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상실의 국정

 

권명아

 

 

 

 

 

 

 

   파시즘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국가 간 세력관계에서 발생했다. 나치 최초의 구호인 “베르사유의 사슬을 끊자”는 1차 세계대전으로 구성된 세계 질서를 겨냥한 것이었다. “독일이 포위되어 있다”는 히틀러가 애용한 표현이었다. 독일에서 나치즘의 집권은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꽉 막혀버린 변경의 역사”(밀턴 마이어)의 산물이다. 파시즘이 탈출구가 없다는 폐쇄공포와 이를 해소하려는 공격성을 동전의 양면처럼 내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밀턴 마이어는 이런 폐쇄공포와 공격성이 국가 내부를 향한 독재와 국가 외부를 향한 공격성이라는 파시즘 고유의 정치 형태를 만들었다고 논한다.(<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폐쇄공포는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미래의 전망을 찾지 못한 상실감에서 비롯되었다. 미래를 구상할 수 없는 집권층의 무능력이 바로 폐쇄공포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그 무능력은 공격성을 통해 상쇄되었다.

 

 

   같은 시기 일본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우위를 놓친 중국을 대신하여 아시아 신질서를 수립하겠다고 나섰다. 일본 내부에서 파시즘의 강화는 대륙과 해양의 싸움이기도 했다. 대륙 진출을 아시아 신질서 건설의 교두보로 삼았던 육군파와 해양을 새로운 교두보로 삼고자 했던 해군파의 대립은 혁신적 파시즘을 내건 해군파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대륙파의 교두보가 철도였다면, 해군파의 교두보는 ‘전함 야마토’로 상징되는 함대였다. 철도와 전함이 ‘세계’에 대한 일본 상상력의 한 근간이라고도 할 것이다.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있다는 말은 이제 새삼스럽다. 말 그대로 세계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대륙과 해양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은 2015년 현재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저항과 일본의 견제 국면으로 부활하고 있다. 28일 뉴스를 장식한 남중국해에서의 미국과 중국의 아슬아슬한 대치는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유럽 정상들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협의에 분주하고 세계 각국 정상과 정치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하게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각축전은 시시각각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은 거의 없다. 대륙에는 중국 열차가, 연안에는 일본 함대가 코앞까지 당도했는데, 한국형 전투기의 미래는 막연하기만 하다. 물론 일본 정부처럼 재무장의 길을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 정부가 상대해야 할 위기가 과연 어디서 오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주변국들이 세계지도를 다시 그리겠다며 모든 인프라를 동원해 나서고 있는 바로 오늘,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학적이다. 대륙도 해양도 다 막혀버린 지구 유일의 냉전체제 속에서, ‘외부’와 대항해야 할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 중이니 그야말로 슬프도록 자학적이다. 국정 교과서란 대륙도 해양도 다 막혀버린 지구 유일의 냉전체제에서만 가능한 상상력이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란 급변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새로운 자리도 미래의 전망도 찾아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의 전형이다. 국정 교과서가 세계를 상실한 나라의 국정 전략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파시즘은 ‘비국민, 퇴폐분자’의 이름으로 사람이든 책이든 다 불살라버리는 공허한 증오의 열기로 세계를 잃어버린 좌절감을 상쇄했다. 세계를 대신해 증오가, 미래를 대신해 죽음만이 사회에 가득했다. 세계 상실의 증오와 죽음의 정치에 맞서, 미래를 향한 살림의 정치를 요구해야 할 때다.

 

 

 

 

 

시스템 고장과 봉기

 

 

 

권명아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화가 강한 일본에서 시위는 ‘최고 민폐’이다. 게다가 일본에서도 ‘깍쟁이’로 유명한 교토 사람들이 시내 번화가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박수를 치며 흥분하는 모습이야말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화이다. 지난 목요일 교토의 동네 데모 현장이다. 삼사십 명 정도 모인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시위였지만, 거리 시민들의 호응과 함성에 시위대의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이런 분위기를 경험해본 적이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시위에 참가한 일본 친구들은 “난생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몇 해 동안 ‘동네 인문 공동체’를 만나러 일본에도 자주 가고는 했다. 어렵게 만난 동네 문화운동가나 활동가들은 변화의 활력이 넘치는 한국을 부러워하곤 했다. 게다가 ‘3·11 사태’ 이후, 일본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고층 건물에 내걸린 전광판에서 번쩍이던 ‘부흥’, ‘지역 살리기’ 같은 정부의 메시지는 너무 건전해서 오히려 기괴하게 느껴졌다. 이때만 해도 일본이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헬조선’이라는 한탄이 그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시위, 변화의 열정’ 같은 말은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 말로 치부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낙관적인 말을 하는 것도 기성세대의 시대착오적 발상인 것 같은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면서 어두운 심연에서 예상치 못하게 출현하는 변화의 힘과 그 가능성에 좀 더 기대를 품게 된다. 물론 현재 일본 사회에서 출현한 힘들이 곧 소멸하거나, 일본 사회 전체를 바꿀 정도의 역량으로 이어지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어떤 봉기의 힘도 사회 전체를 통째로 바꾸는 데 성공한 적은 없다. 다만 변화를 향한 힘들이 사회의 흐름을 바꾸고, 그렇게 바꾼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역량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일본 사회에서 이러한 힘들은 어떻게 출현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내놓은 대답 중 하나는 ‘3·11’의 경험이다. ‘3·11’ 이후의 반원전 시위가 오늘날의 반전 시위로 이어졌음은 분명하다. 일본 비평가 히로세 준은 고장 난 채 정지되어 정상화가 불가능한 원전 시스템을 봉기의 전형적 이미지로 분석한 바 있다. 시스템이 정지된 뒤, 일본은 불바다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혼란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 혼란과 공포 속에서 ‘부흥’과 같은 총동원 시대가 다시 도래할 가능성이 커졌고, ‘정상국가’라는 이른바 ‘정상화’ 논리 역시 여기서 돌출할 여지를 얻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부흥과 정상화가 아닌, 정상화를 거부하는 길로 접어들고 있다. 시스템이 멈춘 악몽과 같은 경험 끝에, 일본의 많은 이들은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원전 사고 경험 이후 시스템의 정상화(원전 재가동) 대신, 시스템 정지(원전 반대)를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노력도 모자라 ‘노오오오오오오력’을 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헬조선에서 정상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암울한 전망에 휩싸인 한국 사회에서 변화의 힘은 과연 어떤 식의 ‘시스템 정지’를 통해 도래할 것인가? 일본의 동네 인문 공동체 친구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모두가 정상적인 삶을 꿈꾸며 과로사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던 시절에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 그들의 선택 속에 바로 변화의 잠재성은 이미 있었던 게 아닐지. ‘시스템 고장’은 환멸만이 아니라 봉기의 힘을 촉발한다. ‘헬조선’이라고 예외이랴.

 

 

 

 

 

몸살을 앓는, 바로 거기

 

 

권명아

 

 

 

 

 

 

 

   온갖 논란 속에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문학에 대해 우울하고 때로 혐오로 가득 찬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함께 풀어 가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지리라. 올 상반기 일본을 뜨겁게 했던 한 논쟁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일본의 민주주의와 반전을 위한 시민 행동에 대해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전쟁 반대로 모인 기저에는 매우 다양하고 이질적인 움직임들이 존재한다. 그중 단연 주목을 받은 것은 실즈(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으로 ‘유명한’ 일본 청년 세대가 반정부 반전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일본 사회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그러나 논란도 많았다. 실즈 논평이나 지지자들의 발언에 대해 식민주의나 성차별적일 수 있다는 지적과 비판 또한 격렬하게 제기되었다. 운동의 열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사회운동에서 기존의 차별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격렬한 논쟁을 통해서 페미니스트와 차별 반대 운동 집단,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서로 연결되었다. 논란의 여지는 여전하지만, 비판과 갈등, 공격이 난무하는 논쟁이 오히려 여러 힘들이 모이고 함께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함께 나아가기 위해 말을 나누는 방법이 될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도 되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격렬한 논쟁은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르게 말하고, 생각하고, 상상해야 한다는 그 ‘오래된 진리’를 다시 환기했다.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열정이 성명서를 시가 되게 하고, 거리시위의 구호를 새로운 음악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열정이 빚어낸 새로운 예술은 광화문 거리에서도, 남포동 한 모퉁이에서도, 안산의 거리에서도 오롯이 빛나고 있다. 변화의 열정이 새로운 예술을 추동하는 장면을 우리는 곳곳에서 본다. 예술과 문학과 인문학이 죽었다는 판관들은 이러한 현장과는 동떨어져 있다. 티브이와 뉴스를 장식하는 게 예술과 인문학의 전부가 아니다.

 

 

   오늘날 일본은 여러 지점에서 한국 사회와 유사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혐오 발화로 상징되는 배외주의가 만연하고, 대학 구조조정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인문학과들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청년 실업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대학 교육이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잠식되어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 사안들은 그간 당사자들의 문제로서, 비판 작업도 서로 별도로 진행되어왔다. 혐오 발화는 주로 ‘재일동포 문제’로 여겨졌고, 대학 교육은 대학 관계자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혐오 발화가 소수자에 대한 일본 사회에 누적된 차별 의식의 결과라는 점에서 교육의 변화 없이는 혐오 발화의 근원적 제어는 불가능하다. 또 혐오 발화가 만연할수록 주변국에 대한 적대를 제어할 수 없고, 전쟁의 위기를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대학 구조조정 반대와 헌법 9조 수호, 그리고 청년의 미래가 각자 저마다의 의제를 지니면서도 연결될 수밖에 없다. 아니 이런 연결을 만들어냄으로써 갈등과 의견 대립 속에서도 변화를 향해 함께 걸어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연결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뜨겁고 격렬한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의견 충돌과 비판을 통해 새로운 흐름을 여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부딪쳐서 깨져나가지 않는 한 제자리를 맴도는 반복을 피하긴 어렵다. 부딪쳐야만 비로소 열리는 새로운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의 가능성은 격렬한 의견 충돌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바로 거기, 그 몸들 사이에 항상 존재한다. 냉소와 혐오는 몸살의 일부다. 냉소와 혐오를 넘어서야 몸살 후의 다른 몸을 얻는다. ‘문학’은 아직 몸살 중이다.

 

 

 

 

 

'광복' 기념 소비 촉진

 

 

권명아

 

 

 

 

 

 

 

 

   오키나와 작가인 마타요시 에이키의 <긴네무 집>은 식민지인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소설에 따르면 미군은 전쟁 기간의 파괴 흔적을 위장하기 위해 오키나와 전역에 긴네무 종자를 살포했다. ‘종전’이 되었지만, 오키나와 주민에게 남은 건 콜라병과 긴네무뿐이다. 콜라병과 긴네무는 식민자가 남긴 것이라는 점에서 말 그대로 ‘잔재’이다. 이에 반해 조선인 ‘그’가 오키나와 사람인 ‘나’에게 남기고 간 ‘돈 봉투’는 그야말로 “식민지 유산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씁쓸하게 곱씹게 한다.

 

 

   1945년에서 70년이 지난 2015년은 국가마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기념된다. 기념이란 그 자체가 국가나 지역의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절차이기에 그저 공허한 잔치이거나 무의미한 말의 향연으로 넘쳐나곤 한다. 기념은 역사적 기억이나 집단적 기억과는 다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로 연구자들은 역사 기념 방법을 그 국가나 사회의 국가적 정체성과 지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연구한다. 중국과 일본은 ‘70주년’을 어떤 식으로든 세계사의 질서를 다시 구상하는 계기로 기념하고 있다. 정부는 광복절을 기념하여 ‘국민 사기 진작’과 ‘침체한 소비 심리를 회복하기’ 위해 8월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광복 70주년 기념’과 ‘국민 사기 진작’ 혹은 ‘침체한 소비 심리 회복’은 과연 서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식민화의 기억과 소비 심리 회복이 이렇게 연결되는 맥락에는 참으로 씁쓸한 역사적 무의식이 작동한다. 소설 <긴네무 집>은 역사의 기억과 책임이 ‘대가 지불하기’라는 방식으로 전도되는 기묘한 역사적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쟁에 동원되었던 식민지인들에게 그 기억은 갈기갈기 찢겨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연인의 눈동자를, 목이 잘린 채 “아버지 아파요”를 외치는 아들을 매일 악몽 속에서 만나는 일과 같다. 해방되지 못한 식민지인들에게 과거를 마주한다는 것은 피해의식이나 망상, 혹은 반복되는 악몽의 형식을 맴돈다. 해방되지 못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식민지 지배자들은 폭력에 대한 책임을 지기보다 ‘야스쿠니 합사’(일본)나 ‘돈과 지위’(미국)를 제안했다.

 

 

   성폭력의 책임을 물으러 온 오키나와 주민들이 ‘가해자’로 몰아붙이던 조선인으로부터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라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은 그런 점에서 으스스한 전율을 일으킨다. 전쟁에 동원되어 위안부가 된 연인을 찾아 필사적으로 살아남았던 조선인은 그렇게 ‘폭력의 대가’를 유산으로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조선인 ‘그’는 헤어진 ‘연인’이라고 추정되는 그녀를 “매춘소”에서 돈을 내고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성폭력의 가해자도 아닌 그가 모든 재산을 오키나와 사람인 ‘나’에게 남기고 자살한 것은 ‘대가 지불하기’라는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폭력에 대한 책임 대신 ‘대가 지불하기’라는 형식으로, 해방 대신 냉전을 식민지에 ‘유산’으로 남긴 것이 바로 지난 70년의 세계 질서였다.

 

 

   성폭력을 당한 요시코의 ‘위로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긴네무 집>의 한바탕 소동은 무섭도록 슬프게 역사적이다. 한쪽 발이 잘린 채 쩔뚝이며 손녀딸의 위로금으로 시내를 돌며 진탕 돈을 써댄다는 할아버지에 대한 뒷소문이 무성한 오키나와의 한동네 이야기가 ‘광복 70주년’의 한국의 이야기와 너무나 닮아 놀랍다. ‘광복 70주년’이다. 해방 같은 이야기는 꿈같은 소리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의 세계 질서를 고민하는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그저 연휴를 맞아 한바탕 소비를 촉진하는 일만이 한국 사회가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또 익숙한 기념일이 돌아왔다.

 

 

 

 

 

 

독점과 모욕의 자리

 

 

권명아

 

 

 

 

 

   한국 사회에서는 제도 비판이 불가능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제도 비판을 인격화해서 개인적 모욕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치 제도를 비판하는 걸 개인적 모욕으로 받아들여 보복하는 정치권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같이 한탄하지만, 자신이 속한 제도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서는 모욕당했다고 펄펄 뛴다. 한국문학 제도 비판도 이런 악순환을 고스란히 반복해왔다. 역설적으로 이런 현상은 한국 사회의 제도가 추상적이고 공적인 형식이 아니라 인격화된 사적 형식으로 존재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문학 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을 때도 비판을 사적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한국문학이 자기비판의 계기를 놓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후 한국문학 제도는 인격화된 사적 형식의 면모를 더욱 심화해왔다. 논란이 되는 신경숙의 표절과 ‘문단 권력’에 대한 논의가 제도 비판의 계기가 되려면 바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먼저 끊어야 한다. 게다가 이른바 ‘문단 권력’의 안쪽에서는 문학 제도 비판을 ‘낙오자들의 원한’ 정도로 치부해온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인격화된 사적 형식으로 경도된 한국문학 제도가 출판 산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점하게 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한국문학 제도에서 창비와 문학동네는 독점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경제적 생산의 차원뿐 아니라 상징자본과 문화자본 또한 독점하고 있다. 문학적인 것과 한국문학의 정통성을 수호한다는 “문학적인 이념”이 바로 창비나 문학동네가 독점자본이 될 수 있는 기반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창비나 문학동네는 제도 비판에 직면할 때마다 위기에 처한 한국문학의 수호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거듭 천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입장에서 한국문학은 항상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수호자로서 자신들의 위치 또한 항상 소수자나 약자의 입장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제도 비판을 위기에 처한, 소수자에 불과한 한국문학을 죽이는 적대적 행위로 여기게 된다.

 

 

   동어반복을 피하려면 이전과는 다른 논쟁이 필요하다. 주식회사 창비나 문학동네를 비롯한 여타 대형 출판기업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비판과 연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한국문학 제도에서 출판 산업의 독과점 방지를 위한 감시와 견제, 또는 제재가 필요하다. 대형 출판 주식회사의 상징적이고 실제적인 주주 자리에 있는 이들이 비평가나 편집위원을 겸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사적이고 독점적으로 비평가를 재생산하는 방식도 공개적으로 비판되어야 한다. 논란이 되는 대형 출판사 관계자들이 한국문학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과 독점자본의 지위를 모순 없이 겸해왔던 이중성에 대해 근원적인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한국문학의 수호자라는 ‘신성한 자리’를 이후로도 유지할 수 있으려면 독점자본과의 실질적 분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리가 과연 가능한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런 최소한의 형식적 변화조차 불가능하다면, 한국문학 제도는 파산해버려도 아깝지 않은 한국문학 주식회사에 불과하다.

 

 

   한국문학 제도의 모순은 그야말로 중층적이어서, 반성과 성찰로 해결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사실 한국문학 제도가 이러한 사적 제도화와 독점화로 기울어지면서 이로부터 이탈하는 여러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독점화된 제도의 힘은 이로부터 이탈하는 힘들이 자리할 토양을 사실상 황폐화했다. 1990년대 중반 나타났던 다양한 문학 집단들은 “본격문학의 가치”라는 깃발 아래, 신문 문화면과 선인세와 ‘밀어내기 출판’으로 무장한 대형 자본과의 전투에서 그저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이탈의 힘과 역사를 되찾고 자리매김하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다.

 

 

 

 

 

 

무능과 정치적 주체화

 

 

권명아

 

 

 

 

   무능이 지배하는 시대다. 무능이란 능력이 없는 상태니, 무능이 ‘지배하다’의 주어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비판과 한탄이 넘쳐날 만한 상황이 분명하지만, 이를 넘어선 무능의 ‘정치화’가 더욱 필요하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새삼 확인되듯이 국가는 국민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무능은 단지 대통령이라는 상징적 1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좀 더 능력 있는 지배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미디어에서는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계의 대응을 마치 대선 전초전처럼 보도하기도 한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갈등도 대선 예측으로 귀결된다. 이런 상황은 능력 있는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달리 보자면 이런 문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넘쳐나는 ‘무능론’은 ‘지도자 대망론’의 변주에 그칠 수 있다. 이런 논리에서 지배의 능력은 지배자의 것이거나, 국가기구의 몫일 뿐, 누구나의 것이 될 수 없다. 결국, 지도자만 바뀔 뿐 삶은 변하지 못한다.

 

 

   재난 상황에서 무능한 국가(기구)를 대신해서 무수한 사람이 자신과 공동체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 이는 국가 부재의 한탄스러운 상황이기도 하지만, 무능의 빈자리에서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지는 역동적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게 형성된 주체는 더는 지배능력을 ‘국가’에 내맡긴 다스림의 대상이 아니다. 지배능력은 이제 국가의 몫이 아닌, 다스려지던 사람들의 몫으로 되돌려진다. 이렇게 되돌려지는 과정이야말로 무능이 ‘정치화’되는 사건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은 메르스 사태 이전에도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한 예로,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며 공공 의료 체계와 지역의 의료 주권을 요구하던 경남도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를 통해, 음압병실의 필요성을 포함하여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많은 사람이 이제야, 겨우 실감하고 있다.

 

 

   “정치가 싸움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심은숙) “정치가 생활이다. 이전에는 의원이 갑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박소연) ‘양산 무상급식 지키기 집중행동 밴드’ 모임 좌담 자료는 이런 정치화의 경험을 잘 담고 있다.(오마이뉴스, 6월8일) 회원들의 이야기는 “이전에는”, “처음에는”으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누구도 자신들이 하는 일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꼬리를 흔들어 몸통을 움직이는”(허문화) 일을 했다고 해석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뤼크 낭시는 사회를 머리와 배, 꼬리로 구성된 유기체로 상상하는 방식이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린다고 논했다. 그래서 이 위계를 벗어나려면 바로 그 ‘수미일관한 몸’이라는 관성적 담론을 넘어서야 한다. “꼬리를 흔들어 몸통을 움직인다”는 양산 학부모들의 발상은 그런 점에서 이미 몸통과 꼬리의 관계를 깨뜨렸다. 이제 지배는 몸통이 아닌 꼬리의 몫이 된다. 그들이 “이전에는”, “처음에는” 상상도 못 했던 정치적 주체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무능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능한 머리를 대체할 능력 있는 머리가 아니다. “꼬리로 몸통을 움직이는” 방식이야말로 무능이 지배하는 시대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무능의 정치화 방법이다. 이는 머리와 꼬리라는 분할로 이루어진 사회상을 깨뜨리고, 새로운 사회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꼬리로 몸통을 움직이자. 무능을, 더욱 정치화하자.

 

 

 

 

 

 

사랑과 환멸의 대중탕

 

 

권명아

 

 

 

 

 

   한국 사회의 미래와 대중 정치에 대한 환멸이 담론 공간을 강하게 채우고 있다. 1960년대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에 담긴 다소 영웅적인 어조는 환멸에 대한 단절의 태도이기도 했다. 2015년 “껍데기는 가라”는 ‘이놈도 저놈도 마찬가지’인 세상에 대한 환멸이 되었다. 세상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여기는 것은 자신의 앎을 절대화하는 지적 오만이다.

 

 

   환멸(disillusion)은 말 그대로 이전에 가졌던 환상이 깨지면서 촉발된다. 환멸은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세계를 보는 거울이 깨진 데서 비롯된다. 거울이 깨지자 세상도 깨져버린다. 환멸 속에서 ‘나’에게 세계는 끝장난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끝장은 ‘나’와 ‘나’를 지탱하던 거울의 끝장이다. 그래서 환멸이야말로, 끝장난 ‘나’와 단호하게 이별하고, 다른 세계를 만나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알림 신호이다. 그러나 막상 오늘날 환멸은 ‘나’가 아닌 ‘끝장난 대중’에게로 향한다. ‘나’는 환멸 속에서 더욱 고매하게 빛난다.

 

 

   에스엔에스가 진보 정치를 구원할 것이라는 환상이 환멸로 이어진 것도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다. 대중이나 대중 미디어에 대한 환멸은 실상 지금까지 대중의 흐름을 파악해온 방법론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근대적인 학문 방법론이 ‘대중’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은 많은 학자가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경우 대중의 흐름은 훨씬 더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이른바 대중 네트워크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은 어느 사회보다도 사회 기저에 강력한 네트워크 힘이 흐르고 있다. 사실 한국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대중 네트워크를 전체로 조망하는 연구는 아직 없다. 가장 오래된 상호부조 형식이라 할 ‘계’의 경우도 식민통치와 군사독재를 거치며 대중 동원의 도구가 되거나, ‘퇴폐풍조’로 전락했다. 한국의 특이한 대중 네트워크의 하나는 대중목욕탕인데, 이는 가장 고전적인 ‘풀뿌리’ 네트워크라 할 만하다. 풀뿌리 네트워크라는 의미는 ‘민중적’이라는 의미보다는 지배적인 흐름이 변해도 한국 사회의 기저를 단단하게 동여매고 있는 흐름이라는 뜻에 가깝다. 대중목욕탕은 모든 정보가 모였다가 나가는 중계점이고, 모든 담화와 정보는 ‘생활적’이다. 드라마 선택에서 투표 후보자 선택까지 다양한 판단 지점에 이러한 생활적인 정보와 담화는 주요한 변수로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대중목욕탕은 상품 정보에서 인물평까지 다양한 평판을 구성하고 생산하는 ‘뒷말’ 공간이다.

 

 

   대중목욕탕은 누구나 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지만, 독특한 내적 친밀성을 기반으로 관계가 형성된다. 모두가 잘 아는 공간이지만, 실상 논리적 파악이 힘들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막상 그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이 네트워크는 최근 들어 에스엔에스로 이어지면서 이른바 친구와 동료들만의 단체 방의 형태로도 변형되었다. 그런 점에서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서 대중목욕탕은 에스엔에스와 비교하면 접근도 어렵고 내밀한 관계 형성을 통한 정보 수집에도 한계가 있다.

 

 

   한국 사회에는 이런 식의 풀뿌리 네트워크가 강해서 흐름의 변화는 여기서 비롯된다. 풀뿌리 네트워크 자체가 본래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보수나 진보의 이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잠재성을 가졌다. 대중 네트워크의 흐름을 연구하는 건 이제 시작 단계이다. 대중목욕탕 네트워크 하나만 연구하고 조사하려 해도 누군가의 인생 전부를 걸어야 할 정도의 시간과 애정이 필요하다. 환멸은 그런 시간과 사랑을 소모하고 잠재성을 잠식해버린다. 환멸에 머무는 한 기저를 관통하는 흐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이 맞서다

 

 

권명아

 

 

 

 

   결국, 그것을 봤다고 친구가 말한다. 1년이 지나서야 겨우 끝까지 볼 용기가 났다고 한다. 나는 사실 아직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아이들이 마지막 남긴 동영상 기록이다. 그 죽음을, 비참을, 슬픔을 그 자체로 보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촉발한다. 인류가 존재한 시초부터 상징과 제의를 통해 그냥 그대로의 슬픔에 직면하는 고통을 완화해온 것도 그런 이유다. 상징도 제의도 없이 슬픔을 그냥 마주하는 일은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런데 그냥 그러고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와서 피켓만 들고 있다구요. 그냥 이것만 한다구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 은화의 엄마는 그냥 그러고 있다고 내내 말한다. 그냥 그렇게 서 있는 엄마를, 슬픔을 그냥 마주해야 하는 고통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고통의 크기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유족들이 그냥 슬픔을 감당하고 있는 게 아니라, ‘뭔가 거저먹으려 든다’고 매도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그냥 준다고 할 때는 도둑이거나 ‘종북’으로 모욕 주기에만 바쁜 실정이다. ‘그냥’은 이유를 따지고 도구적 계산을 앞세우는 입장에서 볼 때 텅 빈 무엇처럼 보인다. 그 텅 빔을 마주하는 건 또 다른 의미의 무시무시함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뒤 1년, 한국 사회는 서로 상반된 맥락에서, ‘그냥’을 마주하는 섬뜩함에 사로잡혀 있다.

 

 

   한국어에서 그냥은 공짜나 ‘거저’와 같은 뜻이 아니다. 한국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그냥은 단지 부사로서만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는 담화 표지의 기능을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그냥’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공짜라는 뜻으로 왜곡·축소되었다. 한국 사회는 ‘어떤 목적이나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그냥 인간이나 세상을 이해할 능력을 상실했다. 있는 그대로, 그 자체의 모양을 이해하고 대면하는 것이야말로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존재의 가치를 살피는 일이다.

 

 

   슬픔과 밥이 ‘그냥’의 쓰임과 관련이 깊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밥과 슬픔을 계산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게 당연했던 삶의 흔적이 언어의 쓰임에 남아 있다. 공짜가 아닌 그냥 나누는 밥, 계산될 수 없는 슬픔, 이는 인간 사회의 근원적인 영역이자 어떤 이유나 조건도 없이 모두에게 허용된 ‘공통의 것’이다. 그러니 그냥은 없고 공짜만 있는 사회란 공통된 것은 없고, 차별만 존재하는 사회이다. 근본은 없고 계산만 남은 사회이다. 결국 이 계산은 ‘목숨 값’이라는 무시무시한 조어를 낳는다.

 

 

   ‘그냥’의 세계를 매도하고, ‘그냥’을 나누려는 모든 움직임을 공짜나 거저 혹은 얼마인가의 맥락으로 환원해버리는 일은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심각한 상징적 폭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적 폭력에 맞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의 세계를 살려내고 있다. 별다른 이해관계도 없는 무수한 이들이 그림, 사진, 플래시몹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서 슬픔과 분노를 나누었다. 상징도 제의도 박탈당한 채, 거꾸로 상징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나누며 그렇게 사람들은 예술을 만들어왔다. 예술이 ‘무사심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건 바로 이런 뜻이다. ‘공짜인가 아닌가?’만 묻는 상징 폭력에 맞서 ‘그냥 그렇게’ 하기를 계속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세월호 이후 우리 앞에 도래한 ‘예술’의 세계이다. 함께 슬퍼하기를 거부하는 정치공동체(국가)와, 공짜냐 아니냐만 묻는 경제 집단을 넘어, 오늘 우리는 모두의 이름으로 그냥 그렇게 문득 출현한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권명아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2월27일, 도쿄의 ‘이레귤러 리듬 어사일럼’에서 좌담회가 열렸다. 몇번이나 찾아갔던 길이지만, 여전히 또 길을 헤매었다. 그날 좌담회에서는 “인문 장치를 발명하자”라는 주제로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다양한 고민과 모색을 함께 나누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야기 도중 문득 누군가 한탄 조로 조용하게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되묻던 장면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3월15일에는 오사카의 ‘시어터 세븐’에서 <구럼비, 바람이 분다>(조성봉 감독) 상영회가 열렸다. 헤노코와 요나구니 섬과 강정을 서로 연결하여 논의하는 토론 시간이 흥미로웠다. 한 청중은 헤노코와 강정을 논하며, “엄청난 공권력의 힘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맨몸으로 싸우는 일이 때론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며 “과연 이런 싸움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도쿄와 오사카의 자그마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를 위해서든, 평화를 위해서든 함께 손을 잡고 걸어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을 나누었다. 유명 초청 인사도 거창한 기자회견도 없이, 작은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의 만남은 이른바 ‘한-일 관계’라는 외교적 수사의 맥락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인지 모른다. 또 만남과 대화와 연구를 해나가도 도무지 변할 것 같지 않은 엄혹한 현실 앞에서 이런 자리는 그저 무의미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계속 시도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 무엇을 해도 결국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다시 떨어져 버리는 악순환에 대한 공포는 불안한 미래 앞에 선 모든 이들이 껴안고 있는 정동이다. 그런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없지만, 적어도 그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만나서 함께 걸어 나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첨단기술의 지도로도 도무지 찾을 수 없던 장소들을 찾아 며칠, 몇년을 헤매던 시간 속에서 문득 길 찾기에 대한 오랜 비유를 떠올리곤 했다. 길이 끝난 곳에서 다시 길을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밀고 나아가는 일이라는 오래된 비유법 말이다. 누구도 길의 끝을 보지 못했지만, 먼저 걸어간 자취가 있어 길이 끝난 곳에서 다시 길을 만들어나간다. 인류라는 이름은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온 발걸음의 총합으로 얻어진 이름이다. 인간을 역사적 존재라고 하는 건 이런 뜻이다. 역사적 존재로서 인간은 앞서 걸어 나아간 이들로부터 무언가를 물려받기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일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몰려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삶이 몰역사적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투쟁이란 그 누구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내몰리지 않게 만들기 위한, 존재를 내건 싸움이다. 역사 투쟁이 분과학문의 몫이나 과거사 논쟁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가령 <구럼비, 바람이 분다>에서 구럼비에 부는 바람은 자연사의 순환이나 인간의 역사로 환원되지 않는 그런 ‘역사’를 상기시킨다. 온몸으로 맞서도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저 거대한 힘들도 언젠가 저 바람에 무너지고, 또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다. 그 세계를 내가 살아 만나지 못할지라도 지금, 여기에 부는 바람을 느끼는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감지한다. 그렇게 구럼비에도 도쿄와 오사카의 지도로도 찾을 수 없던 그 자리들에도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2015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해방’ 혹은 ‘종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잔치들이 떠들썩하다. 몰역사적인 기념식장의 야단법석은 내버려두고, 죽은 시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국도 일본도 말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한번 가보면 어떨까.

 

 

 

 

 

 

영혼을 탈환하라!

 

 

권명아

 

 

 

 

   일제 시기 ‘국민학교’를 다녔던 작가 박완서는 이 시절의 기억을 여러 작품에 남겨두었다. 주소나 생활 기록 같은 신상에 대해 선생님이 질문할 때 제대로 답을 못할까 전전긍긍했다는 기록은 작품 곳곳에 나타난다. 신상 기록을 달달 외우며 ‘심문’에 대비했다는 이 소략한 에피소드의 이면에서 우리는 일제 시기 ‘국민학교’ 교육의 흥미로운 특성을 포착할 수 있다. 1931년생인 박완서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인 1938~39년께는 일제가 이른바 ‘국민정신총동원령’을 내리고 국민의 ‘정신’을 통제하는 데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다.

 

 

   국민정신총동원의 구체적인 내용을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핵심은 선전전과 심리전을 전쟁의 전방만이 아니라 후방의 모든 일상 영역에까지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 시절 언론 자료에서는 ‘국민학생’이 수상한 자를 ‘스파이’로 의심된다며 신고해서 포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집에서 부모들이 조선어를 쓰지는 않는지, 수상한 자가 동네에 출몰하지는 않는지 항상 감시하고 학교에 보고하도록 ‘교육’받았다. 초등학교에까지 시행되었던 국민정신총동원은 인간의 영혼을 통제하고 조작하고 실험하는 대상으로 장악하려 했던 파시즘 정치의 전형이다. 이 시기에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교육을 기술 및 실용 위주의 실업교육 중심으로 강제로 재편했다. 식민지 ‘국민’을 기술 중심의 도구적 인력으로 한정하는 대신, 영혼을 관리하는 역할을 소수의 엘리트만이 담당할 수 있도록 통제한 것이다. 즉 국민정신총동원이란 인간의 영혼을 전쟁 수행의 도구로서 통제 관리하며 이를 위해 영혼을 다루는 기술을 소수 엘리트가 독점하는 통치술이었다. 역사적 파시즘 체제가 고도로 발전시킨 이러한 영혼 통제의 기술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거듭 변신하며 출현하고 있다.

 

 

   여러 매체에 ‘선전전’, ‘인문교육 폐지, 기술교육으로 전환’과 같은 말들이 난무한다. 국정원 대선 개입과 교육부의 ‘인문학 폐지’라는 전혀 이질적인 국면은 영혼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파시즘의 오래되고도 새로운 기술의 연장에서 사유해야만 한다. 탈냉전과 함께 폐쇄적인 국민국가의 장벽이 무너지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사회가 도래하면서 파시즘 체제가 만든 고전적인 영혼 통제는 이제 불가능하다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감정 조작 실험 사례가 보여주듯이 네트워크 사회에서 영혼에 대한 통제는 과거와는 다르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냉전 체제가 ‘유물’로 살아 있는 사회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는 각종 영혼 통제 기술들은 파시즘 체제의 역사적 유물과 네트워크 사회의 신기술이 접목된 사상 초유의 변종인 셈이다.

 

 

   그러므로 영혼 통제 기술과 관련된 이토록 희귀한 역사의 유물들이 새로운 기술과 접목되어 나타나는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영혼을 둘러싼 각축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쟁터다. 아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영혼은 억압적인 국가 기구와 자본의 손아귀에 장악되어 버렸다. ‘댓글 조작’과 ‘인문학 폐지’라는 이질적인 국면은 영혼을 통제하려는 일련의 공통된 전략이라는 점에서 사유하고 대처해나가야 한다. 이는 국민을 선전전의 대상으로만 보면서, 영혼 통제의 전문적 기술을 소수의 엘리트만이 독점할 수 있는 배타적 특권으로 만들었던 고전적인 통제 기술의 연장에 있다. 그런 점에서 억압적인 국가 기구와 자본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영혼을 탈환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중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영혼을 탈환하라! 인문을 탈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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