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篇小說

 

길고 느린 날개짓

 

 

 

 

 

 

 

*

2014년 작품

 

 

 

 

 

金 飛

 

 

 

 

 

 

 

 

 

    또 다시, 444.

 

    나는 시간에 갇혔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처럼,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 흘러가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면 시간은 그 때마다 똑같은 세 개의 숫자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네 이놈!'하는 것도 같았고, '어허!'하는 것도 같았다. 사랑이란 '여기'에 있지 않다 말하며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에도 그랬고,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처럼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에도 그랬다. ()을 닮은 그 세 개의 숫자는 매번 내 목덜미를 겨냥하고 있었다. 온 생을 걸었던 것들마다 차례차례 무릎 꿇은 나를 외면하면서, 나에게 시간은 희망이거나 힘이 아니라 까마득히 펼쳐진 늪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무수히 많은 시간들이 나를 스쳐간 것을 안다. 내가 잠든 사이, 꿈 속을 헤매고 있을 때조차 시간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던 것을 안다. 단지 살면서 처음으로 시간이란 걸 올려보던 그 즈음 내게 불운이 닥쳤고, 그래서 시간은 계시같은 것이 되었을 뿐 나는 지금 그 어디에도 갇히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다. 계시, 시계. 맞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내게 어떤 말을 건네려하고 있었다.

    "그 시계는 어디서 난 거야?"

    "동생이요. 오래전에."

    "여동생?"

    왜 사람들은 말하지 않은 걸 듣는 걸까. 말하지 않았으면서 말했다고 믿고 듣지 않았으면서 들었다고 믿으며, 우리는 얼마나 그렇게 서로 어긋나고 있었을까.

    "그래도 하나 뿐인 오빠라고, 예전에는 이것저것 바리바리 챙겼던 모양이구나."

성긴 그물에 걸린 분홍색 책자가 눈 앞에 보였다. 여러가지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그물 속에 걸려 있었다. 늘씬한 몸통을 지닌 술병들도 유혹하듯 나를 올려봤다. 저렇게 작고 보잘것 없는 그물로 이토록 화려한 음식과 술을 건져올린 지상의 어부들은 누구의 후손이었을까. 대답 대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은 연락해?"

    태풍이 북상 중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비행기 안은 너무도 고요했다. 그런데도 나는 시끄러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듯 창 밖만 봤다. 도시락만 한 창()이었다. 급식소의 배식판 위에 국 그릇만 한 구멍이었다. 그리운 이의 얼굴 하나도 제대로 그릴 수 없는 좁고 밀폐된 틈이었다.

    "섭섭해하지 마. 버려졌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어차피 살면서 누가 누굴 버리고 그런 건 없어. 나도 결혼하고 직장다니고 그러면서 명절 때조차 가족들 뒤통수 하나 구경하기 힘들었으니까. 그냥 다 각자, 자신의 삶이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

    그는 자신을 내 고등학교 선배라고 소개했지만, 솔직히 나는 지금도 그가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되니 면구스럽고 얼굴 팔리는 일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는 어디에서 우리가 만났고 어떤 시간들을 우리가 함께 했는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학창 시절에 그림을 그렸고 학교에서 주최하는 시화 전시회도 열었던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쩐지 시간을 말하지 않고 그 기록만 훔쳐본 사람의 말투였다. 논문을 준비 중이라 인터뷰가 필요하다며 괜찮겠느냐고 말했을 때, 나는 낯선 얼굴로 다가온 시간을 마주한 듯 얼어붙었다.

    아니다, 별 것 아니다. 나는 단지 어딘가에 기록될 나의 시간이 두려웠을 것이다. 가장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기록해도 되겠느냐는 그의 부탁은, 흘러가는 시간을 역행하는 혁명같았다. 나는 언제나 혁명 따위를 믿지 않았으며, 순리를 거스르는 것들을 혐오했었고. 아니 이제서야 솔직히 말하건데, 나는 아직도 그 혁명이 두렵다.

    "이렇게 새로 시작하는 거지 뭐. 인생이라는 게 말이야, 힘든 일이 있다보면 어떤 계기가 생기고, 또 그걸 바탕으로 딛고 일어서게 되어 있는 거더라고. 대단한 희망이나 기회, 그런 건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애. 안 그래?"

    나보다 겨우 두어 살 많은 것에 불과하면서 그는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 말했다. 나는 여전히 어떤 시간에 갇혀있는데, 그는 지나온 시간부터 지나야할 시간까지 지상의 시간을 모두 다 헤아리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 나에게는 돌아갈 집도 없고 가족조차 없는데, 그에게는 집이 있고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었던 것은. 결국 올바른 생이란 열정이나 노력 따위로 치환되는 끈질긴 집착이 있어야하기에. 아무리 지독하고 신물나는 세상이더라도 이기적인 현명함을 놓치지 말아야했기에.

    머리 위 어딘가에서, 20분 후 간사이 국제 공항에 도착하겠다는 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씨는 맑으며 기온은 27도씨로 청명하고 상쾌한 날이라고 했다. 그러니 무작정 즐겁고 편안한 여행 되시라고.

    얼마나 어떻게 해야 그토록 끈질기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아남을 수 있는 건지 좀 더 자세히 묻고 싶었는데, 갑자기 귀가 먹먹해졌다. 내 앞에서 그는 계속 지상의 말들을 중얼거렸지만 나는 물고기가 된 듯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듣지 못했으니 더 이상 말할 수도 없었다. 바다만큼이나 넓은 대형 태풍의 가장자리에서, 비행기는 크게 선회하며 급강하하고 있었다.

 

    황급히 눈을 피했다. 살아있는 걸 마주하는 일은 아직 익숙지 않았다. 채근하는 것만 같은 그 눈빛이 싫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기다란 창에 찔려 세상의 수면 위로 건져올려지는 것만 같았다. 그걸 마주하지 않기 위해 내 두 눈은 언제나 제일 깊고 어둔 구석에 머물렀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술 생각이 났다. 술 한 잔을 들이켜고 나면 세상과 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퇴화하며 진화하듯 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어지곤 했다.

    "떨어지지 마시고, 바싹 붙어서 따라오세요."

    일행을 안내하기 위해 제일 앞에 선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엔도라고 소개했다. 그는 견학을 시키는 인솔 교사처럼 사람들에게 친절히 당부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은 절대 안되며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일도 되도록 삼가라고 말하자, 열 명 남짓한 무리들 속에 심연 같은 적막이 흘렀다. 나를 가리키며 손가락질을 한 것도 아닌데, 나는 괜히 식은 땀을 흘렸다. 내 머리 위에서 일렬로 도열한 기다란 간판들은, 급식소 앞에 섰던 나처럼 욕망을 갈구하고 있는 듯 했다.

    엔도는 시장 밖으로 나가 난바역을 따라 성큼성큼 걸었다. 그리고 우리들을 대로변 모퉁이 앞에 세웠다. 1990년대 일본의 거품 경기가 사그라들고 이 세계를 지어올린 일용직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이 세계로부터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옆에서 통역을 하던 여자가 더듬더듬 말을 이어갈 때에도 나는 안경을 쓴 엔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허름한 건물 앞에 붙어있는 작은 안내판을 가리켰을 때에도, 나는 샛눈이지만 그의 눈을 넘겨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말하고 있는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는 일, 비록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 언제나 말이란 무차별적으로 찔러대는 난도질 같기만 했는데.

    다시 그의 눈빛이 다가온다. 또 다시 나는 그의 눈을 피한다. 잠시 후, 슬며시 고개를 든다. 그의 눈빛이 다가오면, 다시 또 고개를 숙인다. 방법이 없다. 내 몸이 아니라, 내 몸의 몸이다. 내 몸을 지배하고 있던 내 몸의 몸체. 이 곳이 슬럼화가 되고 한 차례 커다란 폭동이 일어나면서 더욱 더 이 마을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빈곤과 고립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대신, 그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더욱 더 철저히 그들을 소외시켜버렸다고 했다. 자유롭게 살도록 해준 거라고 말했지만, 자유가 아니었다. 고립된 자유 속에 그들을 감금시켜버리는, 자유의 또 다른 자유.

    곱슬머리에 키가 큰 그는 또 다시 우리 일행을 이끌고 거리 안쪽으로 들어갔다. 모퉁이 하나를 돌았을 뿐인데, 주변의 풍경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콧속에 스멀거리는 것은 익숙한 냄새였다. 무리 중에 누군가 그것을 국적이 없는 냄새라고 했다. 계급은 있지만, 그 어떤 국적이나 이름도 없는 냄새.

    엔도는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꽃 화분이 늘어선 기다란 벽 앞에 또 다시 사람들을 세웠다. 버려진 그곳의 분위기를 위로하기라도 하듯 꽃화분들은 선뜩한 색으로 도드라졌다. '우와, 예쁘다!' 무리 안에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을 때, 그제야 나는 그것을 두고 '예쁘다'고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부끄러움을 느끼려는 순간, 엔도는 그러나 그것이 노숙자들이 그 벽 아래서 노숙을 하는 걸 막기위한 도구라고 했다. 꽃을 관리한다는 핑계로 정기적으로 물을 주면서, 그 아래로 물이 흐르게 만들어 사람들이 노숙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 속에서 탄식이 터졌다. 배신감 때문인지 나즈막한 욕설들이 토해졌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담담했다. 예쁘다는 건 원래 그런 거다. 예쁜 건 배신을 하고, 힘 센 건 역습을 한다. 희망이란 허망했으며, 당당하고 떳떳하라는 외침은 언제나 주먹질처럼 폭력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쁘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은 참 다행이었다. 예쁜 걸 두고 예쁘다고 말하지 못하는 내 습성이, 처음으로 나는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앤도는 단단하게 창살이 드리운 경찰서와, 누가 운영하는지도 모르는 무료 급식소, 도박판이 벌어지는 공원 여기저기를 빠른 걸음으로 이끌며 열심히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거리 안 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비슷한 걸음 걸이를 지닌 남자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반발씩 걷거나 느리게 걷거나, 그들의 걸음 걸이는 하나 같이 엔도의 빠르고 큰 걸음과는 확연히 달랐다. 엔도는 그들 중 몇몇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고, 그들도 손을 들어 마주 인사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걸걸한 목소리로 무어라 말했는데, 어쩐지 엔도의 목덜미는 붉게 달아 올랐다. 일본어는 몰랐지만, 어쩐지 그가 한 말을 나는 알아들을 수 있을 듯했다. 그건 아마도 모든 국경을 뛰어넘어 단박에 마음에 꽂히는 세계적 언어였을 것이다. 머리의 말이 아니라, 가슴의 말인 범 세계적 언어. 안타깝게도 분노하고 적개심만을 드러내는 말이겠지만, 그럼에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엔도는 얼굴이 뜨거워졌는지 모르지만, 나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심장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유독 껑충한 건물 앞에서 엔도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모아 세웠다. 어쩐지 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그는 다시 한 번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이곳에서는 절대 사진을 찍어서는 안되는 것은 물론이고, 카메라를 손에 들고있는 것만으로도 불미스런 일들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눈을 감추고 손을 감춘 채 자신에게 가까이 붙어 빠르게 움직여야한다고.

    그는 그곳이 가마가사키의 노동 복지 센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곳은 또한 갈 곳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거처이기도 하다고 했다. 건물로 들어서기 위해 계단 입구로 들어서는데, 시커먼 기둥 뒤에서 짧은 머리의 얼굴 두엇이 고개를 내밀었다. 계단을 올라가 철문 안으로 들어서니 불도 켜지지 않은 텅 빈 공간이 드러났다. 찔러넣은 것 같은 기둥 여러 개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시멘트 바닥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모두가 혼자였고, 자신들의 집을 껴안은 채였다. 엔도는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맨 구석에 사람들을 세웠다. 구석에서 돌아본 사람들의 풍경은 검은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 같았다.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묵묵히 고요히. 어차피 모두 한 덩어리로 이어져 있는데, 침묵이 가장 큰 순리라도 되는 듯 다 같이 혼자서.

    엔도는 그들을 등지고서 노동 복지 센터의 운영 방식과 그들의 거처, 혹은 직업 알선을 위해 센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주었다. 부족하고 모자란 것 투성이인 그가 말한 수치들에 대해 시멘트 바닥에 누운 누구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청소라도 하는지 박스를 들어 탈탈 털며 하나씩 차곡차곡 게어놓고 있던 남자가 흘끗 그를 봤는데, 어차피 뜬 구름 잡는 것만 같은 세상의 수치나 계산들은 그에게 남의 일인 모양이었다. 엔도는 또 다시 사람들을 이끌고 섬처럼 흩어진 그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너무 빨리 걷고 있는 그들의 맨 뒤에 따라가며, 나는 자꾸 뒤처졌다. 어쩐지 집에 돌아온 것만 같은 기시감 때문인지, 나는 그저 눕고만 싶었다. 스키[각주:1]를 타던 어린 놈과 싸움이 붙었던 일, 쌍쌍바[각주:2] 커플과 소주 잔을 나누던 일, 시간이 지나면 절망도 추억이 되는 건지, 그 때의 기억들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며 나를 자꾸 끌어당기고 있었다.

 

    섭섭하지는 않다. 정말이다. 무작정 섭섭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오빠라는 이름을 버렸다. 이름을 버린 나는 여기에 존재하지도 존재해서도 안되는 사람이었다. 핑계라고 말하겠지만 '사람'의 이름마저 잃어버린 나는 점점 꼬리가 자라나는 것만 같았다. 가마가사키라는 지명의 뜻이 '가마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공교롭게도 나는 털을 뒤집어 쓴 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모두들 너무 빨리 걸었다. 여전히 세상의 걸음은 내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너무 빨랐다. 하지만 결코 섭섭한 것은 아니었다. 섭섭하지 않다, 정말이다.

    엔도는 그러고 나서도 가마가사키 바로 옆에 자리한 토비타 신지라는 유곽지역을 소개해주었는데, 겨우 거리 하나를 두고서 그 곳은 또 다시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건물마다 새하얗게 달린 등() 때문에 나는 몽롱한 꿈속이라도 거닐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나는 행인을 관찰하기 위해 문 앞에 달아놓은 작은 거울 속으로 화장을 한 그들의 눈빛과 마주쳤을 때, 나는 모든 것들을 단박에 뛰어넘는 가장 근원적인 위안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이 설레었다. 그러나 엔도는 그 곳과 가마가사키의 일용직 노동자들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단신의 남성 노동자와 유흥업 종사자 여성들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공생의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틀렸다고 했다.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임금으로는 단 삼십 분도 그곳의 여성들을 살 수 없고, 그곳의 업소들도 돈 많은 외지인들만을 손님으로 받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었는데도, 여전히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세계의 담.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일까, 이 세계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국적은 이름일까, 표식일까.

    "비둘기가없어요."

    "? 비둘기?"

    웅장한 옥빛의 오사카 성이 올려보이는 광장에서, 나는 깨끗하게 정리된 바닥을 보고 있었다. 매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짓밟고 지나갔다고 생각하기에 광장 바닥은 징그럽도록 하얬다. 불량배처럼 사람들의 길을 막았던 그 비대한 생물들조차 여기에선 보이지 않았다. 너무 크고 동그랗기만 한 그 눈빛 속엔 조류임을 포기한 각오가 서려 있었는데, 그래서 가끔은 그 눈빛에 주눅이 들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는데. 나는 이러저리 돌아보며 그 혁명적인 생물들을 찾았다. 높이 뛰어오르듯 날았다가 내려와, 내 가래침을 쪼면서도 당당했던 그 눈빛.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성 안에 들어갈까, 말까? 저 안은 박물관이라는데, 더워. 저기서 그냥 음료수나 한 잔 마시고 갈까?"

    내 대답은 들으려하지도 않은 채 그는 멀리 보이는 매점 쪽으로 앞 서 걸었다. 그의 이름이 뭐였더라? 그를 부르고 싶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동식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불렀다가 잘못 불렀다고 여러 번 혼이 났었는데.

    언제나 틀린 것이 먼저 떠올랐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것은 모두 틀린 것들 뿐이었다. 어차피 가능하지 않았던 것들만 꿈꾸었던 건지,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은 이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것들 뿐이었는지. 나는 언제나 틀린 길 위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된 발걸음을 옮기며, 몹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서른 여섯부터 마흔까지는 아예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았다. 식은 땀을 흘리며 먹은 걸 토하고 다시 먹은 걸 토하면서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간호사는 내 이름표에 마흔이라고 적어넣었다. 그러고 돌아서는 그녀의 뒤통수를 나는 오래도록 노려봤다. 그 때에도 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선배라는 사람을 따라 병원을 찾아간 내 발걸음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한 동안 조마조마해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는데. 지금도 이렇게 여기까지 따라 나선 일이 영락없이 괜한 짓은 아닐까, 불안하고 이물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있네, 비둘기!"

    매점 앞에서 사람들 뒤에 줄을 서며 그는 키가 큰 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서로 다른 것을 물고 빠는 사람들 속에 회색빛 생물들이 굴러다니듯 종종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손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쪼며, 누군가 빵 한 덩이를 던져주기를 기다리며, 똑같은 색의 털이 뒤덮인 그 생물들은 짧은 두 다리로 이리저리 뛰었다. 커다란 덩어리를 입에 문 놈을 쫓아 달려들고 빼앗으며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렸다. 그래, 내가 부러워했던 것이 동그랗기만했던 그 눈빛만이 아니었구나. 저렇게 치열하게 쫓아가 물고 빼앗는 집착도 나에게는 없었구나. '하지메마시테!'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차피 서로의 슬픔은 주고 받지도 못한 채, 오직 남의 덩어리를 쫓아 뛰어야하는 똑같은 이국(異國)의 생물들이여. 나는 의자에 앉지 못하고 그대로 흙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들을 따라 두 발로 종종 뛰듯 신발 속에 발가락만 계속 꼬물거렸다.

 

    또 다시, 444. 폭신하고 부드러운 이불을 견디다 못해, 나는 잠에서 깨었다. 냉장고 박스 두어 개를 이어 붙인 것만 같은 작은 호텔 방 시계는, 또 다시 그 세 개의 숫자를 내 앞에 내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시간에 갇혀 있다. 시간이 고장난 걸까, 내가 고장난 걸까. 내 생존을 증명하는 세포들도 날마다 투쟁을 기억하며 싸우고 있다는데, 나는 왜 싸우는 법을 잃어버렸을까. 그런데, 싸워야한다는 이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투쟁은 태초의 생존 방식이었을 뿐, 지금도 모두들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말하는 건 시간을 거역하는 일이 아닐까.

    오사카 성을 나오다가 그는 나를 수로(水路) 근처 나무 아래로 이끌었다. 성을 둘러싼 수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켜야했던 건지 강처럼 넓고 깊었다. 그를 따라 벤치 너머 나무 아래로 다가가니, 하얀 모자를 쓰고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노인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초록의 나무 아래 캔버스를 펼쳐놓고 이젤과 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검버섯이 편 가녀린 팔을 들어 그녀는 화폭 위에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동안 조용히 그녀를 넘겨보다가,  그는 내게 말했다.

    "그림은, 저게 진짜 그림이지 않냐?"

    잔잔한 그의 탄성은 엔카처럼 구성졌다.

    "너도 그림을 그려야지. 아깝잖냐, 그냥 썩히기에는."

    썩어가는 것이 그림이라고 말했던 것 뿐인데, 나는 아직도 내 몸에서 나도 모르는 냄새가 풍기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저렇게 늙어가야지, 너나 나나. 돈이 있든 없든 간에, 나를 위해내가 버텨온 삶을 위해 저런 시간을 선물해줄 수 있어야지."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근데, 난 여기 왜 데리고 온 거요?"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노인을 바라보면서 그는 대답했다.

    "나도그리고 싶어서. 더 늦기 전에, 나도 내 인생을 위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너도 다시 보고 싶고."

    순간 물컹하고 축축하기만했던 기억 속에서 상고 머리를 한 학생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여러가지 서로 다른 색깔들을 덧칠해 세상에 없는 노을을 만들었던 내 그림 속에, 그는 코를 박고 있었다. 역시나 똑같은 까까머리를 한 나에게 다가오더니, 그는 그림 속에 까맣게 그림자로 그려진 새 한 마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새는 어디로 가는 거냐?' 나는 확실히 그 때,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날고있는 새를 그렸을 뿐, 나는 새가 가고 싶은 곳까지는 그린 적이 없었다. 물론 그것까지 그려아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러자 그는 내 대답은 들으려하지도 않은 채 이렇게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새가 날지를 못하는 것 같잖아? 날개만 크면 뭐하냐? 가짜 새 같은데.'

    "동석이?"

    그의 등 뒤에서 그 때의 얼굴이 나를 돌아봤다. 기억과 현실이 겹쳐지며 과거는 다가오고, 현재는 멀어지고 있었다. 과거의 그는 내게 다가와 엄지를 추켜들며 '멋지다!' 말했고, 현재의 그는 내게서 멀어지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흔이 훨씬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의 어깨는, 그림 속 날개도 아닌데 박제된 듯 크고 넓기만 했다.

 

    동생은 어느 날부턴가 이 시계를 차지 않았다. 검다고 해도 좋을 짙은 회색의 이 네모난 전자 시계 대신, 그는 안쪽에 보석이 반짝거리는 작고 동그란 은빛 시계를 손목에 차기 시작했다. 시간이 물들어가듯 동생의 손은 하얗고 가지런해졌으며, 그의 손톱도 여러가지 색깔로 물들어갔다. 칙칙하고 어둡던 그의 옷이 화려한 문양과 색을 입었고, 그의 얼굴에 분이 칠해지고 입술까지 립스틱으로 빨갛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어느 날 나는 그를 집에서 내쫓았다. 부모가 없는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던 가장으로서, 나는 또 다시 세상이 우리를 가리키며 부모 없는 탓이라고 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생각해보면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말했다고 믿었고 들었다고 기억했다. 그 때, 그는 이미 조금씩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는 지우는 것이 아니라 채워가는 것이라 말했지만. 비로소 자신의 삶을 하나씩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가고 있는 중이라고.

    "조금 늦을 거라는데? 싼 값에 태워줬다고 배짱이냐, 뭐냐? 에이!"

    우리가 타고 온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는 간사이 공항의 본 터미널이 아닌, 버스로 십 여분을 오가야하는 부속 터미널에 내려주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법칙은 그 어떤 국경을 넘더라도 여전히 그렇게 견고할 것이다. 평등이란 환각일 뿐, 나고 자라는 모든 것들은 평등하지 않기에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간절히 그것을 애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은 다시 그릴 거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삶에 긴 시간을 잃었듯이, 나는 그림을 둘러싼 시간을 잃어버렸다. 내가 그림을 버렸는지 그림이 날 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림의 곁에 없었고 다시 돌아가는 법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미처 내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여러가지 언어가 뒤엉킨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신음처럼 단어들이 토해지는 한국어 방송은 이리저리 뒤섞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되풀이되는 말에 잔뜩 귀를 기울이더니, 그는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 태풍 때문에 가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데? 오사카에서 출발하는데 도착지가 오사카 공항이 될 수도 있다니이게 말이야, 방구야?"

    섭섭했던 것은 아니다, 정말이다. 어차피 버려진 삶들이었기에, 그렇게 쉽게 서로를 버릴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버림 받은 자가 오히려 누군가를 버리고, 돌고 도는 상실감이 원을 그리며 모든 걸 빨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인지도 모른다. 평등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 누군가에겐 지독히도 끈질기게 평등한 절망. 그렇게 위에서 평등하고 또 아래서만 평등한, 기이하고 이상한 서로 다른 평등 세계.

    나는 황급히 그에게 휴대폰을 빌렸다. 타래처럼 딸려나온 기억 너머에서 생경한 숫자들을 건져냈다.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결코 혁명은 아니었다. 그저 단발의 힘없는 탄식이라고 해도 좋았다.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힘 찬 팔뚝 같은 건 어차피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일으킨 건, 그저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의 염세였다.

    휴대폰 건너편에서 내 허술한 외침에 응답하듯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다, 그의 목소리였다.

    "나다."

    아니다, 섭섭한 건 분명 아니었다. 나도 그를 버렸고, 그도 나를 버렸다. 서로가 서로를 버렸으니, 이제 우리는 비로소 평등하게 서로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틀린 세계에서는 목격하기 쉽지 않은, 국경과 경계를 뛰어넘는 참으로 고마운 평등.

    "아직도아직도 그러고 사는 거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울음이 묻은 그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섭섭한 건 아니다, 진심으로 섭섭한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너 이 새끼돌아가,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우리에겐 집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국경을 넘어 천둥처럼 울려퍼졌다.

    "죽고 싶냐? 내 말 안 들어? 내 말 안들을 거야? 아직아직 안 늦었어, 늦지 않았어! 늦은 건 없어, 이 새꺄! 돌아가, 돌아가서지금 당장 돌아가서……."

    섭섭하지는 않다, 결코 섭섭한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아니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자꾸 작아졌다. 조금씩 퇴화하며, 그녀도 진화하고 있는 건지.

    "너 이 새끼정말 내 손에 죽고 싶냐? 정말이대로 다 끝내 버려?"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힘찼다. 구호라도 외치듯 흔들림이 없었다.

    "정말내 말 안 들을 거야? 너 이 새끼, 정말 끝내줄까? 어차피 너나 나나 미련없는 인생살아봐야 더럽고 추잡하기만할 인생, 내가 이 손으로 다 끝내줄까?"

    나를 닮은 그녀의 목소리는 전화기 건너편에서 절규하고 있었다. 마음대로 해보라는 그녀의 말은 가마가사키에서 들었던 범세계적 언어를 되살리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매번 가슴으로만 토해지는 여기 이 심연의 언어.

    칼이라도 쥔 것처럼 두 손이 뜨거워진다. 벌떡 일어나니 서성거리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죽여버리겠다는 나의 다짐을 읽은 듯 그들의 얼굴은 찌그러진다. 그래, 어차피 모두가 길을 잃은 것들, 어디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비루하고 한심스러운 인생들. 뜨거운 것이 꼬리뼈 끝에서 끓어오른다. 단 한 번도 그 무엇으로도 위로되지 않았던 분노가 솟구친다. 소리를 지르려고 입을 벌리는데, 천장에서 내려온 커다란 전자 시계가 보였다. 또 다시 444. 참사를 증명하듯 어김없이 눈 앞에 나타난 세 개의 숫자. 그래, 우리는 결국 그 무엇도 거역하거나 배반하지 못한 채 계시를 따라 살아야하는 법. 인간의 뜻이란 거창하고 과장되었을 뿐, 이 우주의 시간 앞에 그저 사소하고 비루하기만한 것.

    그런데, 갑자기 벌레가 꿈틀거리듯 마지막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빛으로 번뜩이고 있던 숫자가 몸을 떨더니, 사방으로 나뉘었던 불빛이 서로의 몸을 끌어당겨 뱀처럼 하나의 몸체로 이어지고 있었다. 뿔뿔이 흩어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모두 다 어긋나버렸던 직선의 꺾임들, 금빛 점들이 만들었던 가식적인 직선의 무너짐들. 그건 짧은 순간 너무나도 부드럽고 우아하게 하나의 곡선으로 늘어섰다. 지금은, 445.

    다리가 풀렸다. 밀쳐진 듯 주저앉고 말았다. 생전 처음 보는 시간 아래에서 나는 그제야 긴 숨을 토했다.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시간이었다. 내게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순간이었다. 언제나 거기에 있음에도 그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를 위해 흐르고 있던 것이 아니었는데.

    "보고싶다."

    시간 위에 눈이 내리듯, 그녀와 나 사이에 갑자기 침묵이 드리운다. 있는 힘을 다 해 나는 다시 한 번 입을 벌린다.

    "보고 싶어."

    명멸하는 새로운 시간을 경배하며 천천히 내 두 눈이 감긴다. 눈물이 차오른다. 절규하며 오열하는 대신, 나는 몸을 동그랗게 만다. 허공을 뛰듯 두 다리를 종종거린다. 종의 경계를 뛰어넘으려는지, 갑자기 어깻죽지가 간지럽다. 태초부터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날개가 꿈틀거린다. 지독한 망각 속에 접혀있던, 내가 그린 나의 날개다. []

 

 

  1. 하반신 장애인이 바닥을 끌며 구걸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 [본문으로]
  2. 부부 노숙인을 가리키는 은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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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 아닌 이야기

 

래인커머 정선욱

 

▼ 

 

 

  워크샵 동안 버스타고 가면서, 술 마시면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 들으면서 오갔던 이야기들, 걸어다니고 움직이면서 보았던 모습들. 별것 아닌 이야기고, 별것 아닌 광경이었겠지만 이상하게 계속 귓가에 맴돌고 떠오르는 모습들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 둘 씩 떠올리면서 워크샵 동안의 일들을 떠올려 보려고 한다.

 

 

  629일 나는 조금 숨 가쁘게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약속시간에 늦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자 보험도 들어야하고, 국제로밍도 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 더 일찍 가야해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약속시간이 비행기 출발시간보다 세 시간이나 일찍 잡혀있긴 했지만, 보통 수속하는데 두 시간 정도는 족히 걸린다는 말에 더 조급했었다. 하지만 별로 피곤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평생 살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날아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평소에는 잘 자도 느껴지던 피곤함도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좀 더 일찍 도착했겠지? 하며 여유롭게 걸어가고 있을 때 저는 도착했어요 하는 김비님의 카톡이 휴대폰 창 위에 팟 하고 떠올랐다. 내 발걸음이 점점 급해졌다.

  공항에 도착해서 김비님은 어디계시지 하며 숨 돌리고 있을 때 쯤 마틴님의 모습도 보였다. 내가 제일 늦은 건가 싶었지만 아직 약속시간은 30분 정도 남아있었다.

  짐은 최대한 간단하게 싸는 게 좋아

  마틴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가방을 쑥 들어보였다. 내가 살던 곳을 잠시나마 떠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은 무엇일까. 그렇게 크거나 무겁다고 생각 한 적 없는 내 가방에도 화장품 파우치도 두 개나, 돼지코도 두 개씩이나 들어있었다. 그리고 가방도 두개였다. 실제로 그 많은 화장품들 중에 일본에서 내가 썼던 화장품들은 세 가정도뿐이었다. 별로 무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싸놓은 여행 짐은 한나절을 걷고 난 뒤부터는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가벼운 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첫날 도착하자마자 깨달았다. 심지어 이런저런 자료집이나 책들을 받으면서 가방은 무거워져가기만 했다.

  그 뒤로 정희님도 도착했고, 여전히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일찍 나와서 비행기를 기다리느라 모두 배가 고팠기 때문에 어머 왜 이렇게 비싸 데 찾아보자하고 지나쳤던 냉면집을 다시 들어가야만 했다. 냉면을 먹으면서 누군가 귀신이야기를 시작했고, 서로의 기묘했던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7년마다 한 번씩 꼭 찾아오는 악몽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모르는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목에 천을 감고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상하고 묘하게 느껴져서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은 꿈 이야기들이었.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꿈들과 다르게 계속해서 기억나는 이상한 꿈들은 그 꿈의 주인들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에는 비행기 표, 간사이공항과 신오사카를 오가는 하루카 티켓도, 아프꼼을 알리는 전단지도 있었다. 비행기를 잘 탈 수 있을까. 하루카 티켓을 사는데는 어디지? 내가 일본어로 티켓을 살 수 있을까? 하루카를 잘못 타는 건 아닐까 어쩌면 잘못 내리는 게 아닐까? 시시때때로 불안함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여러 군데에서 괜찮아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고, 가방 뒤, 어깨에 얹어지는 손들이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도 다들 전광판을 뚫어져라 봐 주고 있었다.

 

 

  신오사카에 도착해서 바로 그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향했다. 스시가게 앞에서 잠깐 순서를 기다리면서 맞은편에 있는 할인매장을 관광했다. 내게는 우와 싸다 하고 외치면서도 아무것도 사지 않게 되는 매장이었다. 커 보이는 볶음면이 80엔인가 했던 것 같다. 내가 그 볶음면을 서른 번도 더 들었다 놨다 하는 동안에 마틴님은 계산을 마치고 나오셨다. 내일 아침에 먹으면 되겠다. 라고 하면서 볶음면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팔목에 걸었다. 왠지 뿌듯해 보이는 마틴님의 표정을 보면서 뭐라도 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두어 번 더 들락거렸지만 나는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다.

 

 

  스시를 먹고 나와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아케이드처럼 막아놓은 시장의 천장으로 세찬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순식간에 온 시장 안을 매웠다. 별다를 것 없이 소나기가 오는 것 이었지만 누군가는 빽빽하게 비가 떨어지는 시장 밖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누군가는 천장에 부딪히며 소리치는 빗소리를 녹음하기도 했다.

 

 

  열시가 가까워오자 우리는 점점 어두운 곳을 향했다. 어두운 , 깊은 , 더 아무런 불빛도 없는 곳을 찾아서 저벅저벅 비묻은 아스팔트를 걸어갔다. 어느 집의 뒤쪽인지 집과 집의 사이인지 모를 골목에서 우리는 한사람씩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갔. 어두운 곳은 조용한 것 같다. 시끄러운 도시 안에 있어도 어둠의 공간은 조용하게 느껴진다.

 

 

  숙소 바로 옆에는 커다란 편의점이 있었다. 다들 한손엔 맥주, 한손엔 디저트를 들고 차례대고 계산을 했다. 매일매일 하루의 마무리는 편의점에서 했던 것 같다. 바나나를 사서 나눠먹기도 하고, 이 푸딩이 맛있을까 저게 맛있을까 고민하기도 하면서 조금 시끌시끌하게 편의점 안을 뱅뱅 도는 것이 워크샵의 매일의 마무리행사처럼 느껴졌다.

 

 

  오사카에서 첫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다 같이 오사카 성을 갔다. 성까지 들어가는 길목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다 같이 오사카 성을 갔다. 성까지 들어가는 길목에 털북숭이 아저씨의 멋진 눈빛을 하고 있는 영화 표지가 간판처럼 세워있었다. “예전에는 저렇게 털북숭이 스타일이 유행이었대 그래서 막 일부러 털을 기르고 털이 많을수록 인기가 많았대, 그런데 시대가 갑자기 확 바뀌면서 매끈매끈한 미남자가 인기를 끌었대, 그래서 털 많던 남자들이 울면서 털을 다 뽑고 그랬다더라구.” 권명아교수님이 그렇게 이야기 했다. 표지판에 멋진 눈빛의 아저씨가 처량하게 보였다.

  눈을 찡그리며 올려다 본 오사카성은 멀리서도 금색 투구가 번쩍거리며 빛났다. 역시 제국의 사이즈라고 말하며 웃었다. 거의 오사카성의 문 앞까지 갔지만 다들 굳이 그 제국의 성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내려와 있던 매점 근처의 나무 그늘에 수희쌤의 일인용 돗자리가 펼쳐졌다. 한사람이 다리 쭉 뻗고 앉으면 딱 맞을 듯 한 그 돗자리에 여덟 사람의 엉덩이가 올려졌다. 비둘기들은 이리저리 떼 지어서 날아다니고 나무 밑으로 바람도 살랑하고 불었다. 주위에는 여행객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로 적당히 시끌시끌했고, 저 멀리로는 현장학습을 온 교복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다들 멍하니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으면서 아 좋다. 하고 햇볕아래 고양이처럼 앉아있었다. 이제 일어나자 하고 또 얼마 가지 않아서 오사카성의 성 밖에 둘러진 호수를 보면서 또 한 번 그늘에 돗자리를 펼쳤다. 옆에 있는 벤치에서는 할아버지들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고, 벤치 뒤에 있는 잔디에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봄날 사생대회 나온 아이들처럼 풀밭에 앉아서 이젤위에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물감이며 연필을 꺼내놓고 정말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돗자리 위에 눕기도 하고 펼쳐진 돗자리 위에 앉기도 하고, 돗자리도 없이 그냥 바닥에 발을 붙이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도 하고, 벤치에 벌렁 누워있기도 하면서 각자의 흥얼거림을 가지고 호수를 보면서 쉬고 있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시간이었던 거 같다.

  텐노지에서 마츠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소를 물색했다. 어디선가 계속 소리가 들려오지만 어딘지 알 수 없는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다들 어 하나봐 어딜까 하는 마음으로 신나서 걸어 다녔지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여기저기 물색하느라 걸어 다녀서인지 그날따라 더운데 길에는 그늘 할 만한 커다란 나무도 별로 없어서인지 다들 지침과 짜증이 얼굴에 서려있었다. 길 끝에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며 몰려있었다. 그 곳에는 조그마한 가마 같은 것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화려하지만 전혀 비싸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 꽃이 꽂혀있는 가마였다. 이상하게도 그 이상한 가마를 둘러싸고 있던 많은 할아버지들은 DSLR 사진기를 들고 접사를 찍었다가 원경을 찍었다가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말도 안 되게 진지했다. 나는 왜 그걸 그렇게까지 좋은 사진기로 구도를 잡아가며 찍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가진 상기감이 그 거리에서 계속 느껴졌다. 할아버지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는 그 바로 앞에 한 여자는 버스 정류장에서 눈앞의 사람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앉아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딘가 자기 몸속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것만 같았다. 화난 듯이 닫혀있는 무표정을 한 여자는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거리에서 혼자만 흑백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시끄럽고 상기된 공간 안에서 나는 오히려 그 여자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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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점이 모여 선이 되기까지

 

 

차가영

 

 

(5년간 등하굣길에 새긴 발자국)

 

 

 

1. 이미 펜을 들고

   나는 매일 똑같은 길을 걷고 그 길에 발자국을 쉴 새 없이 찍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 발자국들이 합쳐져 선이 될 때까지 그 길을 매일 걷고 또 걷는다. 하지만, 선이 된 그 길은 점점 익숙함이라는 것에 가려 지겨워진다. 그럴 때면 일상이라는 익숙함에서 뚝하고 떨어져 새로운 곳에 점을 찍어볼 수 있는 여행을 간다. 하지만(‘하지만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삶은 얼마나 지겹고, 겁쟁이 같은지!) 매일 걷는 길 위에 놓여 발목을 잡는 들은 여행조차 쉽게 떠날 수 없게 한다.

 

 

 

 

2. 점을 하나씩

   319, 카페 아르케. 아프꼼 동인들과 가진 편집 회의 자리에서 처음으로 일본 워크숍 이야기가 나온 날이다. 참가 인원, 대략적인 날짜를 정하며 워크숍을 위한 첫 점을 찍었다.

   56,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편집회의 때는 참석이 힘들었지만, 함께 가기로 한 동인까지 모인 날이었다. 대략적인 일정 나눔과 정보 공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워크숍 기간 동안의 기록을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건의가 나왔다. 이번 워크숍은 소설가, 뮤지션, 활동가, 연구자가 함께 참가하는 만큼 각자의 관심사를 반영하여 기록을 남기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525, 카페 오월열한시. 아프꼼 팀원 여섯 명 모두와 함께 가는 동인 세 명이 모두 만났다. 이미 조사를 완료한 정보를 공유하였다. 이제 인원도 확정이 되었기에 출발 날짜도 정하고, 일본에 가서 방문할 장소들에 대해서도 확정을 내리는 날이었다. 그리고 가기 전 마지막 만남으로 다함께 완월동 답사를 가는 것에 대한 일정을 정한 날이다.

   622, 완월동 답사. 부산시 서구 충무동에 있는 유곽지역 완월동에서도 점을 찍었다. 완월동은 현재 지도상에는 하나의 점으로서도, 지명으로서도 존재하지 않는 홍등가이다. 완월동처럼 지도에서 지워진 일본의 토비타신치(飛田新地)라는 유곽지역에 가기 전, 부산의 유곽지역은 어떠한 지를 보게 된 날이었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내가 그어온 익숙한 선에 놓여있지 않아 내 삶에서도 하나의 점으로 찍히지 못한 곳이었다.

   627, 김해공항과 인천공항. 준비과정은 늘 빠르게 지나간다. 일과 준비과정을 바삐 하다보면 마음의 준비를 할 정신도 없이 떠나야 하는 날이 된다. 29일에 출발하는 후발대 다섯 명(마틴, 김비, 변정희, 정선욱, 장옥진)을 제외한 선발대 네 명(권명아, 장수희, 신현아, 차가영)은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그렇게 일본으로 떠났다…….

 

 

(워크숍 준비를 위한 3개월의 만남)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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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소설가, 음유시인, 점쟁이의 여행

 

마녀 신현아

 

 

 

 

 

 

 

 

 

  안녕하세요. 밤의 이야기꾼 래인커머입니다.

 

  이번에는 금성이 점지한 가장 빛나는 시간 중 하나였던 2014년의 627일부터 78일까지, 1112일 간 일본 큐슈, 오사카, 니가타의 곳곳을 누볐던 이야기를 할까해요. 신밧드의 이야기보다도 알록달록한 세상을 들어보세요. 기차에서 비행기로, 발로, 손으로, 웃음으로 걸어나간 이 대장정(!)에는, 어느 마녀들, 어느 소설가, 어느 음유시인, 어느 점쟁이들이 함께 했답니다. 지금은 신밧드가 살지 않는 시대에 어찌보면 흔하디 흔한 이 장소들 속에서 우리는 잊혀진 어둠을 발견했답니다.

  명명백백한 빛의 세계에서 우리는 너무나 규정되었으므로, 어둠이 우리 몸의 외곽선을 무너뜨려 흐물흐물하게 되는 곳을 찾아서, 우리는 빛의 사각지대를 발견해내었지요. , 물론 일본에서 만난 또 다른 마녀와 연구자와 활동가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이야기만으로 만들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마녀는 마녀의 언어로, 음유시인은 음유시인의 언어로, 그렇게 각자의 언어로, 눈을 돌릴 때마다 그림이 변하는 만화경처럼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지요. 소설가 김비의 소설, 음유시인 마틴의 노래, 점쟁이 변정희의 에세이, 그리고 마녀들의 에세이. 여기에 각자가 조각보처럼 숨결을 덧대어 만든 소설까지. 우리는 이야기해야만 만날 수 있으므로, 그 이야기는 천 개하고도 하나의 색을 가지고 우리를 또 다른 긴 긴 밤으로 이행시켜줄 것입니다.

 

 

  마녀들과 소설가와 음유시인과 점쟁이의 여행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짜

장소

내용

627~29

벳부

리츠메이칸 국제대학

동서대학교 일본연구소주최 <한일차세대학술포럼>에 네 마녀들(권명아, 장수희, 신현아, 차가영)이 각자 지도교수, 발표자, 토론자로 참가하여 마구 질문을 던지고 말을 걸고 이야기를 꺼내다.

629

오사카

네 마녀와 소설가, 음유시인, 점쟁이, 꼬마마녀들(장옥진, 정선욱)이 오사카에서 상봉하다.

630

오사카

가마가사키

코코룸

9인의 아프꼼들은 가마가사키와 토비타 신치를 걷고, 코코룸에서 밥을 먹고 성노동활동가인 다나카 과장을 만나다. 그리고 코도모센터의 오토나센터의 마마상인 마에시마 아사미씨를 만나다. 극채색과 회색의 만화경을 헤치고, 생존과 삶을 지켜나가고 있는 용감한 사람들에게서 용기를 얻어가다.

71

교토,

동지사대학

교토의 동지사대학으로 가서 정유진 선생님을 만나 두레방, ㅇㅇㅇ의 무쌍난무한 활동의 이야기를 듣다. 그리고 위민즈 액션 네트워크의 무타 선생님, 오카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여성-활동가의 위치에 대해 생각하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프꼼의 친구 카츠무라 마코토 선생님과 배영미 선생님을 만나서 발푸르기스의 밤에 맞먹는 잔치를 열다.

72

오사카

나카자키초

까페 얼쓰

몸의 움직임으로 세계를 깨우는 자인 아만토 준이 살고 있는 나카자키초에 찾아가다. 정작 아만토 준은 부산으로 떠났지만 우리는 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마녀들의 표시를 찾고 즐거워하며 天劇: 아만토 극장에서 알쏭달쏭한 카레를 먹다. 그리고 가마가사키의 까페 얼쓰에서 무츠 사토시상을 만나다. ‘관광가이자 활동가이자 훌륭한 이야기꾼인 무츠 사토시상에게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비법인 마와시요미 신문을 얻다. 함께 마와시요미 신문을 만들다.

73

오사카

소설가, 음유시인, 점쟁이, 꼬마마녀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다. 남은 네 마녀, <20세기 소년>에 나오는 부활의 장소인 오사카만박에 가서 알 수 없는 부활의식을 치루다.

74~8

니가타현립대학

훌륭한 학회에 참석하다. 이중언어에 대한 지식을 쌓다. 니가타에서 가장 맛있는 청주를 마시다.

 

 

이제부터, 우리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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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각지대  (0) 2014.07.18

빛의 사각지대

 

 

 

 

 

 

  히로시는 구시카츠와 캔맥주를 사고, 영환과 함께 코코룸으로 갔다. 코코룸의 카나요상이 반겨준다. 카나요상은 이 말 많은 동네에서 십 년째 까페를 열고 있는 사람이다. 어떤 시끄러운 아저씨라도 산뜻한 기모노를 입고 가마가사키 상점가를 휘젓고 가는 카나요상을 당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소란을 피우다가 야단을 맞고 가는 아저씨들은 역시 여자는 안에 오니(귀신)’가 들었다고 툴툴거렸지만, 그건 카나요상에게 그만큼 강단이 있다는 말로 들렸다. 히로시도 어렸을 때에는 학교가 끝나고 텅 빈 집으로 가기보다도, 엄마가 준 돈으로 코코룸에서 저녁을 사먹곤 했었다. 히로시는 영환 몫의 저녁을 시키고 구시카츠와 캔맥주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히로시, 이사가고 나서, 오랜만이네?

  네, 일이 바쁘다보니.

  그래도 종종 놀러와.

 

  오랜만에 오기는 했지만 역시나 멋쩍다. 히로시 역시도 가마가사키의 시장골목을 누비며 자랐지만, 그것이 언제부턴가 다른 아이들의 눈총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환도 사카이시로 전학을 가게 되면, 뭔가 공기가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어버리는 걸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도 이미 몸이 기억하고 있는 공기이다. “너 어디서 이사 왔어?” 영환은 앞으로 이 질문을 얼마나 수도 없이 받아야 할까. 하지만 아직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히로시는 접시에 코를 박고 밥을 먹는 영환을 괜히 쥐어박았다.

 

  천천히 먹어야지!

  네에.

 

  친구놈은 잠시 기다리면 된다더니, 올 생각을 않는다. 하릴없이 기다리는 동안에는 자꾸 이 동네에서 살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히로시는 그래서 여기서 약속 잡기 싫었던 건데.’ 라며 속으로 말을 되씹는다. 온 상점가가 내 것인양 뛰어다니던 기억, ‘저희 집은 가마가사키에 있습니다!’ 라고 자기소개를 한 후 밥을 혼자 먹게 되었던 기억, 동네 주정뱅이들과 멱살을 잡고 싸웠던 기억……. 한 가지 기분으로 말할 수 없는 기억들이 속에서 올라와 목이 메인다.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올라오지는 않게, 묻고 묻어두고 싶어서 히로시는 스무살이 되자마자 가마가사키 바깥으로 떠났다. 어차피 고만고만한 동네에 살지만, 다른 곳으로 떠나면 언젠가 그 기억이 잊혀질 것 같았다. 결국 캔맥주를 다 마시는 동안 친구놈은 오지 않았다. 하여간 망할 녀석, 개새끼. 모처럼의 휴일이었는데. 히로시는 속으로 욕을 삼키면서 코코룸을 떠났다.

 

 

*

 

 

  히로시는 이 기분을 어떻게 풀지 생각하며 되는대로 움직이다 보니, 도톤보리까지 왔다. 어두침침하면서도 알록달록한 가마가사키와 다르게, 도톤보리는 시종일관 따뜻한 빛으로 밝다. 도톤보리 강가로 끝없이 늘어선 노란 빛의 등을 보며 히로시는 안심했다. 난 이제 그런 동네에 안살아. 라고 히로시는 입밖으로 말을 뱉는다. 주문을 외듯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여기는 누구나 흥겹고 빛이 반짝였으며 관광객들은 때깔이 좋았다. 히로시는 그 점이 마음에 들어 종종 하릴없이 도톤보리 강가를 서성였다. 그리고 계단에 앉아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하였다. 오늘도 그렇게 금붕어처럼 이리저리 강 속을 움직이는 빛과 사람의 무리를 보고 있는데, 한 무리가 유독 히로시의 눈에 띄었다. 외국어로 떠들어대는 걸 보니 관광객인 듯한데, 그 무리는 자꾸 어두운 골목을 기웃거려서였다. 보통 관광객이라는 것들은 밝은 곳만 골라 찾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마가사키가 아닌 이 도톤보리에 오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자꾸 왜 어두운 골목을 기웃거리나,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그들은 히로시가 멀찍이서 주시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침침한 곳을 기웃거리더니 한 곳에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순서대로 나직하게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리며 한 명씩 어느 건물의 검은 입구로 스며들듯 들어간다. 스며들듯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다시 하나씩 나온다. 나온 후에는 다시 재잘거리며 여느 관광객들처럼 빛의 무리로 사라져버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을 지켜보던 히로시는 머리가 아파온다. 꿈속에서 만난 여자를 실제로 보질 않나, 싫다, 싫다 했던 가마가사키에 다녀왔더니, 괴상한 관광객들을 목격하질 않나, 이상한 일 투성이다. 히로시는 순간 몸에 닭살이 올라온 것을 느꼈다. 아니, 닭살이 아니라 두드러기이다. 불긋불긋한 것이 몸에 오돌도돌 올라와 있는 것이 기분이 나빠서 계속하여 피부를 긁어대었다.

 

히로시는 코코룸에 모자를 두고 온 사실이 떠올랐다. 산 지 얼마 안 된 모자였다. 히로시는 다시 가마가사키로 발을 돌리며 이 모든 것이 친구놈 때문이라는 생각을 곱씹고 곱씹었다. 도톤보리 리버크루즈 티켓오피스를 지나는데 마침 리버크루즈 한 대가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지나간다. 웃으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니 묘한 활기가 느껴진다. 얼굴도 나이도 심지어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를 사람들이 한 데 섞여 있고, 그런 사람들이 한 배를 타고 손을 흔드는 광경은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다. 그들의 안녕에 나도 손을 흔들어 볼까, 싶었지만 손에 올라온 두드러기 자국이 눈에 보여 그만 두었다. 연고! 연고를 사야 했다.

별의 별 게 다 있는 대형할인마트격인 돈키호테라는 상점에 갔다. 상업의 신 에비스와 펭귄 캐릭터가 눈에 띈다. 어딘지 모르게 익살스럽다. 노란색 관람차 모형의 건물로 들어서자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긴 줄에 눈살부터 찌푸려지지만 저마다의 필요에 의해 집은 물건들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꽤나 진지했다. 밤이라 그런지 맥주캔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 틈에서 연고 하나 사려고 줄을 서 있는 내 모습이 불현듯 비춰졌고 끔찍하다는 생각에 파란색 에비수도 같이 사리라 마음먹었다.

연고를 찾아 들어가는 길에 어딘지 낯이 익은 무리를 보았다. 아니, 각자의 물건을 고르고 있는 사람 여럿을 보았는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들은 한 무리인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그들을 다시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 어디서 봤더라.’

살 것도 아니면서 아쉬운 듯 인형을 쳐다보고 있는 단발머리 학생이 보였다. 이 인형 저 인형 만지작거리는 단발머리의 손으로 자연스레 내 시선이 옮겨졌고 그 손이 참 낯이 익었다. 그러자 서서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혼마니 오오끼니!’를 단체로 외치던 그 관광객들이었다. 단발머리는 유달리 밝게 혼마니 오오끼니!’를 외치던 학생이었고, 불긋불긋한 손에 물티슈를 가만히 얹었다가 닦아내었다가 했었다. 문득 단발머리에게도 괴상한 일들이 일어나 그것의 버짐이 피부 표면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여학생을 보고 있으니까 손이 더 간지러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 괴상한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 하고 생각하며 여학생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학생은 남자용 유카타 두 개를 들고 둘 중에 하나를 고르기 위해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보기에는 둘이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였는데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저번의 명랑한 인사가 생각나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피식거리면서 웃으면서도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황급히 입꼬리를 내리고 한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순간 언뜻 여학생과 눈이 마주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엇갈렸다.

연고, , 음료수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손목에 끼고 도톤보리 강가에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연고 바르기 전에 담배 한번만 펴야지.”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대쪽 강가에 여학생과 그 일행들이 도토리처럼 쭈루룩 앉아서 캔맥주 같은 것들을 손에 하나씩 들고 서로 이야기 하고 웃으면서 홀짝이고 있었다. 그 여학생 역시 나처럼 손목에 뭔가 잔뜩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걸고 난간에 몸을 기댔다. 저 봉지 안에는 어떤 유카타가 들어있을까 생각하니 또 피식 바람 새는 웃음이 나왔다. 그 애를 유심히 보고 있었던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애가 하는 대로 따라했다. 왼손에 담배를 잡고 오른 손으로 불을 붙였다. 최대한 손가락이 담배에 안 닿게 하는듯한 손동작으로 담배를 잡고 천천히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 그 애는 옆에 서있는 일행과 무언가 끊임없이 이야기 했다. 살짝 높은 톤의 목소리가 강을 넘어서 계속 흘러왔다. 말이 잘 들리지도 않고,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는 말이었지만 나는 계속 그 조금 신난 듯한 목소리와 이야기 했다.

혼마? 혼마니? 혼마야! -정말? 진짜야? 진짜네!”

오마에 양께-재미있네.”

나 혼자 반대쪽에서 건너오는 목소리에 열심히 리액션 해 주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너무 멀어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이렇게 대꾸하고 있으니까 실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것만 같았고, 나는 웃긴 할아버지가 된 것 같아서 우스워졌다. 혼자서 킬킬거리면서 반대쪽을 쳐다봤다. 그 순간 또 다시 한번 눈이 마주친 것만 같았다.

혼마니 오오키니

갑자기 반대쪽에 서 있던 여자가 불쑥 오사카 말을 했다. 큰소리도 아니었고, 나한테 한 말도 아니었겠지만 정말 선명하고 깨끗하게 들려왔다. 뭔가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내 쪽으로 살랑 불어왔고, 나는 따뜻하게 그쪽을 바라봤다.

                    

 

*

 

 

아주 잠시 사이였다. 그녀들, 그 일행들이 보이질 않았다. 불과 몇 초 전만 해도, 그 소리를 듣고, 육안으로 그들을 볼 수 있었다가, 이렇게 갑자기 안보이다니 기이했다. 히로시는 짧은 다리를 건너, 강 건너 그녀들이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히로시는 건물과 건물 사이, 그녀들이 나왔던 어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골목 끝에 벽에는 구멍이 하나 있었고, 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슬을 넣으세요.’ 히로시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몰랐는데, 갑자기 그의 식도를 역류하며 구슬하나가 토해져 나와 입에 걸렸다. 그는 그 구슬을 꺼내어 구멍으로 넣었다. Vent가 항문처럼 열리면서 그를 안쪽으로 빨아들였는데, 그는 그 관을 통과하면서 무수한 구슬을 계속 토해내어야 했다. 구토가 멈추고, 마침내 그의 몸은 물과 같은 매질을 유영하기 시작했고, 그는 그 평온한 느낌 속에서 눈을 떴다. 거기엔 그녀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가 있었고, 인간만이 아니라, 지금의 생물이 아닌, 고생대의 생물로 보이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햇빛이 안 들어온다고 해서 빛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어둡지만, 그래서 모든 생명체들은 각자의 색깔을 은은하게 띄고 있었다. 모두의 피부에 두드러기처럼 반점이 드럼머신처럼 점멸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들의 의사소통수단이었다. 마침내 그에게도 메시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예전에 우린 하나였어. 아직 대륙이 쪼개어지기 전이었지. 퇴적층이 지질학의 역사를 이루듯, 우리들의 이야기가 쌓여서 지구의 역사를 이루어왔어. 사실 우리들은 지구가 쓰는 자서전의 일부야. 지구는 유기체로서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또한 변화해갈거야. 미래의 지구는 전혀 다른 행성일거야. 네가 스쳐지나간 모든 길에는 굉장한 일들이 일어났었어. 이야기들이 쌓여있어. 나는 여기에 너는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힘들-혜성과 운석, 지구의 자기장,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축, 해수의 바뀜, 가라앉기도 하고 솟아오르기도 하는 땅과 갈라지는 멘틀, 산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산이 되는 동안 흩어졌다가 하나로 모이는 대륙, 온도의 변화와 바람의 방향들, 빙하를 건너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마다 새로이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어. 그동안 수많은 강을 건너야 했어. 포식자, 굶주림, 질병, 판단착오, 긴 겨울, 가뭄, 홍수, 태풍내부에서 일어나는 격변, 외부에서 날아온 재앙. 우리는 생존자의 후손이며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야. 폭력에 반대하며 위기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너의 손위로 나의 손을 포개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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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각지대

 

 

 

  혼마니 오오끼니!

 

애들 좀 귀엽네.’

주문한 생맥주를 따르며 히로시는 속으로 웃었다. 오늘도 밤 장사는 한 테이블로 끝나나 싶던 차에 단체 관광객이 들어왔다.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떠드는 손님들이 그닥 귀찮지 않은 건 그래도 덕분에 오늘 매상은 바닥은 면했기 때문이다. 텐진바시스지 상가도 유사 이래 최대 불황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많이 나은 편이라지만, 스시야들은 모두 울상이다.

 

혼마니 오오끼니!

, 주문하고 인사하려고 연습하나보다, “하이!”

히로시는 테이블을 치우던 물수건을 내려놓고 관광객 테이블로 냉큼 뛰어간다.

 

혼마니 오오끼니!

오랜만에 젊은 애들이 말을 걸어온다. 전철역이 어디냐고 영어가 섞인 말로 물어온다. 교포인가? 가능한 잘 알아듣게 손짓을 섞어 말을 해준다. 친구 녀석이 잘못 가르쳐주는 거 아니냐며 농을 던진다. 매일 오사카 성 앞에서 만나 시간을 보내는 이 녀석들과는 벌써 십 년째이다. 옆 벤치 녀석은 날마다 옛날 고리적 노래를 틀어댄다. 관광객들 보기 창피하다.

혼마니 오오끼니?

어라, 오사카 말도 할 줄 아네?

영감이 다시 돌아보니 아이들은 웃으며 자기가 알려준 방향으로 쪼르르 몰려가고 있다. 오랜만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나온다.

 

*

 

오히이요상!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아니다. 지금쯤 나타날 법도 한데……. 영감이 지하철 역 입구에서 친구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텐노지역으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영감도 따라 나오게 된 것이다. 마쯔리가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벌써부터 카메라를 든 다른 영감들이 몰려 있다. 벌써부터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관광객들은 꽃가마를 향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댔고, 카메라맨들은 마쯔리를 보러 몰린 관광객들을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쟁 쟁 쿵따라 쿵 쿵

그때 악기소리가 요란하게 시가지를 향해 울려 퍼졌다. 신나는 마쯔리가 곧 시작될 모양이었다.

 

 

 

왜 하필 가마가사키에서 만나자고 하는 거야

텐노지역에서 신이마미야(동물원)역까지 걸어가면서 히로시는 속으로 생각했다. 구름이 끼어 날씨가 그다지 덥지는 않았지만 약속장소를 떠올리니 불쾌감이 더 몰려온다. 모처럼의 휴일인데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 녀석은 카마가사키 근처에 볼 일이 있다며 그곳으로 히로시를 불러냈다.

 

히로시는 텐노지역 입구 근처 버스 정류장에 잠깐 멈춰 서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히로시 옆에 한 뚱뚱한 여자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한 손에 담뱃갑과 라이터를 들고, 한 속으로는 담배를 쉴 새 없이 피워댔다. 히로시는 흠칫 놀랐다. 그러께 텐진바시스지 상가 빠찡꼬 가게에서 본 적이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보니 아니다. 여자의 발밑에는 이미 같은 모양의 담배꽁초가 여러 개 떨어져 있었다. 한 번에 한 갑을 다 피워버릴 기세군.

 

히로시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랐던 것은 그저께 꾼 꿈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여자는 히로시 바로 옆에서 빠찡꼬를 하였고, 쉴 새 없이 잭팟을 터트렸다. 구슬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꿈속에서 빠찡꼬의 구슬은 쉴 새 없이 여자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기가 차군, 구슬을 다 먹어버리다니. 그러면서 히로시가 자신의 빠찡꼬를 보는 순간, 빠찡꼬 기계는 그 뚱뚱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여자의 입에서 구슬이 쏟아져나왔다. 잭팟이다.

 

입에서 떨어지는 구슬을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끊임없이 구슬이 나오고 있지만 내 손에 들어오는 구슬은 단 하나도 없다. 구슬이 넘쳐 떨어졌다. 자신의 주변에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구슬을 집으려 달려든다.

끼이이익. 귀를 찢을 것 같은 자전거 급정거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가마가사키 거리에는 머리카락이 새하얀 노인들이 지나가는 자신을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한낮의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진 곳에는 아침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나이 든 일용직 노동자들이 가득 있었다. 그들은 흐리멍텅한 눈으로 지나가는 젊을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도시락을 먹고, 잠을 잤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앞으로만 걸어갔다. 구슬을 향해 달려들던 꿈속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구슬은 그들의 손에 닿으면 여자의 얼굴로 변해버렸다.

가마가사키 상점가는 조용했다. 저번에 왔을 때에 비해 상점이 늘기는 했지만 대부분 술집이었다. 사람들이 자전거의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나를 지나쳤다. 그때 한 아이가 저 멀리로 뛰어갔다가 다시 뛰어오더니 내 앞에 섰다. 남색 반바지에 흰 스타킹을 신고, 노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등에는 자신의 몸통보다 큰 까만 가방을 매고 있었다.

 

영환이다. 가마가사키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녀석은, 가마가사키에 있는 시영진료소의 의사 다나카 선생의 아들이다. 다나카 선생은 재일 3세로, 일본인과 결혼했지만 아들의 이름을 결혼 전 자신의 성과 함께 한국식 이름으로 붙여주었다. 그래서 녀석의 풀네임은 다나카 김 영환이 되었다.

 

오지짱~ 오히사시부리데스!!!

 

영환이 뛰어와 반긴다. 녀석의 이런 살가운 성격은 가마가사키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에게도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요세바(인력시장)의 시영아파트에 사는 영환은 동네 곳곳이 놀이터이고, 동네 아저씨들이 친구이다. 하루종일 가마가사키 지역의 노동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다나카 선생은 영환을 이 동네 주민들에게 키우도록 한 셈이다. 놀아줄 시간도, 생활의 여러 가지 사소한 방법들도 다나카 선생이 영환에게 가르치기에는 시간이 없다. 몇 십년 동안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노동자들이 고령화되면서 자연적으로 아픈 곳이 생기게 되거나, 고령에도 불구하고 험한 노동을 하다가 다쳐서 시영진료소로 오는 것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영환의 손을 잡고 걷는다. 우연히 만난 영환이와 친구와 같이 만나도 좋겠다 싶어 코코룸으로 향한다. 이 동네는 구시카츠가 유명하다. 튀김 꼬지를 간장에 딱 1번만 찍어먹을 수 있는 것이 오사카의 룰! 간장이 더 필요하면, 튀김을 간장에 집어넣는 방법이 아니라, 간장을 양배추로 떠서 튀김에 얹어야 한다. 나니와 로크로 함께 마시면 정말 맛있다.

 

영환, 각코우와 도우? (영환아 학교는 어때?)

이이요~. 데모 라이넹까라 사카이시노 각코우에 이쿠요우니 낫따네~ (좋아, 그렇지만 내년부터는 사카이시에 있는 학교로 가게 됐어)

나제 소우다노?(왜 그래?)

각코우가 라이넹까라 하이코우데스카라, 오카아상가 히코시스루소우.(학교가 내년부터 폐교라서, 엄마가 이사한대)

 

버블경제 시대에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고령 독신자들이 많은 카마가사키에는 학교에 다닐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영환의 말이 맞다면, 내년부터 폐교. 다나카 선생이 오사카시와 가까운 사카이시로 이사를 가기로 했나보다. 아저씨, 할아버지 친구들 투성이였던 영환도 이제 새로운 동네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화 끝-

 

 

 

<2화>는 7월 25일 (금)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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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사각지대

 

Intro.

 

  아프꼼 '2014 한일워크숍의 기록' 그 첫 번째, 이어짐의 기록들.

 

  아프꼼은 6월 27일~7월 8일 학술대회 일정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 공간들, 거리와의 만남을 가지기 위해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그 중 6월 29일~7월 3일은 아프꼼 동인인 살림의 변정희씨, 소설가 김비씨, 뮤지션 마틴도 함께 했는데요. 주로 오사카에 머물면서 다양한 만남들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만남들이 조금 더 큰 의미를 가지기 위해 어떤 기록을 하는 것이 좋을까, 개인적인 기록도 의미가 있지만 함께 한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공동의 결과물을 만든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 이런저런 것에 대해 고민을 하다 '릴레이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한 공책에 점점 산으로 가는 이야기를 써내며 웃고 떠들었던 기억들이 다시금 떠오르면서, 릴레이 소설은 오사카 일정에 묘한 활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저희 나름대로의 규칙들, 기준들을 정하였고 마침내 그 이어짐의 기록들을 완성하였습니다.

 

  쓰는 순서는 '제비 뽑기'를 통해 운명적으로 결정하였고, 소설가인 김비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글쓰기를 함께 하였습니다. (김비씨는 따로 소설을 쓰기로 하였으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제목: 빛의 사각지대

글쓴이: 권명아, 장수희, 신현아, 차가영, 장옥진, 정선욱, 변정희, 마틴

업로드 일정: <1화> 7월 22일 (화) / <2화> 7월 25일 (금) 

 

총 두 번에 걸쳐 완성된 소설을 올릴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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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발표

 

 

수희

 

 

 

 

 

 일상적으로 <나>가 주위의 일본인과 다르다는 것을 완전히 드러내도록 내몰리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일본의 매스컴에서 떠드는 대로, <일본인은 한국드라마도 좋아하고, 한류의 인기도 굉장한데, 한국은 왜 반일이야?>라는 가벼운 듯한 질문에, <재일코리안>이기 때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할 것처럼 물어온다면. 역시 나는 잘 감각할 수 없다.

 얼마 전, 내가 6개월간 일본어 연수받는 코스의 마무리로, 연수생들의 연구 결과 발표회가 있었다. 일본어로 발표를 하거나, 자기가 쓴 논문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발표회 자리였다. 모두 제각각의 주제를 갖고 발표하는데, 발표의 청중은 연수생들이거나, 이 동네 주민이었다.
내 주제는 <전쟁이 겹쳐진 몸-1991년 이전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르포를 중심으로>였다. 일본군위안부에 관련된 주제로 일본의 학교나 학회가 아닌 곳에서 발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조금 긴장되었다. 발표는 모두 긴장되는 거니까.
 나는 발표의 내용 구성을 논문과는 조금 다르게 했다. <1. 일본에 와서 연구기간에 갔었던 오키나와와 도쿄> <2. 오키나와 평화자료관의 일본군 위안소 전시> <3. 고 배봉기 씨와 고 김학순 씨의 일본군위안부 증언> <4. 관전사(貫戰史)라는 방법 : 태평양 전쟁과 냉전> <5. 2개의 일본군위안부 관련 르포 : <종군위안부>와 <빨간 기와집>>의 순서로 논문 내용을 소개하기로 했다. 발표방법은 지정된 부스에 발표의 대략의 내용을 프린트 해 붙이고 내 부스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방식.
 발표 시간이 되자 몇몇 사람들이 모였고 나는 발표를 시작했다. 발표가 끝난 후, 동네 주민인듯한 할아버지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왜 위안부 전부가 강제동원 됐다고 하느냐?><미국에서 일본군위안부는 강제동원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신문에 실렸다더라(미국 일간지에 일본의 의원들이 실었던 광고)>와 같은 질문이었다. 나는 처음에 설명을 해보려고 했으나, 마음은 급하고 일본어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대답한 짧은 일본어 대답에, 유창한 일본어로 길게, <그래도, 강제동원이 아닌 것이 아니냐>라는 할아버지의 집요한 질문이 몇 번이고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해주길 바랐을까. 나는 일단 역사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 보다는(일본어가 모자람 ㅠㅠ), 내 논문은 일본에서 먼저 간행된 이 르포에 관련된 것이니까, 르포에 한정된 내용만 설명하고 더 상세히 알고 싶으면 내 논문을 읽으라고, 프린트된 논문을 건네주었다.

 발표가 끝난 후, 이유 없이 눈물이 줄줄 났다. 잘 멈춰지지 않아서 당황했다. 마음이 복잡하고, 뭐라 표현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운동을 하는 것, 일본에서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몸을 재게 움직이고, 연약하게 보이지만 강하게 사회운동을 하는 선생님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선배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젊은 재일코리안 청년 단체인 KEY의 사람들도.
 그 일이 있고 난 후, 페이스북으로 재일코리안 선생님들께 <선생님,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는데, 눈물이 계속 났어요. 선생님들이 일본에서 운동하고, 연구하는 게 어떤 것인가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뭔가 내 편인듯한 사람들에게 그 할아버지의 일을 일러바치고 싶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막 같이 화내고 같이 욕하고 그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답장은 <가슴이 아프다>였다. 나는 또 당황했다. 선생님들을 가슴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프게 해 버렸던 것이다. 또 눈물이 막 났다. 뭔가 안심해서인 듯도 하고, <선생님들은 이런 일들이 많았던 거구나>라고 생각해 버려서인 것 같기도 했다. 뭔가 죄송했다.
 발표 이후, 그 할아버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연구 발표에서 그런 질문에는 이렇게 대처해야지 하는 공부가 되었다.(그렇지만 사실, 또 만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한국에서 한국인인 것, 한국에서 한국어가 유창하다는 것이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것일까도 생각하게 되었다. 확실히, 말은 권력을 갖고 있다.

 20대 일본인 일본어 교사에게 재일코리안에 대해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재일코리안은 어떤 이 미지인가요?>라는 질문에,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겡키元気”하다>라고 대답했었다. 그때, 저 “겡키”가 <건강>으로밖에 해석이 안 돼서, <재일코리안은 건강해? 이게 무슨 말이지?>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힘차다>라는 의미인 것 같다. 이 이미지, 왠지 조금 알 것 같지만, 좋은 것인지, 힘든 것인지, 여전히 확신은 할 수 없다.

 

 

 

 

*수희 : 오사카에 잠시 머물고 있는 바람의 연구자.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가 재현되어 있는 르포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음. 아자아자!

 

 

 

 

 


 

신문 재개발, “마와시요미 신문

 

 

 

수희

 

 

신문과 방송 매체에 대한 불신과 비판이 높다.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런 것 같다. “이런 사실은 언론매체에 나오지 않고 있어요라는 말은, 한국에서도 들은 적 있고, 일본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일반 시민에게 중요한 사실은 언론과 권력에 의해 편집되어 작은 지면을 차지하고, 소문과 스캔들이 커다란 지면을 차지하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매체에 대한 요구와 구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새로운 매체가 만들어져 유통되기까지는 긴 논의의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럼, 새로운 매체가 만들어지기까지 우리는 어떻게 작은 지면의 중요한 사실과 커다란 지면의 소문과 스캔들을 조정해가며 읽어야 하는 것일까.

마와시요미 신문(まわしよみ新聞)이라는 신문이 있다. 일본어 사전에 찾아보면, 마와시노무(まわしのみ)는 차례로 돌리다라는 마와스(まわす)와 마시다라는 노무(のむ)의 합성어로 하나의 그릇에 든 음료를 돌려 마시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마와시요미(まわしよみ)는 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돌려 읽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 마와시요미 신문이라면, 신문을 돌려 읽는다는 의미. 우리말로 번역하면 돌려읽기 신문정도 될 것 같은데, 신문활용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한국이니까,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재미있는 제목으로 번역해주고 싶은데,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지난주 수요일 오사카(大阪) 카마가사키()의 카페 얼쓰earth에서 개최된 마와시요미 신문 편집장 양성 강좌에 참가했다. 강사는 마와시요미 신문의 오너이신 무츠사토시씨. 이 강좌의 특징은 마와시요미 신문에 대해서 설명 한 뒤 마와시요미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만들어 보고 마와시요미 신문에 대해서 대충(?) 설명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먼저 마와시요미 신문을 만들어 봤기 때문에, 무츠사토시 씨가 대충 설명해도 다 알아듣는 분위기다. 무츠사토시 씨가 심하게 빠르게 설명했지만, 외국인인 나도 대충 의미를 알아들을 정도.

마와시요미 신문 만들기 과정을 잠깐 설명하자면, 34명 정도가 각자 돌려 읽고 싶은 신문을 들고 와서 20분 동안 신문에서 희한한 기사, 재미있는 기사, 관심이 가는 기사, 욕하고 싶은 기사, 의문이 가는 기사 등 한 명이 3개의 기사/그림/광고(신문에 있는 것 다 됨)를 고른다.(시간 엄수!) 그리고 돌아가면서 한 장씩 기사를 내놓으면서 왜 이 기사를 골랐는지 설명하고 의견을 공유한다. 다음에는 큰 종이 앞면에 1면 기사로 할 기사들 3개를 정하고 붙이고 의견이나 감상을 적는 편집회의 시간. 뒷면도 나머지 기사를 적절히 배치하면 마와시요미 신문 완성!

각자 선택한 기사도 다르고,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내가 속해 있던 그룹은 다들 그날 처음 만났던 사람인데도 희한하게도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무츠사토시 씨에 의하면, 마와시요미 신문을 만들었던 최연소 참가자는 6. 고양이 사진과 기사를 골랐다고 한다.

편집도, 기사가 원래 실려 있던 기존의 신문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정말 작고 짧은 기사가 마와시요미 신문에서는 1면의 제일 중요한 기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기존의 신문에 없는기사도 마와시요미 신문에서는 중요한 기사가 된다. 예를 들면, 내가 속해있던 그룹에서 만든 마와시요미 신문은 일본의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에 관한 기사와 사진을 1면에 실었다. 그러나 이 기사의 포인트는 정말 예쁜 피겨 스케이팅 선수복을 입은 여자 선수들의 사진 옆에, 남자 선수들은 사진 한 장도 실리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 모두들 신문 편집자가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 선수들 사지만 실은 것이라고 한마디씩 했다. 그날, 여러 가지 기사에서 한국과 관련된 놀라운 기사는, 한국에서는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최루탄을 예멘 등 데모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에 팔고 있다는 것.

자본과 권력을 가진 언론사들의 신문 편집이, 나와 시민들이 직접 가위를 들고 자르고 붙이고 하는 사이에, 우리 삶에 필요한 신문으로 다시 태어났다. 없는 기사를 지적하고, 작은 기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미있는 기사를 서로 공유했다. 그래서 마와시요미 신문이라는 다양하고 새로운 매체가 탄생했다. 새로운 매체, 새로운 언론이라고 하면, 언제나 완전히 새로운 맨땅에 헤딩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생각만 해도 힘들고, 위대한 인간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 이미 있는 것들을 전유해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간다면 새로운 언론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가위와 풀 하나씩만 있으면 된다!

무츠사토시 씨는, 강좌를 마치면서 수료증서를 한 장씩 주셨다. 이름은 자기가 알아서 써야 한다. 셀프 수료증이라고나 할까. 수료 증서에는 마와시요미 신문을 만들었던 모두가 이제 마와시요미 신문 편집장이 되어, ‘일본전국 각지에서 마와시요미 신문을 작성하고, 편집장으로서 활약을 기원한다고 되어 있다. , 나는 곧 한국에 돌아가는데, “‘세계 각지로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하고 물어봤더니, 셀프로 세계 각지로 바꾸란다. 전 세계의 신문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과 전 세계의 곳곳에서 <마와시요미 신문>!

 

 

 

(마와시요미 신문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마와시요미 신문 홈페이지 : http://www.mawashiyomishinbun.info/

*카페얼쓰earth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pages/EARTH/411417968913437

 

 

*수희 : 오사카에 잠시 머물고 있는 바람의 연구자.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가 재현되어 있는 르포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음. 아자아자!

 

 

 

 

 

 

 

국제철학콜레주에 대한 다큐인 <철학에의 권리>를 잘 보았습니다. 콜레주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 다큐나 여러 인터뷰 , 책에서도 자주 이야기를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철학에의 권리>는 다큐나 책으로도 나와 있습니다. 그 주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西山雄二、哲学への権利、勁草書房、2011.2)

제도

국제철학콜레주의 정의 이념

철학에의 권리를 위하여

대학

대학의 조건과 무조건

 

인문학의 형과 의의

 

득실

국제철학 콜레주와 경제적 가치관

경제원리와 무상성

 

장소

장소를 묻다

여행하는 현장을 구하여

 

문제와 벽들

 

우애

데리다

 

여행의 길 위에서

 

 

결속

각자의 활동력이

관계자 내부의 결속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외 활동은 많지만, 내부적인 결속이 안된다.

 

따라서, 오늘은 콜레주에 대한 니시야마상의 작업들을 바탕으로 해서, 니시야마 상이 자신의 <거점>인 일본, 대학 등에서 콜레주의 이념과 의미 등을 토대로 어떤 <실험>과 작업을 하고 계신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aff-com 역시 대학교수인 제가 출발점이 되어서, 대학 제도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 다른 방식의 연구와 삶의 관계들을 발명하고, 또 이러한 발명을 통해 대학 제도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이념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니시야마 상도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처럼, 제도 안과 밖의 경계를 오가는 방식은 한계와 의미 모두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도 안에서는 안에서 데로, 또 제도 밖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또 그 나름데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비판받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경우, 혹은 니시야마 상의 실험과 발명 작업의 경우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름: 공론장과 주체

 

아프콤 또한 젊은 연구자들이나 지방의 연구자들, 즉 공론장 속에서 발화의 몫을 갖지 못한 자들이 어떤 사회적 서열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발언하고, 그것을 통하여 그저 한 개인에서 공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을 확인하게 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공론장에 단순히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 자체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과 시도들을 해왔다. 웹 매거진, 영화제, 잡지 발간,

 

한편으로는 이러한 공론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질문. 공론장이라는 것은 그 체계자체가 어떠한 이름을 얻고서 자체적으로 존재가 가능하여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국제철학학교는 데리다라는 이름에서 출발하여, 이것이 후에 국제철학학교라는 공론장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이는 한편으로는 어떠한 대안적인 제도체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팀의 경우에는 권명아라는 이름에서 시작하여, 그 무게를 아프콤이라는 구조나 체계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여러 벽에 부딪혀 왔었다. 그럼에도 그 무게를 팀의 이름으로, 그리고 모두의 이름으로 옮겨오기 위하여, 끊임없이 공론장에 자신을 기입하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국제철학학교>라는 제도는 이러한 무게와 이름을 제도로 얻기까지 어떠한 과정이 있어왔는지?

 

결속: ‘제도공동체의 사이

 

<철학에의 권리>의 한 장면에서는, 국제철학콜레주에서 부족한 부분으로 생각되는 것이 내부적 결속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국제철학학교가 완전히 체계이자 공론장이라는 구조로서 존재하고, 따라서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를 통과할 뿐인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국제철학학교가 누군가의 소유가 아닌 공공성을 갖게 하지만(이러한 점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익명의 장소, 공공의 지평을 연다는 것이라는 인터뷰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동시에 그 내부적인 결속과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게 하기도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아프콤은 어떠한 공론장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그 공론장을 만드는 주체로서도 기능하려 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 노력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장을 어떠한 공론장으로서 만들기 위한 <노동><함께> 행하기 때문에, 일종의 강력한 결속력의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 때의 결속력은 강한 친밀감이나 유대감과는 다른,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동과 같은 충돌을 끊임없이 생산해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외부로 향하는 방향성과, 또 내부적인 인력(引力)의 평형을 잡는 것은 우리에게도 언제나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몸을 바꾸는 것이 대의나 의제, 지향점과 같은 것만으로는 될 수 없고, 결국에는 관계의 충돌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 부대낌을 포기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리고 니시야마 선생님께서 일본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공동체에서는 이러한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는가.

 

 

컨스텔라시옹: a들의 agit, agit들의 association

 

국제철학학교라는 제도이든, 연구모임 아프콤이라는 공동체든 간에, 이것은 어떠한 개인(a)이 모여서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위치지을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보는 것은, 그렇다면 공동체(agit)들 간의 공론장, 더 넓은 어소시에이션 또한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즉 단 하나의 공론장만이 존재할 수 없고, 수많은 다른 성격의 공론장’(또는 아지트, 제도, 공동체, , 집단 등으로 대체해도 좋다.)이 존재할 때, 이들 역시도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갖고, 의미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아프콤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컨스텔라시옹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해왔다. 별이 하나로 빛날 때는 빛나는 점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이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줄로 이어질 때, 별자리로서의 위치와 의미, 그리고 나름의 서사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보다 실제적으로는 지역의 또는 국경 너머의 공동체들 사이를 매개하고, 그 전체적인 지평을 그려보기 위하여 <공동체의 지도를 그리는 것> 등의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것은 국제철학학교나 니시야마 선생님이 일본에서 하시는 작업과도 연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인 듯 하다. 제도와의 비교에서만 성립이 가능한 대안이 아니라, 대안 간의 비교와 관계 속에서도 의미를 갖는 것이 이루어지는지를 묻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터뷰 중에 언급하신 지하대학(비정규대학+세미나), 아즈마 히로키 선생님의 서브컬쳐 활동, 학술연구회 WINC, 그리고 그 외의 교토 자유대학 등과의 비교 속에서 그 위치는 어디인가. 그리고 이들 간의 (또는 꼭 이들이 아니어도 좋다.) 어소시에이션과 같은 것은 이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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