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섬, ,

 

장수희(래인커머)

 

 

 

 

 

 

 

 

 

 

 

  

 

시공사의 ‘Just Go’ 시리즈는 여행정보 가이드북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구하기도 쉽다. 이 가이드북은 여행을 떠날 사람들에게 여행지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 한권만 들면 여행지 안에서 어디든지

돌아다닐 수 있을 것처럼 광고되기도 한다. “명소 총망라라든지 완벽 가이드는 이런 가이드북에 늘 따라붙어 다니는 광고 문구이다.



내가 오키나와에 가게 되었을 때에도, 도서관에서 ‘Just Go’ 시리즈의 『오키나와』편을 빌려 읽었다. 이 책은 오키나와를 북부중부남부, 공항이 있는 나하시, 그리고 케라마 열도로 나누어 설명한다. 나는 오키나와에 가기 전까지 그곳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이 여행 책자에서 설명하는 오키나와 본섬과 케라마 열도가 오키나와의 전부인 줄 알았다. 사실, 일본의 오키나와현은 오키나와 제도, 다이토우 제도, 미야코 제도, 야에야마 제도 등 총 36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근처에 중국과의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도 있다.



그런데 오키나와를 이루는 수많은 섬들이 한국의 여행 가이드북에는 제외되어 있다. 한국의 여행 가이드북에는 없는 섬-한국이나 한국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남국 혹은 일본의 일부분일 뿐인 것처럼 느껴지는 섬들. 한국인들에게 오키나와의 섬들은 왜 삭제되어 버린 것일까.



사실, 오키나와는 한국영사관이 있을 정도로 한국 정부와 직접적인 관계를 지속해 왔던 곳이다.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1972년까지 미군정의 통치를 받아 왔던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되자, 오키나와에서는 민단(7012)과 조총련(729)이 재빨리 조직되었다. 한국은 오키나와에 영사관을 설치함으로써 안보 문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군의 동향을 살피는 한편, 조총련의 활동을 견제하는 기능을 하도록 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에 군부나 병사로서 그리고 일본군위안부로서 희생되었던 조선인에 대한 규명이나 당시 오키나와에 살고 있었던 1,000여 명의 한국인에 대한 지원보다, 냉전 상황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고려가 우선시 되었던 것이다. 오키나와는 휴전선 없이 남과 북이 뒤섞여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해 갔던 냉전의 이데올로기가 현현되는 공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키나와의 역사와 오키나와로 끌려갔던 조선인들의 삶은(혹은 기록은) 한국인에게서 서서히 잊히면서 인식의 지도에서 삭제되어 간다.



1973년부터 1995년까지 조총련의 활동과 북괴를 견제하며 오키나와의 나하시()에 주재했던 대한민국영사관은 이제 없다. 또한 1972년부터 1998년까지 활동했던 오키나와의 조총련 조직도 이미 해산했다. 이제는 오키나와에서의 조선인의 삶, 조선인의 고난, 조선인의 역사는 잊히고 아름다운 휴양지 오키나와의 이미지만 남아 있다. 한국인에게 휴양지혹은 관광지로 인식되는 오키나와가 다이토우 제도, 미야코 제도, 야에야마 제도를 포함한 363개의 섬일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관광지, 휴양지로서의 오키나와는 본섬과 케라마 열도 정도로 족하기 때문이다.



여행 가이드북에선 소개하지 않은 미야코 제도의 미야코 섬에는 일본군위안부를 추모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아리랑의 비12개의 언어로 반전평화의 메시지가 새겨져 있는 여자들에게라는 기념비가 있다. 일본 자위대가 주둔하고 있는 장소 옆, 작은 비석이 놓여 있는 벌판의 주위는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군의 위안소가 있었던 곳이다. 한국인에게 잊어진 섬, ‘오키나와의 미야코 제도에는 잊히고 배제되어 왔던 그들의 이 남아있다. 그런 오키나와에 가는 일은 우리가 냉전기를 지나면서 삭제시켜 온 , ‘, 그리고 들을 만나는 것, 그리고 , ‘, ‘들을 되살리고 듣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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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 선동 – 폭우의 가르침 

 

 

 

 

 

金 飛

 

 

 

 

 

 

 

 

 

   비가 내리면 비를 맞아야 한다. 비를 피해 이리저리 뛰어봐야 소용없다. 무엇에든 스며들고 젖어드는 빗줄기를 피할 방법은 없다. 처마 밑으로 뛰어드는 일은 기껏 머리 위에 쏟아지는 방울을 가리는 것일 뿐이고, 사방 문을 닫고 방에 틀어박혀도 세상을 적신 축축한 물기운은 금세 문지방을 넘어온다. 폭우를 예보하는 리포터들의 음성은 점점 다급해지지만, 국지성이라는 핑계는 쏟아지는 비를 막아서지 못한다. 불어난 물에 잠기고 휩쓸리는 것들을 우리는 넋을 잃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속에 내가 없기를,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이기적이고 얄팍한 바람을 소원하며 우리는 식은 땀을 닦아내야 한다.

 

   겨우 우산 하나 준비하고 일이 아니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태로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오래 전부터 오늘을 가늠해야 했을 것이다. 오늘은 다시 아득한 미래를 위해 마련해야 하는 다급한 시간이다. 어제를 게을리하다가 오늘을 잃고 오늘을 놓치면서 내일을 꿈꾸고 있는 것이, 지금 폭우 속에 비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오늘 같은 어떻게 사진을 찍느냐고 누군가 만류했지만, 나는 커다란 우산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혼자서 쓰기에 우산은 너무 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우산에 채이고 밀리며 거리 위에 사람들은 내게 눈을 흘겼지만, 나는 우산 아래 혼자만의 안위를 생각하며 씩씩하게 걸었다. 낡은 슬리퍼 하나를 끼워 신은 맨발이었다. 냇물을 건너듯 서로 다른 물길이 흐르는 골목을 지나 여러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서, 나는 부산의 북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선동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회룡저수지를 품은 마을은 이미 세찬 빗줄기 속에 흠뻑 젖고 있었다. 나를 내려놓은 마을 버스는 어차피 이상 가지도 못하고 곳에서 방향을 틀었다. 우산을 받치고 운전기사는 버스를 정비하려 했지만, 사나운 빗줄기는 우리들을 나무라듯 사방에서 들이치고 있었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저수지를 향해 나는 여러 셔터를 눌렀다. 하늘과 수면의 경계는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 흐릿했다. 포말의 먼지를 일으키는지 수면 위에 세상은 황량한 미래를 경고하듯 흙빛이었다. 하늘도 없고 초록의 푸르름도 없으며 수면 위에 잔잔히 흘러가는 평화도 없었다. 사람의 시체라도 토해낼듯 몸으로 세찬 빗방울을 견디고 있는 흙빛 풍경은 시커먼 심연을 감추고 있었다. 어차피 고즈넉한 풍경 따위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눈앞에 드러난 물빛 투쟁은 엄청났고 힘으로 부딪히며 쏟아내는 파열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지워버리는 듯했다.

 

 

 

                                                                

                              

  

 

 

 

   허겁지겁 나는 작은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인적이 없는 골목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빗줄기의 차지였다. 어차피 평등하지 않은 위에 서로 다른 크기의 웅덩이를 새겨놓고, 빗물은 누구든 집어삼킬 태세였다. 무지개 우산을 주민이 다급하게 골목길로 나섰지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혼자서 꿈꾸는 무지개는 안타깝게도 그저 조악할 뿐이었다. 다른 주민이 트럭을 이끌며 골목 끝에서 달려 나왔지만, 마개를 놓아버린 세계의 결심은 너무도 쉽게 우리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우산 하나를 간신히 들고, 이제는 모두 같은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쓸모없이 커다란 우산을 접으며 나는 버려진 집의 낡은 처마 아래로 들어섰다. 잔뜩 찌그러진 처마 아래 유리문 너머엔, 버려진 공허가 가득했다. 그렇게 버려지고 낡은 채로, 다시 누군가에게 몸뚱이를 내어주는 집의 몸짓이 나는 여전히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물론 절박한 순간에도 남의 어리석음을 탓하고만 있는, 구제불능의 어리석음이기도 했고.

 

 

 

 

                              

 

 

 

  처마 아래에서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노래 같기도 하고 다급한 종용 같기도 하다. 버려진 몸짓을 흉내내며 나는 낡은 집에 조심스레 기대어본다. 내가 버린 것들에게서, 내가 잊어버린 것들에게서 따스한 온기를 기대하는 꼴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뻔뻔스럽게 눈을 감는다. 그런 나를 손가락질하려고 매년 폭우는 그렇게 거세어지고 있는 건지도.

 

   도망치려면 걷는 수밖에 없다. 제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날마다 위협하는 세계를 탈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커다란 우산을 펴며 나는 골목길로 나섰다. 산길로 이어지는 것만 같은 골목에 들어서니 다듬어진 초록의 나무들이 도열하듯 눈앞에 나타났다. 너무도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아름답다고 말할 뻔했다. 깎이고 패이는 것이 자연의 섭리일 , 인공의 아름다움은 조작된 시간임을 우리는 모두 잊은 살고 있다. 그렇게 반듯한 세계를 지키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들이 훼손되고 찢겨져버렸다. 반듯하다는 것이 일직선으로 가지런하리라는 것은 편견일 , 들고 나며 멋대로 키를 키운 것이 어쩌면 가장 반듯하고 가지런한 시간인 것을.

 

 

 

 

 

 

 

   다시 곳에서 돌아나와 다른 골목으로 올라섰지만, 마을은 발자국 지나지 않아 쉽게 끝나버렸다. 다시 돌아나와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지만, 곳에도 이상 마을은 이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폭우 속에 길을 나섰으면서도 평화롭고 고즈넉한 마을 풍경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 골목 여기저기를 헤매 다니며 나는 상실감에 몸을 떨었다. 다급한 몸짓의 주민들도 이상 보이지 않았고, 빗물이 흘러넘치는 거리에서 나는 너무 커다란 우산을 혼자였다. 밤의 어둠마저 드리우면 어쩌나 순간 겁이 , 다시 정류장 쪽으로 도망치듯 발길을 옮겼다. 전쟁터 같았던 저수지 풍경을 다시 보게 생각을 하니 마뜩잖았는데, 전까지 뿌옇던 수면 위가 말개지고 있었다. 고개를 드니, 무섭도록 쏟아져 내리던 빗줄기도 어느새 사그라졌다. 그저 희미하기만 했던 저수지 건너편의 산자락도 초록의 풍경을 수줍게 드러냈고, 저수지를 가득 채웠던 습기는 하얀 구름이 되어 조용히 산자락을 품어안고 있었다. 투명해진 하늘은 한껏 울고 세상의 같았다. 울먹이며 이제 자신을 끌어 안아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섰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듯 세계를 위협하던 폭우는 마침내 멈췄다.

 

 

잊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08 : 재송동 - 마을, 단지, 빌

 

 

 

 

金 飛

 

 

 

 

 

 

 

 

   갖가지 생명들이 의지해 사는 땅을 인간의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것에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그 분야에서 매해 전국의 땅에 돈 가치의 순위를 매기는 모양이다. 그 중에 가장 상위에 속하는 지명의 이름으로는 서울의 강남이라든가 명동의 이름이 있었던 것 같고, 부산에는 단연 해운대와 서면의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해운대와 서면은 부산을 대표하는 그 중심이라고 이야기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그럼에도 해운대구의 높이 솟은 건물과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불빛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높고 화려한 것들을 짓기 위해 무너지고 부서졌던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좋은 시절에 살면서 옛날 것들을 떠올리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무작정 화려하고 찬란한 시대만을 쫓으며 너도 나도 광적으로 매달리는 것이 더욱 '착오'적인 것은 아닌지,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되묻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번에는 부산의 바깥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인 해운대구로 향했던 것은, 이 질주하는 세계에 던지는 그러한 물음이기도 하다.

 

   해운대구의 재송동은 여러 백화점들과 영화의 전당, 그리고 무수히 많은 아파트 단지의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고개를 들면 어디에서나 마을 너머의 하늘을 반 쯤 가린 아파트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재송동 마을 자체가 장산 자락에 드리워져 있음에도, 수영강 천변으로 이어지는 마을의 시선은 높다란 고층 아파트 건물에 꽉 막혀있다. 아파트라는 공간 속에도 똑같은 이름의 마을 주민이 살고 있음을 알지만, 푸른 산자락이나 하늘 대신 아파트 건물을 올려 보고 살게 되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유창맨션 앞 정류장에서 내려 재송동 쪽으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갔다. 부산의 어디나 그러하듯 가파른 비탈에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몸을 실었는데,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가 나는 화들짝 놀라 허리를 꺾었다. 수영강 천변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 건물이 너무 높아, 햇살을 등지니 그 모습이 말 그대로 괴괴했다.

   장산 자락 쪽으로 더 올라갈까 망설이다가, 나는 고층 아파트 단지에 붙어있는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섰다. 시간의 때를 입은 채 오래도록 그곳에 자리했을 낮은 주택 건물들은 하나 같이 거대한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였다. 답답한 느낌이 들어 골목을 돌아섰는데도, 길 끄트머리엔 또 다른 아파트 건물이 가로 막고 있었다.

   좀 더 마을 깊숙이에 들어서니 다행히 키 큰 나무들이 장승처럼 우뚝 서서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부산의 가장 번화가라는 해운대 지역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우거진 수풀과 높은 나무들은 내 앞에 또 다른 차원의 문을 열어주었다. 생뚱맞게도 '청송 슈퍼'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 너머는, 영락없이 나를 산자락 깊숙한 곳의 시골 마을 안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초록 이끼로 뒤덮인 담벼락의 축축함이 그 순간 얼마나 반갑게 느껴지던지.

 

 

 

 

 

 

   나는 되도록 등 뒤에서 나를 내려보고 있을 고층 건물들은 잊어버린 채, 마을 여기저기를 천천히 걸었다. 이미 철거가 끝나버린 집터에는 안타까운 덩굴만 방 안까지 들어와 주인을 찾고 있었고, 비슷한 또래의 두 주민은 나란히 걷다가 말고 심각한 이야기라도 주고받는지 골목 끄트머리에서 서로에게 낯을 붉히는 듯했다. 두 분의 사정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는 멀리 돌아서 더 위쪽으로 향했다.

 

 

 

 

 

 

 

 

 

   언제 그려놓았는지 알 수 없는 벽화들은 이미 색이 바랬고, 집에서 내쫓긴 부서지고 깨진 것들은 시위하듯 좁은 골목에 나 앉았다. 또 다시 눈앞에 나타난 커다란 나무가 반가워 올려보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아파트 건물에 새겨진 이름이 슬쩍 그런 나를 넘겨보고 있었다.

   골목을 걸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나는 이미 마을을 둘러싼 아파트 단지 정문에까지 와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등진 채 낡은 담벼락을 넘어온 감나무를 올려보고 있으니, 열린 문 안 쪽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어서 들어오라, 감나무는 들어와 찍으면 더욱 예쁘다, 할머니는 생전 처음 보는 나를 문 안으로 들이며, 여기가 좋다, 거기가 좋다, 사진에 예쁘게 담길 곳을 일일이 일러주셨다. 그러면서도 한사코 당신은 사진에 담기지 않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내게는 빨갛게 익어가는 감 몇 알 보다, 할머니의 그 손짓 몇 번이 훨씬 더 아름다웠는데 말이다.

 

   '집 앞에 아파트 때문에 답답하시죠?' 그렇게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고작 힘겹게 감춘 흉터를 손가락질 하는 꼴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그저 평상 위 할머니 곁에 앉아 할머니가 가리키는 감나무만 올려다봤다. 이제는 햇살 한 자락 받아내기도 쉽지 않은 이 그늘진 자리에, 어쩌자고 열매들은 저렇게 빨갛고 탐스럽게 달렸는지.

   '할머니, 저 가볼게요.' 주름 가득한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고 나는 문을 나섰다. 한 쪽에는 높이 치솟은 아파트 건물을 어깨에 걸고, 또 다른 한 쪽에는 감나무를 가리키던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한 채, 나는 천천히 골목을 걸었다.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가 되어버린 골목을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담벼락 한 구석에 색색의 우산 하나가 세워졌다. 누가 잠시 세워둔 것인가 싶었는데, 우산 끝에 작은 돌멩이가 괴어져 있었다. 비도 오지 않았고 금세 내릴 것 같지도 않은데, 누군가를 위해 거기에 세워졌을 우산 하나가 뭉근하게 마음속을 데워 주었다. 비를 피하라는 부모의 마음일까, 그도 아니면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마음 씀일까.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멀리 헤아린 생각일까. 나는 작은 돌로 괴어진 그 우산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저렇게 높이 치솟아 발아래 세상을 키워가면서도, 우리는 여기에 없는 누군가를, 우리 앞에 닥칠 먼 시간을 그렇게 헤아릴 수 있을까. 화려하고 찬란한 세상에 눈멀지 않고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 수 있을까.

 

   갑자기 눈앞이 먹먹해졌다. 어느새 사방이 깜깜해지고 있었다. 저녁 햇살마저 가리운 거대한 건물 때문인가 싶어 눈을 드니, 멀리에서 시커먼 구름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기우(杞憂)라고 치부해버렸을 그 위태로운 시간이,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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