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


 


최혁규(문화연대

 

 

 

 기억에 의하면 문화연대에 들어와서 처음 주어진 미션은 성명서 쓰기였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을 풍자한 이하 작가의 포스터 작업이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았던 사건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문화연대의 견해를 밝히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이었다. 태어나서 써 본 글들이 나의 이야기를 풀거나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는 일기나 리뷰, 칼럼, 비평 등의 글들이 전부라 조직의 견해를 대변하는 성명이라는 형식의 글을 쓰는데 무척이나 애썼다. 분량으로 치면 A4용지로 한 장도 안 되는 글이었는데 계속 썼다 지웠다 를 반복하며 온종일을 보냈다. 개인적인 입장을 숨기려 했기에 어려웠던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조직의 견해를 간결하고도 강력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망설이게 되는 표현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익숙하지 않은 글쓰기였기 때문에 더딜 수밖에 없었다. 성명이나 논평은 진보냐 보수냐를 막론하고 조직이나 단체가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에,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는 영역에서 문제시되는 사안이 있을 때 단체들은 하루빨리 성명이나 논평을 낸다. 쉽게 말해 성명 및 논평 문화가 있다고나 할까. 나 혼자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인 공동체의 목소리인 만큼 책임감을 갖고 글을 쓰려다 보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몇 번 공동체의 입장을 작성하다 보니 가끔 쟁점이 되는 사안에서 개인적인 입장을 세우기도 하지만 내가 속한 조직의 사람들이 어떤 입장을 가질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공통의 전망과 목표를 위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긴 하지만 각자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차이가 있고 행여나 그 생각이 조직의 입장에 쉽게 묻혀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 사건사고들은 누가 봐도 어이가 없는 사건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지난 9월 문화체육관광부 김 모 예술정책과장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와 직원을 불러놓고 협박성 월권 발언을 하고 결국은 재단 대표가 사임했다는 소식, 부산비엔날레 오광수 운영위원장이 투표를 통해 전시감독을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운영위원장의 권한을 운운하며 선정된 감독에게 공동 감독직을 할 것을 강요했다는 소식,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식에서 청와대에 의해 일부 작품이 제외되었다는 의혹제기, 그리고 이 전시에 선정된 작가 2/3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미술계 인사들이 범대책위를 구성해 이를 규탄하고 있다는 소식, 국정원에 의한 진보적 문화예술단체 압수수색 등이 있다. 이들 모두 문화권력의 심각한 불균형 현상과 문화자본이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로, 자율적이고 생동력 있는 문화가 아니라 죽어버린 문화의 거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기에 분노하고 분개할 만 한 일이다. 특히 문화운동에서 문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부당한 권력의 행사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 성명서를 통해 그리고 팟캐스트를 통해 이 사건들에 대해 견해를 피력했다. 단체의 목소리를 통해 개인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고, 개인의 입을 통해 단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 모두가 어떤 사안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고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입장을 공통의 것으로 모아내고 구체적인 언어로 명료화시키는 작업은 많은 논의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있어서 공동체와 개인 간의 입장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특히 공식적으로 정치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단체의 경우에는 그 입장을 남에게 설득시킬 논리와 언어를 동반해야 하며 항상 사회적인 책임이 따른다. 때론 사사로운 이익만을 추구하고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독단적인 입장을 제시하는 단체의 경우도 종종 보긴 하지만 과연 이들이 공동체 혹은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쨌건 공통의 의견은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무수한 차이로 구성된 공동체나 조직일지라도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같은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 있다. 매번은 아니겠지만, 글을 통해서건 말을 통해서건 각자 다른 의견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위한 자리들이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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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규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 문화정책센터
(121-802) 서울 마포구 공덕동 120-10 백광빌딩 3층
Tel) 02-745-1603/ Fax. 02-737-3837
http://www.culturalaction.org/xe/

 

: 문화의 자리에서 정치적인 것을 꿈꿉니다.

 

 

 

 

 

 

 

연구모임 아프꼼에서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을 개최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내 말은 내가 될 수 없다. 혹은 단지 나로서만 머물러버린다. 오직 이해받지 못함을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한 종류의 이해에 도달하고자 한다."

- <밤이 염세적이다>, 배수아

 

 

이번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에서는 배수아의 작품 중 <밤이 염세적이다>를 각색하여 연극으로 상연합니다. 그것은 연극인 동시에 말의 제단이고 말의 성전이기도 합니다. 그 때의 말이란, 내가 뱉고 당신이 듣고, 그리고 이해받지 못할 때 비로소 나와 당신을 잇는 끈이 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말을 다시 행위하고, 낭송하고, 상연하고, 나눔으로써 이해받지 못한 이해에 도달해보고자 합니다.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의 진행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시: 20131213()

장소: 동아대학교 구덕캠퍼스 석당홀

 

6~6: 30: -이미지의 극장 / Werner Fritsch 감독의 <ATEM DES LAOTSE>상연

 

6:30~7:30: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 / 연극 공연

 

7:30~8: 배수아와 목소리의 극장 / 낭독 공연

 

8~8:30: 아프꼼과 정동의 극장-아프콤 with / <환을 켜다> 다큐멘터리 상영

 

 

 

글과 말과 문장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니 자유롭고 비밀스럽게 스며들듯 들어와주세요.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문의: affcom11@gmail.com

 

 

 

 

문화운동! 어디가?


 


최혁규(문화연대)


 

 2013년 문화연대 후원의 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후원의 밤 제목은 “문화연대, 어디가?!” 이다. 재정적인 사정으로 10월 말에 사무실이 이전하기도 했고 앞으로 문화연대의 (문화)운동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지은 이중적인 의미의 제목이다. 실제로 어딘가로 갔고 또 앞으로 어디로 갈지에 대한 고민을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풀려다 보니 “아빠! 어디가?”를 패러디한 것이다. 참 탁월한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특히 ‘어디로 간다는 것’은 어쨌거나 출발하는 곳이 있다는 말이니, 어디 가느냐고 묻는 행위는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모색과 동시에 현재의 자리에 대한 성찰도 동반하는 것이다. 참 괜찮은 후원의 밤 이름이다.


 거의 모든 시민단체가 매년 후원의 밤 행사를 하는데, 단체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음식과 술을 나누며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것을 함께 다짐하는 자리다. 또한, 적극적인 후원 요청을 통해 앞으로의 활동 자금을 마련하고 새로운 운동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는 창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후원의 밤은 함께 모여 지난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점검하고, 어떻게 미래로 나아갈지를 모색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운동의 점과 선과 면을 엮고 꿰매는 시간. 문화연대가 1999년에 창립되었으니 이번 후원의 밤은 문화연대의 문화운동의 14년이라는 세월을 엮는 셈이다. 나는 그 세월 안에 있다. 하지만 운동이 한 단체나 한 활동가의 것으로 환원되어서도 안 되지만, 활동가나 단체가 운동 속에 가려져서도 안 된다.


 아무튼, 나는 후원의 밤을 준비하기 위해 몇몇 지인에게 연락을 해서 후원을 요청했다. 그럴 때마다 지인들은 사회운동은 알겠는데 대체 문화운동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예술운동은 알 것 같은데 문화운동은 뭐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단순하게 이야기했다. 사회운동이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운동이라면 문화운동은 더 좋은 문화를 위한 운동이라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둘은 다른 것이 아니라고. 또한, 예술운동은 개별 장르들이나 예술이라는 특화된 형태에 대한 운동이라면 문화운동은 예술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적 표현물들에 대한 운동이라고. 그리고 문화적인 것들을 창조하고 향유할 문화적 권리,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차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문화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운동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문화운동은 자본의 동학 시스템과 그것이 재생하는 문화 권력에 대해 저항하기도 하고, 자본의 영역 밖에 있는 대안적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활동이다. 이런 것이 바로 문화연대의 문화운동이다. 이 운동이 어느새 14년을 맞이했고 지지와 응원을 바라는 후원의 밤 행사를 연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로 문화융성 내세울 정도의 문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그동안의 문화운동에 대한 점검을 통해 앞으로의 문화운동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문화연대 후원의   밤을 맞이해서 이런 질문을 해본다. 문화운동! 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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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규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 문화정책센터
(121-802) 서울 마포구 공덕동 120-10 백광빌딩 3층
Tel) 02-745-1603/ Fax. 02-737-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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