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사각지대

 

 

 

  혼마니 오오끼니!

 

애들 좀 귀엽네.’

주문한 생맥주를 따르며 히로시는 속으로 웃었다. 오늘도 밤 장사는 한 테이블로 끝나나 싶던 차에 단체 관광객이 들어왔다.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떠드는 손님들이 그닥 귀찮지 않은 건 그래도 덕분에 오늘 매상은 바닥은 면했기 때문이다. 텐진바시스지 상가도 유사 이래 최대 불황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많이 나은 편이라지만, 스시야들은 모두 울상이다.

 

혼마니 오오끼니!

, 주문하고 인사하려고 연습하나보다, “하이!”

히로시는 테이블을 치우던 물수건을 내려놓고 관광객 테이블로 냉큼 뛰어간다.

 

혼마니 오오끼니!

오랜만에 젊은 애들이 말을 걸어온다. 전철역이 어디냐고 영어가 섞인 말로 물어온다. 교포인가? 가능한 잘 알아듣게 손짓을 섞어 말을 해준다. 친구 녀석이 잘못 가르쳐주는 거 아니냐며 농을 던진다. 매일 오사카 성 앞에서 만나 시간을 보내는 이 녀석들과는 벌써 십 년째이다. 옆 벤치 녀석은 날마다 옛날 고리적 노래를 틀어댄다. 관광객들 보기 창피하다.

혼마니 오오끼니?

어라, 오사카 말도 할 줄 아네?

영감이 다시 돌아보니 아이들은 웃으며 자기가 알려준 방향으로 쪼르르 몰려가고 있다. 오랜만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나온다.

 

*

 

오히이요상!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아니다. 지금쯤 나타날 법도 한데……. 영감이 지하철 역 입구에서 친구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텐노지역으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영감도 따라 나오게 된 것이다. 마쯔리가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벌써부터 카메라를 든 다른 영감들이 몰려 있다. 벌써부터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관광객들은 꽃가마를 향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댔고, 카메라맨들은 마쯔리를 보러 몰린 관광객들을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쟁 쟁 쿵따라 쿵 쿵

그때 악기소리가 요란하게 시가지를 향해 울려 퍼졌다. 신나는 마쯔리가 곧 시작될 모양이었다.

 

 

 

왜 하필 가마가사키에서 만나자고 하는 거야

텐노지역에서 신이마미야(동물원)역까지 걸어가면서 히로시는 속으로 생각했다. 구름이 끼어 날씨가 그다지 덥지는 않았지만 약속장소를 떠올리니 불쾌감이 더 몰려온다. 모처럼의 휴일인데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 녀석은 카마가사키 근처에 볼 일이 있다며 그곳으로 히로시를 불러냈다.

 

히로시는 텐노지역 입구 근처 버스 정류장에 잠깐 멈춰 서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히로시 옆에 한 뚱뚱한 여자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한 손에 담뱃갑과 라이터를 들고, 한 속으로는 담배를 쉴 새 없이 피워댔다. 히로시는 흠칫 놀랐다. 그러께 텐진바시스지 상가 빠찡꼬 가게에서 본 적이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보니 아니다. 여자의 발밑에는 이미 같은 모양의 담배꽁초가 여러 개 떨어져 있었다. 한 번에 한 갑을 다 피워버릴 기세군.

 

히로시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랐던 것은 그저께 꾼 꿈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여자는 히로시 바로 옆에서 빠찡꼬를 하였고, 쉴 새 없이 잭팟을 터트렸다. 구슬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꿈속에서 빠찡꼬의 구슬은 쉴 새 없이 여자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기가 차군, 구슬을 다 먹어버리다니. 그러면서 히로시가 자신의 빠찡꼬를 보는 순간, 빠찡꼬 기계는 그 뚱뚱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여자의 입에서 구슬이 쏟아져나왔다. 잭팟이다.

 

입에서 떨어지는 구슬을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끊임없이 구슬이 나오고 있지만 내 손에 들어오는 구슬은 단 하나도 없다. 구슬이 넘쳐 떨어졌다. 자신의 주변에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구슬을 집으려 달려든다.

끼이이익. 귀를 찢을 것 같은 자전거 급정거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가마가사키 거리에는 머리카락이 새하얀 노인들이 지나가는 자신을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한낮의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진 곳에는 아침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나이 든 일용직 노동자들이 가득 있었다. 그들은 흐리멍텅한 눈으로 지나가는 젊을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도시락을 먹고, 잠을 잤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앞으로만 걸어갔다. 구슬을 향해 달려들던 꿈속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구슬은 그들의 손에 닿으면 여자의 얼굴로 변해버렸다.

가마가사키 상점가는 조용했다. 저번에 왔을 때에 비해 상점이 늘기는 했지만 대부분 술집이었다. 사람들이 자전거의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나를 지나쳤다. 그때 한 아이가 저 멀리로 뛰어갔다가 다시 뛰어오더니 내 앞에 섰다. 남색 반바지에 흰 스타킹을 신고, 노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등에는 자신의 몸통보다 큰 까만 가방을 매고 있었다.

 

영환이다. 가마가사키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녀석은, 가마가사키에 있는 시영진료소의 의사 다나카 선생의 아들이다. 다나카 선생은 재일 3세로, 일본인과 결혼했지만 아들의 이름을 결혼 전 자신의 성과 함께 한국식 이름으로 붙여주었다. 그래서 녀석의 풀네임은 다나카 김 영환이 되었다.

 

오지짱~ 오히사시부리데스!!!

 

영환이 뛰어와 반긴다. 녀석의 이런 살가운 성격은 가마가사키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에게도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요세바(인력시장)의 시영아파트에 사는 영환은 동네 곳곳이 놀이터이고, 동네 아저씨들이 친구이다. 하루종일 가마가사키 지역의 노동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다나카 선생은 영환을 이 동네 주민들에게 키우도록 한 셈이다. 놀아줄 시간도, 생활의 여러 가지 사소한 방법들도 다나카 선생이 영환에게 가르치기에는 시간이 없다. 몇 십년 동안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노동자들이 고령화되면서 자연적으로 아픈 곳이 생기게 되거나, 고령에도 불구하고 험한 노동을 하다가 다쳐서 시영진료소로 오는 것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영환의 손을 잡고 걷는다. 우연히 만난 영환이와 친구와 같이 만나도 좋겠다 싶어 코코룸으로 향한다. 이 동네는 구시카츠가 유명하다. 튀김 꼬지를 간장에 딱 1번만 찍어먹을 수 있는 것이 오사카의 룰! 간장이 더 필요하면, 튀김을 간장에 집어넣는 방법이 아니라, 간장을 양배추로 떠서 튀김에 얹어야 한다. 나니와 로크로 함께 마시면 정말 맛있다.

 

영환, 각코우와 도우? (영환아 학교는 어때?)

이이요~. 데모 라이넹까라 사카이시노 각코우에 이쿠요우니 낫따네~ (좋아, 그렇지만 내년부터는 사카이시에 있는 학교로 가게 됐어)

나제 소우다노?(왜 그래?)

각코우가 라이넹까라 하이코우데스카라, 오카아상가 히코시스루소우.(학교가 내년부터 폐교라서, 엄마가 이사한대)

 

버블경제 시대에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고령 독신자들이 많은 카마가사키에는 학교에 다닐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영환의 말이 맞다면, 내년부터 폐교. 다나카 선생이 오사카시와 가까운 사카이시로 이사를 가기로 했나보다. 아저씨, 할아버지 친구들 투성이였던 영환도 이제 새로운 동네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화 끝-

 

 

 

<2화>는 7월 25일 (금)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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