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재 지음. 교양인, 2009.                                                 

 

나는 어려움 없이 영어 원서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번역서 읽기를 꺼려했다. 원서를 읽으면 중간 중간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100% 완벽하게 텍스트를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번역서를 읽을 때보다는 훨씬 생생하게 이야기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읽는 재미가 달랐다. 번역서를 읽을 때 문장 호응이 맞지 않거나 현실에서는 잘 쓰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 나오면 읽는 즐거움이 반감될 수밖에 없는데, 원서를 읽으면 그런 문제가 없었고, 책 속 상황이 보다 선명하게 머리 속에 그려졌다.

 

내 생각에 번역서가 읽기 불편한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생각된다. 첫째는 번역자의 번역 철학이 의역보다는 직역 쪽에 가까운 경우이다. 영어 도서를 한국어로 옮길 경우, 출발어는 영어이고 도착어는 한국어가 되겠다. 이 때, 도착어로 매끄럽게 들리게 하기보다는 출발어 표현의 의도와 형식을 최대한 존중하고 살리는 데 비중을 두는 경향의 번역자가 번역했다면, 그 결과물은 애초에 한국어로 쓴 책처럼 매끄럽고 눈에 잘 들어오게 되기는 어렵다. 반대로 출발어인 영어 표현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되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면서도 도착어인 한국어 표현으로도 어색하지 않고 매끄럽게 들리도록 번역하는 경우, 출발어 표현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직역에 비중을 두는 번역자가 번역한 작품이라면, 아무래도 출발어의 문장 구조에 더 잘 어울리는 문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머지 두 가지 이유는, 번역자가 도착어(우리말) 작문에 재능이 없는 사람인 경우이거나, 제대로 번역할 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지 못한 경우(경력이 많은 전문 번역가의 작품인데도 문장이 형편없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이유일 거라고 짐작된다)이겠다. 여기서 첫 번째 이유로 언급한 직역의 경우, 직역과 의역 사이의 갈등과 긴장은 모든 번역가가 체험하는 것이며, 번역하는 매 순간 직역과 의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민하게 되는 문제이다.

 

『번역의 탄생』(이희재 저, 2009, 교양인)에서, 저자는 직역과 의역이라고 보통 이야기되는 번역 경향에 대해 ‘들이밀기’와 ‘길들이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의역’보다는 ‘길들이기’라는 표현이, 출발어 표현을 도착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출발어와 도착어 문화의 차이를 고려하고 도착어 문화에 가장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치환될 수 있는 어휘와 표현을 찾기 위해 품사를 바꾸고 부정문을 긍정문으로 바꾸거나, 심지어 말을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의 적극성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본다.

 

내가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번역이라기보다는 ‘해석’에 가까운 행위였지만), 원문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결과물이 읽기에 매끄럽지 못하고 난해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나는 “원문의 표현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했지만, 번역이라는 행위의 의미심장함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변명할 수 없다. 그 즈음, 나는 『번역의 탄생』을 통해, 직역과 의역 사이의 줄다리기가 역사적․사회적인 맥락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라별로 번역 문화가 다르며, 한 국가 안에서도 역사적인 변화 과정에 따라 다른 번역 문화가 형성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은 본래 영어가 그리스어나 라틴어보다 격이 떨어진다고 여겨 번역가들이 작품을 번역할 때 직역 중심으로 해오다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와 그 이후 미국의 성장 등으로 영어가 세계 공용어 대우를 받게 되면서 차츰 도착어(영어) 중심의 번역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미권의 도착어 중심 번역 경향은 갈수록 심해져서, 요즘은 애초에 작가가 영어로 쓴 것처럼 매끄럽게 번역해야 훌륭한 번역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며, 원작에 영미권에서 이해하기 힘든 소재나 줄거리가 있으면 그 부분을 삭제하거나 심지어는 작가에게 그 부분을 다시 쓰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한편 유럽에서 가장 먼저 중앙 집권 국가의 틀을 잡고 자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던 프랑스는 영국보다 먼저 의역 중심의 번역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짐작 가능하듯이, 직역 중심의 문화였다. 전문 번역인이 많아지고 번역가 양성 프로그램도 생긴 지금은 덜하지만,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무성의한 직역으로 인해 한 번 읽어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번역물이 꽤 많았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직역 중심의 번역서를 읽어오면서 ‘번역체’라고 불리는 문체도 우리말 안에 자리를 잡았다. 번역체도 하나의 문체로 인식되고, 어떤 번역체는 그렇게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말 본래의 질서에 따른 문체가 더 읽기 쉽고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번역의 탄생』에서, 저자는 번역체를 극복하고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들은 공식처럼 끼워 맞출 수 있는 것들은 아니고, 우리말의 특성을 이해해야 활용 가능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 비해 한국어는 동적이며 동사의 활용 범위가 넓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명사의 행동 범위가 넓으며, 추상 명사가 주어 자리에 와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영어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명사를 동사로 바꿔주어야 더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들리는 경우가 제법 있다. 예를 들어, “A careful comparison of them will show you the difference."라는 영어 문장을 “그것들의 자세한 비교는 차이점을 드러낼 것이다.”라고 하는 것보다는 추상 명사인 ‘비교’를 동사화하여, “그것들을 자세히 비교하면 차이점이 드러날 것이다.”라고 옮기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영어의 형용사는 한국어의 부사로 옮겨주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이처럼 번역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제대로 의역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번역의 탄생』이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영어와 한국어의 특성을 비교함으로써 한국어가 가진 개성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자가 시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직역과 의역 사이의 긴장, 그리고 그것의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며, 사전과 인터넷, 시각 자료를 적절히 번역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번역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번역을 하면서 느끼는 건 외국어 능력보다 더 요구되는 것이 한국어 능력이라는 것이다. 중급 이상의 외국어 독해 능력을 가졌다면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전이 나와 있고, 구글을 통해 해당 단어의 이미지와 그 용례까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한 그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번역자가 할 일이 많아진다. 다른 문화와 다른 문장 구조를 가진 도착어로 자연스럽게 들리는 문장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 속으로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며 문장을 하나하나 작성해 나가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래도 남아있는 번역체를 줄이고 좀 더 자연스러운 글로 만들기 위해 몇 번이고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도착어로 좀 더 자연스럽게 들리게 옮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도착어 문장력이 좋아야 하지만, 평소에 풍성한 어휘를 담고 있는 우리말 작품을 많이 접해서 어휘력을 늘려야 하고, 우리말로 글을 많이 써봄으로써 번역체에 물들지 않도록 훈련해야 한다. 번역을 시작하고서, 전문 번역가 앞에서 번역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고 푸념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많이 하면 앞으로 더 쉬워질 것 같죠? 그렇지 않아요. 계속 힘들고 어려워요. 번역이 쉬워지면, 그게 망하는 거예요.” 음. 그렇지. 내 번역에 모자람이 많은 것을 알고, 겸손해져야지. 번역은 결국 한 세계를 다른 세계에게로 옮기는 과정인데 그 일이 쉬우면 뭔가가 잘못된 것이다. 아무튼 『번역의 탄생』은 초짜 번역가로서 내가 번역이라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리말의 개성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번역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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