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시'가 되는 시대



권명아

 

 

 




 

   한국이 자신의 광대역이 더 우수하다며 차별화된 '기술적 우위'를 주장하는 LTE에 몰두해 있는 동안 전혀 다른 차원의 광고를 들고 도래한 것은 애플이다. 물론 애플 역시 기술경쟁의 대열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지만, 애플의 광고는 기술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완전히 미학적 텍스트로 시장을 사로잡았다. 대표적인 것은 애플 아이패드 에어의 "Your Verse"(당신의 시) 버전이다. 너무나 '시적인' 이 광고가 애플의 노동 착취를 가리고 애플 사용자의 우월감을 은근히 만족시킨다는 점은 먼저 전제로 해두자. 즉 너무나 미적이고 시적인 애플의 광고가 예술의 가치나 휴머니즘을 상업적 목적과 결합시킨 훌륭한 사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역으로 너무나 '시적인' 애플의 광고는 오늘날 자본과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지표의 역할을 한다.

 


 

한국의 '광대역'과 애플의 '당신의 시'


   한국의 LTE 광고들이 '기술+스타'라는 한정된 프레임을 무한 반복하는 것과 달리, 애플은 전 세계, 아니 우주 전체로 프레임을 확장한다. 전 지구를 횡단하는 카메라의 시선과 저 멀리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프레임을 가로지르며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의 대사가 흘러나온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야.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거야.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지.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등도 훌륭한 일들이고 삶을 지속하는데 필요해. 그러나 시, 아름다움, 로맨스, 사랑, 이것들은 삶의 목적이야." 너무나 미학적이고 시적인 텍스트의 효과는 복합적이다. 그러나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애플은 경쟁 상대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얘들아, 이제 기술을 파는 시대는 끝났단다."


   이렇게 자본이 마치 이전에 우리가 '시'라고 이름 붙인 어떤 영역이 하던 일을 대체해가는 것을 이론에서는 정동 자본이나, 비 물질 노동과 같은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우리가 산업 노동 시대의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때만이 파악할 수 있다. 경제적인 것, 실용적인 것을 기술 개발, 건설과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문학이나 예술, 시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비아냥대는 통속적 이해방식은 이런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오늘날은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물질성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인지 자본주의의 비 물질성이 지배하는 시대로 변화하는 거대한 전환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패러다임이 모두 비 물질 노동으로 대체되지는 않지만, 노동과 자본의 위계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아이돌에 초점을 맞춘 LTE 광고와 전 지구와 '인류'로 프레임을 확장한 애플 광고는 기술과 시가 어떤 식으로 우위를 다투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기술 입국이라는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표어가 상징하듯이 기술은 '일국'의 시장을 좌지우지 할지 모르지만 '시'는 우주와 '인류'를 좌우하고 있다. 이제 이 우주와 인류는 '시'가 된 자본이 좌지우지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시를 자신의 '자본'으로 삼은 자들이 이 새로운 우주의 '엘리트'가 될 것이다.


 

"이제, 기술을 파는 시대는 끝났다"


   이미 이러한 전조는 나타나고 있다. 시, 예술, 미학의 '미래적 가치'를 글로벌 자본이 자신의 자양분으로 만들어가는 동안, 산업 역군의 후예들이 이끄는 지역 대학은 '의학, 법률, 경제, 기술'과 같은 산업화 시대의 '전통' 학문을 실용학문이라 떠받들며 시와 예술을 비실용적이고 무가치한 학문으로 폐기처분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한국의 지역 대학은 '시가 자본이 되는 이 시대'에 결코 '엘리트'를 양성할 수 없다. '기술을 파는 시대가 끝난' 이 시대에 기술입국을 꿈꾸는 한, 지역 대학은 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피라미드 속에서 하층에 배치되는 산업 역군을 길러내는데 자족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이런 대학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교육 관료들이 애용하는 표현이 있다. "Top/Down". 즉 경쟁력 있는 '탑'은 살리고 경쟁력 없는 '다운'은 없앤다. 지역의 행정 관료들, 대학의 교육 관료들에게 이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자! '시가 자본이 되는 시대'에 산업화 시대의 '전통' 학문을 실용 학문이라고 떠받드는 당신들, 지역 인재의 미래는 탑입니까 다운입니까?

 

 

 

 

 

 

 

  

점과 점이 모여 선이 되기까지 2

 

 

 

차가영(래인커머)

 

 

 

매일 똑같은 길을 걷고, 똑같은 곳에 점을 찍다보면 어딘가로 떠나는게 무서워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그 여정은 새로운 점을 찍을 수 있는 힘이 된다.

 

3. 찍고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만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처음이라는 긴장되는 상황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말을 꺼낼 수나 있을까,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내가 이 만남에서 맡은 일이 뭐였더라, 이 사람은 어떤 말을 할까. 이런 것들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오고, 하나로 모일 수 없는 생각은 몸을 긴장 시킨다. 코도모 센터의 마마상, 섹스워커 인권 활동가 다나카 과장, 동지사 대학의 정유진 선생님, women's action network의 오카노, 무타 선생님, 마와시요미신문의 창시자 무츠상과 만났을 때 내 시야는 오로지 눈앞에 있는 사람만을 향해 있었다. 한국 사람인 정유진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만난 모든 사람들이 일본 사람임에도 옆에서 해주는 통역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긴장된 첫 만남이 끝나고 나면,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떠올려보아도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급하게 기록해둔 약간의 문자를 통해서만 이랬었지, 하고 기억을 더듬을 수 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려 후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첫 만남의 소중함은 좁아진 시야에서 나온다. 한 사람만을 향해 있는 긴장된 몸은 그 사람이 말할 때의 감정을 보는 것에만 집중하게 한다. 그 순간에는 일본어와 한국어라는 언어의 경계 사이 어딘가 쯤에 내가 서있는 것 같다. 일본어를 거의 모르고, 처음 맞는 상황임에도 몸짓과 몇 개의 단어들로 말하고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의 맥락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 순간이 되면, 굉장히 중요한 어떤 걸 몰래 훔쳐본 것만 같은 두근거림이 생기며 말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머릿속에 가득 찬다. 그 호기심이, 첫 만남의 소중함을 만든다. 호기심은 그 사람이 하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계속 이 사람을 만나보고 싶게 하니까 말이다.

  2014630. 우리는 가마가사키와 토비타신치 답사 후, 아케이드 뒤편에 있는 코도모센터를 방문했다. 코도모센터는 토비타신치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아이나 부모가 맞벌이를 하여 낮동안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조그만 보육시설이다. 코도모센터에서는 대장인 마마상을 중심으로 코도모센터 출신의 청년들이 아이를 돌보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대장인 마마상은 처음 만난 우리들에게 적극적으로 코도모센터를 소개해주었다. 코도모센터에 대해 말하는 마마상의 얼굴과 말투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곧 끊길지도 모르는 정부의 코도모센터 지원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는 공간을 지키려는 사람의 결의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코도모센터의 아이들이 왜 자라서 센터에 선생님으로 다시 오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 함께 있는 것의 재미와 행복을 느끼고 있을 코도모센터의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친구들이 될지 궁금해졌다.

  같은 날 가마가사키 코코룸에서 만난 섹스워커 인권활동가 다나카 과장은 정해진 단체에 속하지 않은 활동가이다. 여러 곳을 다니며 섹스워커 인권 활동을 하고 있다. 다나카 과장과의 첫 만남에서 가장 중심이 되었던 것은 단어 사용의 다름에서 온 의사 전달의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활동가 다나카 과장과 한국의 활동가 정희샘은 성노동에 대해, 성매매에 대해 각자가 사용하는 단어를 두고 한참이나 설명을 해야 했다. 일본어와 영어와 한국어가 마구 뒤섞여 오갔다. 말의 뒤섞임 속에서 다나카 과장의 얼굴과 말투는 경계에서 안도로 변해갔다. 마구 엉켜버렸던 말의 꼬리들을 하나씩 풀면서 다나카 과장과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나카 과장과의 만남은 인권신장을 위해 움직이는 활동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활동가끼리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무언인지에 대해, 연대라는 것은 어느 지점에서 가능해지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201471. 교토에 있는 동지사 대학에서 정유진 선생님을 만났다. 정유진 선생님은 한국에 있을 때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한 활동가였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연구실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시작되었는데, 그 시간은 질문도 별로 없이 유려한 정유진 선생님의 말로 이루어졌다. 오랜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성찰이 바탕이 된 정유진 선생님의 이야기는 우리를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했다.

  정유진 선생님과의 만남 후, 바로 같은 건물에서 만난 무타, 오카노 선생님은 젠더와 섹슈얼리티 연구자이자 활동가이다. women's action network라는 NPO 단체에 있는 두 분은 위안부, 성노동, 성소수자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연구자와 활동가를 함께 하고 있는 두 분의 모습에서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정유진 선생님을 만났을 때 느꼈던 것과도 같았다. 세 명의 여성 연구자이자 활동가의 만남에서 나는 앙다문 입이 계속 생각이 났다. 존재를 삭제하려고 하는 폭력의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서 그 폭력이 전부 무너져 내릴 때까지 끝까지 들이받겠다는 힘이 숨겨져 있는 앙다문 입.’

  201472. 관광자이자 여행자이자 마와시요미 신문의 창시자인 무츠상이 운영하는 카페 얼스에 방문했다. 무츠상이 만든 마와시요미 신문은 교감을 위해 만들게 된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카페에 앉아서 혼자 신문을 보며 만들었는데, 이것이 점차 퍼져 지금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이를 체험하고, 만든 신문을 서로 공유하며 서로 교감하고 있다고 한다. 이 날 우리는 마와시요미 신문 2호를 만들었다. 무츠상은 둘러앉아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국말이 가득한 방 안에서 무츠상은 신문을 만들고 있는 우리를 보며 미소 짓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하고, 아프꼼과 동인들의 마와시요미 신문에 관심을 가져 주었다. 무츠상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것을 발명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여 그것을 널리 퍼뜨리는 재미가 무엇인지 느껴보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의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의견을 나누고, 코멘트를 해주며 다 만든 신문을 하나하나 스크랩 하는 무츠상의 얼굴을 보며, 다함께 모여 앉아 만드는 신문이 왜 공감을 만들어내는 신문이 되는 것인지를 알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일 때, 그에 응답하는 사람의 표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만남이었다.

 

  만남의 시간동안 좁아졌던 시야는 만남이 끝난 후, 숙소에 돌아와서 침대에 털썩 앉는 순간 제자리로 돌아온다. 한 번의 만남을 통해 넓어진 시야를 갖는 것이 아니라 좁아진 시야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워크숍 기간 동안의 첫 만남마다 경험한다. 헤어지고 나서야, 왜 이렇게 긴장을 했었는지, 긴장한 게 오히려 티가 나서 폐가 된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며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더 만나게 되면 말이라도 한번 걸어볼 텐데. 질문이라도 하나 해볼 텐데. 긴장으로 한껏 움츠러든 채 이루어진 만남은 절대 첫 만남으로 끝을 낼 수 없다. 첫 만남의 소중함은 여기에서 또 나온다.

 

 

 

(첫번째 후기에 그렸던 지도를 이용하여 만든 두번째 지도) 

 

'国境通信' 카테고리의 다른 글

第一回座談会概要:流れの再構築と逆装置的アポリア  (0) 2015.06.20
人文-裝置(dispositif) を「発明」しよう  (0) 2015.06.20
가마가사키를 걷다  (0) 2015.01.20
삭제된 섬, 삶, 말  (0) 2014.12.16
Valse  (0) 2014.10.27

 

 

 

 

죽림동 - 육지 위에 섬

 

 

 

 

 

 

金 飛

 

 

 

 

 

 

 

 

 

 

   김해시청 바로 아래 자리한 죽림동이라는 마을은 흙빛의 바다 위에 떠있는 섬 같다. 언제나 국경 가까이에 흩어져야 했던 섬들의 운명처럼, 그곳은 부산이라는 지명을 지니고 있었지만 김해가 지척이기도 하다. 지도 위에서 살펴보니 네모나게 잘려진 평원 위에 다섯 개의 섬들은 낙동강을 끌어안으며 옹기종기 모였다.

이번에도 구포시장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 마을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데, ‘분도증사도니 섬의 이름과 꼭 닮은 정류장들은 금세 먼지 가득한 평원을 가르며 바다를 드러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버스는 잘 닦인 넓은 도로 위에 나를 내려놓았다. 부산의 강동동 쪽으로 뻗은 다리는 어떤 무게라도 실어 나를 수 있을 만큼 우람했고, 보이지 않는 너머에 흐르고 있을 낙동강은 물결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바다의 섬에 사는 사람들에겐 섬사람 특유의 우직함이 있다고 하는데, 육지의 섬에 사는 이들에겐 어떤 힘이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지. 혹시 나의 생이 알지 못하는 활력으로, 바다가 사라진 육지에도 낚싯대를 드리워 매일 펄떡이는 생명을 길어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바다 위를 걷는 듯, 나는 그렇게 천천히 도로를 가로질러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낡아 희미해진 간판과 널따랗게 잘 닦인 도로가 어색하게 뒤엉켜 어쩐지 첫인상은 불편했는데, 골목에 들어서니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의자가 나를 반겼다. 어느 집에선지 담장 너머까지 뻗어 나온 상록수는 머리 위로 물결치듯 일렁였고, 하나가 아니라 둘이 함께 나란히 기댄 작은 의자들은 혼자 온 내게 인사라도 건네는 듯했다. 의자에 앉지 않고 의자를 마주 본 채로, 나는 한참이나 그렇게 쪼그려앉아 있었다. 담장 너머에선 익숙한 트로트 가락이 넘실대며 흘러나왔고 의자 위에서 흔들흔들 몸을 들썩이는 누군가를 나는 구경이라도 하고 있는 기시감이 떠올랐다.

 

 

 

 

 

 

 

 

 

 

 

   골목 안으로 조금 더 들어서니 뒷짐을 진 할머님 한 분이 나타났고, 조용히 인사를 건네니 온화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섬사람의 우직함은 아니었는데, 낯선 사람을 대하는 그 미소가 참으로 넉넉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펄떡이는 생활의 힘이었는데, 주름진 미소 하나 만으로 금세 그곳의 정경은 달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디에서든 그렇게 인사를 드릴 때마다 그들에게 환한 미소를 건네받았던 것 같다. ‘낯선 사람이란 말의 불편함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일 뿐, 어쩌면 지금도 너무 많은 이들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사람으로 걷고 있는 내 허약한 몸이 참으로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깃발이 펄럭이는 골목 끝으로 할머님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섰다. ‘낯섦은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아니며, ‘사람도 결국 그렇게 나와 닮은 누군가일 것이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는데, 나는 자꾸 어딘가로 올라서고 있었다. 꼬불꼬불 이어진 골목을 오르니, 마을 한가운데 등대처럼 솟은 것이 보였다. 굴뚝이었다. 사정없이 타오르는 것들을 제 몸으로 보듬어 날마다 뜨거워졌던 시간을 기억하는지, 찌르듯 솟은 그것은 온기의 때로 검게 그을려 있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화염을 홀로 견디며 얼마나 오래도록 그곳에 그렇게 버티고 섰던 건지.

더 이상 아무것도 태우지 못하는 굴뚝은 차갑게 식었지만, 나는 그 위에 깃발이라도 걸어주고 싶었다. 더 이상 연기를 뿜거나 뜨겁게 타오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검댕과 흙먼지로 뒤덮인 고독한 흉터는 그 어떤 문명의 화려함보다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목소리 높여 외쳐야 할 것 같았다. 당신의 뜨거움을, 당신의 펄럭임을, 당신의 외로움을, 우리 알고 있다고.

 

 

 

 

 

 

 

 

 

 

   그렇게 한참을 굴뚝 아래 앉아있다가 골목을 따라 더 위로 오르니, 금세 인가는 사라져버렸다. 마을 끄트머리에 나와 앉은 오래된 TV 하나는 길을 막은 불량배처럼 건들대는 듯했다. 가볍게 그것을 뛰어넘어 수풀이 우거진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나는 어느새 높다란 나무들이 우거지고 키가 큰 대나무들이 사방을 가로막은 산 속에 와 있었다. 그 너머에 김해 죽도 왜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곳을 등진 채 숲 속으로 난 길로 발길을 옮겼다.

   내가 걷고 싶은 것은 지나간 길이 아니라 여기 이 길이며,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물리치고 승리한 영웅이 아니라 무기력하고 소심한 나를 닮은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밭이랑으로 난 좁은 길을 가로질러, 나는 높이 솟은 대나무 담장을 따라 걸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내 곁으로, 한껏 몸을 세운 청청한 대나무 줄기들이 따가운 오후 햇살을 산산이 부수어내고 있었다. 눈부신 세상의 열기를 거역하는 대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었다. 너무 작은 절이 나타났고, 나무 담장을 다듬던 주민 한 분이 나타났고, 다시 또 잘 닦인 도로가 나타났지만, 나는 널따란 도로를 따라 걷지 않고 다시 마을 속으로 난 좁은 길로 들어섰다. 일어서지 못한 누군가를 내던진 두 개의 신발이 수풀 속에 드러누웠고, 발길질 같은 신발의 몸짓을 피해 걷다가 나는 그만 휘적거리며 발을 헛딛고 말았다. 발에 걸려 넘어지듯 나는 주저앉았고, 내 발목은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래, 우린 어차피 그렇게 걸려 넘어지고 말지.

사람들 속에서 더욱 고독해지는 여기,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거기. 그래도 다시 또 일어서야 하지, 걸어가야 하지.

 

   절룩거리며 나는 작은 공원을 지나,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시멘트로 얼기설기 만든 계단은 높낮이가 제멋대로였고 부은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잔뜩 몸을 낮춘 가로등이 허술한 담장에 매달려 나를 내려봤고, 우렁찬 개의 울음소리가 야유하듯 쩌렁쩌렁 울렸다. 한 쪽 다리를 끌며, 허약하게 무너져내린 다짐들을 끌어안으며, 나는 간신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익숙한 풍경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인사하듯 나를 반기던 바로 그 의자 두 개.

 

 

 

 

 

 

 

 

 

 

 

 

   나는 더 이상 서있지 못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오랜 시간 걷고 또 걸었는데, 나는 겨우 제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내 머리 위에서 새하얀 비행운을 그리며 무언가 날아갔고 담장 너머에선 노랫가락조차 들려오지 않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춤을 추는 것이 아니었다. 통증 때문이었다.

 

   갑자기, 몹시도 사람이 그리웠다.

 

   쪼그려앉아 나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텅 빈 내 곁에 와 앉을 사람이.

   내가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 사람이.

 

 

사진: iPhone 4S © 김비 2015

2015212

2015213

2015217

2015223

2015227

20153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