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상실의 국정

 

권명아

 

 

 

 

 

 

 

   파시즘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국가 간 세력관계에서 발생했다. 나치 최초의 구호인 “베르사유의 사슬을 끊자”는 1차 세계대전으로 구성된 세계 질서를 겨냥한 것이었다. “독일이 포위되어 있다”는 히틀러가 애용한 표현이었다. 독일에서 나치즘의 집권은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꽉 막혀버린 변경의 역사”(밀턴 마이어)의 산물이다. 파시즘이 탈출구가 없다는 폐쇄공포와 이를 해소하려는 공격성을 동전의 양면처럼 내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밀턴 마이어는 이런 폐쇄공포와 공격성이 국가 내부를 향한 독재와 국가 외부를 향한 공격성이라는 파시즘 고유의 정치 형태를 만들었다고 논한다.(<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폐쇄공포는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미래의 전망을 찾지 못한 상실감에서 비롯되었다. 미래를 구상할 수 없는 집권층의 무능력이 바로 폐쇄공포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그 무능력은 공격성을 통해 상쇄되었다.

 

 

   같은 시기 일본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우위를 놓친 중국을 대신하여 아시아 신질서를 수립하겠다고 나섰다. 일본 내부에서 파시즘의 강화는 대륙과 해양의 싸움이기도 했다. 대륙 진출을 아시아 신질서 건설의 교두보로 삼았던 육군파와 해양을 새로운 교두보로 삼고자 했던 해군파의 대립은 혁신적 파시즘을 내건 해군파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대륙파의 교두보가 철도였다면, 해군파의 교두보는 ‘전함 야마토’로 상징되는 함대였다. 철도와 전함이 ‘세계’에 대한 일본 상상력의 한 근간이라고도 할 것이다.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있다는 말은 이제 새삼스럽다. 말 그대로 세계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대륙과 해양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은 2015년 현재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저항과 일본의 견제 국면으로 부활하고 있다. 28일 뉴스를 장식한 남중국해에서의 미국과 중국의 아슬아슬한 대치는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유럽 정상들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협의에 분주하고 세계 각국 정상과 정치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하게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각축전은 시시각각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은 거의 없다. 대륙에는 중국 열차가, 연안에는 일본 함대가 코앞까지 당도했는데, 한국형 전투기의 미래는 막연하기만 하다. 물론 일본 정부처럼 재무장의 길을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 정부가 상대해야 할 위기가 과연 어디서 오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주변국들이 세계지도를 다시 그리겠다며 모든 인프라를 동원해 나서고 있는 바로 오늘,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학적이다. 대륙도 해양도 다 막혀버린 지구 유일의 냉전체제 속에서, ‘외부’와 대항해야 할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 중이니 그야말로 슬프도록 자학적이다. 국정 교과서란 대륙도 해양도 다 막혀버린 지구 유일의 냉전체제에서만 가능한 상상력이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란 급변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새로운 자리도 미래의 전망도 찾아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의 전형이다. 국정 교과서가 세계를 상실한 나라의 국정 전략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파시즘은 ‘비국민, 퇴폐분자’의 이름으로 사람이든 책이든 다 불살라버리는 공허한 증오의 열기로 세계를 잃어버린 좌절감을 상쇄했다. 세계를 대신해 증오가, 미래를 대신해 죽음만이 사회에 가득했다. 세계 상실의 증오와 죽음의 정치에 맞서, 미래를 향한 살림의 정치를 요구해야 할 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