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벽에 대한 태도

 

 : 배수아의 새벽의 극장 리뷰

 

 

 

최성희

 

   

나는 오래된 기억처럼 이 극을 만난다. 흑백영화 같은 연극을 보는 것, 독백의 늪에 빠진 여성을 보는 것 모두 내게는 떠올리기 힘겨운 과거 같은 느낌을 준다. 만약 완성품을 보는 관객으로서만 참여했다면 그런 거리감은 줄어들지 않고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운 좋게도 이 연극을 구상할 때 옆에서 지켜보았고 2부 낭송극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극단 새벽과 배수아의 소설을 결합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이질적 결합이 어떤 결과물로 나올지 무척 궁금하였다. 그때까지 배수아는 내게 소문의 작가에 불과했고 그의 작품을 직접 접한 적이 없었지만, 소문들을 종합해서 나는 그녀가 꽤 모던적인 작가라고 여기고 있었다. 반면 극단 새벽은 열악한 부산 연극계에서 리얼리즘적인 성향을 지닌 채 버텨가고 있는 작고 오래된 극단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과 연극의 만남은 특이할 것 없는 조합이다. 하지만 그것이 매개되는 방식은 특이할 수 있다. 아프콤의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은 그런 특이한 조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내게 흥미를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었을 시도여서 이 극이 만들어지는 중간중간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대중적이지도 뚜렷한 서사도 없는 이 소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까?

 

 

 

 

 

중간 점검 때 낭송극 참여자들과 함께 모여 본 극에서 연기할 배우들을 만났다. 처음엔 여리여리하고 순한 느낌을 주는 두 여 학생이라고만 여겼는데, 대사를 읊는 순간 그이들의 인상이 확 바뀐다. 마치 불이 켜지듯, 그들 속에서 연기가 돋아났다. 여리여리한 여학생은 사라지고 세상을 겪을 만큼 겪고 알 만큼 아는 단단한 여자가 거기 서 있었다. 순간 나는 약간 소름이 돋았다. 그래, 이런 게 연극의 묘미야! 그것을 연극이 자기도 몰랐던 모습을 끌어낸다고 말한다면 뭔가 미진한 느낌이다.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옮겨가게 하는 것 같다. 그것은 오히려 신들림에 가깝다.

공연 날, 막이 오르고 두 배우가 보이자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흑백의 무대는 몰입도가 높았고 배우들의 움직임은 하나하나 선명하고 아슬아슬하였다. 위에서 내려온 흑백의 긴 끈에 매달린 두 몸. 이 두 몸이 천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렇게 배수아의 밤이 염세적이다는 밤과 벽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염세적이다가 아닌 염세적이다라는 선명한 이유가, 밤이 단순히 낮의 이분법적 대비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의 몸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제시된다. 검은색 전신 타이즈를 입은 두 배우는 밤의 몸이다. 하얀 천에 둘러싸인 밤, 검은 천에 둘러싸인 밤. 두 밤이 흑백의 천속에서 손짓하며, 혹은 몸부림치며 말하기 시작한다.

한 배우가 벽 속의 벽, 벽 속의 벽. 나는 오직 말을 가지지 않은 물고기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할 때 심장이 조여 오기 시작했다.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그 말들이 내게는 아우성처럼 들린다. 누군가 홀로 잠자리에 누워 속으로 중얼거리며 세상을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계속되는 오해와 곡해들, 그 소통의 불가능성에 참담함을 느끼면서 좌절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다음은 뭘까? 그녀는 밤을 고향으로 삼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밤을 살았다.

그건 처음에는 분명 처형이었으나

곧 내 나라 내 몸이 되었다. . .

나는 영원한 등록을 마쳤다.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에 나는 밤이라고 대답했다.

.. .....

 

 

나의 고향이 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이 되기까지 그녀가 겪었을 배타시와 체념들이 떠올라 아득해진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무수히 많은 벽을 접해야 했던 사람들, 체념을 반복하다 그 꺼풀이 내려앉아 끝내 그 벽을 어떤 식으로든 긍정하는 방식을 찾아낸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각자 저마다 사정은 다를 것이나, 우린 누구나 누군가를 만나길 열망하지만 막상 만나면 어김없이 벽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사람이 벽이라고 느끼는 것은 꼭 사랑하지 않거나 잘 몰라서가 아니다. 너무나 잘 아는 부모도, 연인도 벽이 될 수 있다. 서로 무던하게 지내는 형제도, 조카도, 친구도 벽으로 느껴지곤 한다. 공유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 벽이 더 두터워지기도 하고, 공유하는 것이 적어서 불투명한 벽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예전에 내가 생각하는 벽은 사회적인 제도와 인식의 문제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까이 부대끼고 사는 사람 사이의 벽이 더 부각되기 시작한다. 배수아가 특별한 사랑이 특별한 벽의 언어이다라고 말하는 건 그 극단적인 경우일 터이다. 이는 연극에서 두 배우가 무대의 보이지 않는 벽에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표현된다. 지그재그로 오가는 몸짓을 하며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요라며 말할 때 참 탁월하게 잘 표현하였구나 싶었다.

우리는 어떻게 벽을 대해야 할까? 소설에서 수니는 벽의 언어를 터득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밤의 삶으로 옮겨왔다고. 연극에서 배우는 노끈에 자신을 동여맨다. 항상 행복한 낮을 살기를 허무하게 희망하기보다 오히려 밤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더 좋을지 모른다. 밤은 단지 네거티브가 아님은 밤을 온전히 사는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로선 아직 그 경지를 다 더듬을 수 없다.

 

나는 오롯이 이 공연 프로젝트를 통하여 배수아를 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기획이 시작된 이래 배수아의 몇몇 소설을 읽게 되었고, 이 작가는 20~30대의 자의식 강한 도시 여성들이 겪는 부침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때론 너무 냉소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건 젊은 여성들이 충분히 보일 수 있는 반응들로 이해되기도 했다. 오히려 그런 냉소에조차 너그러울 수 없는 나는 생생한 삶의 느낌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돌아보곤 했다. 낭송극의 참여자로 건네받은 쪽지에는 배수아의

 

 

 

 

 

 

  뜨거운 염세의 없음

 

 : 배수아의 새벽의 극장 리뷰

 

 

 

김비

 

 

 

  

 추운 날이었다. 나는 아마도 말해야 하는 말들을 손에 들고 있었을 것이다. '염세적'이라는 말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밤이 아닌 아침을 생각하고 있었다. 밤은 내게 익숙했고, 오히려 아침이 낯설었다. 내게 염세적이었던 것은 아마도 아침이었을 것이다.

 

 하필 맨 앞줄에 앉자, 두 개의 세계가 내 앞에 눈을 떴다. 하나는 바로 나의 눈앞에서 작지만 선명한 그림으로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너머에서 의미를 잃어버린 말들의 잔해에 의해 갈가리 찢긴 채로 벽 위에, 혹은 말 너머에서 내 앞에 흩어졌다. 두 개의 세계는 같은 것을 보여주고 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두 개의 세계 중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의 말을 듣고 있었다. 또 다른 하나를 지우고 망각하며. 소외시키고 소외되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지막 유언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정교하게 토해진 말들은 내 머리 위에 신음이거나 혹은 노래처럼 부유한다. 내가 보고 있는 하나뿐인 세계 속에 누군가 있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누군가가, 색깔을 잃어버린 세계가 스쳐 가듯 화면 속에 스며든다.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말과 화면 속 세계가 기묘하게도 서로에게 다가간다. 말은 세계가 되고, 세계는 말이 되며 서로를 향해 허물어진다, 속도를 높인다. 어긋나거나 뒤틀리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말이 소멸해버린 세계 속에도 말은 있을 것이며, 세계가 사라져버린 말 속에서도 세계는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조각난 말의 잔해들 속에서 알몸으로 우리 앞에 나온다. 서로 다른 몸으로 버려진 말 속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그들을 맞이한 것은 벽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세계다. 그들은 벽으로 둘러싸인 세계를 인식하며 벽 앞에 매달린다. 벽에게 말을 걸고 벽을 말하고 벽을 두드리며 벽을 향해 절규한다. 비명의 다른 이름인 말, 말을 절규한다. 그러나 벽은 꼼짝하지 않는다. 벽은 탄생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소멸되지 않는다. 그들처럼 우리를 두드리거나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비명을 지르지도 않으며 우리들에게 매달리지도 않는다. 발버둥 치듯 이 세계의 벽을 뜨겁게 토해놓는 우리들에게, 벽은 그저 이렇게 말한다.

 

 '실례지만,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벽에 맞서기 위해 하나가 된다. 나무가 되기도 하고, 밤이라는 고향을 지닌 올빼미가 되기도 한다. 날개를 펴지만, 그들은 어디로도 날아가지 못한다. 기껏해야 추처럼 앞 뒤로 오르내리고 있을 뿐, 의미 없는 웃음으로 제 자리를 돌며 자위하고 있을 뿐. 몸부림치듯 서로 다른 기호를 그리며 그들은 간절히 소통하고자 한다. 이해할 수 없음을 확인하며, 소통의 없음을 각인시키며 점점 목소리를 높인다. 서로 다른 기호로, 서로 다른 말들로, 그러나 조금도 다르지 않은 소통의 없으므로 그들은 소통한다. 소통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다시 또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기호를 그리고, 또다시 똑같은 말을 토해놓는다. 간절히, 너무도 간절히 소통을 바라며. 겨우 간신히 '밤이 염세적'이라고 입을 모아 웅얼거리며.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말할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말들을 들고, 갈가리 분해된 문장들을 들고서 우리는 말을 말해야 하고 또다시 입을 벌려 비명을 닮은 소리들을 토해야 한다. 소통의 없음을, 사라진 세계를, 분해된 말들을. 서로 다른 목소리로 서로 다른 말들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반복되는 없음을 반복하며, 끝없이 그렇게 제 자리를 돌고 있다. 낙인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찍히는 말들, 흉터처럼 퍼렇게 멍들어 시간 속에 각인된 언어들.

 

 말의 남루한 몸을 들여다본 것만 같아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우울이 밀려왔다. 입을 벌릴 때마다 염세로 뒤틀린 말들이 흐느적거리며 기어 나올 것만 같은 공포에 나는 사로잡히고 있었다. 나의 말이 부끄럽다. 아니, 나의 말이 자랑스럽다. 나의 말이 산다. 나의 말이 죽는다. 나의 말이 다가간다, 되돌아온다. 나의 말이 소외시킨다, 소외된다. 점점 더 소리를 높이며 다급해진 나의 말이 빨라진다, 차라리 비명이 된다. '밤이 염세적이다'고 말하지도 못한 채 뜨거워진 것들을 집어삼키며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오는데, 내 머리 위 어디선가 건들거리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새처럼 울고 있었다.

 

 '실례지만,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두근거리는 마음

 

엄준석

 

 

 

아프꼼을 생각하면 두근거린다. 혹 빼먹은 일은 없을까? 보고할 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오늘 찍은 사진 페이스북에 올려도 될까? 아프꼼 홈페이지에는 어떤 글을 실을 수 있을까(필자는 아프꼼에서 홈페이지, 페이스북 운영을 맡고 있다)? 다른 대안적 공동체 관련 홍보물을 봤을 때도 아프꼼 생각이 난다. 그리곤 또한 두근거리는데, 아프꼼에 관한 고민하거나 그의 새로운 모습을 홀로 상상하며 흥분하곤 하는 것이다. 그 고민과 상상을 구체화한 경우도 있으나(배수아와 새벽의 극장 티져 영상과 같은) 마음속에 간직한 경우도 많다. 규모가 컸던 두 실험-시위인 환을 켜다배수아와 새벽의 극장이 끝난 후 조금의 여유가 허락돼 그를 구체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쉽지는 않은 것 같다(이 두 행사를 시위라고 칭한 것은 권명아 선생님이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아프꼼을 대단히 많이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다. 부끄럽다. 아프꼼의 일원이 된 지 4개월이 지났음에도 이렇다 할 기획도, 발전적인 뭔가도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말이다. 아니, 4개월밖에 안 지났는데도 큰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다른 식구(왠지 이렇게 부르고 싶다)에 비해 맡은 실무도 턱없이 적은데도 말이다. 그러나 아프꼼의 일원 즉 래인커머가 된 이후 일상적으로나 상시적으로나 아프꼼을 많이 고민하고 상상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듯하다. 나아가 항상 그에 대해 긴장하고 흥분하고 욕망하고 있음 또한 말이다. 물론, 그러한 운동은 나 혼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프꼼 또는 대안인문학운동은 나에게 과제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미래의 아프꼼을 생각하고, 지금 아프꼼의 일-글은 향후 어떤 식으로 확장/축소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다. 아프꼼을 비롯한 여러 대안인문학운동의 성과와 의의를 밝히는 글을 읽으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대안적 형태의 공동체에 대해 궁금해 있기도 하다. 아울러 아프꼼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거나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프꼼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지를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래도 아프꼼의 의의와 역사를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과제로 주어지고 또 의뭉스러운 무엇으로 설정된 것 같다. 아프꼼이 생산했던 글을 읽어보며 대략적인 틀을 잡아가곤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더 깊게 엮이고, 더 부딪혀보아야 그 과제를 해소할 수 있는 어딘가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몇몇의 사건에 연루되었던 탓에 아프꼼에 대한 대략적인 상은 잡을 수 있었다. 그 상들이 내 속에서 패치워크(김명주의 글 참고)’되면서 아프꼼이라는 과제에 대한 해답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첫 번째 사건은 201212월 한나 아렌트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을 때였다. 아프꼼 식구를 처음 만났었고 아프꼼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당시 한나 아렌트의 논의에 관해 알고 싶어 찾아갔지만, 그보다는 아렌트의 논의를 빌어 아프꼼 또는 공동체를 꾸려가는 문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었다. 당시 권명아 선생님과 신현아 선생님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이후 조심스러우면서도 당당하게, 슬프면서도 기쁘게 아프꼼-공동체에 관해 얘기해줬다. 순간 그 고민과 갈등, 문제의식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사는 부산의 어딘가에서 진지하고 묵묵한 걸음을 하고 있는 사람-집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됐다. 약 반년이 지난 후 그 걸음을 함께 해보자고 했을 때 두려우면서도 숙연해졌던 건 그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헌데, 막상 아프꼼에 들어왔을 땐 흥겨움과 경쾌함을 느꼈다. 오자마자 환을 켜다에 참여했다. 행사의 바탕에는 지역문화와 인문학의 현재를 사유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중앙동 40계단과 그 주변 공간과의 새로운만남 즉 그 공간을 새롭게 걷고 만지고 꾸미고 있었다. 직접 찍고 만들고 쓴 시와 사진, 미술 작품 등을 중앙동 일대에 펼쳐놓고 다른 이들과 걸으면서 그를 감상하고 설명하는, 능동적인 행사였던 셈이다. 이 때문에 중앙동 일대는 기왕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과 함께 그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서사, 이미지를 곁들일 수 있었다. 아울러 중앙동의 현재와 부산 또는 한국사회 내에서 인문학의 현재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꼭지도 있어 무형적비자본적 가치를 지닌 무엇이 사라지고 외면당하는 현실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를 그저 비극이라 명명하지 않고 새로운 저항의 시발점으로 여기는 지점을 만들어가며 말이다(‘환을 켜다의 마지막 소라계단 환등장면 참고). 그렇다고 이 행사가 모든 점에서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더 많은, 다른 참가자와 이 흠겨움, 경쾌함을 즐기지 못한 아쉬움) 중앙동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는 계기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4시간여의 이 기이한 놀이 속에서 벗어나는 자가 거의 없었으며, 기실 낯섦과 부끄러움 탓이었겠지만 웃음과 미소도 지속하였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새로운 놀잇거리, 새로운 놀이의 장소를 발견한 즐거움이 순간적으로나마 표출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아프꼼의 무거우면서도 명랑한 시위에 참여하면서 또한 당황스러웠지만, 그것은 자연스레 두근거림으로 번져갔다.

당시 행사를 촬영했었는데 그를 편집제작하여 다른 이에게 이 기이한 놀이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당황스러움이 두근거림으로 이행된 이유였던 것 같다. 촬영편집한 텍스트를 보여주며 그의 신산함과 운동성, 그리고 정치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데에 흥분했던 것. 부산에서 인문학을 하거나 그 주변을 오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새로운 일이 전개되고 있음을, 좀 더 명랑한 방식으로 저항-시위는 전개될 수 있음을 소개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흥분했었던 것 같다(‘환을 켜다다큐멘터리는 이후 재편집을 하여 부산의 몇몇 영화제에서 상영을 시도해볼 예정이다). 그 흥분은 일찍부터 행사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배수아와 새벽에 극장에 이르러 더 켜져 갔다. 물론 행사 일에 맞춰 환을 켜다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했던 것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말이다. 5년 만에 다뤄보는 편집 프로그램이었기에 힘겨웠고, 또 아프꼼에서의 첫 생산물이기 많이 긴장했던 것 같다. 시간 또는 선택(편집과 사진 보정은 다양한 이미지 중에서의 선택/포기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과 부단히 싸워야 했던 문제는 있었지만, 새로운 만남 덕택에 새로운 나를 발굴해낼 수 있는 기쁨의 두근거림도 경험할 수 있었다. 오래도록 생각은 했었던 것이지만 색다른 프로필 사진을 찍어보는 것(사진역사의 영역 내에서 내 프로필 사진은 그리 색다른것은 적어도 나의 능력치, 상황 내에서는 색다른 것이었다), 머릿속에 떠올렸던 최대한 그에 가깝게 구현해보는 것 등 다양한 개인적 실험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 나아가 이는 내 생각과 신체를 통해 아프꼼의 모습을 꾸려볼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그 내 생각과 신체는 아프꼼의 토대 위에서 생성된 것이었지만 말이다.

아프꼼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더 용감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울러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매체적)놀이를 어떻게 더 잘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것 같다(이 지점에서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이런 발견이 아프꼼과의 관계 안에서 얻어진 것이기에 나만의 발견, 즐거움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식구와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언젠가 꼭 아프꼼 식구와 함께, 아프꼼의 이름으로, 또 다른 아프꼼의 이미지를 생산하고자 한다). 이미지 생산에 참여하며 더 분명한 두근거렸던 것은 지난 12월 중순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였다. 더 정확하게는 일본 오사카에 있는 대안인문학운동을 만나고 그와 접속했을 때였다. 권명아 선생님은 이행과 자기해방의 결속체들: 대안인문학운동의 곤경과 실험들이란 글에서 대안인문학운동에 대한 평가와 진단의 어려움 또는 불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 어려움, 불가능성은 각각의 대안인문학운동의 상황과 그에 따른 결속과 애씀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 했다. 각각의 운동이 지닌 상황과 정황을 온전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은 이상 평가와 진단은 불가능하거나, 외려 거부해야 할 상황이기도 한 것이란 것이다. 헌데, 개인적으로는 이와 같은 평가와 진단의 문제 이전에 대안인문학운동의 성과, 지속의 문제라는 것이 쉬이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대안인문학운동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거부극복하고자 하는 체제의 변화를 동반하지 못하면 근원적으로 실험적저항적인 순간에 그치고 이내 사라질 운명 또는 사라지기 일쑤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사라지더라고 그 순간을 정초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말이다. 이 같은 판단은 대안인문학운동에 대한 심원한 사유를 전개하지 못한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성과와 지속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보이지 못하는, 항상 곤경에 도달하는 대안인문학을 보고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내 판단은 오사카에서 아망또, KEY, 코코룸과 같은 대안인문학운동과 마주하면서 바뀌게 되었다. 8여 년 동안 지속한 아프꼼은 그러한 국내외의 다양한 여러 대안인문학운동과 결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 속에서 아프꼼과 같은 대안인문학운동이 특정 국가와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확장적인 연대를 실현하고 있음을 보았다.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해외의 대안인문학운동을 직접 경험한 것도 놀랐지만, 그 운동이 다양한 국가, 사람과 어울리고 있음을 확인한 것도 놀랐다. 그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아망또에서는 우리의 빼빼로과자와 같은 포키과자를 들고 그 대안적 공간-까페를 찾아온 작은 소녀를 만날 수 있었고, 쓰다 남은 전기난로를 가슴에 이고 찾아온 할머니도 만날 수 있었다. KEY에서는 (/)조선, 한국, 일본 어디에도 쉬이 속할 수 없어 다양한 국가적정치적문화적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나이 또래가 비슷해서 인지 왠지 동포 또는 친구라 부르고 싶기도 하다)과 얘기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 술집에서 왁자지껄한 그들을 보며 단지 고통만이 깃들어있는 것이 아닌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는 그들을 대면할 수도 있었다. 오사카의 넓고 낮은 동네 가마가사키에 있는 코코룸에서는 건설 붐이 끝난 이후 남겨진 노동자를 내치지 않고 외려 그를 존중하고 그의 삶의 생기를 복원해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 모습은 영화적이었는데(필자의 전공은 영화학이다) 코코룸의 주인이자 그 동네를 소개해주는 카나요상이 지나갈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할아버지를 많이 만났다. 할아버지들은 기쁜 얼굴로 카나요상과 인사했다. 아울러 그 동네 속에 홈리스 노인분들을 위해 마련된 표현 프로그램(요리, 미술, 운동 등으로 이루어진)’과 각종 보호시설(의료와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한 잘 꾸려져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제도적으로 잘 구축된 것만이 아닌 그의 역사와 심정을 잘 이해한 형태로, 최대한 안온하게 꾸려져 있음을 보았다.

이와 함께 특히 마음이 두근거렸을 때는 아망또, KEY, 코코룸에게 직접 말을 건넸을 때였다. 더 정확하게는 질문을 던졌을 때였는데 그때마다 마음속 한구석이 일렁였다. 적절한 질문일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언가 나의 선배, 스승, 동료에게 질문을 던지는, 연대를 요청하는 신호 같은 것으로 생각했기에 흥분했던 것 같다. 아망또에게는 그 공간에서 영화를 활용하는 방식을 물었고, KEY에서는 반쪽바리같은 혐오발화를 아무렇지 않게 남발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 코코룸에서는 세대론의 문제를 질문했다. 부족한 질문에도 모두 성실하게 답변해 주신 것이 기억난다. 답변 속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문제,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이 일본사회에서도 동일한 형태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질문이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익숙한 것, 달리말해 우리는 동시대에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그에 대응하는 해결책을 또한 다르면서도 같은 형태로 내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흥미로웠고 또한 마음 한구석이 두근거렸다. 나와 같은 고민, 곤경을 겪으면서도 그를 성숙한 방식으로 이겨내 가고 있는 이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랄까. 권명아 선생님의 지적대로 다양한 대안인문학 운동단체들이 함께-있음의 온도 차이를 서로 감지하고 인지하면서 그들 간의 애씀의 인터페이스와 같은 새로운 어소시에이션을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민하는 과정의 영역 바깥에서 경험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4개월 남짓 동안 실은 많은 경험을 했었던 것 같다. 당장 나에게 남아있는 흔적만 더듬어 봐도 중앙동 40계단을 더 즐겨 찾아가게 됐으며 배수아의 그 난해한 언어가 외려 난해한 존재를 더 수월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것. 세계는 자본에 의해서만 확장성을 갖는 것이 아닌 그에 버금가는 다양한 저항적 토대가 존재한다는 것. 권명아 선생님은 대안인문학운동 각각이 지닌 애씀과 온도차이 때문에 그에 대한 판단과 성과를 가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였지만 적어도 그 이후, 즉 운동 이후를 적극 상상, 사유해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프꼼이 누군가의 내면에 남긴 흔적이, 나에게서처럼 적지만은 않을까란 사실. 각각의 해석은 다르겠지만, 그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누군가에게든 남아있다는 것. 8여 년 동안의 그 운동은 당장 가시화하지는 않겠지만, 그 흔적을 통해 인문학이 비단 먹물에 머무르지 않는 구체성을 띠고 있는, 띨 수 있는 무엇임은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그러한 실험적인 운동 속에서만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그때야 자기해방을 생각할 수 있는 프레임을 찾게 될 수 있다는 것도 느긋한 시간 속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대안인문학운동은 궁극적으로 많은 이의 해방을 지향해야겠지만 이 속박에 익숙해져 있는 사회 속에서 그 주체의 해방 그리고 그것의 번져나감을 모색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세계와 나를 만날 것에 대한 두근거림, 만난 것에 대한 두근거림을 다른 이에게도 흘려보내면서 저항적인, 명랑한 전염병을 만다는 것. 별다른 논의를 끌어오기보다 나의 경험과 즐거움을 솔직히, 꼼꼼히 적고자 했던 건 다른 이 또한 이 두근거림을 찾아봤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아직 적은 경험 때문에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진 못하지만, 누군가에게 내 운동에의 경험을 알리는 이 시간 속에서도 두근거림은 지속하고 있음이 전달되었으면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