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평동-벽 안의 사람들

 

金 飛

 

 

 

 

 

 

 

  부산이라는 도시는 한반도의 축소판처럼 한 쪽은 육지로 이어져 있으며 다른 쪽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부산의 바깥은 육지이며 또한 바다다. 부산의 바다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해운대를 중심으로 몇 개의 해수욕장이나 작은 바닷가 마을들을 말하지만 그것은 '바다'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너무 간결한 호출인지도 모른다. 바다는 속속들이 모든 부산의 바깥에 가 닿아 있으며, 우리가 바다를 하나의 정형화된 풍경으로 소외시킬지라도 바다는 우리들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바다 쪽으로 가자고 생각했으면서도 나는 바다로 가지 않았다. 유명한 해수욕장의 이름들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여러 개의 항구와 인접한 마을들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 감천항과 맞닿아있는 구평동은 그 이름도 낯설거니와, 항구인지 마을인지 기다랗게 뻗어있는 항구 주변의 공장지대와 구조물들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에 항구가 몸을 기댄 건지, 항구가 있는 마을에 사람이 몸을 기댄 건지 그 모호한 풍경이 마음을 끌었다.

  구평동을 목적지로 정하고 괴정역에서 마을버스를 탔으면서도, 나는 바다 근처로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바다를 등지고 마을 쪽으로 걸어 올라갈 참이었다. 어차피 항구와 그 관련 시설들로 뒤덮인 바다는 민간인인 내가 가 닿을 수도 없는 곳일 뿐더러, 내가 만나고 싶은 마을과 그 지역의 사람들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으리란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구평동에서도 마을의 중심지인 구평고개 근처가 아닌, 제일 바깥의(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제일 안쪽인) '안구평'에서 내려 항구를 등지고 천천히 마을을 거슬러 올랐다.

  항구 너머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은 가팔랐고 조용했다. 마을이기는 했지만 군데군데 작은 공장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고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더 위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니 도로는 순식간에 마을을 넘어 수풀이 우거진 산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눈앞에 '구평가구단지 500미터'라는 표지판이 보였고 나는 그 앞에서 망설이다가 표지판을 따라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20여 분 땀을 흘리며 올라가니 산자락의 꼭대기인 듯한 곳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아래로 내려가니 또 다시 '구평가구단지 500미터'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500미터가 아니라 족히 1킬로는 걸어왔을 법한데, 표지판은 여전히 또 다른 쪽을 가리키며 500미터라고 말해 주었다. 우거진 풀숲 사이에서 '감천항로'를 가리키는 새파란 표지판이 땀을 닦고 있는 나를 넘겨보고 있었고.

 

 

 

 

 

 

 

 

 

  불친절한 주민을 만난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또 다시 망설임은 길어졌다. 하지만 믿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500미터일 리는 없겠지만 머지않은 곳에 그곳이 있으리라 짐작하면서 나는 다시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숲길을 따라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가구단지는 경쟁이라도 하듯 붙어있는 광고판들을 자랑하며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가구단지는 내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경기도에 살던 때에도 나는 가구단지 근처에 살았는데 이곳의 가구단지는 그 때의 그 곳과는 사뭇 달랐다. 쓰러질 듯 낡은 건물들이 서로 다른 간판을 달고서 손님을 갈구했지만 도로에는 '고객'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제법 큰 가구 전시장에도 전시된 가구를 닮은 직원들이 외지인인 나를 신기한 듯 넘겨볼 뿐이었다.

  조금 더 걸어 가구단지 안쪽으로 들어가니 풍경은 더욱 을씨년스러워졌다. 이미 희미해져버린 서로 다른 이름을 단 공장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고, 시간의 때가 묻은 데다 건물들이 낡고 허름해 골목은 더욱 어두침침했다. 사람을 찾아왔는데 나를 맞이한 것은 불친절한 화살표와 전시물 같은 외지인들의 표정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 마을에는 이곳의 '주인'이자 '주민'인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제 이곳은 사람을 위한 땅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물건들을 쏟아 내야하는 공장들의 땅이 되어버린 것일까? 괜히 마음이 무거워져 나는 침울한 표정으로 어두운 골목 여기저기를 사진 속에 담고 있는데, 처음부터 문이라고는 달리지도 않았던 어두운 곳에서 기름때가 묻은 남자가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기계 소리가 들리는 또 다른 벽 너머에서 흰 러닝이 흠뻑 젖은 사람이 흘끗 나를 봤다. 사람이 들어설 수 있을까 싶은 건물 사이에서 머리가 희끗한 분이 거대한 자제를 어깨에 메고 성큼성큼 내 쪽으로 걸어 나왔다. 폐업한 곳인가 싶은 데서 또 다른 사람이 땀을 흘리며 상자 여러 개를 들고 나왔고,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건물 뒤에서 몇몇 사람은 작은 화물차 안에 물건을 싣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나를 놀리는지, 새빨간 벽을 지닌 공장 건물 안 쪽에서 커다란 개 두 마리가 혀를 길게 빼고 나를 넘겨보고 있었다.

 

 

 

 

 

 

 

 

 

 

 

 

  그제야 허름하고 낡아 보이기만 했던 그 벽들 속에 숨결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지켜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허물어져가는 벽 너머에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꽉 막히고 낡은 벽 안에 살고 있던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것들에 눈을 빼앗겨, 시간을 이겨낸 그 아름다운 삶들을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리석은 나였고 우리들이었다.

  가구단지를 지나 마을 쪽으로 다시 돌아내려오는데 허름한 건물 사이에서 이주노동자 가족으로 보이는 부부가 나타났다. 그 어두운 골목을 산책이라도 하는지 그들의 발걸음은 여유롭고 정겨웠다. 그들의 앞에 아장거리며 걷는 아이가 너무도 예뻐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물으니 그들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휴대폰 카메라를 드니 아장거리며 걷던 아이도 나처럼 도로 위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향해 혀를 삐죽 내밀었다. 순식간에 그 좁고 어두운 골목은 그 어떤 세상보다 환하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 부부의 웃음소리로, 사진을 찍으며 행복하게 웃는 나의 웃음소리로 더 이상 그곳에 사람을 잃어버린 버려진 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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