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은실  (한신대 연구교수)

 

70-80년대였다. 어릴 적 살던 곳 주변 담벼락에는 (당시는 ‘국민’학교라 불리었던) 초등학교를 들어갔거나 아직 입학을 하지 않았지만 어깨너머로 글을 깨우친 아이들이 붉거나 검은 글씨로 크고 작게 써 놓은 낙서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특히, 초등학교 근처 담벼락이 심했다. ‘얼레리 꼴레리 00랑 00랑 00했데요’라는, 군데군데 말이 00으로 비워져 있는 낙서도 있었다. 사실 그런 류의 낙서가 태반이었다. 가끔 실명도 등장했다. 정확히 무슨 말을 쓰고자 했는지를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지만 또 무슨 말인지를 누구나 대충은 짐작하게 되는 내용이기도 했다. 종종 욕설 또는 생식기 모양을 한 그림이 그려져 있던 적도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내용들이 태반이기는 했지만 아무도 굳이 그 낙서를 누가 왜 언제 했는지 밝히려 애쓰지는 않았다. 담벼락 욕설은 일상에 불쑥 끼어든 불쾌한 일이기는 했지만 일상을 휘저을 만큼의 영향력은 한 번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담벼락 욕설은 담벼락 욕설의 세계가 있었고 일상은 또 일상의 질서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낙서자의 마음을 은밀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을 터였다.

 

요즘은 담벼락에서 이런 낙서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대신 인터넷 게시판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여성 혐오, 소수자 혐오, 이주민 혐오, 특정 지역민 혐오, 독재자 칭송, 역사 왜곡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온상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아마 대표적인 곳이 아닐까싶다. 그리고 그 내용은 훨씬 더 심각해져서 특정인들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도를 넘어 표출되고 있기도 하다.

 

일베는 ‘디씨 인사이드(디씨)’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독립해 나온 일종의 파생 사이트이다. 지난 6월 7일, 팟캐스트(podcast) “김종배의 이슈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 출연한 디씨 운영자 김유식씨는 디씨와 일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래 ‘일베’는 디씨에서 하루 동안 가장 조회 수가 높은 게시물들을 따로 모아두는 게시판이었다. 이런 게시물들 중 상당수는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올라온 소위 ‘선정적 제목을 단 음란물’이었다. 그런데 운영자가 사이트 관리 차원에서 음란성 게시물들을 지속적으로 삭제하자 이 게시물들이 삭제되기 전에 미리 다른 곳에다가 퍼다 모아두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파생되어 생겨난 사이트가 바로 ‘일베’다. 의사이자 컴퓨터 천재라고 알려진 모씨가 주도적으로 만든 사이트라고 알려지기도 한 일베는 이후 약 8명 정도가 함께 운영해 왔고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수의 사용자를 모으게 된다.

 

디씨에서 유래된 일베가 갖는 특징 몇 가지를 보면 흥미롭다. 우선, 이런 인터넷 사이트의 특성에 대해 김유식씨는 흔히 생각하게 되는 익명성을 드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맞대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든다. 2007년, 인터넷 실명제가 전면화되면서 사실상 익명성을 완전히 보장받는 것이 한국 내 사이트에서는 이미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대면적 관계라는 특성은 게시글에서 서로 존댓말을 쓰지 않는 문화, 즉, 반말문화로 변천한다. 반말은 이 사이트에서 일종의 규범이 되어 있다. 이로 인해 연령, 성별, 상하 위계 등 대면 대화에서 지켜질 것이 기대되는 대화 규범은 해체되고 대화 상대들 사이에서 특정한 형태의 ‘평등’이 실천되고 있다.

 

방종적 ‘자유’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높은 조회 수를 얻고 싶어 하는 혹은 주목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미끼가 될 수 있는 선정적인 제목의 게시글이나 ‘음란’ 동영상물을 올려놓기도 하는데 일베에서는 그 누구도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자기 마음대로 하고 누구도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방종적 ‘자유’가 철저히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누구 하나가 특출하게 영웅시되거나 칭송받는 특별한 위치를 누리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규범처럼 공유되어 있다는 것이다. 튀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나대니즘’이라고 보고 철저히 이런 이를 ‘디스’, 즉 비난하고 흉봄으로써 튀는 행위를 배격한다. 오프라인에서 서로 만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도 특정 사용자들끼리의 유대가 생겨나고 이를 통해 특정인이 사이트에 대한 장악력을 갖게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마지막으로 또한 흥미로운 특징은 이들이 보이는 소위 ‘팩트(fact)’ 숭배주의다. 이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 데에는 일련의 과정이 있어 보인다. 김유식씨에 따르면 인터넷 사업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 지원이 시작된 ‘90년대 후반 이후 노무현 대통령 선출과 탄핵반대 운동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은 소위 좌파성향 사용자들이 여론세력으로 자리 잡은 경향이 있었다. 이는 인터넷 상에서 우파성향을 대놓고 드러내기가 힘들었던 이들의 불만을 키워왔는데 이처럼 불만에 찬 소위 ‘우익’ 인터넷 사용자들이 소위 ‘진보’세력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한편에 이미 위치해 있었다. 이에 더해 노무현 정부 말기, 실정으로 평가되는 이런저런 일들이 터지자 야당을 지지해 왔던 이들 중에서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이들이 등장했는데 이를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자 이에 대해 불만과 반발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진보’ 세력에 대해 각을 세우는 또 다른 한편에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 이명박 정권 초기에 터진 ‘광우병 사태’와 ‘촛불’ 정국 하에서 미국산 소고기와 광우병에 대한 소위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갑론을박에 대해 일종의 의혹과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또 한편에 등장하게 된다. 때마침 대중화되고 있었던 디지털카메라는 소위 ‘인증샷’ 문화를 형성하는 중이었고 이런 분위기는 그동안 인터넷 공간에서 ‘숨죽이며’ 지내오던 ‘불만을 가진’ 인터넷 사용자들의 대거집결과 만나게 된다. ‘광우병 사태’와 ‘촛불’은 곧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인터넷 이용자들의 상당수(김유식씨는 오십퍼센트 정도라고 말한다)가 소위 ‘보수/우파 성향’으로 ‘돌아섰’다고 말해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일련의 전개과정에서 핵심적인 영향력을 가진 용어로 등장한 것이 바로 ‘팩트’라는 것이다. ‘팩트’ 중심주의는 ‘인증샷’, ‘감성팔이’와 같은 신조어의 등장과 맞닿아있다.

 

디씨에서 유래된 일베의 이러한 문화는 흥미로운 점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반말, 반영웅주의, 팩트 중심주의, 반규제주의 등이 가리키고 있는 어떤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반말을 평등 추구로, 반 영웅주의를 개별 개인의 중요성으로, 팩트 숭배를 이성과 합리성 중심주의로, 규제의 부재를 자유의 실천으로 바꿔 말해 보면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개인, 자유, 평등, 이성중심주의(혹은 합리주의)를 핵심가치로 하여 부상한 근대이다.

 

일제 식민지, 6.25 내전, 이후 진행된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며 진행된 한국사회의 근대화는 소위 서구사회의 근대화 과정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며 전개되어 왔다.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겪어야 했던 탓에 제도적, 형식적 차원에서의 근대성과 일상적, 내용적 차원에서의 근대성은 상이한 속도로 서로 어긋나며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산업화와 경제 개발은 군사독재 하에서 이뤄졌고 공적 관계에서는 사적 관계가 여전히 중요한 자원으로 역할해 왔으며 개인은 출생 후 한 번도 원 가족의 영향력 아래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았던 사회, ‘개인 자아’ 보다는 회사나 가족의 영향력에 묻혀있는 ‘조직 자아’ 혹은 ‘가족 자아’가 의식과 문화를 지배해 온 사회, 소위 근대적인 것과 전근대적 것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한국 사회의 개인들은 개인이지만 조직의 일원으로서, 자유인이지만 조직과 집단에 자유를 담보 잡혀서, 평등하지만 위계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면서, 민주사회이지만 시민이 아니라 영웅을 대접하며,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지만 돈과 권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사회를 살아왔다.

 

김유식씨의 주장대로 인터넷 이용자들의 반 정도가 ‘보수/우파 성향’으로 실제로 전향을 했고 이들이 실제로 ‘보수/우파 성향’을 내면화 혹은 체화하고 있는지는 찬찬히 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은 디씨나 일베와 같은 곳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의 핵심에 노무현 정부에 대한 엄청난 실망과 피로감이 깔려 있다는 것도 짐작하게 해준다.

 

노무현이 누구인가? 소위 바닥에서부터 스스로를 키워 일어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노짱’, 민주화된 한국사회의 상징적 인물이 아니었던가? 과거를 기반으로 대통령이 되었던 김대중과는 또 다른 인물이었던 ‘보통사람’ 노무현. 그러나 그는 재임기간 내내 그를 선출한 국민들마저도 노심초사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고 실망하게 만들었으며 급기야 퇴임 후 얼마가 지나지 않아 부엉이 바위 위에서 떨어져 최후를 맞았던 사람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그저 대통령이 되었던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바닥에서부터 스스로를 일으켜 일어나 한 사회의 지도자가 되었던 근대한국사회의 ‘보통사람’의 비참하고 쓸쓸한 말로라고 봐질 수도 있다.

 

정권은 다시 보수 기득권으로 넘어갔고 동시에 한국사회는 ‘88만원 세대’의 시대를 맞닥뜨리게 된다. ‘88만원 세대’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삼포세대’, 미래를 꿈조차 꾸어볼 수 없는 시대의 이름이다. 그리고 ‘청년 실업’과 ‘남성연대’가 쌍생아처럼 함께 부상하였다. ‘진보’세력이 한때 기득권을 누리게 되었었음에도 세상은 변한 것이 없고 세상을 변화시키겠노라 약속하였던 이는 부엉이 바위 위에서 사라졌다.

 

이후 노무현은 자학적 분노의 아이콘이 되었다. 가장 불안한 이들이 이 불안의 근원을 노무현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탄생시킨 시대에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탄생시킨 세력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노무현에 대한 그토록 극심한 분노를 자제하지 않으면서도 이들은 반말, 반영웅주의, 팩트 중심주의, 반규제주의 등을 통해 평등, 개인, 이성중심주의, 자유 등과 같은 가치를 주장하고 때로는 나름의 역량 안에서 실천하고 있기도 해 보인다.

 

이와 같은 이들의 등장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쩌면 그동안 형식과 내용이 속도를 맞추지 못했던, 제도와 일상이 속도를 맞추지 못했던 한국사회가 이제 그 속도를 맞추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힘겨운 진통의 징후로 봐야 하지는 않을까? 혹은 근대적 가치의 정수인 민주주의의 민주화, 민주화의 결실을 안팎으로 누려보지 못했던 이들이 이제 그것의 진정한 제자리를 찾아달라고 외치는 일종의 아우성, 민주화의 민주화를 외치는 아우성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슬프고 안타깝게도 근대화 과정은 여성, 유색인, 혹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심지어 근대 산업의 ‘역군’이었던 노동자들에게도 동등하게 일어난 역사가 아니었다. 근대는 처음부터 배제와 차별을 작동시키며 등장했다. 경계를 발명하고 안과 밖을 구분하고 차이진 것들 사이의 위계를 설정하고 정상성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다시 경계가 확정되는 과정, 이로써 처음에는 인위적인 구분에 불과했던 안과 밖이 일종의 자연적인 것으로서의 지위를 얻고 이 사이의 차이가 (더 이상 발명이 아니라) 사실로서의 지위를 얻고, 이렇게 구축된 ‘사실’을 근거로 정상성과 위계가 재강화되어 왔던 과정이었다. 여성, 유색인, 그리고 소수자 등은 안과 밖이라는 경계에서는 밖을, 나와 너의 경계에서는 너를, 위와 아래의 경계에서는 아래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는 비정상을 할당받는 위치에 놓여져 왔으며 따라서 안, 나, 위, 정상을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 밖, 너(타자), 아래, 비정상 등의 위치에 쉽사리 가해지는 혐오와 차별, 심지어 폭력의 대상이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근대의 역사는 곧 차별과 폭력의 역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일베충은 근대의 가치를 호출하며 근대화를 그리고 민주화의 민주화를 웅얼거리듯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 초기의 남성들이 그리하였듯이 철저하게 누구보다도 여성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며 그리하고 있다. 여성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임금노동자 여성들의 70퍼센트는 (저임금)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정규직 남성 평균임금과 비정규직 여성 평균임금은 100 대 40이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고용에서의, 승진에서의 차별도 여전하며, 가정, 직장, 길거리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각종 성폭력으로 여전히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저임으로 지불되거나 아예 지불되지도 않는 돌봄 노동과 양육노동, 그리고 인간출산이 여전히 여성들의 책임이자 의무로 떠넘겨지고 있다는 사실에도 눈감고 있다. 일제시대나 한국전쟁 후 가부장의 물적 토대를 잃고 가부장으로서의 권위와 지위까지 잃게 된 남성들이 여성을 비하하고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써 남성의 위치, 가부장의 위치를 재건하려고 했던 것처럼 이들도 ‘진상녀’, ‘개똥녀’, ‘택시녀’를 비난하고 혐오하면서 자신의 불안한 위치를 봉합하려 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환향녀’, ‘탕녀’, ‘양공주’를 새로운 언어로, 그러나 구태의연한 내용으로 다시금 호출하고 있다.

 

나는 ‘민주화의 민주화’ 요구에 전적인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 ‘88만원 세대’의 시대가 된 세상에서 더 이상 미래를 향한 부푼 꿈을 꾸지조차 못하게 된 이들끼리, 청년 시절을 실업 상태나 저임금 임시직을 반복하며 살아가게 될 이들끼리,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아지는 삶이 아니라 더 나빠질 것만 같아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한 이들끼리, 학자금 대출금만 떠안은 채 알몸으로 대학 밖으로 내던져진 이들끼리,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늘어나는 것은 빚뿐인 ‘삼포세대’들끼리 서로 바람막이가 되어 민주화의 열매를 다 함께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전적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리하여 근대가 가져다 준 개인, 자유, 평등을 철저히 민주화해야한다는 요구에 전적인 동의를 보낸다.

 

그러나 그 욕망과 주장이 차별과 배제와 폭력을 통해 이뤄진다면 그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포함이 또 다른 배제를 통해 이뤄지는 한 민주화의 민주화란 요원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베충이여, 그대들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 민주화의 민주화라면 제대로 한 번 욕망해보기를, 다른 이에 대한 배제를 통해 자신만은 포함되기를 욕망하는 찌질한 욕망을 함께 극복해 보기를 제안한다!

 

 이희재 지음. 교양인, 2009.                                                 

 

나는 어려움 없이 영어 원서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번역서 읽기를 꺼려했다. 원서를 읽으면 중간 중간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100% 완벽하게 텍스트를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번역서를 읽을 때보다는 훨씬 생생하게 이야기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읽는 재미가 달랐다. 번역서를 읽을 때 문장 호응이 맞지 않거나 현실에서는 잘 쓰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 나오면 읽는 즐거움이 반감될 수밖에 없는데, 원서를 읽으면 그런 문제가 없었고, 책 속 상황이 보다 선명하게 머리 속에 그려졌다.

 

내 생각에 번역서가 읽기 불편한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생각된다. 첫째는 번역자의 번역 철학이 의역보다는 직역 쪽에 가까운 경우이다. 영어 도서를 한국어로 옮길 경우, 출발어는 영어이고 도착어는 한국어가 되겠다. 이 때, 도착어로 매끄럽게 들리게 하기보다는 출발어 표현의 의도와 형식을 최대한 존중하고 살리는 데 비중을 두는 경향의 번역자가 번역했다면, 그 결과물은 애초에 한국어로 쓴 책처럼 매끄럽고 눈에 잘 들어오게 되기는 어렵다. 반대로 출발어인 영어 표현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되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면서도 도착어인 한국어 표현으로도 어색하지 않고 매끄럽게 들리도록 번역하는 경우, 출발어 표현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직역에 비중을 두는 번역자가 번역한 작품이라면, 아무래도 출발어의 문장 구조에 더 잘 어울리는 문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머지 두 가지 이유는, 번역자가 도착어(우리말) 작문에 재능이 없는 사람인 경우이거나, 제대로 번역할 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지 못한 경우(경력이 많은 전문 번역가의 작품인데도 문장이 형편없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이유일 거라고 짐작된다)이겠다. 여기서 첫 번째 이유로 언급한 직역의 경우, 직역과 의역 사이의 갈등과 긴장은 모든 번역가가 체험하는 것이며, 번역하는 매 순간 직역과 의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민하게 되는 문제이다.

 

『번역의 탄생』(이희재 저, 2009, 교양인)에서, 저자는 직역과 의역이라고 보통 이야기되는 번역 경향에 대해 ‘들이밀기’와 ‘길들이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의역’보다는 ‘길들이기’라는 표현이, 출발어 표현을 도착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출발어와 도착어 문화의 차이를 고려하고 도착어 문화에 가장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치환될 수 있는 어휘와 표현을 찾기 위해 품사를 바꾸고 부정문을 긍정문으로 바꾸거나, 심지어 말을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의 적극성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본다.

 

내가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번역이라기보다는 ‘해석’에 가까운 행위였지만), 원문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결과물이 읽기에 매끄럽지 못하고 난해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나는 “원문의 표현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했지만, 번역이라는 행위의 의미심장함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변명할 수 없다. 그 즈음, 나는 『번역의 탄생』을 통해, 직역과 의역 사이의 줄다리기가 역사적․사회적인 맥락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라별로 번역 문화가 다르며, 한 국가 안에서도 역사적인 변화 과정에 따라 다른 번역 문화가 형성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은 본래 영어가 그리스어나 라틴어보다 격이 떨어진다고 여겨 번역가들이 작품을 번역할 때 직역 중심으로 해오다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와 그 이후 미국의 성장 등으로 영어가 세계 공용어 대우를 받게 되면서 차츰 도착어(영어) 중심의 번역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미권의 도착어 중심 번역 경향은 갈수록 심해져서, 요즘은 애초에 작가가 영어로 쓴 것처럼 매끄럽게 번역해야 훌륭한 번역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며, 원작에 영미권에서 이해하기 힘든 소재나 줄거리가 있으면 그 부분을 삭제하거나 심지어는 작가에게 그 부분을 다시 쓰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한편 유럽에서 가장 먼저 중앙 집권 국가의 틀을 잡고 자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던 프랑스는 영국보다 먼저 의역 중심의 번역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짐작 가능하듯이, 직역 중심의 문화였다. 전문 번역인이 많아지고 번역가 양성 프로그램도 생긴 지금은 덜하지만,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무성의한 직역으로 인해 한 번 읽어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번역물이 꽤 많았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직역 중심의 번역서를 읽어오면서 ‘번역체’라고 불리는 문체도 우리말 안에 자리를 잡았다. 번역체도 하나의 문체로 인식되고, 어떤 번역체는 그렇게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말 본래의 질서에 따른 문체가 더 읽기 쉽고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번역의 탄생』에서, 저자는 번역체를 극복하고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들은 공식처럼 끼워 맞출 수 있는 것들은 아니고, 우리말의 특성을 이해해야 활용 가능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 비해 한국어는 동적이며 동사의 활용 범위가 넓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명사의 행동 범위가 넓으며, 추상 명사가 주어 자리에 와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영어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명사를 동사로 바꿔주어야 더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들리는 경우가 제법 있다. 예를 들어, “A careful comparison of them will show you the difference."라는 영어 문장을 “그것들의 자세한 비교는 차이점을 드러낼 것이다.”라고 하는 것보다는 추상 명사인 ‘비교’를 동사화하여, “그것들을 자세히 비교하면 차이점이 드러날 것이다.”라고 옮기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영어의 형용사는 한국어의 부사로 옮겨주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이처럼 번역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제대로 의역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번역의 탄생』이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영어와 한국어의 특성을 비교함으로써 한국어가 가진 개성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자가 시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직역과 의역 사이의 긴장, 그리고 그것의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며, 사전과 인터넷, 시각 자료를 적절히 번역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번역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번역을 하면서 느끼는 건 외국어 능력보다 더 요구되는 것이 한국어 능력이라는 것이다. 중급 이상의 외국어 독해 능력을 가졌다면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전이 나와 있고, 구글을 통해 해당 단어의 이미지와 그 용례까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한 그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번역자가 할 일이 많아진다. 다른 문화와 다른 문장 구조를 가진 도착어로 자연스럽게 들리는 문장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 속으로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며 문장을 하나하나 작성해 나가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래도 남아있는 번역체를 줄이고 좀 더 자연스러운 글로 만들기 위해 몇 번이고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도착어로 좀 더 자연스럽게 들리게 옮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도착어 문장력이 좋아야 하지만, 평소에 풍성한 어휘를 담고 있는 우리말 작품을 많이 접해서 어휘력을 늘려야 하고, 우리말로 글을 많이 써봄으로써 번역체에 물들지 않도록 훈련해야 한다. 번역을 시작하고서, 전문 번역가 앞에서 번역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고 푸념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많이 하면 앞으로 더 쉬워질 것 같죠? 그렇지 않아요. 계속 힘들고 어려워요. 번역이 쉬워지면, 그게 망하는 거예요.” 음. 그렇지. 내 번역에 모자람이 많은 것을 알고, 겸손해져야지. 번역은 결국 한 세계를 다른 세계에게로 옮기는 과정인데 그 일이 쉬우면 뭔가가 잘못된 것이다. 아무튼 『번역의 탄생』은 초짜 번역가로서 내가 번역이라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리말의 개성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번역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박혜정

 

 

 

 

 

 

 

 

   

 

제5화 판자와 공

 

소설가  金 飛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며,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하나의 판자(板子:널빤지)를 부여받는다. 세상이나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경계에 순응하고, 자신의 안정감을 위해, 그것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또 다른 경계를 만들고,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폐기시키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판자의 크기를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무조건 크고 넓은 판자라면, 나를 더욱 더 안정감 있게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때로는 두 팔로 들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크기로 그 판자를 넓혀간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자신을 깔아뭉갤 듯한 그 위태로운 판자를 아슬아슬하게 들고서도, 자신은 제일 안전하고 바람직한 최고의 삶을 살고 있으며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삶이란 애초부터 판자 위에 서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차라리 동그란 원형의 공 위에 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공유'하도록 만들어진 우리들의 세상이란 어디로도 구를 수 있는 공의 세계이며, 인간이란 결코 혼자 설 수 없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야하는, 말 그대로 공처럼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일 테니 말이다.

그 위에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드는 일이란 처음부터 인간의 어리석음이었을 뿐,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추구한다고 말하며 인간은 언제나 제일 어리석고 안타까운 길을 걸어왔던 건지도 모른다. 아무리 크고 넓은 판자를 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들고 공처럼 둥근 삶 위에 서는 일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불안은, 삶이라는 공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하나씩 들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판자였다. 삶이란 모든 가능성이고 그래서 그것은 공 같은 모양의 위태로움이겠지만, 최소한 그 위에 판자를 대고 올라서려는 무모한 불안감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판자가 크면 클수록 흔들림은 더욱 심해지고 위태로움은 또한 그만큼 증폭된다. 보기 좋고 훌륭하며 제일 넓은 널빤지를 갖고 있는데도, 이상하게도 위태롭고 불안한 자아와 자주 맞닥뜨리고 마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그 동안 무수히 많은 경계를 그어 안정감을 도모해왔으면서도 제일 안 쪽의 경계에 서서 더욱 불안하고 쫓기는 삶을 살고 있는 안타까운 우리들의 현재인 것이다.

 

결국,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야할 일이다. 무겁게 양 손에 잔뜩 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 그 동안 자신을 억압하고 있던 불안을 덜어가는 그 첫걸음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왔다고 생각했던 생각의 경계를 조금씩 지워나가기 시작해야, 어딘가에 갇힌 것 같았던 스스로의 불안감이 조금씩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안정감을 지켜왔다고 믿었던 경계가 또 다시 '강박'의 힘을 작동시키겠지만,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던 그 경계의 너머도 또한 원래 우리들의 것이었음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의 잣대로 만들어진 세상의 경계 너머로 우리들 스스로가 폐기해버려 상실했던 것일 뿐, 결국 그건 처음부터 우리들에게 주어졌던, 우리들의 것이었다. 모든 미지의 것들이 가장 먼저 두려움으로 환기되듯이 그건 분명 위협적으로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분명 우리들의 삶을 지탱해야할 나머지 반쪽이었다. 어쩌면 인간은 우리들 스스로 버리고 폐기해버렸던 그것들 없이는 결코 안정적인 자아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상자 앞에 섰던 그 때의 나도, 어리석게도 그렇게 지탱할 수 없었던 세상의 판자 아래서 버둥거리며 상자 속의 밀폐된 삶만을 꿈꾸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이 만들어놓은 경계의 억압을 피해, 가장 끔찍한 고립과 밀폐의 공간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고 있었다. 그렇게 삶이 아닌 조그만 상자 속에서 시간의 종언을 준비하다가 나를 일깨운 것은 '해보고 죽으라', 어느 이방인의 아주 단순하고 과격한 말이었다.

그래, 어차피 똑같은 세상에 대한 종언이며 삶의 마지막일 테니, 상자 속에서 죽으나 경계 바깥에서 죽으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가 몸을 돌려 상자 바깥으로 첫 발을 내디디게 한 첫 번째 동력이었다. 그건 아마도 극도로 짓눌려 있었기에 가장 높이 튀어오를 수 있었던 '강박'의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세상이, 모든 사람들이 '안정'되고 '옳다'고 말했던 경계 안 쪽이 아니라, 경계 바깥쪽으로 몸을 움직여 한 발 내딛게 되었다. 세상의 말대로라면 거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하고 잔혹한 세계여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경계 너머에 발을 내디딘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경계 바깥으로 넘어오니 그 동안 나를 짓눌렀던 경계 안쪽의 무게가 스르르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지금쯤 폐기된 것들의 끔찍한 철퇴와 불안이 내게 휘몰아쳐야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경계 바깥에 서서 멀뚱멀뚱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벗어버린 몸이 가벼워졌고, 경계 안쪽에 살며 경계를 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났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어둠뿐이었는데, 나는 그 속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아무것도 손에 든 것이 없었기에, 기대나 희망 따위는 오히려 내게 존재하지 않았기에 내 발걸음은 겁 없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경계 안쪽에서는 한 번도 뛰지 못했던 질주였는데, 텅 빈 어둠 속에서 나는 마음껏 끝까지 달려갔다가 다시 또 질주하며 되돌아왔다.

온 몸에 열이 오르며 땀이 흘렀다. 생전 처음 느껴지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나는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니 나 혼자 내 길을 찾아가면서 느리고 어눌했지만, 한 발짝뿐인 걸음도, 누군가 타인이나 세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의 것이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내일도 딱 그만큼만 나아가리라 다짐하는 내 모습은, 모두가 '그래야한다'고 말했던 세상이 만든 경계 안 쪽에서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나의 미래를 내 손으로 그려가는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거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였지만, 두근거리는 내 심장은 불안이 아니라 '설렘'이었다. 비로소 나 자신의 삶을 내 스스로 찾아가는, 어느 철학자가 말했던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자아의 첫 걸음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판자를 팽개쳤다. 아니, 나는 강압적인 세상의 경계로 인해 나의 판자를 빼앗겨 밀쳐지고 말았다. 나는 그것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나를 안정되게 지탱해줄 것은 사라져버렸으니 나는 어디론가 까마득한 추락이나 몰락만을 기다려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덕분에 나는 맨 발로 공 위에 올라서고 있었다. 위태롭고 흔들리며 당장에 쓰러질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며 그 흔들림은 덜하고 불안은 조금씩 설렘이 되어갔다. 천천히 다리를 벌리고 발을 움직여 휘어진 면에 맞추어 두 발을 대고 서 있으니, 불안감이나 위태로움은 어느새 지워져버렸고 나는 조금씩 균형을 잡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세상이 만든 판자가 아니라, 삶이라는 둥근 공 위에 맨 몸으로 서서 나는 그렇게 조금씩 균형을 잡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잔뜩 웅크린 모습이 아니라 두 팔을 활짝 벌리면 안정감이 더해졌고, 제 자리에서만 발을 통통 구르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벌리면 벌릴수록, 다리를 더 동그랗게 만들면 만들수록 나는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손끝에 누군가의 손이 맞닿게 되면, 어디선가 나처럼 판자를 버리고 공 위에서 균형을 잡는 누군가의 흔들리는 손을 만지게 되면, 아슬아슬하게 공 위에 선 내 몸은 자연스레 그 쪽으로 의지하게 되었고, 그렇게 그들과 손을 잡으면서 내게 존재하던 불안이나 위태로움은 더욱 더 말끔하게 지워져갔다.

손을 잡은 그들은 내가 모르던 공 위에 서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주었고, 그의 손을 잡은 또 다른 누군가는 공 위에서 자기만의 묘기를 부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불안과 위태로움을 바라보아주면서, 어느새 나는 공 위에서 흔들리며 삶을 꿈꾸고 있었다. 여전히 위태롭고 불안했지만, 그건 세상의 경계 안쪽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설렘이었으며, 내 생애 처음으로 발견한, 미래라는 걸 꿈꾸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흔들린다는 건 불안이나 위태로움이 아니라,

그건 가능성이었다.

 

 

 

 

 

 

제4화 순응하는 불안

 

소설가  金 飛

 

 

 

 

 

 

 

 

돌아보면, 나 자신도 마찬가지 그렇게 상자 속을 넘나들었던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런 경계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하나의 존재로 세상에 태어나,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남자' 혹은 '아들'이라는 경계로 호출되면서, 나는 필연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불안을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기억에서 지우거나 무시할 수 있는 상실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건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위협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만든 그러한 경계의 안 쪽이 내가 있어야할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어리석었다. 폭력적인 세상의 비아냥거림을 받으면서도 나는 겨우 울음을 터뜨릴 줄 밖에 몰랐던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그렇게 위협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경계를 그었던 권위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일이었다. 이것은 불안한 자아를 가진 인간이 자연스레 자신에게 주어진 체계나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권위에 굴복하며 생존을 꾀하는 방식인데, 위기에 몰렸던 나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생존하기 위하여 세상이 만들어놓은 경계 안의 남자가 되어가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남자 아이들의 걷는 모습과, 말투, 그리고 행동 양식들을 면밀히 관찰하여 그것을 목표로 훈련 계획을 치밀하게 만들어 이행했다. 그들과 똑같은 모습, 세상이 만들어놓은 경계 속의 보통 사람들과 꼭 닮은 모습이 되는 것만이 생존의 길이라고 믿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내게 주어진 것이란 오직 그것 뿐이었고, 무수히 많은 발자국들이 만들어져 하나의 길이 되어버린 곳으로 발길을 옮겼던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그 때에는 그것을 몰랐지만, 그것이 바로 나약한 자아를 가진 자가 가장 쉽고 간편하게 자신의 안정을 꾀하는, '순응'이었던 것이다.

인간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토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권위의 효력을 극대화하고 통제하기 쉬운, 보편적이고 획일화된 인간을 생산해내는 제도나 조직을 우리들은 사회 곳곳에서 경험한다. 당연히 불쾌하고 불편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우리가 당했던 일반화의 오류, 자신의 의지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어떤 경계 안에 편입되었던 자동성,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버린 경계의 안정감, 권위의 달콤함 등을 최고의 인간됨이라고 믿어버린 채, 그것들을 다시 주변의 누군가에게, 특히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에게 추천하여 그들을 자신과 같은 획일화된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것은 우리들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한,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사회화'라는 이름의 '순응'이다.

'순응'의 습성이란 당연히 모든 종류의 불안을 느끼는 자들에게 해당된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경계'로 인해 만들어지는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도, 순응을 통해 그 안정감을 도모하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경계의 긍정적 의미를 환기시키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경계 안에서 자신이 깨달은 것을 진실이라고 착각하며, 그 경계를 더욱 공고히 하 위해 경계 속에 순응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경계의 이쪽 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책상 하나를 두고, 쪼그라든 경계를 바라보며 아무 말하지 못했던 남자 아이 쪽에서도, 경계에 순응하기 위해 무수히도 여러 번 스스로를 합리화시켰을 것이고, 쪼그라든 경계를 바라보며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여자 아이 쪽에서도 마찬가지, 그건 여러 번 '그 정도면 괜찮다.'고 말해야하는 경계에 대한 순응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경계 없는 그 커다란 책상 하나의 넓고 완벽한 안정감은 이미 그들이 가질 수 없는 상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이 '순응'의 생존 방식에 성공하는 것일까? 당연히, 그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순응하는데 실패하거나 거부한 사람들을 '낙오자' 혹은 '패배자'라는 또 다른 폭력적인 낙인을 찍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성취자' 혹은 '승리자'라고 선언하며, 우리들 스스로의 안정감을 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성취하고 승리한 세계라는 것 또한 고작 경계 너머를 상실한 불안하고 협소한, 제일 작은 몫이며,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실패나 상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낙오자' 혹은 '바보 같은 패배자'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 역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였고, 패배자였다. 나는 그렇게 믿었으며 그 사실에 짓눌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가능하지도 않았던) 세상이 만들어놓은 '남자'라는 경계 속에 '순응'하려는 노력이 극에 달하면서, 나는 극심한 불안에 시달려야했다. 날마다 무언가 목을 죄어오는 듯했고, 세상으로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거울 속에 누군가 서 있었지만, 그건 낯설고 이물스러운 존재에 불과했다. 그토록 치열하고 열심히 '순응'하려는 노력으로, ''라는 존재는 세상 속에서 '증발'되어버리고 말았다. 남자의 모습으로 대학교까지 졸업했지만 그 모든 시간들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작은 골방에 처박혔던 것은, 영락없이 상자 안에 갇힌 모습이었다. 그 속에서 자꾸 움츠러들고 짓눌리면서 나는 조금씩 내가 '순응'했던 세상에게 종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는 죽음만이 내가 도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경계였다. 그 속으로 파고드는 것만이, 세상이라는 경계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내게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최초의 주체적 결정, 혹은 (자아를 버리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히려) 자아의 획득이라고 믿게 되었다.

'순응'할 줄 밖에 몰랐던,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자' 속에 갇힌 인간의 마지막이란 결국 그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믿음이나 절박함은 또 다시 강박을 만들고, 공교롭게도 그것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경계 긋기'의 훈련에 의한 것이었으며, 경계를 긋는 행위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 모두들 믿고 있었지만, 실은 그것이 바로 우리들을 그토록 치명적인 곳까지 밀어낸 그 뿌리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다시 우리들 자신을 벼랑 밖으로 밀어붙여야할 것만 같은 절박함에, 생의 마지막이자 최악의 강박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고.

알코올 중독인 누군가에게는 술이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그의 문제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경계' 안에 편입되지 못한 열패감이고 그것으로 인한 상실과 그에 따르는 우울 때문이며, 자신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경계'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는 극한에 다다른 '강박'일 것이다.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받아든 누군가는, 그것이 자신의 삶이나 미래의 풍경과는 그리 큰 관련이 없는, 삶의 옳고 그름에 대한 근거가 절대 될 수 없는 숫자 몇 개의 수치화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고 극단적인 시도를 서슴지 않게 된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경계 안 쪽에만 머물며 내내 안정되고 평화로웠다고 믿었던 그 어린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기대'라는 경계로 인해, 그리고 (사실 '획일화'일 뿐인) '성공'이라는 강박으로 인해 앞으로 남은 수 십 년의 가능성의 삶을 포기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긋는 경계가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가르치는 건, 그 어떤 행위보다 폭력적이며 위협적인 건지도 모른다. 그것에 순응하고 똑같은 사람이 되어가라고 밀어내는 건, 우리들 자신은 물론 우리들의 다음 세대까지 벼랑 밖으로 밀고 있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생존을 위한 것이라 말하며,

우리는 지금도 벼랑 쪽으로 걷고 있는 건지도.

 

 

 

 

 

 

 

제3화 상자 인간

 

소설가  金 飛

 

 

 

 

 

  독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나치의 득세를 기술하고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외부의 권위에 의존하게 되는 메커니즘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자아의 힘이 약해질수록 인간은 초자아나 외부의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는 그의 이야기는 경계와 불안을 떠올리고 있던 내게도 어떤 깨달음을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앞에서 나는 경계를 긋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상실과 불안은 필연적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인간에게 불안이 쌓여간다는 의미는 그만큼 자아의 힘이 약화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또 다시 인간이 그러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여 외부의 권위와 권력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인간에게 안정감과 위안을 주는 가장 거대한 외부의 권력이란 경계를 만들었던 '보이지 않는 손'이며, 또 다시 계속된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은 그러한 보이지 않는 손을 모방하여, 스스로 또 다른 경계를 그어가며 불안을 지우려고 애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경계를 긋는 행위는 상실이며 불안이고, 그것이 또 다시 스스로의 불안을 지우려는 일환으로 다른 경계를 긋게 만드는 근거가 되어, 불안에 내던져지고 다시 경계를 긋는 행위를 지속하는 어리석은 악순환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유사한 예는 우리들의 주변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흔히 뉴스에서 보게 되는 정치가들의 이합집산이나, 한 사람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그어 스스로를 안전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나, 생각이나 사상이 같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 자신을 두어 경계 안의 안정감을 꾀하려는 일은 모두, 외부의 경계든 스스로가 만든 경계이든 불안을 지우려고 다시 경계긋기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다.

직장에서는 상사나 경영자의 권력에 다가가기 위해 또 다른 경계를 그으며 다른 경계 안으로 편입되거나, 학교에서는 힘 센 아이의 권력에, 혹은 교사라는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하여, 혹은 그들의 눈에 벗어나는 불안을 겪지 않기 위하여 다시 또 어떤 경계를 그어 자신을 그 안쪽에 놓으려고 한다

처음부터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세상에는 '경계 긋기'에 대한 자격이나 권위가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인간은 갖가지 방식으로 경계를 나누고, 다시 또 다른 경계를 나눔으로써 스스로의 불안을 지우고 안정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이것은 어떤 사상이나 특정 종교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들을 억압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는데, 처음부터 그들에게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이름의 성소수자들을 단죄하거나 억압할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미는 근거란 결국 우리들도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든 경계 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히 그것이 신의 뜻이라는 둥 인간의 섭리라는 둥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근거들을 들어 자신들의 폭력적인 행위들을 합리화하고, 자신들의 불안을 지우며 알량한 안정감을 얻기 위해 외부의 권위에 기대어 또 다른 경계를 긋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계로 인한 불안을 지우려는 인간의 몸부림은 경계긋기라는 적극적인 행위만이 전부는 아니다. , 외부의 권위에 의존해 또 다시 경계를 만듦으로써 그 안에서 안정감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세상이 만든 혹은 자신이 만든 경계와는 상관없이, 경계가 아닌 작은 상자 안에 갇혀버리게 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상자 속에 있는 인간은 자신은 물론이고 외부의 세계와는 전혀 아무런 소통도 하지 않으며, 눈을 닫고 귀를 막은 모양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는 대답하지 않으며, 어떤 것을 보여주어도 그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부인하는 몸짓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에게 탄생은 그저 탄생이며, 인간은 그저 인간이고 세상은 그저 세상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몸을 굴리고, 어디론가 떨어져내리면 작은 상자 안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면 그 뿐 자신을 밀어낸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조차하지 않는다. 작은 상자 안에 세계가 자신의 세계이며, 그 속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 스스로가 원하고 바라는 유일한 삶인 것이다.

얼핏 느끼기에 그것은 굉장히 자족적이고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소통을 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그건 굉장한 위험성을 수반한다. 상자 속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수십 개의 경계를 그리고 목록을 만들지만 그건 낙서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만든 경계 속에는 아무도 없으며, 그가 만든 목록은 그저 글자의 배설일 뿐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남기는 의미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좁고 답답하지만 무엇보다 안전한 자기 세계 안에 있으니 그보다 더한 안정감은 없을 듯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들어앉은 상자는 마음껏 몸을 펴고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상자가 아니라, 기껏해야 밥솥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작은 상자에 불과하다. 몸을 구부려 억지로 끼워 넣었을 , 그는 스스로 자초한 왜곡된 육체와 정신의 세계 속에서 불안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몸으로 체현하는 불편에 시달리며 평생의 삶을 살아야하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그것을 무어라고 지칭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실제로 물질문명의 발달로 점점 소통의 방식이 변하고, 왜곡되며, 어딘가에 고립되거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아무도 그 조그맣고 답답한 곳에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그에게는 그 곳이 바로 자신의 세계이며 자신의 삶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상자에 갇힌 인간의 모습은 외부의 권위에라도 의지해서 자신들의 안정을 꾀하는 부류들보다 더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들 속에서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더욱 많이 발견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성전환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회의 가장 변방으로 밀려난 우리들의 안에서 그렇게 상자에 갇힌 모습들을 목격하게 될 때, 나의 마음은 안타까움을 넘어 참혹함이 느껴진다. 자신들의 알량한 생존만을 위해 무수히도 많은 경계를 긋고 많은 것들을 소외시켜버린 폭력적이고 비겁한 세상의 지붕 아래에서, 그들은 상자 속에 갇혀 결국 인간으로 태어난 즐거움을, 남자든 여자든 하나의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그들에게도 주어진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축복을 외면하고 포기하며 살다가 끝내 쓸쓸하고 외로운 상자 하나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참혹한 자괴감에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 사실이다.

 

경계는 상실이며 불안이지만, 상자 속의 삶에 비할 수 있는 위태로움일 수는 없다. 경계 안에 있는 사람도 불안한 사람이지만, 상자 속에 갇힌 사람들은 불안함을 넘어 위태로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절박한 위태로움을 외면한 채, 내가 폐기해버린, 나의 경계로 만들어진 어떤 상실 된 것들을 소외시킨 채, 좁고 편협하고 이기적인 안정을 꾀하며 사는 일이, 부인할 수 없는 이천 년대의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다.

 

경계를 긋거나, 상자에 갇혀있거나,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는 불안을 지우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약하고 안쓰러운 모습이거나, 누군가를 잔혹하게 상자 안에 밀어 넣고 있는 폭력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2화 보이지 않는 손 

 

소설가  金 飛

 

 

 

 

 

 

 

  이 전에 나는 경계를 긋는 일, 목록을 만드는 일로 인해 우리가 필연적으로 상실을 동반하게 된다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나 역시 어느 정도 인간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어떤 선택을 피할 수 없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인간의 문명과 사회가 지금의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경계'라는 구분마저 없었다면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은 인간됨의 참 의미를 버리고 몰락과 파멸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어딘지 조금 성급하며, 모두가 완벽하게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이란 이론 속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했듯이 인간은 필연적으로 어떤 것으로 인해(돈이든 권력이든) 나뉘고 구분되며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일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너무 슬픈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 지나온 시간이었다는 현실을 나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시간이나 역사의 선택으로 인해 버려진 것들은 어떤 것들일까? 그것들은 과연 패배와 몰락의 당위성을 가진 것이며, 우리가 걷고 있는 이 현실이라는 길은 과연 최선의 길이었을까? 최선의 길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차선의 길쯤은 되는 것이 맞는 걸까?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란 물질이나 기계일 뿐, 그런데 왜 인간들은 자꾸 무엇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는 것일까? 이토록 평화롭고 발전된 세계 속에서 왜 우리는 더욱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것들 앞에 무기력하게 내동댕이쳐지고 있는 걸까?

조심스럽게, 나는 그 원인을 '경계 너머'에서 찾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필연적으로 어떤 경계 안에 자리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그 순간 반드시 상실을 동반한다. 우리는 성장이나 사회화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또한 버려진 것들의 축적이며 거듭해서 반복되는 상실의 기억이다. 지금 인간을 위협하며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들은, 우리가 언젠가 기억 속에서, 어떤 시간 속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버려두었던 것들을 닮아있지 않은가? 우리가 폐기했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느새 우리들의 생활과 문명을 옥죄어오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이니, 이 세계를 직시하기 위하여 경계 너머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폐기해버렸던 것들의 세계를 들여다보아야하는 일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내게는 그 거대한 사회 담론을 수용하고 그것에 대해서 토론하거나 문제점을 제기할 능력이 없다. 철학적으로도, 사회학적으로도 나는 그것들을 논하고 이야기할 깜냥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어떤 경계 위에 살고 있으면서, 불안이나 상실을 삶의 일부분으로 수용하고 끌어안는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어쩌면 그것은 나 혼자만의 경계, 혼자만의 상실이나 불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보통'이나 '정상'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호출되지 않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한 사람의 현대인으로써 내가 생각하는 경계나, 상실, 혹은 불안은 어쩌면 그렇게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먼 생각까지 도달하게 되었음을 부끄럽게 고백한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상실과 불안은 어느새 현대 문명의 뒤편이 되어버렸으며,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논의되어야하는 것임에도 언제나 외면되고 있다는 현실은 바로 내가, 우리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지금의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의 상실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불안이 시작되었던 거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일까.

 

  모두가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어떤 경계 너머에서 태어났다. 나 자신이 선택하고 주체적인 나의 삶을 위해 내가 선택한 무언가가 아니라, 불행하게도 그건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경계였고, 외부의 목록화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건 단순히 기다란 책상에 금을 그어 내 영토를 또렷이 하는, 작은 공간이라도 내 것을 가지고 있는 소유의 경계가 아니라, '나의 경우에는' 엉뚱한 곳에 도착해있는, 어떤 경계 바깥이었다. 내 영토 앞의 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지 말아야할 ''의 자리에 가 앉아 있는 꼴이었다.

  그나마 내게 주어진, 경계로 나뉘어진 작은 공간 속에는 내 물건이 아니라 짝의 물건만 가득했다. 내가 읽고 공감할 수 있는 노트들이 쌓여있는 것이 아니라, 낯설고 이물스러워서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것들이 수북했다. 분명히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려고 하면, 경계를 그었던 외부의 힘이 나를 짓눌렀다. 세상의 경계가 그어진 반쪽의 상실만으로도 불안감은 충분한데, 그 위에 낯선 곳에 버려졌다는 고립감이 더해졌다. 내 어깨를 짓누르며 나를 억압했을 뿐만 아니라, 고립되어버린 나의 세계를 비아냥거리는 비겁한 짓을 했던 것이, 바로 내가 이 세상에 나와 마주했던 여러 겹으로 한꺼번에 몰려온 '불안'이고 '상실'이었다.

  그것이 비단 성전환자라는 특수성을 가진 나와 같은 극소수의 집단에만 유효한 불안이고 상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여러 겹의 상실과 불안을 동시에 겪어야했던 사람들은 수두룩하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경계에 구겨넣어져 필연적인 상실을 동반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이라는 겹쳐진 경계로, 혹은 장애라는 극복할 수 없는 고립감으로, 처음부터 불안과 상실은 이중 삼중으로 우리들의 어깨에 내려앉아, 성장이라고 말하는 외부의 경계로 만들어진 ''의 방향으로 우리들을 밀어낸다.

  물론 우리들을 짓누르는 경계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특정한 지역에 국한된 학교라는 경계 안에서도, 성적이라는 경계로 다시 한 번 우리들은 나뉘어지며 불안을 떠안고, 불안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그건 충분히 또렷해지는데, 그 위에 다시 부모가, 사회가 만들어놓은 어떤 경계 안으로 우리는 떠밀리듯 편입되며 또 다시 더 커다란 겹겹의 불안을 짊어지게 된다.

  사람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순수하게 자유로운 나의 의지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이미 세상이나 부모가 정해놓은 지역이나 혹은 종교의 경계 안의 만남에 불과하며, 그것이 자유로운 본인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확신이나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경계로 나뉘어진 상실로부터 근원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외부의 경계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이 나 자신에게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효과나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에 미련없이 받아들이며, 그래서 내게는 불안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면, 그 말만으로 이미 충분히 거대한 불안의 전조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불안하지 않다.'고 말하는 목소리의 불안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진실로 (물론 가능하지 않은 일이겠지만) 자신의 삶에는 단 1퍼센트의 불안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하더라도, 우리가 폐기해버린 불안은, 혹은 세상의 경계로 인해 버려진 것들로 인한 불안은 반드시 내가 볼 수 없는 바깥의 어딘가에서 쌓여가고 있으며, 그것은 또 다시 부인할 수 없는 불안의 원인으로 환기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경계나 상실 따위의 복잡하고 어려운 구분이 아니더라도, 시간의 흐름만으로, 망각이라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은 반드시 모두들 상실된 것들을 가지게 되며, 그건 당연히 불안의 감정을 수반한다.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순간 기억나지 않아 전전긍긍했던 불안을 모두들 적어도 한 번 씩은 가져본 적이 있었던 것처럼.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우리는 선택을 해야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 상실이 불안이 되어 내 안에 축적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선택하지 않는 삶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선택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일이란, 불행하게도 인간에게는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다. 아무리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진 세계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고 욕설을 퍼붓고 싶어도, 결국엔 우리에게도 운명은 어떤 선택을 드리울 것이며, 우리들도 둘 중에 하나를 고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그 불안을 지울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 모든 상실과 불안을 끌어안고 생존해 나아가는 인간의 동력은 무엇일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경계를 나눈, 상실이나 불안의 시간들이 계속 반복되어왔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런 불안한 요소들을 지우려는 인간의 노력 또한 똑같이 계속되어왔다. 어쩌면 몸부림이라고 불러야할지도 모르는 그러한 노력들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또 다른 상실의 시작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었던 거라면, 지금쯤 인류는 모든 상실이나 불안을 지운 채, 참으로 안정되고 평화로운 세계 속에 살고 있어야하는 걸 테니까.

 

 

어쩌면 거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김비 작가님이 직접 쓴 캘리그라피입니다)

 

 

 

 

 

 

 

1화 경계의 배반

 

소설가  金 飛

 

 

 

 

  지금이야 아이들 모두 각자의 책상을 가지고 있으니 찾아보기 힘들겠지만,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는 학기 시작 무렵에 나란히 같이 앉아 공부할 누군가를 설레며 기다렸던 때가 있었다. 일 년의 시간을 가늠하며 새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일도 설렘이며 걱정이었지만, 그것 못지않게 곁에 앉아 같이 공부를 해야 할 이 누가 될까 하는 일도 어린 우리들에게는 적지 않은 설렘이며 또한 걱정이었다. 물론 단순히 잘 생기고 예쁜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장 먼저이기는 했지만, 아무리 잘 생기고 예쁜 아이가 곁에 앉게 되더라도 결국엔 꼭 한번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기다랗게 하나로 붙어있는 책상을 두고 벌어지는, 두 아이의 영토전쟁이다.

   대개는 손톱만큼이라도 여자 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며 끝을 맺게 되는데, 남자 아이들 쪽으로 경계선이 바짝 오그라들었음에도 어쩐지 여자 아이들의 눈에는 그 정도는 되어야 동등하고 평등하다고 느껴졌으며, 말싸움에서 밀린 남자 아이들은 대게 입술을 삐죽이며 잠자코 그 불평등한 경계선을 받아들여야했다. 짝이 감기에라도 걸려 나오지 않는 날에도, 책상 위에 선뜩하게 그어진 선을 넘어가지 않기 위해 우리들은 괜히 몸을 사리며 그 경계선을 자꾸만 신경 쓰던 그런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더 많이 차지하겠다고 열심히 그어가며 싸웠던 그 경계라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던 것이었는데, 두 사람 사이의 공유라는 전제 조건이 달려있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경계를 긋는 행위를 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건 결국 제일 작은 몫일 수밖에 없는 건데, 어리석게도 우리는 한 학기 내내 그렇게 그 영토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며 지냈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 넉넉한 품을 가질 수 있는, 경계 없는 온전히 기다란 책상 하나의 소유보다 더 넓은 경계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학기가 지나고 나면 교실 안에 있던 우리들 모두의 책상은 너나할 것 없이 그런 갖가지 모양의 경계들로 패이고 낙서가 된 채였고, 우리는 가장 협소한 울타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위안하며 지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그 시간들을 그렇게 망각 속에 던져버리고 만다.

 

   그 때 우리가 지워버린 경계는 이미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어쩌면 그건 여전히 우리들 곁에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정리를 하고 목록을 만드는 행위도 그런 그 시절의 경계를 긋는 것과 어느 정도 닮아있다. ‘깨끗하다’, ‘말끔하다와 같이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의미의 말들로 대표되는 정리나 목록화에, 그 때의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모르는 어떤 어리석은 오류나 강박이 있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여기에서 나는 이것을 강박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이것은 단순히 폄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잘 알고 있다. 내 경우에도 원고를 집필하고, 다시 쓰고 또 쓰는 재고를 거듭하며 쏟아지는 원고뭉치를 정리하는 일이, 내게 가장 바람직한 효율성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으니 말이다. 목록을 나누고 원고들을 구분해놓음으로써 작업을 조금 더 빠른 시간 안에 끝낼 수도 있고, 재고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지난 원고들을 재빨리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분명 부인할 수 없는, 정리 혹은 목록화의 효과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효율성의 유무 혹은 가부가 아니라, 그러한 정리나 목록화의 경계 긋기가 우리에게 효율성이라는 달콤함을 제공함으로써 그것이 우리에게 우리들 자신도 모르는 오류나 어리석음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습관이나 습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생각 속에 하나의 선을 긋게 됨으로써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불안해하며 혹은 집착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위에서 강박이라는 힘 센 용어를 사용했던 이유다.

   요리의 재료를 찾을 때, 옷들의 종류를 쉽게 찾을 때, 그리고 청결한 주변을 만들어 이로운 세균보다는 해로운 세균을 제거할 때, 그러한 강박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효율의 개념 안에서만 머물러야하는 일일 뿐 강박으로 확장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강박증을 갖게 된 것일까? 그것들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이며, 언제부터 우리는 그런 습성을 가지게 되었을까?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어떤 생각을 떠올리기 전에 반드시 정리를 하고 목록을 나누며, 서로 간의 경계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버리게 되는 것일까? 경계를 만듦으로써 폐기해버렸던 생각이나 물건들은 과연 아무런 가치가 없었던 것일까?

   나는 우리가 그 동안 갖가지 경계의 안쪽에서 누렸던 안정감과 안위를 확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글을 읽는 동안에는 잠시 잠깐 우리들을 옭아매고 있는 경계들을 내려놓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의 일상을 너무 꽁꽁 싸매고 있어서 내려놓을 수 없는 거라면, 손을 느슨하게 하자마자 갑작스런 공포가 밀려오는 거라면(이 정도라면 그건 분명 상담이나 치료를 요하는 강박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시고) 그저 깊은 숨 한 번 내 쉬고 온 몸을 이완시켜보기를 권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나도 모르게 스며든 타인의 경계일 뿐, 추락이나 몰락과는 어쩌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계가 있다는 말은 결국 잃어버린 반쪽이 있다는 말이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 그려진 어떤 선으로 인해, 내가 내 것이라고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어떤 것이 내 등 뒤에서 안타까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그건 내가 지금 안전하게 향유하고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내게 주어진 내 것이었다. 그토록 내 것을 지키고 내 안전을 지키려는 철저한 몸짓으로, 우리는 그만큼의 무언가를 놓치고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경계를 긋는 일에 대한 맹신을 재고하라고 함으로써, 그 동안 우리가 우리들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어떤 경계, 옳고 그름, 혹은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스스로의 선입견을 잠시 내려놓으시라 말하고 있다. 그런 위험스러운 발언이 어디 있느냐, 목소리를 높이고 싶은 분들이 있겠지만, 다수든 소수든 어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경계를 가진 채 그 안쪽에 자리하고 있든 간에,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한 가지는 결국엔 모두들 놓쳐버린,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얼마나 추하든 더럽든, 그릇된 것이든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든, 우리는 모두들 분명히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 소외시킨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아무리 손대기도 싫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분명히 나와 같은인간됨의 한 쪽을 차지하고 있었던 거라는 것.

 

     경계 너머를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우리들의 상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김비 작가님이 직접 쓴 캘리그라피입니다)

 

 



 

 '아프꼼' 연재에 들어가며

金 飛

소설가

 

 

  아마도 그건 오지 않은 도래(到來)였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게 빛났던 어둠이기도 했고, 초록의 이파리들이 까마득히 뒤덮인 숲 속 한 가운데서 느꼈던 질식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것들을 불태워버린 달의 빛이기도 했고, 어쩌면 그건 '기억'이라고 쓰는 순간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린 망각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언제나 나는 거기가 궁금했다. 내가 있었던 거기, 내가 지금 서 있는 여기. 세계나 세상을 떠올리지도 못한 채, 나는 항상 그저 내 두 발이 딛고 서 있는 이 자리가 궁금해 언제나 의문투성이였다. 그건 어쩌면 사춘기 시절에나 떠올렸을 법한 '내가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닮은 원초적인 것이었는데, 나는 언제나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만의 의혹과 의심을 품은 채 내 생애를 끝마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시감을 더욱 또렷이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여전히 모호하고 흐릿한 어딘가에 서서 무언가 꽤나 긴 것들을 쏟아낼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눈감은 더듬거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과 세계, 혹은 그 너머를 아우르는 수 십, 수 백 권의 서적들을 탐독하고 또한 집필하는 거대한 시간이 바로 인생이지 않은가. 그토록 치밀하게 나누어진 시간의 편린 속에, 욕망을 짓고, 감정을 짓고, 이성의 테두리를 드리우는 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 아닌가. 그 엄청난 시간의 자장 속에 고작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어디인가?' 따위의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조차 찾을 수 없다니, 그것이야말로 게으름이거나 강박증이거나 비난을 피해갈 수 없는 패착이 아닌가.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여전히 단 한 걸음도 어딘가를 향해 내밀지 못하고 있다. 똑같은 질문을 손에 들었다가,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았다가,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지조차 모호해진 마흔 중반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고백하건데, 내게 그런 질문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다시 깨우친 것도 불과 최근의 일이었다.


  몇 십 년의 일생을 지나오는 동안, 흔들리면서도 나는 내가 왜 흔들리는지 알지 못했으며, 위태로우면서도 무엇이 나를 위협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저 모호하고 흐릿하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 그건 한 마디로 쏟아낼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생각의 손에는 자꾸 핏자국이 묻어났지만, 어디에서 상처가 벌어졌던 건지 알지 못했다. 악몽을 꾸다가 깨어나 두려움에 몸을 떨었지만, 나를 짓눌렀던 그것들은 금세 망각 속으로 멀어져버리고 말았다. 내게 남은 것이라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단발의 신음소리 뿐이었다.


  '성별을 바꾸었다.'라는 선뜩한 명제마저도 당연히 옳지 않다. 내 기억이 존재하는 한,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아닌 무언가로 나를 바꾸었다고 생각해본 적 없으며, 바뀐 것이라곤 서류 위에 적힌 숫자이거나, 온전히 나를 호출하지 못하는 이름에 불과했다.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고 있다.'라는 정의 또한 틀렸다. 과연 내 모친의 자궁을 비집고 나온 것이 온전한 남성이었는지, 수술이라는 의료적 치료와 조치를 통해 비로소 지금의 내가 온전해진 거라면, 과연 여기 있는 나는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인지. 생물학적이고 의료적인 차원의 정의는 차치고서라도 내가 믿고 있는 내 영혼(이렇게 부르는 것이 옳은지조차 나는 알지 못하지만)에게 성별이 있다면 그것을 과연 온전히 남성이거나, 여성이라고 언급할 수 있는 것인지 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 진단서에 일필로 적혀 있듯이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의 상태'라고 나를 규정한다면, 나는 왜 그런 상태의 내가 되어야했던 건지, 나는 도대체 왜 이런 길의 삶을 걷고 있는 것인지, 또 다시,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커다란 바퀴를 굴리듯, 꼬여있는 띠 위를 달리듯 나는 그렇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버리고 말았다. 질문들뿐이다. 한탄을 닮은 의문들뿐이다. 위에 언급한 겨우 한 가지에 불과한 배배 꼬인 질문들 조차도 나는 하나로 정리하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하물며 그런 나의 존재를 설명할 여러 가지 학술적 지식도 없을 뿐더러, 당연히 앞으로 여기에 적어내려가게 될 이야기들도 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여기 이 기록은 지금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어떤 인간의 시선이자 생각이라는 것. 프로이트가 말했던 스스로에 대한 정신분석의 근방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순하고 무지한 자기 관찰에 불과하기는 하겠지만, 스스로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솔직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나 자신에게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겠지만, 세상에게는 그저 낯설고 희한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는 그런.

 

  결국, 그건 '경계'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언제나 그 위에 살아오면서, 나를 배반하고 세상을 배반하며 떠오르는 난잡한 생각들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이 이야기들을 통해 나는 그런 난잡한 것들을 그나마 내 안에서 정리하여 흐릿하게 풀어놓게 되기를 바란다. 성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젠더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그게 아니라면 그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금을 긋고 노는 땅 따먹기의 선 하나를 지우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단순히 텍스트나 사고의 과잉이라고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최소한 개인적으로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작은 실험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당연히, 이 의미 없을 수도 있는 ''라는 한 인간의 기록이 이분법적 세계를 뛰어넘는, 3의 세계에 대한 담론을 건드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모쪼록 내가 쏟아낸 글들이 하나의 글로써 뒤틀리지 않고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분법적인 세계를 가로질러 갈 수 밖에 없는 일이겠지만, 그 뿐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양쪽 모두를 통합하여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거나 하는 능력을 갖지 못했으며, 사실 그런 마음조차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저 잔잔한 물속에 던져 넣는 돌 하나가 되기를, 풀밭 위에 앉아 보드라운 바람을 느끼다가 문득 터져 나온 웃음이기를, 가능하다면 순수하게 마음속에 와 닿는 여행자의 말 한 마디 정도의 가치라도 가지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천 십삼 년 유 월,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로 태어나 그렇게 모호한 존재로 살아가며 이 글을 시작한다. 내가 태어날 때 내 손에 받아들었던 이름은 '병필'이었고, 내가 내 손으로 나에게 선물한 이름은 날지 못하는 '()'였다. 잘 부탁드린다.

 

 


* 처음 이 홈페이지, aff-com.net이 만들어진 것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연구공동체인 아프꼼이 “저, 여기 있어요.”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역의 안/팎으로, 국경의 안/팎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기록을 남겨, 지금의 aff-com.net은 수많은 행적들이 흔적으로 남겨진 장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연구와 활동을 통하여 당신들과 함께 삶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며, 그 지평의 한 부분을 넓혀나가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저, 여기 있어요.”라는 말은 실은 “당신과 만나고 싶어요.”라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가닿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어요.”라고 응답해주는 또 다른 목소리들이 있어, aff-com.net은 연구모임 아프콤이 여러분에게 다가가는 곳이자 여러분이 아프콤에게 다가오는 곳, 모임의 자리이자 글쓰기의 인터페이스인 ‘매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여, 그렇게 만들어진 이 자리에 또 다른 목소리들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아프콤 with는 그런 자리로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아프꼼이 닿아온 다양한 면/면들을 전하는 interface로써, 그리고 만남의 약속처럼 때맞춰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매체로써, 조금씩 이행해 나가고자 하는 움직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이행의 단초를 김비작가님의 <경계인간:Marginal Human>의 연재로 열어보고자 합니다. 김비작가님의 에세이인 <경계인간:Marginal Human>은 매 달 2, 4주차 수요일에 연재될 예정입니다. aff-com.net에 그간 실려온 글들이 장르적 경계를 넘어 삶과 실천을 글로 투과시키는 것었다고 할 때, 경계의 감각을 실존으로서 녹여낸 김비 작가님의 <경계인간:Marginal Human>은 그 의미가 더욱 깊을 것입니다.



“결국, 그건 ‘경계’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언제나 그 위에 살아오면서, 나를 배반하고 세상을 배반하며 떠오르는 난잡한 생각들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이 이야기들을 통해 나는 그런 난잡한 것들을 그나마 내 안에서 정리하여 흐릿하게 풀어놓게 되기를 바란다.”

(본문 중에서)




* 김비 작가님 소개


경기도 문산 출생, 작가는 어린 시절도 그곳에서 보냈다. ‘나는 누구일까?’를 끊임없이 묻게 되는 나이에, 그녀는 ‘남자’ 김병필이 아닌 ‘나’ 김비를 찾아냈다.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글과 사진을 선택했고, 후회 없이 미친 듯이 쓰겠다는 다짐으로 줄기차게 집필에 몰두했다. 1998년 성적소수자 월간지 ‘버디’에 실린 단편소설 <그의 나이 예순넷>을 시작으로 창작활동에 발을 디뎠다. 에세이집 <못생긴 트랜스젠더 김비 이야기>(2001)을 출간했고, 이듬해 성장소설이자, 첫 장편소설인 <개년이>를 출간하며 긴 글에 대한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중편소설 <입술나무>를, 2006년에는 개인 소설집 <나나누나나>를 발표하면서 힘든 현실을 이겨내며, 글을 통해 더 커다란 목소리를 내기로 다짐했다. 사람들에게 한발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하여 2006년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시나리오 자문을 맡았다. 또 다른 ‘김비’인 주인공 ‘오동구’를 통해 세상 껴안기를 시도했다. 2007년, 제 39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女人>이 당선되어 세상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길을 찾아, 힘찬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후 2001년에 펴낸 <못생긴 트랜스젠더 김비 이야기>에서 시간 순서라는 골격을 그대로 둔 채 생각과 글을 다듬고, 그 후 10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보태 다시 써낸 에세이집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2011)와 장편 소설 <빠스정류장>(2012)을 발표했다.


링크: http://www.kimbe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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