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기념 소비 촉진

 

 

권명아

 

 

 

 

 

 

 

 

   오키나와 작가인 마타요시 에이키의 <긴네무 집>은 식민지인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소설에 따르면 미군은 전쟁 기간의 파괴 흔적을 위장하기 위해 오키나와 전역에 긴네무 종자를 살포했다. ‘종전’이 되었지만, 오키나와 주민에게 남은 건 콜라병과 긴네무뿐이다. 콜라병과 긴네무는 식민자가 남긴 것이라는 점에서 말 그대로 ‘잔재’이다. 이에 반해 조선인 ‘그’가 오키나와 사람인 ‘나’에게 남기고 간 ‘돈 봉투’는 그야말로 “식민지 유산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씁쓸하게 곱씹게 한다.

 

 

   1945년에서 70년이 지난 2015년은 국가마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기념된다. 기념이란 그 자체가 국가나 지역의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절차이기에 그저 공허한 잔치이거나 무의미한 말의 향연으로 넘쳐나곤 한다. 기념은 역사적 기억이나 집단적 기억과는 다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로 연구자들은 역사 기념 방법을 그 국가나 사회의 국가적 정체성과 지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연구한다. 중국과 일본은 ‘70주년’을 어떤 식으로든 세계사의 질서를 다시 구상하는 계기로 기념하고 있다. 정부는 광복절을 기념하여 ‘국민 사기 진작’과 ‘침체한 소비 심리를 회복하기’ 위해 8월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광복 70주년 기념’과 ‘국민 사기 진작’ 혹은 ‘침체한 소비 심리 회복’은 과연 서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식민화의 기억과 소비 심리 회복이 이렇게 연결되는 맥락에는 참으로 씁쓸한 역사적 무의식이 작동한다. 소설 <긴네무 집>은 역사의 기억과 책임이 ‘대가 지불하기’라는 방식으로 전도되는 기묘한 역사적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쟁에 동원되었던 식민지인들에게 그 기억은 갈기갈기 찢겨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연인의 눈동자를, 목이 잘린 채 “아버지 아파요”를 외치는 아들을 매일 악몽 속에서 만나는 일과 같다. 해방되지 못한 식민지인들에게 과거를 마주한다는 것은 피해의식이나 망상, 혹은 반복되는 악몽의 형식을 맴돈다. 해방되지 못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식민지 지배자들은 폭력에 대한 책임을 지기보다 ‘야스쿠니 합사’(일본)나 ‘돈과 지위’(미국)를 제안했다.

 

 

   성폭력의 책임을 물으러 온 오키나와 주민들이 ‘가해자’로 몰아붙이던 조선인으로부터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라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은 그런 점에서 으스스한 전율을 일으킨다. 전쟁에 동원되어 위안부가 된 연인을 찾아 필사적으로 살아남았던 조선인은 그렇게 ‘폭력의 대가’를 유산으로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조선인 ‘그’는 헤어진 ‘연인’이라고 추정되는 그녀를 “매춘소”에서 돈을 내고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성폭력의 가해자도 아닌 그가 모든 재산을 오키나와 사람인 ‘나’에게 남기고 자살한 것은 ‘대가 지불하기’라는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폭력에 대한 책임 대신 ‘대가 지불하기’라는 형식으로, 해방 대신 냉전을 식민지에 ‘유산’으로 남긴 것이 바로 지난 70년의 세계 질서였다.

 

 

   성폭력을 당한 요시코의 ‘위로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긴네무 집>의 한바탕 소동은 무섭도록 슬프게 역사적이다. 한쪽 발이 잘린 채 쩔뚝이며 손녀딸의 위로금으로 시내를 돌며 진탕 돈을 써댄다는 할아버지에 대한 뒷소문이 무성한 오키나와의 한동네 이야기가 ‘광복 70주년’의 한국의 이야기와 너무나 닮아 놀랍다. ‘광복 70주년’이다. 해방 같은 이야기는 꿈같은 소리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의 세계 질서를 고민하는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그저 연휴를 맞아 한바탕 소비를 촉진하는 일만이 한국 사회가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또 익숙한 기념일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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