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콩떡1

 

 

세미나와 심포지움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의 지나온 시간들에 대하여, 동계훈련 세미나. 그러고보니 오랜만에 장시간 세미나를 하였다. 기억해보면 예전의 정념세미나도 항상 이정도 시간을 했던 것 같은데. 정념세미나와 4주세미나가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4주 세미나 때는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는 생각이 있었다. 정말 아주 정말 부끄럽지만 예전에는 내가 잘나서 하는 줄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생각은 무의식 근처에 있고 모호한 것이라 문장도 모호하다) 4주 세미나 중에 나는 한 번의 미션 실패를 했다. 나는 언제나 잘 타협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세미나를 마쳤다. 그동안 늘 모호하게 떠다녔던 단어들이 내 안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듯하다. 4주 세미나가 연구모임a를 조금씩 다시 되짚으며 해체해가는 과정이었다면, 심포지움은 프로젝트의 1년차를 마감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이것들로 우리는 어떤 쉼표, 를 찍었다. 쉼표, 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여기서, ‘연대기’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연대의 기록’이 될 수도 있고, ‘시간 순의 역사’가 될 수도 있는 단어.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연대기’를 써온 것이다. 서로 간에 얽혀있던 기록과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 내가 하는 말이 ‘평가’와 ‘반성’의 기계적인 반복이 되지 않기를. 이 후기를 쓰기 위하여 ‘공동체’, ‘관계’와 같은 단어를 적어나가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왜 이 단어들을 주워섬기고 있는가. 반복해왔던 설명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나에게 이 단어는 정말로 무엇인가. 질문을 바꿔보니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들 ‘이’ 공동체가 무엇인지, 해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저 이상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이’ 공동체에 대한 말을 재발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이 튄다. 어떤 밴드가 있다. 무명이었다. 그들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를 들고, 함께 죽을 동 살 동 연습하고, 작곡하고, 무슨 곡을 연주할지로 싸우고 작은 무대에서 연주하며 시간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좋아하는 것이 꼭 잘하는 것의 동의어는 아니라서, 관객은 몇 없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이들이 아주 신이 났었다는 것을, 당신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문장들은 과거형으로 씌어져있다. 이들이 드문 기회를 잡아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곡을 다시, 또 다시, 연주한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한다. 반복, 또 반복. 어느새 그 밴드의 무표정함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 신파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적인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고 싶어함은 아니다. (그리고 대개, 그런 것은 실제로는 별 쓸모없는 일이다.) 정말 마음을 담아서, ‘나’를 내지르는 것이었던 노래가 어느 샌가 그저 입에서 외워지는 것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마음을 잊어버린다. 처음에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말들을 발견하였을 때의 희열을, 순회공연같은 반복 속에서 그저 읊어대는 것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익숙한 단어들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나는, 우리가 생각하였던, 정념과 공동체와 해방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늦은 생각이 든다.

재발명된 단어들로 우리의 사전, 또는 각자의 사전을 만들고 싶다. 일곱 개의 단어로만 만들어진 사전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말이 존재한다는 것, 너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전을 만드는 것. 이것으로 ‘우리’가 무엇이었나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희 선생님께서 ‘마지막 회의’ 때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하나도 이룰 수 없었을 거예요.”

많은 일들을 해왔다, 는 말에는 그저 놀랐지만 이 말은 가슴을 울린다. 누군가가 주도를 하면 나머지가 미안하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기획을 하고, 누군가는 처리를 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조율한다. (어느 샌가 부터는 그 밴드들처럼 되기도 하였지만)모두가 함께 잘해왔구나. 역시 뒤늦게 안다. 그럴싸하게 나를 반성하기보다는(‘반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럴싸함’, ‘치열하지 못함’의 문제라는 것) 모두에게 고맙고 정말 함께, 열심히 해왔다는 말을 하고 싶다. 누구 하나 자신이 가진 것 중 많은 것을 투여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동안 다른 이들에게 고마움과 기쁨을 주는 것에 게을렀고, 인색하였다. 모두가 있어 내가 행복하게 되듯, 내가 있어 모두가 (잠시라도) 기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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