윰윰

 

 

"그래, 네가 자기 추전 해서 이번에 일본 간다며?"

 

어디서부터 시작된건지 모르지만, 제 의도와는 많이 다른, 제가 입 밖으로 꺼낸 적도 없는 단어인, '자기추전'을 통해 통번역 팀의 일원으로 이 워크숍에 참여했습니다. 권명아 선생님께 얘기를 듣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든 생각은 "어,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졌는데..?.."가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진담 반 섞인 "공항 화장실에서 안 나올지 몰라요"란 무책임한 말을 할 정도로 긴장도 되고 걱정도 했습니다. 전문적인 통역을 해본적도 없었고, 제 스스로 실력이 모자라다고 생각할 정도였고 특히나 학술 용어에 있어서는 전혀 무지했기에 워크숍을 준비하는 기간 내내 "내가 해도 되는걸까?",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해야 하나?"란 생각뿐이었습니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도착과 동시에 의미 없이 나왔던 "웃음"은 아마 이제 어떻게 되돌릴 수도 없고, 막상 현실에 된 상황에 극한 긴장감과 걱정에서 나오는 것과 동시에 "월경"의 기대감에 나오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도착하여 들은 강의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뭐지? 뭐지? 뭐지?"란 단어의 연속입니다. 그때부터 온몸의 긴장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낯가림이 있는 저에게는 조금 불편한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통번역 팀원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언어를 중개 해줘야 하기 때문에 낯가림을 없애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있어 하나의 "월경"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날, 와코 대학의 교수님과의 대화중 "저는 낯가림이 심해서...."란 말을 했을 때, "그렇게 안보인다"라는 대답을 들었으니 긍정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통역에 있어 책임감을 갖고 나간 자리는 요코하마 팀의 발표였습니다. 그때, 저는 개인이 아닌 팀원의 소중함을 뼛속깊이 느꼈습니다. 혼자가 아니기에, 저의 걱정과 두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저를 패닉상태로 만든 사건이 터졌죠. 그렇게 수희쌤께 애드립은 안된다고 했는데 제가 애드립 아닌 애드립을 하고 말았습니다. 실수 이후 스스로에게 실망을 해선지 어떤 위로의 말도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정말, 그 자리에서 울고 싶었습니다. 통번역에 있어 큰 실수였기 때문에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회"만 가득했던 일정은 아닙니다. 이번 워크숍은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만남"을 하고 돌아온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뒷풀이 자리에서 잠시 말을 꺼낸 적이 있지만, 앞선 실수들보다 더 크게 자리 잡은 생각은 "이러한 자리에 지금 있을 수 있어서 좋고, 전혀 다른 공간에서 살아온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고, 또 그런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고, 또 가까운 듯 멀게 느껴졌던 우리 전체 팀원들과 조금 더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어서 좋다"라는 것입니다. 작게는 저희 통역팀원들부터 전체 연구팀원, 그리고 다른 나라에 있어서 어쩌면 일생에 단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 일본 측 선생님들과 학생들. 이들과의 만남이 함께 한 일정 속에서 나눈 대화들이 곧 월경이며,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만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생이 큰 것이 아니며 일본 일정 속, 그 현실자체가 공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제가 막힐 때는 저희 팀원의 누군가가 혹은 일본 측의 누군가가 도와주기도 하고, 서로의 속도에 맞춰가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그 현장 자체가 공생의 한 장면이었다고 생각 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일본 측의 발표를 통해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의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알게 되어 더욱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명직교수님과 현아씨, 그리고 와코대학의 김근태씨 이 세사람이 서로 소울메이트를 만난 것처럼 저도 다른 의미의 "동지"를 만난 자리였기에 즐거웠습니다. ^^

 

평범하지만은 않은 경험을 하고 돌아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저는 집에 도착과 동시에 약 15시간을 내리 잤습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추석 당일이었으며 저는 바로 한국에서의 일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하나의 추억이 되어 제가 앞으로 할 일에 있어 받침돌이 되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꿈꾸는 저의 미래는 "어느 나라에서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것이다"입니다. "어느 나라"가 어디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익숙한 한국이 될지, 다른 나라보다는 조금 더 익숙한 일본이 될지 그리고 완전히 경험 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나라가 될지...하지만 이번의 "부딪힘"이 어느 상황 속에서도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어보다 한국어에 더 익숙한 일상이 계속 되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꿈꿨던 "죽기전에 4개국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일본어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해보려 합니다. 상황이 다르지만, 김근태씨가 자유롭게 일본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대화하던 모습이 저에겐 좋은 자극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은, 3박4일동안 기록을 위해 수고하신 진희씨와 뒷풀이를 가는 뒷모습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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