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월동-달 위에 지은 마을

 

 

金 飛

 

 

 

 

  스물을 갓 넘긴 한 여자가, 오다 가즈마사의 사요나라를 부른다. ‘나는 울지 않으니 이제 나를 내버려둬, 눈물은 당신의 볼을 타고 흘러.’ 짙은 화장을 지워낸 또 다른 그녀들이, 서로의 살결을 부비며 모여 앉아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울지 않겠다고 노래하면서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들은 마음에 없는 욕지거리를 뱉는다. 타박을 하기도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어느새 그들도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나는 울지 않으니 이제 나를 내버려둬, 눈물은 당신의 볼을 타고 흘러. 안녕, 안녕, 이제 곧 밖에는 새하얀 겨울이.’ 어느새 그들의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밀려오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떨고 있는 두 손이 바쁘기만하다.

 

  통속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모습은, 10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아마 너무도 여러 번 그곳에 재현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현재라는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마을은 여전히 지금의 몸체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극단적인 감정과 기억을 충돌시키며, 그 이름은 거대한 시간의 회오리를 일으키는 공동(空洞)인지도 모른다.

 

  완월동은 현재 부산시 서구 충무동 소재의 유곽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1907년 일제시대 때 미도리마치라는 홍등가로 태동하여 그곳은 1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유지되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똑같은 사람들이 나고 자랐을 완월동이라는 마을은 공식적으로 지금은 그 지명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억이나 욕망 속에 지우고 싶은 이름이었을 뿐, 그곳은 차마 고향이라 불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완월동이라는 마을을 찾는 누군가에게조차, 그 누구도 반가운 심정으로 그곳을 가리키지 못했을 테니 추억이나 그리움을 떠올리는 일은 과도하게 낭만적이라는 야유를 넘어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무심하고 이기적인 시선을 지닌 채 정겨운 마을 풍경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우리 모두가, 그토록 오랜 시간 그곳을 소외시켜 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말의 여지도 없이, 그 마을의 시간과 공간은 분명 그 자체로 선뜩한 소외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완월동은 촬영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아프꼼의 회의 자리에서 듣게 된 완월동이라는 이름과, 그곳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는 그저 어린 시절의 내 고향인 파주 근처의 집창촌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미군 부대가 여기저기 산재했던 그곳의 용주골이라는 마을, 분홍빛 불빛을 쏟아내는 작은 유리문 안쪽에 앉았던 젊은 여자들의 모습은 흐릿하기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또렷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곳 완월동의 입구에서 우리들을 반긴 것은 초록의 이파리를 드리운 키가 큰 나무들이었다. ‘일방통행이라는 바닥의 글씨는 모종의 기시감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곳은 그저 행인들이 거리를 걷고 마을 주민들이 나무 아래 땀을 식혔을, 누구든 어디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안내를 따라 한 블록 더 위로 올라가니 완만하게 이어진 오르막 거리가 우리의 눈앞에 드러났다. 환한 밤이라도 드리운 것처럼 인적이 지워진 풍경은 그곳이 바로 완월동이라는 유곽지역임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 긴 거리를 향해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일행으로부터 나는 잠시 떨어져 나왔다. 천천히 홀로 걸으며 그곳이 견뎌냈을 100년이 넘는 시간을 조심스레 가늠해 보았다. 밤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었을 세계. 돈이 욕망이 되고, 욕망이 슬픔이 되어버린 시간. 멀리 떨어져 걷고 있는 일행들 뒤로 길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길을 가로질러 갔는데, ‘나까이(호객꾼)’라도 만난 것처럼 나는 괜히 멈칫했다.

 

 

 

 

 

 

 

 

  아무런 간판도 없이 커다란 유리문이 달린 집들. 그 속에 여러 개의 의자들은 부끄럼 많은 처녀들처럼 나란히 앉았다. 붉은 빛 커튼과 왜색의 그림들로 장식된 공간은 좁았지만 경쾌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화장품들과 목욕 가방은 어제도 분주했을 그들의 일상을 말해 주었고, 유리문 바깥에서 지키고 있는 활짝 핀 붉은 수국은 지지 않는 꽃처럼 어깨를 활짝 편 채 당당했다.

  그녀들이 앉아 손님을 끌었을 철제 의자에는 빈 담뱃갑 하나가 놓였고, 기다림이 길었을 그들의 지난한 시간은 차가운 철판의 단단함 위에까지 생채기를 만들어 놓았다. 같은 건물인데도 색깔이 다른 벽은 차마 말하지 못한 기나긴 사연을 감추고 있는 듯했고.

 

 

 

 

 

 

 

 

 

 

 

  나는 그들이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을 철제 의자에 앉았다. 그들이 여기에서 기다린 것이 과연 손님뿐이었을까. 고양이처럼 그 거리 한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으니, 괜히 울컥 눈물이 치밀었다. 누군가 여기서 그렇게 울었겠지. 가뭇없이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울음처럼 토했겠지.

  조만간 이곳이 문화예술지역으로 지정되어 변모를 꾀한다고 하는데, 그곳의 이름조차 지켜주지 못했던 우리 시대의 비겁함은 이대로 그들의 시간을 지워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지.

 

  비좁은 골목 끄트머리에서 먼지가 잔뜩 쌓인 산부인과 간판을 찾았을 때, 바로 그곳이 완월동에 머물렀던 여성들이 스스로의 몸을 돌볼 수 있었던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켜켜이 쌓인 시간의 때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 간판 아래에서 서성거리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결심이 오고 갔을지, 얼마나 아프게 입술을 깨물었을지. 속없이 너무 커다랗기만 한 내 몸은 그 간판 아래에서 자꾸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여러 번 그들에게 손을 내밀려고 했지만 쇠락해져가는 그 지역의 사람들과 그들 스스로가 모든 도움의 손길을 거부했다고 들었을 때, 나는 이를 악문 채 도리질하는 그들의 몸짓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알량한 꿈이나 희망 따위로, 차마 우리들이 강요하거나 침범해서는 안 되는 그들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 곁에 머물러, 헤아릴 수 없을 그들의 고독을 위로해야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일 테고. 존재하지 않는 듯 존재해야 했던 그들의 숙명처럼, 우리도 그렇게, 없는 듯 곁에 있으며 조용히.

 

  길지 않은 시간 머물렀던 그곳을 내려오며 자꾸 뒤를 돌아본다. 아직도 어디에선가 오다 가즈마사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우리들은 자유로워, 언젠가 그렇게 말했지. 오늘 일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마. 안녕, 안녕, 이제 곧 하얀 겨울이. 오늘도 밖엔 비가 오지만, 곧 눈이 되어 우리들 가슴 속에 쌓여갈 테니.’

 

  본 적 없지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우리는 그렇게 기억해야한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Thanks to 변정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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