マイノリティ化から流れ再構築へ

 

:座談「人文-裝置(dispositif) を「発明」しよう」を始めるにあたって[각주:1]

 

クォン ミョンア( 明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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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一五年五月現在、政府の大学構造調整により、全国的に入学定員(四年制大学)が一万七千五四○名ほど減らされる予定である。このうち非首都圏の大学がその八五.四%を占め、首都圏の大学は一四.六%しか割り当てられていない。釜山地域にある十五の四年制大学の二○一七年度の入学定員は二○一四年度より二.八五三名ほど減らされる予定である。減少する定員数は今年度の慶星大学校の入学定員(二千九二○名)に近い数である。[각주:2]いわゆる学齢人口の減少により大学の定員割れ事態に備えた大学の構造調整は地域の大学を犠牲にして進めれれてきた。結局大学の構造調整は根本的に地域差別と首都圏中心主義をいっそう加速するだけでなく、学閥主義と首都圏中心主義の密着関係をも深化させるのは明らかである。

国家機構により強制的に進められてきた大学の構造調整は、学閥ヒエラルキーと地域差別、また大学に投入された巨額の資本の利益を中心にして進められてきた。大学関係者たちは地域差別と学閥主義には沈黙しても、国家機構により強いられた構造調整に対しては「共通」した声を上げてはいる。しかし地域差別と学閥主義に沈黙する「共通」した声が、果たして共通のものとなりうるだろうか。構造調整への怒りと非難の声が強硬なのに、何か虚しさを感じさせるのは、こうした共通するものの欠如に起因している。しかし同時に大学の構造調整という事態は逆説的に大学あるいは大学制度のなかで実際にいかなる差別と還元不可能な差異が存在していたかをもろに目撃させることになった。そうなのだ。私たちは大学の構造調整という国家介入事態を通して国家の暴力性だけでなく、実は「私たち」のなかの差別と差異を目撃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国家の暴力性と新自由主義体制の問題を指摘する論議が虚しく聞こえるのはまさにこうした内部的問題を回避しているからでもある。

そしてこうした内部的差別と差異は地域と首都圏という問題だけに限られない。今回の座談においてあらわれたように、ジェンダー、移住性[각주:3]、専攻領域、制度としての学問の立ち位置の選択など、いっそう緻密な差異の線が大学と学問制度の内部を横断しつつ、差別/排除の線引きを行っている。もちろんジェンダー、地域、移住性と専攻領域などが全て差別の標識としてのみ働くのではない。また如何なる問題に対しても理論と知識が現実の全ての差異を扱うことはできない。そうした点から知識と理論は現実の細部を扱うのに限界をもっている。もちろん知識と理論は現実の細部にたどり着くための異なる方法をもっている。しかしその「ちがい」をしばしば忘却し、理論の全一的な力を誇示しかねないところが理論の陥穽でもある。知識の領域内において現場記述誌(ethnography)や座談会、インタビュー、フィールドワークといった現実の細部と差異を扱うための多様な方法論もまた模索されている。座談」という名称を掲げているが、この企画は知識の方法では扱いにくい、ある現実の細部と差異に出会おうとする試みである。したがって対象に対する客観的な分析と総合的な判断を中心とする作文とは多少異なる形式を試みてみたい。

大学の構造調整や学問の危機に対し誰もが激昂し声高に語るが、実際会って「ともに」交わす話がない。各自自らの問題があまりに手にあまり最も難しい問題であるため、会っても自らの境遇について「我が身への悲観的」な愚痴だけをこぼして別れることになる。こうした話を長いこと交わした後、家に帰り、せずもがなの話をしてしまったようで自嘲的で憂鬱な状態に落ち込んでしまう経験を誰もがもっているだろう。そのため努めて言葉を惜しんだり沈黙するしかなく、私たちは誰もが自らの位置と経験について、その生の現実性について言葉を交わすことができない。残るのは恥ずかしさや恥辱、そして幻滅だけである。私たちは大学制度と学問の場において自らが置かれている位置と経験について語るとき、こうした形式の談話の慣習と情緒とを空回りさせるしかない。そのため会って我が身を悲観する言葉を交わし、その言葉と立場と情緒の現実性を再度、常に確認することが必要である。車座になって我が身を悲観し大学制度と学問の場での自らの身の処し方(身の置き所、あるいは subject positioning)を吐露しつつ、どうにかそこからある糸口が見出されるかもしれない。そしてこうした糸口をしかと握りしめ、私たちの幻滅と自嘲の流れを断ち切り、異なる流れへとともに流れ込んでいくだろう。

今回の座談においても論議されたように、この座談を大学の内と外という固定した境界ではなく、その間を流れる多様な流れと緻密な差異に出会い、探しに行く実験にしたいと思う。そうした実験を通して既存の大学制度を批判的に突破した大学の外の様々な実験を受け継ぎながらも、内と外の排他的な境界設定とはことなる方式で「オルターナティヴな制度」を構成することを目標にしたいと思う。

 

座談「人文-裝置(dispositif) を「発明」しようはそうした場になってほしい。すでに一度失敗し、二度目にしてどうにか言葉を汲み上げた。「座談」は生中継の形式よりは、一種の言葉に対する応答の形式を取りたいと思う。座談の場で行き交った言葉をおもむくまま取捨選択するという意味でなく、行き交った言葉をいくつかのテーマを中心に集め、整理し、その「意味」を抱きしめ考察する形式によりかき集める方式を採った。そのようにして以下のように七つほどのテーマにより言葉を手繰り寄せた。手繰り寄せたテーマは各座談の冒頭に要約し説明を提示する形で整理した。これといった見返りもない座談に参席してくださった全ての方に感謝をささげる。

座談の具体的内容は『文化/科学』八二号(二○一五年五月)を参照。  

 

翻訳:田




 

 

소수화에서 흐름의 재구축으로

 

: ‘인문 장치를 발명하자좌담 연재를 시작하며[각주:4]

 

 

 

권명아(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20155월 현재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으로 전국적으로 대입 정원(4년제 대학)17540명이 줄어들 예정이다. 이중 비수도권 대학이 85.4%를 차지하고 수도권 대학은 14.6%만 할당되었다. 부산 지역 154년제 대학의 2017학년도 총 입학 정원은 2014학년보다 2853명 줄어들 예정이다. 감소하는 정원 규모는 올해 경성대의 입학정원(2920)과 비슷한 수준이다. [각주:5]이른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정원 미달 사태에 대비한 대학 구조조정은 지역대학을 희생양 삼아 진행되었다. 결국, 대학 구조조정은 근본적으로 지역 차별과 수도권 중심주의를 더욱 가속할 뿐만 아니라, 학벌주의와 수도권 중심주의의 밀착 관계 역시 심화시킬 것이 뻔하다.

 

  국가 기구에 의해 강제적으로 진행된 대학 구조조정은 학벌 위계와 지역 차별, 그리고 대학에 투여된 거대 자본의 이익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대학 관계자들은 지역 차별과 학벌주의에 대해서는 침묵하더라도 국가 기구에 의해 강제된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공통의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지역차별과 학벌주의에 침묵하는 공통의목소리가 과연 공통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구조조정에 대한 분노와 비난의 목소리가 격렬함에도 무엇인가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러한 공통적인 것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동시에 대학구조 조정이라는 사태는 역설적으로 대학, 혹은 학문 제도 안에서 실제 어떤 차별과 환원 불가능한 차이들이 존재했는지를 노골적으로 대면하게 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대학구조 조정이라는 국가 개입의 사태를 통해 국가의 폭력성만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안의 차별과 차이들을 대면해야만 한다. 국가의 폭력성과 신자유주의 체제의 문제를 지적하는 논의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내부적 문제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내부적 차별과 차이들은 단지 지역과 수도권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번 좌담에서도 나타나듯이 젠더, 이주성[각주:6], 전공 영역, 제도 학문에 대한 입장 취함 등 더 조밀한 차이의 선들이 대학과 학문 제도 내부를 가로지르며 차별/배제의 선을 구획한다. 물론 젠더, 지역, 이주성과 전공 영역 등이 모두 차별의 표지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이론과 지식이 현실의 모든 차이를 다룰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지식과 이론은 현실의 세부를 다루는 데에 한계를 지닌다. 물론 지식과 이론은 현실의 세부에 다다르기 위한 다른 방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다름을 종종 망각하고 이론의 전일적 힘을 자만하기 쉬운 것이 이론의 함정이기도 하다. 지식의 영역 내에서 현장기술지나 좌담, 인터뷰, 필드워크 등 현실의 세부와 차이를 다루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 또한 모색되어 왔다. 좌담이라는 명칭을 걸고 있지만, 이 기획은 지식의 방법이 다루기 어려운 어떤 현실의 세부와 차이들을 만나고자 하는 시도이다. 하여 대상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종합적 판단을 중심으로 하는 글쓰기와는 다소 다른 형식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대학 구조조정이나 학문의 위기에 대해 다들 격앙된 목소리를 높이지만, 막상 만나서 함께나눌 말이 없다. 각자 자신의 문제가 너무나 힘겹고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에 만나서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신변 비관형의 푸념만 늘어놓고 돌아가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나눈 후, 집으로 돌아가 괜한 말을 늘어놓은 것 같아 자조적이고 우울한 상태에 빠진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애써 말을 삼키거나, 침묵할 뿐 우리는 누구도 자신의 위치와 경험에 대해, 그 삶의 현실성에 대해 말을 나누지 못한다. 남는 것은 부끄러움이나 치욕, 그리고 환멸뿐이다. 우리는 대학제도와 학문장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와 경험에 대해 말을 할 때 이런 형식의 담화 관습과 정서를 맴돌게 될 뿐이다. 그래서 만나서 신변을 비관하는 말들을 나누면서, 그 말들과 입장과 정서의 현실성을 다시, 매번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둘러앉아 신변을 비관하고 대학 제도와 학문장에서의 자신의 처신(몸 둘 바 혹은 subject positioning)을 토로하면서 간신히, 거기서 어떤 실마리를 찾아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실마리를 부여잡고 우리는 환멸과 자조의 흐름을 끊고, 다른 흐름으로 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좌담에서도 논의된 것처럼 이 좌담은 대학의 안과 밖이라는 고정된 경계가 아니라, 그 사이를 흐르는 다양한 흐름들과 조밀한 차이들을 만나고 찾아나가는 실험이 되고자 한다. 그런 실험을 통해서 기존의 대학 제도를 비판적으로 돌파한 대학 바깥의 여러 실험들을 이어가면서도, 안과 바깥의 배타적 경계 설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안적 제도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자 한다.

 

 

  ‘인문 장치를 발명하자는 그런 자리가 되고 싶다. 이미 한번은 실패했고, 두 번째에 겨우 말을 건져내었다.좌담은 생중계의 형식보다는 일종의 말들에 대한 응답의 형식을 취하려고 한다. 좌담 자리에서의 오고 간 말들을 마음대로 취사선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고 간 말들을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모으고 정리하여, 의미를 보듬고 살피는 형식으로 그러모으는 방식을 취했다. 그렇게 해서 7개 정도의 주제로 말을 보듬었다. 보듬은 주제는 각 좌담의 앞부분에 요약하고 설명을 제시하는 식으로 정리하였다. 별다른 보상도 없는 좌담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좌담의 구체적인 내용은 『문화/과학』82호, 2015년 여름호를 참조.


번역: 타지마 테츠오 

 



  1. 1. 異なる生に対する至難な様々な実験が失敗した場から、その失敗と限界から更に歩き出すこと、それを私は『限界から踏み出すこと』であると論じている。拙稿「落ち着く:安心のアソシエーションのために」(『石堂論叢』59号、2014年)を参照。 [본문으로]
  2. 2.「大学構造調整一年、釜山から「四年制大学一校」(入学定員二千八百五三名)が消える」『釜山日報』二○一五年五月二○日. [본문으로]
  3. 3. 移住性は留学したり、または地域を移住し移動しつつ触発される人種的マイノリティー性との関連が深い。しかし、国家間の境界移動だけでなく、学制内での移動、すなわち専攻の変更や、古典的な学制からの離脱から生じる状態、時には国家内での地域移動から生じる移住性などもここに含まれる。多様な研究者グループとの出会いを通して、こうした移住性の様々な姿を実際に確認できるだろう。 [본문으로]
  4. 1. 다른 삶에 대한 지난한 여러가지 실험이 실패한 자리에서 그 실패와 한게로부터 다시 걸어나가는 것, 그것을 나는 <한계를 딛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논하고 있다. 졸고 <마음을 놓다: 안심의 어소시에이션을 위하여>(석당논총59호, 2014년) 참조. [본문으로]
  5. 2. 「대학 구조조정 1년, 부산에서 ‘4년제 대학 1곳’(입학 정원 2천 853명) 사라졌다」, 『부산일보』, 2015. 5. 20. [본문으로]
  6. 3. 이주성이라는 규정은 유학을 가거나 또는 지역을 이주하거나 이동하면서 촉발되는 인종적 소수화 상태를 기본적으로 의미한다. 그러나 국가 간 경계 이동뿐 아니라, 학제 내의 이동, 즉 전공의 변화나 고전적 학제로부터의 이탈에서 비롯되는 상태, 때로는 국가 내부에서의 지역 이동에서 비롯되는 이중성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다양한 연구자 그룹과의 만남을 통해서 사실 이러한 이주성의 여러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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