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영

 

 

 

집 앞에서 강의를 듣는다는 생각에 참여를 하겠다고 하여 책까지 만들게 되었다. 집 앞에서 강의를 듣지 않았고, 진짜 책이라면 절대 쓰일 수 없을 내용의 글이 우리가 만든 책에 실리긴 했지만,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나를 너무 설레게 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 도착한 서점 안에는 좋은 책이 많아서 책이 완성되기 전까지 내가 잘못 온 것이 아닐까. 내가 와도 되는 곳일까. 하는 생각을했었다.

 

'골목을 품은 안개 속 킨제이 하물며 생강나무 꽃을 탄 숏버스'는 다같이 한자리에 모여서 각자 어떤 내용의 글을 써왔는지 얘기를 나누고, 쓰여질 용지부터 시작해서 책의 크기, 스템플러는 어떻게 찍을 것인가, 글이 실릴 순서, 글씨체, 글씨 크기, 쪽번호를 매길 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한 얘기, 제목, 표지 뒤에 실린 글까지. 점하나부터 글이 완성되기까지 모든 것이 생각의 나눔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혼자 했으면 하지 못했을 생각이 모이고, 책 속에 반영 되니까 완성이 가까워질수록 작품이 되어 갔다. 혼자보다 여럿이 좋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책을 만들 때는 학교 미술시간 같아서 만드는 것에 흥분해 책 한권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집에 와서 실린 내용을 다시 읽어 보고 찬찬히 뜯어보고 나서는 우리가 하나의 행동을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책을 한번 만들어 보고 나니까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감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뭔가 더 저질러 보고 싶어서 요즘 트위터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글을 조금씩 쓰고, 한푼씩 모아서 이번에 한 것 처럼 책을 한 권 만들어 보려고 하고 있다. 잘 될진 모르겠지만 재밌는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끼리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이 맛에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두번째 느끼고 있다. 강의를 듣지 못했다면 아주 오랜 후에야 했을 생각을 강의를 듣고 내가 한 번 겪어 봄으로써,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날을 앞당길 수 있게 되었다.

 

소규모 출판은 아직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좁다고 하지만, 소규모 출판 강의 덕분에 대규모 출판에서 나온 책을 읽기만 하던 때와는 다름 넓은 세상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잘 쓰는 재주가 없고, 무언가를 잘 만들어내는 재주는 없지만 자꾸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내용과 작가 뿐만이 아니라 책 자체에 대한 것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기분이 좋다. 사람들과 함께 해서 즐겁고, 새로웠던 날이었다. 내 글이 실린 책속에 나만의 추억이 아니라 우리의 추억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더 아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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