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사각지대

 

 

 

 

 

 

  히로시는 구시카츠와 캔맥주를 사고, 영환과 함께 코코룸으로 갔다. 코코룸의 카나요상이 반겨준다. 카나요상은 이 말 많은 동네에서 십 년째 까페를 열고 있는 사람이다. 어떤 시끄러운 아저씨라도 산뜻한 기모노를 입고 가마가사키 상점가를 휘젓고 가는 카나요상을 당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소란을 피우다가 야단을 맞고 가는 아저씨들은 역시 여자는 안에 오니(귀신)’가 들었다고 툴툴거렸지만, 그건 카나요상에게 그만큼 강단이 있다는 말로 들렸다. 히로시도 어렸을 때에는 학교가 끝나고 텅 빈 집으로 가기보다도, 엄마가 준 돈으로 코코룸에서 저녁을 사먹곤 했었다. 히로시는 영환 몫의 저녁을 시키고 구시카츠와 캔맥주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히로시, 이사가고 나서, 오랜만이네?

  네, 일이 바쁘다보니.

  그래도 종종 놀러와.

 

  오랜만에 오기는 했지만 역시나 멋쩍다. 히로시 역시도 가마가사키의 시장골목을 누비며 자랐지만, 그것이 언제부턴가 다른 아이들의 눈총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환도 사카이시로 전학을 가게 되면, 뭔가 공기가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어버리는 걸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도 이미 몸이 기억하고 있는 공기이다. “너 어디서 이사 왔어?” 영환은 앞으로 이 질문을 얼마나 수도 없이 받아야 할까. 하지만 아직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히로시는 접시에 코를 박고 밥을 먹는 영환을 괜히 쥐어박았다.

 

  천천히 먹어야지!

  네에.

 

  친구놈은 잠시 기다리면 된다더니, 올 생각을 않는다. 하릴없이 기다리는 동안에는 자꾸 이 동네에서 살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히로시는 그래서 여기서 약속 잡기 싫었던 건데.’ 라며 속으로 말을 되씹는다. 온 상점가가 내 것인양 뛰어다니던 기억, ‘저희 집은 가마가사키에 있습니다!’ 라고 자기소개를 한 후 밥을 혼자 먹게 되었던 기억, 동네 주정뱅이들과 멱살을 잡고 싸웠던 기억……. 한 가지 기분으로 말할 수 없는 기억들이 속에서 올라와 목이 메인다.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올라오지는 않게, 묻고 묻어두고 싶어서 히로시는 스무살이 되자마자 가마가사키 바깥으로 떠났다. 어차피 고만고만한 동네에 살지만, 다른 곳으로 떠나면 언젠가 그 기억이 잊혀질 것 같았다. 결국 캔맥주를 다 마시는 동안 친구놈은 오지 않았다. 하여간 망할 녀석, 개새끼. 모처럼의 휴일이었는데. 히로시는 속으로 욕을 삼키면서 코코룸을 떠났다.

 

 

*

 

 

  히로시는 이 기분을 어떻게 풀지 생각하며 되는대로 움직이다 보니, 도톤보리까지 왔다. 어두침침하면서도 알록달록한 가마가사키와 다르게, 도톤보리는 시종일관 따뜻한 빛으로 밝다. 도톤보리 강가로 끝없이 늘어선 노란 빛의 등을 보며 히로시는 안심했다. 난 이제 그런 동네에 안살아. 라고 히로시는 입밖으로 말을 뱉는다. 주문을 외듯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여기는 누구나 흥겹고 빛이 반짝였으며 관광객들은 때깔이 좋았다. 히로시는 그 점이 마음에 들어 종종 하릴없이 도톤보리 강가를 서성였다. 그리고 계단에 앉아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하였다. 오늘도 그렇게 금붕어처럼 이리저리 강 속을 움직이는 빛과 사람의 무리를 보고 있는데, 한 무리가 유독 히로시의 눈에 띄었다. 외국어로 떠들어대는 걸 보니 관광객인 듯한데, 그 무리는 자꾸 어두운 골목을 기웃거려서였다. 보통 관광객이라는 것들은 밝은 곳만 골라 찾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마가사키가 아닌 이 도톤보리에 오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자꾸 왜 어두운 골목을 기웃거리나,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그들은 히로시가 멀찍이서 주시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침침한 곳을 기웃거리더니 한 곳에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순서대로 나직하게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리며 한 명씩 어느 건물의 검은 입구로 스며들듯 들어간다. 스며들듯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다시 하나씩 나온다. 나온 후에는 다시 재잘거리며 여느 관광객들처럼 빛의 무리로 사라져버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을 지켜보던 히로시는 머리가 아파온다. 꿈속에서 만난 여자를 실제로 보질 않나, 싫다, 싫다 했던 가마가사키에 다녀왔더니, 괴상한 관광객들을 목격하질 않나, 이상한 일 투성이다. 히로시는 순간 몸에 닭살이 올라온 것을 느꼈다. 아니, 닭살이 아니라 두드러기이다. 불긋불긋한 것이 몸에 오돌도돌 올라와 있는 것이 기분이 나빠서 계속하여 피부를 긁어대었다.

 

히로시는 코코룸에 모자를 두고 온 사실이 떠올랐다. 산 지 얼마 안 된 모자였다. 히로시는 다시 가마가사키로 발을 돌리며 이 모든 것이 친구놈 때문이라는 생각을 곱씹고 곱씹었다. 도톤보리 리버크루즈 티켓오피스를 지나는데 마침 리버크루즈 한 대가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지나간다. 웃으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니 묘한 활기가 느껴진다. 얼굴도 나이도 심지어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를 사람들이 한 데 섞여 있고, 그런 사람들이 한 배를 타고 손을 흔드는 광경은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다. 그들의 안녕에 나도 손을 흔들어 볼까, 싶었지만 손에 올라온 두드러기 자국이 눈에 보여 그만 두었다. 연고! 연고를 사야 했다.

별의 별 게 다 있는 대형할인마트격인 돈키호테라는 상점에 갔다. 상업의 신 에비스와 펭귄 캐릭터가 눈에 띈다. 어딘지 모르게 익살스럽다. 노란색 관람차 모형의 건물로 들어서자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긴 줄에 눈살부터 찌푸려지지만 저마다의 필요에 의해 집은 물건들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꽤나 진지했다. 밤이라 그런지 맥주캔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 틈에서 연고 하나 사려고 줄을 서 있는 내 모습이 불현듯 비춰졌고 끔찍하다는 생각에 파란색 에비수도 같이 사리라 마음먹었다.

연고를 찾아 들어가는 길에 어딘지 낯이 익은 무리를 보았다. 아니, 각자의 물건을 고르고 있는 사람 여럿을 보았는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들은 한 무리인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그들을 다시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 어디서 봤더라.’

살 것도 아니면서 아쉬운 듯 인형을 쳐다보고 있는 단발머리 학생이 보였다. 이 인형 저 인형 만지작거리는 단발머리의 손으로 자연스레 내 시선이 옮겨졌고 그 손이 참 낯이 익었다. 그러자 서서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혼마니 오오끼니!’를 단체로 외치던 그 관광객들이었다. 단발머리는 유달리 밝게 혼마니 오오끼니!’를 외치던 학생이었고, 불긋불긋한 손에 물티슈를 가만히 얹었다가 닦아내었다가 했었다. 문득 단발머리에게도 괴상한 일들이 일어나 그것의 버짐이 피부 표면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여학생을 보고 있으니까 손이 더 간지러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 괴상한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 하고 생각하며 여학생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학생은 남자용 유카타 두 개를 들고 둘 중에 하나를 고르기 위해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보기에는 둘이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였는데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저번의 명랑한 인사가 생각나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피식거리면서 웃으면서도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황급히 입꼬리를 내리고 한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순간 언뜻 여학생과 눈이 마주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엇갈렸다.

연고, , 음료수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손목에 끼고 도톤보리 강가에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연고 바르기 전에 담배 한번만 펴야지.”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대쪽 강가에 여학생과 그 일행들이 도토리처럼 쭈루룩 앉아서 캔맥주 같은 것들을 손에 하나씩 들고 서로 이야기 하고 웃으면서 홀짝이고 있었다. 그 여학생 역시 나처럼 손목에 뭔가 잔뜩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걸고 난간에 몸을 기댔다. 저 봉지 안에는 어떤 유카타가 들어있을까 생각하니 또 피식 바람 새는 웃음이 나왔다. 그 애를 유심히 보고 있었던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애가 하는 대로 따라했다. 왼손에 담배를 잡고 오른 손으로 불을 붙였다. 최대한 손가락이 담배에 안 닿게 하는듯한 손동작으로 담배를 잡고 천천히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 그 애는 옆에 서있는 일행과 무언가 끊임없이 이야기 했다. 살짝 높은 톤의 목소리가 강을 넘어서 계속 흘러왔다. 말이 잘 들리지도 않고,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는 말이었지만 나는 계속 그 조금 신난 듯한 목소리와 이야기 했다.

혼마? 혼마니? 혼마야! -정말? 진짜야? 진짜네!”

오마에 양께-재미있네.”

나 혼자 반대쪽에서 건너오는 목소리에 열심히 리액션 해 주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너무 멀어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이렇게 대꾸하고 있으니까 실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것만 같았고, 나는 웃긴 할아버지가 된 것 같아서 우스워졌다. 혼자서 킬킬거리면서 반대쪽을 쳐다봤다. 그 순간 또 다시 한번 눈이 마주친 것만 같았다.

혼마니 오오키니

갑자기 반대쪽에 서 있던 여자가 불쑥 오사카 말을 했다. 큰소리도 아니었고, 나한테 한 말도 아니었겠지만 정말 선명하고 깨끗하게 들려왔다. 뭔가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내 쪽으로 살랑 불어왔고, 나는 따뜻하게 그쪽을 바라봤다.

                    

 

*

 

 

아주 잠시 사이였다. 그녀들, 그 일행들이 보이질 않았다. 불과 몇 초 전만 해도, 그 소리를 듣고, 육안으로 그들을 볼 수 있었다가, 이렇게 갑자기 안보이다니 기이했다. 히로시는 짧은 다리를 건너, 강 건너 그녀들이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히로시는 건물과 건물 사이, 그녀들이 나왔던 어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골목 끝에 벽에는 구멍이 하나 있었고, 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슬을 넣으세요.’ 히로시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몰랐는데, 갑자기 그의 식도를 역류하며 구슬하나가 토해져 나와 입에 걸렸다. 그는 그 구슬을 꺼내어 구멍으로 넣었다. Vent가 항문처럼 열리면서 그를 안쪽으로 빨아들였는데, 그는 그 관을 통과하면서 무수한 구슬을 계속 토해내어야 했다. 구토가 멈추고, 마침내 그의 몸은 물과 같은 매질을 유영하기 시작했고, 그는 그 평온한 느낌 속에서 눈을 떴다. 거기엔 그녀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가 있었고, 인간만이 아니라, 지금의 생물이 아닌, 고생대의 생물로 보이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햇빛이 안 들어온다고 해서 빛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어둡지만, 그래서 모든 생명체들은 각자의 색깔을 은은하게 띄고 있었다. 모두의 피부에 두드러기처럼 반점이 드럼머신처럼 점멸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들의 의사소통수단이었다. 마침내 그에게도 메시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예전에 우린 하나였어. 아직 대륙이 쪼개어지기 전이었지. 퇴적층이 지질학의 역사를 이루듯, 우리들의 이야기가 쌓여서 지구의 역사를 이루어왔어. 사실 우리들은 지구가 쓰는 자서전의 일부야. 지구는 유기체로서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또한 변화해갈거야. 미래의 지구는 전혀 다른 행성일거야. 네가 스쳐지나간 모든 길에는 굉장한 일들이 일어났었어. 이야기들이 쌓여있어. 나는 여기에 너는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힘들-혜성과 운석, 지구의 자기장,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축, 해수의 바뀜, 가라앉기도 하고 솟아오르기도 하는 땅과 갈라지는 멘틀, 산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산이 되는 동안 흩어졌다가 하나로 모이는 대륙, 온도의 변화와 바람의 방향들, 빙하를 건너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마다 새로이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어. 그동안 수많은 강을 건너야 했어. 포식자, 굶주림, 질병, 판단착오, 긴 겨울, 가뭄, 홍수, 태풍내부에서 일어나는 격변, 외부에서 날아온 재앙. 우리는 생존자의 후손이며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야. 폭력에 반대하며 위기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너의 손위로 나의 손을 포개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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