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년 8월 13일, 데일리를 대신하여

14일은 우리의 영원한 파트너인 고영란 선생님 인터뷰와 니시야마 유지 선생님의 인터뷰 준비를 데일리로 대신합니다. 니시야마 유지 선생님은 자크 데리다가 창설한 연구교육 어소시에이션 <국제철학학교>에 대한 기록 영화 <철학에의 권리>의 감독이자 이 <국제철학학교>의 이념이 된 데리다의 <조건 없는 대학>(月曜社, 2008)의 일본어 번역자이기도 합니다.

aff-com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정념과 공동체, 어소시에이션의 가능성을 타진해오면서 현재는 연구-글쓰기-삶의 인터페이스로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인터페이스에는 아프꼼의 내부 성원만이 아니라 아프꼼이 지속적으로 만나온 다른 존재들, 다른 아지트, 다른 꼬뮨과의 constellation의 흔적들이 또다른 아프꼼의 멤버로서 기입-정동되어 있습니다.

Passion for another life, 다큐 작업은 이 컨스텔라시옹으로의 행보, 나아간 길과 머문 길, 막다른 길들 모두를 기록하고, 이 기록을 통해 아프꼼이라는 별자리의 형상을 성찰하고 사유해보려는 시도입니다. 하여, 그간 연구모임 a, net-a, 아프꼼에 이르는 무수한 이름에 응하고 답해준 모든, 컨스텔라시옹의 희미한 불빛을 나름으로 기리고 새기는 작업에서 시작하려 합니다. 신지영, 고영란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습니다.

특히 이 인터뷰들은 각자 고유한 자신의 삶의 행보에서 여러 낯선 타자들, 공간들, 장소들과 꼬뮨들과의 만남과 헤어짐과 상처들에 대한 나름의 말을 나누는 과정을 수행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모든 꼬뮨들, 모든 꿈을 가꾸고 지키려는 모임들이 그러하듯, 아프꼼의 여정과 행보 역시 외부에서 보이는 <결과물>들의 집적물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와 상처와 되돌이킬 수 없는 슬픔의 퇴적층을 그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무수한 실패와 상처와 슬픔은 어떤 것, 어떤 사례로도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것이겠으나, 실은 다른 삶을 꿈꾸고 지키려했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꼬뮨이 짊어지고 남겨놓은 실패와 상처와 슬픔이라는 점에서, 인류 보편의 슬픔입니다.

해서 아프꼼은 이 슬픔을, 상처를, 실패를 우리만의 내적인 ‘문제’로서, 개인의, 개인들간의 해소될 수 없는 실패담으로서 소비하고 탕진하기보다, 보편의 슬픔, 상처, 실패로서 사유해보려 합니다. 그 첫발걸음이 바로 슬픔과 상처와 실패를 나누는 과정입니다. 하여 아프꼼을 빛나게 해준 여러 다른 별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여,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이 길에서 만남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당신에게 그 만남의 빛나던 순간과, 실패와 상처와 슬픔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슬픔으로부터 무엇을 길어 올렸는지.

이런 슬픔의 나눔을 통해 아프꼼은 부대낌의 상처와 실패와 슬픔을 사적 개인의 후일담으로 탕진하거나, 그저 종결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단절하고 나아가, 다른 만남으로 대체하여 소진시키고 망각하고, 청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명한 새로운 삶의 현실적 실천으로서, 새로운 삶의 발명의 혁명적 이행의 한 과정으로서 변형시키려, 몸부림쳐보려 합니다.

 

 

니시야마 유지상의 다큐 <철학에의 권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국제철학학교의 기본 이념들은 이와 관련해서 많은 생각거리, 부러움, 기대, 안심 등을 아프꼼에게 주었습니다.

국제철학학교는 몇 가지 중요한 이념을 바탕으로 합니다.

지의 제도화에 반하는 제도

철학자의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무상성의 이념

무조건성의 이념영역교차의 이념

철학이 철학이기 위해서는 고립되어서는 안된다는 이념.

인터뷰 도중에 이런 이념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었다. 그중 흥미로운 몇가지는 이런 이념을 통해 국제철학학교는 젊은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자기 표현이 가능한 유일한 장소, 자신의 연구를 공론장에 전하는 것이 가능한 유일한 제도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점은 아프꼼의 지향점과 아주 많은 부분 통하는 지점이어서 매우 반가웠습니다.

 

또 철학의 초월적 권위를 비판하며, 철학을 다시 정의하는 작업 역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즉 철학이 다른 학문 분야나 사람들에게 <이런 것이 진리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말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철학을 초월적 권위의 자리로 놓는 것이라고 이들은 비판합니다. 대신 철학은 <귀를 기울이는 것>, 즉 다른 분야에서 표현되는 어떤 것들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철학은 자기 자신에 대해 묻는 것을 소임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즉 <철학이란 영원히 자신을 다시 묻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자크 데리다의 <조건 없는 대학>이 제시한 이념이자 국제철학학교가 이 이념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결코 완성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며, 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에 가까운 것, 즉 <철학은 활동이다.>라는 데리다의 이념과 국제철학학교의 이념이 나오게 됩니다.

아프꼼 역시, 상처와 패배와 슬픔의 기나긴 행로 위에서, 이런 만남을 통해, 연구와 삶과 글쓰기를 하나의 활동으로서 정립해나가고자 합니다.

 

연구모임 아프콤에서  다큐맨터리 <철학에의 권리> 의 감독님이신 니시야마 유지씨와의 인터뷰 및 독립 '비정규대학' <지하대학>의 탐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먼저 저희와 함께 해주시는 신지영 선생님께서 지하대학에서 철학에의 권리를 상영한 일을 소개해주셨던 글을 인트로로 올려봅니다^^

원 출처는 그린비출판사 블로그 : http://greenbee.co.kr/blog/966 입니다~

 

지식 게릴라들의 대학제도 이용법!, 신지영

비정규대학 "지하대학"에서 다큐 「철학에의 권리」를 보고
ㅡ일본에서 마을 만들기 8

* 우리는 국가 등록 인문학자
학교에 대해 논의하는 건 고리타분한 기분이 들어서 싫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대학제도가 너무나 필요해 속앓이를 한 적이 있다. 무작정 일본으로 간 탓에 한동안 소속이 없었던 때의 일이다. 당장 써야 할 글이 있는데 대학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으니 손발이 꽁꽁 묶인 듯했다. 책을 찾아볼 수도 빌릴 수도 없고, 인터넷도 프린터도 복사기도 이용할 수 없었다. 동네 도서관에 등록을 해 보았지만, 내게 필요한 책들도 검색기능도 그곳에는 없었다.

그때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한국에서 나는 대학 밖에 있다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지만, 실은 대학에서 부여해 주는 여러 요소들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제도권 밖이라고 생각했던 공동체도 나에게 이른바 제도처럼 안정적인 공부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나는 그것이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폭력적으로 그 안정적인 지위를 이용했을 수도 있다. 활용하기에 따라서 대학 안은 대학 밖이 될 수 있으며, 제도권 밖은 늘 제도가 될 위험과 직면해 있었다. 또한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제도가 탐날 때에는 그 제도에 대해서 비판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점에서 ‘고리타분’이라는 말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고리타분’이란 인류가 오랜 기간 여러 차례의 실수를 통해 습득한 필요요건을 갖추어 놓았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나는 고리타분이라는 안전장치 속에서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고리타분하다고 불평할 수 있는 도련님이었던 것이다.

또한 고백하건대 최근 나는 국가 등록 연구자가 되었다. 이른바 ‘학진 시스템’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공부와 연구로 돈을 벌 방법이 없다. 등재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 아니면 실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내가 써 온 글은 학술잡지에 실리지 않은 게 대부분이라, 그곳의 기록방식에 따르면 내 몇 년간은 실적 없는 공백이다. 한국의 모든 연구자들이 거기에 등록되어 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면 훨씬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국가적이고 자본주의적 평가제도와 일대일로 대면하기 시작한 느낌이 든다. 그나마 학진 시스템 덕분에 혈연‧지연에 따른 연구풍토가 개선되었다고 하니, 그 이전의 상황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 사건으로서의 다큐상영 「철학에의 권리」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인문학과 대학의 위기'는 죽은 유행어가 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는 ‘대학’을 새롭게 묻는 움직임이 보인다. 최근 1~2년 사이에 대학의 기능과 역사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는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대학의 탄생』(大学の誕生 上·下, 天野郁夫, 中公新書, 2009), 『대학의 역사』(大学の歴史, クリストフ シャルル、ジャックヴェルジェ、文庫クセジュ、2009), 『대학의 반성』(大学の反省, 猪木武徳, 日本の現代11, 2009. <일본경제신문> 2009년 12월 26일자 소개) 등이 그것이다. 또한 유명한 잡지 『現代思想』은 2008년 8월에 ‘대학의 곤란’(大学の困難)이란 특집을, 2009년 11월에 다시금 ‘대학의 미래’(大学の未来)라는 특집을 다룬다. 특히 2008년 특집에는 2004년 국립대학들의 독립 행정법인화 이후 대학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글과 함께, 일본의 대안적 지적 공간들을 소개했다. 그 대안공간들은 ‘대학의 밤’(大学の夜)이라는 와세다 대학 생협, 고엔지의 ‘지하대학’(地下大学), G8 서미트 반대운동 기간 중 북해도에서 생겼던 ‘캠프대학’(キャンプ大学)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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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반성, 대학의 곤란, 그리고 대학의 미래


대학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시작된 것은 1991년 이후 일본 대학의 설치 기준 자유화 이후 교양과목의 축소, 2004년 국립대학의 독립 행정법인화 이후 대학에 대한 포괄적 평가와 운영 시스템이 확립됨에 따라 진행된 대학의 기업화 및 그에 따른 고학력 실업자의 증가와 관련된다. 이런 경향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HK와 BK 사업단이 고학력 실업자의 수를 줄였으나 동시에 기업과 같은 관리체제가 대학 안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등재지 논문의 실적주의는 글쓰기 방식을 논문형태로 고정시키고 있으며 연구자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니시야마 유지(西山雄二) 씨는 파리의 국제 철학 콜라주에 대한 다큐멘터리 「철학에의 권리」(哲学への権利)를 만들어 일본의 대학 및 대안적 지식 공간을 돌며 상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상영방식이다. 도쿄뿐 아니라 각 지방의 주요 대학 및 자생적 지식 공간을 돌며 상영한 뒤, 지적 공공 공간의 문제를 전면에서 논의한다. 그 토론내용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 공유한다(홈페이지 가기). 일본의 순회 상영이 끝나면 프랑스와 미국, 한국 등지에서도 상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것 자체가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국제적 사건으로서의 상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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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철학에의 권리」

다큐멘터리 「철학에의 권리」는 현재 파리의 국제 철학 콜라주에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국제 철학 콜라주는 1983년 자크 데리다가 중심이 되어 만든 자유대학이다. 누구든 커리큘럼을 짜서 강의를 하고 누구든 들으러 올 수 있다. 국제 철학 콜라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부터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까지 다양하며, 전문분야나 관심분야도 천차만별이다. 이 활동을 위해 필요한 돈은 프랑스 국가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대학처럼 돈을 주는 대가로 연구활동을 기록하게 하고 관리하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지식인과 대중이라는 틀을 넘어서 다양한 위치의 발화자들과 다양한 학문들이 접속하는 장인 국제 철학 콜라주, 그리고 그것을 찍어서 일본의 대학 상황 속에 집어 던지는 행위. 그것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철학’의 전제를 깨뜨려 갈 권리에 대한 요구이자, 그것이 가능한 공간에 대한 요구였다.

* 지식 게릴라들의 아지트 ‘지하대학’
내가 「철학에의 권리」를 ‘지하대학’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두번째로 이 영화를 보러 온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누구랑 어디서 보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 그렇다. 지하대학은 그런 곳이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한다. 소속도 연령도 제각각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조건에 진지하게 개입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함께’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함께 먹는 것, 함께 보는 것, 함께 듣는 것, 함께 행동하는 것, 함께 논의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하대학’의 시도는 「철학에의 권리」가 추구

 

 

하는 바를 현실 속에서 구현해 가고 있었다.

 

 

지식의 게릴라 아지트 '지하대학'


‘지하대학’에는 “비정규대학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지하대학은 고엔지 마을(상점들의 네트워크 마을)의 제12호점인 다목적 아지트에서 열리는 공공적 논의장이다. ‘지하대학’의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말을 빼앗기고 있다. 노래를 빼앗기고 있다. 사상 등은 먼 옛날에 사라져 버렸다. …… 그리고 지하대학이 시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쇠사슬을 자르는 '지식'이며 철의 이빨을 부수는 '기술'이다. 교양주의를 파괴하는 '교양'이다. 대항 심포지엄을 대학 밖으로 거리로 밤으로 열어젖히는 시도이다. …… 지하대학은 신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노래가 되는 바로 일보직전에 머물 것이다. 지하대학은 밤의 거리, 그 수렁을 방황하는 TAZ(일시적 자율 공간)이 될 것이다. 왜냐면 장소는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지하대학에서는 다니가와 간(관련글 보기)과 같은 사상가, 일본에서의 68~69 정치투쟁에 대한 다큐 상영, 사회운동에 관련된 서적 평론회, 정치 문화 모임 소개 등이 이루어진다.

「철학에의 권리」가 상영되던 날, 45석쯤 되는 지하대학은 금방 만석이 되었고 서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하대학을 주도하는 음악평론가 히라노(平井玄) 씨와 대학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는 조치대학(上智大学)의 시라이시(白石嘉治) 씨가 참여한 토론은 열기가 뜨거웠다(토론내용 참조 >>). 히라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칸트가 마이너리티(minority)도 이성이라고 했음을 상기시키면서, 국제 철학 콜라주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의 의의를 설명했다. 마이너리티란 미성년자와 소수자를 동시에 지칭하는 말로, 비합리적인 것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이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 철학 콜라주가 68혁명의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68~69 정치활동 및 현재의 게릴라적 지식활동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설명했다. 데리다의 ‘조건 없는 대학’을 근간으로 한 다큐이지만 데리다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현재의 사건이 되고 싶어 하는 다큐. 그것이 ‘지하대학’에서만 단 한 번 상영될 수 있는 「철학에의 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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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대학에서 「철학에의 권리」 '함께' 보고, '함께' 논의하기


아마도 이 다큐가 국가나 제도라는 그림자로부터 가장 자유롭게 논의된 공간이 일본에서는 ‘지하대학’이 아니었을까. 고엔지의 채식주의자 카페의 식단을 담당하고 있는 요요짱은 “전부 공짜라는 게 무척 놀랍다”라고 했다. 나는 국제 철학 콜라주가 여러 공간을 전전하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놀라웠다. 논의는 논의의 배경에 대한 심각한 고민 이전에, 새로운 사실과 지적 자극에 대한 이런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차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연구자 등록을 눈앞에 두고 있던 나로서는 강렬한 공감과 강렬한 반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 다큐가 표방하는 것이 만인을 위한 철학의 권리라는 점, 국제 철학 콜라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인터뷰가 마음을 쳤다. 반면 ‘대학’을 재건하려는 듯한 분위기와 '국가로부터의 지원'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데 모두들 동감하고 있다는 것에는 어쩐지 거리를 두게 되었다.

* 지식 게릴라들의 제도 이용법
집에 돌아오는 길엔 두 명의 친구와 “만났고”, 길가에 서서 “토론했다”. 친구와 나는 가장 래디컬하게 보이는 일본 지식인조차 왜 늘 '국가의 지원'에서 시작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제도의 밖이 없다는 것엔 나도 그녀도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연구자 등록을 해야 그나마 연구비 신청이라도 할 수 있다. 그녀는 시인이나 소설가들도 등단하게 되면 국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혹은 국가의 바깥을 상상하길 멈추어선 안 된다는 데 동감했다. 많은 일본 지식인들의 발상법에는 복지국가에 등록된 지식인이 지닌 무기력과 허무주의 그림자가 있었다. 길거리에 서서 열변을 토하고 있으니 사회활동에 열심인 대학원생 친구가 나타났다. 그 친구는 아마 지하대학의 뒷정리를 하고 오는 참이었을 텐데, 우리가 오래 서 있긴 했던 모양이었다. 그 친구는 “이번 지하대학엔 활동가들이 별로 안 왔어요”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동네 도서관에서 내게 필요한 책을 구할 수 없는 것처럼, 대학을 논의하는 장에는 활동가들이 필요한 무언가가 없는 것일까…….

그러나 그날의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우리가 다큐와 지하대학의 열기에 힘입어 전철역에 한참 서서 이야기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런 우연하고 우발적인 토론의 공간들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한 달에 한 번 자신의 집을 토론 공간으로 개방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누구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대학을 패러디하기 혹은 대학을 전전하기 혹은 대학을 이용하기, 그 매뉴얼들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그것은 이제 현실적인 문제로 시작되고 있다.

 

 종업원

 

 

Dmagazine의 박선우씨가 정리한 내용을 여기에 옮겨둡니다.

 

 

 

 

 

 


 

 

 

Editor's Note


 

* 이번 8월 15일 광복절, Alternative life(대안적 삶)을 주제로 현재 일본 요코하마 미나토구에서 진행 중인 Bankart1929 에 참가한 blanclass 그리고 NET-A와 함께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통해 디매거진이 대담을 가졌습니다. 제 얼굴이 커다랗게 일본 행사장 공간에 빔 프로젝터 스크린에 비춰졌는데 많이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 예술적 총체에 대한 현 세태의 얼터너티브 공간 혹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사실 저희 디매거진이 매체로서의 성격이 강해 얘길 하기에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았고 갑작스레 대담 요청이 들어와 준비를 하기에 부족했는데, 결과적으로 세 단체 모두 주제에 대한 접근이 부족해 개인적으론 많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인디비주얼리즘(individulism)에 기반한 현 세태의 방향과 예술 및 문화 활동에 대한 대안적 공간에 대한 심층적인 교류 및 대화가 다양한 단체 및 개인과 지속적으로 이뤄져 나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예술과 문화의 방향을 예측하고 읽어 나가는 것은 다시 국가나 단체, 기업 등에도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하나의 단서이며 또, 전통적 문화의 상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아래서 이러한 작업과 인식은 필요하다 봅니다.

 

모쪼록 화상 통화가 안정적이지 못한 이유, 서로에 대한 사전 이해 부족, 자료 부족 등등이 더해져 심층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진 못했으나 본 글이 조금이나마 국경을 초월한 소통을 위한 작은 단서로써 유용하게 읽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순서>


1. DMAG + blanclass + NET-A(프로그램에 대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소개

2. 대화 진행에 대한 주제 및 방식

3. 본 대화 내용


 

 

 

 

1. DMAG + blanclass + NET-A(프로그램에 대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소개


(1) DMAG (blanclass와 NET-A에 대한 소개와 일어 번역문) :

DMAG은 계급적, 지역적 한계에 의해 또는, 대형 기업에 의해 창의적(creative)이고 신선한 아트웍(artwork)을 생산해내는 국내외의 다양한 디자이너, 아티스트들을 조명합니다. 라이센스 잡지 등 대형 출판사에 의해 휘둘러진 매스미디어의 보이지 않는 일방적 폭력에 의해 얼룩진 대중들에게 보다 다양한 활동과 결과물을 제공하여 보다 폭넓은 시선을 넓히고자 함입니다.

 

DMAG은 패션문화지(Fashion culture magazine)입니다. 사실상 현재 크게 네 개의 카테고리인 패션, (연극/무용)공연, 음악, 아트&디자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의복의 문화인 패션이 다른 지점과 관계하는 다양한 연결점을 찾고 이어 나가는 것. 그것이 DMAG이라는 잡지의 가장 큰 목표이자 과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형태상 잡지를 표방하나, 매스미디어의 본질인 소통을 기반으로 수용자와 창작자 또, 창작자와 창작자 사이의 소통을 열 수 있는 컨텐츠(contents) 및 기획(product)을 함께 다룹니다. 현재 9월부터 두 개의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전개될 예정입니다.

 

현재의 한국은 문화의 소비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현 세계가 그러하듯 주류(namestream)와 비주류(nonamestream)의 경계가 무너지고, 개인주의(individualism)에 기반한 예술과 상업디자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재, 패션 또한 이 흐름에 따라 보편적인 유행과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는 것이 아닌 "나의 인생에 어울리고 또, 나를 증거하는 옷"을 사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DMAG은 보다 많은 독자들이 스스로의 삶에 맞는 폭 넓은 패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또, 패션이 문화에 대해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또 다른 아트웍과 관계하는지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개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또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텅 빈 교실 blanClass + room (http://blanclass.com)

 

blanClass은 요코하마 주택가에 있는 작은 공간을 거점으로 예술을 발신하는 장으로서 통과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거기는 오랫동안 현대 미술을 배울 교조로 기능하고 있던 공간입니다. 수년 동안 차지했다 수도 "텅 빈 교실"이라는 의미를 담아 "blanClass"라고 명명했다. "제로"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그 "텅 빈 교실"을 단서로 시작합니다. 사람이 공간 관계, 거기 살아가는 것으로, 건물은 시간을 거쳐 변화한다.

 

그러나 공간 자체도 개성을 가지고 있고, 관련하는 사람이 주의 깊게 그 공간을 읽어 갈 때마다 기능과 역할은 확장하고 전환합니다. 그런 공간에서 제공하는 개성을 발견하고 키워가 같이 공간 자체를 실천하는 것으로 나아가려 생각합니다. 가장 중시하는 것은 형태나 성과보다 오히려 거기에 일어나는 상호 작용입니다. 다양한 아티스트와 전문가가 blanClass에서 교차 병렬하며 공존합니다. 거기에서 태어나는 대화를 생포하여 발신하고 있습니다. 일단 문이 열리면 어떤 일이라도 원하는 만큼 파고들어 쉽게는 시대와 사회에 아첨하지 않도록 예술을 구분하고 있는 장르와 기능을 뛰어 넘어 건너편에 있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다 자유롭게 풀어나가고 또, 문제를 진지하게 모색합니다.

      


 

(3) (www.aff-com.net)

net-a는 대학교수, 문학평론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활동가, 아티스트, 인문학 연구자 등을 중심으로 ‘예술로서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형식의 관계 맺기를 실험하고 있는 인문/예술 창작 집단입니다. <가족-국가-자본>의 논리 위에서 구성되는 공동체가 아닌 개별자들(anyone)이 삶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연합체(association) 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net-a에는,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매체활동, 출판기획, 비평과 비판적 담론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모임a> 다양한 주제에 관한 원고 투고, 대중문화와 삶 전반에 관한 비평, 대안적인 삶을 꾸리고 있는 개인 및 단체의 인터뷰, 지역에 있는 대안 공동체들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웹진; 아지트> 공터 개조 기획, 게릴라 영화제, 청년 강연회 등을 통해 청년들이 일상 속에서 공동체적 삶의 방식들을 실험하는 여러 분과를 넘나드는 이론적 담론의 생산, 국경을 넘는 학술 네트워크 등을 기획하는 프로젝트 팀인 등이 모여 network를 만들고 있습니다.

 


 

2. 대화 진행에 대한 주제 및 방식

스카이프엔 DMAG의 박선우가 신미나토마을 왜관 빔프로젝트에 단독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현장엔,문화 컨텐츠 연구소  김대성,  net-a의 김선우와 이송희 씨, 블랑클라스 하루오, 블랑클라스 멤버1, 통역자가 있습니다.

 

주제 : alternative life(대안적 삶)

 

 

3. 대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net-a가 기획한 프로그램입니다. 우선 net-a를 간략히 소개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겠습니다. net-a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분과(혹은 장르)를 넘나들며 웹진, 청년 공동체, 연구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팀입니다.

(프로그램명)또한 net-a의 'a'와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net-a의 a는 anyone, agit, association의 여러 의미 중, anyone; 누구나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을 to a;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너가는(말을 건내는/대화 할 수 있는)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서로 말을 나누자! 라는 게 오늘의 큰 주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패널 


 

김대성 (문화 컨텐츠 연구소 전임연구원)

정념과 어소시에이션, 함께하기와 관계 맺기의 피로 등 국제학술회의 진행.

현 aff-com, NET-A 총괄책임자

 

하루오 (블랑크라스 총괄 디렉터)

아티스트, B 세미나 Lea​​rning System 소장

현재 도쿄 종합 사진 전문 학교에서 현대 미술 담당 강사를 맡는다.

작가 활동, 드로잉, 비데오, 설치 등 다양한 형식으로 발표.

그들의 집대성으로서 행하는 성능을 "LIVE COMICS"라고, "snow"시리즈 (2001 ~) 등을 전개.

 

박선우 (디매거진 에디터 및 포괄적 창작자 / inclusive creator)

nonamestream culture project "monaconism"의 아티스트 활동, 2010년 129 35 at:elier 창단 멤버 및 실장을 거쳐 현재 2011년 Dmag 패션과 피쳐 담당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net-a "박상과는 아틀리에에서 일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틀리에를 통해 서로를 다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blanClass팀은 1일부터 매일 출근하게 된 신미나토마을에서 항상 지나치다가 일주일쯤 되어갈 때 처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건넨 지 며칠 안됐지만, 대뜸 찾아가서 Skype하자고 했었을 때조차 하루오상은 작업에 대한 얘길 듣더니, 흔쾌히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 주셔서 되려 제가 더 놀랐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net-a, blanClass와 DMAG의 주된 작업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작업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만남의 자리가 alternative life라는 주제와 만나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저희가 얘기하는 alternative life는 각자의 위치에서 선택 가능한, 대안적인 삶들을 각자의 작업물을 통해서 지속하며 이야기하고 듣고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김 "디매거진은 패션"문화"를 보여주려고 하는 집단이다. 그러니깐, 옷이 아니라 패션이 다른 지점과 관계하는 다양한 연결점을 모색하려고 하는데, 최근엔 어떤 장르와 연결점을 찾으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그에 대한 작업과정을 설명해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패션이 문화에 대해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크다. 예로, 셔츠나 팬츠 등에 들어가는 타탄 체크의 다양한 패턴들은 사실 유럽의 귀족들이 영토 간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죽인 병사수를 의미한다. 트렌치코트는 또, 1차 세계대전 시 영국군이 사용한 방수 코트가 그 기원이다. 그러니까 인류 전쟁의 부산물인 셈이다. 이처럼 현대의 옷과 구조에 있어서 문화를 떼어놓고 보긴 힘들다. 우리는 단순히 패션의 유행이나 흐름에 대한 보고가 아닌, 보다 패션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형태와 구조 속에서 그러한 의미들을 읽어내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패션과 관계하는 다른 장르들과의 교집합적 관계를 읽어내는 것이 관건이 되겠다. 음악, 미술, 공연, 연기, 무용 등 소위 말하는 모든 예술 활동들과 패션 사이의 ‘관계맺기’이다.”

 

“그렇다면 그런 인식에 대한 작업 활동으론 어떠한 것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

 

“디매거진은 2011년 5월, 공식적으로 시작을 했다. 때문에 아직 구체적이고 뚜렷한 활동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 이제 갓 계획이 잡혀 진행이 되었지만, 9월부터 A.T.D 프로젝트 그리고 A X D(가제)라는 영상프로젝트를 시작한다. A.T.D는 각각의 별도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모델, 스타일리스트 등을 매달 선별하여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대한 아트웍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결과물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담아 낸다. 또, A X D 는 아티스트(뮤지션)와 디자이너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그들만의 영상작업물을 완성한다. 우리는 이 아트웍 활동에 대한 재제를 가하지 않고 관조하거나 부분적으로 디렉팅을 하기만 할 뿐이다. 물론, 이를 위해 소비되는 활동비는 전액 지원한다.

주로 선별되는 대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 혹은 신인들이 되겠다.”

 

“그렇다면 디매거진의 재원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우리는 한국의 한 재단으로부터 시작했다. 디매거진은 약 2 년 간 투자를 받으며 성장해 나가고 또, 우리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활동에 대해 투자한다.”

 

“혹시 디매거진은 현재 광고 등을 사이트에 넣고 있는가?”

 

“우리는 그런 방식을 통해 수익이 창출되길 원치 않는다. 적어도 현재는 그렇다.”

 

“여러 형태의 장르가 있지만 원래부터 어떠한 형식의 제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어떠한 방법으로든 아티스트들이 어떤 생각으로 표현해내는 것인가가 관건이라 본다. 그림을 그린다고 아티스트가 아니다.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그것을 발신하고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아티스트, 이러한 세대를 보여주고자 한다.”

 

“블랑클라스는 공통적으로 아티스트들에게 최종적인 대답을 발표하는 그런 스페이스가 아니라, 중간에 서서 아티스트와 디렉터 그리고 관객과 함께 생각을 하자는 그런 공간이다. 블랑클라스는 네트에이와 공통된 그런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처럼 우리도 어떤 연구를 하거나 그것에 대해 발언을 하는 그런 활동 또한 하고 있다.”

 

김 "앞서 이를 두고 중요한 장이라고 말했는데, 문제제기가 어떤 문제제기인지? 자본인지, 주류미술계에 대한 무엇인지 궁금하다."

 

“문제는 아티스트 각각에 따라 틀리지만, 아티스트를 부를 때는 지금 바로 발표할 수 잇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스페이스에서 실험하고 싶다면 하는 공간이다! 예를 들면, 건축가 그룹 아틀리에 바우하우, 건축을 그런 집이라는 그것을 생각해서 사람을 받침 하는 그런 건축을 도구로 생각하면 어떨까 해서, 변형해서 부른 적도 있고 [시부야 이카리] 라는 아티스트가 실 당기기 전시, 그러니까 손가락을 두사람 사이에 끼워 점점 팽팽해질 때 퍼포먼스가 끝나기도 했다.”

 

“net-a의 핵심은 무엇인가.”

 

"가령 나는 왜 항상 불안하고 외로운가? 왜 나는 저 사람이 미운가?

긍정적인 에너지보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지를 어떤 구조가 나로 하여금 이런 감정에 휩싸이게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런 감정의 문제가 개인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 개인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사람이 놓여있는 부산과 서울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격차에서 가지고 있는 패배감, 개인의 감정들이 결정되는 것인데 그 구조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그 패배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방안을 고안해야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넷에이의 핵심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장이 아니라, 내가 갇혀있던 감정의 고민들을 웹진 아지트나 서평회를 통해 그런 감정을 해소하고, 그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또 다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런 네거티브한 감정들을 같이 공유를 하자는 인식으로 그것으로 해결하자는 인식인가? 그렇게 들린다."

 

“그런 방식은 아니고, 실은 눈에 잘 안보이지만 사실상 거의 보이지 않는 거고, 그게 무엇인지 볼 수 있게 하는 계기, 스스로 진술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지 실제로 표출하고 해소하는 식이 아니다. 가령 예를 든다면,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있는데 여기서 이것과 나의 관계는 즉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개인의 감정을 고립되게 만드는지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변화해가는 삶의 반경이 어떻게 개인에게 작용하는 것을 알려고 하는 활동인가?"

 

“알려고 하기보단, 대부분 자신의 출처를 잘 모른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풀어야할 사안인 것을 확신시키고 좀 다른 방식으로 내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이런 고립된 감정들을 함께 얘기하며 해소하는 것이라 이해하면 되겠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그러니까 관계와 관계 사이에선 자연스레 불안과 고립이 생겨나지 않는가.”

 

“그렇다. 그렇게 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 말의 요지는 개인 스스로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조직이 만든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 함께 풀어야할 문제라는 문맥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선 고립을 느끼고 체감하는 개인들이 모여 이해관계에 놓인 새로운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스카이프 연결 상태가 좋지 않은 점과 통역에 의해 시간이 다소 걸리는 점을 고려해 좀 더 빨리 진행하고자 한다. 박선우 씨가 혹시 blanclass 측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가?”

 

“한국에선 예술, 문학계의 엄숙주의가 팽배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화된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티스트가 생겨나고 있다.”

 

“무엇이든 제로부터 시작한다는 그런 생각이 없지 않는 건 아니고, 일본은 미대 예대 전문학교에서 공부하지만 졸업을 한 뒤에도 어떤 식으로 갈지 생각을 많이 하고 또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 한다. 사회 속에서 혹은 선별화 된 대답까지 미칠 수 있는데, 선별화 된 대답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에 대답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사실상 한국은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적 경향이 강하다. 그러한 경향은 국내 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는데, 국내에서 유명한 한 미술가의 경우 소위 말하는 3류 대학 출신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 경매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지 않자, 명문대로 편입학을 하고 말았다. 졸업 후 그의 작품 금액은 두 배를 껑충 뛰어 넘었다. 일본 또한 그러한 상황인가?”

 

“일본 또한 그러한 학벌주의에 의해 미술계 또한 크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7, 8 년 전 즈음부터 현대미술에 있어서만큼은 그러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게 되었다. next edu- 그러니까 어떤 연구, 대학을 하지 않아도 예술은 개인이 거점이니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아도 표현하고 어떤 걸 만들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박선우 씨는 현재 디매거진 에디터 활동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아티스트 활동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신의 아트웍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본래 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글쟁이다. 현재 동화 집필을 새롭게 구상 중이다. 그 이전 나는 연극을 했고,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내게 이들은 모두 하나의 일관된 작업의 연속이다. 방법과 표현의 차이일 뿐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같다. 근래에는 음악 작업도 했다. 한편으론 굉장히 불규칙적인 작업 형태를 고집하는 이유는 현 시대에서 네트웍과 기술적 발달로 인해 보다 빠르게 아트피스에 대한 가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나 뿐 아니라, 이미 곳곳에서 다양한 영역들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며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보인다. 어쩌면 내가 하는 일련의 다양한 영역의 작업들 자체로서 하나의 퍼포먼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앞서 디매거진에서의 구성이나, 박 상의 작업에서 콜라보레이션이란 명제가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결과물 그러니까 예술을 하고 또, 경험하는 것은 창작자의 인생과 수용자의 인생 사이의 공명이자 관계맺기이다. 이것은 다시, 창작자와 창작자 사이에서의 협업(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통해 둘 사이에서의 인생이 공명하고 또 관계를 맺는 것이다. 나와 당신의 외로움과 즐거움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이후부터 계속되는 스카이프 통화 품질 악화로 대화를 종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로 일부 대화의 살을 첨가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참여하였던 Net-A의 포토그래퍼 무명생활자 분과의 대화 기록이 없어 임의로 내용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독자 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Editor PAK SUN WOO / @UNDRES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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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출처 : http://d-magazine.co.kr/

 신콩떡

 

 

あなた、'a': 우시지마 타스지상

 

 

 

<우시지마상과 나의 전자사전과 노트. 우리는 말보다는 오히려 노트로 대화한 것 같다. 아래는 그 대화의 일부이다. 우시지마상은 미나토마을에서는 금속가공을 하는 부스를 운영중이다. >

 

1. “당신을 소개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컨템포러리 아트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움직이는 것들을 만듭니다.”

 

 

2. “당신의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휴먼파워머신입니다. 사람 세 명이 앉아서 자전거를 돌리는 힘으로 움직이는 머신입니다. 저는 ‘움직이는 것’들에 대하여, 즉 ‘무브먼트’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3. ‘무브먼트’는 당신에게 어떤 것이길래 그런가요?

 

 

 

 

“무브먼트하는 것은 ‘real time'입니다. 그러한 시간은 리얼리티를 갖습니다. 그리고 관객과 무브먼트가 싱크로나이즈 하여 그 반복되지 않는 움직임에 동참하게 됩니다.”

 

 

4. “여기 이 자전거와 결합한 기계도 저의 미술작품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작품이 미술관 안에 가만히 전시되어 우러러보아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은 움직이면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작품을 직접 몰고 다니면서 길에서 사람들과 함께 타고다녔습니다. 저에게 이것은 움직이는 전시입니다.”

 

 

5. “數多な人がここでいきますか?”

“生き。。?"

"いえ。"

"..go?"

"はい。"

 

 

6. “新港村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 또는 이미지로 다가옵니까? 저희에게 이곳은 다른 만남의 장소입니다.”

“저에게 이곳은 항상 바뀌고, 누군가가 오면 누군가는 떠나고, 항상 움직임이 있고, 유동적인 곳입니다.”

“그러한 움직임이 불편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해졌던 것들이 실패하고, 만든 플랜이 무너지고, 상황은 변동되는 것에서 힘들고 좌절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죠? 난 재미있는데.”

 

 

7. 당신이 컨템포러리 아트를 하는 것처럼 우리팀은 인문학 연구를 합니다. 人文이라는 글자처럼 우리는 ‘文’으로 ‘人’과 ‘人.’의 만남, 감정, 생각 등등을 표현하고 연구합니다. 그래서 net-a의 a에는 a와 a가 만난다는 뜻도 있다. 그리고 a에는 얼터너티브 그룹인 아지트 간의 만남도 있습니다. 지금 제가 당신과 만나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8. “net-a의 또 다른 방향으로는 불안, 우울, 분노와 같은 감정들이 지금 사회에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저 역시도 글로벌리즘에 대한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즘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우리는 한 번의 뜻을 전하기 위해 몇 번씩 고쳐말해가는 일종의 ‘노동’과같은 대화를 하였다. 사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대화’는 ‘너에게로 건너가는 노동의 총체’와 같은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이렇게 결렬되는 대화 속에서만 그것이 본디 너에게로 향하는 ‘노동’이었음을 드러낸다. 앞으로, 그런 만남과 그런 대화의 기록들을 계속하여 남겨보려 한다.

 

 신콩떡

 

 

 

요코하마에서 전투공동체, 내지는 뜻 그대로의 진지, 대 이케다형 최종병기그녀 양산시설, 요코하마 써드임팩트 준비위원회 등으로 공사다망히 진행되었던 한 달간의 일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출국 얼마 전이었습니다. 모토마치 쥬가카이, 모토마치 쥬가카이가 마치 엄마가 내이름 부르는 마냥 귀에  각인되던 즈음, net-a 팀원들은 일정의 마지막에 신미나토마을을 폭파하고 현해탄을 밀항할 것인지, 아니면 도쿄땅을 밟아 관광 못한 한을 씻고 성불할 것인지를 고민 중이었습니다.

 

뭐 테러까지 하기에는 ㅇㅋㄷ상도, 신미나토마을도 정이 들어서 한 수 접고 도쿄를 관광하던 우리는, 이 참에 '고엔지'에 가볼까! 하는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고엔지 마츠리날에 맞춰 의욕차게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당도한 고엔지는 정말 넓었습니다. 여기서 아마추어의 반란 어떻게 찾지.....하던 우리는 결국

 

묻고, 묻고, 묻고, 물어서

 

결국 찾았습니다!

 

 

 

 

 

 

 

저 밑에 노란색으로 쬐끄맣게 쓰여있는 것이 <아마추어의 반란>입니다.........어떻게 찾으라구!

 

다시 봅시다.

 

 

 

까페 헤세이티 이후로 이렇게 <찾을테면 찾아봐라!>는 패기가 느껴지는 간판은 처음입니다.

 

이제 떨리는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갑시다.

 

 

추억은사랑을싣고 풍으로: "마쓰모토 하지메씨가 맞으십니까?"

 

"예...제가 마쓰모토입니다만..."

 

 

 

 

 두둥! 마쓰모토상 등장입니다!

 

 

 

두근두근. 투비컨티뉴드를 기약하며 인터뷰 일정을 잡는 앨리스님, 신콩떡, 김안나님

 

 

 

 

그리고 기념사진! 촬영해주신 모라님이 빠져서 아쉽습니다 ㅜㅜ

 

 

 

그리고 인터뷰 당일입니다!

 

 

 

 

아기자기한 가게 안에 터질듯이 모여 앉은 4명입니다.

 

 

 

 

 

 

 

이 분은 통역을 담당해주신 신혜원씨입니다. 동경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혜원씨는 저의 중언부언해대는 말들을 유연하고 유머러스하고 막힘없이 전달해주셨답니다. 마쓰모토씨와 타케우치씨가 혜원씨의 일본어 실력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요.

 

그리고 인터뷰 내용 맛배기.....

 

 

신현아: 한국에서 같이 보고 있는 사람들이 “하지메마시떼”라고 전해달라고 했어요.

 

김선우: 아나키적으로다가...

 

신현아: 아나키적으로 인사해달라는데요

 

마쓰모토: 어렵네요

 

신현아: 이제 시작! 안녕하세요. 저희는 net-a 이고 지금 고엔지에 와서 마쓰모토 하지메씨와 타케우치상을 만나고 있습니다. 곤니찌와. 여기서도 라디오방송 같은거 하던데 계속 하고계신가요?

 

마쓰모토: 요즘은 별로 안합니다. 가끔씩 해요.

 

신현아: 보는 사람이 별로 없나봐요?

 

마쓰모토: 바빠서 귀찮아져서 안합니다. 가끔씩 하는데 여기가 아니고 조금 넓은 11호점이란데서 해요.

 

신현아: 그럼 지금 고엔지에 아마추어의 반란이 총 몇 개나 있는 건가요?

 

마쓰모토 하지메: 엄청나게 많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열고 ‘아마추어의 반란’이라고 하기 때문에 저도 다 알 수가 없어졌어요.

 

신현아: 그럼 먼저 코멘트를 하는게 좋을까요? 지금 여기 저희가 오게 된 건 <부산자취인연대>로부터 시작해서 가난뱅이들이 어떻게 같이 잘 살아볼 수 있을까와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마쓰모토씨 책도 읽고 이제 직접 만나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래서 약간 연예인 보는 기분? (웃음) 이미 한국 빨갱이들한테 연예인입니다. 그래서 고엔지에 대해서 책으로만 봤을 때는 작고 망해가는 상점거리를 살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되게 크고 또 되게 재미있고 신기한 사람들이 많고 가게들도 많고 좀 북적북적하는 분위기가 맘에 들었어요. 저희가 현재 요코하마에 한 달 동안 체류 중이었는데요, 요코하마는 예쁘고 아기자기하지만 재미가 없는 도시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럼 우선 처음에 여기 가게를 만들었을 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마쓰모토: 원래부터 고엔지에는 자주 술을 마시러 오거나 친구를 만나러 오긴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내 가게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을 하고,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여기 저쯤 골목에 가게가 하나도 안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럼 내일 바로 가보자 하고 갔죠. 정말 놀라웠던 건 저쪽에서 낡은 옷가게를 같이 하고 있는 야마사라는 사람이랑 둘이서 가서 대뜸 “가게를 하고싶은데요” 했더니 저희들이 어떤 사람인지 묻지도 않고 “그럼 얼마나 낼수있나?” 라고 하시길래 “한 달에 5만엔을 낼 수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할게요” 라고 했더니 “오늘부터 써” 라고하시면서 열쇠를 주시더라구요.

 

신현아: 그래서 저희도 항상 학교 안에서 활동하다 학교 밖에서 활동하려니 가게같은 거점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역시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들을 자주 하게 되고 학교 안에서 놀이처럼 했다가 학교 밖에서 하려고 하니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말씀을 들어보면 쉽게 쉽게 만드신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해요.

 

마쓰모토: 거의 놀면서 운영하는 거랑 비슷한 처지예요, 이 가게는. 하면 어떻게 돼요.

 

김선우: 그런데 그런 활동들을 같이 하자고 했을 때, 보통은 사람들이 내 삶의 방식에 방해가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거나 같이 잘 안모이게 되기도 하죠.

 

신현아: <부산자취인연대>를 할 때도 그냥 놀자고 하면 재미있게 했지만 막상 카페라던가 좀 더 큰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면 시간이 없다고 하거나 취직준비를 해야 한다거나 했거든요.

 

마쓰모토: 저희 역시도 어떤 큰 계획을 짜보려고 하는데요. 그렇게 큰 계획을 짤 때도 노는 것처럼, 난 굉장한 걸 하려고 하는데 같이 하자! 고 하면 “어라, 나도 끼워줘”하면서 모이게 되던 걸요. 그래서 늘 진지하게 하기 보다는 술마시다가 술마신 김에 해보기도 하다보니 일이 커지는 일이 다반사예요.

 

신현아: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 것’이 가능한 기반 같은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게도 역시 그렇고.

 

마쓰모토: 가게를 한다는 건 역시 재미있게 노는 식으로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운영이 잘 안되어서 망하기 직전이라면 열심히 해야 되죠. 절반은 놀면서 절반은 열심히 이렇게 하기때문에 가끔씩 이 장소를 지키기 위해서의 노력을 해야하긴 하지만 토탈로 보면 별로 힘들고 그런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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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본격 인터뷰이보다 인터뷰어가 말많은 막장인터뷰입니다.

 

 

 

 

 

 

 

갖은 긴장을 하며 눈알을 데룩데룩굴렸던 인터뷰가 끝나고, 이제 아마추어의 반란 16호점으로 향합니다!

 

 

<이날 참가해주셨던 타케우치씨. 정말 재미있고 좋은 분이셨습니다. 늘 진지한 타케우치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중인 모라님.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던 걸까요 (........) >

 

아마추어의 반란 16호점은 술집입니다. 이 곳은 매일매일 점장이 바뀌는 컨셉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놀러왔던 외국인이 '오늘은 내가 해보겠어!' 하면서 메뉴판이고 뭐고 전부 외국어로 써놓는 바람에 손님도 점장도 대혼란! 메뉴판이 있되 무엇을 먹게 될 지 알 수 없는 돌발상황! 의 연발도 있었을 정도로 자유로운 곳입니다.

 

이 날 이 곳에서 밤새도록 놀면서 재미있는 사람들을 잔뜩 만나기도 했습니다.

 

 

 

<살벌한 표정의 선우찡과 마쓰모토씨>

 

 

 

 

사진가 아저씨. 타케우치상과 굉장히 즐겁게 이야기를 하길래, "아시는 분이세요?" 라고 했더니, "방금 처음 봤어요." 라고 대답하셨던 유쾌한 분입니다.

 

 

 

쿠마모토 깡촌에서 맨몸으로 달랑 도쿄로 상경한지 한 달 된 쇼헤이씨입니다. 상경해서 고엔지역에 온 지 10분만에 여자로 오해받아 헌팅당하고 무서웠다는 쇼헤이씨. 이 날 16호점에서 그 헌팅남을 다시 만나 약간 기모이~하기도 했답니다. 큐슈남정네는 모두 이렇게 생겼단 말인가! 라는 판타지를 잔뜩 심어준 쇼헤이군은 연고도 없이 달랑 몸만 고엔지에 와서 한 달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지만 늘 즐겁다고 말하는 것이 그야말로 고엔지사람 답기도 했습니다.  사심을 가득담아 한 장 더올립니다. 하울을 닮았던 쇼헤이씨는 뭔가 외국인이랑 말하고 싶어!라는 눈으로 반짝반짝 쳐다보았지만, 언어의 장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ㅠ.ㅠ...

 

그리고 이 날 새벽 내내 아마추어의 반란 16호점에는 고엔지의 온 동네 사람들이 어이~하고 슥슥 문을 열고 모여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정말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즐겁게 낄낄대다가 흩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우리가 점장을 할 지도?!

 

그리고 이제 헤어질 시간입니다.

 

 

첫차를 기다리는 우리. 마지막에는 다같이 역 앞에 벌렁 누워서 첫차가 뜰 때까지 잤답니다.

 

이렇게 하루 동안의 고엔지 탐방은 끝입니다!

 

 

 

 

 신콩떡

 

 

2011년 8월 16일. 요코하마 뱅크아트에서 net-a와 LAB39팀이 만났습니다. LAB39는 '문래동'이라는 철공마을에 예술가들이 들어와 아뜰리에를 만들고 함께 살고, 일상 속에서 예술을 그려나가며, 삶 안의 부분이자 전체로서의 예술을 실험하고 실천하고 있는 프로젝트 팀입니다. 김강, 김윤환 선생님은 도시 속에서의 '예술'을 만드는 예술가이자, 도시의 한 부분을 점거하는 스쾃티스트이며, 그 삶을 연구하는 도시사회연구소에서 활동하시고, 그런 이들이 함께 모이고 스쳐가며 만드는 공간 <LAB39>:를 운영 중이십니다.

 

이 날의 만남은 net-a가 요코하마의 신미나토마을이라는 마을에서 또 다른 ‘아지트’를 만들고 활동하는 a를 만나, ‘아지트’를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좌담형식의 인터뷰, <아지트, a>로 기획되었습니다. 또 인터뷰는 인터넷으로 생방송되기도 하였습니다.

 

 

 

< 방송을 테스트중인 net-a. 인터넷 방송은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라, 모두들 긴장도 하였습니다만 며칠에 걸친 테스트와 노력으로 자알~ 돌파!>

 

'인문계형 사고회로' 안에서는 천재지변급의 시도인 '인터넷 생방송'은 저희 팀에서는 처음 하는 시도였습니다. 제한적인 장비에다가 해외라는 상황에서 '인터넷 방송'이라는 신기술(?)을 어찌 해볼거나, 안되는건가, 하기도 하였지만 어떻게든 된다!는 마음으로 우찌우찌 성공하였습니다. 테스트 방송들의 고스트 시청자들께도 감사를!

 

 

 

<신미나토마을의 A존에 설치한 동시상영 넷북. 위의 종이에는 인터뷰 안내가 일어로 쓰여있고 본체 위의 안내판에는 팀과 인터뷰의 이름이 쓰여있다.>

 

 

한 번 성공하자 신난 마음으로, 모라님께서 내친 걸음에 <구역 별 중계> 까지 시도하였습니다! 저희가 신미나토마을 안에서 진행중인 인터뷰를 인터넷 뿐 아니라, 신미나토마을 안의 다른 곳에서도 동시상영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저렇게 해놓으니 나름 설치미술처럼 보이지 않습니까?.....않습니까?....않습....?

 

 

자 이렇게 세팅이 완료되었다면, 이제 방송을 시작합니다.

 

 

<사진 왼쪽부터 기타등등걸님, 종업원님, 김강님, 김윤환님, 김안나님 입니다.>

 

 

먼저 이 날의 주제인 <오염을 딛고 만나다>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하였습니다. 종업원님께서 준비한 인터뷰 발제문(?)을 읽으며, 이 '오염'이 함의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net-a가 부산이라는 '지역' 중에서도 변방인 '하단'에서 여러 인문학에 기반한 실험을 통하여 삶의 다른 반경과 경로들을 만들고 나누려 하고 있다면, LAB39는 '문래동'이라는 '낙후된' 마을에서 그 삶과 일상이 동시에 '예술'일 수 있다는 것을 실험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도시'라는 구조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생산될 '변방', '낙후'와 같은 '오염' 위에서, 오히려 그것을 인문과 예술로 다시 직조해내며 딛고, 만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날, '오염을 딛고' 만났습니다.

 

 

또 이 날의 주제는 '공공미술'로도 이어졌습니다. 이는 '공공'이 본디 '모두가 함께'라는 뜻이었다면, 지금 '공공'이라는 이름을 갖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정부나 기관이 주도하는 사업이 '공공미술'이라면 우리는 정말 '공공'을 위한 미술을 탈취해와야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열심히 이야기중이신 김강선생님.>

 

 

어쩌면 <신미나토마을>이라는 공간 안이었기에 가능했던 인터뷰이기도 한 이 날의 인터뷰는 예상 외의 열기를 띄어 생각했던 시간을 지나 2시간 가량 진행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함께 해주었던 소수정예의 시청자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선우

 

 

net-a가 요코하마 BankART 신미나토마을에서 진행한 '하지메마시떼 프로젝트'는 신미나토 마을주민들(입주 아티스트들)의 부스에 먼저 건너가, 마을 이웃 또는 어떤 관계를 시도해보려는 작업이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방문을 두드리는 방식, 여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 본 이 '실험'을 통해서,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이 쉽게 버리지 못하는 공동체 내의 문법과 태도를 다시 한 번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net- a는 마을 주민들에게 처음 다가갈 때부터, 이 만남의 작업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하지메마시떼 프로젝트'를 시작한 초반의 영상들을 다시 확인해보니, 주민들의 얼굴이 잘려있는 영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만지는 것에 익숙치 않았던 점도 있겠지만, '하지메마시떼-'라는 한마디 말로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이어가는 이 작업의 성격이 고스란히 배여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인들에 대한 인터뷰가 아닌, 카메라를 쥐고있는 사람(net-a)과 만나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함께 드러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카메라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서로의 언어가 서툴었기 때문에, 항상 번역기와 사전을 들추며 서로 대화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서로의 말에 정확한 뜻을 파악하진 못했지만, 계속해서 말의 벌어진 틈을 좁히려 서로의 말을 유추하려는 '애씀'이 있었습니다. 이런 애씀을 통해 서로가 가져왔던 언어와 문법을 죽이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서로의 만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어떤 인력(,동력)'은 '가르치고-배우는'관계, 나를 죽이고 '배우는'태도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blanclass팀>은 빈 공간을 거점으로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을 새롭게 만나, 워크숍과 퍼포먼스 등을 하는 팀입니다. 이 팀의 디렉터 Haruo상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의 빈 공간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 가능한지, 그런 공간을 함께 가꾸는 사람들과의 관계란 어떤 것인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팀에서 유독 디렉터 Miki상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와의 대화하며 특히 <하지메마시떼 프로젝트>작업을 수행하는 데  서로의 말에 자신이 가져왔던 기존의 언어와 문법으로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려고(혹은 배우려고) 부단히 질문하였던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이런 만남을 계기로하여, 신 미나토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과 net-a가 서로의 아지트를 통해서 만나, 자신의 위치에서 상대방의 작업을 재서술하는 비평을 수행하며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신 미나토 마을에서 어떻게 결속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는 만남 <agit to agit>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Haruo Kobayashi)

 

 

(Miki)

 


 


  조형예술가 우시지마상은 죽어있는 예술 오브제가 아닌, 사람의 동력/인력이 통해야만 움직이는 작품을 만드시는 분이시며, 자신이 만든 작품(자전거)을 직접 몰고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서, '만남'을 수행하고 있는 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직접 마을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에너지와도 연결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시지마상이 말하는 예술은 전시장 안에 있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만남, 삶 속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정념에서 사회적 결속의 동력을 구하고자 하는 net-a의 작업과도 연관이있단 생각이 듭니다.


 


(Tatsuji Ushijima)



신 미나토마을의 아이돌, 시오야마상은 늘 마을을 찾은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그녀는 아트 세토우치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오이, 토마토, 과일 쥬스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편안하게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그녀는 요코하마에서의 일정이 끝난 net-a팀에게 먼저 찾아와 다시 또 인사를 건냈습니다. 그녀와의 만남 속에서 우리는, 먼저 말을 건넨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곧 이 신미나토마을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러 가는 여행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Genki상은 저희가 처음 말을 건낸 마을사람입니다. 그는 요코하마의 라이브 하우스(YOKOHAMA B.B STREET)를 운영하며 여러 밴드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Genki의 부스는 신미나토마을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가 아니라도, 일상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의 부스에가면, 여러 주민들의 소식지와 인디 매거진들, 인디 음반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신미나토 마을의 공식적인 카페 외의, 어떤 만남의 장소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또한 Genki/그의 부스를 통해 '장소에서-장소로'의 이동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Genki Kosai)

일주일에 몇 번, 그의 부스에서는 그의 친구들이 몇명씩 모여 음을 맞추는 소리가 들립니다. Genki의 부스에서, 요코하마 인디 문화와 그 개별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Chiaemi)



 <소레가스키>팀은 그들의 첫 이벤트로, 페이스-뱃지 이벤트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이벤트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뱃지로 만든 것을 뽑는 게임입니다. 요코하마 트리에날레 참가를 위해, 급!모인 팀이라고 하였지만, 매일매일 마을에서 낚시를 하거나, 마을 주민들의 얼굴을 찍는 등 그들의 일상적 여유로움 덕분에, 그들과 만난 뒤, 항상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메마시떼”프로젝트>는 만남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수많은 감정과 그 동력을 포착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달간, 많은 이들의 삶의 방식과 문법, 동선을 만났습니다. 이국에서의 한시적인 만남이었지만, "하지메마시떼"란 첫 인사를 통해, 낯설기만한 서로를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만남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다음의 만남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mora

 

 

 

 

이날 렉처의 성과라고 한다면 보름동안 타인의 부스를 방문하며 인사를 나누었던 프로젝트 '하지메 마시떼'는 우리의 부스를 넘어 타인의 부스에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방식이였습니다.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신 미나토 마을의 주민으로 참여하고 있는 분들이 하나둘씩 저희의 공간으로 와서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였고  그런 자발적인 참여는신 미나토 마을에서 이루어진 렉처중에  가장 흥미로운 형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왠만해선 렉처에 모습을 비치지 않으시던 신미나토 마을의 조형예술가 우시지마상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셨습니다.

 

 

 

 

 

 와깡을 설계하신 건축가 부학주 선생님

 

 

 

 

최선작가님과 시오야마상

 

 

렉처가 끝난후에도 이야기는 계속~~~

 

 

 

 

 권명아선생님- 고영란선생님- 이정희 선생님

 

 

 

렉처가 끝난후에도 마이크를 끄고 발표자와 참여자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net-a의 부스가 있는 와깡은 신미나토 마을에서 유일하게 신발을 벗고 들어올수 있는,문턱이 가장 낮은 공간입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낮은 문턱은 오히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수 없는 외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은기간동안 신발을 벗고 편하게 , 이곳에서 만나기를 요청하였습니다.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의 어떤 '만남'을 기약하면서.......

 

 

 

 

 

 

 mora

 

 

대안적인 학술운동의  궤적과 net-a의 실험이라는 주제로 신미나토 마을에서 진행된 이날의 렉처는 권명아 선생님이 연구하시는 주제들에 대한 발표와 net-a의 소개및 활동 그것을 바탕으로 한달동안 요코하마에서 작업한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렉처를 준비하며/ 고영란 선생님과, 이정희 선생님도 자리해주셔서 너무 든든했습니다.

 

 

렉처 발표를 시작하시는 권명아 선생님

 

 

 

 

하나 둘씩 모인 사람들/ 렉처 풍경

 

 

 

 

 

 

 

발표중인 현아씨

 

 

 

 

다음 페이지에 사진 이어 집니다.~~~~~~~~

 

 mora

 

 

 

요코하마에서 작업중인 팀원들은 하루 하루 강행되는 일정속에서도 밤늦게 시작되는 회의에 집중을 했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또 다른 하루를 준비하는 행위인 동시에 이국에서의 '하루' 가 가지는 의미, 또 그 하루를 함께 쓴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말'의 힘은 피곤한 몸을 외면하고 상대에게 또는 자신에게 밀접해있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날은 힘든 회의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놀라운 에너지를 발휘하는 회의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 현장은 거기에 있었던 이들만 알 수 있겠지요.

아쉽게 나마 사진을 공개합니다~~

 

 

 

 

        

 

 

 

 

 

 

 

 

 

 

 

 

 

 

 

 

  

 

 

 그러고 보니 각자 자리가 정해져있었군요. 암암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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