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뜨락] ‘아무 말’, 불현듯 그 곳에 가고 싶게 되는.


 


최혁규(문화연대)


 

 

 

현재 문화운동은 어디쯤 머물러 있으며 어딜 향해 가고 있을까? 거리를 배회하며 술집을 어슬렁거리고 영화의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다 보니 어느새 지금의 나는 활동가로서 문화운동을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시민운동의 안팎에서 기존의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 함께 새로운 시민운동을 논의하고 있듯이 지금 이 현실에서 어떤 시민운동이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내 열정과 열정의 부족인지, 혹은 기존의 운동에서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실무에 대한 피로감 때문인지 그게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일단 현상에 대한 진단을 해보면, 몸도 마음도 뻑뻑하니 스스로가 메마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폴리네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정신이 메마를 때는 아무 말이나 써놓고 곧장 앞으로 나가라”고. 그래서 이 글은 추동력을 얻기 위한 ‘아무 말’이다.

 

이전의 나를 돌이켜보니 이렇다. 비싼 등록금을 낸 학교엔 제대로 나가지도 않고 이곳저곳을 방황하고 돌아다녔다. 반항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니었다. 갑자기 스무 살의 문턱을 넘자 그냥 모든 것이 지리멸렬해졌고, 술에 젖어 하루를 잊은 채 잠이 드는 게 좋았었다. 그러다 어떤 계기를 통해 시네마테크에 발길을 들이게 됐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루 줄곧 영화를 몇 편 보고 밤이 되면 거기서 만나게 된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그러다 보니 그 공간이 너무 소중해졌고 영화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새록새록 피어나기 시작했다. 누구의 말마따나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학교였다. 또한, 놀이터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공간이 사라질 위험에 닥치게 되었고 나 포함 시네마테크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시네마테크를 지켜내는 게 정말 절실한 문제였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영화에게 진 빚을 갚고 싶었던 생각뿐이었다. 지금 그 당시의 릴레이 글 중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그때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때 거대한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곳이 밀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숲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숲길을 개척해 나가기도 한다. 그 길의 초석을 마련해준 곳이 시네마테크다. 장황한 밀림 속에서 방황하고 갈피를 못 잡던 나(혹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여러 길을 안내해주고, 설명해주고, 쉬어갈 수 있게 해주는 인심 좋은 노인 같다고나 할까. 이 분은 모진 풍파를 견뎌낸 일화들을 즐겁게, 때론 슬프게, 때론 무섭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며(가끔은 졸기도 하고) 가야 할 길을 묻곤 한다. 시공간을 넘어선 영화와 대화, 동행자들과 대화, 그리고 곧 다가올 대화들. 숲길에서의 대화는 가끔 모진 돌에 걸려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게 해준다. 시네마테크는 내게 그런 존재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만나서 영화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자주 있었다. “나도 한때는 영화 정말 좋아했었는데” 혹은 “나도 너만 할 때는 영화광이지” 등의 말들이었는데, 그 말들을 들었을 때의 나의 반응은 항상 하나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겐 항상 현재진행형이었으면 좋겠다고. 시네마테크에서 내가 처음 본 영화는 루이스 부뉴엘의 <잊혀진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비유해서 이야기하자면, 지금도 앞으로도 나는 영화에게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글을 쓰다 보니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이 현재에도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길 바라는 것처럼 누군가도 그럴 것이라고.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그렇게 꾸려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산더민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불현듯 그곳에 가고 싶다. 이 아무 말이나 써놓고 그곳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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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규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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