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se

 

 

 

마틴

 

 

 

 

 

 

 

   가마가사키를 안내해준 엔도가 보여준 쪽방은 한국의 쪽방과 똑같았다. 오사카 도시가 건설될 때 모여든 노동자들이 살다가 슬럼화된 곳. 어느덧 고층아파트촌과 가마가사키 사이의 도로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섰고,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가마가사키를 우범지대라 낙인찍고 차별하고 있다. 가마가사키는 그렇게 오사카라는 도시의 '어둠의 심장(Heart of Darkness)'(J. 콘래드)이다. ‘풍경이 상처의 기원을 은폐하는(고진, 김영민)‘ 것이 모든 도시가 지닌 비밀이며, 그 콘크리트 속에는 인간의 물기가, 삭제된 이들의 표정이 있다.

 

   인간의 인지부조화는 놀라운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는 디카프리오의 정신세계가 닫힌 섬처럼 삭제되고 폐쇄된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이 드러나자 그의 여리고 성 같은 정신은 잿더미가 되면서 붕괴한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부정하고 삭제하는 것은 체계역시 마찬가지다. 상처를 모르쇠하는 에 대한 저항적 문제의식은 교토 동지사대학에서 만난 정유진에게서 생생하다. 92년 윤금이씨 살해사건에 충격을 받고 기지촌 두레방에서 활동하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와 국가인권위에서 활동한 그녀는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미군에 의한 성범죄에 대해 피해국민의 인권보다 국가 안보가 우선이며 미군문제는 개인의 고통보다는 민족주권의 문제로 제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계속 싸웠다.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외면하고 있는 미군범죄의 희생자는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개인의 인권을 도외시하고 민족주권의 문제로 비약할 수 없다. 미군주둔지역 성매매여성을 한국인 전체와 분리하는 인식은 이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전제로 한다. 한국인임에도 한국인 전체와 구별된다고 보는 시각은 기지촌 여성들을 평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평화네트워크에서 만난 아시아의 여성운동단체들의 활동가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나 개인만의 생각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자의 느낌과 정서, 그 추이들을 섬세하게 헤아리기는커녕, 그것을 거칠게 삭제하는 남성들의 언어, 명분개념에 대한 회의는 그녀를 활동가에서 연구자로 이끌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타자의 낯섦 자체를 제거함으로써 타자성을 삭제하는 일“(<무한히 정치적인 것의 외로움>)에 저항하면서 체계가 삭제했던(하려고 시도했던) 정념들을 소상히 추적해내는(<음란과 혁명>) 권명아의 문제의식과 맥을 같이 한다.

 

   음악은 왈츠형식의 3박자다. 3박자에는 정념과 운동성이 내재한다. 왈츠는 시민들이 추었던 첫 번째 춤이며, 3의 운동성에 따라 폐쇄계를 뚫어버린다. 18-9세기의 혁명들과 왈츠의 확산은 연관관계가 있다. 가마가사키에서 만난 카나요와 엔도, 무츠에게서 선선히 감동받은 것은 그들의 지치지 않는 서늘한 활기였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것처럼 살며 더불어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그 삶의 리듬을 기타가 시작하면, 콘크리트속의 사람이, 삭제되었던 정념이 문을 두드린다. 열어달라고. 벨과 일본 악기 고토는 서로 갈마들면서 사람을 돌보지 않는 이상한 세계의 모순을 표현한다. 리듬과 화성이 어긋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밝은 리듬만, 건강한 발걸음만 남도록 구성하였다. 위기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너의 손위로 나의 손을 포개며.

 

 

 

 

 

https://soundcloud.com/la-martin-2/v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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