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

 

 

 

1. 또 한 번의 실험

정념세미나는 팀원들 각자의 역할과 가이드라인이 주어진 또 한 번의 실험이었다. 이러한 세미나의 정의, 한 문장은 언제나 '뒤늦은' 사후적으로 재구성 된 문장이다. 세미나 뿐 아니라, 여태까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여태까지의 후기는 잘못된 것과 각자의 반성, 다짐이 대부분을 이루었고, 선생님의 평가와 어휘들로 치장 한 단어와 표현, 가치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번 후기를 쓰는 데 있어서, 여태까지 몰랐던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라는 태도 즉 함께 있었던 1년간의 시간을 손쉽게 환원시키는 태도를 경계하였기 때문에 이번 후기는 내게 특히 더 어렵게 느껴진다. 게다가 몇 뼘의 공부로 빌려 적는 인용문이 오히려 불필요한 글이기 때문에 내 말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뒤늦은 체감들과 빌어 적는 단어들로 세미나를 '또 한 번의 실험'이었다고 여길 수 있었던 것, 모든 수행들이 완료 된 뒤 그 의미를 체감 할 수 있었던 것임을 숨기지 않겠다.

세미나라는 모임의 형식성은 함께 지정된 텍스트를 읽고 쓰는 것이다. 그 자리의 작은 약속이 곧 모두가 발 딛고 있는 (준비된)연극수행의 무대라고 비유될 수 있다면, 이렇게 세미나라는 형식에서 주어진 텍스트와 기본적인 역할분담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발견하고 기획하는 것은 '발전적 해체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몫을 어떻게 전유하여 몸둘바를 기획하였나?

약속과 자발적 기획의 의미를 모두 합쳐 '세미나'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번역 작업은 안에서의 부대낌이 단지 피로로 누적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던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일본어 번역이 가능한 사람 모두가 매주 논문 한편과 저자의 약력, 한국어 발제를 해와 각자의 능력이 세미나를 통해 더욱 값지게 발휘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번역과 글 또한 세미나의 단단한 뿌리 같은 역할로서 모두에게 똑같이 분양된 지반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통해서 서로의 미래와 기획을 나눌 수 없었던 것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세미나를 통해서 서로가 각자의 역할에 부담을 안고 있었던 만큼 함께 공부할 수 있음에 대한 기쁨을 서로 누리지 못한 것 같다. 실은 이를 계기로 각자의 계획들을 공유할 수 있는 장치의 의미와 더불어 각자의 공부 시점에 맞는 여러 세미나들이 태동할 수 있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전적 해체를 위한 세미나의 의미를 그 자체로 말하기엔 부족하다. 어떤 실험의 의미는 그 뒤, 계속 증폭될 수 있는 또 다른 실험들이 발생해야지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함께 공부한 것에 대한 결과물을 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그 다음의 기획들을 도모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함께 공부하는 것에 대한 기쁨을 단기간에 느낄 수 있었지만, 이것이 한 독립적인 '사건'이 되지 않기 위해서의 결과물과 기획은 연쇄되어야만 한다.




2. 학술운동과 자기수행,역할 사이에서

프로젝트의 사업과 연구모임의 학술운동의 궤적을 분리할 수 없듯이 1년간의 작업이 '학술운동'과 '공동체'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말하고 싶다. 심포지엄은 그간의 작업들이 무엇이었는지 학술장에서 공식적으로 발화할 수 있게 된 중요한 자리였다. 심포지엄에서 부스를 준비하면서 그간의 자료들을 편집하고 함께 그 의미를 톺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시간이 한 편으론 부대낌에 대한 고민과 반성 그리고 다짐의 메아리가 다시 반복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반복에 대한 두려움과 심포지엄을 통해 다시 화두 된 net-a의 학술 운동적 맥락에 대한 '자기의견 부재'가 '역할'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해보게 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어떻게 net-a작업의 일환을 서사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번 후기를 쓰는 데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지만, 그 거대한 서사를 아우르려는 시도는 서두르거나 조급해 하지 않고 계속 골몰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부담감을 치루기에 앞서 우선 자기 역할에 대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 어떻게 실험을 했었는지 또한 다시 물어볼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 팀 안에서의 자기 역할이 팀 전체의 운동성으로 외부화 되지 못했다는 것, 바로 그 실패의 경험들이 가장 중요한 지점인 것은 분명하다. 나는 아직 그 수많은 실패의 경험들 속에서 내 계획과 미래를 기약하는 글(관계맺음의 방식)을 모색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자리 잡지 못함은 팀워크의 맥락에서 본다면, '공유되지 못하는 것들' 중 일부로 포함된다. 그렇다면 서로를 판독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공유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가?

프로젝트는 모두가 '자립 연구자'의 삶이란 길을 가려는 목적을 위해 모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함께 다른 모양의 삶을 기획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고 그 가능성을 실험을 해본 것이다. 어울림의 발로가 나를 지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는 함께 할 수 있으려면, '나'(의 독해와 기획)를 꺼내보여야 한다. 함께 한 것에 대한 의미를 살피고, 기획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자기의 입장 없음은 굉장히 난감하다. 1년간의 일들에 대한 다른 독해와 평가를 덧입히기 힘들다. 수많은 당위들을 말했지만, 결국 부딪히는 장벽은 '바뀌지 않는 몸'이었을까.

'바뀌지 않는 몸'은 다시 '윤리성'의 영역에서 논증될 수 있을 법하다. 공동체적인 조건들(시간과 장소) 안에는 무한한 관계의 양상이 열려있다. 무한한 관계의 양상은 (공동체적)일상을 통해, 기존의 나의 힘 관계를 전복할 수 있음에 대한 가능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전복되지 않는 힘, 이전보다 조금씩 더 달라지고자 하는 욕망의 정도의 문제일까. 항상 당위로 끝나는 문장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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