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篇小說

 

길고 느린 날개짓

 

 

 

 

 

 

 

*

2014년 작품

 

 

 

 

 

金 飛

 

 

 

 

 

 

 

 

 

    또 다시, 444.

 

    나는 시간에 갇혔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처럼,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 흘러가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면 시간은 그 때마다 똑같은 세 개의 숫자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네 이놈!'하는 것도 같았고, '어허!'하는 것도 같았다. 사랑이란 '여기'에 있지 않다 말하며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에도 그랬고,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처럼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에도 그랬다. ()을 닮은 그 세 개의 숫자는 매번 내 목덜미를 겨냥하고 있었다. 온 생을 걸었던 것들마다 차례차례 무릎 꿇은 나를 외면하면서, 나에게 시간은 희망이거나 힘이 아니라 까마득히 펼쳐진 늪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무수히 많은 시간들이 나를 스쳐간 것을 안다. 내가 잠든 사이, 꿈 속을 헤매고 있을 때조차 시간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던 것을 안다. 단지 살면서 처음으로 시간이란 걸 올려보던 그 즈음 내게 불운이 닥쳤고, 그래서 시간은 계시같은 것이 되었을 뿐 나는 지금 그 어디에도 갇히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다. 계시, 시계. 맞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내게 어떤 말을 건네려하고 있었다.

    "그 시계는 어디서 난 거야?"

    "동생이요. 오래전에."

    "여동생?"

    왜 사람들은 말하지 않은 걸 듣는 걸까. 말하지 않았으면서 말했다고 믿고 듣지 않았으면서 들었다고 믿으며, 우리는 얼마나 그렇게 서로 어긋나고 있었을까.

    "그래도 하나 뿐인 오빠라고, 예전에는 이것저것 바리바리 챙겼던 모양이구나."

성긴 그물에 걸린 분홍색 책자가 눈 앞에 보였다. 여러가지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그물 속에 걸려 있었다. 늘씬한 몸통을 지닌 술병들도 유혹하듯 나를 올려봤다. 저렇게 작고 보잘것 없는 그물로 이토록 화려한 음식과 술을 건져올린 지상의 어부들은 누구의 후손이었을까. 대답 대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은 연락해?"

    태풍이 북상 중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비행기 안은 너무도 고요했다. 그런데도 나는 시끄러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듯 창 밖만 봤다. 도시락만 한 창()이었다. 급식소의 배식판 위에 국 그릇만 한 구멍이었다. 그리운 이의 얼굴 하나도 제대로 그릴 수 없는 좁고 밀폐된 틈이었다.

    "섭섭해하지 마. 버려졌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어차피 살면서 누가 누굴 버리고 그런 건 없어. 나도 결혼하고 직장다니고 그러면서 명절 때조차 가족들 뒤통수 하나 구경하기 힘들었으니까. 그냥 다 각자, 자신의 삶이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

    그는 자신을 내 고등학교 선배라고 소개했지만, 솔직히 나는 지금도 그가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되니 면구스럽고 얼굴 팔리는 일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는 어디에서 우리가 만났고 어떤 시간들을 우리가 함께 했는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학창 시절에 그림을 그렸고 학교에서 주최하는 시화 전시회도 열었던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쩐지 시간을 말하지 않고 그 기록만 훔쳐본 사람의 말투였다. 논문을 준비 중이라 인터뷰가 필요하다며 괜찮겠느냐고 말했을 때, 나는 낯선 얼굴로 다가온 시간을 마주한 듯 얼어붙었다.

    아니다, 별 것 아니다. 나는 단지 어딘가에 기록될 나의 시간이 두려웠을 것이다. 가장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기록해도 되겠느냐는 그의 부탁은, 흘러가는 시간을 역행하는 혁명같았다. 나는 언제나 혁명 따위를 믿지 않았으며, 순리를 거스르는 것들을 혐오했었고. 아니 이제서야 솔직히 말하건데, 나는 아직도 그 혁명이 두렵다.

    "이렇게 새로 시작하는 거지 뭐. 인생이라는 게 말이야, 힘든 일이 있다보면 어떤 계기가 생기고, 또 그걸 바탕으로 딛고 일어서게 되어 있는 거더라고. 대단한 희망이나 기회, 그런 건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애. 안 그래?"

    나보다 겨우 두어 살 많은 것에 불과하면서 그는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 말했다. 나는 여전히 어떤 시간에 갇혀있는데, 그는 지나온 시간부터 지나야할 시간까지 지상의 시간을 모두 다 헤아리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 나에게는 돌아갈 집도 없고 가족조차 없는데, 그에게는 집이 있고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었던 것은. 결국 올바른 생이란 열정이나 노력 따위로 치환되는 끈질긴 집착이 있어야하기에. 아무리 지독하고 신물나는 세상이더라도 이기적인 현명함을 놓치지 말아야했기에.

    머리 위 어딘가에서, 20분 후 간사이 국제 공항에 도착하겠다는 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씨는 맑으며 기온은 27도씨로 청명하고 상쾌한 날이라고 했다. 그러니 무작정 즐겁고 편안한 여행 되시라고.

    얼마나 어떻게 해야 그토록 끈질기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아남을 수 있는 건지 좀 더 자세히 묻고 싶었는데, 갑자기 귀가 먹먹해졌다. 내 앞에서 그는 계속 지상의 말들을 중얼거렸지만 나는 물고기가 된 듯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듣지 못했으니 더 이상 말할 수도 없었다. 바다만큼이나 넓은 대형 태풍의 가장자리에서, 비행기는 크게 선회하며 급강하하고 있었다.

 

    황급히 눈을 피했다. 살아있는 걸 마주하는 일은 아직 익숙지 않았다. 채근하는 것만 같은 그 눈빛이 싫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기다란 창에 찔려 세상의 수면 위로 건져올려지는 것만 같았다. 그걸 마주하지 않기 위해 내 두 눈은 언제나 제일 깊고 어둔 구석에 머물렀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술 생각이 났다. 술 한 잔을 들이켜고 나면 세상과 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퇴화하며 진화하듯 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어지곤 했다.

    "떨어지지 마시고, 바싹 붙어서 따라오세요."

    일행을 안내하기 위해 제일 앞에 선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엔도라고 소개했다. 그는 견학을 시키는 인솔 교사처럼 사람들에게 친절히 당부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은 절대 안되며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일도 되도록 삼가라고 말하자, 열 명 남짓한 무리들 속에 심연 같은 적막이 흘렀다. 나를 가리키며 손가락질을 한 것도 아닌데, 나는 괜히 식은 땀을 흘렸다. 내 머리 위에서 일렬로 도열한 기다란 간판들은, 급식소 앞에 섰던 나처럼 욕망을 갈구하고 있는 듯 했다.

    엔도는 시장 밖으로 나가 난바역을 따라 성큼성큼 걸었다. 그리고 우리들을 대로변 모퉁이 앞에 세웠다. 1990년대 일본의 거품 경기가 사그라들고 이 세계를 지어올린 일용직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이 세계로부터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옆에서 통역을 하던 여자가 더듬더듬 말을 이어갈 때에도 나는 안경을 쓴 엔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허름한 건물 앞에 붙어있는 작은 안내판을 가리켰을 때에도, 나는 샛눈이지만 그의 눈을 넘겨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말하고 있는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는 일, 비록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 언제나 말이란 무차별적으로 찔러대는 난도질 같기만 했는데.

    다시 그의 눈빛이 다가온다. 또 다시 나는 그의 눈을 피한다. 잠시 후, 슬며시 고개를 든다. 그의 눈빛이 다가오면, 다시 또 고개를 숙인다. 방법이 없다. 내 몸이 아니라, 내 몸의 몸이다. 내 몸을 지배하고 있던 내 몸의 몸체. 이 곳이 슬럼화가 되고 한 차례 커다란 폭동이 일어나면서 더욱 더 이 마을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빈곤과 고립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대신, 그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더욱 더 철저히 그들을 소외시켜버렸다고 했다. 자유롭게 살도록 해준 거라고 말했지만, 자유가 아니었다. 고립된 자유 속에 그들을 감금시켜버리는, 자유의 또 다른 자유.

    곱슬머리에 키가 큰 그는 또 다시 우리 일행을 이끌고 거리 안쪽으로 들어갔다. 모퉁이 하나를 돌았을 뿐인데, 주변의 풍경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콧속에 스멀거리는 것은 익숙한 냄새였다. 무리 중에 누군가 그것을 국적이 없는 냄새라고 했다. 계급은 있지만, 그 어떤 국적이나 이름도 없는 냄새.

    엔도는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꽃 화분이 늘어선 기다란 벽 앞에 또 다시 사람들을 세웠다. 버려진 그곳의 분위기를 위로하기라도 하듯 꽃화분들은 선뜩한 색으로 도드라졌다. '우와, 예쁘다!' 무리 안에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을 때, 그제야 나는 그것을 두고 '예쁘다'고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부끄러움을 느끼려는 순간, 엔도는 그러나 그것이 노숙자들이 그 벽 아래서 노숙을 하는 걸 막기위한 도구라고 했다. 꽃을 관리한다는 핑계로 정기적으로 물을 주면서, 그 아래로 물이 흐르게 만들어 사람들이 노숙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 속에서 탄식이 터졌다. 배신감 때문인지 나즈막한 욕설들이 토해졌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담담했다. 예쁘다는 건 원래 그런 거다. 예쁜 건 배신을 하고, 힘 센 건 역습을 한다. 희망이란 허망했으며, 당당하고 떳떳하라는 외침은 언제나 주먹질처럼 폭력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쁘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은 참 다행이었다. 예쁜 걸 두고 예쁘다고 말하지 못하는 내 습성이, 처음으로 나는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앤도는 단단하게 창살이 드리운 경찰서와, 누가 운영하는지도 모르는 무료 급식소, 도박판이 벌어지는 공원 여기저기를 빠른 걸음으로 이끌며 열심히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거리 안 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비슷한 걸음 걸이를 지닌 남자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반발씩 걷거나 느리게 걷거나, 그들의 걸음 걸이는 하나 같이 엔도의 빠르고 큰 걸음과는 확연히 달랐다. 엔도는 그들 중 몇몇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고, 그들도 손을 들어 마주 인사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걸걸한 목소리로 무어라 말했는데, 어쩐지 엔도의 목덜미는 붉게 달아 올랐다. 일본어는 몰랐지만, 어쩐지 그가 한 말을 나는 알아들을 수 있을 듯했다. 그건 아마도 모든 국경을 뛰어넘어 단박에 마음에 꽂히는 세계적 언어였을 것이다. 머리의 말이 아니라, 가슴의 말인 범 세계적 언어. 안타깝게도 분노하고 적개심만을 드러내는 말이겠지만, 그럼에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엔도는 얼굴이 뜨거워졌는지 모르지만, 나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심장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유독 껑충한 건물 앞에서 엔도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모아 세웠다. 어쩐지 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그는 다시 한 번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이곳에서는 절대 사진을 찍어서는 안되는 것은 물론이고, 카메라를 손에 들고있는 것만으로도 불미스런 일들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눈을 감추고 손을 감춘 채 자신에게 가까이 붙어 빠르게 움직여야한다고.

    그는 그곳이 가마가사키의 노동 복지 센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곳은 또한 갈 곳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거처이기도 하다고 했다. 건물로 들어서기 위해 계단 입구로 들어서는데, 시커먼 기둥 뒤에서 짧은 머리의 얼굴 두엇이 고개를 내밀었다. 계단을 올라가 철문 안으로 들어서니 불도 켜지지 않은 텅 빈 공간이 드러났다. 찔러넣은 것 같은 기둥 여러 개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시멘트 바닥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모두가 혼자였고, 자신들의 집을 껴안은 채였다. 엔도는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맨 구석에 사람들을 세웠다. 구석에서 돌아본 사람들의 풍경은 검은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 같았다.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묵묵히 고요히. 어차피 모두 한 덩어리로 이어져 있는데, 침묵이 가장 큰 순리라도 되는 듯 다 같이 혼자서.

    엔도는 그들을 등지고서 노동 복지 센터의 운영 방식과 그들의 거처, 혹은 직업 알선을 위해 센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주었다. 부족하고 모자란 것 투성이인 그가 말한 수치들에 대해 시멘트 바닥에 누운 누구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청소라도 하는지 박스를 들어 탈탈 털며 하나씩 차곡차곡 게어놓고 있던 남자가 흘끗 그를 봤는데, 어차피 뜬 구름 잡는 것만 같은 세상의 수치나 계산들은 그에게 남의 일인 모양이었다. 엔도는 또 다시 사람들을 이끌고 섬처럼 흩어진 그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너무 빨리 걷고 있는 그들의 맨 뒤에 따라가며, 나는 자꾸 뒤처졌다. 어쩐지 집에 돌아온 것만 같은 기시감 때문인지, 나는 그저 눕고만 싶었다. 스키[각주:1]를 타던 어린 놈과 싸움이 붙었던 일, 쌍쌍바[각주:2] 커플과 소주 잔을 나누던 일, 시간이 지나면 절망도 추억이 되는 건지, 그 때의 기억들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며 나를 자꾸 끌어당기고 있었다.

 

    섭섭하지는 않다. 정말이다. 무작정 섭섭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오빠라는 이름을 버렸다. 이름을 버린 나는 여기에 존재하지도 존재해서도 안되는 사람이었다. 핑계라고 말하겠지만 '사람'의 이름마저 잃어버린 나는 점점 꼬리가 자라나는 것만 같았다. 가마가사키라는 지명의 뜻이 '가마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공교롭게도 나는 털을 뒤집어 쓴 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모두들 너무 빨리 걸었다. 여전히 세상의 걸음은 내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너무 빨랐다. 하지만 결코 섭섭한 것은 아니었다. 섭섭하지 않다, 정말이다.

    엔도는 그러고 나서도 가마가사키 바로 옆에 자리한 토비타 신지라는 유곽지역을 소개해주었는데, 겨우 거리 하나를 두고서 그 곳은 또 다시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건물마다 새하얗게 달린 등() 때문에 나는 몽롱한 꿈속이라도 거닐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나는 행인을 관찰하기 위해 문 앞에 달아놓은 작은 거울 속으로 화장을 한 그들의 눈빛과 마주쳤을 때, 나는 모든 것들을 단박에 뛰어넘는 가장 근원적인 위안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이 설레었다. 그러나 엔도는 그 곳과 가마가사키의 일용직 노동자들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단신의 남성 노동자와 유흥업 종사자 여성들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공생의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틀렸다고 했다.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임금으로는 단 삼십 분도 그곳의 여성들을 살 수 없고, 그곳의 업소들도 돈 많은 외지인들만을 손님으로 받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었는데도, 여전히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세계의 담.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일까, 이 세계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국적은 이름일까, 표식일까.

    "비둘기가없어요."

    "? 비둘기?"

    웅장한 옥빛의 오사카 성이 올려보이는 광장에서, 나는 깨끗하게 정리된 바닥을 보고 있었다. 매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짓밟고 지나갔다고 생각하기에 광장 바닥은 징그럽도록 하얬다. 불량배처럼 사람들의 길을 막았던 그 비대한 생물들조차 여기에선 보이지 않았다. 너무 크고 동그랗기만 한 그 눈빛 속엔 조류임을 포기한 각오가 서려 있었는데, 그래서 가끔은 그 눈빛에 주눅이 들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는데. 나는 이러저리 돌아보며 그 혁명적인 생물들을 찾았다. 높이 뛰어오르듯 날았다가 내려와, 내 가래침을 쪼면서도 당당했던 그 눈빛.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성 안에 들어갈까, 말까? 저 안은 박물관이라는데, 더워. 저기서 그냥 음료수나 한 잔 마시고 갈까?"

    내 대답은 들으려하지도 않은 채 그는 멀리 보이는 매점 쪽으로 앞 서 걸었다. 그의 이름이 뭐였더라? 그를 부르고 싶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동식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불렀다가 잘못 불렀다고 여러 번 혼이 났었는데.

    언제나 틀린 것이 먼저 떠올랐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것은 모두 틀린 것들 뿐이었다. 어차피 가능하지 않았던 것들만 꿈꾸었던 건지,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은 이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것들 뿐이었는지. 나는 언제나 틀린 길 위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된 발걸음을 옮기며, 몹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서른 여섯부터 마흔까지는 아예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았다. 식은 땀을 흘리며 먹은 걸 토하고 다시 먹은 걸 토하면서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간호사는 내 이름표에 마흔이라고 적어넣었다. 그러고 돌아서는 그녀의 뒤통수를 나는 오래도록 노려봤다. 그 때에도 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선배라는 사람을 따라 병원을 찾아간 내 발걸음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한 동안 조마조마해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는데. 지금도 이렇게 여기까지 따라 나선 일이 영락없이 괜한 짓은 아닐까, 불안하고 이물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있네, 비둘기!"

    매점 앞에서 사람들 뒤에 줄을 서며 그는 키가 큰 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서로 다른 것을 물고 빠는 사람들 속에 회색빛 생물들이 굴러다니듯 종종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손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쪼며, 누군가 빵 한 덩이를 던져주기를 기다리며, 똑같은 색의 털이 뒤덮인 그 생물들은 짧은 두 다리로 이리저리 뛰었다. 커다란 덩어리를 입에 문 놈을 쫓아 달려들고 빼앗으며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렸다. 그래, 내가 부러워했던 것이 동그랗기만했던 그 눈빛만이 아니었구나. 저렇게 치열하게 쫓아가 물고 빼앗는 집착도 나에게는 없었구나. '하지메마시테!'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차피 서로의 슬픔은 주고 받지도 못한 채, 오직 남의 덩어리를 쫓아 뛰어야하는 똑같은 이국(異國)의 생물들이여. 나는 의자에 앉지 못하고 그대로 흙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들을 따라 두 발로 종종 뛰듯 신발 속에 발가락만 계속 꼬물거렸다.

 

    또 다시, 444. 폭신하고 부드러운 이불을 견디다 못해, 나는 잠에서 깨었다. 냉장고 박스 두어 개를 이어 붙인 것만 같은 작은 호텔 방 시계는, 또 다시 그 세 개의 숫자를 내 앞에 내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시간에 갇혀 있다. 시간이 고장난 걸까, 내가 고장난 걸까. 내 생존을 증명하는 세포들도 날마다 투쟁을 기억하며 싸우고 있다는데, 나는 왜 싸우는 법을 잃어버렸을까. 그런데, 싸워야한다는 이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투쟁은 태초의 생존 방식이었을 뿐, 지금도 모두들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말하는 건 시간을 거역하는 일이 아닐까.

    오사카 성을 나오다가 그는 나를 수로(水路) 근처 나무 아래로 이끌었다. 성을 둘러싼 수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켜야했던 건지 강처럼 넓고 깊었다. 그를 따라 벤치 너머 나무 아래로 다가가니, 하얀 모자를 쓰고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노인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초록의 나무 아래 캔버스를 펼쳐놓고 이젤과 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검버섯이 편 가녀린 팔을 들어 그녀는 화폭 위에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동안 조용히 그녀를 넘겨보다가,  그는 내게 말했다.

    "그림은, 저게 진짜 그림이지 않냐?"

    잔잔한 그의 탄성은 엔카처럼 구성졌다.

    "너도 그림을 그려야지. 아깝잖냐, 그냥 썩히기에는."

    썩어가는 것이 그림이라고 말했던 것 뿐인데, 나는 아직도 내 몸에서 나도 모르는 냄새가 풍기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저렇게 늙어가야지, 너나 나나. 돈이 있든 없든 간에, 나를 위해내가 버텨온 삶을 위해 저런 시간을 선물해줄 수 있어야지."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근데, 난 여기 왜 데리고 온 거요?"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노인을 바라보면서 그는 대답했다.

    "나도그리고 싶어서. 더 늦기 전에, 나도 내 인생을 위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너도 다시 보고 싶고."

    순간 물컹하고 축축하기만했던 기억 속에서 상고 머리를 한 학생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여러가지 서로 다른 색깔들을 덧칠해 세상에 없는 노을을 만들었던 내 그림 속에, 그는 코를 박고 있었다. 역시나 똑같은 까까머리를 한 나에게 다가오더니, 그는 그림 속에 까맣게 그림자로 그려진 새 한 마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새는 어디로 가는 거냐?' 나는 확실히 그 때,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날고있는 새를 그렸을 뿐, 나는 새가 가고 싶은 곳까지는 그린 적이 없었다. 물론 그것까지 그려아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러자 그는 내 대답은 들으려하지도 않은 채 이렇게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새가 날지를 못하는 것 같잖아? 날개만 크면 뭐하냐? 가짜 새 같은데.'

    "동석이?"

    그의 등 뒤에서 그 때의 얼굴이 나를 돌아봤다. 기억과 현실이 겹쳐지며 과거는 다가오고, 현재는 멀어지고 있었다. 과거의 그는 내게 다가와 엄지를 추켜들며 '멋지다!' 말했고, 현재의 그는 내게서 멀어지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흔이 훨씬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의 어깨는, 그림 속 날개도 아닌데 박제된 듯 크고 넓기만 했다.

 

    동생은 어느 날부턴가 이 시계를 차지 않았다. 검다고 해도 좋을 짙은 회색의 이 네모난 전자 시계 대신, 그는 안쪽에 보석이 반짝거리는 작고 동그란 은빛 시계를 손목에 차기 시작했다. 시간이 물들어가듯 동생의 손은 하얗고 가지런해졌으며, 그의 손톱도 여러가지 색깔로 물들어갔다. 칙칙하고 어둡던 그의 옷이 화려한 문양과 색을 입었고, 그의 얼굴에 분이 칠해지고 입술까지 립스틱으로 빨갛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어느 날 나는 그를 집에서 내쫓았다. 부모가 없는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던 가장으로서, 나는 또 다시 세상이 우리를 가리키며 부모 없는 탓이라고 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생각해보면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말했다고 믿었고 들었다고 기억했다. 그 때, 그는 이미 조금씩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는 지우는 것이 아니라 채워가는 것이라 말했지만. 비로소 자신의 삶을 하나씩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가고 있는 중이라고.

    "조금 늦을 거라는데? 싼 값에 태워줬다고 배짱이냐, 뭐냐? 에이!"

    우리가 타고 온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는 간사이 공항의 본 터미널이 아닌, 버스로 십 여분을 오가야하는 부속 터미널에 내려주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법칙은 그 어떤 국경을 넘더라도 여전히 그렇게 견고할 것이다. 평등이란 환각일 뿐, 나고 자라는 모든 것들은 평등하지 않기에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간절히 그것을 애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은 다시 그릴 거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삶에 긴 시간을 잃었듯이, 나는 그림을 둘러싼 시간을 잃어버렸다. 내가 그림을 버렸는지 그림이 날 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림의 곁에 없었고 다시 돌아가는 법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미처 내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여러가지 언어가 뒤엉킨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신음처럼 단어들이 토해지는 한국어 방송은 이리저리 뒤섞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되풀이되는 말에 잔뜩 귀를 기울이더니, 그는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 태풍 때문에 가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데? 오사카에서 출발하는데 도착지가 오사카 공항이 될 수도 있다니이게 말이야, 방구야?"

    섭섭했던 것은 아니다, 정말이다. 어차피 버려진 삶들이었기에, 그렇게 쉽게 서로를 버릴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버림 받은 자가 오히려 누군가를 버리고, 돌고 도는 상실감이 원을 그리며 모든 걸 빨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인지도 모른다. 평등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 누군가에겐 지독히도 끈질기게 평등한 절망. 그렇게 위에서 평등하고 또 아래서만 평등한, 기이하고 이상한 서로 다른 평등 세계.

    나는 황급히 그에게 휴대폰을 빌렸다. 타래처럼 딸려나온 기억 너머에서 생경한 숫자들을 건져냈다.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결코 혁명은 아니었다. 그저 단발의 힘없는 탄식이라고 해도 좋았다.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힘 찬 팔뚝 같은 건 어차피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일으킨 건, 그저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의 염세였다.

    휴대폰 건너편에서 내 허술한 외침에 응답하듯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다, 그의 목소리였다.

    "나다."

    아니다, 섭섭한 건 분명 아니었다. 나도 그를 버렸고, 그도 나를 버렸다. 서로가 서로를 버렸으니, 이제 우리는 비로소 평등하게 서로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틀린 세계에서는 목격하기 쉽지 않은, 국경과 경계를 뛰어넘는 참으로 고마운 평등.

    "아직도아직도 그러고 사는 거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울음이 묻은 그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섭섭한 건 아니다, 진심으로 섭섭한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너 이 새끼돌아가,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우리에겐 집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국경을 넘어 천둥처럼 울려퍼졌다.

    "죽고 싶냐? 내 말 안 들어? 내 말 안들을 거야? 아직아직 안 늦었어, 늦지 않았어! 늦은 건 없어, 이 새꺄! 돌아가, 돌아가서지금 당장 돌아가서……."

    섭섭하지는 않다, 결코 섭섭한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아니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자꾸 작아졌다. 조금씩 퇴화하며, 그녀도 진화하고 있는 건지.

    "너 이 새끼정말 내 손에 죽고 싶냐? 정말이대로 다 끝내 버려?"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힘찼다. 구호라도 외치듯 흔들림이 없었다.

    "정말내 말 안 들을 거야? 너 이 새끼, 정말 끝내줄까? 어차피 너나 나나 미련없는 인생살아봐야 더럽고 추잡하기만할 인생, 내가 이 손으로 다 끝내줄까?"

    나를 닮은 그녀의 목소리는 전화기 건너편에서 절규하고 있었다. 마음대로 해보라는 그녀의 말은 가마가사키에서 들었던 범세계적 언어를 되살리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매번 가슴으로만 토해지는 여기 이 심연의 언어.

    칼이라도 쥔 것처럼 두 손이 뜨거워진다. 벌떡 일어나니 서성거리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죽여버리겠다는 나의 다짐을 읽은 듯 그들의 얼굴은 찌그러진다. 그래, 어차피 모두가 길을 잃은 것들, 어디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비루하고 한심스러운 인생들. 뜨거운 것이 꼬리뼈 끝에서 끓어오른다. 단 한 번도 그 무엇으로도 위로되지 않았던 분노가 솟구친다. 소리를 지르려고 입을 벌리는데, 천장에서 내려온 커다란 전자 시계가 보였다. 또 다시 444. 참사를 증명하듯 어김없이 눈 앞에 나타난 세 개의 숫자. 그래, 우리는 결국 그 무엇도 거역하거나 배반하지 못한 채 계시를 따라 살아야하는 법. 인간의 뜻이란 거창하고 과장되었을 뿐, 이 우주의 시간 앞에 그저 사소하고 비루하기만한 것.

    그런데, 갑자기 벌레가 꿈틀거리듯 마지막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빛으로 번뜩이고 있던 숫자가 몸을 떨더니, 사방으로 나뉘었던 불빛이 서로의 몸을 끌어당겨 뱀처럼 하나의 몸체로 이어지고 있었다. 뿔뿔이 흩어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모두 다 어긋나버렸던 직선의 꺾임들, 금빛 점들이 만들었던 가식적인 직선의 무너짐들. 그건 짧은 순간 너무나도 부드럽고 우아하게 하나의 곡선으로 늘어섰다. 지금은, 445.

    다리가 풀렸다. 밀쳐진 듯 주저앉고 말았다. 생전 처음 보는 시간 아래에서 나는 그제야 긴 숨을 토했다.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시간이었다. 내게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순간이었다. 언제나 거기에 있음에도 그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를 위해 흐르고 있던 것이 아니었는데.

    "보고싶다."

    시간 위에 눈이 내리듯, 그녀와 나 사이에 갑자기 침묵이 드리운다. 있는 힘을 다 해 나는 다시 한 번 입을 벌린다.

    "보고 싶어."

    명멸하는 새로운 시간을 경배하며 천천히 내 두 눈이 감긴다. 눈물이 차오른다. 절규하며 오열하는 대신, 나는 몸을 동그랗게 만다. 허공을 뛰듯 두 다리를 종종거린다. 종의 경계를 뛰어넘으려는지, 갑자기 어깻죽지가 간지럽다. 태초부터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날개가 꿈틀거린다. 지독한 망각 속에 접혀있던, 내가 그린 나의 날개다. []

 

 

  1. 하반신 장애인이 바닥을 끌며 구걸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 [본문으로]
  2. 부부 노숙인을 가리키는 은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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