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점이 모여 선이 되기까지 2

 

 

 

차가영(래인커머)

 

 

 

매일 똑같은 길을 걷고, 똑같은 곳에 점을 찍다보면 어딘가로 떠나는게 무서워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그 여정은 새로운 점을 찍을 수 있는 힘이 된다.

 

3. 찍고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만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처음이라는 긴장되는 상황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말을 꺼낼 수나 있을까,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내가 이 만남에서 맡은 일이 뭐였더라, 이 사람은 어떤 말을 할까. 이런 것들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오고, 하나로 모일 수 없는 생각은 몸을 긴장 시킨다. 코도모 센터의 마마상, 섹스워커 인권 활동가 다나카 과장, 동지사 대학의 정유진 선생님, women's action network의 오카노, 무타 선생님, 마와시요미신문의 창시자 무츠상과 만났을 때 내 시야는 오로지 눈앞에 있는 사람만을 향해 있었다. 한국 사람인 정유진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만난 모든 사람들이 일본 사람임에도 옆에서 해주는 통역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긴장된 첫 만남이 끝나고 나면,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떠올려보아도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급하게 기록해둔 약간의 문자를 통해서만 이랬었지, 하고 기억을 더듬을 수 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려 후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첫 만남의 소중함은 좁아진 시야에서 나온다. 한 사람만을 향해 있는 긴장된 몸은 그 사람이 말할 때의 감정을 보는 것에만 집중하게 한다. 그 순간에는 일본어와 한국어라는 언어의 경계 사이 어딘가 쯤에 내가 서있는 것 같다. 일본어를 거의 모르고, 처음 맞는 상황임에도 몸짓과 몇 개의 단어들로 말하고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의 맥락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 순간이 되면, 굉장히 중요한 어떤 걸 몰래 훔쳐본 것만 같은 두근거림이 생기며 말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머릿속에 가득 찬다. 그 호기심이, 첫 만남의 소중함을 만든다. 호기심은 그 사람이 하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계속 이 사람을 만나보고 싶게 하니까 말이다.

  2014630. 우리는 가마가사키와 토비타신치 답사 후, 아케이드 뒤편에 있는 코도모센터를 방문했다. 코도모센터는 토비타신치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아이나 부모가 맞벌이를 하여 낮동안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조그만 보육시설이다. 코도모센터에서는 대장인 마마상을 중심으로 코도모센터 출신의 청년들이 아이를 돌보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대장인 마마상은 처음 만난 우리들에게 적극적으로 코도모센터를 소개해주었다. 코도모센터에 대해 말하는 마마상의 얼굴과 말투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곧 끊길지도 모르는 정부의 코도모센터 지원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는 공간을 지키려는 사람의 결의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코도모센터의 아이들이 왜 자라서 센터에 선생님으로 다시 오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 함께 있는 것의 재미와 행복을 느끼고 있을 코도모센터의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친구들이 될지 궁금해졌다.

  같은 날 가마가사키 코코룸에서 만난 섹스워커 인권활동가 다나카 과장은 정해진 단체에 속하지 않은 활동가이다. 여러 곳을 다니며 섹스워커 인권 활동을 하고 있다. 다나카 과장과의 첫 만남에서 가장 중심이 되었던 것은 단어 사용의 다름에서 온 의사 전달의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활동가 다나카 과장과 한국의 활동가 정희샘은 성노동에 대해, 성매매에 대해 각자가 사용하는 단어를 두고 한참이나 설명을 해야 했다. 일본어와 영어와 한국어가 마구 뒤섞여 오갔다. 말의 뒤섞임 속에서 다나카 과장의 얼굴과 말투는 경계에서 안도로 변해갔다. 마구 엉켜버렸던 말의 꼬리들을 하나씩 풀면서 다나카 과장과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나카 과장과의 만남은 인권신장을 위해 움직이는 활동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활동가끼리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무언인지에 대해, 연대라는 것은 어느 지점에서 가능해지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201471. 교토에 있는 동지사 대학에서 정유진 선생님을 만났다. 정유진 선생님은 한국에 있을 때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한 활동가였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연구실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시작되었는데, 그 시간은 질문도 별로 없이 유려한 정유진 선생님의 말로 이루어졌다. 오랜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성찰이 바탕이 된 정유진 선생님의 이야기는 우리를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했다.

  정유진 선생님과의 만남 후, 바로 같은 건물에서 만난 무타, 오카노 선생님은 젠더와 섹슈얼리티 연구자이자 활동가이다. women's action network라는 NPO 단체에 있는 두 분은 위안부, 성노동, 성소수자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연구자와 활동가를 함께 하고 있는 두 분의 모습에서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정유진 선생님을 만났을 때 느꼈던 것과도 같았다. 세 명의 여성 연구자이자 활동가의 만남에서 나는 앙다문 입이 계속 생각이 났다. 존재를 삭제하려고 하는 폭력의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서 그 폭력이 전부 무너져 내릴 때까지 끝까지 들이받겠다는 힘이 숨겨져 있는 앙다문 입.’

  201472. 관광자이자 여행자이자 마와시요미 신문의 창시자인 무츠상이 운영하는 카페 얼스에 방문했다. 무츠상이 만든 마와시요미 신문은 교감을 위해 만들게 된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카페에 앉아서 혼자 신문을 보며 만들었는데, 이것이 점차 퍼져 지금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이를 체험하고, 만든 신문을 서로 공유하며 서로 교감하고 있다고 한다. 이 날 우리는 마와시요미 신문 2호를 만들었다. 무츠상은 둘러앉아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국말이 가득한 방 안에서 무츠상은 신문을 만들고 있는 우리를 보며 미소 짓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하고, 아프꼼과 동인들의 마와시요미 신문에 관심을 가져 주었다. 무츠상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것을 발명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여 그것을 널리 퍼뜨리는 재미가 무엇인지 느껴보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의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의견을 나누고, 코멘트를 해주며 다 만든 신문을 하나하나 스크랩 하는 무츠상의 얼굴을 보며, 다함께 모여 앉아 만드는 신문이 왜 공감을 만들어내는 신문이 되는 것인지를 알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일 때, 그에 응답하는 사람의 표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만남이었다.

 

  만남의 시간동안 좁아졌던 시야는 만남이 끝난 후, 숙소에 돌아와서 침대에 털썩 앉는 순간 제자리로 돌아온다. 한 번의 만남을 통해 넓어진 시야를 갖는 것이 아니라 좁아진 시야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워크숍 기간 동안의 첫 만남마다 경험한다. 헤어지고 나서야, 왜 이렇게 긴장을 했었는지, 긴장한 게 오히려 티가 나서 폐가 된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며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더 만나게 되면 말이라도 한번 걸어볼 텐데. 질문이라도 하나 해볼 텐데. 긴장으로 한껏 움츠러든 채 이루어진 만남은 절대 첫 만남으로 끝을 낼 수 없다. 첫 만남의 소중함은 여기에서 또 나온다.

 

 

 

(첫번째 후기에 그렸던 지도를 이용하여 만든 두번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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