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동-시간의 종은 울리지 않는다

 

 

金 飛

 

 

 

 

 

 

  지하철 하단역에는 부산의 서쪽으로 운행하는 많은 마을버스들이 선다. 보통은 지역마다 예닐곱의 노선, 많아봐야 열 개 남짓의 마을버스가 운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하단역에는 21번까지 번호가 붙은 마을버스가 있다. 지역에 따라 숫자를 붙이는 방식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작은 버스들이 서로 다른 번호를 달고 바삐 오가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마을들이 얼마나 많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걸까, 괜히 조바심이 나는 것만 같았다. 마을마다 버스의 크기 또한 달랐고 마을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의 차림새 또한 달랐으니, 우리가 사는 세계의 다가가기 쉽지 않은 거리감 또한 얼마나 먼 것인지.

  이번에 내가 목표로 한 곳은 강서구의 명지동이었다. 명지동은 이미 남쪽으로 대단지의 신도시가 들어서 있었고 부산 진해 경제 자유구역으로 지정되어 그에 속하는 건물들과 또 다른 신도시들이 건축 중이었다. 나는 이미 건축된 신도시와 그리고 건축 예정인 또 다른 신도시 사이에, 서쪽 바다의 끄트머리 마을인 '하신'을 목적지로 정하고 하단역에서 14번 마을버스를 탔다.

  여러 개의 비닐 봉투를 든 몇몇 어르신들이 작고 허름한 버스에 올라섰고, 이미 서로 면식이 있으신 분들인지 그들은 버스 안에서 편하게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셨다. 서로 다른 정류장에 내리는 모습을 보니 이웃한 주민들도 아니었던 모양인데 매번 같은 곳을 가는 버스에 오르며 어르신들은 이미 서로 이웃인 모양이었다.

버스는 을숙도를 가로질러 부산의 서쪽을 향해 나아갔다. 다리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조용한 시골 마을을 지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버스는 덜컹거리며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니 황량한 벌판의 아득한 끄트머리에 시멘트 고층 건물들이 들어차고 있었고 버스가 달리는 도로 옆에서도 똑같은 건물들이 뼈대를 세우고 있었다.

  마을버스는 양쪽으로 황량한 건축 부지 사이를 요동치며 지나갔다. 과연 이런 곳에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을까, 그런 의구심을 가지게 될 즈음 버스는 거대한 건축 부지 옆으로 들어섰고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쓴 마을의 집들이 나란히 일렬로 드러났다. 그 중에 한 정류장에 마지막 손님을 내려드리고 버스 기사는 맨 뒷자리에 앉은 나를 흘끔거렸다. '중신'이라는 곳에서 또 다시 버스가 문을 열었고 그곳에서도 내가 내리지 않자 기사는 거울 속으로 내게 소리쳤다.

  "어디 가시오?"

  "하신 가는데요? 이 버스 하신 가는 거 맞지요?"

  "그 마을 없어진지가 언제인데 거기를 간다고 그래요?"

  퉁명스럽게 그렇게 대답해놓고 기사는 나를 먼지가 뒤덮인 마을 끄트머리에 내려주었다. 나를 내려주고도 버스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섰다. 알고 보니 그 황량한 곳이 버스가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하단역으로 돌아가는 회차 지점인 모양이었다.

  "하신은 원래 어느 쪽인가요?"

  도저히 그대로 돌아갈 수 없어 물었더니 기사는 잘려나간 풀 숲 너머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쪽으로 내려서는데 마구잡이로 파헤쳐놓은 길 때문에 발이 푹푹 빠졌다. 흉터처럼 남겨진 나무 몇 그루가 시퍼렇게 물들어가며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고, 이제는 더 이상 버스도 사람도 오지 않는 정류장이 흉물처럼 흙더미 위에 홀로 섰다.

  나는 끊겨진 길을 따라 잘려나간 풀숲을 넘어 또 다른 흙더미 위로 올라섰다. 먼지를 뒤집어썼을지언정 그 너머에 내가 가고 싶었던 마을이, 사람들이 살아있던 그 풍경이 내 앞에 나타나주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흙더미 위에 올라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또 다른 황량한 벌판이었다. 어떤 건물의 흔적이었는지 시멘트 바닥이 발아래 썩고 있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플라스틱 조각들이 나뒹굴었다. 그 너머에 바다 쪽으로 또 다시 잘려나간 풀숲이 보였지만 더 이상 다가갈 방법은 없었다.

 

  나는 그곳에 버려진 듯 서 있었고,

  모두에게 버려진 마을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온 몸을 휘감는 사이 멀리 풀 숲 속에서 커다란 봉지를 든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혹시나 아직 마을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물었더니 그들은 그저 쑥을 캐러 찾아온 외지인이었다. 그 풀숲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그만이었다.

 

 

 

 

 

 

 

 

  나는 그렇게 허허벌판을 서성거리다가 그대로 돌아 나오고 말았다. 명지동의 그 지역은 바다 쪽으로 다가가면서 상신, 중신, 하신으로 나뉘는 모양인데, 좀 전에 내가 보았던 먼지를 뒤집어 쓴 마을이 바로 '중신'이었다. '하신'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한 쪽에는 공사장을 가로막은 거대한 회색 벽을 두른 채 중신의 평성마을은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듯 고요하게 그곳에 있었다. 과거 어느 시간 속에 열심히 땅을 갈고 곡물을 키웠을 농기구들이 패잔병처럼 회색 벽 아래 놓여 있었고 미래를 꿈꾸었을 작은 나무 주택마저 사람을 잃고 한 쪽이 무너져 있었다. 골목의 끄트머리 녹이 슨 철문 너머로 노란 꽃송이 몇 개가 나를 반기듯 고개를 내밀었지만 허탈하고 쓸쓸한 마음은 쉽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건축 부지 반대편에는 초록의 곡식이 익어가는 벌판이 보였지만 내게는 그저 황량한 세계의 전조처럼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간절히 무언가를 기도했을 교회 앞에 서서 나는 한참을 서성거렸다. 시절도 모르고 푸르게 이파리를 키워가는 나무들을 올려보며 한숨을 쉬는데, 나무들 사이에 커다란 첨탑 하나가 보였다. 그 속에 시커멓게 녹이 슬어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종이 있었다. 언젠가 기억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어떤 미래를 위해 마을에 울려 퍼졌을 종소리.

  찍어낸 듯 똑같은 건물들이 높이 들어선 새로운 마을에도 그렇게 종은 울려 퍼질까. 어떤 미래를 떠올리며 자신들이 살던 마을을 져버렸을 사라진 주민들은 지금쯤 그 종소리가 그립지는 않을까. 머지않아 그 아픈 기억마저 사라져버릴 미래 속에 우리는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종탑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고향이 사람을 지킨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을 지킨 것은 결국 사람이겠지만 새로운 고향 속에서 모두들 사라져버린 마을을 그리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면. 시절을 후회하고 참혹해하며 우리들의 손으로 망가뜨린 시간과 그리움들을 안타까워하지는 않았으면.

 

  헛된 바람을 떠올리고 있는 내 머리 위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라져버린 시간의 눈물처럼 아픈 비였다.

 

 

 

 

사진: iphone 4S © 김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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