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점이 모여 선이 되기까지

 

 

차가영

 

 

(5년간 등하굣길에 새긴 발자국)

 

 

 

1. 이미 펜을 들고

   나는 매일 똑같은 길을 걷고 그 길에 발자국을 쉴 새 없이 찍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 발자국들이 합쳐져 선이 될 때까지 그 길을 매일 걷고 또 걷는다. 하지만, 선이 된 그 길은 점점 익숙함이라는 것에 가려 지겨워진다. 그럴 때면 일상이라는 익숙함에서 뚝하고 떨어져 새로운 곳에 점을 찍어볼 수 있는 여행을 간다. 하지만(‘하지만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삶은 얼마나 지겹고, 겁쟁이 같은지!) 매일 걷는 길 위에 놓여 발목을 잡는 들은 여행조차 쉽게 떠날 수 없게 한다.

 

 

 

 

2. 점을 하나씩

   319, 카페 아르케. 아프꼼 동인들과 가진 편집 회의 자리에서 처음으로 일본 워크숍 이야기가 나온 날이다. 참가 인원, 대략적인 날짜를 정하며 워크숍을 위한 첫 점을 찍었다.

   56,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편집회의 때는 참석이 힘들었지만, 함께 가기로 한 동인까지 모인 날이었다. 대략적인 일정 나눔과 정보 공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워크숍 기간 동안의 기록을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건의가 나왔다. 이번 워크숍은 소설가, 뮤지션, 활동가, 연구자가 함께 참가하는 만큼 각자의 관심사를 반영하여 기록을 남기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525, 카페 오월열한시. 아프꼼 팀원 여섯 명 모두와 함께 가는 동인 세 명이 모두 만났다. 이미 조사를 완료한 정보를 공유하였다. 이제 인원도 확정이 되었기에 출발 날짜도 정하고, 일본에 가서 방문할 장소들에 대해서도 확정을 내리는 날이었다. 그리고 가기 전 마지막 만남으로 다함께 완월동 답사를 가는 것에 대한 일정을 정한 날이다.

   622, 완월동 답사. 부산시 서구 충무동에 있는 유곽지역 완월동에서도 점을 찍었다. 완월동은 현재 지도상에는 하나의 점으로서도, 지명으로서도 존재하지 않는 홍등가이다. 완월동처럼 지도에서 지워진 일본의 토비타신치(飛田新地)라는 유곽지역에 가기 전, 부산의 유곽지역은 어떠한 지를 보게 된 날이었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내가 그어온 익숙한 선에 놓여있지 않아 내 삶에서도 하나의 점으로 찍히지 못한 곳이었다.

   627, 김해공항과 인천공항. 준비과정은 늘 빠르게 지나간다. 일과 준비과정을 바삐 하다보면 마음의 준비를 할 정신도 없이 떠나야 하는 날이 된다. 29일에 출발하는 후발대 다섯 명(마틴, 김비, 변정희, 정선욱, 장옥진)을 제외한 선발대 네 명(권명아, 장수희, 신현아, 차가영)은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그렇게 일본으로 떠났다…….

 

 

(워크숍 준비를 위한 3개월의 만남)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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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소설가, 음유시인, 점쟁이의 여행

 

마녀 신현아

 

 

 

 

 

 

 

 

 

  안녕하세요. 밤의 이야기꾼 래인커머입니다.

 

  이번에는 금성이 점지한 가장 빛나는 시간 중 하나였던 2014년의 627일부터 78일까지, 1112일 간 일본 큐슈, 오사카, 니가타의 곳곳을 누볐던 이야기를 할까해요. 신밧드의 이야기보다도 알록달록한 세상을 들어보세요. 기차에서 비행기로, 발로, 손으로, 웃음으로 걸어나간 이 대장정(!)에는, 어느 마녀들, 어느 소설가, 어느 음유시인, 어느 점쟁이들이 함께 했답니다. 지금은 신밧드가 살지 않는 시대에 어찌보면 흔하디 흔한 이 장소들 속에서 우리는 잊혀진 어둠을 발견했답니다.

  명명백백한 빛의 세계에서 우리는 너무나 규정되었으므로, 어둠이 우리 몸의 외곽선을 무너뜨려 흐물흐물하게 되는 곳을 찾아서, 우리는 빛의 사각지대를 발견해내었지요. , 물론 일본에서 만난 또 다른 마녀와 연구자와 활동가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이야기만으로 만들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마녀는 마녀의 언어로, 음유시인은 음유시인의 언어로, 그렇게 각자의 언어로, 눈을 돌릴 때마다 그림이 변하는 만화경처럼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지요. 소설가 김비의 소설, 음유시인 마틴의 노래, 점쟁이 변정희의 에세이, 그리고 마녀들의 에세이. 여기에 각자가 조각보처럼 숨결을 덧대어 만든 소설까지. 우리는 이야기해야만 만날 수 있으므로, 그 이야기는 천 개하고도 하나의 색을 가지고 우리를 또 다른 긴 긴 밤으로 이행시켜줄 것입니다.

 

 

  마녀들과 소설가와 음유시인과 점쟁이의 여행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짜

장소

내용

627~29

벳부

리츠메이칸 국제대학

동서대학교 일본연구소주최 <한일차세대학술포럼>에 네 마녀들(권명아, 장수희, 신현아, 차가영)이 각자 지도교수, 발표자, 토론자로 참가하여 마구 질문을 던지고 말을 걸고 이야기를 꺼내다.

629

오사카

네 마녀와 소설가, 음유시인, 점쟁이, 꼬마마녀들(장옥진, 정선욱)이 오사카에서 상봉하다.

630

오사카

가마가사키

코코룸

9인의 아프꼼들은 가마가사키와 토비타 신치를 걷고, 코코룸에서 밥을 먹고 성노동활동가인 다나카 과장을 만나다. 그리고 코도모센터의 오토나센터의 마마상인 마에시마 아사미씨를 만나다. 극채색과 회색의 만화경을 헤치고, 생존과 삶을 지켜나가고 있는 용감한 사람들에게서 용기를 얻어가다.

71

교토,

동지사대학

교토의 동지사대학으로 가서 정유진 선생님을 만나 두레방, ㅇㅇㅇ의 무쌍난무한 활동의 이야기를 듣다. 그리고 위민즈 액션 네트워크의 무타 선생님, 오카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여성-활동가의 위치에 대해 생각하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프꼼의 친구 카츠무라 마코토 선생님과 배영미 선생님을 만나서 발푸르기스의 밤에 맞먹는 잔치를 열다.

72

오사카

나카자키초

까페 얼쓰

몸의 움직임으로 세계를 깨우는 자인 아만토 준이 살고 있는 나카자키초에 찾아가다. 정작 아만토 준은 부산으로 떠났지만 우리는 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마녀들의 표시를 찾고 즐거워하며 天劇: 아만토 극장에서 알쏭달쏭한 카레를 먹다. 그리고 가마가사키의 까페 얼쓰에서 무츠 사토시상을 만나다. ‘관광가이자 활동가이자 훌륭한 이야기꾼인 무츠 사토시상에게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비법인 마와시요미 신문을 얻다. 함께 마와시요미 신문을 만들다.

73

오사카

소설가, 음유시인, 점쟁이, 꼬마마녀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다. 남은 네 마녀, <20세기 소년>에 나오는 부활의 장소인 오사카만박에 가서 알 수 없는 부활의식을 치루다.

74~8

니가타현립대학

훌륭한 학회에 참석하다. 이중언어에 대한 지식을 쌓다. 니가타에서 가장 맛있는 청주를 마시다.

 

 

이제부터, 우리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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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삼동-바다의 말

 

 

金 飛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 바다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 앞에 선 듯 바다 앞에 서면 괜히 뭉클해진다. 어차피 바다라는 세계의 모성을 헤아리는 일은 나에겐 불가능한 것인데, 닮은 얼굴이라도 확인하려는 듯 나는 한동안 묵묵히 바다만 바라보게 된다. 나라는 생명을 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존재를 고민하기 이전의 근심이 떠올라 어쩐지 자꾸 먹먹해진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바다가 품어 안은 마을은, 바다에 기대어 살고 있는 마을은 그렇게 포근하고 평화로운 감상을 일깨운다.

 

  애초에 부산의 바깥을 돌아보기로 계획하면서, 그래선지 바닷가 마을에 대한 기대는 제일 크게 부풀어 올랐다. 부산이라는 이름 뒤에 따라오는 무수히 많은 해수욕장과는 멀리 떨어져, 오롯이 바다에서 나고 바다의 힘을 빌어 평생을 살고 있는 순수한 마을과 사람들의 풍경을 꼭 사진으로, 글로 담고 싶었다. 어차피 내가 바라는 기대와 여기에 실재하는 시간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꾹꾹 눌러 담은 기대는 이미 차고 넘쳤던 것 같다.

 

  가장 어렵고 난해한 문제일수록 의외로 가장 가까운데 해답이 있다고 했으니, 그래서 나는 부산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태종대 뒤편의 바닷가 마을 동삼동을 목적지로 정했다. 하루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관광지 주변을 목적지로 정하고서도, 나는 가장 가까운 바깥에, 가장 소외되어 있는, 그래서 더욱 순수한 마을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어리석게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동삼동까지 조금 걸어 내려가야 하는 정류장에 도착하고서도 나는 저녁 무렵의 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네 시간 정도 더 그곳에서 기다렸다.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는 한낮의 뜨거운 햇살만큼 재미없는 빛은 없기에 좀 더 내가 기대하는, 마을 풍경과 어울리는 빛을 만나기 위해 그 정도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느새 조금씩 햇살이 피로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관광객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종대 입구 아래로 빙 돌아가게 되어있는 동삼동 외곽 마을의 입구는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이상한 나라의 구멍 같았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에 거대한 철의 벽이 드리워 있는 것을 보면서도 나의 기대감은 여전히 견고했다. 사각의 구멍 너머로 용도를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이 서 있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고즈넉한 바닷가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지해변이라는 이름의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먼 바다는 기대했던 대로 평화롭게 서서히 저녁 빛으로 물들고 있는데, 해변가에는 술에 취한 관광객들과 호객을 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뒤엉켜 있었다. 크지 않은 해변은 식당의 가건물들로 모래 한 자락 보이지 않게 꽉 들어차 있었고, 파도가 들이치는 바닷가에는 가건물들에서 나온 무수히 많은 푸른 호스들이 바다까지 길게 드리워져 뒤엉켜 있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저녁 무렵의 바닷가 마을을 상상했던 나는 망연자실 망망대해를 넘겨보았고, 인공호흡이라도 하듯 호스를 꼽고 있는 바다 곁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이곳의 생존 방식 아닌가. 모든 편견이나 선입견이 그러하듯 그것은 비단 타인의 것만이 아닌, 어리석은 나의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편견의 당사자인 소외된 자들의 편견이나 선입견은 그 어떤 것보다 지독하고 고약하지 않은가.

 

 

  나는 홀로인 나를 붙드는 상인들의 손을 웃으며 물리치고는 마을 쪽으로 걸었다. 왠지 헐떡이는 것만 같은 바다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으려 애를 쓰며 천천히 비탈에 자리한 마을로 들어섰다. 마구잡이 자란 초록의 풀들을 따라, 그 속을 비집고 드리운 작은 길들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몇 개 되지도 않는 집들을 지나 비탈에 올라서니, 마을 한 가운데가 텅 비었다. 아니 빈 것이 아니라 갖가지 이해할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야적장인지, 산업쓰레기들을 모아 놓는 곳인지 마을 한 가운데 널따랗게 자리한 곳에선 퀴퀴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듬성듬성 초록의 풀들이 뒤엉켜 있었지만 그건 자연스럽지도 그렇다고 정겹지도 않았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구조물들과 녹슨 물건들에 뒤엉켜 그건 차라리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시 비탈을 내려와 나는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수풀이 우거진 한 가운데로 나무판자가 이리저리 놓인 길이 나 있었다. 한 발 내디뎌보니 늪에라도 들어선 듯 그 아래가 출렁거렸다. 위태로웠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끝까지 판자 길을 따라가니, 작은 실개천으로 생전 처음 보는 색깔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늘색 빛을 띤 물이었는데, 하늘빛이 드리운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이물스럽고 안타까운 하늘색은 생전 처음이었다.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서 허망하게 마을을 둘러봤다. 바닷가에서는 계속해서 고성이 들려왔고, 마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찼다. 비탈에 힘없이 선 어느 집에서 뒷짐을 진 주민이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는데, 그곳에 서있는 내가 참으로 죄송스러웠다. 그곳이 오래도록 그 분들의 생활공간이라면, 내가 떠올리고 있는 그 모든 생각과 감정은 불손하고 오만한 것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어깨가 축 늘어져 다시 푹푹 빠지는 판자 길을 돌아 나오는데, 비탈 한 쪽에 무언가를 열심히 심고 계시는 주민이 보였다. 이토록 안타까운 시간 속에도 묵묵히 미래를 심고 계시는 그 분이 참으로 반가웠다. 그리고 나는 한참이나 그 분 앞에 서서 한 알 한 알 미래를 심는 그를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내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는 계속해서 흙 속에만 얼굴을 묻고 계셨고, 그의 모습 너머로 어디에서 솟았는지 알 수 없는 태극기가 촐싹맞게 펄럭거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만났던 것은 진정한 소외의 풍경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예쁜 소외를 꿈꾸었던 어리석은 내 앞에, 가장 극단적인 모습으로 소외의 맨 얼굴이 드러났던 건지도.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삶이 아닌가, 아무리 내가 기대하는 모습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그들의 삶이 있지 않은가. 나는 엇갈리며 떠오르는 그 복잡한 생각들을 바쁘게 오고가면서, 술에 취한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뒤섞인 그곳을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우리의 안타까움은 왜 매번 그토록 게으른가. 여기를 지키는 것과 나를 지키는 것이 충돌할 때, 현명함이란 얼마나 잔혹해지는가. 소외되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그 많은 시간의 늪을 어떻게 건너야하는 건가, 해답이란 진정 가능한 것인가.

 

  나는 자꾸 먼 바다만 바라본다. 엄마가 답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철부지 아이처럼, 하지 못한 말들을 두 볼 가득 담고서 길을 잃어 엄마를 찾듯. 물론 우리를 낳고 키운 바다는 언제나 그랬듯 말이 없다. 세상의 모든 엄마처럼, 바다는 오늘도 비명을 삼키고 있는 모양이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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