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살고 있어요

 

 

권명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아들은 보좌관 로봇을 보낸다. 보좌관 로봇은 아버지의 식사와 청소를 담당할 뿐 아니라, 건강관리를 맡아서 해 준다. 아침 식사를 차려 놓고 아버지를 깨우고, 운동 좀 하라고 잔소리도 한다. 잔소리 좀 그만하라는 아버지와 잔소리 듣기 싫으면 말 좀 들으라는 로봇의 대화는 부자관계의 대화와 다르지 않다. 영화 '로봇 앤 프랭크'(제이크 슈레이어 감독, 2012)에서 보여 주는, 로봇과 함께 사는 시대는 이제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청소 로봇과 '가족 로봇'
 
   미국의 한 연구팀이 세계 최초 '가족 로봇'을 출시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이야기로 느껴졌던 로봇과 함께 사는 삶이 현실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로봇 청소기 정도가 일상에서 만나는 로봇의 모습이고, 로봇 청소기조차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아직은 가격이 비싼 편이다. 한국의 일반인들 인식 속에서 로봇은 로봇 청소기처럼 아직은 생활을 돕는 기계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에서 로봇이 도구적 기계가 아닌 '가족'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이 '가족 로봇'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기술적 진전을 이뤄냈는지는 아직은 확인이 어렵다. 다만 현재까지 제공된 정보를 토대로 볼 때 흥미로운 것은 '가족 로봇'이 인간을 위한 기능적 보조나 기술적 도구성보다 인간과의 정서적, 사회적, 인지적 관계 맺음을 주요한 기능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봇과 함께 사는 미래, 혹은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없어지는 미래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비관론과 낙관론이 팽팽하게 대립해 왔다. 따라서 이 글에서 그런 비관과 낙관의 어떤 입장을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페미니스트 생물학자 대너 해러웨이는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무의미하다고까지 말한다. 즉 그녀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이기 때문이다. 사이보그라면 공상과학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무수한 캐릭터들을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이보그는 신체의 일부나 전체를 로봇이나 기계로 대체한 존재이다.

   많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사이보그가 위험한 존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사이보그가 유기체로서의 인간의 완전성에 대한 믿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우리의 신체 일부를 비유기체로 대체하며 살고 있다. 철이나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안경, 입안의 인공보철, 관절 속의 보철물들까지 우리 인간 신체는 이미 비유기체와 함께, 비유기체를 통해 구축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기체인 인간이 비유기체인 존재들(로봇, 기계적 보충물 등)과 함께 사는 시대는 이미 도래해 있는 것이다.

   물론 '사이보그로서의 우리'는 아직은 기계나 비유기체를 인간 신체의 작동을 위한 보충물이나 도구로서 사용하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친구가 되거나 가족이 되는 것은 여전히 공상과학적 상상이거나, 과도한 기술 낙관주의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계와 인간, 테크놀로지와 휴머니즘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경계가 여전히 설정되어 있다. 

인간, 사이보그, 로봇 

   인간이 오랫동안 인간을 닮은 로봇을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해 온 이중적 욕망의 구조는 이러한 인간의 경계, 테크놀로지의 경계와도 관련이 깊다. 이러한 논의들은 '포스트 휴머니즘'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학문 경향들에서 천착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반면 로봇 공학이나 사이버네틱스와 같은 학문들은 점점 더 휴머니즘적 주제들, 즉 감정, 사회적 관계, 인지적 연결 등의 문제에 보다 깊게 천착하고 있다. '가족 로봇'의 개발자가 "기술을 인간화(humanize)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기술은 공학이 아니라, 인문의 영역에 도달한다. 고도기술 사회에서 '나는 누구인가'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라는 가장 고전적인 인간적, 사회적 질문이 도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로봇과 인간 사이, 휴머니즘과 테크놀로지 사이, 기술 공학과 인문학 사이, 미래적 상상력과 현재적 기술 발전 사이의 경계는 이미 무너지고, 새로운 흐름이 오늘 여기에 도래해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신가? 아직도 자신이 '휴먼'이라는 데에 자부심을 느끼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마 과거에서 온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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