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탈환하라!

 

 

권명아

 

 

 

 

   일제 시기 ‘국민학교’를 다녔던 작가 박완서는 이 시절의 기억을 여러 작품에 남겨두었다. 주소나 생활 기록 같은 신상에 대해 선생님이 질문할 때 제대로 답을 못할까 전전긍긍했다는 기록은 작품 곳곳에 나타난다. 신상 기록을 달달 외우며 ‘심문’에 대비했다는 이 소략한 에피소드의 이면에서 우리는 일제 시기 ‘국민학교’ 교육의 흥미로운 특성을 포착할 수 있다. 1931년생인 박완서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인 1938~39년께는 일제가 이른바 ‘국민정신총동원령’을 내리고 국민의 ‘정신’을 통제하는 데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다.

 

 

   국민정신총동원의 구체적인 내용을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핵심은 선전전과 심리전을 전쟁의 전방만이 아니라 후방의 모든 일상 영역에까지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 시절 언론 자료에서는 ‘국민학생’이 수상한 자를 ‘스파이’로 의심된다며 신고해서 포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집에서 부모들이 조선어를 쓰지는 않는지, 수상한 자가 동네에 출몰하지는 않는지 항상 감시하고 학교에 보고하도록 ‘교육’받았다. 초등학교에까지 시행되었던 국민정신총동원은 인간의 영혼을 통제하고 조작하고 실험하는 대상으로 장악하려 했던 파시즘 정치의 전형이다. 이 시기에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교육을 기술 및 실용 위주의 실업교육 중심으로 강제로 재편했다. 식민지 ‘국민’을 기술 중심의 도구적 인력으로 한정하는 대신, 영혼을 관리하는 역할을 소수의 엘리트만이 담당할 수 있도록 통제한 것이다. 즉 국민정신총동원이란 인간의 영혼을 전쟁 수행의 도구로서 통제 관리하며 이를 위해 영혼을 다루는 기술을 소수 엘리트가 독점하는 통치술이었다. 역사적 파시즘 체제가 고도로 발전시킨 이러한 영혼 통제의 기술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거듭 변신하며 출현하고 있다.

 

 

   여러 매체에 ‘선전전’, ‘인문교육 폐지, 기술교육으로 전환’과 같은 말들이 난무한다. 국정원 대선 개입과 교육부의 ‘인문학 폐지’라는 전혀 이질적인 국면은 영혼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파시즘의 오래되고도 새로운 기술의 연장에서 사유해야만 한다. 탈냉전과 함께 폐쇄적인 국민국가의 장벽이 무너지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사회가 도래하면서 파시즘 체제가 만든 고전적인 영혼 통제는 이제 불가능하다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감정 조작 실험 사례가 보여주듯이 네트워크 사회에서 영혼에 대한 통제는 과거와는 다르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냉전 체제가 ‘유물’로 살아 있는 사회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는 각종 영혼 통제 기술들은 파시즘 체제의 역사적 유물과 네트워크 사회의 신기술이 접목된 사상 초유의 변종인 셈이다.

 

 

   그러므로 영혼 통제 기술과 관련된 이토록 희귀한 역사의 유물들이 새로운 기술과 접목되어 나타나는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영혼을 둘러싼 각축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쟁터다. 아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영혼은 억압적인 국가 기구와 자본의 손아귀에 장악되어 버렸다. ‘댓글 조작’과 ‘인문학 폐지’라는 이질적인 국면은 영혼을 통제하려는 일련의 공통된 전략이라는 점에서 사유하고 대처해나가야 한다. 이는 국민을 선전전의 대상으로만 보면서, 영혼 통제의 전문적 기술을 소수의 엘리트만이 독점할 수 있는 배타적 특권으로 만들었던 고전적인 통제 기술의 연장에 있다. 그런 점에서 억압적인 국가 기구와 자본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영혼을 탈환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중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영혼을 탈환하라! 인문을 탈환하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