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동 - 나무들이 살아요

 

  

 

 

 

 

金 飛

 

 

 

 

 

 

 

 

 

 

 

   어차피 일방적인 약속이었다. 그리움은 오직 나 혼자만의 감정이었고, 너무 많은 것들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 말이다. 슬픔이나 안타까움 앞에 담담한 우리를 비관적이라 말하지 않고 현실적이라고 말하게 된 것은, 여기 이 시대가 가르친 생존의 방식이기도 할 테고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린 우리들의 퇴화인지도 모른다. 그때의 내 기다림 이후 몇 분이 둘 중 무엇이든, 나는 뒤돌아보거나 기웃거리지 않고 예정된 길을 따라 마을로 향했다.

 

   오늘 내가 목적지로 정했던 곳은 청룡동의 상마마을이었다. 부산의 입구인 금정구의 청룡동은 쉽게 말해 범어사를 중심으로, 범어사역에서 금정산 쪽으로 이어진 제법 광범위한 지역을 이른다. 이웃한 노포동 혹은 남산동은 고속버스터미널이나 외국어대학교의 분교가 위치해 있어 그 이름이 익히 알려졌지만, 실제로 청룡동은 부산시민들에게도 익숙지 않은 이름이라고 한다. 매일 지나치며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하지 못 했던 청룡동이란 이름은, 우리들의 바깥이 물리적인 거리나 지역 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호출하고 기억하는 마음 씀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변함없이 이번에도 나는 청룡동의 가장 외곽에 자리한 마을을 점찍어두었고, 그렇게 혼자서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상마마을은 금정산 자락에 위치한 부락으로서, 범어사 바로 아래에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나 등산객들의 시선이 범어사혹은 금정산에 머물러 있으리란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그들의 관심 바깥에 있는 부락의 주민들과 마을 정경이 어떤 모습일지 자못 설레었다.

   버스는 범어사를 지나 얼마 가지 않은 내리막 위에 나를 내려놓았다. 다음 정류장이 하마마을이라고 했으니 마을이 위아래로 나뉘어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버스에서 내려 이정표를 찾을 수 없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언덕 위쪽으로 거슬러 올랐다. 겨우 몇 분 남짓 걸음을 떼자, 산속으로 향하는 상마마을이라는 이정표는 몇 개의 암자 이름과 뒤엉켜 도로 위에 불쑥 나타났다. 화살표를 따라 조금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답게 들어서는 입구 양 옆에 우거진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무 둥치에 압류딱지 같은 식당 간판이 붙어있긴 했지만, 그 너머에 소담스레 자리하고 있을 마을 풍경이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식당 간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거슬러 올랐지만, 뒤이어 다른 간판 하나가 또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손님들을 끄는 간판이 아닌 마을을 안내하는 도로명 주소 표지판에 눈을 두면서 걸음을 옮겼지만, 이내 또 다른 간판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쩔 수 없이 간판을 따라 올라가니, 외제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대한 주차장이 나타났고 그 너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골목은 그 식당 앞에서 뭉텅 잘려있었다.

   하는 수 없이 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가 더 깊숙한 곳으로 방향을 트니, 길 끄트머리엔 여지없이 또 다른 식당이 거대한 철문의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무리 두리번거리며 주민들이 사는 집들을 찾아보아도 식당이 아닌 건물은 찾을 수가 없었다.

 

   길을 잘못 들었구나 싶었다.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가면서도 내 생각은 그뿐이었다. 다시 큰 길로 나오다 보니 잘 생긴 나무 둥치마다,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작은 골짜기마다 식당의 평상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곧 그곳에 사는 주민이고 그것이 곧 마을의 풍경임을 알고 있었지만, 산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평화로운 마을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은 그래서 더욱 짙어지기만 했다. 큰 길까지 나와 나는 길을 따라 다시 더 위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개구진 아이들처럼 여기저기 나무 위에 매달린 간판들을 피하지 않고서, 눈앞에 나를 이끄는 길만을 생각하며 차분히 내 걸음만 세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뒤엉킨 간판들은 내 앞 길을 막아섰고, 사람이라곤 조화(造花)처럼 화려한 색으로 친친 감은 등산객들이 전부였다. 골목을 끝까지 올라갔지만, 거대한 철문을 드리운 암자 하나가 길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을 뿐 어디에도 내가 상상했던 마을의 풍경은 만날 수가 없었다. 식당들 사이에 오래된 주택 서너 채가 보이긴 했지만,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간판들 사이에서 그건 마을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닮은 낯선 외지인처럼 보였다.

 

 

 

 

 

 

 

 

 

   마을 꼭대기 암자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기는 했는데, 무엇을 담았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암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간판이 없는 사진이 거의 없었다. 나무에 매달려 있거나 멀리 지붕 너머에 우뚝 솟아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고급차의 뒤꽁무니가 삐죽 나와 있어서 마을이 아니라 상가 뒷골목을 담은 것만 같았다. 내가 잘못 찾은 걸까, 애초부터 나는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와 있는 걸까.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은 길 위에서, 나는 한참을 멀뚱히 섰다. 그런 나를 놀리듯 어느 식당에서 통속적인 대중가요 가락이 흥얼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그대 없이는 못 살아

   나 혼자서는 못 살아

   헤어져서는 못 살아

   떠나가면 못 살아

 

   외지인임이 분명한 누군가의 추임새가 흥겨운데, 산자락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누가 떠나고 누가 남았을까, 왜 떠났고 또 왜 떠나지 않았을까. 금정산 자락을 들썩이며 울리는 노랫소리는 맴을 돌듯 계속 이어지는데, 나는 흥겨운 가락을 들으면서도 자꾸 어깨가 무너졌고 다리가 풀렸다. 어느새 우리의 즐거움은 이웃을 잃고 여기 이 마을은 언제 주민을 잃었던 걸까.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간판들은 사진 속 눈엣가시 같았는데, 문득 간판에게 몸을 내어준 나무들이 보였다. 그저 잘생겼다고만 생각했는데, 간판에 몸을 붙들려놓고도 어쩌면 그리도 풍채들이 좋으신지. 패이고 꺾이며 철사줄을 꽁꽁 둘러매고도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들은 어쩜 그렇게 씩씩한지.

 

 

 

 

 

 

 

 

   떠나가고 돌아온 것은 애초부터 없었구나. 사라진 것도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구나. 그제야 나는 눈을 들어 다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곧 꽃을 피우고 잎을 늘어뜨릴 나무들은 마을 곳곳에 우람하게 자리한 채,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누구든 무엇이든 떠나든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허약한 기다림마저 지워버리고, 또 한 해를, 그렇게 몇 십 년을, 어쩌면 몇 백 년을.

 

   더 이상 길이 없는 끄트머리에서 나는 암자 너머를 올려보았다. 수백 번의 겨울을 지나며 다시 부활하고 또 살아났을 산자락의 주인들이, 빼곡히 어깨를 걸고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겹겹이 나를 둘러싼 채, 따스해진 봄바람을 내 두 볼에 휘휘 불면서. 주인의 너른 품을 활짝 펼치며, 누구든 오시라 우리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정겨움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반기면서.

 

 

 

 

 

 

 

 

 

 

   인사라도 하듯 나는 그제야 산자락을 향해 활짝 웃었다.

   사람이 없다고 속상해하던 마음 따위 슬그머니 지워버렸다.

결국 그날 나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는데, 마을을 내려오는 걸음은 충분히 가벼웠다. 너무 많은 주민들의 환대라도 받은 것처럼 명치 아래가 훈훈했다. 기다린 것들은 오지 않았고 떠나간 것들은 사라져버린 그곳에서, 나는 제일 융숭한 대접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곳엔,

   나무들이 산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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