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에서 퍼레이드로 그리고 퀴어 우주로

퀴어문화축제(서울, 대구) 참관기

 

 

 

 

차가영

 

 

 

 

1. 생명과 사랑의 지속으로서 항쟁

    태초에 항쟁이 있었다. 스톤월 항쟁. 그래 그것은 항쟁이었다. 오늘날 퍼레이드가 광장과 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항쟁 때문이었다. 항쟁이 국가와 국민이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할 때, 이 항쟁은 퀴어들이 이 세계 전체와 맞서며 자신들의 생명과 그 가능성을 드러낸 스파크였다. 마치, 지구의 생명이 탄생할 때, 전기적 자극이 바이러스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 항쟁은 퍼레이드를 산출한 전기 자극이고 그리고 앞으로 등장하게 될 우주를 예비하는 것이었다. 물론 저 항쟁은 고향이 아니고, 그곳의 순간으로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고 오직 퍼레이드를 누비며, 우주로 나아가는 모험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우주여행을 곧 하게 될 것이다.

    다시 시작해보자. 스톤월 항쟁은 오늘날 퍼레이드가 싸우고자 하는 것의 기초를 제공해왔다. 싸움의 자세와 기초를 알려준 것이다. 퍼레이드가 싸움의 방식으로 사랑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톤월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퀴어들은 서로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선은 사랑이고 그것이 바로 항의였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달리 말해, 퍼레이드가 광장과 거리에서 사랑을 외치면서 싸우는 것은 이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퍼레이드는 갖은 위험을 세계의 여러 스톤월과 같은 장소에서 뛰어 넘고, 걸으며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그 때 사랑은 지역의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고 어디에서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2. 배제와 혐오에 맞서며

    퀴어문화축제는 매년 6~7월 사이에 서울과 대구에서 각각의 슬로건을 걸고 개최된다. 두 축제는 성적 소수자들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며 배제되고, 주변화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한 퀴어 인권/문화/예술운동의 방법 중 하나이다. -녀라는 이분법적 성별구분, 이성애중심 사회/결혼 제도, 이분법 속에 분류되지 않는 성적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을 사회구성원으로 여기지 않는 차별적인 규범에 저항한다. 두 지역의 퀴어문화축제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퀴어가 여기에 살고 있음을 외친다. 퀴어의 존재를 가시화하여, 퀴어들이 우리의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퀴어들이 존재와 다양성을 인정받으며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법이나 제도, 인식 개선을 마련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퀴어를 가시화하는 운동은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배려와 제도 획득의 한 방법이다. 퀴어 인권/문화/예술운동은 평소에도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이 가장 가시화되는 날이 퀴어문화축제 기간 중에 열리는 퀴어퍼레이드이다.

    운동이 사회적으로 퀴어의 존재에 대해 드러낼수록, 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시선도 생겨나고 있지만, 그 반대에서의 안티-퀴어의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현대의 이성애중심의 사회규범은 그 자체가 안티-퀴어적이며,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퀴어에 대한 배제와 소외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현재 사회에는 일상적인 배제에 대한 문제의식보다는 퀴어 인권/문화/예술 운동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활동을 하는 일부 보수적 집단의 형성에 집중하고 있다. 퀴어에 대한 혐오를 축으로 모인 이들 집단의 행동은 퀴어 인권/문화/예술 운동을 사회의 전반적인 배제에 저항하는 모습이 아닌 퀴어와 안티-퀴어 간의 대립에만 초점을 두게 한다. 이는 퀴어들이 벌이는 차별적인 성규범에의 저항을 그들만의 싸움으로 여기도록 만든다.

    2015년은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안티-퀴어의 축제개최 방해가 서울에서도 대구에서도 거세어 행사 개최의 어려움을 겪었다. 특정한 집단이 에이즈 공포, 가족윤리 침해, 이성애윤리 침해를 이유로 들며 행사 개최 계획 장소를 따라다니면서 장소 선점을 방해했다. 이뿐만 아니라 축제에 참가하는 인원을 보호해야 하는 시와 구의 행정부에서도 축제 개최를 허락하지 않아서 그 어려움이 더해졌다. 이들은 교통소통 저해’, ‘중립이라는 말을 내세우며 행사 개최를 불허했다. 퀴어에게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면, 안티-퀴어에게도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행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때문에 안티-퀴어와 대치하고, 행정부에 항의하는 등 오랜 기간 투쟁을 벌인 끝에 서울과 대구는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할 수 있었다. 이 기다림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퀴어문화축제 기간 중 있었던 두 지역의 퀴어퍼레이드는 서울 3만여명, 대구 800여명이라는 퍼레이드 역사상 최고의 참가인원을 기록했다. [각주:1]

    나는 2015년의 퀴어문화축제 기간 중 서울과 대구의 퀴어퍼레이드에 다녀왔다. 서울의 퀴어퍼레이드는 세 번째 참가였고, 대구 퀴어퍼레이드는 첫 참가였다. 두 퀴어문화축제의 개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SNS를 통해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던 지역의 퀴어이론 연구자인 나에게 2015년 서울과 대구의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기까지의 시간은 유달리 길었고,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수년간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점점 더 커지는 운동의 힘이 혐오와 불허로 인해 사그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덮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의 투쟁 끝에 얻어낸 두 지역의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퍼레이드 현장의 열기가 힘있게 느껴졌다.

 

 

 

 

3. 광장의 스펙터클과 게토- 보호받는 것과 저항의 사이에서

    올해 제16회를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사랑하라! 저항하라! QUEER REVOLUTION!’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69일부터 28일까지 열렸다. 서울 퀴어문화축제는 연초에는 613()~21()8일간의 일정으로 계획되어있었다. 그러나 안티-퀴어 세력(나라사랑·자녀사랑운동연대, 바른성문화국민연합, 건강한사회모임 등)의 집회신고 방해와 서울시청 및 대학로 관할 경찰서의 집회신고 거부, 남부경찰서의 집회신청 희망 단체 일주일동안 밤낮 없는 줄세우기에 의해, 축제 개최를 결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상황에 의해 퀴어퍼레이드 장소는 서울시청광장에서, 대학로로 개최 계획이 변경되었다가, 다시 서울시청광장에서 확정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에 따른 영향으로 축제는 개막식, 퍼레이드, 파티가 하루에 진행되는 이전까지의 방식과는 달리 진행되었다. 개막식(69), 파티(613), 퍼레이드(628)가 다른 날로 나뉘어 진행되었고, 퀴어 영화제(618~21)가 그 사이에 치러지는 약 3주간의 일정으로 변경되었다.

    퍼레이드 당일 현장의 분위기는 폭발적인 축제의 모습이었다. 올해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면서 나는 그 입구에서부터 놀랐다. 거리의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퀴어퍼레이드가 잔디밭이 깔린 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장을 두르며 가득 메우고 있던 83개의 행사부스들과 이를 살펴보지도 못하게 꽉 차있던 사람들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넓은 시청광장이 꽉 차게 느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놀랐던 것은 퍼레이드 행렬이 출발하기 전에 본 어떤 할머니였다. 가족들과 함께 온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서울 퀴어퍼레이드 슬로건이 적힌 부채를 들고 행렬 안에 있었다. 그 할머니는 세 번의 퍼레이드 참가 동안 퍼레이드 행렬 속에서 처음 본 할머니 참가자였다. 점점 그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몇 개월 간 서울 퀴어퍼레이드 준비 소식을 SNS를 통해 전해보면서 이번에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 의심했던 것들이 현장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람으로 꽉 찬 광장, 배로 늘어난 참가 인원, 그 속에 함께 있던 퀴어들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이들이 합쳐져 만들어낸 축제의 형상은 일상 속에서 행해지는 안티-퀴어적 배제에서 벗어나 자긍심에 가득 찬 퀴어들의 웃는 얼굴을 만들어냈다. 마치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퍼레이드는 자긍심을 가지고 모인 이들의 행복한 춤과 노래를 통해서 채워졌고, 서울 길거리에 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퍼레이드 행렬 속에서 함께 걸으면서, 나는 자긍심 행진을 함께 하고 있다는 행복감과 반대로 어떤 찝찝함을 느꼈다. 퀴어들이 이렇게 가시성을 얻고 당당히 사회 속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건물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노랫소리, 광장을 둘러싸고 있던 철펜스, 경찰들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의 퀴어퍼레이드는 퍼레이드의 크기도, 안티-퀴어 단체의 혐오표현도 커져서 경찰들의 보호가 눈에 보일만큼 가까이에서 이루어졌다. 경찰들은 안티-퀴어들이 침범하여 행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광장을 둘러싸는 철펜스를 둘러 그 앞에 서있었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것은 퍼레이드 행렬을 혐오에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내 눈에는 보호보다는 경찰의 보호막에 갇힌 것처럼 보였다. 16년의 역사 속에서 지속되어온 퀴어퍼레이드가 만들어낸 참가자들 간의 결속성과 연대성을 이용해서 이들을 다시 광장이라는 게토 속에 가둔 것 같았다. 일 년에 한번 서울에서 지역의 경계와 퀴어 배제 사회의 경계를 넘어 탁 트인 광장에서 만났지만, 퀴어들을 맞이한 것은 또 다시 이들을 가두는 경계였던 것이다. 그리운 고향에서 퀴어들을 맞이한 것은 우리 모두 함께 하자는 연대가 아니라, 철펜스와 경찰들이 서있는 경계 안에서만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라는 경계였다. 이 경계는 퀴어들이 가득한 거리에 울려퍼지는 음악소리가 건물에 튕겨 다시 행렬 속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리고 광장에서 옷을 벗고 다니는 모습, 성기모양의 쿠키와 부채가 보이는 것, 여성의 성기를 직접 지칭하는 말들을 구경하며 이러한 모습 때문에 퀴어는 인정받을 수 없다’, ‘동성애는 지지하지만 저런 건 싫다’, ‘왜 자꾸 나와서 눈에 띠려고 하는지 모르겠다와 같은 말을 통해 퀴어퍼레이드를 소비하는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서울의 퀴어퍼레이드는 전국에서 모인 퀴어들의 엄청난 수와 그리고 그에 맞춰 풍성해진 행사구성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퀴어퍼레이드가 앞으로도 퀴어의 인권/문화/예술 운동의 기반을 다지고, 그 운동의 하나로써 앞으로도 계속 운동을 해나갈 것을 증명해보였다. 그러나 오랜 기간 서울에 집중된 퍼레이드는 퀴어들의 전국적인 움직임을 커다란 광장에 집합시켜 그 속에 가두고 배제를 지속하려는 안티-퀴어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서울의 퀴어퍼레이드는 이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 퀴어 인권/문화/예술 운동의 또 다른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나는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을 75일에 열린 대구 퀴어퍼레이드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4. 광장의 패러디와 저항의 가능성

    올해 처음 참가하였던 대구의 퀴어퍼레이드는 지역의 유일한 퀴어문화축제이다. 따라서 퍼레이드 참가는 서울과 얼마나 다르고 또 같으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퍼레이드가 진행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대구 퀴어문화축제는 올해로 제7회를 맞았다. 대구 퀴어문화축제는 원래 627일 퍼레이드를 진행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안티-퀴어 세력의 방해로 인한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일정 변경이 대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서울의 퀴어퍼레이드 일정과 맞추기 위하여 대구퀴어퍼레이드 일정을 변경하고자 했다. 그러나 변경과정에서 대구중구청의 교통소통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인한 집회신청 거부와 동성로 야외무대시설의 사용을 불허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저항하며 조직위원회는 집회를 열었고, 이후 대구지방법원의 퍼레이드 집회허가 판결로 퍼레이드가 75()로 변경되면서 개최 확정되었다. 따라서 제7회 대구 퀴어문화축제는 사진전(71~10), 퍼레이드(75), 영화제(711~12), 연극제(717~19)로 구성되었고, 71()~19일()까지 약 3주간 진행되었다.

    당일 대구에서 본 모습은, 서울 퀴어퍼레이드 퍼레이드에서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이 외쳤던 서울에서 전반전! 대구에서 후반전!”의 모습과는 달랐다. “서울에서 전반전! 대구에서 후반전!”이라는 말은 서울의 운동 열기를 대구에서도 이어나가 운동을 더 폭발시키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를 통해 지역에서도 퀴어 인권/문화/예술 운동이 촉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자는 뜻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대구 퀴어퍼레이드에서 본 것은 서울의 패러디였다. 서울에서 마주한 퀴어들의 게토를 떠나 대구에서 새로운 운동을 보고자 했다. 하지만, 대구 또한 서울과 같은 퀴어들의 게토였다.

    대구의 퍼레이드 모습이 서울의 퀴어퍼레이드의 패러디로 나타난 것은, 한국의 서울 중심 사회구조의 현실이 지역의 퀴어 인권/문화/예술 운동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역에 나타나는 운동, 문화, 예술에 대한 불모성은 지역 퀴어의 인권 감수성 부족을 야기하고 있었고 이것이 운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 했다. 이는 대구라는 지역성을 살리며 운동을 해나갈 수 있는 방법론 마련을 막는 것이었다. 때문에 지역의 정체성 마련이 부족한 대구에서 퍼레이드를 하려면 서울의 모습을 모방할 수밖에 없었다. 퀴어 인권/문화/예술 운동의 커뮤니티가 적은 대구는 부스 행사 구성이 적었다.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지개인권연대’, ‘대소인(대구 경북 성소수자 인권연대)’,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 반딧불이등이 부스를 마련하고 있었지만, 부스 행사의 대부분이 서울에서도 보았던 것이었다. 대부분 서울에서 주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었고, 무대행사 또한 절반 정도가 서울을 주 무대로 하는 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행진의 방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재미있는 것은 퀴어 퍼레이드를 보호하고자 했던 경찰들의 모습, 안티-퀴어 집단이 혐오를 외치는 모습 또한 서울의 패러디였다는 것이다. 경찰들은 동성로 야외무대시설, 부스 행사 장소 근처에 철펜스를 치고, 그 앞에 서있었다. 행진을 할 때도 서울에서와 같이 줄지어 손을 잡고 행렬과 함께 걸었다. 안티-퀴어 집단은 서울에서 보았던 피켓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들은 박원순 타도하자’, ‘박원순 OUT’, ‘동성애 OUT' 등과 같은 피켓을 재사용하였고, 퍼레이드의 무대행사가 열리는 반대편에 서울과 똑같이 무대를 설치하는 모습 또한 보여주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장소가 좁아서 그들이 보내는 혐오의 말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었다는 것뿐이었다.

    대구의 퀴어문화축제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일어나는 유일한 퀴어문화축제로서 다른 지역에서도 축제를 통한 항쟁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 모습 뒤에는 운동, 보호, 혐오의 프레임이 모두 서울이라는 지역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현재 퀴어 인권/문화/예술 운동에서 짚고 가야할 문제점이 무엇인지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점은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서울을 모방하지 않고, 지역성을 토대로 하며 정체성을 가지는 운동방법을 발명해야 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구에서의 퀴어퍼레이드 경험은 현재 지역에 만들어져 있는 퀴어 커뮤니티는 어떤 것이 있으며, 이를 통해 앞으로 퀴어 인권/문화/예술 운동이 어떤 방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살펴보게 하였다.

 

 

 

5. 항쟁에서 퍼레이드로 그리고 퀴어 우주로

    지금까지 퀴어 퍼레이드는 서울이나 혹은 대구에서 퀴어인 것이 가능한 찰나의 공간을 만드는 것을 통해 이어져왔다. 이는 퀴어퍼레이드의 현장을 가시화하여 공간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매년 전국의 퀴어들이 퍼레이드를 하기 위해 한곳으로 모이며 만들어낸 공간의 스펙터클은, 운동에 있어서의 퀴어 게토를 형성하게 되었다. 게토의 형성은 퀴어들이 한 공간에 모이는 것을 통해, 퀴어의 삶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위로와 위안을 얻게 한다. 그러나 게토 안에서 얻는 위로와 위안은 투쟁의 모습을 지우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퀴어들이 만들어낸 퍼레이드라는 항쟁을 현재 사회의 고정적이고 차별적인 성규범에 반대하는 우리 모두의 투쟁이 아니라 그들의 투쟁으로 보이게 한다. ‘그들의 투쟁 모습은 퀴어들이 사회에 대항하는 투쟁의 이유를 퀴어들만의 인권을 가지려 하는 투쟁의 이름으로 바꾼다. 이는 점점 안티-퀴어의 모습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라 특정 보수집단과 퀴어들 간의 싸움인 것처럼 가시화되게 한다. 여기에 더해 보호를 이유로 퀴어를 둘러싼 펜스를 더 단단하게 치고, 경찰들이 더 가까이에서 퀴어들을 따라다니게 할 것이다. 점점 퀴어가 지금-여기 살고 있다는 것은 사라지고, 게토의 선명함이 퀴어들을 계속 괴롭힐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퀴어 인권/문화/예술 운동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한곳으로만 향했던 퀴어들의 이동 선이 게토를 선명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 선의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더 많은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지는 않을까? 나는 앞으로 만들어갈 운동의 방식으로, 서울과 대구가 만들어낸 퀴어 항쟁의 역사들을 하나의 연대점으로 보며 다른 연대의 점들을 찍어 가보려 한다.

    현재 지역은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인권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경북대 성소수자 인권 모임인 ‘Kivans’[각주:2]2000년도부터 결성되어 가장 오래 활동하고 있고, 그 이후 포항공대의 ‘LinQ’[각주:3], 부산의 부산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QIP(Queer in PNU)’[각주:4], 울산대학교와 울산과학기술대가 연합하여 만든 성소수자 커뮤니티 ‘THIS WAY’[각주:5], 전남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라잇온미[각주:6] 등이 결성되어 현재 활동 중이다. ‘LinQ’라잇온미는 소속 대학의 학생을 중심으로 회원을 형성하고 있다. ‘Kivans’, ‘QIP’, ‘THIS WAY’는 경북권, 경남권, 울산권에 있는 성소수자 모두가 회원으로 가입가능하다. 이 동아리의 회원수는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며, 이들은 동아리 내 활동뿐만 아니라 각 지역 동아리들끼리의 지속적인 만남도 가지려 하고 있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QUV-Queer university)’에의 가입을 통해 서울의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와도 연대하려 한다. ‘QIP’는 서울의 성소수자 부모모임과의 연대를 통해 부산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동아리는 지역 퀴어의 인권/문화/예술 운동의 장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고, 앞으로 그 수는 점점 늘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서 결성된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는 대학이라는 공식적으로 승인된 시스템에 새로운 프레임을 도입하게할 것이다. 운동에 있어서 불모성을 가진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퀴어들이 공식적인 시스템과의 만난 것은, 운동이 없는 절멸의 자리에서 새로운 결속을 만들어내려는 움직임으로 보아야 한다.[각주:7]그것은 이미 있는 것으로부터 변용하고 전유하여 리듬과 언어를 재활성화하는 것[각주:8]에 가깝다. 지역 대학의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는 서울과 대구에서 이미 시작되어 온 운동의 역사를 지역에서 변용하고 전유하여 지금-여기에 살고 있는 퀴어들의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오랜 시간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학을 전유하여 퀴어들이 가시성을 획득하고, 이들의 결속을 용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 속에서 이루어지는 안티-퀴어적 배제에 저항하고, 퀴어들이 존재와 다양성을 인정받으며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규범을 마련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퀴어 인권/문화/예술 운동은 변용과 전유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고 새로운 결속의 연대로 항쟁의 점들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스톤월 항쟁이 세계를 여행하며 서울과 대구의 퀴어문화축제에 닿았다. 서울과 대구의 퀴어문화축제는 광장을 만들며 운동의 연대점을 만들어내었다. 그 광장을 누비던 전국의 퀴어들은 자신들이 있는 지금-여기에 모여 새로운 결속의 점들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이 점들이 모여 별자리가 될 것이고, 또 다른 별들의 점을 만들어 이어갈 것이다. 이는 퀴어들이 그들이 아니라 우리이며, 이들이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에도 있음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퀴어들의 항쟁은 연대를 통해 혐오가 아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주여행을 곧 하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오늘의 문예비평』 제99호 〈포커스〉란에 실렸습니다.

 

 

 

  1. 1. 2000년 50명의 참가로 시작되었던 서울의 퀴어퍼레이드는 2001년 250여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여 2011년 1천여명, 2012년 1천5백여명, 2013년 약 1만여명, 2014년 약 2만여명으로 참가자 수가 급증했다.(http://www.kqcf.org 참조) 2009년부터 시작한 대구 퀴어퍼레이드 또한 처음에는 5명으로 첫 퍼레이드를 진행하였지만, 2011년에는 40여명, 2014년에는 600여명으로 참가자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http://queer.or.kr 참조) [본문으로]
  2. 2. 경북대학교 ‘Kivans’는 2000년 9월 22일에 결성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경북대학교 학생들의 온/오프라인 이반인권모임이다. 대구, 경북지역에서 가장 꾸준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생 모임이다. 경북대학교에만 제한을 두지 않고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퀴어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퀴어를 이해하고 친구가 되길 원하는 ‘일반’ 또한 회원으로 받고 있다. 정기 모임과 채팅, 이벤트, 스터디 등으로 회원들끼리의 친목을 도모하고 학교 및 사회생활을 하는 데 활력소가 되기 위해 노력중이며 대외적인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활동 및 에이즈 예방 활동 등으로 그 활동 범위도 넓혀가고 있다. (http://kivans.kr/ 참조) [본문으로]
  3. 3. 포항공대 성소수자 동아리 ‘LinQ’는 2012년 2월 7일 결성된 동아리이다. ‘LinQ’라는 이름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 ‘LinQ Is Not Queer’이라는 뜻이다. 이는 Queer라는 단어가 가진 ‘이상한, 괴이한’의 뜻을 살린 것으로, 성소수자로서 부정적 시선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두 번째는, ‘LinQ [liŋkjuː] ≒ Link [liŋk]’로, 학내 구성원과 교류의 기회를 만들고, 소통을 통한 변화를 추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 ‘邻Q. 이웃(린) Queer’로서의 ‘LinQ’는 퀴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성적 지향,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서 ‘진솔하며 건전한 인간관계를 모색’하고, ‘발전적이며 행복한 삶에 대한 탐색과 지향’으로 ‘일상에 개개인의 '다름'을 녹여낼 수 있는 배려와 존중의 문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LinQ’는 세미나 개최, 회원 및 학내 구성원 인터뷰, 회원들의 생애 기록 활동들을 하고 있으며, 이 기록들을 담은 두 권의 간행물 『HELLO WORLD』(2014년 5월 20일 발간), 『IMPONDERABILIA』(2015년 5월 20일 발간)을 발간하였다. (https://sites.google.com/site/postechlinq/home 참조) [본문으로]
  4. 4. 2013년 10월 결성된 'QIP(Queer in PNU)'는 부산 및 경남 지역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를 위한 인권 동아리이다. ‘QIP’는 대자보 부착, 학술 세미나 등 학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기반으로 학내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강연, 파티, 영화제 등의 행사를 통해서 성소수자 학우들과 교류하려고 한다. 또한 이러한 활동을 통해 학내 구성원뿐만 아니라 경남지역 성소수자와도 교류하려 한다. ‘QIP’는 9월에 동아리 회원들의 다양한 말이 기록된 간행물 『e²』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QIP’ 간행물 『e²』 참조) [본문으로]
  5. 5. 울산대학교와 울산과학기술대학교가 연합하여 만든 퀴어 동아리 'THIS WAY'는 2015년 6월에 결성되었다. ‘THIS WAY’는 울산뿐만 아니라 경상권 지역에 사는 퀴어라면 모두 가입 가능하다. ‘THISWAY’는 친목 도모와 인권보호 중심으로 세미나, 개강총회, 타학교와의 소통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QUV-Queer university)’에 가입한 ‘THIS WAY’는 다른 지역 동아리간의 교류를 도모하는 활동도 하고자 한다. (이가영, <우리 대학에도 뜬 무지개>, 울산대학교 신문, 2015.10.07. 참조 http://media.ulsan.ac.kr/newspaper/university/university/Default.aspx?crud=V&idx=4388&type=N&mode=W&page=2) [본문으로]
  6. 6. 전남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라잇온미(Lights on me)’는 2014년 10월 13일 결성되었다. ‘라잇온미’라는 이름은 퀴어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전남대학교 학내의 성소수자들만이 가입 가능하며, 이성애자 및 타대학 구성원의 가입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전남대학교 내의 성소수자들이 모여 서로의 고민과 삶을 나누고 토론하며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동아리가 되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다.(http://koreaqueer.tistory.com/16 , http://cafe.naver.com/klccangminlove/1322596 참조) [본문으로]
  7. 7. 인용은 권명아,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갈무리, 2012, 7쪽 참조. [본문으로]
  8. 8. 「인문장치를 ‘발명’하자!-제1회 좌담회 <흐름의 재구축과 역장치적 아포리아>」, 『문화/과학』, 2015년 여름호, 38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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