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닌 이야기

 

래인커머 정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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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크샵 동안 버스타고 가면서, 술 마시면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 들으면서 오갔던 이야기들, 걸어다니고 움직이면서 보았던 모습들. 별것 아닌 이야기고, 별것 아닌 광경이었겠지만 이상하게 계속 귓가에 맴돌고 떠오르는 모습들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 둘 씩 떠올리면서 워크샵 동안의 일들을 떠올려 보려고 한다.

 

 

  629일 나는 조금 숨 가쁘게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약속시간에 늦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자 보험도 들어야하고, 국제로밍도 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 더 일찍 가야해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약속시간이 비행기 출발시간보다 세 시간이나 일찍 잡혀있긴 했지만, 보통 수속하는데 두 시간 정도는 족히 걸린다는 말에 더 조급했었다. 하지만 별로 피곤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평생 살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날아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평소에는 잘 자도 느껴지던 피곤함도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좀 더 일찍 도착했겠지? 하며 여유롭게 걸어가고 있을 때 저는 도착했어요 하는 김비님의 카톡이 휴대폰 창 위에 팟 하고 떠올랐다. 내 발걸음이 점점 급해졌다.

  공항에 도착해서 김비님은 어디계시지 하며 숨 돌리고 있을 때 쯤 마틴님의 모습도 보였다. 내가 제일 늦은 건가 싶었지만 아직 약속시간은 30분 정도 남아있었다.

  짐은 최대한 간단하게 싸는 게 좋아

  마틴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가방을 쑥 들어보였다. 내가 살던 곳을 잠시나마 떠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은 무엇일까. 그렇게 크거나 무겁다고 생각 한 적 없는 내 가방에도 화장품 파우치도 두 개나, 돼지코도 두 개씩이나 들어있었다. 그리고 가방도 두개였다. 실제로 그 많은 화장품들 중에 일본에서 내가 썼던 화장품들은 세 가정도뿐이었다. 별로 무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싸놓은 여행 짐은 한나절을 걷고 난 뒤부터는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가벼운 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첫날 도착하자마자 깨달았다. 심지어 이런저런 자료집이나 책들을 받으면서 가방은 무거워져가기만 했다.

  그 뒤로 정희님도 도착했고, 여전히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일찍 나와서 비행기를 기다리느라 모두 배가 고팠기 때문에 어머 왜 이렇게 비싸 데 찾아보자하고 지나쳤던 냉면집을 다시 들어가야만 했다. 냉면을 먹으면서 누군가 귀신이야기를 시작했고, 서로의 기묘했던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7년마다 한 번씩 꼭 찾아오는 악몽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모르는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목에 천을 감고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상하고 묘하게 느껴져서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은 꿈 이야기들이었.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꿈들과 다르게 계속해서 기억나는 이상한 꿈들은 그 꿈의 주인들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에는 비행기 표, 간사이공항과 신오사카를 오가는 하루카 티켓도, 아프꼼을 알리는 전단지도 있었다. 비행기를 잘 탈 수 있을까. 하루카 티켓을 사는데는 어디지? 내가 일본어로 티켓을 살 수 있을까? 하루카를 잘못 타는 건 아닐까 어쩌면 잘못 내리는 게 아닐까? 시시때때로 불안함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여러 군데에서 괜찮아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고, 가방 뒤, 어깨에 얹어지는 손들이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도 다들 전광판을 뚫어져라 봐 주고 있었다.

 

 

  신오사카에 도착해서 바로 그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향했다. 스시가게 앞에서 잠깐 순서를 기다리면서 맞은편에 있는 할인매장을 관광했다. 내게는 우와 싸다 하고 외치면서도 아무것도 사지 않게 되는 매장이었다. 커 보이는 볶음면이 80엔인가 했던 것 같다. 내가 그 볶음면을 서른 번도 더 들었다 놨다 하는 동안에 마틴님은 계산을 마치고 나오셨다. 내일 아침에 먹으면 되겠다. 라고 하면서 볶음면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팔목에 걸었다. 왠지 뿌듯해 보이는 마틴님의 표정을 보면서 뭐라도 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두어 번 더 들락거렸지만 나는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다.

 

 

  스시를 먹고 나와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아케이드처럼 막아놓은 시장의 천장으로 세찬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순식간에 온 시장 안을 매웠다. 별다를 것 없이 소나기가 오는 것 이었지만 누군가는 빽빽하게 비가 떨어지는 시장 밖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누군가는 천장에 부딪히며 소리치는 빗소리를 녹음하기도 했다.

 

 

  열시가 가까워오자 우리는 점점 어두운 곳을 향했다. 어두운 , 깊은 , 더 아무런 불빛도 없는 곳을 찾아서 저벅저벅 비묻은 아스팔트를 걸어갔다. 어느 집의 뒤쪽인지 집과 집의 사이인지 모를 골목에서 우리는 한사람씩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갔. 어두운 곳은 조용한 것 같다. 시끄러운 도시 안에 있어도 어둠의 공간은 조용하게 느껴진다.

 

 

  숙소 바로 옆에는 커다란 편의점이 있었다. 다들 한손엔 맥주, 한손엔 디저트를 들고 차례대고 계산을 했다. 매일매일 하루의 마무리는 편의점에서 했던 것 같다. 바나나를 사서 나눠먹기도 하고, 이 푸딩이 맛있을까 저게 맛있을까 고민하기도 하면서 조금 시끌시끌하게 편의점 안을 뱅뱅 도는 것이 워크샵의 매일의 마무리행사처럼 느껴졌다.

 

 

  오사카에서 첫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다 같이 오사카 성을 갔다. 성까지 들어가는 길목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다 같이 오사카 성을 갔다. 성까지 들어가는 길목에 털북숭이 아저씨의 멋진 눈빛을 하고 있는 영화 표지가 간판처럼 세워있었다. “예전에는 저렇게 털북숭이 스타일이 유행이었대 그래서 막 일부러 털을 기르고 털이 많을수록 인기가 많았대, 그런데 시대가 갑자기 확 바뀌면서 매끈매끈한 미남자가 인기를 끌었대, 그래서 털 많던 남자들이 울면서 털을 다 뽑고 그랬다더라구.” 권명아교수님이 그렇게 이야기 했다. 표지판에 멋진 눈빛의 아저씨가 처량하게 보였다.

  눈을 찡그리며 올려다 본 오사카성은 멀리서도 금색 투구가 번쩍거리며 빛났다. 역시 제국의 사이즈라고 말하며 웃었다. 거의 오사카성의 문 앞까지 갔지만 다들 굳이 그 제국의 성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내려와 있던 매점 근처의 나무 그늘에 수희쌤의 일인용 돗자리가 펼쳐졌다. 한사람이 다리 쭉 뻗고 앉으면 딱 맞을 듯 한 그 돗자리에 여덟 사람의 엉덩이가 올려졌다. 비둘기들은 이리저리 떼 지어서 날아다니고 나무 밑으로 바람도 살랑하고 불었다. 주위에는 여행객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로 적당히 시끌시끌했고, 저 멀리로는 현장학습을 온 교복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다들 멍하니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으면서 아 좋다. 하고 햇볕아래 고양이처럼 앉아있었다. 이제 일어나자 하고 또 얼마 가지 않아서 오사카성의 성 밖에 둘러진 호수를 보면서 또 한 번 그늘에 돗자리를 펼쳤다. 옆에 있는 벤치에서는 할아버지들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고, 벤치 뒤에 있는 잔디에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봄날 사생대회 나온 아이들처럼 풀밭에 앉아서 이젤위에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물감이며 연필을 꺼내놓고 정말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돗자리 위에 눕기도 하고 펼쳐진 돗자리 위에 앉기도 하고, 돗자리도 없이 그냥 바닥에 발을 붙이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도 하고, 벤치에 벌렁 누워있기도 하면서 각자의 흥얼거림을 가지고 호수를 보면서 쉬고 있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시간이었던 거 같다.

  텐노지에서 마츠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소를 물색했다. 어디선가 계속 소리가 들려오지만 어딘지 알 수 없는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다들 어 하나봐 어딜까 하는 마음으로 신나서 걸어 다녔지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여기저기 물색하느라 걸어 다녀서인지 그날따라 더운데 길에는 그늘 할 만한 커다란 나무도 별로 없어서인지 다들 지침과 짜증이 얼굴에 서려있었다. 길 끝에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며 몰려있었다. 그 곳에는 조그마한 가마 같은 것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화려하지만 전혀 비싸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 꽃이 꽂혀있는 가마였다. 이상하게도 그 이상한 가마를 둘러싸고 있던 많은 할아버지들은 DSLR 사진기를 들고 접사를 찍었다가 원경을 찍었다가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말도 안 되게 진지했다. 나는 왜 그걸 그렇게까지 좋은 사진기로 구도를 잡아가며 찍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가진 상기감이 그 거리에서 계속 느껴졌다. 할아버지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는 그 바로 앞에 한 여자는 버스 정류장에서 눈앞의 사람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앉아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딘가 자기 몸속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것만 같았다. 화난 듯이 닫혀있는 무표정을 한 여자는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거리에서 혼자만 흑백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시끄럽고 상기된 공간 안에서 나는 오히려 그 여자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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