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변이를 위하여

 

 

 

소설가 金 飛

 

 

 

 

 

 

  나는 주저앉아 버렸다. 당연했다. 내 삶의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고 여겼던 곳으로 온 힘을 다 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삼십 여 년의 삶을 버리면서 죽을힘을 다 해 그곳으로 질주했던 건데, 거긴 내가 원하던 곳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의 질시와 비난을 각오하며 있는 힘을 다 해 그곳으로 뛰어들었던 건데, 나는 또 다시 예전 그 때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남자라는 세상의 경계가 나를 짓누르고 억압했던 것처럼, 또 다시 여자라는 경계가 그만큼의 크기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너무도 간절히 희망을 바라고 있었기에, 그 억압은 더욱 지독했고 고통스러웠다.

  상자가 떠올랐다. 차라리 상자 속이 마음 편한 곳이었는데. 사방에서 나를 가두며 좁고 편협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자 속에 있으면 어떤 경계에 의해서도 재단되거나 억압되지 않으며,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극도의 불안에 떠밀린 모두가 그러하듯, 나는 가장 내밀하고 어두운 곳에서, 고립되고 피폐한 속에서 어리석게도 내 희망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내가 앉아있는 여기 전환의 한 가운데와 꼭 닮은, 내가 폐기해버렸던, 그래서 그곳으로부터 도망쳐나왔던 거기가 떠올랐다. 나를 억압했던 것들, 매 순간 나를 짓누르며 옴짝달짝 못하게 만들었던 시간들. 폭력적으로 나를 호출하고 그것에 끌려가며 나를 구겨넣던 비겁하고 나약했던 기억들. 그 모든 것들을 떨치기 위해 이렇게 힘겹게 여기 전환의 한 가운데 와 있는데, 나는 왜 여전히 똑같은 불안과 억압으로 몸을 떨고 있어야하는 것일까?

 

  손을 들어 너덜너덜해진 나의 전환을 들여다보았다. 부서져버린 희망과 꿈들이 손가락 사이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분명히 그건 단단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리조각처럼 쪼개져 그것들은 내 온 몸을 찌르고 있었다. 잘못된 지도를 들고 걸었던 여행자처럼 나는 내가 모르는, 전혀 기대하고 예상하지 않았던 어딘가에 와 있었다. 그것도 내가 도망쳐 나온 가장 끔찍했던 거기와 너무도 닮아있는 풍경이었다.

  소리를 질렀다. 거기에 누가 없는 거냐고, 내게 해답을 줄 수 있는 자, 세상에 없는 거냐고. 그러나 웅성거리며 들려온 건 똑같은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찍어낸 듯한 사람들이거나, 거대해진 자신들의 판자를 직직 끌며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들의 거칠어진 숨소리뿐이었다. 밤이 온 것도 아니었는데 세상은 너무도 어두웠고, 오직 몸을 구겨넣을 수 있는 작은 상자 하나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처박혀있을 수 있는 그 좁은 공간만 생각났다.

  위협은 즉각적이었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한꺼번에 머릿속에 나열되는 위협적인 장면들은 너무도 사실적으로 눈앞에 그려졌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내 모습은 기괴한 괴물의 모습으로 떠올랐고, 그런 내 앞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사람들의 절규와 혐오가 너무도 생생했다.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그것 보라고, 내가 무어라고 했느냐고 비웃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을 꽝꽝 울렸다. 그토록 좁고 협소한 경계 속에서, 너무도 거대한 판자를 들고 낑낑거리던 사람들이 주저앉은 나를 보며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가장 안전하고 바람직한 삶이란, 그렇게 주어진 경계에 순응하며 사는 일이 아니었느냐고, 그들은 주저 앉아버린 내 앞에, 기립한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승리한 자의 포효를 들려주었다.

 

  나는 또 다시, 패배한 자였다. 그들이 보여준 승리가 아무리 남루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을지라도, 내가 도착한 거기보다는 최소한 나은 것처럼 보였다. 경계를 넘어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전환된 삶을 찾은 거기는, 그보다 훨씬 더 후락하고 형편없는 곳이었다. 아무런 열매도 열리지 않은 황폐한 곳처럼 보였으며, 내가 움켜쥔 건 공포와 절망뿐이었다. 땅 밑이 꺼지며 나는 어딘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어쩌면 일종의 향수병을 느끼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향수병이라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두고온 고향, 혹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의식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온 힘을 다 해 불안을 피하여 도피한 자에게, 그건 또 다시 다른 종류의 더욱 힘 센 강박이 되게 마련이다. 더욱이 천국이라고 믿었던 거기가, 자신이 도망쳐 나온 지옥과 꼭 닮은 곳이라는 충격은, 그러한 강박을 벼랑 너머로 밀어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나의 경우, 그것은 단순히 불안에 대한 기억 따위가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정체성에 대한 문제와 결부되면서, 뿌리 채 흔들리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힘겨운 몸을 움직여 우리가 건너온 경계 쪽으로 조금만 더 다가가게 되면 경계너머인 거기도, 전환의 한 가운데인 여기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경계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또 다른 불안의 한가운데였던 등 뒤가 다시 반짝이며 우리를 유혹하고, 다시 몸을 돌려 이쪽이든 저쪽이든 불안의 가운데를 향해 경계에서 멀어지면, 내가 선 곳의 불빛은 사라지고 경계 너머의 불빛이 다시 반짝이게 된다.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무지개의 자리처럼 우리는 빛을 향해 뛰면 뛸수록 오히려 더 빛을 잃어버리는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불안을 지우기 위해, 나를 짓누르는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계 안에 몸을 웅크리는 일도 아니고, 경계를 넘는 일도 아니라면, 우리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방법을 말하기 위해, 나는 되돌아가지 않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언뜻 말장난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결국 '시간의 흐름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비가역적이다.'라는 아주 단순한 정의만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제다.

  세상의 경계를 뛰어넘는 전환이 나에게 완벽한 안정감을 줄 수 없다는 깨달음을 가진 내가, 전환하지 않은 그 곳으로 '또 다른 전환'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이미 예전에 내가 떠나왔던 그 모습 그대로 남겨져 있을 수는 없다. 이미 거긴 변화와 새로움을 갈구하는 욕망으로 변질되어버렸으며, 돌아가서 마주하게 된 우리가 떠나온 자리의 황폐함은, 더욱 끔찍하게 다가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시골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간절해 그곳으로 이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시골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이란 불편함과 고독함을 견디어내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어 다시 도시로 돌아오더라도, 이미 도시는 그 시간 동안 또 다른 모습의 낯선 공간이 되어 있을 것이며, 도시의 복잡함 속에 억지로 몸을 섞어 지낸다고 하더라도, 시골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알고 있는 그에게, 거긴 시골을 모르던 그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환기될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성전환자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남자라는 세상의 경계 안에서 태어나, 그 경계 바깥으로 탈출을 감행하여 여자의 삶을 살아본 후 다시 남자의 경계로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남자의 삶을 다시 살아가는 일은 요원한 것이다. 게다가 '수술'이라는 비가역적 치료 과정을 반드시 지나치게 되는 우리들에겐, 그건 더더욱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환은, 경계를 넘는 일은 그렇게 어떤 '각오'를 수반한다. 우린 그걸 '결심'이나 '결정'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실제로 지나쳐버리는 어떤 시간,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순간에 대한 명명으로는 너무도 미약하다. 우린 경계를 지나쳐 넘어오면서 그 경계 안의 모든 것들을 시간 속으로 폐기해버린 것이다. 단순히 손에 든 것들뿐만 아니라, 그 때의 시간들, 불안들, 억압들, 또 반대로 답답하고 불안한 만큼 안정되게 우리를 떠받치고 있던 것들까지 모두 내버려야하는 것이다. 그건 절대 복구나 복원이 불가능하며, 망각해버린 기억처럼 왜곡이나 뒤틀림의 가능성만 존재하게 되는 안타까운 지나침이다.

 

  그렇다면 무기력해져버린 우리들에겐 해답이 없는 걸까?

 

  지금부터 나는,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기괴하다'는 비난을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야말로 무기력해져버린, 길을 잃어버린, 모든 억압과 불안 밑에 깔려 버둥거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생존의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최악의 경우에도 인간을 되살릴 것이며, 바퀴벌레처럼 그건 끝내 인간을 생존의 방향으로 돌려세우게 될 것이다. 기존의 경계와 관습을 지키려고 필사적인 사람들과, 그 속에서 버려져 스스로 패배자라는 낙인을 찍으며 비관적인 삶을 자초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 뒤엉켜있는, 그런 과도기적 시간 속에 몸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내 이야기는 물론 부정적으로 환기되기는 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인간을 또 다른 층위로 도약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본능이라고 믿는다.

 

 그건 바로 '변이(變異)'.

물론, 그건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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