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없는 아망토의 영화

 

 

엄준석(래인커머)

 

 

 

아망토 까페 입구


 연극과 달리 영화는 ‘노동의 영역’을 보여주지 않는다. 즉 “연극이 실연(實演)으로써 노동의 과정 속으로 관객을 동참시키는 것이라면, 영화는 제작과정이라는 노동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영화적 현실로 관객을 유인하는”[각주:1] 것이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의 몸짓과 눈빛, 말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침묵에 이르기까지. 연극을 볼 때 우리는 결말-텍스트의 완결에 이르는 노동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노동량과 질까지 말이다. 극이 끝나고 난 뒤 이는 더 분명해진다. 배우와 스텝이 인사를 한다. 극에 빠져있던 우리의 감각은 그 순간 살며시 깨어나게 되고 이것이 누군가의 구체적인 노력과 의지로 만들어진 것임을 인지하게 된다. 반면 영화는, 1960년대 유럽에서 부흥했던 누벨바그식의 자의식적 영화가 아니라면, 노동의 영역을 은폐한다. 아니, 그렇게 은폐하는 것을 매체적 특질로 갖고 있다. 재현된 이미지는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렌즈, 필름, 영사 등과 같이 제2의, 제3의 공간을 거치면서 가공되고 변형된다. 결과적으로, 연극에서와 같이, 극에 매몰된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차원이 없기에 ‘강한 동일시’[각주:2]가 작동되는 것이다.
 노동의 영역을 은폐한 영화는 매혹적이고 신비스러워 보인다. 관객은 새로운 세계 또는 꿈꾸었던 세계에 무리 없이 들어설 수 있게 되고, 그 끝이 아쉬워진다. 이음새 없이 만들어진 옷 또는 기계가 주는 감동처럼, 그 속에 어떤 노동력이 투여됐든, 매끄럽게 마름질된 표면 위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이 꿈결 같은 놀이가 이전 같지 않아진다. 배우와 스텝이 화면에서 툭하고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너는 영화를 보고 있어”라고 하는 순간이 종종 등장하는 것이다. 다양한 예를 들 수 있겠지만 가깝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줌렌즈’가 등장할 때를 들 수 있다. <극장전>(2006)에서였던가. 영화의 첫 번째 장면부터 줌인과 아웃은 적극적으로 사용되어 “내가 극장에서 <극장전>이란 영화를 보고 있구나”하게끔 한다. 즉 영화에의 동일시를 방해하는 순간이 나오고 그때마다 화면 너머, 카메라 뒤의 어떤 인물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인식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모든 영화가 객관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영화는 강력한 동일시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영화의 신비주의가 깨지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고 외부적 조건, 그러니까 텍스트 외부에 있는 영화제작 방식, 기기의 대중화에 의해 영화는 더 이상 숭고의 대상이 아니게 되어있다. 2010년 칸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한 바 있는, 우리사회의 가장 우수한 영화 <시>(2010)에서도 관객을 응시하는 소녀의 노동이 마지막 장면에서 목격됐다. 2014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포함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노예12년>(2013)과 같은 근작에서도 관객을 응시하는, 과거 불합리한 노동과 착취의 역사를 영화적 노동으로 알리는 영화도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 노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데 있다. 1965년 소니SONY가 만든 비디오카메라 포타백에서부터 현재의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영화적 노동과 더 이상 거리를 두지 않는 상황에 있고 이미 언제 어디서 영화를 만드는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야말로 이제 가장 만만한 매체이지 않을까. 여기 초등학생이 만든 <자작 FPS!!>(2011년 예상)에서 우리는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읽을 수 있다. 아파트 계단에서 FPS(First-person shooter) 즉 ‘일인칭 슈팅 케임’을 영상(화)한 이들의 작품은 어린 나이에도 영화적 감각을 체화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현장의 긴박함을 보여주는 핸드헬드Hand held 촬영은 물론이고, 조르주 멜리어스의 <달나라 여행>에서 마술로 사람을 사라지게 했던 것처럼 시체를 사라지게 하는 편집, 그리고 총격 직후 “헤드샷‘ 사운드가 나온 것처럼 적재적소에 활용된 사운드까지. 이제 우리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을 무시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 영화적 주체로 승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발화할 수 있는 ’친숙한‘ 창구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노동을 수행할 것인가, 우리 또한 텍스트를 만드는 또는 예술을 만드는 노동에 참여할 수 있다 한다면 그 경험을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가가 숙제로 남겨질 것이다. 흥미롭지만 폭력적인 서사 및 이미지 재현에 자기의 노동력을 투여하고 있는 <자작 FPS!!> 속 노동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비폭력 또는 반폭력적인 텍스트를 생산하는데 노동력을 함께 투여했던 경험을 했었더라면 그들은 더 지속적이고 확장적인 의미를 갖는 텍스트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다양한 사례를 언급할 수 있겠지만 일본 오사카에 있는 대안공동체마을 ‘아망토’에서 영화적 노동을 생산적인 형태로 활용하는 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견 노동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혹독함을 은폐하고 회수되지 않는 잉여가치를 감춘 자본주의 체제의 그 신비주의와 영화의 신비주의는 닮아 보인다. 우리는 화폐를 지불하고 영화를 볼 때, 모순 없이 돌아가는 신비로운 그 세계에 제 몸을 맡기는 것에 다름없는 행위를 하게 된다. 아망토는, 앞서 언급했던 영화처럼, 그런 신비를 파쇄하는 노동을 전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적 노동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영화 또는 자본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텍스트 또는 경험을 만든다. 아망토는 어느 샌가 우리가 영화적 노동을 수행하고 있고, 영화적 삶이 마을에 펼쳐져 있음을 안다. “연극에서는 막 뒤에 그림도 있고, 건축도 있고, 시도 있고, 테이블도 있고, 패션을 갖추고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현대에 와서는 영화가 되었지요(과거에는 연극이었지만). 그러니까 그 마을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바로 영화라는 것입니다.”[각주:3] 이는 즉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떤 의미를 지녔든, 다름 아닌 ‘우리의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안다는 것이다.

 

 

 

아망토 준 상과 아프꼼의 권명아 선생님 인터뷰 모습

 

 

 다른 영화를 찾아갈 것도 없이, 다른 노동을 수행할 필요도 없이 지금 있는 삶을 충실히 살고 그를 ‘영화적’으로 잘 모았을 때 ‘충분히’ 영화가 될 수 있음을 안다. “모두 영화를 만들지는 않아도 다들 조금씩 영화에서 하나의 참여를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찍었던 영화들이 상영이 되었습니다.” 영화가 더 이상 신비롭거나 무섭지 않다는 것. 이는 곧 자본의 세계가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자, 그 외부의 삶을 이미 경험해본 사람들이 편안하게 전개할 수 있는 노동이자 실험이 아닐까. 이런 측면에서 외려 영화를 갖고 노는 그들의 모습이 흥미롭게 보이며, 딱히 세속적이지도 않아 보이는데서 어떤 긍정적인 지점도 읽을 수 있게 된다. “아마추어로 노래하는 친구가 영화로 상영되면서, 기획사에서 연락이 와서 프로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영화는 서로의 생존이 되는 좋은 기반이 됩니다. 세계적인 거나, 프로는 꼭 못되더라도, 지역에서의 스타가 될 수는 있고, 또 마음에 남는 경험을 만들 수 있는 거니까요. 영화를 촬영하면 유명한 로케이션이 되어서 사람들이 보러 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를 알리는 거죠. 그래서 그 영화를 만듦으로써 각자가 하는 사업들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의미입니다.”
 아망토는 우리의 노동이 은폐된 것과 함께 우리‘들’의 노동력 또한 은폐된 채 영화가 만들어지고 또는 이 세계가 만들어진 것임을 안다. 즉 각각의 노동이 모종의 ‘관계’를 맺어, 그것이 무엇이었든, 이 결과를 만들어냈음을 감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금 그의 말을 들어보자. “영화를 만든다는 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 각자의 비지니스가 바쁘더라도 함께 하는 일에 힘을 합치게 되는 경험을 쌓게 됩니다. 촬영하는 작품이나 페스티발은 끝나면 종료지만, 그걸 만들기 위한 노력은 경험으로써 남기 때문에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를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영화를 완성하기 전까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아마도 아망토는 영화의 존재론적 특질을 따로 공부하는 그런 이론적 경로는 밟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설명하는 그의 말 속에서 영화 언어 또는 개념은 발견할 수 없다. 그저 일상적인 말을 통해 영화를 설명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 속에서 아망토가 영화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그를 삶과 관계 속에 이렇게 녹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 대한 궁극적인 앎 또는 깨달음은 이런 ‘영화 없음’을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아망토 까페 안, 카운터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에게 영화는 부차적인 것이거나 없음의 무엇이 된 듯하며, 더 나은 관계, 삶의 영화를 전유-실험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나의 영화를 만듦으로써 돈 주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만드는 과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 “공동체를 만들 때, 다양한 프로젝트가 있을 수 있지만, 영화가 가장 이해하기 쉬워요. 영화는 끝나도 영화가 남기 때문에, 작업은 끝나도 다시 보면서 그 기억을 다시 되새길 수 있기도 해요.” ‘영화는 끝나도 영화가 남’는다. 즉, 노동은 끝나도 노동의 흔적은 남는다. 아니, 그 흔적을 남겨 ‘다시 보면서 그 기억을 다시 되새길 수 있’게 그렇게 읽고 공유해야 한다. 아망토는 노동의 양과 질이 각기 다른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것임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조금씩 영화에서 하나의 참여를 할 수 있는 것’). 그렇기에 매번 누가했든지, 어디서 했든지 그를 수평적으로 놓고 오래 존중하려 한다. 삶과 관계에 대한 성숙한 문제의식이 영화를 없애는 즉 영화를 압도하고 있다. 공동체에의 경험과 실험 그리고 지속은 그 견고해 보이던 세계를 초월하는 힘을 갖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이 힘이야말로 우리가 이 신비로운 세계를 타파할 수 있는 새로운 신비-비밀로 인식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 본고가 참고한 아망토와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엄준석: 엄준석입니다. 같은 ‘준’입니다. 이전의 인터뷰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것에 대해서 중요시한다는 것을 보았었어요. 그것이 공통의 감수성을 만드는 의미를 갖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과정에 대한 것들을 알고 싶습니다.

 

아망토, 준 상: 영화의 첫 번째 중요한 점은, 상호참가입니다. 1990년대 처음 시작할 때는 연극이 공동체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이건 유럽의 경우인 것 같습니다. 연극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는 유럽의 방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극에서는 막 뒤에 그림도 있고, 건축도 있고, 시도 있고, 테이블 입고, 패션을 갖추고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현대에 와서는 영화가 되었지요. 그러니까 그 마을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바로 영화라는 것입니다. 모두 영화를 만들지는 않아도 다들 조금씩 영화에서 하나의 참여를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찍었던 영화들이 상영이 되었습니다. 아마추어로 노래하는 친구가 영화로 상영되면서, 기획사에서 연락이 와서 프로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영화는 서로의 생존이 되는 좋은 기반이 됩니다. 세계적인 거나, 프로는 꼭 못되더라도, 지역에서의 스타가 될 수는 있고, 또 마음에 남는 경험을 만들 수 있는 거니까요. 영화를 촬영하면 유명한 로케이션이 되어서 사람들이 보러 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를 알리는 거죠. 그래서 그 영화를 만듦으로써 각자가 하는 사업들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교육의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 각자의 비지니스가 바쁘더라도 함께 하는 일에 힘을 합치게 되는 경험을 쌓게 됩니다. 촬영하는 작품이나 페스티발은 끝나면 종료지만, 그걸 만들기 위한 노력은 경험으로써 남기 때문에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를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영화를 완성하기 전까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나카자키쵸는 서일본에서 가장 영화촬영에 협력을 잘하기로 유명합니다. 방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도와주시는 것처럼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데 우리가 도와줘야지,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관광객이 오면 그 사람들이 묵는 곳을 제공해주거나 하는 것이 또 비지니스가 되는 것이지요. 보통 일반 사람들이 사업을 해도 홈페이지를 만든다든가 돈을 내고 만들어야하는데, 하지만 홈페이지 만드는 건 돈은 나가지만 인간관계는 안 만들어져요. 그래서 그런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영화를 만듦으로써 돈 주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만드는 과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보통은 여자가 비지니스를 하면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러면 여기는 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있고 여성이 비지니스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아이를 돈 주고 맡기지 않고 옆 사람과 공동체를 만들면 그 안에서 해결이 되고 비용도 줄일 수 있어요. 그래서 공동체를 만들 때, 다양한 프로젝트가 있을 수 있지만, 영화가 가장 이해하기 쉬워요. 영화는 끝나도 영화가 남기 때문에, 작업은 끝나도 다시 보면서 그 기억을 다시 되새길 수 있기도 해요.

 

 

 

 

  1. 박훈하, 「새로운 인터페이스, ‘광안대로’에서 바라보기」, 오늘의 문예비평 48호, 2003년, 101~2. [본문으로]
  2. 박훈하, 위의 글. [본문으로]
  3. 이하 아망토의 진술은 아망토의 대표 준상과 아프꼼과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것이다. [본문으로]

 

 

14일: 아프꼼이 일본에 왔다!

 

 

차가영(래인커머)

 

 

 

  2월 13일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 행사가 끝난 바로 다음 날, 우리는 바로 일본으로 향했다. 그동안의 행사 준비로 고단해진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 ‘아프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일본에 도착 후 짐들을 숙소에 놓고, 우리는 바로   첫 목적지인 ‘아만토 마을’과 마을의 핵심인 카페 ‘살롱 드 아만토’가 있는 나가자키초에 가기 위해 전철과 지하철을 탔다. 일본의 철도는 노선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여행 내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일행을 잃을까 하는 불안 때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어를 배워서 나중에 다시 일본에 오게 되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지하철을 꼭 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긴장감이었다.

 

 

 

 

  

  나가자키초에 내려 트리 축제 기간의 남포동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번쩍번쩍한 길들을 지나 20분 정도를 걸으니, 조용하고 좁은 골목이 나타났다. 우리가 나가자키초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만토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상점들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고, 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오늘 방문할 ‘살롱 드 아만토’ 카페도 부산에 있는 많은 대안 공간처럼 힘들게 운영이 되는 것일까, 유명하다는 글을 읽었는데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두운 골목길을 약간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걸었다.

 

 

 

까페 ‘살롱 드 아만토’ 외부(1)

 

 

까페 ‘살롱 드 아만토’ 외부(2)

 

 

 

 

 

까페 ‘살롱 드 아만토’ 외부(3)

 

 

 

 

 

 

까페 ‘살롱 드 아만토’ 내부(1)

 

 

까페 ‘살롱 드 아만토’ 내부(2)

 

 

까페 ‘살롱 드 아만토’ 내부(3)

 

 

  처음 오는 길인데다 날까지 어두워서 우리는 길을 좀 헤매다 ‘살롱 드 아만토’를 찾아내었다. 처음 카페를 발견하였을 때, 우리 다 같이 으잉? 여기야? 하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카페 외부가 전부 덩굴로 뒤덮여 있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카페보다는 작은 집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곳이 ‘살롱 드 아만토’일 거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살롱 드 아만토’는 들어올테면 뭐, 언제든지 들어와. 하는 모습으로 덩굴 사이 작은 불빛을 보이고 있었다.

 


  덩굴 속에 묻혀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은은한 빛으로 꾸며진 작은 공간이 나왔다. 조그맣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내 불안이 괜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의 내부 사진 속 공간 외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실례일 것 같아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테이블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또 한쪽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책을 펴놓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두 자주 여기에 오는 것처럼 편하게 앉아있었는데, 직장인과 학생의 조화라는 것이 이 조그맣고, 조용한 동네 카페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에 새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또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카운터도 있었는데, 마침 카페 사장님인 준 상이 계셔서 내일 인터뷰 시간을 정한 뒤 우리는 카페 구경에 돌입했다. 모든 것이 쓰던 물건을 재활용 한 곳답게 의자는 박음질부분이 터져있었고, 테이블은 삐걱거렸다. 손때 묻고, 오래된 물건들이 카페를 이루고 있어서인지 거기에 있었던 젊은 직장인, 학생들, 그리고 새로 온 우리의 모습이 이질적이고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오래된 것에 새 것이 있으면 티가 나는 것처럼. 그래서 준 상이 왜 카페를 전부 재활용품을 가지고 꾸며놓았을지 궁금해졌다.


  시간이 늦어지기도 하고, 배도 고파지고 있어서 우리는 간단히 차 한 잔을 한 후, 내일 만날 것을 이야기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내일 과연 오늘 생각했던 궁금증이 해결될까?

 

 

 

 


 

 

 

 

 

 

사도의 윤리란 무엇인가?

 

 

오영진

 

 

 우선 윤인로의 작업에 대해 비평을 하기에 앞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이상이나 김수영같은 작가는 한국문학연구자에게 일종의 해석학적 쟁투가 벌어지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전자는 특유의 난해함과 수수께끼로 이루어진 ‘미로’로서, 후자는 무엇이든 떼어 잘라먹을 수 있는 ‘먹기 좋은 빵’이 풍부한 ‘곳간’으로서 말이다. 말하자면 ‘이상’연구는 21세기를 넘어선 지금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힐리스 밀러라면 이것이야 말로 탈출 불가능한 텍스트의 미로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해석을 거미줄에 얽혀 있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으로 은유해 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해석은 오히려 그 거미줄에 또 다른 줄을 첨가하는 일에 가깝다. 다시 말해 미로를 탈출하기는커녕 미로를 건설하게 된다. 비아냥이 아니다. 문학해석학의 무한한 동력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상은 “불세출의 그리스도”로서 자신을 지칭한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詩는 절멸의 시대에 던지는 메시아의 메시지로 이해된다. 이는 그와 기독교 표상 간 문제를 다룸에 있어 ‘이상’이 그리스도의 사도처럼 배치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들도 이상의 사도로서 그 계보 속에 무의식적으로 배치된다. 우리는 수많은 이상의 사도들을 보아왔다. 시인 이상이 채 하지 못했던 말들을 복원하여 복음으로서 전달하는 것을 신념으로 삼아온 이들의 역사를 연구사 검토라는 이름으로 마주한다. 윤인로의 글에도 이러한 사도들의 이름이 자주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는 이 계보 속에 놓이게 되는가? 이 점에서 윤인로의 작업의 의미가 파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해석학이 아니라 윤리학으로서 ‘이상’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윤인로’라는 사도의 윤리를 읽을 수 있었다. “그곳에 이상과 함께 섰을 때에 할 수 있는 말의 힘은 어떤 질감을 가진 것인가”(2회연재분). 읽기 행위는 감응을 통해 존경심뿐 아니라 책임감을 낳는다. ‘이상’을 읽고 난 후 우리는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러니까 ‘이상’의 텍스트는 수수께끼로서가 아니라 질문으로서 작동한다. 바흐친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예술에서 체험하고 이해한 모든 것이 삶에서 무위로 남게 하지 않으려면, 나는 그것들에 대해 나 자신의 삶으로써 책임을 져야 한다.”(미하일 바흐친,『예술과 책임』, 『말의 미학』, 길, 2006. p. 25.)

 반면, 이러한 언급은 어떠한가? “(그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해서 풍자와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이상문학이 1930년대라는 시대를 타고 넘어서 가질 수 있는 보편성이다. 이제 남은 일은 페가수스의 날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 오르는 일이다. (중략) 이상을 20세기 1930년대로 가두어 놓아서는 안 된다.”(정정호, 「이상시의 “이상한 가역반응”」,『비평문학』제 38호, 2010. p. 503.) ‘이상’의 사도들은 왜 ‘이상’을 보편-세계문학으로 위치시키려 하는 경향이 있는가? 그리고 왜 이 작업은 자신의 불행이 아닌 식민지 근대, 아니 나아가 근대성 전체와 싸웠던 메시아가 되는 방식으로만 이상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같은 태도야말로 ‘이상’이 제기했던 질문을 의미 있게 반복하는 일을 막는다. 단지 센티멘탈한 ‘이상’을 만드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상연구에 있어 ‘순교’라는 레토릭을, ‘원한’을 제거해 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위령제를 지내지는 말자는 말이다.

 다행히 윤인로는 ‘이상’을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이상’을 경유해 ‘지금’-‘여기’를 바라보려 한다. 그는 ‘이상’의 ‘도주’에 대해 말하다가도 ‘김진숙’의 ‘점거’에 대해 논한다. 이 둘은 “현재의 고통 속으로 과거와 미래를 합수중”이라는 점에서 같다. 이 난데없는 침입이야말로 ‘이상’이라는 문제제기가 온당히 반복되는 장면일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그가 ‘이상’을 파국의 지형도 속에 넣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히고, 초인의 시선을 부여하고, 절멸이자 구원의 시를 노래하게 하는 데에는 동의한다. 이것이야말로 어디까지 오염된 것인지도 모르는 후쿠시마의 방사능과 프레카리아트들의 불안과 냉소, 냉전질서의 반복조짐, 부정선거의 음모 등이 난무하는 ‘지금’-‘여기’의 문제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도의 윤리란 신의 말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반복시키는 일에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까마귀가, 엑스레이의 투시가, 예수 아니 바울이 다시 필요한 것이다.

 시인들은 종종 성인의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자신의 시집을 ‘새로운 성경’이라고 부르며 사랑의 이미지를 주조한 월트 휘트먼의 ‘예수’, 지천명의 윤리 속에서 자기성찰을 꾀한 김수영의 ‘공자’, 시인이란 세계를 주유(周遊)하며 보살피는 ‘석가’나 ‘수운’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역설한 신동엽이 그렇다. 이들에게 성인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세계를 향한 자기이해 그리고 그로 인해 세워지는 새로운 “도덕질서의 이미지”(찰스 테일러, 『근대의 사회적 상상』, 이음, 2010. p. 49.)까지 포함한다. 윤인로는 이상에게 ‘예수’의 페르소나가 있으며, 이는 세계의 파국을 목전에 직감한 최후의 예언자로서 작동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당장의 부스러기를 구원하자는 목소리가 아니다. 대신 “붕괴와 파국이라는 악령 메피스토펠레스”의 일을 수행한다. 그는 근대의 속도를 제어하기보다는 가속화한다.

 그런데 이 속도는 빛의 속도를 지향하고 급기야 제로로 향한다. 먼 과거를 불러들여 마취시키는 ‘향수의 시’가 아니라 미래를 가속화시키는 ‘미래의 시’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속도에 중독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속도를 제로로 돌리기 위해 되려 빛의 속도를 지향한다. 폴 비릴리오에 의하면 원형의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달리는 일은 실상 정지상태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정지는 빛의 속도와도 같을 것이다. 윤인로가 논하는 ‘도주-속도’와 ‘점거-정지’의 변증법은 이런 논리에서 성립하는 듯 보인다. 마리네티가 속도의 미학을 통해 윤리를 사상시켰다면, 이상은 속도의 윤리학을 통해 미학을 부숴버린다. 윤인로에 의하면 이러한 파괴가 시인에게 ‘장래’에 대한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하고 강제한다. 즉 아름다움이 아닌 책임을 안긴다.

 또 이러한 자기소멸은 도착적인 죽음충동이 아닐 것이다. “갈갈이 찢어진 사도의 몸이 법을 기립시키고 재정초하는 장소”(5회 연재분)가 되기 때문이다. 각혈에 물든 이상의 몸은 병리학적 대상이 아니라 “분만된 보석”이 매번 거듭 탄생하는 장소인 것이다. 여기에 작동하는 메시아의 윤리는 아버지-신의 명령을 따라 죽어야 할 운명에 직감하고 체념한 일이 아니다. 윤인로에 의하면 새벽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이다.

 그리하여 윤인로는 시인 이상에 대해 속도중독이 아닌 초속도-정지로, 도착적 죽음충동이 아닌 (반복적으로) 도래할 역사의 기다림으로 그 이해의 축을 변경하고 있다. 이는 이상 텍스트 해석학에 한 조각을 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인로의 글은 시인 ‘이상’의 문학과 기독교적 세계관에 관한 비교연구 같은 것도 아니다. 특정한 종교적 표상이 작품 속에 반복되는 것이 그리 중요한가? 대신 임박한 파국에 맞서는 윤리적 주체를 ‘이상’을 통해 고민해보는 일은 중요하다.

윤인로의 글은 해석학의 놀이가 아니라 윤리학의 명령을 수행중인 것이다. 대체로 윤인로의 기획에 동의를 하는 듯 보이는 필자의 글은 그러나 그 모자란 만큼의 차액을 내놓기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오영진 : 현대시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문화론으로도 그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최근엔 당대의 감정의 구조같은 것을 포착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문화평론가(잡지 쿨트라2014 봄호 데뷔), 수유너머N 회원, 인문학협동조합 교육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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