.

 

그 1월의 성취감을 좀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 심포지움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선생님의 발표에서 ‘어, 세미나에서 들었던 이야기네,’하는 정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이해의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고요. 그러나 심포지움을 통해서 다시 확인 한 것은 정말 프로젝트가 선생님의 연구와 맞닿아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좀 더 노력했다면 훨씬 이전에 프로젝트와 공부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프로젝트 내부에서 항상 세미나가 이루어졌지만 이 세미나에서 들었던 배웠던 것들이 프로젝트에서 행하는 여러 행사들과의 접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거든요. 이것도 따로 인 것 같고, 저것도 따로 인 것 같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지금 글을 쓰면서 지난 6개월 게을렀던 그 시간이 꽤나 후회가 됩니다. 프로젝트 팀원들과의 관계에서도 소홀하지 않았나, 공부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소홀했었고, 번역은 잘했던가, 팀원들에게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가. 늘 행사 끝에 한 마디 할 때 저 스스로 “학부생으로써 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말 해놓고 그 귀중한 경험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회의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다가오며 그 이후의 몫은 각자가 노력하기 나름이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 노력이 그 이전부터 필요했던 것임을 이제야 깨닫게(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되네요. 이제 후회는 그만하고 앞으로 어떻게 노력해야 내 몫을 잘 누릴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6개월간의 경험을 토대로 나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바뀌는 내 환경에 어떻게 이 경험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계속 생각하고 던져보고 아님말고 던져보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던져보고 아님말고, 소극적이었던 저를 바꾸는 방향으로 던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콩떡1

 

 

 

 

그린그림의 1, 2회 워크샵을 마치고 우리는 각자의 책 또는 노트를 갖게 되었다. 워크샵이 끝나고 나는 곧바로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구했고, 추가로는 큰 스탬플러와 그린라이트紙를 갖고 싶어 하게 되었다. 2회 워크샵에서 우리가 Don't Do It Yourself (D.D.I.Y)에 관한 ‘선언문’을 읽고 시작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바보같은 일이다. 이 장작개비 같은 충동심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나도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고, 사실은 ‘책을 만들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인 듯하다. 책을 만들게 해주고 싶었다.

 

내 주위의 모두에게, 너희들의 글은 모두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닌 것은 문제인 듯도 하다......) 내 주위에는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각자가 관심있는 공부의 분야도 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또는 전혀 길을 몰라서 그냥 ‘흥미’로만 아련하게 간직하고 접어버리는 사람들이 몇 있다. 그들을 생각하며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낸 마냥, “여러분! 고기를 구웁시다!”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자신의 손에서 만들어 질 수 있는 수많은 창작물 (요리, 목공, 또 무엇) 중에서 책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저자’가 된다는 경험일 것이다. 무형의 파일로 떠돌던 자신의 글이 물질화되어 지면을 얻고 안착한다는 것. 이것은 나의 말이 공적인 곳에서 퍼질 수 있다는 기쁨과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책을 만드는 것은 역시 굉장히 두근거리는 경험이다. 그 첫 번째 경험은 우리가 이전에 <풍기문란 밤놀이>를 진행하며, 관련 책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각자의 글을 써서 모으고 편집하고 인쇄해서 제본하여 각자가 결과물을 받아보았을 때 참 뿌듯하였다. 그래서 2회 워크샵 때 제본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나는 자꾸만 “맞아요, 맞아요”라고 하며 연신 주억거렸다. 생각해보면 ‘나..나도 해봤다는..! 나도 안다는..!!’하는 창피한 제스쳐이지만, 그래도 책을 만들어보았다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으며, 워크샵 과정 중에서 그 경험이 소중한 것이었음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제스쳐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대부분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일전에 불었던 ‘20대 저자’ 열풍을 생각한다. ‘공적인 장에서 말을 갖기 어려운 자 (20대)들에게 말을 할 수 있게 하자, 그들도 자신의 발화를 물질화 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20대 저자’는 몇몇의 스타저자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간간이 이어지던 ‘대안적인 20대 관련 서적’은 출판시장의 틈새상품으로 잠깐 빛났다가 금새 잊혀졌다. 우리는 이 ‘저자’라는 자리를 보다 더 ‘민주화’할 필요가 있다. (운동권적인 어투가 아니기를 빈다)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책을 갖고 기뻐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분법과 ‘또 다른 이야기’라는 구도가 아니라, 원래부터 이야기는 수만가지가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다. 소규모 출판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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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궈니즘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말아주세요 ㅜㅜ

닉네임은.. 아이디 비밀번호를 못찾아서.. 새로 가입했습니다........

선우

 

 

 

   


 

 

 

 

(grgm 내부 사진, 책뿐만 아니라 쉽게 구하기 힘든 음반들, 핸드메이드 노트와 에코백들도 있다.)



부끄러움을 만나는 공간, '비언어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일은 책을 만드는 행위일 것이다.



어떤 글도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제야 텍스트의 행간의 가능성, 그 의미를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한 권의 책이란 보다 구체적으로 grgm에서 책을 만드는 과정의 노동을 일컫는 것인데, 텍스트의 의미와 그 성질을 헤아려 글을 배열하고 종이(텍스트의 물질적 이동)를 고르고 제본의 방법 등을 따지며, 즉 행간의 가능성을 가시화하는 일을 말한다. grgm(그린그림)은 부산에 있는 (소규모)독립 출판사이다. grgm을 찾는 이들은 아직 글을 쓰는 사람보단, 이미지 작업을 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누구나'가 자신의 책을 만들 수 있을 때, 이미지 작업을 하는 사람보다 활자 작업을 하는 사람의 방문이 훨씬 적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대개 글 쓰는 이들은 자신의 글에 대해 잘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과 글쓰기의 등치는 이미 책 한권의 소재거리가 될 만큼 떼어내기 힘든 감정의 부산물인데, 그런 의미에서 글은 '가장 나 자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글에서 '나',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울 수 있을 때, 읽을 만한 글이 탄생"(오웰)할 수 있다는 말에 이미 여러 차례 빚을 진바가 있다. 나는 여기서 '글'의 본질적인 역설이자 그 역설을 담지하고 있는, '글쓰기'라는 행위가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글 밖의 '외부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블랑쇼는 작품을 두고 "찢겨진 내밀성"이라 표현한 바 있다. 텍스트 그 자체의 내밀성은 한 편의 글이 쓰여 지기까지, 자신의 글과 마주하고 끊임없이 분열, 대립하는 과정을 겪은 작가 자신의 경험을 대입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작품이 작품으로 남는 한 결코 양립될 수 없고 진정되지 않는 상반되는 것들의 내밀성이고 격렬함 양립될 수 없으나 그것들을 대립시키는 이의제기 속에 충만함을 얻는 대립 작용의 상반성에 마주하는 내밀성"은 곧 담론 속에 내던져짐으로써만, 읽혀짐으로써만 생동하는 것인데, 블랑쇼는 텍스트 자체의 속성으로서, 텍스트가 행하는 '상반되는 것들의 고귀한 결합'이라는 작품 자체에 대한 찬미를 통해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의 주체적인 의미가 아니라, 작품이 그 자체의 본질을 비로소 얻게 되는 작품 '외부'에 대한 관심이다.

 

그것은 저자와 독자라는 실체적인 누군가일 수도, 담론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인데, 나는 여기서 글, 즉 언어적 행위 후에 이루어지는 그 다음의 과정, 책을 만드는 행위라는 이 비언어적 행위(그 책에선 아무도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독자인가 저자인가?)또한 글쓰기의 외부성이라 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와 독사 사이에 있는 그 외부성을 통해 오늘날의 글쓰기가 가지는 의미에 더 주목하고 싶다, 그리고 나아가 글 쓰는 이들의 실천적 동기를 이 비언어적 행위를 통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나는 '후기'라는 형식을 통해, 함께 있었던 이들의 몫을 마련하는 글쓰기에 의욕을 내고 있었다. 그것이 곧 어울림의 발로라고 생각되었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인용하며 그 자리의 의미를 만들고, 재현하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 편의 세미나 후기와 발제문이자 후기이자 내 글이라고 생각되는 글 한 편을 들고 워크숍에 참석했다. 그런데 책을 만들려 했던 애초의 목적이 두 편의 글을 노트의 표지로 만들게 되었다. 표지가 되버린 글은 노트로서의 상품 미학적 열정을 가졌고 역설적으로 나의 부끄러움은 기이하게 드러나 버린 꼴이 되었다. 나는 왜 책을 만들지 못했나. 물론 워크숍 당시 책이 아닌 노트의 형식을 택한 것은, 더 좋은 글을 쓰고자 이전의 글을 통해 다음 글을 '잇자' 라는 다짐의 의미였지만 결국 나는 그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잇지' 못했다.

 

책을 만드는 노동을 통해서야 비로소 내 글을 돌보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 회피, 그 다짐 한 켠에 있었던 부끄러움을 마주 할 수 있었다. 시간을 맞춰 가장 간단하게 '혼자서도 책을 만들 수 있다'라는 걸 일깨우기 위했던 워크숍은 책을 만들기 위한 기획토론을 거쳐 종이를 고르는 수고, 직접 책을 엮을 실색을 고르고, 내 손으로 제본(직접 손으로 엮는 실 제본을 했다.)을 하고 책의 양 페이지를 맞추기 위해 재단의 과정을 모두 거쳐 진행되었다. 몸의 수고가 동반되었을 때, 원고지 몇 매의 분량을 채우지 못하는 몇 문장 혹은 단어들의 나열이, 소셜 네트워크의 몇 백자로 제한된 단문들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는, 단문의 잠재성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만드는 행위는 글이 곧 자기 자신이 되어버리는 부끄러움을 만나고 벗어날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곧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있다는 말과 상응할 때,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니 한 문장을 쓸 때 이 단문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는 그 잠재성을 알아차려야 한다. 글의 비약은 비언어적 행위를 통해 비로소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부터 설명을 덧붙이자면, 김가을하늘님의 <K스토리> 신콩떡님의 <장님의 말>, 박냐옹님의 노트, 나의 노트이다.


 

김가을하늘님은 워크숍의 텍스트 분량 제한으로 자신을 인터뷰한 글을 가지고 오셨다. 하지만 다음엔 단편 소설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신콩떡님은 그간의 발제문과 단문들을 <장님의 말>이라는 제목의 책을 만들었다. 두 책 모두 스템플러로 제본되었다. 아직 책을 읽지 못했음을 밝힌다..^^; 박냐옹님은 얼마전 하늘로 간 강아지와의 추억을 책으로 만들고 싶어 사진을 직접 프린트해오셨다. 레이저 프린터인지라 노트 제작 내내 손에 잉크가 묻어 고생을했다. 노트 제작은 모두 실제본을 하였다. 실제본은 간격을 맞추어 직접 손으로 책이 흩어지지 않게 제본해야되는지라 초보자는 이 과정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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