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자기 해방

 

 

차가영

 

 

누구나 꿈꾸는 공간이 있다. 우리는 그곳을 가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쓰지만 그 공간을 실제로 만들어내기는 참 어렵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들은 그것이 더 심하다. 다들 한 공간에 속해서 자신을 거기 맞추기에만 애쓰고 있고, 자신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진짜 자신이 꿈꾼 공간이 아니기에 그 속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이 된다. 나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공간에 있어도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던 나에게도 그랬다. 무엇을 해도 그 공간은 내가 갈 수 없는 공간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이것저것 기웃거려 보고, 무엇이든 다 해보려고 욕심을 부렸다. 그런 나에게 연구모임 아프꼼의 행사는 이상적인 곳이었다. ‘함께 있는 공간’이라고 느꼈다. 구성원 모두가 행사에 몰입하고 푹 빠져있는 것을 느꼈다. 졸업을 하면, 아프꼼처럼 자신이 꿈꾸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내 스스로 찾고, 만들 수 있기 위해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아프꼼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프꼼의 안은 내가 보았던 것과 달랐다. 꿈꾸던 공간에 들어왔지만 내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정말 함께-있음의 온도차를 느꼈다. 나는 뜨겁게 달아오르려고 하는데, 사람들은 차갑게 식어 굳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행사 준비를 하는 도중에 들어왔기 때문에 아프꼼이 하려는 것에 대해 이해를 잘 못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서 사람들에게 계속 붙어 있으려 했다. 아프꼼에서까지 이방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바뀌는 것은 없었고, 함께 있으면서도 춥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은 지쳐보였다. 나는 모든 것이 궁금하고, 묻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그 궁금함에 지쳐있는 것 같았다. 서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지만 침묵 속에 들어와 있는 거 같았다. 새 공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나는 무엇인가를 한다는 즐거움보다는 피로감을 느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계속 이곳에 있을 수 있을까.사람과 부대끼는 것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공간에 대해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일까.

 

 

그런 순간에 보게 된 “이행과 자기해방의 결속체들-대안인문학운동의 곤경과 실험들”은 내가 아프꼼에 대해 조금 알게 되는 기회였다. 하나의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 무턱대고 덤비면 버틸 수가 없어 결국 이방인인 채로 남을 수밖에 없고, 그런 내가 있는 공간은 나에게 오지 못하고 분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이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렴풋이 깨달았고, 왜 팀원들이 피곤해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프꼼이라는 공간에 어떻게 있어야 할까에 대해 다시 고민할 수 있었다. 계속하지 않으면 지지부진해질 거라는 말이 이제야 피부에 와 닿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 계속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직 래인커머가 아니었다.

 

 

올해의 아프꼼은 이제 막 들어온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마 아프꼼이 생긴 후 가장 많이 변화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절대 무너지지도, 모습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둥 권명아 교수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시면서, 그 기둥 아래에 있던 아프꼼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제 기둥의 일을 아프꼼의 팀원들이 해야 한다. 그저 무너지지 않게 받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아프꼼 팀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이번 행사를 통해 알게 되었고, 팀원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애씀’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프꼼에서 만약 누군가가 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되고 불안을 느끼다가 무너지게 될 것만 같다. 구성원은 적고 할 일은 넘쳐나지만, 우리가 앞으로 할 행동들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힘을 냈으면 한다.

 

 

대학은 계속 우리더러 나가라고 하고,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도 안하는 일이라며 놀림 받는다. 이런 공간에서 그들에게 우리는 이방인이다. 우리를 내쫓기 위해 계속 애를 쓴다. 이방인인 우리가 더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아마 지금보다 더 애를 써야하고, 더 지쳐야 한다는 생각을 글을 읽으면서 느꼈다. 이런 지속 불가능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계속 이방인이 되지 않고 생존하려면, 더 나아가 실험과 발명을 계속 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조금 더 뭉쳐야 하지 않을까. 이방인의 자기해방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으로 가능해지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뭉치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실험이 되고, 발명의 과정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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